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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11
    솔직히 천지 창조의 비밀이나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필자는 잘 모르겠다. 다만 복음을 기술한 집필가들의 기록을 신뢰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만약에 그들의 기록이 허구라면 나는 과감하게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본성 뿐만 아니라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본성에는 분명히 실재-진리라고 가정된 세계-를 이해할 만한 안목이 내장되어 있었다. 인간에게 사랑·미움·겸손·교만·배려·질투·의·불의·선·악·미·추·진실·거짓 등을 만드신 이는 절대자이지, 어떠한 생물이나 광물일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기하고도 오묘하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력하나마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축복이다.그분이 나에게 주신 축복은, 내가 대학 교수가 되어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세계 곳곳에 명강연을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성령이 나로 하여금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게 하셨다. 집안 일을 하면서 외손자를 돌보고 속회의 속도원들을 배려하는 데에서 한없는 기쁨의 심정을 느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축복을 미시건주의 한 마을 앤아버에서 감지하였다. 250여 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였는데, 그 교회의 속장인 천집사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카톡방에 초대하고는 그곳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있는 속회 주관 주일 점심 접대 시간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교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족한 것이 없냐면서 양푼에 담은 볶음밥을 조금씩 더 나누어 주었으며, 주일 오후에 있는 속회 모임 시간에는 커피 전문점에서 속도원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면서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고, 금요 예배 전의 토론 시간에는 속도원들의 간증을 겸손하게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에는 직접 숙소에 찾아와 케이크와 과일들을 내놓으면서 다음에는 6개월 관광 비자를 받아 더 오래 머물다 가라는 말을 하며 아쉬워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미시건 주가 아닌 오하이오 주에서 대학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에는 고속 도로를 두 시간 이상 주행하면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의 배려가 그 교회의 박목사의 섬김과 배려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목사는 내가 미국 교통 법규를 잘 몰라 운전하기를 곤란해 하자 직접 나를 숙소에까지 라이딩해 주었으며, 미국에 잠깐 들른 교인들을 위한 초청 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주었고, 나에게 식사를 대접할 기회를 달라며 친구처럼 배려하였다. 그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교인들을 일일이 섬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성직자라 해서 교인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섬김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배우려 하였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에는 내가 다시 그곳에 올 것이므로 “송별”이란 말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이었다. 그들의 섬김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난한 자·병든 자·소외된 자를 배려하신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의 과정을 겪은 후에도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사신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다. 이를 목격한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의 은혜를 받고 로마와 아프리카와 인도에까지 지경을 넓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또한 사도들은 음식·결혼 등의 유대 율법을 넘어서서 성령이 인도하심과 부활을 증거하며, 귀족과 노예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게 음식을 나누고 섬기는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 정권이 다신교와 황제 숭배 등을 주장하자 강한 저항을 하여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아 이스라엘을 떠나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교 집회를 가졌다.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지경을 넓혀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이 임재하심과 재림 등을 전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중시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대교와는 구별된,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였다. 유대교와의 큰 갈등 가운데 하나는 음식 문화였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시중에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남은 음식들이 뒷거래 되는 것이 많다며, 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만을 섭취해야 하며 이방인과 함께 식사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고기 등이 이방신 제사에 사용된 것인가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A.D 49년에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모인 가운데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다. 안디옥 교회 등에서 이와 같은 갈등을 직접 목격한 바울은 율법보다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를 것을 주장하였던 것 같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8-22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10
    『마태복음』25:14-30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다. 세 사람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결산하였다. 결과물을 보고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칭찬하였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하였다. 두 달란트 남긴 자에게도 이와 같이 말하였다.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자에게는 책망하였다. 그 구체적인 조치는 다음과 같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태복음』25:26-30)이는 달란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란트는 구약에 나오는 유대 왕국에서 무게를 재는 단위를 나타낼 때, 1달란트는 약 34.4킬로그램이었다. 그리스 혹 아테네의 한 달란트는 26kg, 로마의 한 달란트는 32.3kg, 이집트의 한 달란트는 27kg 그리고 바벨론의 한 달란트는 30.3kg이었다. 신약시대에 사용된 무거운 달란트는 58.9kg이었다. 신약에서는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는데, 1달란트는 당시 일반 봉급 생활자의 26년 이상의 봉급 총액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돈이었다. 그러므로 이만큼 많은 돈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각기 달란트를 주었는데, 그것이 작지 아니함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을 때 한 달란트를 그대로 둔 자에게 내린 처벌과 같은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자신에게 내려 주신 달란트를 제대로 알고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달란트가 있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세상적인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제 식민지 현실에서 농업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뜻이 있어 사범학교를 나올 정도로 두뇌가 좋았다거나, 42년 동안 줄곧 일기를 써 올 정도로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그냥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대단함을 느끼는 것은 평생토록 집 한 채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아버지는 42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청산한 후 마련한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다 날렸을 때에도, 당신은 집을 팔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어느 정도의 가난을 감수하여야 했다. 나 역시 그로 인해 옷을 마음껏 골라 사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집을 팔고 남의 집에 전세로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임종시까지 지킨 것은 당신의 집이었다. 나의 손윗 형은 형제들 중에서도 비교적 잘 사는 편이었다. 은행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면서 미국과 중국 등 가족들과 외국 생활을 주로 하는 편이었다. 그 형이 국내로 들어와 있을 때 매형의 사업을 돕느라 청동 장식을 만들어 파는 K회사를 알게 되었다. K회사의 대표인 장사장이 형을 꼬드겼다. 사채 이자를 높이 쳐서 줄 테니 돈을 꿔 달라는 것이었다. 형은 그 회사의 재무 구조를 어느 정도 알기에 집을 근저당 설정하여 장사장에게 돈을 꾸어 주었다. 장사장은 고맙다며 형에게 연리 13%의 높은 이자를 매 달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로 인해 형은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형이 K회사에 돈을 빌려 준 지 불과 2년이 안 되어 그 회사는 망해 버리고 장사장은 외국으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이 때문에 형네 집은 불시에 경매에 부쳐지게 되고, 불과 몇 달이 못 가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내 주어야 했다. 형이 비통과 절망감에 허덕일 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집에 들어와라.” 형은 자존심을 구긴 채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왔고, 삼년 동안 근검 절약하며 재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산 지 삼 년 후 형은 W은행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들과 함께 떠나갔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8-0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8
    "백성들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사무엘상』4:3-4)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오늘날의 팔레스타인)과 싸울 때의 일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 “사천 명 가량”이 죽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다가 진중에 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고 만다.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린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다”(『사무엘상』4:10-11).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우상처럼 섬겼고, 하나님을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려 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자신들의 종처럼 다루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종처럼 다루어질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시한 결과는 처절한 패배로 끝날 뿐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까치 처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도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놀라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아이 이름을 ‘이가봇’(“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의미)이라 이름 짓고는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은 사실이 다만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 실상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을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요즈음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반목과 질시, 성직자들의 입바른 소리만 하고 구체적인 실천이 없는 설교, 교인들의 일탈된 행동 등은 바로 블레셋 군대 앞에 선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어떤 이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성경책만 가지고 있으면 해악이 미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인들은 여호와의 법궤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져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때 주님이 박사학위를 받게 해 주셨으니, 대학 교수직을 가지는 것도 주님이 인도해 주시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여호와의 법궤를 우상처럼 섬기는 매너리즘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노력하면 이루어질 것 같던 소망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개인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대학 교수직’을 우상화한 데서 온 필연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좌절의 고배를 마시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너무 한 곳에만 경직되어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상대방의 부조리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온 나에게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하는 비등점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우상화시켰던 ‘여호와의 법궤’를 반성하며, 나의 능력에 대하여 객관적인 검증을 해 나갔다. 나 자신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는가, 인간 관계에 소홀한 점이 없었는가, 너무 절망에만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였다. 그러자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가족과 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서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그들을 위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였고, 딸네 집에서는 가사 노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아들의 취업을 위해서 진심어린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대화가 없던 가정에 대화와 웃음이 생겨났고, 가족간에 신뢰가 형성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의 눈의 티끌은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그러하고, 정치인들이 그러하며, 조직 내에서의 개인과 개인이 그러하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에 빠져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내 탓이오’라고 외치며 내 안의 들보를 걷어내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할 때 우리 사회에 더욱더 건강한 인간 관계가 형성되고,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에 살 맛 나는 인간미가 살아날 것이다. 나를 긍정적으로 개조할 때에 내가 비판하던 상대도 변화될 것이다. 이 순간 내가 교회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주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실 일을 잊지 않았는지 점검하여 볼 일이다. 내 탓이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7-0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7
    정릉에는 백악(白岳)의 줄기가 뻗어나와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그 봉우리의 분지에는 K대학과 D외국어고등학교가 자리잡았고, 그곳 능선의 한 끝에 슬레트 지붕을 한 양옥 한 채가 올망졸망한 집들 사이에서 조금 높이 솟아 있었다. 그 집은 삼십여 미터쯤 되는 긴 골목길의 막다른 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에 그가 출근할 때마다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여인처럼 기도하였다. ‘주여! 우리 아들이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가다가 팔이 부러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직장 생활이 힘들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청춘의 팔팔한 힘이 오래도록 유지되게 하소서.…’이러한 기도는 어느 해 겨울에 그가 빙판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진 이후 생긴 어머니의 습관이었다. 가끔 그는 어머니의 기도가 자신의 등에 꽂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골목 끝에서 잠깐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능선 위에서 비치는 햇살이 가림막처럼 어머니의 등 뒤에 비쳐졌다. 젊을 적에는 어머니의 기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잘 알지 못하였다. 그저 자식을 위해 관행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아침 기도는 15년 동안 이어졌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그 기도도 중단되었다. 장례식을 치른 지 6개월 후 아버지가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에게 ‘어머니의 유산’이라며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두터운 성경책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승용차 앞에서 방긋이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니. 이건 위급할 때에 대비해서 제가 어머니께 사 드리는 것입니다.”은사인 성봉 선생의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그가 행동에 옮긴 것이 바로 승용차 구입이었다. 그것은 성봉 선생이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을 때 차가 없어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사연을 접한 후, 그가 곧바로 실천한 행동이었다. 어머니는 그의 효심에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골목길에 세워 놓은 그의 승용차가 산뜻하게 세차되어 있었다. 처음에 그는 그것을 세차비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서비스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새벽마다 어머니는 수대에 물을 담아 다리를 절룩거리며 삼십여 미터의 골목길을 걸어나가 아들의 승용차를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놓았다. 그는 그런 어머니를 극구 말렸다. 노인을 부려먹는다는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두려웠지만, 중풍을 맞아 몇 번이나 쓰러진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어서였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될 수도 있어.”그는 그런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영하 17도의 날씨에도 어머니는 세차를 하였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차를 꽁꽁 얼게 하였다. 어머니는 더운 물로 그걸 녹이느라 십여 차례 골목길을 오갔으나, 아들의 출근 시간이 되어도 꽁꽁 언 성에는 더욱 두터워질 뿐이었다. 그 때문에 그 날 아들은 직장에 지참을 하고 말았다. 그 후로 어머니는 세차 행위를 그만두었지만,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어머니의 반찬을 준비하는 손길이 더욱 진중하여졌으며, 아침 기도에는 온기가 흘러나왔고, 아들의 구두가 광채가 날 정도로 닦여져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는 그의 자녀들을 정성껏 돌보아 주었고, 어머니의 온아한 품성은 손자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찬바람이 세게 불던 날 어머니의 삶도 끝이 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딸이 결혼해서 출산하였을 때, 그는 미국에 있는 딸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딸아이와 외손자의 건강을 위해 그는 기도하고 열심히 집안 일을 도왔다.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하여도 그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이 기뻤다. “아빠. 그렇게 쉬임없이 일하면 힘들지 않아?” “아니야. 내가 네 할머니한테 받은 은덕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사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가사 노동을 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샘솟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에게서 전해진 힘이었다.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내 대신 내 어미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등이 없어서 너를 업어 줄 내 어미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손이 없어서 너를 붙들어 주고 어루만져 줄 내 어미를 네 곁에 보냈노라. 나는 너를 품어 줄 가슴이 없어서 어린 너를 품어줄 어미를 네 곁에 보냈으며, 내게는 젖이 없어서 생명의 젖줄을 너에게 보냈노라.”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이 체감한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가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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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6-20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6
    학위만 받으면 모든 게 쉽게 풀릴 줄 알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결과였던가. 4년 동안 밤잠을 설쳐 가면서 수백 편의 논문을 읽고 수천 장의 독서 카드와 원고지 앞에서 씨름했었다. 네 살 난 아들이 문을 두드린다.“왜?”“아빠. 이거 가지고 놀아도 돼?”조금 전에 가격이 싼 편이어서 사 온 조그만 참외들을 아들이 발로 차면서 논다. “그래라.”나는 싱크대로 가서 아들 주먹만한 참외를 씻어서 행주로 닦은 후 거실 바닥에 놓았다. 아들은 그걸 손과 발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재미있게 논다. 하도 재미있어 하길래 물놀이 할 때 사용하던 공을 장롱에서 꺼내어 주었더니, 아이는 그걸 가지고 거실을 뛰어다니며 좋아한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박스에 가득 담긴 논문을을 꺼내어 홅어 보았다. 벌써 이력서를 보낸 지가 두 달이 지났지만, K대학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나와 동갑내기인 안교수가 이번에는 어려울 거라는 말이 귓가를 스쳐갔다. “이번에는 모 처에서 추천한 인물이 들어와서 어려울 것 같네요.”이 말을 듣고 문단 선배인 이교수를 찾아갔더니, 걱정하지 말고 이력서를 내 보라고 해서 자료를 제출했었다. 커다란 박스에 그동안 발표하였던 저서와 논문들을 가득 채워 제출하였을 때, 이번에는 꼭 될 것만 같았다. 이교수에게 농담 삼아 이번에 선배님 덕분으로 되기만 하면 수원에 있는 정자동으로 이사 오겠다는 농담을 건네 보았지만, 이교수는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벌써 열 번째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의외로 순조로와 보였다. 지방에 있는 J대학 총장 앞에서 면접을 볼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었다. 그러나 매 번 최종심에서 탈락되었다. 직장의 선배들은 실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도 있다며 불의한 방법을 써 보라고 하였지만, 그건 내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일을 했다가는 평생을 두고 앙금을 남길 수도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들어왔다. 손에는 수박 한 통과 우편물이 들려 있다. 아들이 공을 차고 노는 것을 보며 아내가 다가가 안아 준다. “여보, 이 참외들 마트에서 얼마 주고 샀어요?”“삼천원.”“나도 삼천원 주고 샀는데, 어쩜 우리 부부는 이렇게 호흡이 잘 맞수?”하면서 부엌으로 가서 참외를 깎아온다. 한 조각 맛을 본다. “역시 맛은 별로네. 그래서 과일은 좀 비싸더라도 좋은 것을 사야 한다니까. 여보. K대학에서 자기한테 우편물 왔데?”나는 아내에게서 K대학 로고가 새겨진 봉투를 받아 서재로 들어가 펴 보았다. 가슴 조이며 펴 보았으나, 이번에도 실패다. 그동안 얼마나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던가.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수요 예배와 금요 철야 예배는 물론 새벽 예배까지 꾸준히 참여했었다. 새벽 예배는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찬바람이 불어 나뭇가지 끝에 고드름이 달릴 때에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드렸었다. 주님은 먼 별나라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계시다고 믿으면서 기도했었다.‘주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자녀임을 지인들이 확실히 알게 하소서.’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의 쓴 잔이 다가왔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도 ‘주님. 제 짐을 같이 져 주십시오.’라며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낙망으로 돌아왔다. 욕실에 가서 샤워를 간단히 끝낸 후 다시 서재로 돌아와 원탁 테이블 앞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가 교수가 되는 것은 당신의 뜻이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제가 욕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직도 죄의 늪에 있는 겁니까?’나는 한참 동안 혼자서 고민하다가 『사도행전』마지막 장을 펴들었다. 거기에는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다가 멜리데 섬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섬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화가 나와 있었다. 나는 잠시 창문쪽을 바라보았다. 뿌염한 빛이 사각형으로 된 창을 통하여 들어왔다. ‘나에게 멜리데 섬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다운 멋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나는 그 인간미를 가진 존재가 주님의 뜻이라고 스스로 일러 보았다. 나는 서재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거기에는 아내가 아들과 함께 정답게 앉아 있었다. “당신, 웬일이야? 늘 서재에만 들어박혀 있던 사람이.”“응. 오늘부터 책의 감옥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놀기로 했어.”“쥐구멍에도 별 뜰날 있수. 호호호.”빛은 여전히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빛이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6-0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5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이사야> 49:1-2)주님은 사람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하였다.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죄의식으로 인해 슬퍼하였다. 그래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사람의 잘못을 가르쳐 주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온전한 회개를 하지 못하였다.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도 쉽게 넘어지기를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개인에게 들어가 사람이 의롭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님은 성령이 개인에게 임재하는 길을 열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주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친히 세상에 내려왔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심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는 그 뒤뚱거리고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더구나 그 새끼의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낮은 자세로 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구세주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허황됨을 풍자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권능자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 모습은 그런 권능자에만 있지 않았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는 기회를 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필요했다. 예수님의 몸을 제단 위에 올려 놓는 의식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일이었다. 예수은 십자가에서 죽은 후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그리하여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다시 사신 모습을 보여주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함을 알려 주셨다. 주님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갔고,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보고 상심하여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부활하셨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달라는 제자에게 직접 창에 찔렸던 자국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제자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이 부활과 성령을 이해하도록 당신이 다시 사신 모습을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에 무지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정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이 풍자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던 민중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성을 몰랐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성령이 임재하심을 몰랐던 때가 있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세상 책들을 열심히 읽고 습작도 많이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아침마다 영감의 만나를 내려놓고 가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 일곱 시가 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꿈에서 깨려는 찰나에 주님이 내려 놓고 가신 영감의 만나를 보았다. 그것은 나를 더 성숙한 작가의 위치로 나아가게 하는 주옥같은 모티프였으며, 담론이었다. 나는 그 모티프를 주워 담아 사색하고 글을 써 나갔다. 주님은 영감의 만나만 주시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탄의 유혹에 빠지려 할 때마다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순수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하나님의 의대로 살아가려고 하며, 그분이 계획한 대로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도를 통해서 내가 살아 있음과 가족과 형제가 건강하고 평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그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전하는 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민중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성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나의 작가 정신을 모르고 원고료를 제대로 못 받는다고 무시하는 사람, 내가 그분께 드리는 찬양의 참모습을 모르는 사람,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벌이가 신통찮다고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서운함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다가와 작가로서의 길을 인지하시고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걸어 가라 하시었다. 주님은 나에 대한 지인들의 멸시를 믿음의 방패로 막아 주시고, 나에게 현실을 풍자하는 글을 쓰라고 진리의 창을 내어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그분이 함께 하는 현재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며, 집필을 하고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시는 그분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5-2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4
    최근 들어 한 탈렌트가 지인과 관련된 음란물을 카톡방에 올려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는 관련 여성에게 수치심을 일으키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윤리관이 올바르지 못함을 잘 나타내는 사례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이 야동에 대한 관음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는 우리 사회에 성 윤리관이 바르게 정착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례를 들춰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전한 인간미를 발굴하는 일도 필요한 것 같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그 중에 사마리아 땅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강도를 당해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이 천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여관에 데려가 치료하고 그의 숙박비까지 내 주고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한 비유다.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이 원관념에 해당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보조 관념이다. 율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에게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역사나 율법이 굳어진 언어를 사용하면, 그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식상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 같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과 그 자녀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희생양 역할을 해야 하고,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바탕한다는 말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말해 봐야 설득력이 없다고 보신 것 같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인류 구속에 대한 원대하신 계획을 그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도왔듯이,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몸소 행하는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에는 사회에 다양한 문화 양상이 나타나면서, 교회에서도 기존의 경건함만으로는 교인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록 계도하는 데 한계가 없지 않다. 물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각시키면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윤리관 확립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다가도, 네비게이션이 작동하고, 자율 주행 자동차가 다니고, 인공 지능이 발달한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교인이 없지 않다. 예배당에서는 건전한 마음을 가지다가도 교회 밖에서는 죄를 짓는 양가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성직자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경건함만 보고 교회 밖에서의 이중적인 생활을 모르는 척하는 데서 나온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교회 밖의 일상에서도 신자로서의 경건함과 멋을 유지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자가 일상에서도 교회에서와 같은 경건함을 표현할 수 있는 멋을 연출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임재하신다는 것을,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나타내는 신자로서의 멋을 교회 안에서 제시하여도 좋을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면서 배꼽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었듯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에 얽매인 데서 벗어나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가 부모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듯이,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예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예배 시간에 찬양을 부르며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에 나오는 로봇춤을 추어 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의견을 내가 다니는 교회의 장로에게 내놓았더니, ‘추수 감사 찬양제’ 시간에 한 번 시도해 보란다. 팔백여 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에 교인들이 자리를 잡고 목사의 설교가 짤막하게 끝나자 기관별로 찬양을 하는 대회가 열렸다. 물론 이 대회에는 등수를 매기지 않고, 참가한 모든 기관이 상품을 받는 축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순교한 제자는?”이렇게 퀴즈가 진행되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정답을 맞춘 자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기관별로 찬양이 진행되었다. 나의 차례는 일곱 번째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주만 바라볼지라」가사 중 일부). 나는 이 찬양을 부르면서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에 나오는 로봇춤을 추었다. 교인들이 눈을 휘둥그레하고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날 찬양제는 멋있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5-10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3
    이스라엘 역사에서 남북투쟁시대에 유다왕국의 아사왕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개혁자로서 성공한 왕이었지만, 군사 외교 정책의 실책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다. 그의 외교 정책은 세상적으로 보면 매우 지혜로운 것 같아 보인다. 유다가 이스라엘과 자주 충돌했던 시기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여 유다에 있는 성전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았다. 그러자 아사는 이스라엘과 접해 있던 나라 아람 왕의 벤하닷에게 "은금"(뇌물)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공격해 달라 하였다. 이에 벤하닷은 이스라엘 성읍들을 공격하였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들을 쳤더니"(『역대하』16:4). 이에 다급해진 바아사왕은 유다와의 접경에 있던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 후 아람왕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자 유다의 아사왕은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운반하여다가" 유다에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 이는 세상적으로 보면 매우 훌륭한 외교 정책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왕 아사에게 전한 말은 이러하다. 아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에는 아무리 강한 군대를 상대하여도 다 승리하였는데, 벤하닷과의 은밀한 거래는 여호와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람 왕의 군대가 아사 왕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다(『역대하 16:7-9)』). 아사왕은 이 말에 크게 진노하여 그를 감옥에 던질 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학대하였다(『역대하』16:10). 또한 그는 하나님의 징계로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였으나 그 때에도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역대하』16:12).이는 의원에게 구한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어려울 때 사람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을 꾸짖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병들어 그 일이 있은 지 2년 후에 죽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보면 지도자가 진리에 기초한 정책을 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를 보면 개인도 진리에 기초한 원칙대로 살아가야 함을 알게 된다. 필자도 지난 삶을 돌이켜 볼 때 진리에 기초한 원칙대로 살아왔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순전히 성령이 인도하신 대로 따른 결과였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필자도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학위를 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새벽 잠을 줄여가며 독서와 논문을 써야 했고, 서너 살 안팎의 아이들과 노는 시간도 줄이며 연구에 매달려야 했다. 친척들 결혼식에 축하하러 갈 시간을 줄이고, 공적인 모임에 갈 때에도 교통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택시를 타야 했다. 그리고 수 년간을 도서관에서 밤늦게 연구에 매진하면서 강의도 병행하여야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학위를 따서 안정된 교수직을 얻어야겠다는 조바심이 앞섰다. 그러나 학위를 따 놓아도 교수직을 얻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십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지만, 그것이 교수 자리를 얻는 데에 결정적인 결과물이 될 수는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임용되고자 하는 대학에 연줄이 닿아야 했고, 그러한 연줄이 잘 닿으면 최종 후보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연줄이 어쩌다가 잘 닿았다 하여도 지인들은 불의한 일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나에게 상당한 시간 고민과 갈등을 하게 만들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그때 불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선교사인 형에게 자문을 구하였을 때, 형이 말하였다. "불의한 일로 네 영혼을 팔아먹지 말아라. 죽는 순간까지 네 양심에 따라다닐 불의한 일을 하지 말아라." 나는 형이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때 들었지만, 끝내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근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내가 불의한 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 매우 잘 한 일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하게 한 결정적인 성경 말씀이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아사왕의 실책이었다. 분명 이 세계에는 진리가 살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따라 진리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성경 말씀에는 의와 불의를 구별하게 해 주는 성령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성령은 내가 성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며, 불의한 일을 경계하도록 이끄신다. 그리고 성령은 내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사탄이 시험을 하였는데, 나라고 해서 시험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시험을 성령이 능히 이기게 하여 주시리라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하셨고,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하였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4-26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2
    국어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바리새파의 유력한 정치가. 예수에게 밤에 몰래 찾아와 가르침을 구하고 예수를 변호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한다.”그는 산헤드린의 의원이었다. 산헤드린은 행정기관일 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사법관청이었다. 유대인 중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하여 사법적 판결을 내리는 곳이었다. 그 사법적 판결은 오직 율법 해석의 권한을 가진 율법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한번 내려진 판결은 유대인을 영원히 매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절대적 판결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산헤드린에서의 율법학자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 당시 평민으로서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었다. 그것은 율법학자가 되어 산헤드린에 진출하는 것이다. 이 신분은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평민으로서 율법학자가 되려면 랍비로부터 모든 전승 자료와 유대인들의 종교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를 담고 있는 할라카(에스라 이후 유대 교사들이 전승한 유대교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생활방식)를 통달하게 해야 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종교법과 형법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율법학자가 되어, 이후 40세가 되면 서품을 받아 완전한 율법학자가 되었고, 또한 율법학자단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요아힘 예레미아스).바리새인이며“유대인의 지도자(또는 산헤드린 공회원)”(『요한복음』3:1)인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받아 예수의 시체를 가져갔을 때에 그 장례를 도왔던 사람이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한복음』19:39,40).『요한복음』3:1-15에는 니고데모가 예수께 질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질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당시 바리새인은 부활과 천사와 영이 다 있다고 믿고 있었다(『사도행전』23:8).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랍비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 근거로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들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3:3). 니고데모는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3:5-8).이를 보면 니고데모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성령’이었던 것 같다. 곧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니. ‘성령’이나 ‘거듭남’의 의미를 이해하였을 리가 만무하다. 초기 기독교가 부흥하게 된 것은 이 성령이 신자들에게 임해서였다. 곧 주님이 성령이 되어 오셔서 하나님이 선택한 자녀로서의 능력을 행하게 하신 것이었다. 니고데모는 삼위일체가 되시는 주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그가 성령임을 몰랐던 데서 오는 무지였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이들에게 성령이 알게 하여 주는 것이지, 개인이 임의로 알고 싶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기도해야 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백성인가를 묻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하나님의 의대로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성령이 그 비밀을 알려 주실 때에 신자가 진정한 행복을 만끽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부귀와 권력보다 더 존귀한 것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는 것이다. 신랑되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불치병과 불구된 자를 고치시고, 남자만 세어도 오천 명이 되는 무리에게 오병이어의 축복을 내리시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사나운 물결을 잠잠케 하시고, 주님이 몸소 부활하셔서 성령이 되어 오시는 것이 어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오늘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 하여도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한 이는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성령이 임하셔서 나에게 주님이 어떻게 임하시는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4-1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1
    신앙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영적으로 만날 수가 있다. 주님은 성인이나 유명 성직자에게만 임재하시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병자에게도, 소외된 자에게도 찾아오신다. 평범한 자에게도 찾아오신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23:10)빛나고 뾰족한 화살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광석을 불에 녹이고, 단단한 흙으로 된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쇠망치로 수백 차례 두들기고, 페이퍼로 연마하고, 기름을 묻혀 헝겊으로 닦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쇠는 단단해지고 그 기능에 걸맞는 형태로 단련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훈련시키실 때에도 이와 같은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내보내시며 복음을 전파하는 실무를 겪게 하셨고, 기도와 사랑의 본을 보이셨으며, 몸소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16: 24), 여기서 “자기 십자가”가 고난당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십자가에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연단의 과정도 포함된다. 바울도 여러 번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어냈다. 그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과정도 연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큰 고비 중의 하나는 배를 타고 가던 중 유라굴로 광풍을 맞은 것이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다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사도행전』27: 14-19). 필자는 이 구절에서 사공들이 배 안의 짐과 기구들을 바다에 버리는 행위에 주목하였다. 배를 가볍게 해야 배 안으로 들어오는 물의 무게를 줄여 배가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이치 같은데, 사람도 욕심을 비울 때 영적으로 건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한때 대학 정교수의 꿈을 꾸고 수천 권의 책을 사 모으고 지식을 쌓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독자들로부터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성에 관한 책들도 틈틈이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명예욕이나 욕심은 ‘유라굴로 광풍’을 맞은 뒤 비우게 되었다. 책도 약 2500여 권을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서가가 정리되면서 내가 쌓아야 할 인간미가 무엇인가를 모색하게 되었다. 욕심을 비우니 새로운 영감이 새벽마다 차올랐다. 그것은 나에게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즐거운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영적인 양식을 채우는 데 골몰하게 된 것은 유라굴로 광풍을 견뎌내고 터득한 연단의 이치였다. 나는 이러한 이치를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영적 체험이라고 믿는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체험을 담대하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이 증거되는 기회가 되었다.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 앞에서도, 벨릭스 총독 앞에서도,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자신에게 일어난 영적 체험을 담대히 증거하였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있던 공회에서도 부활을 말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사도행전』23:7)길 정도였다. 바리새인들은 평소에 부활과 천사와 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사두개인은 그것이 없다 하였던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고 부활하심과 성령이 오심과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여야 했는데,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이를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유대교 대표와 군주와 총독 앞에서 담대히 말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사도행전』23: 3)라는 예언대로 A.D. 66년에 민란의 와중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도적들의 손에 의해 죽고 만다. 주님은 바울을 연단시켜 죄수의 신분으로 당시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을 상대하게 하신 것이다. 기독교는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주님이 연단시킨 종들을 통하여 변화해 왔다. 유대교인들을 상대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였고,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였으며, 부패한 카톨릭과 대립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남녀간·인종간 갈등도 청교도 정신과 함께 극복되었다. 그것은 영적 체험을 가진 수많은 주님의 종들을 통한 변화요, 개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지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님이 어떻게 임재하시는가를 주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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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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