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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38
    “산이 다가와 내게 감춘 비밀을 묻는다/ 난 산을 훔쳐보며 엿듣는 거라 말했다/ 산과 나 바다는 한 끈 속 출렁이고 있었다.// 산이 작은 도시의 바다를 내려다 본다/ 늘 고여 오르는 열기에 숨을 헐떡인다/ 묵묵한 그의 마음자리 새가 되어 나는 비늘.// 벌레의 울음소리 산을 가득 덮는다/ 수도자는 비질로 울음을 쓸어 담고/ 그래도 남는 밀어를 혼자 안고 듣는다.// 산이 다가와 귓속말을 전하고 있다/ 입술에 묻어나는 이끼같은 산내음이// 달고도 오묘한 물빛 해동갑을 하고 있다.”(졸시,「산과 포구」에서) 산과 포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영동 지역만 가더라도 설악산 가까이에 많은 포구들이 자리잡고 있지요. 이를 보면 산과 포구는 서로 인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는 사람의 시선에 따라 어떤 이는 산만 보이고, 어떤 이는 포구만 보일 뿐이지요.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산과 포구를 아울러 볼 수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조선 시대의 당쟁도 동인이든 서인이든, 노론이든 소론이든, 다 맞는 말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색깔만 주장할 때, 상대를 유배시키고 사약을 내리는 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산과 포구」란 시를 지어 보았습니다. “산”과 “포구”가 대화할 때, “산과 나 바다는 한 끈 속 출렁이”게 되지요. 남과 북, 동과 서, 진보와 보수 간에 진실과 세계를 품을 수 있는 안목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나는 바다낚시를 좋아합니다. 동호회원들과 동해안과 서해안과 남해안으로 몇 차례 낚시를 다녀 보았습니다. 동해안은 청정한 바다가 좋았고, 서해안은 가두리 양식장이 인상적이었으며, 남해안은 완만하게 굴곡진 포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산을 지나 창2리에 다녀왔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출발하여 아침 해가 밝았을 때에 포구에 도착하였습니다. 육지로부터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낚시터가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좌대 낙시터입니다. 도시의 실내 낚시터에 비하여 별로 크지 않았지만, 요새 웬만해선 바다에서 고기가 잘 안 잡히다 보니 이렇게라도 고기 잡는 쾌감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낚시터 주인은 우리 일행을 통통배로 실어 낚시터에 내려놓고는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물고기를 풀어 넣었습니다. 풀어진 고기들은 낚시 바늘을 피하는 요령이 생겨서인지 잘 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반나절을 바닷바람을 맞으며 사색에 젖을 때가 많습니다.동호회원 가운데 P는 바람잡이 역할을 합니다. 그는 물고기를 별로 잡지 못하면서도 낚시하는 분위기를 즐기는 편입니다. 언제나 들뜬 분위기로 물때 등을 이야기하며, 몇 개월에 한 번씩 낚시를 주선하곤 합니다. 한 달에 20일 일하고 열흘간 노는 그의 직업 특성상 낚시는 그의 유일한 취미 생활입니다. 그러면서도 주일날에는 새벽부터 차량 봉사를 성가대에도 서는 신실한 신자입니다. 그의 아들이 이제 막 목사가 되어 충청도에서 교회를 개척하였는데, 나도 창립 예배에 참석해 보았지만 신도가 고작 두세 명이어서 그가 아들의 생활비를 보태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동호회원들이 “목사 아버님”하고 불러 주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흘리곤 합니다. 그러면서 “이 땅에서 상 받으면 하늘 나라에 가서 상이 없다”면서 숨은 봉사 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J는 낚시 준비하는 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는 뉴질랜드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 바다낚시의 재미를 톡톡히 본 모양입니다. 주로 해변에서 밀물이 들어올 때에 낚시를 하는 데도 대어만 낚아올린 모양입니다. 한 번은 130센티미터짜리 한치를 잡아서 십여 명의 그곳 교인과 어울려 배불리 먹고도 남았다 하니, 그가 낚시 취미를 가질 만합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내도 낚시 나들이 준비를 하는 데 일가견이 있어, 이번에도 돼지 삼겹살과 부재료, 간식과 라면과 취사 도구 등을 꼼꼼히 챙겨 보냅니다. J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기도하는 일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S는 낚시광입니다. 좋은 낚시터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어 틈만 나면 오토바이를 타고 낚시터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S도 요즘에는 고기들이 입질을 안 한다고 투덜대곤 합니다. 그래도 그는 낚시 얘기만 나오면 금방 생기가 돌아 주위 사람들의 기분이 올라가게 하지요.그럼 나는 어떠하냐구요. 나는 낚싯대도 없이 주로 회원들 가는 데를 따라다니는 편입니다. 이제까지 숭어 한 마리도 못 잡았지만, 낚시터의 정경을 페이스북에 올려 낚시하는 기분을 내곤 합니다. 그래도 회원들은 나를 데려가기를 원합니다. 내가 가야 분위기가 업된다나요.이런 동호회 얘기를 하는 것은 주 안에서 행복한 삶을 인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행복은 날 위해 기회를 엿보다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있는 행복을 잡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진짜 행복이지요. 산과 포구가 한데 어울리는 것처럼,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주 안에서 한 몸 될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예뻐하실 겁니다. 여러분도 행복을 나누어 가지시기 바랍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3-03
  • 기독교인의 행복론 -37
    1997년 독일 Munich에서 공연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1958-2009)의 「빌리진(Bille Jean)」을 동영상으로 보는 순간, 나는 그 멋에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마이클 잭슨이 여행 가방을 들고 무대에 나가서 가방을 열고 검정색 반짝이 가디건과 모자 등을 절도 있게 꺼내들고, 각이 살아 있는 기계적인 몸놀림과 스멀스멀 이어지는 듯한 발동작을 하고 수십 개의 조명과 한 개의 메인 조명을 번갈아 받으며 노래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현란함 그 자체였습니다. ‘아, 어쩌면 저렇게 멋있을 수가 있지.’ 나는 혼자서 그의 동작을 몇 번이나 따라 해 보며, 나 자신이 마이클 잭슨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하였습니다.그 러다가 ‘제1500회 KBS 전국 노래 자랑’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한때 TBC 탈렌트 시험에 응시한 적이 있는 만큼, 노래하면서 표정 연기를 해 보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천진난만하고 감미로운 표정을 짓다가 열광적인 몸짓과 함께 우렁찬 목소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겠다는 포부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막상 무대에 섰을 때 천진난만한 표정은 살릴 수 있었으나, 막상 열광적인 몸짓을 하려는 순간 “딩동댕” 소리가 나 미처 내 장기를 다 보여줄 수가 없었습니다. 1500회 특집인지라 프로 가수에 버금가는 사람들이 본선에 오르는 바람에 인기상도 탈 수가 없었습니다. 아쉬움을 안고 주일날 교회에 가서 카리스마가 있어 보이는 H장로에게 KBS 출연 사진을 보이며 말했습니다.“장로님. 제가 이래뵈도 ‘KBS 전국 노래 자랑’ 본선에 올라 여기 이렇게 사진까지 나왔는데요. 아, 우리 교회 교인들만 나의 음악성을 몰라 주네요. 저에게 대예배 헌금송 기회를 한 번 주십시오.”이렇게 H장로에게 떼를 쓴 지 두 주만에 대예배 헌금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주를 바라볼지라」복음송을 동영상으로 수십 번 보고 가사도 외우고 해서, 자신감 있게 지휘자 앞에서 리허설도 하였습니다.“박자가 너무 빠르네요. 속도 조절을 해서 잘 해 보세요. 가사를 보고 해도 상관 없습니다.”이렇게 해서 드디어 800명 이상의 교인이 들어선 예배당에서 찬양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자신 있었던 노래였는데, 막상 무대에 서니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아나아아아님에에 사아랑으을 사모하는 자아아아--- (덜덜덜)” ‘목소리가 왜 이렇게 떨리지?’ 하면서 무슨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이었습니다. 한 쪽 다리를 들어올리고 엉덩이를 절도 있게 앞뒤로 움직이는 멋진 모습. 그래서 ‘안 되겠다. 마이클 잭슨처럼 자신감 있게 해야지.’ 하면서 절도 있는 몸동작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모습이 너무 마이클 잭슨처럼 보였는지 교인들이 의외라는 듯 뻥한 표정으로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노래를 제대로 끝낸 것이 다행이었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담임 목사님이 “KBS 전국 노래 자랑에 출연한 문학 박사”라고 나를 치켜세워 주었습니다. 나는 손을 입술에 대었다 떼면서 절도있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성가대 총무가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W교회 역사상 헌금송을 그렇게 웃기게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내가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낸 것이 웃겼나 보구나.’ 하고, 그냥 무사히 지나갔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직장에서 건강 검진을 받는데, ‘만성 신장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K대학 병원 J교수가 말했습니다.“통풍과 고혈압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통풍으로 인한 가시바늘 같은 요산이나 뭉친 혈전이 뇌나 심장에 가서 갑자기 막힐 수도 있으니,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건강을 챙기셔야 합니다.”나는 평소에 건장하였던 나에게 그런 병이 찾아온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습니다.“왜 이런 병이 갑자기 생겼지요?”“그 원인은 찾기 어렵습니다.”그 후 나는 나름대로 원인을 찾아 보았습니다. 평소에 건강을 장담하던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내가 그 날 대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이 마이클 잭슨 흉내를 내다가 교만 죄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요즘 나는 행복합니다. 약을 꾸준히 복용함으로써 건강이 다시 찾아왔고,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전업 작가의 길도 걸어갈 수가 있어서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변화된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예배하며 찬양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찬양 가사에 맞는 표정 연기를 함으로써, 교인들로부터 “은혜로운 찬양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에는 마음이 흐뭇하기까지 합니다. 노래 부르기를 워낙 좋아하지만 이러한 장기를 주님을 찬양하는 데 사용할 수가 있어서 좋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주님과 대화해 봅니다. “주님! 저 예뻐요?”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2-23
  • 기독교인의 행복론 -36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앞으로 120세에 이를 거랍니다. 성경을 보면 아담의 계보가 나오는데, 아담은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고(<창세기> 5:5), 므두셀라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창세기> 5:27)다고 나옵니다. 생명 과학에서 원숭이의 수명이 가장 생육이 발달한 시기를 기준으로 하여 5배의 시기를 더 산다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할 때, 인간은 가장 체력이 왕성한 25살을 기준으로 하여 5배를 더 사는 125년이 평균적인 수명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근데 1900년대에는 공해 등 환경의 영향으로 70여 년을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기대 수명은 생명 과학의 발달로 120년이 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주변의 노인들을 보면 90대인데도 정정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인들 중에는 황금찬 시인이 100세가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현재 60세인 노인이 앞으로 60년을 더 산다고 볼 때, 인생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시대가 도래하였습니다. 작가의 경우 70세까지 왕성한 집필 활동을 하겠다고 계획하였다면, 집필 기간을 90세, 100세까지 연장하여야 할 것입니다. 곧 생명 연장에 대한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것이지요.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에서 내려 600미터를 걸어가면 <방우산장> 조형물이 있습니다. 조형물에는 조지훈(1910-1948)의 시 「낙화」가 시비로 세워져 있고 격자무늬 모양의 조형물과 함께 의자도 몇 개 놓여 있지요. 그는 평소에 지조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지조론은 그의 집안에서 가훈으로 내려오던 것이었습니다. 첫째는 재불차(財不借)로 재물을 빌리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인불차(人不借)로 사람을 빌리지 않으며, 셋째는 문불차(文不借)로 글을 빌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형물 <방우산장> 옆으로 골목길을 들어가면 그가 살았던 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4층짜리 빌라가 들어서 있지요. 그 집은 그가 생전에 팔았던 집입니다. 그 집을 팔 때의 일화가 있습니다. 대학 교수였지만, 자녀들 등록금 대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는 재불차(財不借)를 실천하기 위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고 집을 팔았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매수자와 계약을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 집에서 사는 조건이었지요. 이는 그가 지조론을 얼마나 철저히 실천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일화지요.필자는 이 일화에서 알파 에이지 시대를 사는 지혜를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바로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지조(志操)이지요. 지금 이 시간이 영감이 쏟아져 나오는 청년 시절이라 생각하고 멋진 글을 연마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도 지조 있게 살아가는 덕목일 것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헬스장 등에서 체지방이라든가 자기 몸의 상태를 정밀하게 체크할 수 있는 좋은 기계가 많습니다. 지조는 앞으로 3-40년은 청년으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의지입니다. 그리고 지조는 양심에 따라 생동하는 삶을 사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알파 에이지 시대를 사는 가장 멋진 방법은 영원 위에 놓인 존재로서 살아가겠다는 믿음입니다. 영원 위에 놓인 존재라면 지금 이 순간의 언행도 매우 소중한 흔적이 되겠지요. 천체의 흐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 시간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 중에서 인간의 수명은 기껏해야 100여 년입니다. 우주의 시간에 비하여 티끌 만큼의 길이를 가진 이 시간에 생각하여야 할 것은 주어진 수명을 얼마나 멋있고 행복하게 살아가는가 하는 것입니다.행복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몫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몸소 희생양이 되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행복입니다. 아버지가 그 자녀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러면 이제 신자의 살아가는 목표도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자, 그럼 구체적으로 신자의 멋진 인생을 설계하여 봅시다.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행복한 표정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자녀와 함께 동행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들과 즐겁게 교제합니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사랑과 평화로 인간미를 꾸려 갑니다.그리고 기도합니다. 신자가 말씀 보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멋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세계 선교를 지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소화할 수 있는 시선과 능력을 허락하소서. 물질적인 가치보다도 영적인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 행복임을 알게 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행복이 가족과 이웃에게 퍼져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행복의 근원이 주님께 있음을 만인이 알게 하소서. 새벽마다 주님이 찾아 오셔서 복을 주실 때 우리가 마중물이 되게 하소서. 주여! 감사드리나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2-09
  • 기독교인의 행복론 -35
    충무로역에서 내려 명동쪽으로 가다가 작은 골목을 끼고 남산을 올라가다 보면 ‘문학의 집’이 있습니다. 길 초입부터 우람한 나무들이 버티고 있어 숲의 기운이 인간을 감싸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지요. 이곳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국정원(옛 중앙정보부)이 있던 자리지요. 그런 서슬퍼렇던 곳이 교통 방송 소방안전본부 등의 건물이 들어서서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탈바꿈하였지요. ‘문학의 집’도 옛 중앙정보부장 관사였던 곳을 리모델링하였지요. 경비실은 찻집으로 바뀌었고, 2층으로 된 주택 외관에는 윤동주를 비롯한 여러 시인들의 싯구가 적힌 현수막이 늘어서 있고, 주택 안에는 한용운을 비롯한 시인들의 사진과 현대 시인들의 육필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곳 1층 홀에서는 문인들의 시낭송이나 문학 강연 등이 주기적으로 열리는데, 좋은시 낭송 문학회에서는 매 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3시부터 시낭송회를 열고 있지요. 좋은시 낭송 문학회는 공연과 함께 하는 시낭송으로 독자와 친밀감을 가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문학 단체로 신규호 시인이 회장으로 있으며 회원은 33명입니다. 매월 초대 시인을 초대하여 시낭송을 합니다. 이복래 시인이 ‘봄날은 간다’ 등의 흘러간 노래를 연주하고 나면, 신규호 시인이 인사말을 합니다. “사람의 얼굴 구조는 여타 동물과는 다르게 되어 있습니다. 말을 할 수 있도록 턱뼈가 약간 각이 져 있고 성대가 발달되어 있지요.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바로 그 인체 구조의 특성을 제대로 인지하여 과학적으로 글자를 만들어 낸 겁니다. 서울대 언어 연구소에서 사람이 ‘ㄱ’자를 소리낼 때 턱뼈를 X선으로 찍어 봤더니 근육이 영락없이 ‘ㄱ’자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요.그런데 요즘 신문 기사를 보면 언어를 활용할 줄 아는 인간이 더 사악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 계모가 자식을 죽이는 것을 봐요. 이건 웬만한 동물도 자기 새끼를 그렇게 하진 않아요. 우리가 시낭송을 꾸준히 하는 것은 인간의 품격을 좀 좋은 방향으로 승화시키자는 거지요. 여러분의 좋은 낭송을 기대하겠습니다.”S신학대학에서 부총장을 지낸 신규호 시인은 언제나 겸손하게 문단의 이면사를 후배 시인들에게 들려주곤 합니다. 경주에 있는 동리목월문학관을 만들 때 장윤익 교수가 동분서주하였던 일, 1980년대에 “어용 교수 물러가라”는 데모가 한창일 때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방식이 개발도상국에 로드맵이 되는 성과를 강의실에서 꿋꿋이 말한 일 등을, 그는 마치 동화를 구연하듯이 주변 문인들에게 말하곤 하였지요. 그런 느긋한 성격 때문인지, 그는 시낭송 모임을 200회 가까이 진행해 오고 있습니다. 과천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는 수백 명의 교인들 앞에서 공연을 하였고, 대학로에 있는 연극 공연장을 빌려서 낭송회를 열기도 하였지만, ‘문학의 집’ 공연은 10여 년 이상을 이어온 편입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직업은 다양합니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 사이에 시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어든 편입니다. K-Pop, K-Drama, K-웹진 등이 성행하다 보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직도 이 땅에 2만 명 이상의 시에 관심이 있는 동호인들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나는 ‘좋은시 낭송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는 편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주로 노래를 부르고 시를 낭송하곤 하지요. 노래라고 해 봐야 딱 두 곡,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와 안치환의「위하여」를 부르는 것이 고작이지만, 노래를 부를 때의 그 멋스러운 기분은 나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언제부터인가 대중과 함께 하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독자에게 시를 읽어 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시낭송의 멋을 독자에게 보임으로써 시의 맛을 느끼게 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물론 주변에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습니다. 작가로서의 점잖은 인상이 깨진다며 글이나 똑바로 쓰라는 비판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 시는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동인(動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문학의 집’에서 시낭송을 합니다. 이는 인생을 멋있게 살아가는 하나의 방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작가로서의 로망을 꿈꾸고 살아가는 것은 주님이 나의 모습을 귀여워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가지고 계신 주님은 언제나 내 옆에서 나를 지켜보아 주시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실 겁니다. 주님은 말씀 보고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서 지혜를 주시고 멋지고 아름답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함께 하신 주님은 오늘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그 자녀가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2-03
  • 기독교인의 행복론 -34
    나다니엘 호손의 「큰바위 얼굴」을 보면 ‘큰바위 얼굴을 닮은 이가 누굴까’ 하고 궁금해 하던 아이가 결국은 자기 자신이 장본인임을 알게 되지요? 사람은 누구나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유명 탈렌트의 옷차림을 보면서 그의 멋을 따라 흉내내기도 하고, 유명 가수의 노래를 부르면서 멋에 대한 욕망을 대리 충족하기도 하지요. 프로이트가 말한 외디푸스 콤플렉스도 그렇습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서 가정 먼저 본 이성이 어머니여서 성인이 되어 어머니를 닮은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요. 아이가 어릴 적에 본 것은 커서도 멋을 추구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거지요. 필자도 어릴 적에 교회에서 헌금송을 부르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는데, 그게 어른이 되어 찬양대에서 노래하는 내 표정이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실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찬양을 할 적에 나는 어릴 적 성가를 부르는 이들의 멋진 모습이 나도 모르게 떠오르곤 한다니까요. 이렇게 볼 때 엄마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멋을 보여 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나의 은사님이 초현실주의시를 쓰셨던 조향 선생이셨는데, 그분이 제자들에게 늘 하신 말씀이 어린 아이가 폭넓은 시선을 가지게 하는 것이 좋다는 거였습니다. 그래야 상상력이 발달하여 아이가 큰 꿈을 가지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유명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나 바이올리니스트들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연습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엄마가 아이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멋있고 재미있음을 각인시켜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이가 어느 방면에 소질이 있음을 발견하면 그 능력을 한껏 발휘하고 지속적으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명 운동 선수나 연주자들의 멋있는 모습을 자주 보여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김연아 선수나 정경화 바이올리니스트의 엄마들은 어릴 적부터 그 분야에 시간과 정성을 극진하게 쏟아부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엄마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세세하고 치밀하게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지요. 그러나 일상 속에서도 얼마든지 아이가 특정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수가 있습니다. 나이 경우에는 총각 시절 S예대에서 무용 강습을 받고 늘 서재에서 책을 본 것이 아이 교육에 조금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하고, 춤을 춘 것이 아이의 감추어 둔 끼를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팀을 이뤄 학생들 앞에서 춤을 발표하기 시작하더니, 커서는 나의 시를 보고 제대로 된 평가까지 하는 것을 보고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엄마들에게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 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지인들끼리 모였을 때에 노래를 부르라 하면 뒤로 빼지 말고 아이 앞에서 멋있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하고, 동화책을 읽어 줄 때에도 감정을 실어서 읽어 주면 아이의 정서나 감각을 훨씬 신장시킬 수 있는 것이지요. 더구나 요즘은 융합 시대입니다. 전화기 녹음기 사진기 등을 예전에는 따로따로 가지고 다녔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에 다 들어가 있고, 인공 지능이나 가상 현실을 통하여 예전에는 공상 같은 일들이 눈 앞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학에서도 요즘에는 장르의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에 있습니다. 소설같은 시가 나오는가 하면, 수필 같은 평론이 쓰여집니다. 그리고 시에 서사적인 이야기, 극적인 대사, 수필적인 산문율이 얼마든지 융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낭송회에서도 노래와 무용을 곁들인 시낭송이 이루어지기도 하지요.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착된 형식을 깨드리고 여러 가지 탈장르적인 요소들이 융합된 표현을 해야 하지요.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노래는 각자의 능력이 다르고 전문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성의껏 부르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표정입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실제 감정이 들어가는 표정이므로, 그것으로 보는 사람을 감동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나누어 주고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를 보는 것이지요. 우리들에게는 각자 달란트가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에게 그 달란트를 폭넓게 제시함으로써 우리 아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생복을 입고 다른 아이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 중 글로벌한 인재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부모로서 현재의 교육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1-12
  • 기독교인의 행복론 -33
    그 날도 눈이 오고 있었습니다. 함박눈이 곱게 내리더니 어느새 아스팔트 길이 하얀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었지요. 가로수도 그들의 뺨에 눈을 잔뜩 바르고 있었지요. 가끔 싸라기눈이 새때처럼 피어올랐다가 먼 산을 넘어갔습니다. 잿빛 하늘 아래 공항으로 가는 길가의 산들이 하양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미국에서 교통 위반에 걸리면 차창을 열어 놓고 운전대에 손을 올리고 있어야 한다더라. 괜히 손짓을 하거나 움직이면 경찰이 총을 쏠 수도 있대요. 초등학교 앞에서는 절대 경적을 울려서는 안 된대. 교통 범칙금이 장난이 아니래.”나는 운전을 하면서 몇 번이나 U(딸)에게 주의를 주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강의하던 대학의 학생은 하와이에서 운전을 하다가 경찰의 정지 신호를 받고 차를 멈춰 따지다가 강도로 오인받아 죽은 적도 있었습니다. U는 미국 미시건주에 있는 M주립대학 근처로 떠납니다. 사위가 그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결혼해서 두 달을 신랑과 떨어져 있다가 가는 길이어서인지 U는 마음이 착잡한 모양입니다. 얼마 전에도 딸과 식사를 같이 했었습니다.“아빠. 내 돈가스도 더 먹어.”미국으로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아서인지 딸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U가 몇 개월 사이에 무척 어른스러워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얘. 미국 가면 애 낳고 당당하게 살아. 한국에 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고. 항공비는 염려하지 말고.”“그래도 절약하며 살아야지.”“아빠가 그동안 너에게 섭섭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중요한 건 현재니까, 서운했다면 다 잊어 버려라.”“아니야.”공항에 도착하자 입국장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 있었습니다. 철제 빔 위의 유리 천장에도 눈이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위의 공간이 어전지 휑해 보였습니다. 아내가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혼자서 훌쩍이자, U도 울먹였습니다. “엄마. 왜 울고 그래.”“그래. 서류는 잘 챙겼지. 미리 들어가서 면세점에서 사 갈 것 챙겨.”U를 보내고 집으로 가는 길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길에는 앞차의 바퀴 자국만이 선명하게 검정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거북이 걸음처럼 천천히 차를 몰았습니다. 머릿속에는 U가 애를 잘 낳을지, 살림을 잘 할지 등으로 여러 이미지 조각들이 떠다녔습니다. 아내는 차 안에서 코까지 풀어가며 훌쩍였습니다. “똑똑한 사위 만나 잘 살러 가는데 왜울어?”내가 한 마디 거들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울먹입니다. 사람은 헤어질 때를 대비해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U가 대학 시절 가끔 엄마 몰래 용돈을 안겨 준 것은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주어도 주어도 바닥나지 않는 것이 부모의 정인 것 같습니다. “에이, 차는 왜 이렇게 막히고 그래.”괜히 교통 체증에 짜증을 내 봅니다.“그래도 U를 보내고 나서 막히니 얼마나 다행이예요. U가 갈 때 막혔으면 큰일날 번 했잖아요?”“하긴 그래.”아내가 갑자기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당신, U결혼식 때 U를 데리고 들어서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 알아요? 마치 러시아 근위병이 발을 높게 쳐들고 열병하는 것 같았다니까요.”“내가 그랬어?”“그래서 사돈댁하고 나하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U와 사위 앞에서 당당하고 싶었거든. 그래야 U가 시집가서 기 안 죽고 살 것 같았어.”집에 도착해서도 아내는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나는 왠지 잠이 안 와서 서재에 들어가서 U를 위해 썼던 시들을 음미해 봅니다. 직장 일을 끝내고 즐겁게 귀가하던 U의 모습이 천장에 아른거립니다. U가 퇴근하면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즐겁게 하였던 나. 가족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던 추억을 떠올리며 혼자서 미소를 지어 봅니다. 아침이 되어 늦은 잠을 자려고 서재를 나오는데, 전화벨 소리가 울립니다. “아빠. 나, 잘 도착했어. 수하물 캐로셀에 있던 이민 가방을 옆에 계시던 남자분이 들어 줘서 짐도 잘 찾았어.” “그래. 우리 딸 장하다. 열심히 살아라. 파이팅” 아내도 그제서야 환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납니다. U가 애 잘 낳고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밖에는 함박눈이 춤추듯 내려앉고 있습니다. 행복은 받아들이는 자의 몫이니, U가 행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1-05
  • 기독교인의 행복론 -32
    천재 작가 李箱은 글만 잘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글 밖으로 걸어나와 일상에서도 작가로서의 멋을 추구하였습니다. 1930년대에 실제로 있었던 일화입니다. 당시 시인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다니며 낭만을 즐겼습니다. 누군가 신문사에서 원고료를 타면 동료 문인들을 불러내어 술을 사는 풍조도 있었습니다. 당시 李箱(1910-1937)은 1931년 <조선과 건축>지에 「이상한 가역 반응」을 발표한 이후 「오감도」등 초현실주의적이고 실험적인 시들를 발표하고, 소설「날개」(1936)를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서정주도 1936년 <동앙일보>에 시 「벽」이 당선된 후 그 해 11월에 김동리 오장환 함형수 등과 <시인부락>을 창간하여 “인간 생명의 究竟的 경지를 탐구”하기도 하였습니다. 박두진 박목월도 1939년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문장>지에 작품을 발표하기 전부터 서정주 李箱 등과 어울렸습니다. 그때 서정주는 이 폐결핵에 걸린 사실을 몰랐습니다. 서정주의 증언에 의하면, 李箱은 매우 멋진 신사로서 하얀 맥고 모자에 흰색 양복, 흰색 구두를 신고다녔다고 합니다. 한 번은 李箱 서정주 박두진 박목월이 종로에서 만나 통의동에 있던 ‘보안여관’- 1930년대에 개업하여 2006년 폐업한 여관으로, 서정주·김동리·오장환·김달진 등이 문학 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하기도 하였던 장소- 근처에 있는 일본식 술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 술집은 다다미방으로 되어 있고 주방 옆에는 스웨터를 입은 여주인이 앉아 있었는데, 李箱은 그 집에 들어서자마자 여인의 스웨터 제일 윗 단추를 꾹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여주인이 “왜 그러세요?”라고 몸을 뒤로 빼도 그는 단추를 계속 눌렀습니다. 이를 본 서정주가 “김형(李箱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왜 그래요?” 하며 옆에 다가서도 그는 이마에 땀까지 흘려가며 단추를 꾹 누르더니, 한참만에 서정주가 그의 팔을 잡으며 그만 다다미 위로 올라가자고 하자 누르기를 그치더라는 겁니다. 서정주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습니다. “李箱은 모더니스트여서 당시에 물질문명이 가져올 위급한 상태를 예감하고 단추를 비상벨로 착각하고 계속 눌렀을 것이다”. 아무튼 이 일화를 듣고 필자는 작가가 글로만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글 밖으로 걸어나와서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시 李箱은 폐결핵 3기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그리 오래 가지 못할 것을 알고 25세부터 본격적으로 「오감도」등을 발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짧은 기간에 십여 편의 소설과 수백 편의 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에게는 객혈 이후 마지막 남은 4년의 삶이 매우 소중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글 뿐만 아니라 글 밖의 일상도 비교적 자세히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내성적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생 금홍과의 동거 생활을 끝낸 후 옛 화신 백화점 지하에서 이순석이 운영하던 낙랑 다방에서 화가 구본웅의 서모가 낳은 변동림을 만나게 됩니다. 아는 시인으로부터 소개를 받기로 한 날, 李箱은 평소와는 다른 스타일을 하고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다방 <제비> 등의 파산 이후 몸도 병약하였기에, 평소에 머리를 자주 안 감아 봉두난발에 까치집같은 머리를 하고, 와이셔츠는 때가 묻었으며, 골덴 바지에 구두는 진흙이 잔뜩 묻은 너저분한 구두를 신는 등 예전의 하얀 양복 차림의 멋진 모더니스트 차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모처럼 선 보는 날이니 세수를 하고 나갈 작정이었으나, 약속 시간이 촉박하여 그냥 나가고 말았습니다. 막상 다방에서 변동림을 만나고 보니, 이화 여전 문과를 졸업한 여류 작가에 미모를 갖춘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그의 맘에 쏙 드는 이 여인 앞에서 그는 여인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 그만 조그만 종지 그릇에 있는 각설탕만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근데 며칠째 손을 씻지 않았던 터라 그만 각설탕이 손때로 인해 시커멓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레지가 와서 다 큰 어른이 이렇게 더럽게 해 놓으면 돼냐며 한바탕 퉁을 주는 바람에, 소개한 시인과 함께 그들은 다른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여인 앞에서 얼굴만 빨개지면서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아마도 정작 마음에 드는 여인 앞에서는 그렇게 쑥스러운 모양입니다. 결국 그는 속으로 ‘인연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하고 헤어졌는데, 며칠 뒤 뜻밖에도 중매한 시인으로부터 그녀의 편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 편지에는 그가 마음에 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절에 가서 둘 다 검은 예복을 입고 몇몇 친구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이러한 일화만 보더라도 그가 독특한 삶을 산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는 작품 뿐만 아니라, 일상까지도 개성과 멋을 추구하는 작가임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오늘날 그에 관한 논문은 수백 편이 넘습니다. 이는 그가 글 뿐만 아니라 글 밖에서도 멋있는 활동을 하고 감동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였음을 말해 줍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12-15
  • 기독교인의 행복론 -31
    작가는 언어 예술을 통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류를 감동시키는 담론을 계발하기 위해서 사색하고 독서하고 글쓰기를 연마합니다. 그 담론이 괴테와 같이 독일을 통일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하고, 톨스토이와 같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기도 하지요. 그리하여 작가는 위대한 글이 나오기까지 쉬임없이 인간과 자연과 문화의 멋을 창출하지요. 최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언어 예술을 창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갈구하고 있지요.필자도 작가가 되기까지 부단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온 것 같습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체현하기 위하여 여자 무용수들 틈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무용을 배우기도 하고, 난해한 철학 서적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한 번도 후회를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천성적으로 작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존감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34년간 걸어왔던 교육자의 길을 과감히 내던지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지요. 내가 전업 작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하루를 온전히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글과 놀이를 하고 글을 통해서 아름다운 세계를 몽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스승을 찾아다녔습니다. 시인 서정주 문덕수 선생 등을 찾아다니며 장르론도 익히고 문장 실습도 하였습니다. 스승은 내가 작가로서의 정도를 걸어갈 수 있도록 나침판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직접 글로 체현하는 데에는 나만의 사색과 독서와 글쓰기가 요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십여 년간의 글쓰기에서 터득한 것은 ‘탈경계’였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아직도 분단의 경계는 풀어지지 않은 채 수십만 명이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카인의 질투처럼 동족끼리 상대를 비방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계를 푸는 데에는 카인 콤플렉스-형제끼리 질투하며 싸우는 데에 치중하는 콤플렉스-를 극복할 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을 겪으며 인류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여 화해와 용서의 담론이 온 세계에 전파된 바와 같이, 탈경계는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동과 서로 갈린 경계를 해소하는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담론을 통하여 김정은이 평화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남과 북이 민족의 동질성과 멋을 추구할 수 있다면, 탈경계는 성큼성큼 일어나서 한국인의 기질을 더욱 고양시키는 멋을 추구하게 할 것입니다. 탈경계는 비단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사이에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수많은 평론을 읽으면서 너무 어려운 비평 용어들로 인하여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멀어지고 작가들이 글감옥에 갇혀 대중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글은 독자에게 놀이로서 작용하면서 감동을 주어야 할 텐데 글만의 감옥에 갇혀 도서관 서고에 갇혀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선 가게에 아무리 싱싱하고 좋은 생선이 있어도 소비자가 사 주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 일을 위해서는 작가가 글 밖으로 걸어나와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작가가 되겠다고 작심하게 된 것은 李箱 때문이었습니다. 고교 시절 이상의 「날개」를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이 당시 관습으로는 파격적이어서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내’라는 인물들을 보니 작가가 직접 체험한 기생 금홍과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작가의 체험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개연성을 높여 주었던 것이지요. 작품에 나오는 새롭고 멋진 인물들을 생각하며, 대학 시절 이상의 「날개」에 대한 논문을 처음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학술상도 타고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면서 나도 저런 멋진 세계를 연출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작품이 작품을 낳는다고 좋은 작품을 보면 나도 저렇게 좋은 작품을 써 보겠다는 오기가 생긴 것이지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감동을 주려면 작가가 먼저 자신의 글에 대한 감동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적극적 독자들이 작가가 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편의 글을 생산하기 위하여 수없는 시간을 사색과 독서와 자료 찾기에 쏟아붓는 열정이 없는 한, 좋은 글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서도 좋은 글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흥분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글을 씁니다. 영원 위에 남을 만한 흔적이 있다면, 나는 지금 현재, 그것을 주워 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12-08
  • 기독교인의 행복론 -30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늑약이 일어난 후 고종은 이것을 세계에 알리고자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일본에 알려져 강제로 폐위를 당하고 순종이 즉위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군대는 해산됩니다. 왕이 강제로 왕위를 빼앗기고 군대가 해산당하는 것을 보면서 백성들은 나라의 주권이 빼앗기는 과정을 피부로 실감하게 됩니다. 이때 평양의 산정현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 ‘일백만 구령 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1907년 1월에 장대현 교회 목사가 된 길선주입니다. 그는 장로로 있던 1905년부터 새벽 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선교사 블레어 등과 함께 부흥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의 부흥회에서는 뜨거운 간증과 함께 회개 운동이 일어났고, 한국교회사상 미증유의 성령 강림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후 한국 교회는 성령 강림, 간증, 회개의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1970,80년대에는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80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을 확보하게 되는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수 천 개의 개척 교회가 생겼고, 그 가운데에는 대형 교회로 발전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2000년 이후에는 해외로 나간 선교사 수가 폭발적으로 불어나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 선교사는 총 27,205명(2015년 기준)이라고 합니다. (이번 현황 조사가 이루어진 대상은 교단선교부 39곳과 선교단체 195곳이었으며, 이 중 교단 파송 선교사는 12,000여 명, 선교단체 파송 선교사는 16,400여 명으로 약 4:6의 파송 비율을 나타납니다.) 한국 교회가 이와 같은 발전을 이룩한 것은 한국 교회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새벽 기도, 철저한 십일조 헌금, 성경 말씀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성경 읽기, 회개 운동, 부흥회와 간증,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세계를 향한 비전 등의 한국 교회 나름의 신앙 체계가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서 2013년 1,003명, 2014년 932명, 2015년에는 528명으로 급격한 파송 수 저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KWMA 발표에 의하면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은퇴 등의 선교사 자연 감소 및 이탈 등을 고려할 때 향후 10년 내에 한국선교사는 6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향후 한국 사회는 사물 인터넷 시대로 접어듭니다. 자율 운행자가 나오고, 인공 지능 로봇이 등장하며, 온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상품 매매나 사물간의 연결이 폭넓고 간편하게 이루어집니다. 또한 게임&#8228;영화&#8228;웹툰&#8228;음악 등의 재미있는 볼거리가 스마트폰 안에서 다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의의 절대성이 예전처럼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복음 전파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물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진리와 세상 어느 것보다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등의 기독교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21세기의 환경에서도 주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곧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어서 아무리 세상 문명이 발전하였다 하여도 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관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가 왜 자녀들을 사랑하지요. 예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의 행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죄에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곧 경건과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인간미를 발휘하는 삶이 발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일상의 행복을 느끼면 어떨까요. 일상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표정으로 찬양을 하면 어떨까요. 믿음의 형제들과 식사를 하며 아름다운 정담을 나누면 어떨까요. 말씀 보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살면 어떨까요. 해외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선교사들을 기도와 편지와 물질로 지원하면 어떨까요. 북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인터넷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간의 경계를 해체하고 하나님의 편에서 탈경계를 모색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어떨까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면 어떨까요. 아브라함을 이끄신 하나님을 생각해 봅니다. 주 안에서의 신앙 생활은 즐겁고 화평합니다. 행복하십시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11-2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29
    김동인의 수필 「내 작품의 여주인공」(<조광>, 1939.4)을 보면 세 가지 유형의 여성이 나옵니다.첫 째는 고등한 교양과 배려의 소유자로서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데서 자기 만족과 환희를 얻고, 남편을 인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를 인격적으로 존경케 하는 유일의 길이라는 신념으로” 부부의 본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여성입니다. 그야말로 남편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존경함으로써 아내로서의 만족과 진정성을 얻는 여성이지요.둘째는 쾌활한 처녀로서 “천진하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열정적인 처녀의 타입으로 이성을 사랑하는 경우일지라도 정열적으로 독점욕으로 猛炎식으로 사랑하지 상대자의 감정의 움직임까지 고찰할 여유를 잃는 狂熱적 소녀 타입”입니다.셋째는 “몰아적이요, 인종적이요,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서는 자기는 어떤 고초를 겪을지라도 불평을 품기는 커녕 이 고초로써 환희를 느끼며, 비의식적이며 비자각적이요 비이기적으로 全我를 들어서 ‘그’에게 맡기고 일호의 我慾을 세우려지 않는 여성”입니다. 아마도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해서 헌신하는 여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김동인은 실제로 첫째와 둘째 유형을 실제로 아내로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첫째 유형은 김동인이 첫 번째 아내가 일본으로 가출한 이후 맞은 김경애 여사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그녀는 평남 용강군 오산면 출신으로 그와 열한 살의 나이차가 있으며, 평양 군악의 의명학교와 숭의여중을 나온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한 후 아주 가정적인 가장이 되었습니다. 한 번은 김동인이 가족들을 데리고 창경궁에 놀러가는데, 비가 많이 온 뒤라 땅이 질척거렸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들들에게 자신이 디딘 발자국을 밟고 오면 신발이 더럽혀지지 않을 거라며 앞장서서 걸어갈 정도로 자상하였습니다. 그가 김경애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그의 모친 옥씨의 영향이 컸습니다. 옥씨는 남편이 사망하자 열여덟 살의 김동인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하였으며 손톱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박힌 넥타이핀을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김동인이 김경애와 결혼하여 잘 산 것은 바로 김경애 여사의 성격이나 외모가 옥씨를 닮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대체로 남자는 태어나서 처음 본 엄마를 닮은 여자를 아내로 취한 경우가 많은데(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 합니다), 김동인이 이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둘째 유형은 김동인의 첫 번째 아내 김혜인과 닮아 있습니다. 그녀는 평양 육로리의 수산물 도매상의 딸로서 매우 명랑하고 쾌활하였던 것 같습니다. 김동인의 「배따라기」(1921)에 나오는 여자가 바로 이에 해당하지요. 시동생과 마을 청년에게 활달하게 대하니까 주인공이 질투를 할 정도지요.셋째 유형은 김동인의 『젊은 그들』(1930)에 나오는 ‘연연이’ 같은 유형으로, 남편에게 매우 순종적이고 헌신적인 여성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현 대 사회에서는 이들 유형이 바로 우리 주변의 여인들에게서 나타나지요. 바로 여러분의 아내들을 한 번 눈여겨 보십시오. 현숙하고, 쾌활하지 않습니까? 다만 세 번째 여인 유형은 과거 조선조 여인들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난 타입이지요. 중요한 것은 남편들이 아내의 좋은 유형을 발견하는 데 있지요. 아내가 남편에게 내조를 잘 하며 부동산을 현명하게 관리하고, 현숙하게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동호인들과 활달하게 지내는 것은 바로 현숙하고 활달한 유형에 해당할 겁니다. 그런데 멋있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할 여성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입니다. 바사제국이 인도로부터 구스까지 넓은 영토를 확보하고 있던 아하수에로왕 때에, 유다인 모르드개의 조카인 에스더가 왕후가 되지요. 모르드개는 왕의 내시인 빅단과 데레스가 역모하려는 것을 왕에게 알린 인물이기도 하지요. 그때 지위가 대신들보다 높던 하만이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았다 하여 바사 제국에 있던 유다 사람을 멸하려 하니까, 모르드개가 하만의 음모를 에스더에게 알리지요. 이때 에스더가 기지를 발휘합니다.“제 삼일에 에스더가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곧 어전 맞은편에 서니 왕이 어전에서 전 문을 대하여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매우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 규를 그에게 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 규 끝을 만진지라 왕이 이르되 왕후 에스더여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며 요구가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에스더> 5:1-3)이와 같이 에스더가 왕의 신임을 얻어, 하만과 그 아들들과, 유다 민족을 멸하려는 자들을 제거하지요. 에스더의 지혜는 위기에 처한 유다 민족이 생존하게 하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에스더에게 주어진 지혜가 어디서 오는가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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