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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능훈 장로
    원로장로연합회와 서대문복음화협, 서예미술진흥협회 등 조찬 참석 교류 이능훈 장로(90세, 기감 홍제감리교회 원로)는 아침 일찍 일어나 30~40분간 기도하고 모임이 없는 날이면 성경을 읽고 집안에서 화초를 가꾸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매주 모이는 한국교회원로장로총연합회 증경회장으로써 월례모임과 서대문복음화협의회 초대회장으로써 또는 재단법인 한국서예미술진흥협회 등의 조찬모임에 참석하며 교류하고 있다.“저는 이제 나이도 많고 집도 거리가 멀어서 모임을 많이 줄이고 있지만 그래도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이 장로는 최근 자녀들의 권유로 경기도 부천의 자택에서 기도와 성경 탐독으로 현재 성경은 120독을 하였으며, 매일의 기도는 △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살고 △자녀들이 창의적인 삶을 살고 △모든 일에 협력하는 사역을 해 달라고 기도한다고 한다.이 장로의 건강의 비결은 “생명주시고 인도하심을 감사하며 맑은 정신과 영혼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기 위해 노력하면서, 온 가족을 위한 기도하는 일상이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늘 편안한 마음이 건강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한다.이 장로는 젊은 시절에는 국방부 산하 공무원으로 15년여를 지냈고, 이후 무역회사와 일반기업에서 간부사원으로 좋은 시절을 보냈다. 이때에 전공이 아니었지만 ‘복식부기(複式簿記)’ 방법도 배워서 회사경영에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장로는 건설업에도 종사하였다.이 장로는 연합단체에서 많은 사역을 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교계에서는 폭넓은 지면(知面)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대표회장, 한국교회원로장로회총연합회 대표회장, 세계기독신도연맹부총재, 서대문복음화협의회 초대회장 등 초교파 단체 외에도, 감리교단의 여러 연합단체에서도 많은 사역을 감당해 왔다.이 장로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새천년 좋은 장로’ ‘감리교 남선교회105년사’를 제작 편찬하여 좋은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이 장로는 다양한 경력만큼이나 취미와 재능이 많다. 집에서는 아파트 베란다에 각종 화초를 가꾸면서 건강에도 좋은 생활을 하는 한편, 여러 악기를 다루는 솜씨가 수준급이다. 피아노, 아코디언, 하모니카 등을 연주하는 것으로 틈틈이 좋은 시간을 갖고 있다고 한다.이 장로는 홍제감리교회에서도 건축위원장을 맡아 현재의 교회당을 건축하는데 이바지 했고, 감리교단에서도 연회와 지방회 등에서 여러 모양의 헌신으로 장로직을 잘 감당해 왔기 때문에 많은 후배 장로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이 장로가 존경하는 목회자는 김봉록 감독과 김기동 담임목사이다. “목사님들은 늘 존경받는 삶이 필요한데 저는 이 분들을 항상 존경합니다”라면서 지난날 열정적으로 연합사역에 몰두 할 때 함께 일했던 유상열 장로, 정연택 장로 서정원 장로 등 고인이 되신 분들이 생각난다고 회고하기도 한다.이 장로는 부인 박순서 권사를 58세에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고 홀로 지낸 세월이 오래지만 때때로 생각나는 아내를 잊을 수가 없으나 자녀들의 각별한 돌봄과 아울러 자신이 분주하게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늘상 새로운 아침을 맞게 한다고 말했다.이 장로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고 모두가 신앙으로 잘 자라서 두 아들이 목사로 사역하고 있으며, 딸과 사위들이 장로로 임직 받아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은 모두가 이 장로의 기도와 신앙의 본이 보여준 결과 일 것이다. “남은 날 하고 싶은 일은 없으나 건강하고 깨끗하게 살면서 감사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이 장로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람 있었던 일은 저서를 출간한 일과 본 교회 교회당을 건축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의 온순하고 겸손한 모습 그대로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 ,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요한계시록 2장 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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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으로 초대
    2018-05-10
  • 어떻게 지내십니까 / 김봉선 장로
    “매일 새벽기도, 건강이 허락되는 대로 연합단체 모임 참석” 김봉선 장로(92세, 예장합동 서울 내수동교회)는 매일 새벽기도를 시작으로 매주 사랑의 쌀 조찬기도회, 원로장로회 모임에 참석하면서 경기노회와 서울지구 장로회 월례회에 빠지지 않는 것이 건강한 노년을 보내는 비결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매주 목요일 내수동교회 노인대학에도 열심히 출석하고 있다.“저는 하루도 집에서 조용히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이 나이에 분주하게 살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김 장로는 어린나이에 결혼하여 딸 하나와 부모님을 모시고 황해도 옹진군에서 1.4후퇴 때에 피난 나와 월남하였다. “제게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친족이 이산가족이 되지 않고 살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그런데 처가 쪽으로는 처남과 처제가 이북에 남아있는데 소식은 못 듣고 있어요.” 고향을 그리워하면서 통일을 기다리고 있지만 너무 세월이 많이 흘렀고, 이젠 노년에 기다릴 희망도 다 사라졌다고 탄식한다.김 장로는 생애에 가장 존경하는 목회자가 박희천 목사라고 말한다. 박 목사와 교회를 섬기면서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을 감사하고 있다. 예수를 믿고 당시 후암제일교회에 출석하면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박희천 목사를 따라 지금의 내수동교회를 개척 설립한 후 은퇴하기까지 함께 사역해 왔다고 한다.김 장로는 1973년에 장로장립을 받고 노회와 총회 총대로도 활동하고, 경기노회 장로회와 서울지구 장로회, 전국 장로회 등에 참석하면서 연합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친교와 인간관계를 넓게 가져왔다.김 장로는 박희천 목사의 오른팔이 되어 여전도사를 두지 않기로 한 교회방침에 따라 20여 년간 ‘내수동교회 심방장로’로 사역하였다. “아마도 한국교회에 심방장로로 이렇게 오래 사역한 것도 처음 같고, 제가 여전도사 대리역할을 한 것이지요.”라면서, “저는 심방을 가면 꼭 담임목사님이 보내서 왔다고 말하면 잘 받아 줍니다.” 내수동교회를 은퇴한 박 목사는 그 공로를 잊지 않고 늘 “모든 것은 장로님이 다 하셨다.”고 했다고 한다.김 장로는 부인 한도화 권사(91세)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고, 두 자녀는 칠십대가 된 노년을 맞고 있으나 부모님을 극진히 모시고 있다. 아들의 집에서 보내고 있는 노부부의 건강은 아직도 출입을 할 수 있고, 무엇보다 함께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는 한 가지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다. 그러나 때때로 북에 두고 온 고향을 생각하면서 눈물 젖은 기도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북에서 피난 나와서 남다른 은총으로 예수 믿고 살게 됐으니 감사하고, 남은 생애도 예수님 의지하고 천국 갈 때까지 감사함으로 살겠습니다.”김 장로는 그동안 연합단체 모임에 참석하며 느낀 지도자들에 대한 소감은 “무엇보다 자리다툼이 너무 심하고, 자신들이 회장과 임원을 맡겠다는 욕심이 많다.”면서 기독교의 가치관인 ‘겸손’이 결여된 것이 아쉽다고 말한다. 또한 한국교회는 “사도 바울처럼 나는 죽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희생정신이 필요하다.”면서 순교적인 사명을 일깨워 나가야 희망이 있다고 했다.김 장로는 피난 나와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를 받고 살았지만 가장 힘들었던 추억은 본 교회에서 박 목사의 은퇴를 앞두고 예우문제로 갈등이 있었던 것이 가슴 아프다고 회고한다. 같은 당회원으로서 의견대립이 되었을 때 너무 힘들었지만 그것도 서로가 화해하고 손을 잡게 되었다고 한다.김 장로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는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이고, 성경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16절로 18절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라는 구절을 평생 교훈으로 삼고 자녀를 양육하고 대인관계를 가져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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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5
  • 여홍윤 장로
    매주 원로장로회와 사랑의 쌀 조찬 모임에 참석하며 교분 가져 여홍윤 장로(82세, 예장합동 원남교회)는 은퇴 후에 그동안 열정을 다해 노력했던 한마음선교회를 떠나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모이는 합동측 원로장로회와 사랑의 쌀 토요조찬기도회에 참석하고 있으며, 시간이 나는대로 성경읽기와 독서에 열중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 별다른 운동이나 노력은 하고 있지 않지만 오늘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만족한 생활을 한다고 했다.“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붙잡아 주시고 지난날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오늘까지 건강하게 지내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여 장로는 노령에 접어들었지만 동료 장로들을 만나고 모임이 있을 때마다 참석하는 일상을 보내면서 주님 안에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즐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여 장로는 1965년에 고향 대구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1972년 새서울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고 충성을 해오다 1998년 종로구 창신동 창신제일교회로 이거하여 은퇴하기까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역을 감당해 왔다. 여 장로는 “교회에 어떠한 문제가 있어도 목사님을 중심하여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고 회고하면서, 이는 형님이신 합동교단의 중진 여홍근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도 한다.여 장로는 80년대 이영수 목사가 합동교단의 영향력 있는 위치에 있을 때에 ‘교단 선교100주년 기념사업’에서도 총무를 맡아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 한때는 KBS 모금사업위원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로로 임직 받으면서 뜻한 바 ‘한마음선교회’를 창립하여 본격적으로 디아스포라 선교를 시작했다.“정말 감사한 것 밖에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선교에 필요한 물질을 채워 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이러한 선교사업을 진행해 오게 하신 것은 기적 같은 역사입니다.” 사실 여 장로는 재단법인 한마음선교회를 통해 기적 같은 놀라운 일을 많이 해 내었다. 주로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 지역의 동포들을 고국으로 초청하여 그들이 조국의 발전과 경제적인 부흥을 이룩한 것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갖게 하고, 이들을 환영하는 예배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 왔다. 대전 엑스포 대회 때에는 100여 명의 동포를 한꺼번에 국내로 초청하여 교계에서 많은 호응과 관심을 받기도 했다. “당시에는 제가 젊었기도 했지만 세계를 다니면서 선교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고 하나님께서는 그 때마다 필요함을 채워주시고 감당하게 하신 것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여 장로가 한마음선교회를 통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에서 국내에 초청한 동포는 연인원 4,500여 명에 달한다. 그들은 모국을 방문하여 발전상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고 또한 복음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돌아갔다. “사실은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교회에서 이처럼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물론 많은 교회와 단체들이 협력해 주었고, 또한 개인적으로도 많은 이들이 참여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여 장로는 연합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헌신했다.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와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했다.여 장로는 한국교회의 연합에 대하여 “지도자들은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헌신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모범을 보일 때에 성도들에게서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고 설교할 수 있습니다.”라며, 평신도 사역 역시 봉사와 헌신을 하면서 치우치지 않아야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여 장로는 김복례 권사(82세)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다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장남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차남은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장녀도 미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여 장로는 자녀들의 초청으로 미국을 종종 방문한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8-04-11
  • 최경수 장로
    한 달에 절반 정도는 각종모임 참석하며 지인들과 친교 시간 가져 최경수 장로(84세, 예장백석 삼일교회)는 매일 아침 4키로미터 정도를 걷기운동을 하고 있으며, 하루 세끼 식사를 거르지 않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 달에 절반 정도는 각종 모임에 참석하여 친교의 시간을 가지면서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했다. 최 장로는 삼일교회 설립 멤버로서 교회를 위해 많은 헌신을 해 왔고 장로 장립 50여 년이 되지만 지금도 교회를 항상 염려하면서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최 장로는 한국장로회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원로장로회연합회와 여러 평신도 단체 임원으로 연합활동을 했다. 교단에서는 전국장로회와 전국남전도회 등 여러 단체에서 회장을 역임하여 평신도로서 많은 연합사역에 헌신했기 때문에 모임이 많다고 한다.또한 교단 회장단 모임, 토요성경공부 모임, 서예작가협회 모임은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으며, 사단법인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회장을 7년간 맡아 오고 있다. 그리고 청담동 자택 부근에서 ‘독거노인’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저는 사실은 여러 모임에 다 참석할 수는 없고, 지난날 맡았던 단체와 교단, 그리고 정기모임에 참서하려니 은퇴하고도 늘 이렇게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그것도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니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최 장로는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 수학 교사로 발령을 받아 5년 정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사직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좀 후회가 되는 것은 교사로 은퇴했으면 교장도 맡았겠고, 연금을 받아 편히 살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합니다.”라며 후회스럽다는 말도 한다. 그 후에는 유치원을 경영하고 사업도 했다. 큰 성공은 거두지 못했으나 “지금까지 교단과 연합사역에 참여하여 일할 수 있을 만큼 하나님께서 물질을 베풀어 주셨지요.”라며 자족한 마음을 표한다.교단에서는 절친한 장종현 박사를 적극 도와 교단 임원으로 활동했고, 평신도국장도 역임했다. 그러나 최 장로가 교단을 섬기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대신교단과 통합하는 과정이 매우 가슴 아프고 힘들었다고 한다. “저는 우리교단이 정체성을 바로 지키면서 발전해 나가기를 바랐기 때문에 통합을 반대했지요.”최 장로는 한국장로회총연합회 대표회장을 맡아서는 잘못된 관행으로 흘러온 연합회 운영을 바로잡기 위해 오해와 비난을 받으면서도 큰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증경회장들의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인사와 사업을 원칙대로 바로 잡고, 총무 일변도의 사업추진을 바꾸고 여러 임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단체로 거듭나는 일에 소신을 가지고 앞장서왔던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고 한다. “저는요 한국원로장로회연합회에 참여하여 원칙과 공평한 행정을 강조하면서 체질개선을 하는데 바른 소리를 많이 하여 어쩌면 미움을 많이 샀지요.”최 장로의 신앙철학은 “하나님 앞에서 즐겁고 감사하면서 살자! 이해하고, 배려하고, 베풀면서 사는 것”이라며 건강이 허락 되는 대로 남은 생을 작은 정성이지만 베풀면서 살겠다고 다짐한다.최 장로는 최근 한국교회는 너무 편견이 심하고 개인주의로 치우쳐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며 성경 말씀이 가르쳐 주는 대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는 언행일치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최 장로는 부인 이영순 권사(79세)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늙어서도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돈이나 세상의 어떤 명예보다 더 큰 행복이지요”라면서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자녀들에게 늘 “너희는 선한 행실에 씨를 뿌려라”는 성경적인 교훈을 했다고 한다. 즐겨 부르는 찬송가는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8-02-09
  • 여시동 장로
    노년에 자신의 사무실 출근하여 일과를 시작하는 기쁨 넘쳐 여시동 장로(75세, 예장고신 주님의교회)는 늦은 나이 74세에 취득한 공인중계사 자격으로 서울 강남 대치동(비전 컨설팅 공인중개사) 번화가에 사무실을 개설하고 매일 출근한다. “내가 이 나이에 건강하게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별다른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먹고 잘 자고 많이 걷는 일상이며, 무엇보다 모든 욕심과 이기적인 욕망을 다 내려놓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경북 상주에서 1967년 서울로 올라와 경향교회(석원태 목사)가 설립되면서 출석하여 1999년에 장로로 장립받기까지 교회를 열정적으로 섬겼다. 평소에 존경하던 석 목사를 도와 은퇴하기까지 헌신적으로 일해 왔다.“당시에 나는요 좋은 지도자 목사님을 만난 것이 자랑스러웠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젊음을 다 바쳐 교회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청천벽력 같은 목회자의 일탈행위가 드러나 도무지 남아 있을 수 없어 그 교회를 나왔지요. 지금은 경향교회를 떠나 개척된 주님의교회에서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난날의 온갖 발자취를 돌아봅니다.”여 장로는 그 일로 인해 교회가 크다는 것도 의미가 없고, 목사가 유명한 것도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작은 교회일지라도 가식이 없는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즐거운 교회생활이 필요하다고 했다.“나는 목회자를 섬기면서 살게 된 것이 즐겁고 감사했습니다.”여 장로는 경향교회에서 주일학교 부장으로서 다음세대를 양육하는데 노력해왔고, 석원태 목사를 도와 고려신학교(고려측 파주캠퍼스)의 어려운 운영을 도우기 위해 후원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여 장로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그나마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좋았던 기억들을 말한다. 그러나 더 나은 길을 모색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여 장로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같은 동료 장로간의 갈등이었다고 말했다. 같은 장로로서 그 신앙의식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동료로부터 인격적인 모욕과 폭언 등을 당하면서 함께 교회생활을 하는 모순을 참아내야 하는 괴로움이었다고 술회(述懷)하고 있다.여 장로는 교회를 은퇴한 후 74세가 되던 해에 공인중개사 자격 시험에 도전하여 최고령자로 합격해 학원에선 모델까지 하는 등 개가를 올리게 되었다. “하나님 은혜로 이 늦은 나이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하고 사무실을 개설하여 내 이름으로 나의 대표명함을 당당하게 내 놓고 일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한다”고 말했다.여 장로는 새해가 되면서 남다른 포부와 결심으로 이름 그대로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벅찬 가슴을 안고 뛰고 있다. 지금 개설한 사무실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남은 생애에 교회를 위해 못다 한 헌신을 다하려고 한다는 그의 다짐이 결실로 이어지길 기대한다.여 장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첫째 좋은 목회자를 만난 것이며, 둘째 좋은 이웃을 만난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교회가 무엇이냐고 말한다면 “말씀의 토대 위에 바로 서 있는 지도자로서 깨끗하고 본이 되는 목회자가 있어야 하고, 교회를 책임지는 일은 목사와 장로가 함께 성도들에게 신행일치(신(信行一致)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교회연합과 일치에서도 지도자들의 각성과 회개가 필요하고 오늘의 난제를 풀어가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밖엔 없다고 강조한다.여 장로는 김수정 권사(72세)와의 사이에 1남 2녀를 두어 장남은 직장인으로 열심히 생활하고 있고, 출가한 두 딸들도 신앙가정으로서 잘 살고 있다. “나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아요. 가정이 은혜롭게 부부가 노년에도 건강하며 평안하고, 나 같은 못 난 사람이 교회의 장로로 부름 받아 지금까지 헌신하게 하신 것 너무 감사하지요.”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8-02-01
  • 황충기 정교
    더불어민주포럼 사무실 매일 출근, 교계 인사들과 친교 가져 황충기 정교(74세, 구세군아현교회 원로)는 매일아침 집 뒷산을 오르는 등산으로 건강을 다지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최근 사무실을 열게 된 ‘더불어민주기독포럼’ 사무실에 매일 9시에 출근하여 일과를 시작한다.황 정교는 지난날 중국정통보건요법중앙회 회장으로서 대체의학을 통한 선교와 진료에 전념해 왔다. 은퇴 후에는 필리핀에서 대체의학을 연구하면서 ‘이스트아벤유 메디칼센타(東西韓方病院)를 국립의료원 한방 부속병원으로 설립 개원하여 원장으로 일해왔다.황 정교는 “저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선교지향적인 가치를 목표로 하고 일해 왔습니다.”라며, 많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복음선교가 목표였다고 한다. 병원 건물 전면에 ’이 병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치료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라고 현수막을 내걸고 진료했다. 병원의 목적을 복음선교에 두고 경영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면 무료진료도 해 주고, 믿는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환자가 많았지요.” 황 정교는 이러한 간접선교가 매우 보람된 사역이었다고 회고한다.황 정교는 4년 후 병원은 위탁경영으로 돌리고 귀국했다. 지난 2002년부터 계속해 온 민주통합포럼, 열린민주포럼까지 당시 야당중심의 모임을 운영해 오면서 열심히 정치권복음화운동을 펼쳐왔다. 황 정교는 “저는 야당의 편에서 오랫동안 포럼을 만들고 기도회를 개최해오면서 많은 오해와 비난을 들어 왔고, 심지어 빨갱이 좌파라는 비난도 받기도 했으나 인내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며 어려웠던 기억을 떠 올렸다. 심지어 기도회를 열면서 설교자를 섭외하면 ‘좌파’라면서 거부 당하는 일을 여러 번 겪어도 인내로 계속해 왔다고 한다.또한 황 정교는 그동안 사단법인 통일연합종교포럼을 통해서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과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등에도 의약품지원 사업을 해 왔다고 한다.황 정교는 그동안 문제인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고, 이에 힘입어 ‘더불어민주기독포럼’ 사무실을 기독교연합회관 1405호에 개설하고 본격적인 나라와 민족, 교회를 위한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 단체는 여당 내의 야당역할을 할 것이며, 교계는 물론 정계에서 진실한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고 합니다.” 나라와 민족 그리고 교계를 위한 기도운동을 비롯하여 신앙적으로 인정받는 단체가 될 것이라며, 정치꾼이 모인 단체가 아니라고 말했다.현재 더불어민주기독포럼은 국내에 330개 지부, 해외 5개 지부(미국, 독일, 프랑스 등)를 조직 운영하고 있다.과거와 달리 “진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회, 교회를 염려하고 위하는 단체가 돼야 한다”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교회가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이방인이 교회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모든 명예와 질투, 다툼을 버리고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 정화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황 정교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어려운 시기에 많은 비난과 수모를 당하면서 기도운동을 해 온 것과, 북한선교를 열심히 한 일”이라고 회고한다.황 정교는 김금자 부교(74세)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자녀들이 하나님은혜로 건강하고 행복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고, 가정이 은혜롭고 평안한 것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저는 무엇보다 부부가 나이 들어서도 건강하게 함께 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라면서, 특히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황 정교는 앞으로 더불어민주기독포럼을 통해 교계를 정화시키고, 나라를 위한 새로운 신앙운동을 펼쳐 나가는 비전을 가지고 우리시대에 참다운 기도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편집자주: 구세군 ‘정교’는 타교파의 ‘장로’에 해당하고, ‘부교’는 ‘집사’에 해당한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8-01-18
  • 이상국 장로
    기도와 큐티로 하루 시작, 기드온협회 일로 매주일 타교회 방문 이상국 장로(77세, 예장고신 서울 서부노회 등촌교회)는 매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큐티와 성경 말씀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 국제기드온협회 (서울 양천캠프)에서 20여 년간 헌신해 왔으며, 기드온협회 성경 나누어주기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복음사역으로서 기드온 사역은 많은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이 장로는 “나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사역인 이 일을 지금까지 하게 된 것은 너무 감사한 일”이라며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계속해서 헌신하겠다고 한다. 일주일간 하루 정도 집에 있게 되지만 너무나 분주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기드온협회 일 외에도 노회 남전도회 원로로서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초청이 있을 때 마다 교계연합 모임에도 참석을 하고 있다. 또 시간을 내어 걷기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추운 날씨에는 집 안에서 자전거타기를 한다. 그리고 젊을 때부터 해온 골프는 요즘에는 극동방송 주관으로 열리는 안산 아일랜드 골프장에 나가 ‘후원회골프 모임’에 참석한다고 한다. “제가 건강을 이만큼 유지하는 데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지만 걷기운동과 골프모임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열심히 일합니다.”이 장로는 매주일 아침 1부 예배를 드리고 기드온협회 순회예배를 위한 사역허락을 받기 위해 교단을 초월하여 여러 교회를 방문, 담임목사님을 만나는 일을 하고 있다. “기도하고 목사님들을 찾아가면 대부분 허락을 받게 되는데 이는 성령의 역사하심이며, 기도하면 모든 일이 성취된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라고 한다. 이 장로는 등촌교회가 내년에 교회설립 50주년을 맞게 되는데 창립멤버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특히 등촌교회는 이 장로의 장모 박혜운 권사가 중심이 되어 개척설립 된 교회로서 지금까지 많은 시련을 극복하고 교회가 3천여 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 이 장로는 음악에 대한 실력과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에 본 교회에서 찬양대장과 테너 파트 대원으로 15년여 충성을 다했고, 등촌교회의 오케스트라를 만드는데 중심역할을 하였다. 지금의 교회건축에도 이 장로의 역할과 손길이 깊이 담겨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등촌교회는 고신교단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교회로서 앞서가는 교회이다. 온화하고 겸손한 이 장로의 리더십은 전 성도들에게 아름다운 영향을 끼쳐 교회가 은혜롭고 평온한 가운데 성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때 교회가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져 갈등할 때가 있었는데, 이 장로는 그때가 마음이 가장 괴롭고 힘들었다고 말한다. 이 장로는 교단 유지재단 이사를 비롯하여 수도권장로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전국장로회연합회와 전국남전도회연합회에서도 임원으로 일했다. 또한 교단이 어려울 때에 서울 대표로 모금운동에 앞장서 기도했다. 또 이 장로는 교계 평신도연합기관에서도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연합과 일치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본 교회뿐 아니라 교단과 노회에서도 친교하고 참여하는 모습이 귀감이 되고 있다. 이 장로는 부인 백영미 권사(76세)와의 사이에 남매를 두었고, 젊을 때 5년여동안 직장생활을 하였으며, 이후에는 한일전기 대리점을 운영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하나님의 선한 사역에 진력해 왔다. “나는 연합사역을 하는 것이 참 좋았어요. 교파 따지지 않고 함께 만나서 교제하고 협력하여 교회를 위한 노력을 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이 저에게는 참 좋은 인상을 주었어요. 더욱 더 발전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요,”라며 교계연합사역을 회고했다. 이 장로가 좋아하는 성구는 에베소서 2장 18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즐겨 부르는 찬송은 ‘나 어느 곳에 있던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이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12-14
  • 김영돌 장로
    세무서 상담과 회계사 사무실 출근, 제자훈련과 중보기도 계속해 김영돌 장로(77세, 예장합동 광천교회)는 은퇴했지만 현역처럼 교회와 사회 일에 분주하다.김 장로는 매일 아침 8시면 집을 나서서 오전에 장남이 경영하는 ‘엘림세무회계컨설팅’사의 고문 자격으로 출근했다가, 오후에는 서울성동세무서에 매주 3회 정도 출근하여 민원실 상담과 안내를 맡고 있다. 그렇지만 날마다 오후 5시면 귀가하여 휴식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김 장로는 현재 출석하고 있는 광천교회에서 주일이면 일대일 제자훈련반 교사를 맡아 가르치며, 중보기도팀과 새가족부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 성도들이 좋아하고, 어쩌면 시무장로 때보다 더 바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건강을 위해서는 많이 걷는다면서 웬만한 곳은 걸어서 다닌다고 한다. 집에서는 실내 자전거타기와 아령 등으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저는 바쁘게 일하면서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매일 많이 걷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 같습니다.”김 장로는 경북 의성의 빈농에서 태어나 어렵게 대구에서 상업학교를 다녔고 열심히 공부한 결과 은행에 취직하게 되었다. 부산에서 15년여 은행원으로 일하면서 야간대학도 졸업해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은행에 근무하면서 사업투자유혹으로 실패하게 되어 퇴직하고 78년 서울로 왔다. 은행에서의 경험으로 법인회사에 세무회계분야 경리로 입사하여 과장과 전무에까지 오르면서 직장생활을 했다.처음으로 서울에 정착하여 출석한 아현교회에서 1993년 장로 장립을 받고, 재정위원장을 비롯하여 총무, 교육 분야를 맡아 헌신했다. “제가 아현교회에서 가장 보람 있게 섬긴 부서는 중고등부 부장이었고, 많은 후배 제자들을 배출한 것과 성공한 제자들을 보면서 더욱 감사함이 넘칩니다.”라고 한다. 중부노회에서는 회계와 부노회장을 역임하고, 총회 총대로 나갈 기회도 있었다. 노회 남전도회와 장로회에서 임원으로 일했고, 전국장로회와 전국남전도회연합회에서도 참여하여 일했다.정 장로는 대인관계에서 분명하고 진실한 면을 보여 주고 있다. 동료들과 이웃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있어 남들이 부탁하고 협조를 구할 때 거절을 하지 못하여 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김 장로는 “저는 모든 일에 참고 인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으로 살면서 참고 있으면 서로가 충돌하거나 다툼이 없어요.”라며, 항상 남을 배려하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고향에서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때때로 어릴 때의 어릴 때의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면서 먼 산을 바라보면 마음으로 고향을 그려보곤 한다고 말한다.김 장로는 한때 친구들의 권유로 환경운동연합과 참여연대에서 사회활동도 했다. 그러나 본인의 성향과 맡지 않아 탈퇴했다고 한다. 이후부터 교단과 교계연합회에서는 책임을 지는 임원을 피하고 평회원으로 참가하고 있다.김 장로는 교계를 보면서 옛날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요사이는 웬일인지 우리가 전에 믿고 열심을 내던 것보다는 훨씬 열정이 식어졌고 형식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김 장로는 오복연 권사(75세)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장남은 엘림세무회계컨설팅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고, 차남은 변호사로 종사하고 있으며, 딸 둘은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여 번역사와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저는 우리 자녀들 과외 한번 못시켰지만 하나님 은혜로 잘 자라서 사회인으로 일하고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김 장로가 좋아하는 성구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12-07
  • 김시영 장로
    50년 익힌 사진기술, 교계행사 사진기록 남기는 일로 분주 김시영 장로(76세, 예장합동 남서울노회 함께하는교회 원로)는 오늘도 교단의 ‘장로신문’ 사진취재 기자로 교계행사장을 두루 다니면서 기록을 남기는 일에 분주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릴 적부터 사진에 취미를 가졌던 관계로 사진을 찍어 밤을 새우면서 디지털로 편집하고 앨범을 만들고 있는 것이 즐겁다고 한다. 급여를 받거나 특별한 예우를 받는 일은 아니지만 감사와 봉사로 기쁨을 느낀다고 한다. “사실은 저는 건강을 위해 등산과 운동하는 시간을 가질 수 없이 분주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것 같습니다.”김 장로는 일찍 고향을 떠나 ‘함께하는 교회’ 장로로 임직 받아 22년간 헌신을 했고, 원로장로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 본 교회에서는 주일학교 부장을 10여 년 맡아 헌신했고, 제직회 각 부서를 섬기면서 원로 장로가 되기까지 맡아왔다. 노회에서도 임원으로서 부회계를 거쳐 회계를 맡아 일했고, 주일학교연합회 회장과 남전도회연합회 회장을 역임 했다. 그리고 총회 총대로도 참석하여 관심 있는 사역에 헌신했다.김 장로는 고향 교회(경북 상주시 죽암제일교회)에서 일찍 20대에 집사직을 맡아 교회의 주동적인 헌신을 했다. 농사일에 탁월한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어 농촌계몽과 개발에 노력하여 성공적인 농업경영을 했다. 20대 후반에는 더 큰 일을 위해 당시 수리시설(水利施設)이 열악한 때에 경북 성주에 양수시설(揚水施設) 사업을 시작했다. 엄청나게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50만여 평에 이르는 갯벌 농지에 수로(水路)를 만들고 거대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행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양수기와 연료, 수로와 농지를 모두 쓸어버리는 대홍수가 덮쳐 와서 뼈아픈 실패를 경험하게 됐다.김 장로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농사일을 정리하고 서울로 왔다. 1971년 당시 해외근로자들의 진출에 힘입어 한일개발 직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파견되어 80년대 중반까지 근무했다. 귀국하여 생활의 기반을 잡고 안정된 교회생활로 현재의 함께하는교회(전 신광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다.김 장로가 교회를 섬기면서 보람을 느끼고 헌신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봉사하는 기쁨과 감사가 항상 넘칩니다.” 무엇보다 자녀들이 잘 자라서 사회인으로 일하게 된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 장로는 남서울노회의 평신도선교훈련원(LMTC)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해외선교에 헌신하기도 했다. 중국 쿤밍의 소수민족교회를 돕고, 베트남에서 서민주택건설과 장학금을 전달하는 등 선교에 많은 협력을 하였다. “선교훈련을 받고 해외선교에 참여해 보니 이러한 봉사가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김 장로가 고향을 떠나 온지도 50년이 넘었지만 “지난 시절 어릴 때 고향교회를 섬기던 일을 잊지 않고 살지만, 서울에서 또 다른 교회를 섬기면서 이렇게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로 노회와 교단을 위해 봉사하고, 기쁘게 일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감사한 것”이라고 했다.김 장로는 우순옥 권사(76세)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장남은 목사로서 교회를 담임하고 있으며, 자녀 모두가 결혼하여 자신의 직장에서 일하면서 잘 살고 있다며 감사하다고 말한다. “저는 자녀를 키우면서 정직과 성실하게 살 것을 가르쳤지요. 무슨 일을 하던지 최선을 다하고 다른 사람이 보던지 안 보던지 최선을 다해라.”고 가르쳤다고 말했다. 우리시대에는 믿음생활에서도 목회자의 말씀에 절대순종하면서 살았는데, 요즘 세대는 너무 자유 분망하여 안타까운 면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교회가 사회에 거울이 되어야 하고, 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한국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장로는 이제 와서 생각하면 자식들에게 신앙을 물려주고 이들이 끝까지 믿음 잘 지키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하면서 남은 날 주어진 현실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마태복음 5장 산상복음을 즐겨 읽고 있다는 김 장로는 찬송가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고요한 중에 기다리니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 만드소서.’를 즐겨 부른다고 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11-24
  • 배명길 장로
    종로5가 사무실 출근, 애터미 사업과 드리미선교재단 일에 전념 배명길 장로(76세, 예장통합 서울노회 숭덕교회 원로)는 경북 칠곡에서 상경하여 서울 숭덕교회에서 57년간 성실한 신앙인으로 살아왔다. 운동을 좋아하는 배 장로는 건강을 위해 매주 2회 이상 테니스를 즐겨 하면서 평소 산책을 한다고 한다. “저는 운동도 좋아하지만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면서, 감사하는 생활이 건강에 기본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또 매일 종로5가 한국기독교회관 907호에 출근하여 하루의 일정을 시작한다배 장로는 국내 우수기업인 주식회사 애터미 회사의 사업에 심혈을 기우려 노력하면서 ‘드리미선교재단’의 운영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이렇게 노력하고 일하는 것은 저 자신의 유익보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배 장로는 칠곡에서 연세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함으로 고향에서는 대단한 인재로 소문났지만, 목회자가 되려고 했으나 소명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을 때라 포기하고 직장생활을 택했다. 처음 들어간 창녕섬유 주식회사에서 상무까지 지냈고, 자신이 ‘고운상사’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30여 년간 경영을 해 왔다. 이 때 섬유업계에서는 배 장로가 높은 위상을 평가받을 수 있었다.당시에 상인 선교를 위한 ‘목화선교회’를 박래창 장로, 김범렬 장로 등 7인이 창립멤버로서 설립하여 오늘까지 활동하고 있다. 목화선교회는 동대문 섬유상가의 상인 위주로 운영되어 온 선교회로서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배 장로는 숭덕교회(예장통합)에 출석하면서 교회학교 교사를 30여 년간 맡아 왔고, 재정부장 등 여러 부서에서 헌신했다. 숭덕교회는 당시 담임목사인 박영출 목사가 배 장로의 장인이었고, 배 장로는 1977년에 장로로 장립 받아 원로가 되기까지 교회를 섬겨 왔다.숭덕교회는 교회를 건축하면서 뜻한 바 있어 ‘숭덕학사’도 같이 설립하여 지금(김재룡 목사 시무)까지 3000여 명의 학사생을 배출한 교회로서 인재교육에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 왔다. 특히 배 장로는 이 일에 적극 참여하고 사역했던 것이 교회를 섬겨오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이라고 말한다.배 장로는 교단 내에서도 모든 면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지도자로서 장로교복지재단 이사를맡아 헌신을 했고, 그 경험을 살려 교단에서는 배 장로에게 공주원로원 원장직을 맡겼다. 당시 공주원로원은 많은 적자가 있었고, 해결해야 될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교단은 배 장로를 적임자로 보고 해결하도록 하였다.연세대학교 동문으로서 연세동문장로회가 창립되면서 배 장로는 총무를 맡아 지금까지 상호 친교하면서 모교가 기독교정신의 확고한 운영을 다하도록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또한 배 장로는 초교파 연합단체인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한지협) 제27, 28대 대표회장을 맡아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에 열심을 다했다. 한지협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라는 말씀을 앞세우고, 한국교회 26개 대표적 교단 평신도지도자들이 모여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위해 선도적 역할을 다하고 있는 전통있는 단체이다.배 장로는 한국교회연합과 일치를 위해서는 “우선 장로교, 특히 통합교단과 합동교단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두 교단만 하나 되면 한국교회는 연합과 일치에 대단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평신도 운동에 대해서도 난립해 있는 평신도 기관들이 하나로 뭉쳐야 대 교계, 대 사회에 대하여 영향력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서 '하나 되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배 장로는 박은수 권사(72세)와 사이에 외동딸을 두었는데 출가하여 부부가 교사로 근무하면서 부모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한다. 배 장로는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7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삶의 표준으로 삼고,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라는 찬송을 즐겨 부른다고 한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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