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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진호 장로
    오전에 각종모임 참석, 오후엔 몸 불편한 아내 돌보며 집안일 전념 이진호 장로(84세, 기감 성광교회 원로)는 몸이 불편한 아내를 방문요양사가 돌보는 오전시간에 주로 외부 모임과 활동을 하고 있다. 오후시간에는 아내의 병 간호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강지처(糟糠之妻)란 말이 있는데, 병고로 어려운 아내를 돌보는 것이 중요하지요.”매주 목요일 7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모이는 구국조찬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그 외에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등 전 회장과 임원들의 모임 등에 참석한다. 이 장로가 노년에도 불구하고 인천에서 세 번 정도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면서도 각종 모임에 참석하는 열정이 건강을 유지하게 되는 비결인지도 모른다.이 장로는 감리교신학대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나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고 평범하게 교회를 섬기면서 35세에 일찍 장로로 임직을 받았다. 본 교회에서는 교회학교 교사를 50여년 간 맡아 헌신했으며, 재정위원장을 비롯하여 여러 부서를 밑아 봉사하였고 특히 건축위원장으로서 교회당 건축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감리교단에서는 전국남선교회 부회장, 중부연회 남선교회 회장, 교회학교연합회 초대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부회장 등 많은 직책을 맡아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리고 와이즈맨(세계대회 준비위원)과 국제기드온협회 등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태극기 달기운동’, ‘무궁화 심기운동’, ‘농촌 살리기운동’ ‘법무부 청소년 교화’ 활동 등 사회활동에도 많은 활약을 하였다.이 장로는 교단 선교위원장 시절에는 중국 하얼빈 남강교회 성도들을 이주시켜 지금의 ‘임마누엘교회’(담임 이미란 목사)를 세워 주일낮 2만 여명이 모이는 대교회로 성장시키기도 했다.이 장로는 군(軍) 생활에서는 학도병 시절 중대장 임무를 맡아 사병 220명을 전도했고, 그중에서 192명이 세례를 받게 하는 놀라운 전도활동을 하였다. 또한 교단에서는 감리교단이 재산문제 분쟁에서 일영연수원을 지켜 내는 일에 연회감독들과의 세력다툼에서 무리 없이 방어하기도 했다.이 장로는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대표회장을 맡아 협회 사무실을 확보하여 유지하게 하였고, 교계의 연합과 일치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저는 모든 이권에 휘말리지 않고 곧고 바르게 살았기 때문에 오늘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 분야에서 일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라고 회고했다.이 장로가 교계에서 존경하는 인물은 한경직 목사와 의사인 문창모 장로, 언론인 김경래 장로를 꼽고 있다. “모두가 한국교회에서 보배와 같은 인물이며 존경을 받고 있지요.”라고 말한다.이 장로는 윤현숙 권사(80세)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 자녀들을 기도와 신앙으로 잘 키웠지만 목사가 된 장남과, 차남을 연이어 일찍 하늘나라에 보낸 그 충격은 말 할 수 없었다. 그 충격으로 윤 권사는 병(病)져 눕게 되었고, 이 장로의 간호와 돌봄이 매일 같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 장로는 아들의 조위금과 자신의 돈을 합하여 1억 원의 장학기금을 마련하여 15년간 이어 오고 있다고 한다.이 장로는 “우리 교계는 파벌이 너무 많고,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관용심이 적어요. 바라기는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단합하고 하나가 되어 통일로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라고 그동안 연합운동을 해오면서 느낀 바를 토로하기도 했다.이 장로가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말씀은 요한복은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며, 좋아하는 찬송가는 ‘내 주를 가까이 하려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이다. “저는 모세와 같이 건강한 삶을 사는 동안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남은 생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하면서 온갖 역경과 환란이 많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은혜라고 말한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11-03
  • 박현제 장로
    미래포럼에 출근하면서 단체 고문직과 회의 참석으로 분주한 시간 가져 박현제 장로(79세, 기감 룻교회)는 아침 일찍 새벽기도회로부터 시작하여 서울 신설동 한국미래포럼을 출근하면서 하루의 일정을 시작한다. 박 장로의 경력이 보여 주는 것과 같이 여러 단체의 고문직을 맡고 있어 항상 분주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지만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건강의 비결일 것이라고 말한다. 내외환경신문 상임고문, 한국경찰신문 상임고문, 사)대한청소년전통호국무술연맹 상임고문 등을 맡아 자문과 지도를 하고 있다.교계에서도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부회장, 사)세계한인기독교협의회 부회장 등을 맡아 연합사역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 정치권에도 중앙당 위원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정치 환경 조직에도 열성을 다하고 있어 여러 지인들은 박 장로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팔방으로 종횡무진(縱橫無盡) 바쁘게 사람을 만나고 회의에 참석하는 매우 활달한 성격의 인물이다.박 장로는 경남 거창 출신으로 1962년 철도청 제1기 공채로 입사하여 19년 간 근무하고 퇴사하기까지 여객전무와 역장 등 중요 직책을 맡아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 당시에는 너무나 당당한 전성기였기 때문에 많은 이웃들이 부러워했고 재정적인 여유도 있었다고 한다. 81년 퇴직하여 보다 큰 꿈을 가지고 타이어 수출 사업을 시작했으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박 장로는 직장생활에 쫓기다 보니 퇴사하여 부산에서 서울로 이거해 온 후 늦은 나이에 2000년에 룻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고 교계와 정치권에서 새로운 직책을 가지고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교단에서는 장로회 지방회회장, 중앙회부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지연을 널리 익혀 나갔다. “저는 늦게 장로가 됐지만 항상 믿음으로 살기위해 노력했고, 주님의 은혜 가운데 모든 일에 편안하게 대처하고 처신하게 됐습니다.”박 장로는 김영삼 정권 시절 부산 중구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신앙으로 극복해 왔습니다.”라며 지난 시절을 회고했다. 지금도 서울 여의도에 있는 모 정당에 출입하면서 중앙당의 어느 분야에서 정치일선의 조직과 정책을 도우고 있다. “저는 정치권에 출입은 많이 하고 있으나 지금은 일선에 앞장서고 있지는 않고 주로 뒷받침해 주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지요.”라며 새로운 정치개편을 염두에 두고 정치안정을 바란다고도 했다.박 장로는 대한민국 정치의 최선의 길은 “안보가 가장 중요합니다. 안보가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하고, 안보가 정당정책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치권에 관심이 많은 만큼 많은 전 현직 정치인들과의 교분도 많다고 한다.박 장로는 한국교회연합운동에 대해서도 “저는 요즘에 보면 전도하는 사람이 안 보입니다. 전도를 열심히 해야 교회가 부흥되고, 전도하는 교회와 단체는 분쟁이나 잡음이 없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한국교회 지도자 모두는 기도하면서 자신이 전도자로 나서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한편 평신도 운동에 대해서도 “최근 평신도들이 갈급함이 없어요. 사회적인 여건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진실하게 무릎 꿇고 기도하는 지도자가 너무나 절실합니다.”박 장로가 존경하는 지도자는 감리교단의 전용재 감독과 박경진 장로라면서 “전 감독은 항상 혁신적으로 일하는 지도자이며, 박 장로는 물질을 가치 있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는 인물”이라고 했다.박 장로는 문광자 권사(77세)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장남과 장녀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부담을 주고 있다면서 늘상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다고 한다. 가정을 위해서 가훈처럼 자녀들에게 ‘믿음으로 살고 신앙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여 나가길’ 원한다고 말한다.박 장로가 좋아하며 암송하는 성경 구절은 이사야 43장 19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고, 즐겨 부르는 찬송가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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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으로 초대
    2017-10-13
  • 정승준 장로
    장로교육원·장로회와 남선교회 증경회장 등 여러 단체참석 친교 나눠 정승준 장로(예장통합 신양교회 원로, 80세)는 매일 아침 산책을 하고, 각종단체의 회의 참석과 친교의 만남으로 분주하다며 “나는 은퇴하였어도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라고 한다. 건강의 비결은 걷기와 맨손체조를 하는 것이 전부이며, 근심걱정으로 고민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으로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서울시내 여러 모임을 위해 나들이를 하고 있다.정 장로는 1984년 신양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고, 그동안 많은 일을 해온 경력과 역사가 말해 주듯이 여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밖으로의 외출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한다. 교단에서는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을 비롯하여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평북노회 노회장 등 주요 단체장을 두루 역임했다. 특히 전국장로회 총무 시절 전권을 위임받아 한국장로교육원 설립을 주도하여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고, 현재에도 행정부장을 맡고 있다.그리고 안구기증협회 부회장과 이사장을 10여년씩 맡았었고, 농아선교위원회 이사장을 수십 년간 맡아 이 단체를 발전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정 장로의 이러한 경력은 지금도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월 또는 수시로 모임과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통합측의 이북 4개 노회 노회장단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도 전국남선교회 증경회장단, 전국장로회연합회 증경회장단 총무를 맡고 있다.정 장로는 시무장로 시절 교단총회 총대로 29년간 참석했으며, 총회 평신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김형태 목사가 총회장이었던 제69회 총회 때에는 ‘이북노회 폐지안건’이 헌의 된 일이 있다. 이 때에 정 장로는 경상도 출신이지만 논리적인 반론을 제기하여 그 안을 폐기시킴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기도 했다. 또한 정 장로는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한영제 장로가 총회장으로 취임하는 일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한영제 장로를 앞세워 교단의 여러 단체의 경력을 거쳐 장로총회장에 이르기까지 10여년의 기간 동안 인격적인 인물발굴의 노력 결과는 정 장로의 공헌이 컸다고 한다.정 장로는 행정력과 기획력이 뛰어나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사무총장과 통합측 교단의 전국장로회연합회 총무를 여러 차례 역임했고, 지금도 원로로서 단체의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하고 조언도 한다.정 장로는 그동안 여러 기관과 단체에서 사역해오면서 많은 인간관계를 가져왔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지도자를 한영제 장로, 계준혁 장로, 김건철 장로, 정연택 장로를 존경한다면서 “이 분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일했던 것은 잊을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이 된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가 정 장로를 앞세워 함께 일하기를 원했던 인물들이다. 정 장로의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노력과 신앙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은 결과로 보인다.한편 정 장로는 삼마준바이오주식회사를 경영하면서도 가정과 교회에 성실한 신앙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삶의 길을 강건하게 인도해 주셨다고 말한다.정 장로는 한국교회 연합사역의 올바른 길에 대해 “오직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평신도가 하나 되어야 하고, 교회와 교단이 하나가 돼야 나라도 통일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라며, 지금은 연합단체들이 같은 깃발아래 ‘한 목소리’를 발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한다. 기도하고 시작했던 이 나라가 어렵게 된 것도 한국 기독교인들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한다.정 장로는 공명복 권사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둔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장남은 정 장로의 사업을 이어받아 일하고 있고, 차남은 독일에서 음악가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출가한 자녀들도 사회활동에 잘 적응하면서 신앙인으로 아름답게 살고 있다는 것을 감사한다고 했다. 정 장로가 마음에 새겨두고 암송하는 성구는 고린도전서 10장 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늘 즐겨 부르는 찬송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이며, 매일 아침마다 묵상하고 기도하는 생활에서 항상 위로와 평안을 가진다고 한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9-29
  • 박종술 장로
    아침운동으로 하루 시작, 평신도지도자협회 사무실 출근 동료와 친구들 만나 박종술 장로(80세, 예장통합 은광교회 원로)는 매일 아침 일찍 근처 공원을 걸으며 산책으로 시작하여 건강을 다지고, 고양시 탄현에서 제법 먼 거리지만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 907호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사무실에 출근한다. 이 사무실에서 교계의 여러 인사들과 동료 친구들을 만나 친교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를 사랑하고 동료를 만나는 것은 지난날 박 장로가 동 협회 총무(사무총장)를 16년간 맡아 왔기 때문에 어느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현재 임원진을 도와 조언과 협력을 아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박 장로는 1982년 광주제일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았고, 한 때 광주에서 ‘복음서원’이란 기독교서점을 운영해 왔다. 이후 서울에 와서는 불광동 소재 ‘은광교회’에서 30여 년간 봉직해 오면서 본격적인 연합사역에 헌신하게 되었다. 은광교회에서는 남선교회 회장을 비롯하여 제직회 여러 부서를 맡아 일했다.박 장로의 행정력과 뛰어난 필체솜씨가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도 16년간 이런 저런 사무행정을 도와 일했다. 특히 '한기총신문'을 창간하여 13호까지 발행하는데 힘을 기우렸다.항상 온화하고 겸손한 성격의 박 장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고 친화력이 있어 친교를 나누는 지도자들이 많은 것도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특히 박 장로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80여명의 남선교회 찬양대원이 매주 연습을 하고 대원들은 이 모임에 매료되어 주일마다 감사와 기쁨으로 찬양사역에 헌신하고 있다고 한다. 예장통합교단 내에서도 '익투스찬양단'을 창단멤버로서 매주 화요일 연습을 하고 있으며, 박 장로는 20년간 연습에 개근을 하여 근속표창도 받을 만큼 열정이 대단하다. “사실은 열정도 중요하지만 매주 빠짐없이 연습에 참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라며 바리톤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한기총 사무총장을 맡았던 정연택 장로를 비롯하여 자주 만나는 김사철 장로, 유경선 장로를 꼽고 있다. “저는 정연택 장로님은 한기총을 위해서도, 평신도들의 위상을 위해서도 열정을 다하신 분이었고, 아쉬운 것은 그분이 살아 있었다면 작금의 한기총 사태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박 장로가 가장 보람 있게 생각하는 것은 전국남선교회연합회 임원으로 50여 년간 일했고 장로회연합회 30여 년간 꾸준하게 근속한 것이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다. 거의 생애의 모두를 바쳐 일한 것이다.박 장로는 연합사역에 헌신하면서 “매우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반면에 욕심이 지나쳐서 명예와 교권에 심각하게 치우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라며 한국교회는 먼저 지도자들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낮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평신도 운동도 "단체는 많지만 제대로 국가사회와 교회에 남길 만한 목표가 없이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 있다“며 개탄스럽다고 했다.박 장로는 광주에서 경영하던 서점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1남 3녀를 뒷바라지 하면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힘이 드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이 하나님 은혜로 잘 성장하여 부모를 잘 섬기는 효를 다하고 있다. 특히 장남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경기도 탄현에서 ‘호소아과’를 개업하여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러한 자녀들의 섬김을 통해 미국에 거주하는 딸에게 2년마다 한 번씩 다녀오는 것을 비롯하여 아들 딸이 여러 번에 걸쳐 해외여행을 주선하여 주기도 했다고 한다.박 장로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부인 신영순 권사(76세)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자녀를 공부시키고 가정을 은혜롭게 지켜 나간 것이라며 “노년에 부부가 해로(偕老)하며 살게 됨은 은혜요 감사”라고 말한다. 좋아하는 성구는 마태복음 5장의 팔복을 많이 읽고 있다면서 복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참된 복이라고 말한다.가장 많이 부르고 좋아하는 찬송가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주여 내 발 붙드사 그곳에 서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이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9-21
  • 정봉덕 장로
    걷기운동으로 건강유지, 성경공부 설교시청, 전 근무부서 방문 친교 가져 정봉덕 장로(예장 통합 서울서노회 염천교회 선임 원로, 91세)는 매일 아침 5시 일어나 성경 말씀을 읽고, 걷기운동으로 노년의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정 장로는 1947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조실부모(早失父母)하고 18세에 홀로 월남하여 6.25 참전으로 군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접하게 되었고, 치열한 전투가운데서도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절박한 신앙으로 전도를 했다고 한다. 군 생활에서도 신임을 받아 군종 하사관으로 근무하였고 1955년 전역을 하였다. 정 장로는 빈틈없는 성격과 책임감을 인정받아 당시 제1군사령부 군목이었던 황금천 목사의 추천으로 제대 후에 갈 곳 없는 청년을 총회 전도부 직원(간사)으로 사회에 진출하였다. 이어 승승장구한 정 장로는 총회 사회부 초대총무, 총회 연금재단과 복지재단 사무총장 등 교단의 중요 직책을 맡아 헌신하였다. 또한 교단 언론기관인 한국기독공보 총무국장을 거쳐 전무이사로 신문사를 경영하였으며, 전국남선교회 총무를 3년간 겸임하기도 했다. 여러 기관에서 총무를 맡아 실무적인 사무체계를 갖추게 한 정 장로에게 교단총회 100주년 기념 ‘봉사상’을 총회장으로부터 표창 받기도 했다.정 장로는 지금도 매주 2회 정도 서울 종로5가 자신이 근무했던 기관을 찾아 후배동료들과 만나 교류하면서 친교의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 함께 근무했던 부서의 직원들과의 친목단체인 ‘덕우회’의 모임에도 참석을 한다고 한다. 정 장로는 총회 기관에서 오랜 세월 근무했기 때문에 사명감이 투철하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세계 NGO 104개 단체가 한국에 와서 사회와 교회를 도왔습니다. 세계기독교봉사회가 도와준 결과 교회가 부흥되었고 나라가 발전했는데 감사하면서 우리도 제3세계를 도와주어야 합니다.”라고 하는 정 로는 가까운 지역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성경대로 복음을 전하고 구제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당시에 고 박창빈 목사, 이삼열 교수, 김용복 교수 등이 중심이 돼서 외교법인 ‘한아봉사회’를 설립하는데 실무를 맡아 일하였고, 이후 사무총장으로 10년을 봉사 했다. 한아봉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 우리처럼 식민지였던 제3세계는 불교 문화권이었으며, 내란을 겪은 사회주의 국가인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대한민국은 민주화와 경제성장, 신앙의 자원이 있기 때문에 이 나라들을 섬기고 치유하고 도와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한아봉사회는 그동안 많은 선교와 복지에 후원을 했다고 한다.그러나 정 장로는 은퇴 후에도 선교와 복지에 대한 열망으로 ‘생명의 길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복지기관을 설립하여, 차 상위 계층에게 소액신용대출을 해 주는 일을 10년간 운영해 오다가 유태선 목사에게 물려주었다. 정 장로는 한국교회를 염려하는 것은 “교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말이 맞습니다. 나라가 바로 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교회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라면서 말 뿐이고 실천이 없는 현실은 하나님의 권위를 불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배가 하나님 보시기에 바로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교회답지 못한 것을 참으시는 하나님이 언젠가는 반드시 벌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정 장로는 일상에서도 매일 방송 설교와 성경공부를 시청하면서 보낸다면서 “요즘 목사님들이 교인들에게 방송설교와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많이 시청하도록 권유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정 장로는 개복수술, 위암수술, 담도수술을 받았으나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켜주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말했다.2016년에는 자신의 자전적인 글을 모아 ‘생명의 길 따라 온 걸음’이란 저서를 출판하여 감사축하모임도 가졌다. 선교와 복지, 사회봉사에 일평생 헌신해 온 정 장로는 건강하게 함께 해준 조상순 권사(86세)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간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9-11
  • 김찬규 장로
    하모니카 연주자로 영어성경암송과 찬양으로 분주 김찬규 장로(90세, 예장통합 영등포노회 영은교회 은퇴)는 평안북도에서 6.25전쟁 당시 1.4후퇴 때 월남하여 영은교회 개척 창립멤버로 교회를 일평생 섬겨왔다.김 장로는 90세의 노년임에도 하루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와 성경탐독을 하고 음악을 좋아하여 찬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노인이지만 남다른 재능이 많은 김 장로는 오전에 컴퓨터 메일 검색으로 교계의 각종행사와 교단과 교회의 상황을 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또한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영어성경과 일본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특히 영어성경을 읽으면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등을 늘 암송하고, 일본어에도 수준급의 실력을 닦아가고 있다. 김 장로는 틈틈이 봇 글씨 습작을 하면서 심신을 다스리고 있고, 매주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모이는 ‘창광 금요기도회’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저는 매일 쉴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게 보내고 있어요. 정말 아플 시간도 없어요.”라면서 건강하고 꼿꼿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음악을 좋아하는 김 장로의 하모니카 연주는 유행가 정도의 간단한 실력이 아니라 주로 찬송가와 명곡들을 연주함으로 연주 실력을 인정받을 뿐 아니라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 90세의 노인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김 장로의 하모니카연주 실력을 알고 있는 여러 교회를 비롯하여 음악제 등에 초청을 받는다. 예장통합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행사에서도 연주를 했고, 미국 애틀란타에도 초청을 받아 해외연주로 많은 은혜를 끼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한국기독교원로장로회에서 연주자 특상을 받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김 장로는 교회에서 개척멤버로서 늘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밀어주면서 장로장립은 늦은 감이 있으나 1980년 4월에 시무장로로 임직하여 18년간 교회를 섬겼다. 본 교회에서는 선교위원장을 비롯하여 교육, 행정 등등 여러 위원회에서 최선의 헌신을 다했다. 현역에 시무하면서 영등포노회 남선교회연합회 회장과 남선교회전국연합회 임원도 역임했다.김 장로는 교단 밖 초교파 단체인 세계신도연맹과 재미목회자고국방문사업에 임원으로 사역했다. 또 한때 크리스챤선교뉴스 신문사 사장을 맡아 일하기도 했다. 항상 말이 적고 앞서 나서기를 못하는 성격으로서 “저는 자신을 나타내는 일을 하지 않고, 조용히 묵묵히 살다보니 벌써 90세가 됐지만 생각하면 참 보람됩니다.”라고 회고한다.김 장로는 젊은 시절 대한모직공업주식회사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퇴사하여 신일기업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직물과 섬유 제조업을 창업하여 경영일선에서 일했다. 당시에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남은 노후를 잘 보내면서 교계활동도 구김이 없이 잘 해 냈다고 한다. “동료들은 대부분 별세 했지요. 그래도 바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내게 하나님이 건강을 주신 은혜지요.”라고 하면서 늘 감사하면서 산다고 한다.한국교회를 염려하는 김 장로는 “너무 안타깝지요. 사실은 종로 5가에 나가면 만나는 사람들 중에 저런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걱정이 되는 지도자들이 많고 너무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라고 하면서 교회의 갱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김 장로가 즐겨 암송하고 있는 성구는 잠언 3장 1절부터 5절 까지“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 찬송가는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예수님은 아름다워라..”를 즐겨 부른다고 한다.김 장로는 이팔순 권사(83세)와의 사이에 1남 4녀를 두고 다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장남은 예장통합 총회 소속 대전인동교회 김성천 목사로 목회를 알차게 사역하고 있다. “나는 부족하고 약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노년을 부부가 해로(偕老)하면서 자녀들이 잘 살고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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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24
  • 김삼관 장로
    기드온협회, 지구촌선교회 정기모임 등 바쁜 일정 보내 김삼관 장로(예장고신 총회 전 부총회장, 서울서문교회 원로, 74세)는 그의 생애 전체가 하나님의 복음 선교에 헌신하여 온 삶이다.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를 다녀와 아침운동을 하고 난 후에 각종 모임을 위한 일상을 시작한다. 은퇴하여 원로장로지만 매주 모이는 국제기드온협회(서서울캠프) 정기 기도회와 김 장로의 주선으로 설립된 사단법인 지구촌 선교회의 정기기도회 등 여러 모임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국제기드온협회는 매주 토요일 아침 7시에 모여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가지고 사업점검을 하고 있다. 김 장로는 서서울캠프 창립멤버로서 3년간 회장을 맡았었고, 지금도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저는 기드온 사역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가장 확실하고 유익한 일이기 때문에 34년간 연중 무휴로 계속해 오고 있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라고 하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김 장론 2014년 장로 직을 은퇴하고 선교에 대한 사명을 위해서 평신도 자비량 선교를 위하여 해외로 떠나려고 했으나 담임 목사님의 강력한 권유로 국내에 머물면서 선교에 대한 헌신을 하기로 다짐했다. 그동안 장로로 시무하면서 교단의 중요한 부서에서 헌신을 했고,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회장과 교단 장로부총회장을 역임하면서 묵묵히 봉사를 해 왔다.김 장로가 특별히 2016년 1월19일 지구촌선교회를 창립하고 법인을 만들기 까지 자신이 헌금하여 재정적인 뒷받침과 노력으로 결실을 보게 되어 법인 이사회와 후원을 위한 조직을 마치고 본격적인 선교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1885년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우리 한국에 들어와 경신학교와 세브란스 학원(연세대학교)을 설립하여 수많은 정치지도자와 목사 장로 등 유능한 인재를 배출하여 국가발전과 교회부흥에 놀라운 일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라며 “우리 가 선교하는 아프리카와 동남아 등 제3세계에 학교와 신학교를 세우고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여 그 나라에 목회자를 세워 교회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라며 우리나라가 선교사를 파송하여 열매를 맺기에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현지지도자를 세워 10년을 내다보면 그 열매는 매우 크고 4~5년 안에 큰 교회가 세워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 했다.김 장로는 은퇴하기 전 까지 연합 사역에도 열정을 가지고 헌신했다. 고신교단의 전국남전도회연합회 회장을 맡아 교회를 개척(삼여시민교회, 김경환 목사시무)하였고, 필리핀 선교에도 교회를 건축하고 우물 파주기를 후원하는 등 많은 일을 감당했다. 교계연합운동에서도 한국장로회총연합회와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에서도 임원으로 활동을 했다.김 장로는 남서울노회 은퇴장로회 회장을 맡아 기반을 잘 닦아 활성화 시켰고, 교단 원로장로회연합회와 초교파 원로장로회연합회에서 임원을 맡고 있다.김 장로는 지난날 온유하고 과묵한 성격으로 성실하게 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물질적인 복을 많이 받았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했으나 그 결실로 얻어진 재정적인 뒷받침이 또한 선교에 헌신 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되었다고도 한다.김 장로의 가문은 목사 장로 가문으로서 김 장로를 비롯하여 동생이 교단 장로부총회장을 역임했고, 형님은 목회에서 은퇴한 목사이며 가족들이 모두 안수집사와 권사들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김 장로가 좋아하는 성구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과‘, ‘찬송가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를 즐겨 부른다고 한다. “오직 남은 삶을 선교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를 하면서 남은 생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에 바치고 가겠다”고 말한다. 가족을 위해서도 부부의 건강과 자녀의 건강 그리고 지구촌선교회를 위한 기도를 제목으로 삼고 있다. 김 장로의 자녀들은 장남은 캐나다 캘거리대학교 교수로, 차남은 은행 지점장으로서 성공한 사회인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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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11
  • 유경선 장로
    파고다스튜디오 출근, ‘한고운’ 선교에 열중하며 지인들 만나 유경선 장로(예장합동 대서울교회 원로, 78세)는 종로5가 자신의 사무실 파고다스튜디오에 매일 출근하여 사진·영상 사업에 전력하면서 지인들과 만나 친교를 나누고 있다. 유 장로가 지난 40여 년간 파고다스튜디오를 운영해 오면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온 자료는 한국교회에 중요한 역사자료가 된다고 한다. “오랜 동안 운영해 온 이 사업은 현재 적자가 나지만 계속하고 있는 것은 우리 교단과 한국교회 연합기관 등의 행사에 대한 모든 역사 자료를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지요.” 라며, 현재 휴대폰을 비롯하여 수많은 영상 문화의 발전으로 사업이 위축되고 있다고 한다.유 장로는 지난 77년에는 손양원 목사의 전기를 담은 ‘사랑의 원자탄’을 영화로 제작하여 대한극장 등 전국에서 개봉하여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00년 북한의 스커스단이 한국에 와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일주일간 공연 할 때의 사진을 8권의 앨범으로 제작하여 보낸 것이며, 교계 행사는 ‘74 엑스포대회에 130만 명이 참석한 사진을 꼽고 있다. 유 장로가 가지고 있는 한국기독교의 중요한 역사 자료 사진들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 받을 만한 귀중한 사진자료들이다.유 장로는 선교에 대한 열정도 남다르다. 그동안 서울지구장로회연합회 회장을 맡아 캄보디아에 교회를 건축하는 등 선교에 힘을 다했다. 최근에는 사단법인 한민족고구마나눔운동본부(한고운)를 박형서 러시아 선교사와 함께 설립하여 공산권에 굶주림을 해결하는 사업을 해 오고 있다. 고구마의 우량종순을 국내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내어 종순 줄기를 분양하는 방법으로 운송이나 전달에 매우 편리한 수단이며, 국내산 고구마의 맛이 매우 달고 크기 때문에 품질이 우수하고 수확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북한의 230개의 군 단위 지역에 굶주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북한의 양강도를 비롯하여 함경북도, 평안북도 등의 농민조직에 2년간 고구마를 심어 90% 이상의 근착율에 많은 수확을 냈다고 한다. 그 결과 여기저기서 고구마 종순을 보내 달라는 요구가 있었으나 남북이 막혀 있는 관계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법인으로 출범한 한고운은 열방을 향한 운동으로 전환하였고, 동남아 아프리카 등으로 확산하기 위해 ‘1004후원 운동’으로 돕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막힌 북한은 유보하고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에 고구마심어주기 운동을 전개한 결과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면서 앞으로 자금이 준비되는 대로 네팔에도 갈 준비를 하고 있다.유 장로는 예장합동교단에서도 총회 여러 상비부에서 활동했고, 평신도 단체에서도 헌신을 다 했다. 총회 재정부장과 예산심의위원장을 맡아 일했고, 순교자유가족부에서는 이 부서를 상비부로 승격시키는데 역할을 다했다. 서울지구장로회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고 전국장로회연합회 부회장, 전국남전도회연합회부회장을 역임하여 교단에서는 잘 얄려 진 지도자이다. 유 장로는 초교파 연합단체인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 대표회장을 맡아 평신도의 위상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했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문화예술분과와 북한돕기운돈본부 등에서도 활동했다. 현재 한국사진기자협회 감사를 맡고 있다.유 장로는 찬양사역에 큰 달란트를 가져 음악에 대한 재능을 살려 코랄카리스(장로합창단)에서 20여 년간 베이스 파트에서 활동했고, CTS 장로찬양단 및 CBS 장로찬양단을 창단하고 고문을 맡고 있다.연합사역에 저극적인 유 장로는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일에 지도자들이 소극적인 이유는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지 못하는데 있다"고 말하고”특히 평신도들은 섬김과 봉사에 인색하여 복음 선교에 등한시하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사야 43장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는 성구를 좋아하는 유 장로는 서은자 권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다복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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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7
  • 홍덕선 장로
    원곡 김기승의 제자로 개인전 27번… 매주 사랑의 쌀 조찬기도회 참석 춘파 홍덕선 장로(예장합동 목동중앙교회 원로, 72세)는 개인 및 단체의 서예전 준비에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금년 들어서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서예전람회 공모전 겸 시상식,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서예상 시상식 및 전시회, 제11회 한국기독교서예협회 회원 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명시, 명언 특별 전시회 등을 개최하였다. 홍 장로는 기독교서예협회의 회장을 맡아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전시회 등 큰 행사를 준비하는 일에 바쁘지만, 교계연합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있으며, 특히 매주 토요일 사랑의쌀나누기운동본부 조찬기도회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1980년도 제1회 서예전시회를 예총화랑에서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27회의 개인전시회를 열어왔다. 아마도 대한민국 서예가 중에 가장 많은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홍 장로의 서예작품은 모두 성경 말씀만 일관되게 작품화 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서예가로서 보람과 긍지를 가진다고 말한다. “정성껏 준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시할 땐 많은 성도들이 공감하고 하나님께 영광이지요.”홍 장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탐독하고 5시에 새벽기도회를 다녀와 6시부터 붓글씨를 습작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홍 장로가 서예가로서 명성을 얻고 유지하는 데는 그의 꾸준한 노력과 습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시회를 위해서 평소에 쉬지 않고 준비해 온 결과 매년 3회 이상의 개인전시회를 열 수 있다고 한다.홍 장로는 어릴 때부터 서예실력이 뛰어나 많은 상과 표창을 받았고, 1965년부터 서예가로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세에 서예학원 강사로 시작 서울 청파동에서 서예학원을 열어 40여년동안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예가로서 홍 장로는 동아일보 문화센터 서예 강사 27년, 기독교방송 서예 강사 20년, 서울 환일고등학교와 신광초등학교 교사들에게 20여 년간 서예 지도를 하였다. 그 외에도 럭키 금성(LG)에서 서예지도를 했고, 한국도로공사에서도 직원들에게 10여 년 동안 서예 지도를 하여 서예가로서 널리 알려진 예술인이다.홍 장로는 국전 서예부문 입선과 특선에 이어 초대작가와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여 서예가로서 정상에 올랐다. 서예가로서 예술성을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원곡 서예상, 기독교서예대상, 기독교문화상, 한기총 문화예술상 등 수상경력도 다양하다.홍 장로는 원곡 김기승 서예가로부터 사사(師事)를 받아 원곡의 제자로서 추사체 이후 대한민국에서 원곡체를 보존 계승하고 있는 서예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존경하는 인물은 원곡 김기승, 갈물 이철경, 일중 김충현 선생 등 대한민국의 대표 서예가를 꼽고 있다.홍 장로는 80년 목동중앙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고 본 교회와 합동측 교단을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였다. 교단총회에 총대로 파송 받아 상임위원장과 중요 요직을 거치면서 교단 발전에 기여했고, 전국장로회연합회외 전국남전도회연합회에서 부회장으로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홍 장로가 교회와 교단에서 존경받고 인정을 받는 것은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때문이라고 주위에서는 평가한다.홍 장로가 한국교회를 염려하면서 바라는 것은 “예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이 없고 다툼과 시기가 가득한 현실이 안타깝다”며 화평을 이루는 교회와 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평신도운동 역시 “서로가 양보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보다 진취적인 사업을 전개하여 교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홍 장로는 평생 동안 서예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부인 안순복 권사(70세)의 말없는 희생적인 도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자녀들 1남 2녀는 모두 결혼했고, 저는 먹을 것, 입을 것,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은 걱정이 없습니다. 항상 집 사람이 다 알아서 하니까요.”라면서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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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으로 초대
    2017-07-14
  • 윤경원 장로
    기독시민운동 상임총무로 바쁜 일상 보내며 연합사역에 몰두 윤경원 장로(예장합동, 흰돌교회 원로, 78세)는 3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현재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기민협) 상임총무로서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여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침 9시에 서울 신설동 사무실에 출근하여 협회 임·역원들과 교계 여러 지인들과의 대화로 시작하여 대외 협력을 위한 협조와 당부에 이르기까지 2~3시간을 전화 통화를 한다. 인간관계와 협력의 일환으로 가지고 있는 대화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하는 시간이 늘 부족하여 쫓기고 있다고 한다.윤 장로는 오랜 공직생활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조금 늦은 감이 있으나 서울 영등포 흰돌교회에서 장로 장립 받고 남서울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하고, 총회에 총대로 나가 ‘이슬람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데에도 역할을 하였다. 본 교회에서는 ‘교회설립 40년사’를 오랜 공직생활에서 경험한 경륜을 토대로 발간해 내기도 했다.윤 장로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교계연합운동에 참여하여 빈틈없는 성격과 행정경험으로 월드컵기독시민운동본부의 대외협력국장을 맡아 2002년 월드컵대회 당시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월드컵경기 성공개최를 위하여 한국교회의 저명하신 인사들이 참여하여 많은 일을 했지요. 이미 고인이 된 김준곤 목사님, 이영덕 전 국무총리, 박세직 장로님 등이 함께 일을 추진해 냈지요.” 한국교회가 일체감을 가지고 월드컵경기 성공개최를 위한 적극적인 기도회, 친절, 질서, 청결, 정직운동 등을 펼쳤다. 이 운동은 월드컵경기가 개최되는 서울, 부산, 대구, 울산, 광주, 전주, 인천, 수원, 제주 등 10개 도시에 지역협의회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윤 장로가 맡고 있는 기민협은 월드컵대회 후에도 2002년 9월 아시안게임 성공 지원다짐대회,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성공지원활동 등을 통해 기도운동, 스티커제작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로 개편되면서 윤 장로는 사무총장을 맡아 더욱 활기차게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2004년 6월 2일 서울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시무)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골목 청결운동’을 통해 깨끗한 서울 가꾸기 선포식을 가졌고, 사회 지도층을 초청한 가운데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도 전개하였다.윤 장로는 조직개편으로 더 책임이 많은 상임총무를 맡아 기민협의 사업 확장과 회원 증강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4대강 살리기 성공지원 활동,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지원 활동, 핵 안보정상회의 성공지원 활동, 퇴폐성 영상문화 개혁 등을 위해 기도회와 홍보활동을 전개해 왔다.최근에는 ‘차별금지법’ 입법저지활동과, 통일기도운동으로 한국교회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통일기도회는 특별 세미나, 통일 글짓기대회, 통일마라톤, 백두산, 한라산, 독도 등에서 기도회를 개최하는 등은 기민협이 심혈을 기울러 추진하는 사업이다. 윤 장로는 이러한 사업추진을 위해 매일같이 사무실에서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에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윤 장로는 한국교회연합 총무단의 일원으로 연합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은 실망스럽고 바람직하게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합기관이 통합이 안 되고 있는 이유도 ‘감투싸움’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문제 운운하지만 사실은 이단문제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면서 지도자들의 명예욕을 지탄했다. 윤 장로는 평신도운동에 대해서도 말했다. “평신도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운동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녹아 나는 소금이 돼야 합니다. 땀 흘리고, 눈물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실천이 필요합니다.”윤 장로는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 갑니다’를 즐겨 부르며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교훈으로 간직하고 오염되지 않고, 절개 있는 신앙인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부인 신임선 권사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고 다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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