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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범렬 장로
    안구기증 사무실 출근하며 각종 모임에 바쁜 일정 보내 김범렬 장로(예장통합 미암교회 원로, 81세)는 교계 단체장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동안 많은 현역을 맡아 왔던 관계로 정기적인 모임과 가끔씩 모이는 일이 너무 많아 은퇴 후에도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우선 (재)안구기증운동협회 사무실에 거의 매일 출근한다.김 장로는 통합측 주일학교전국연합회를 시작으로 평신도가 맡아야 할 단체에서 대표회장과 회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통합측 교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평신도 지도자이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해 증경회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자문을 해주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현재도 원로장로회의 정기모임을 비롯해서 장로교육원 이사, 남선교회 장학회 이사로서 활동하고 있다.김 장로는 교단을 초월하여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에도 많은 활동을 해 왔다.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대표회장, 한국장로회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여 범교단 평신도지도자들과의 유대를 가지면서 매월 정기적인 모임에 함께하며 교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단 내에서는 서울북노회 노회장을 역임하면서 총회와 연합활동에 많은 헌신을 하였다.김 장로는 온화하고 논리적인 무게감을 가진 성품을 가졌다. 신학(서울장신대)을 공부하여 목사와 장로 사이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행정에 밝아 관계개선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 “목사와 장로 간의 장로는 목사와 같은 교회의 치리권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목사님의 목회에 협력하여 목사님께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하고, 서로 돕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돕는다는 것은 예와 아니오를 바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특히 김 장로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재)안구기증운동협회 이사장을 맡아 자신의 사무실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39년 전에 ‘목화선교회’를 창립하여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 상인을 중심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고, 전국적인 조직도 만들어 각기 운영하고 있다.김 장로는 또 후배 장로들에게 “장로의 위상을 높여 나가려면 잘 알아야 한다. 교회헌법이나 교회행정을 바로 알아야 장로의 주장과 의견을 바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조언하고 있다.김 장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게 일했던 것은 노회장 때 최선을 다했던 일이라고 했다. 각 교회를 살피고 각종 행사에 다니면서 축사와 격려를 하며 바쁘게 지낸 일들이 지금 와서는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시절에는 전국을 누비면서 선교적인 사명을 위해 노력했던 일이라고 한다. 김 장로가 각종 행사에서 축사와 격려사를 할 때면 논리 정연한 언변(言辯)에 참석자들은 감동을 받는다.그동안 평신도운동에 많은 심혈을 쏟아온 김 장로는 “장로회나 평신도 단체는 친목단체로서 만족하지 말고 교회와 사회문제에 대하여 바른 말과 성명서 등을 통하여 냉철하게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면서, 교회는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도 바른 말을 했는데, 오늘의 평신도단체들은 무기력해졌고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평신도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김 장로는 지금에 와서 좀 후회스러운 것도 있는데,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과, 목회자들과 좀 더 협력하고 긴밀한 협치를 했으면 좋았을 때에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연합운동도 “모이면 보람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러한 모습이 안보이기 때문에 모이기를 등한시 한다”고 했다. 연합운동이 제대로 되면 교회와 노회, 총회와 한국교회가 잘 발전해 나갈 것인데, 최근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김 장로는 한국교회가 개혁되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고, 무엇보다 신앙인답게 살아가야 한다면서 삶을 통해서 믿음과 서로간의 신뢰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김 장로는 슬하에 둔 남매는 가정을 꾸려 나가 살고 있고, 부인 안병연 권사(76세)와 함께 매일저녁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단란하게 주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6-22
  • 윤시영 장로
    기드온협회·초교파장로회에 참석하며 친교 윤시영 장로(중앙성서교회 원로, 77세)는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집안정리(청소, 정돈, 설거지 등)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휴대폰에 담겨진 하루의 일정을 찾아 나선다. 초교파적으로 활동하며 알게 된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자문을 구하거나 논의의 대상이 많기 때문이다.윤 장로는 오랜 기드온협회 활동을 해 왔고, 지금도 매주 화요일 협회 조찬모임에 참석하여 예배 드리고 기드온의 활동대책을 논의한다. 매월 모이는 은평구초교파장로회 월례회에도 명예회장으로서 참석하여 후배들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 장로직을 은퇴했지만 초교파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교계에서는 많은 인사들과 교분을 가지고 있어 만나며 식사하는 시간도 빼놓을 수없는 일과이다. 윤 장로의 넓은 인간관계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 윤 장로는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와 한국기독교영남장로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연합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특히 윤 장로는 건강을 위하여 매일 빠짐없이 청계천을 걸으며 시내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챙기고 돌아온다고 한다.윤 장로는 젊은 20대에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15년여 동안 근무했고, 88년부터 2002년까지는 ‘포천생수’사업으로 매우 큰 이익을 내는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다.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윤 장로는 한문, 히브리어, 헬라어 등에도 능통하다. 한국국제기드온협회(기드온협회)에서는 1982년 10월 기드온협회 서서울캠프 창립멤버로서 교회부장을 맡아 서울시내 400여 교회를 순회하면서 모금을 하기도 했고, 86년에는 전국대회 간사로서 행사운영을 담당하였으며, 서서울캠프 회장을 역임하고 본부 전국이사로서 사역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은평캠프를 비롯하여 고양캠프, 마포캠프, 포천캠프 등을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자이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은평캠프는 매주 화요일에 모여 ‘주간기도회’를 가지면서 예배를 드리고 대책회의를 가진 후 친교의 시간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고 한다.윤 장로는 “기드온 사역이야 말로 하나님의 복음사역의 최일선에서 성경을 보급하는 기관으로서 지금 북한 성경 500만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본부와 함께 모금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기드온협회는 해외성경보급을 위한 확장사역과 저개발국성경보내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학교, 교도소, 호텔, 병원, 경찰 등에 성경을 보급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또한 윤 장로가 중심이 되어 은평구초교파장로회를 16년 전에 창립하여 기도중심의 단체로 매월 80여 명의 장로들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윤 장로는 은평구 교구협의회와 교경협의회에도 참여하여 목사 장로간의 밀접한 교류와 친교를 나누고 있다. 은평구 지역에서 범교회적인 행사에서는 윤 장로가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윤 장로의 탁월한 인간관계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윤 장로는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겸손과 온유로 일해야 하고, 교단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평신도들도 교회와 사회의 기독교적인 사명을 깨달아 사랑으로 용납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윤 장로는 교회 시무장로 31년간 예배와 기도생활, 교회헌신에 모범을 보여 후배들이 잘 따르고 존경하고 있다. 지금도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특이하게 ‘예비하라’는 가훈을 정하고 있다. 김금순 권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주님 안에서 복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특히 본 교회의 설립자 강태국 박사를 존경한다는 윤 장로는 찬송가 43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와 456장 ‘주와 같이 길 가는것 즐거운 일 아닌가’를 즐겨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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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9
  • 신현국 장로
    노년의 건강 비결은 하루 세끼 밥 잘 먹는 것 신현국 장로(98세, 서울영천교회 은퇴)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자녀들과 가족을 위한 기도와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리고 동네 아파트 공원에 나가 산책으로 건강한 하루를 시작한다. 낮 시간에는 근처 사회복지회관에 나가 담소하고 친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다. 그렇지만 신 장로는 “저의 건강 비결은 매일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를 잘하는 것입니다.”며 “저는 밥을 많이 먹어요.”라며, 건강을 위해서 특별한 약이나 건강식품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한다.신 장로는 매주일 수원에서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 있는 본교회(서울영천교회)를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하여 은퇴장로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11시 예배에 참석하며 오후 예배까지 교회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 교회에서는 제일 연세가 많은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신 장로는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 그대로 말수가 적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수긍하는 편이다.신 장로는 1919년 경기도 이천시 율면 신추리에서 태어나 26세에 면서기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농촌에서 교회를 섬기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 공무원생활 15년 동안에 부면장에 오르기까지 성실하게 살아왔다. 신 장로는 고향에 있는 초원교회 개척 멤버로서 교회당을 건축하기까지 충성을 다했고, 오늘의 모 교회는 아담하고 성도의 수도 3백여 명에 이르는 좋은 교회가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신 장로는 공직에서 물러나 고향 농촌에 적응하고 살기 위해 10년여 동안 농사일에 전념해 왔다. 그러다 농촌생활을 청산하고 66년 서울로 생활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서울에서 출석한 교회가 바로 서울영천교회(고신)였고, 이 교회에서 집사에서 장로까지 이르게 되었다.신 장로는 공무원생활과 농사일을 하다가 갑자기 서울에 오니 막연하기도 했지만 당장 할 일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어느 지인의 소개로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판매하면서 기업에 납품도 하여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여유가 생겼다. 교회 옆 아파트에 살면서 교회생활에 충실한 결과 서울영천교회 안수집사로 장립을 받고 이어서 1981년에는 장로로 임직하게 되었다. 그동안 교회생활에서 모범을 보였기 때문에 98세의 노년에도 성도들은 신 장로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있다.신 장로는 30년 전 소천한 윤태옥 권사와의 사이에 3남3녀를 두었다. 혼자가 된 후에도 신앙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신 장로의 직계 자녀손들은 무려 33명이나 되는 다복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장남 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신 장로는 교회와는 먼 거리에서 살고 있지만 교회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신 장로에게 가장 가슴 아프고 후회스러운 일은 고향 이천에서 평온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고 했으나 46세의 젊은 나이에 부면장에서 강제 해직된 일이라고 회고한다. 그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가슴이 아픈 일로 기억된다고 했다.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지금의 서울영천교회에서 장로가 되어 은퇴하기까지 살아온 것이 너무 감사하다”며 아무 후회와 욕심 없이 주님나라 갈 때까지 신앙생활에 전념하고자 한다고 했다.신 장로의 장남은 올 해 72세이며 장녀는 74세이니, 이들 자녀들도 도움과 효도를 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신 장로는 어쩌면 더 건강한 노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살고 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를 즐겨 부르면서 틈틈히 성경을 읽고 지낸다. 항상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남은 생을 주님께 맡기고 살겠다는 신 장로는 내년에 있을 100수 잔치는 서울영천교회의 경사로운 행사로 치러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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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앙으로 초대
    2017-06-01
  • 조병해 장로
    기독교회관과 CBS 사우회 사무실 출근 후배들과 친교시간 가져 조병해 장로(86세, 예장통합 소망교회 원로)는 평생동안 언론계에서 몸담고 살아왔지만 후회는 없고, 긍정적인 신앙으로 건강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저는 생활의 리듬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 914호(손정도 목사 기념사업회)와 광화문의 CBS 사우회 사무실을 오가면서 교계 장로님들과 후배들을 만나 담소하고 식사를 나누고 있어요.” 노년에도 조 장로는 아직도 꼿꼿한 걸음걸이에 건강에 아무 불편함이 없이 외출을 하고 있다고 한다.80년도 CBS 보도국장 시절 곽선희 목사를 만나 소망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부산과 대구 등 지방 근무로 인하여 88년 늦게 장로장립을 받았다. 그러나 그동안 조 장로는 그의 중심에 늘 목회자를 잘 섬기고 교회중심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지금도 함께 교회를 섬겼던 곽선희 목사와는 가끔씩 식사의 시간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조 장로는 경희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1959년에 KBS 아나운서로 출발하여 CBS에서 은퇴하기까지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에서 언론인으로서 온갖 경험을 다 겪어 왔다. 자유당 시절 3.15 부정선거, 4.19혁명, 5.16과 5.18에 이르는 국내 모든 정치변화를 현장에서 경험했다.조 장로가 근무했던 당시 CBS 방송국은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 있었고, 대주주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와 함께 80년 비상계엄령이 선포됐을 때에는 이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종로 5가는 민주화운동의 메카로 불렸다.조 장로는 4.19 이후 바로 CBS에서 아나운서 겸 기자로서 박정희 정권의 시작인 국가재건최고회의 출입기자로도 활동했다.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을 선포할 당시에는 CBS가 많은 탄압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총무국장을 맡아 방송국 살림을 꾸려 가느라 매우 힘들었던 시기도 있었다고 한다.조 장로는 CBS에서 아나운서 실장과 보도국장, 충무국장, 상무에 이르기까지 35년간 방송국에서 언론인으로 살아왔다. 언론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80년도 전두환 정권 때 언론통폐합을 통해 보도통제, 광고탄압 등을 통하여 고사(枯死) 작전이 진행될 때였다고 했다. 당시 신군부는 모든 언론사를 통폐합하면서 KBS와 MBC, 그리고 역사가 오랜 CBS는 마지못해 두었지만 지나친 탄압은 결국 방송국 운영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때 군부의 강제지시에 의하여 직원 136명을 데리고 KBS로 가야만 했지요. 그러나 결국 저는 한 달 만에 당시 이사장 유호준 목사님의 권유로 CBS에 다시 복귀했어요.”1972년 유신정권 때 일화로서 CBS 오재경 사장 때에 야당 대표의 유신반대 기자회견을 비밀리에 중계하여 논란이 되어 정보기관의 밀착 감시를 받기도 했다. “채플 시간에 ‘유신규탄’ 성명을 발표하여 당사자가 구속되기도 했지만 저는 그 현장에서 참 많은 탄압을 받았지요.”조 장로는 가장 보람있었던 일은 CBS 방송사상 처음으로 1963년 미국의 빅토리아 농구단이 방한하여 경기할 때 장충체육관에서 중계방송을 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 후로 아시안게임 농구중계와 88년 올림픽 때는 중계방송 단장을 맡았다고 한다.조 장로는 소망교회 성가대 베이스파트에서 80세가 될 때까지 봉사했다면서 음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게 많았다. 대구와 부산 등지에 근무하면서 조 장로의 노력으로 ‘대구장로합창단’, ‘부산장로합창단’ 등 합창단을 창단하여 지금까지 존속해 오고 있다. 본 교회에서도 소망교회 장로합창단, 소망교회 남성합창단을 창단했다.“저도 연합기관인 방송국에서 근무했지만 한국교회는 연합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지도자의 확실한 정체성이 부족하고 의식수준이 못 미치고 있어요.”라고 교계연합활동에 대해 비판했다.조 장로는 “새벽기도는 습관이 안 되면 할 수 없다”며 지금도 새벽 4시면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조 장로가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젊은 시절 배구선수로 활약했고, 테니스, 골프 등을 즐겨 한 탓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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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8
  • 서병하 장로
    성서공회 문서선교 봉사, 사랑의 쌀 본부기도회 참석 등 노익장 과시 서병하 장로(85세,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충무교회 원로)는 지금도 대한성서공회 문서선교 자원봉사자로 매일 출근하면서 성경보급 후원자 모집에 열심을 다하고 있다. 노년이지만 매주일 교단교회를 방문하여 성경보급을 위한 후원을 요청하는 일이다. 그게 쉽지는 않은 일이지만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서 장로는 교단 목회자들의 협조로 성과를 나타낸다고 한다. “하나님 은혜로 감당하지요. 교회를 교섭하는데 애로가 많지만 그런대로 잘해 나가고 있지요.” 그리고 매주 토요일 조찬으로 모이는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본부’ 예배에도 안 빠지고 참석하여 함께 기도하고 사역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서 장로는 기성 교단의 평신도 몫의 단체장을 두루 거친 교단의 지도자이다. 항상 겸손하게 목회자들과 동료들을 대하는 성격 때문에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날 교단과 교계에서 평신도 사역을 하면서도 비판적이거나 강한 자기주장을 내 세우지 않고 순리적인 방향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온 서 장로는 어느 누구를 만나도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서 장로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건강하지 못하면 할 수 없지요”라며 골프를 치거나 별 다른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서 장로는 고위 장교(해병 소령)로 오랜 군(軍)생활을 마치고 전역하여 충무교회에서 장로로 봉직하였고, 지금은 원로로서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새벽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무엇보다 조국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위해서 기도를 드린다.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라고 말하는 서 장로는 국가를 지켰던 군인으로서의 철저한 국가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서 장로는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너무 감사합니다. 함께 군 생활을 했던 동료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어요. 국립묘지에서 동기들이 가는 길을 바라볼 때마다 많이 울었지요.”라고 말하면서, 신앙인로서 술과 담배와 오락에 젖어 들지 않고 예수 믿고 찬송하고 기도하니 하나님은 건강을 지켜주신 것이라고 했다.서 장로는 기성교단에서 부총회장, 전국장로회 회장, 남전도회전국연합회 회장 등 평신도 대표 단체의 회장을 두로 거쳤고, 최근까지 교단산하 ‘사회사업유지재단’ 이사장을 맡아 교단 교회의 복지사업을 활성화 시켰다. 교단 소속 교회가 자체적으로 사회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복지관을 설립하며 운영하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추진했다. 교계 연합사역에도 사랑의쌀나누기운동본부 총무를 역임했고, 한국장로회총연합회 대표회장을 역임했다.서 장로는 교계 평신도 단체의 연합운동에 대하여서 “과거에는 CBMC(기독실업인회)나 다른 여러 단체를 운영하는데 모두가 자기 돈을 내고 활동했기 때문에 순수한 면이 있었지만, 지금은 명예를 앞세우고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면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옛날 같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라며 아쉬워 했다.그리고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저는 제2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는 지금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1남 녀를 둔 서 장로의 가정은 아들은 직장의 간부직에 있고, 딸 출가하였으며, 조윤자 권사(84세)와 단란하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노년이 되기까지 이렇게 부부가 해로(偕老)하면서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라고 말하며 늘 감사하고 있다고 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395장)’ 찬송가를 즐겨 부르고, 성구는 미가서 6장 8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는 것은 정의를 행하며 인자(仁慈)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를 좋아한다고 했다. <김형원 주필>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5-04
  • 김봉갑 장로
    교계의 여러 단체 전임회장 모임에 참석… 교제시간 가져 “일하면 젊어지고, 건강해진다”는 김봉갑 장로(80세, 예장고신 동부제일교회)는 노년의 나이에도 콘티넨탈무역(주) 대표로서 일본과 중국을 직접 오가면서 왕성하게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군 생활에서는 카츄사로 복무했고,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무역대학원을 나온 김 장로는 영어,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하다. 그의 분주한 일상을 살펴보면 일본에서 한 주간, 중국에서 한 주간, 국내에서 한 주간을 보내면서 상상할 수 없는 열정으로 아직도 열심히 뛰고 있다.“그동안 해온 수출업에 보람을 찾으면서 40년을 하나님의 은혜로 영위하고 있다”며, 모든 일을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그것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기도하면서 결정한다”고 말한다. 김 장로는 앞으로도 90세까지 계속해서 일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그동안 김 장로는 교단과 초교파 평신도단체 등에서 대표를 역임하였다. 부 총회장을 역임한 고신교단에서는 지금도 역대 부총회장 모임에 참석하고 있고,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단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여하면서 교제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도권장로회연합회 전 회장 모임에도 참석하여 후배들을 격려하고 친교의 시간을 갖는 것을 중요시 한다.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전 대표회장들의 친목모임인 ‘평경회’에도 참석하여 건강안부와 교제의 시간을 가진다.김 장로는 온유하고 겸손한 성격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어 함께하고 따르는 선후배가 많다. 누구에게나 듣기 싫은 말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격이다. 그러므로 그동안 맡아온 연합사역에도 모두가 함께 일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손해를 끼치는 일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서 신뢰를 받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일해 왔다.김 장로의 선한 양심과 헌신적인 믿음은 지금의 동부제일교회(서울 중랑구 동일로)를 개척하여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의 노력과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1973년 4월 양성우 목사를 담임으로 모시고 시작한 교회를 묵묵히 섬기면서 양 목사가 은퇴하기까지 교회 부지확장, 신축공사에 이르기 까지 교회를 책임있게 섬기며 헌신해 왔다.이처럼 김 장로는 목회자를 섬기는 열심이 뛰어나기 때문에 고신교단 목회자들도 김 장로를 높이 평가한다. 이는 김 장로의 신앙의 뿌리에서 찾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고향 진해 웅천교회(주기철 목사 기념교회) 주일학교 시절부터 주기철 목사의 “나는 온 천하를 다스림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겠노라”라는 고백을 기억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오늘의 한국교회의 평신도운동에 대해 김 장로는 “평신도 운동의 정통성과 정체성이 확실한 단체이지만, 사회적이나 국가적으로는 활동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교회 내적인 면에서는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한국교회는 연합사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하나 되는 일’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김 장로는 부산의 제3영도교회 교사였던 석영자(권사)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을 두었다. 장녀는 일본에서 결혼하여 살고 있으며, 장남과 차남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김 장로의 가정은 겸손, 순종, 화평을 가훈으로 삼고 경건한 가정을 지키고 있다.성경말씀 중에서 특히 로마서를 즐겨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신앙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운동은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건강을 위해서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으로 곤봉과 아령을 즐겨 하고 있다고 한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4-20
  • 김사철 장로
    계간지 ‘안개꽃 세상’발행 등 문학 통한 전도활동에 심취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한지협) 초대회장 김사철 장로(81세, 기침 월드비전교회)는 지금도 거의 매일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한지협 사무실에 나와 여러 가지 자문을 하면서 회원들과 만나 친교를 나누고 있다.한국교회 평신도운동에 40여 년간 진력해 온 김 장로는 평신도단체 여러 곳에서 실력있는 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평신도행사에서는 김 장로의 차분하고 지적인 능력이 발휘되어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밤, 평신도지도자포럼,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회 등등 각종 행사에서 중심역할을 감당해 왔다.한지협을 창립하는 과정에서도 김 장로의 세심한 조직과 계획으로 역할이 컸고, 초대회장을 맡아 한지협을 교계에 알리며 매우 활발하게 이끌어 갔다. 교단을 초월하여 참여하고 있는 한지협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연합과 일치, 교회 갱신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논평과 메시지를 발표 하는 등 교계에서 한지협이 주목 받는 단체로 이끄는데 가장 큰 역활을 감당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한지협이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조언하고 있다.김 장로는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틈틈이 쓴 시를 모아 시집을 4권(들꽃 한 송이, 아름다운 출발, 바람의 소원, 풀꽃의 노래)이나 출간할 정도로 기독교 문단에 알려진 중견 작가이기도 하다.상록수문학회 대표회장을 역임한 김 장로는 지금도 문학에 대한 동경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최근에는 「안개꽃 세상」이라는 소책자를 계간으로 발행하여 군부대, 경찰, 교도소 등에 보내면서 열정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창조문예, 장로문학, 상록수 문학 등 순수 문학지에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를 하고 있으며, 국민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김 장로는 노년에도 교계단체 행사에서 참석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교회가 연합하고 하나 되는데 앞장서 왔으며, 특별히 연합사역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평신운동이 약화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지금은 평신도 단체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장로는 “평신도운동을 전개할 재정적인 여건도 그렇고, 평신도단체가 바른 말을 못하는 것은 교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김 장로는 원만한 대인관계로 동료들과 후배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고, 그동안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창립벱버로서 부회장과 침례교단의 전국적인 단체의 회장을 고루 거쳤기 때문에 지면(知面)이 넓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찬송가의 난립으로 어렵게 되었을 때에 김 장로는 평신도단체의 임원으로서 찬송가 통일작업에 깊이 간여하였고 산파 역할을 하여 성사시킨 일은 김 장로의 숨은 공로로 남아 있다.김 장로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278장이다. 어쩌면 이 찬송도 연합과 일치를 모색하는 사랑을 강조한 찬송이다. 마음에 깊이 간직한 성구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편 1절이라고 한다.가족은 부인과 3남 1녀로서 장남은 목사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차남은 의사, 3남은 직장인으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매일 종로 5가에 나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그리고 시간 틈틈이 근처 야산을 산책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 장로가 매일같이 기도하는 제목은 자녀들과 가족이 화평하고 건강하며 한국교회가 연합하고 일치하여 하나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4-14
  • “지금도 나에게 이야기 해 달라고 청하니 행복하다”
    독서의 열정으로 어린이를 위한 책 10권 더 집필 하고파 대한기독교서회 전 이사장 엄문용 장로(아현감리교회, 82세)는 노년을 맞은 지금도 할 일이 많아 분주하고 행복하다고 한다. 엄 장로는 하루 성경 2장을 읽고, 한 주 동안 2권의 책을 읽는 등 독서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생활한다. 최근에 접하고 있는 도서는 △도마와 아시아 교회(이용봉 저), △당신이 한 것 맞습니까?(구장회 저), 그리고 3월호 월간문학 등을 읽었다고 한다. “책은 나를 가르치고 있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대로이다.아동문학가이기도 한 엄 장로는 지금까지 150여 권의 책을 집필했고, 앞으로도 어린이를 위한 책을 10권 정도 더 집필하고 싶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90세까지만 연장시켜 주신다면 이러한 계획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엄 장로는 신문사, 잡지사, 등에서 지금도 원고 청탁이 오니 행복하다고 한다.엄 장로는 “아직도 나를 오라고 부르는 데가 있어서 바쁘다”면서 본인이 맡아왔던 단체와 모임 등에서 초청이 많다고 한다. 전국교회학교연합회 증경회장단, 보이스카우트 교수 및 원로모임, 감리교단 연회와 장로회, 장로문인회, 교육자선교회 원로모임과 교직생활 65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의 모임 등 전국교회 특별행사의 초청에 응하기가 너무 바쁘기만 하다. 이는 엄 장로의 화려하고 다양한 경력 때문일 것이다.무엇보다 엄 장로는 “성경을 배우는 것이 재미있고, 성경공부가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며, 한국교역자선교회에서 주관하는 성경강좌를 비롯하여 교회와 지방, 연회와 단체 등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곳에는 가급적 배우러 다닌다고 한다.엄 장로는 교육학 박사로서 그의 다양한 경력이 말해 주는 대로 각종 행사와 모임에 강사로 초청받아 그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지금도 나에게 와서 이야기 하라고 하니 행복합니다.” 실버대학 강사, 교회에서는 제직훈련, 행복한 가정운동과 자녀교육 등 제자들이 시무하는 교회의 설교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에서 초청을 받고 있다.미국에 본교를 두고 있는 미드웨스트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였고, 배재고등학교 등 교직에서 65년동안 후학을 양성해 온 풍부한 교육경험이 오늘날 노년을 맞은 엄 장로에게 행복한 여유를 가지게 한다. 뿐만 아니라, 교단과 교계에서 시행되는 각종 행사에 격려사, 추천사, 환영사, 조사, 추도사 등도 자주 부탁을 받는다.엄 장로는 찬송가 412장을 즐겨 부르고, 누가복음 13장 33절의 성구를 좋아한다면서 시간이 있는 대로 손자손녀들과 화목한 여유를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를 부르면서 뛰어 달려오는 귀여운 손자손녀는 자기들이 만든 선물을 가져와 애교를 부릴 때마다 가족의 행복함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손자손녀들과 자장면이라도 같이 먹는 시간이 나에게는 좋은 에너지원이 된다”고 말했다.틈틈이 같이 일했던 사람들(기독교방송 이사, 강남대학교 재단이사, 대한기독교서회 이사장, 우원기념사업회 이사, 영명고등학교 이사, 감리교 본부와 총회실행위원, 한국찬송가공회 회장 등)과의 즐거운 교우관계를 가지면서 지난날을 회상하고 있다.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엄 장로가 바라는 교회상은 ‘화평’과 ‘사랑’이다. 교회는 겸손하고 관용하는 자세와 화평이 있어야 하고, 언제나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주는 성도의 친교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엄 장로는 교계를 향한 우려와 충고를 하면서, 종교개혁500주년을 맞이하여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한사람 한사람이 작은 일부터 솔선해 나간다면 교회와 교계가 새롭게 될 것이라 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4-01
  • ◆ 어떻게 지내십니까?
    각종 단체 상임고문 맡아 왕성한 활동등산과 걷기운동으로 노익장 과시하며 건강한 생활 유지 제재형 장로(83세, 예장통합 충신교회)는 제15대 사단법인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맡아 창립30주년 행사 등을 치렀다. 화려한 경력과 왕성한 활동으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제 장로는 지난 수년 간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던지고, 더욱 건강한 모습이다.“내가 이렇게 더 건강하게 된 비결을 많은 지인들이 물어 오는데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며, “등산과 걷기가 건강을 유지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학교 동창회 모임과 충신교회 교우들과 함께 등산을 하는데 건강이 확연히 좋아졌다며 ‘땀을 흘려야’ 건강이 유지된다고 말한다.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고사성어를 좋아하는 제 장로는 골프를 치지 않지만 산과 물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검은 머리가 새로 나오고, 아픈 허리가 수술 없이 좋아졌고, 눈이 밝아졌다고 자랑한다. 제 장로는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니 기적이 일어났다.”고 그의 좌우명을 말해 준다.요즘에는 각종단체(건국기념사업회,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 사단법인 장영실기념사업회, 대한민국무궁화회중앙회, 국민운동본부, 4월혁명선양회, 한국일보사우회, 고려대장로회, 경남도민회 원로회장 등)에서 현역대표 또는 상임고문이나 고문을 맡아 대외협력이나 홍보에 자문을 하면서 분주하게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건국대통령기념사업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업추진에 심혈을 기우리고 있다.제 장로는 창립 된지 37년 되는 ‘한국성서연구회’ 창립멤버로서 매주토요일 조찬성경공부에도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 본 교회(충신교회)에서는 지금도 평신도 성경공부에 참석하고 있으며, 원로남선교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장로신문과 평신도신문에도 논설위원으로 글을 게재하면서 노년에도 교단과 교회에서 매우 열정적인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제 장로는 고려대학교 정치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일보에 기자로 입사하여 평생 언론에 헌신한 언론인이다. 한국일보 기자시절에는 ‘율사기자’로서 명성을 얻을 정도로 국회법과 선거법을 다루는데 현명한 기자역할을 하였다.예장통합 교단의 평신도대학원, 장로교육원, 리더십아카데미 등을 졸업했고, 미국의 프린스톤신학교에서 수학했다. 제 장로의 이러한 경력이 말해 주는 대로 남선교회전국연합회에서는 규칙부장을 맡아 회칙, 규정, 세칙, 규약, 정관 등을 완벽하게 손질하여 그 공로를 인정하고 남선교회 최고의 표창인 ‘무궁화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제 장로는 무엇보다 모든 모임이나 일들에 구분 없이 적극참여해 주는 것이 후배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것이라고도 한다. 젊은 날 자신이 회장이나 대표를 맡아 일해 왔던 경험에서 회원 한 사람이 참여해 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제 장로는 남다른 교육열이 있어 전 가족 석사(碩士) 이상 학위를 목표한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했다. 제성호 교수(중앙대), 제원호 교수(서울대), 제강호 변호사(국제변호사), 제민호 회장(이수홀딩스)등 뿐 아니라 자부들도 석 박사 학위 소지자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온화한 성품과 친화력이 넘치는 제 장로는 인간관계가 원만하기 때문에 따르고, 도와주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남을 험담하거나 업신여기고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기도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을 아무도 당하지 못한다고 말한다.제 장로는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없고, 주춧돌이 될 만한 인물을 많이 길러 내야 한다.”고 말했다. 제 장로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교회인데 교회를 세습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3-23
  • “깨끗하고 정직해야 하나님은 부어주신다”
    인터뷰/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 대표회장 원 종 문 목사-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는 제7회 정기총회에서 원종문 목사(열린교회 원로, 열린복지랜드 이사장)를 대표회장에 선출했다. 이에 원 목사를 만나 그의 의욕적인 계획들을 들어 보았다. ‘나부터 깨끗하자’는 슬로건으로 출발한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는 회원들의 참여폭을 젊은 층으로 확대하고 한국교회부터 정화되고 새롭게 하자는 운동을 전개하는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대표회장 취임에 대한 소감은…앞서 훌륭하신 분들이 대표회장을 역임하셨는데 부족한 제가 큰 책임을 맡아 어깨가 무겁습니다. 우리 기독시민운동협의회는 이름 그대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시민운동’입니다. 오랜 기간동안 시행해 오던 ‘골목청소 봉사활동’을 비롯하여 시민들과 교회 성도들에게 다가가는 봉사활동을 해 왔습니다.무엇보다 참여회원들이 더 젊어지는 방향으로 참여 폭을 넓혀 나가려 합니다. 사실 우리 시민운동협은 참 좋은 단체입니다. 여러 가지 사업을 제대로 시행하면 매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구체적인 사업계획은?△‘나부터 깨끗하자’ 운동 전개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깨끗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 하나부터 깨끗하게 살면 나와 또 다른 나로 이어지는 이 운동은 모두가 깨끗해지는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나부터 깨끗하자’는 운동은 일찍이 오산학교의 도산 안창호 선생이 펼친 운동입니다. ‘나부터 깨끗하자’는 운동은 곧 성경으로 돌아가는 운동입니다.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 이 시대에 시급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앞으로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이 운동을 시민운동으로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모든 모임과 행사 때마다 어깨띠를 제작하여 두르고 나설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지도자들의 ‘품성과 리더십 바로세우기’운동 차원에서 접근, 영성훈련을 통한 코칭아카데미를 설립할 계확입니다. 무엇보다 이 운동은 교회가 협력하고 앞장서야 합니다.△출산 장려 운동 확산저출산은 국가적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있습니다. 매년 30만 명이나 줄어드는 인구 절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이제는 교회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평신도 지도자들의 자녀들이 앞장서서 이 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고학력자들과 좋은 직장인, 연예인, 방송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출산을 기피하지 말고 솔선수범하여야 합니다. 실제로 아기를 출산하는 자들에게 특별 우대하는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대형교회는 어린이집, 육아시설을 많이 만들어 마음 놓고 아기를 맡기고 직장을 다닐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가 생산되는데 적극 투자해야 합니다. 주일학교가 없어지게 되는데 교회가 무관심하고 있어서 되겠습니까? 저출산의 문제의식을 교회는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독려하는 것이 성장하고 부흥하는 길입니다. 아기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 젊은이들이 교회야 말로 마음 놓고 올 수 있도록 투자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출산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그리고 이혼을 하는 사람은 취업을 제한해야 합니다. 방송인 연예인 등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도 당연한 것처럼 얼굴 들고 나와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이야 말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고, 도덕성과 윤리성에 제일 앞장서야 할 사람들입니다.△통일기도 운동 계속저는 백두산 기도회를 반대합니다. 한국교회가 백두산에만 가서 기도회 열지 말고 국내에서 서해 또는 백령도나 북한이 바라보이는 판문점에서 열어야 합니다. 왜 중국 사람들 먹여 살릴 일 있습니까. 통일기도회는 우리들이 기도해야 할 일 중에 매우 중요한 사명입니다. 정기적인 기도회는 계속하면서 지역별로 기도회를 열고, 각 교회를 순방하면서 기도회를 개최하려고 합니다. 기도하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목회와 복지사업에 대한 사명열린교회는 저의 아내가 당회장이고 저는 원로목사로 있습니다. 25년째 복지사업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지금의 가평에 건물 짓고 자리 잡는데 많은 예산이 들었고 10여 년이 걸렸습니다. 주거복지시설, 의료복지시설, 목회자쉼터, 힐링하우스, 유료복지시설 등을 갖춘 종합복지타운입니다. 종합복지타운에는 저소득층 기초생활자는 모든 비용이 무료이고, 기타 인원은 실비를 받는 유료입니다.제가 꿈을 가지고 사회사업을 하면서 실패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전적으로 희생하고 헌신봉사할 때 모든 것을 채워 주셨지요. 내가 손을 벌리지 않아도 그때 그때 사람을 보내 주셨지요.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 주신것처럼 그분을 믿고 갈때에 하나님은 주셨습니다. 나눔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모든 일은 이루시는 분이지요. 그 뜻을 따라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노력하고 있습니다.-연합단체에는 어떻게 참여하고 계신지…저는 예장 통합피어선총회 총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 대표회장을 비롯하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총동문회장, 통일연합종교포럼 법인이사 겸 총재, 세계한인기독교총연합회 상임회장, 한국교회연합 공동회장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합단체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은 제일 중요한 것이 주어진 직책에 걸맞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회비나 부담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회의와 행사에 적극 참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계획은 …지금의 열린복지랜드와 함께 청소년문화센터를 건립하여 운영하려고 합니다. 청소년과 어르신을 연결하는 성경적 도덕관을 심어주고 정립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는 청소년을 잘 키우고 교육시키는데 있습니다. 앞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기회가 되는 대로 교계연합과 통일선교를 위해 남은 여생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독시민운동은 좌도 우도 아니고 하나님중심, 기독교정신으로 임기동안 운영해 나갈 것입니다.-한국교회에 바라는 것은교회가 교회답게 바로 서야 하고 단체들은 먼저 내가 헌신 희생하는 가운데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한국교회 연합단체들은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잘 지키면서 연합하고, 일치운동하고, 갱신운동을 펼쳐 나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이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분열은 사탄의 장난입니다. 연합단체가 하나 되어서 한국교회의 힘과 역량과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의 연합을 이루고자 한다면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이 모두에게 필요한 것입니다.연합사역을 하면서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 겸손하게 자기위치를 잘 지켜 나간다면 많은 사람들이 추대하고 앞세워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선거 과열이나 부정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겠지요.-교계언론에도 한말씀특히 교계언론은 올바르게 판단하고 정확하게 보도해야 합니다. 절대로 치우치지 말고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해야 합니다. 기독언론은 언제나 교회의 어두운 면보다는 밝은 면을,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나가야 합니다. 물론 열악한 경영환경이 문제지만 교계언로으로서의 사명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많은 언론사들이 난립해 있는데 좀 통폐합이나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형원 주필>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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