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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담] 열린 지성 김남준 목사가 말하는 신학과 신앙
    한국교회 대표적인 지성으로 손꼽히는 김남준 목사(열린교회)가 한때 스스로 무신론자였음을 고백했다. 중학교 1학년 즈음 인간으로서의 삶의 이유와 신의 존재에 대해 깊은 방황을 반복하다 결국 무신론의 길을 택했던 김 목사는 지금은 한국교회를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신학자이자 목회자, 저술가로서 우뚝섰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를 떠난 적이 없던 그가 방황해야 했던 이유, 그리고 그를 다시 자신의 품으로 불러들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김남준 목사는 오늘날 방황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담아 진심어린 조언을 펼쳤다. 김 목사는 지난 8월 26일 자신이 시무하는 경기도 안양 열린교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과거와 현재, 목회와 신학, 저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남준 목사 “나는 무신론자였다” 김남준 목사는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대뜸 스스로 무신론자였음을 밝혔다. 루터와 칼빈 등의 종교개혁자부터 존 오웬 등의 신학을 연구하는 이 시대의 기독 지성인에게 무신론자라는 과거는 쉽게 상상키 어려운 말이었다. 김 목사는 “갓난 아기시절 기어다닐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늘 마음에 존재하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었다”면서 “나는 그 해답을 교회에서 찾지 못했고, 스스로 무신론자로 살 것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하나님을 떠난 그가 손에 쥔 것을 책이었다. 6년간 미친 듯이 문학에 빠져 지냈다. 김 목사는 “책을 통해 상당한 위로를 받았다. 책 속에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더라”면서 “허나 그 위로가 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문학은 질문만 할 뿐 답을 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후 사상과 철학 등도 섭렵했지만 마음의 안식을 얻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던 중 만난 책이 바로 톨스토이의 ‘인생론’과 ‘부활’이었다. 그는 “이 두 권을 읽으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안식을 느꼈다”며 “그렇게 전도하는 사람 없이 스스로 교회에 나가서 예수를 믿게 됐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사실 나는 이렇게 교회를 크게 키우고, 어떠한 비전을 이뤄야겠다는 목표가 없었다.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된 후 스스로의 신학에 커다란 전환점이 생겼을 뿐이다”면서 “하나님은 한 사람의 목회자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환경을 겪게 하신다. 그 경험을 통해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해결을 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고 전했다. 다음은 김남준 목사와의 대담 내용이다. Q. 한국교회의 다음세대에 대한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다음세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가정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모든 인간은 가정에서 양육된다. 가정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두 번째는 회심이다. 지금은 이 단어가 많이 사라졌지만,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는 것은 신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다. 결국 영혼이 변화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성경과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모든 세계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고 통치되고 있다는 것을 지식의 습득을 통해 스스로 깨닫게 해줘야 한다. Q. 교회 내 세대 간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는데? 사실 세대간의 간극이 있는 것이 결코 이상한 것은 아니다. 매우 자연스럽다. 우리가 앞세대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듯이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다음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다만 그 격차와 간극을 강조하기 보다, 주님 앞에 함께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사고방식이 다르더라도 주님을 깊이 만나, 하나님 말씀 안에서 서로가 소통한다면, 이해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Q. 올바른 교회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세상에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게 하기 위함이다. 허나 잘못된 교회는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스스로를 잘 보이려 노력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에 하나님을 드러내는 방법은 빛과 소금으로 비견되는 사상과 윤리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말해 주고 있다. 그렇게 사상과 윤리를 하나로 묶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세상에 정확하게 그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Q. 목사님이 과거에 ‘답’을 찾지 못해 무신론에 들어섰듯이, 교회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 교회는 어떠한 답을 줘야 하는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이들의 신앙이 마음에서 우러 나온 것이 아닌 주입된 신앙이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신앙적 고백이 온전히 자기 고백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저 주입식 고백이 아닌, 세상을 향한 웅장한 고백이 될 수 있게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복음의 진수를 깊이 경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필요한게 아니다. 비록 적은 지식일지라도 마음 깊이 받아들이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다. 구원에 대한 이해도 깊이 필요하다. 구원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눈을 열어 준다. 교회에서는 이를 위해 반드시 교리 교육을 해야 한다. 스스로 생각을 하게 하고, 인간과 신을 이해하게 하는 작업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Q. 한국교회 신학적 수준에 대한 이견이 많다. 과연 한국교회는 폭발적 성장 만큼이나 그 수준도 성장했는가? 먼저 그 기준이 무엇인지가 중요하다. 신학이 복잡하고 세밀한 부분에 대한 얼개라고 한다면 단연 한국 신학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볼 때 현대 신학 자체가 점차 후퇴하고 있다는 측면이 있다. 현대 신학은 과거에 비해 매우 세밀화, 분과화 되고 있는데, 이것이 학제들간의 심각한 괴리를 낳았고, 결국 유기적인 발전을 이루는데 실패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세분화가 심해지다 보니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교회에는 다른 세계 신학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독특함이 있다. 비록 한국교회가 쇠퇴하고 있따고 하지만, 기성 기독교 국가 중 이만큼 교회르 사랑하고, 충성스러우며, 기도생활을 충실히 하는 교회 역시 드문 것이 사실이다. 그런면에서 한국은 여전히 신학을 사랑하는 나라다. Q. 목회자(신학생)의 학습관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쉽게 길러낸 목회자는 그만큼 교회에 큰 부담을 준다. 과거의 목회자는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 그만큼 과정이 까다로웠고, 어려웠다. 결코 아무나 소화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목회자들이 깊은 고민없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20세기 이후다. 만약 설교에 감동은 있지만, 그저 그 감동이 TV 아침 프로그램의 감동과 별반 다를게 없다면 과연 이것은 좋은 설교인가? 설교에는 기독교만이 줄 수 있는 고유의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결국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 목회자가 되기 전에 충분히 훈련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목숨을 걸고 목회를 배우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목회는 현저히 다르다. 그런 면에서 신학생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강도 높은 목회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삶의 주요 키워드를 꼽는다면? 매순간 조금씩 달라지지만 지금 내안에는 실존, 진리, 은혜, 타의, 행복라는 말이 가득하다. 실존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명제이며, 진리를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해명을 준다. 은혜 없이는 진리를 누릴 수 없으며, 이 모두를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리고 있다. Q. 열린교회의 양육방식은 어떠한가? 열린교회는 교리 중심의 교육을 한다. 흔히 교리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한데, 사실은 교리를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모든 신앙적 가르침이 매우 쉽게 받아들여진다. 교리를 가르치면 사람들이 어려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갖지만 사실을 그렇지 않다. 우리교회에서는 교리반(12주)을 수료치 않으면 서리집사 외 임직을 할 수 없으며, 구역장, 교사 등도 맡을 수 없다. 교리반 과정은 1시간 30분씩 총 12번을 진행하며,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러 85점 이상이 나와야 자격증을 쥐어 준다. 약 300여명이 이상이 매번 본 과정에 참여하며, 이미 자격증을 받았더라도, 공부를 위해 재차 과정에 참여하는 이들도 상당수가 있다. Q. 명성교회로 대표되는 한국교회의 세습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세습에 대해 단 한번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없다. 세습이 특권으로 비춰지고 있는 현실에서 굳이 그런 비난을 감수하면서 굳이 그 교회를 자기 자녀에게 물려줘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아들이 있지만 한 번도 비슷한 생각도 해 본적이 없다.(김 목사의 아들 역시 목사다) 당장 내일이라도 세습에 뜻이 없다는 것을 공표하라면 할 수 있다. 아들은 내가 낳아서 둥지에서 기르기는 했으나, 이제 떠나서 자유롭게 세상을 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나? 혹여 성도들이 아들을 담임으로 원한다 해도 내가 철저히 반대다. 순전히 실력에 의한 청빙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우리교회에 올 필요가 더 없지 않나? 못난 나도 이만큼이나 왔는데 실력이 좋다면 어디 가서든 못하겠나? Q. 앞으로의 계획은? 여태까지 책을 한 80여권 쓴 것 같다. 그저 하나님의 소명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책을 한 5권 정도 동시에 집필하고 있는데 조만간 2권 정도가 완성될 것 같다. 특히 요즘 ‘마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이 읽으면, 공감이 가는 책을 집필하고 싶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9-08-2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11
    솔직히 천지 창조의 비밀이나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필자는 잘 모르겠다. 다만 복음을 기술한 집필가들의 기록을 신뢰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만약에 그들의 기록이 허구라면 나는 과감하게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본성 뿐만 아니라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본성에는 분명히 실재-진리라고 가정된 세계-를 이해할 만한 안목이 내장되어 있었다. 인간에게 사랑·미움·겸손·교만·배려·질투·의·불의·선·악·미·추·진실·거짓 등을 만드신 이는 절대자이지, 어떠한 생물이나 광물일 수가 없다. 나는 요즘 일상 생활을 하면서 신기하고도 오묘하게 작용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력하나마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성령이 주시는 축복이다.그분이 나에게 주신 축복은, 내가 대학 교수가 되어 위대한 학문적 업적을 이룬다거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세계 곳곳에 명강연을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성령이 나로 하여금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하게 하셨다. 집안 일을 하면서 외손자를 돌보고 속회의 속도원들을 배려하는 데에서 한없는 기쁨의 심정을 느끼는 것은, 분명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 본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축복을 미시건주의 한 마을 앤아버에서 감지하였다. 250여 명이 모이는 작은 교회였는데, 그 교회의 속장인 천집사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카톡방에 초대하고는 그곳 교회 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는 두세 달에 한 번씩 있는 속회 주관 주일 점심 접대 시간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교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부족한 것이 없냐면서 양푼에 담은 볶음밥을 조금씩 더 나누어 주었으며, 주일 오후에 있는 속회 모임 시간에는 커피 전문점에서 속도원들에게 다과를 대접하면서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고, 금요 예배 전의 토론 시간에는 속도원들의 간증을 겸손하게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에는 직접 숙소에 찾아와 케이크와 과일들을 내놓으면서 다음에는 6개월 관광 비자를 받아 더 오래 머물다 가라는 말을 하며 아쉬워하였다. 알고 보니 그는 미시건 주가 아닌 오하이오 주에서 대학 교수 생활을 하면서도 주일에는 고속 도로를 두 시간 이상 주행하면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의 배려가 그 교회의 박목사의 섬김과 배려에서 흘러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목사는 내가 미국 교통 법규를 잘 몰라 운전하기를 곤란해 하자 직접 나를 숙소에까지 라이딩해 주었으며, 미국에 잠깐 들른 교인들을 위한 초청 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주었고, 나에게 식사를 대접할 기회를 달라며 친구처럼 배려하였다. 그는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교인들을 일일이 섬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는 성직자라 해서 교인들에게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을 섬김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배우려 하였다. 그리고 내가 귀국할 때에는 내가 다시 그곳에 올 것이므로 “송별”이란 말을 쓰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내가 그들에게서 배운 것은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마음이었다. 그들의 섬김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가난한 자·병든 자·소외된 자를 배려하신 주님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의 과정을 겪은 후에도 자신을 배반하고 떠난 제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시 사신 모습을 직접 보여 주셨다. 이를 목격한 제자들은 오순절날 성령의 은혜를 받고 로마와 아프리카와 인도에까지 지경을 넓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다. 또한 사도들은 음식·결혼 등의 유대 율법을 넘어서서 성령이 인도하심과 부활을 증거하며, 귀족과 노예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게 음식을 나누고 섬기는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 정권이 다신교와 황제 숭배 등을 주장하자 강한 저항을 하여 로마 제국의 핍박을 받아 이스라엘을 떠나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가는 곳마다 유대교 집회를 가졌다. 이에 사도들은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 교회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지경을 넓혀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성령이 임재하심과 재림 등을 전하였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중시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대교와는 구별된, 기독교 교리를 전파하였다. 유대교와의 큰 갈등 가운데 하나는 음식 문화였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시중에 이방신에게 제사하고 남은 음식들이 뒷거래 되는 것이 많다며, 유대교 율법에 따른 음식만을 섭취해야 하며 이방인과 함께 식사해서는 안 된다는 율법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일반 서민들은 고기 등이 이방신 제사에 사용된 것인가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A.D 49년에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들이 모인 가운데 예루살렘 회의가 열렸다. 안디옥 교회 등에서 이와 같은 갈등을 직접 목격한 바울은 율법보다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를 것을 주장하였던 것 같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8-22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10
    『마태복음』25:14-30에는 달란트 비유가 나온다. 주인이 타국에 갈 때에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다. 세 사람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종들과 결산하였다. 결과물을 보고 주인은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칭찬하였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말하였다. 두 달란트 남긴 자에게도 이와 같이 말하였다.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자에게는 책망하였다. 그 구체적인 조치는 다음과 같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태복음』25:26-30)이는 달란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자에 대한 처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달란트는 구약에 나오는 유대 왕국에서 무게를 재는 단위를 나타낼 때, 1달란트는 약 34.4킬로그램이었다. 그리스 혹 아테네의 한 달란트는 26kg, 로마의 한 달란트는 32.3kg, 이집트의 한 달란트는 27kg 그리고 바벨론의 한 달란트는 30.3kg이었다. 신약시대에 사용된 무거운 달란트는 58.9kg이었다. 신약에서는 화폐의 단위를 나타내기도 하였는데, 1달란트는 당시 일반 봉급 생활자의 26년 이상의 봉급 총액에 해당하는 매우 큰 돈이었다. 그러므로 이만큼 많은 돈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각기 달란트를 주었는데, 그것이 작지 아니함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달란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을 때 한 달란트를 그대로 둔 자에게 내린 처벌과 같은 평가가 내려질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자신에게 내려 주신 달란트를 제대로 알고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나의 아버지에게도 달란트가 있었다. 물론 아버지에게 세상적인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제 식민지 현실에서 농업 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뜻이 있어 사범학교를 나올 정도로 두뇌가 좋았다거나, 42년 동안 줄곧 일기를 써 올 정도로 글재주가 있다는 것은 그냥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대단함을 느끼는 것은 평생토록 집 한 채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아버지는 42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청산한 후 마련한 퇴직금을 사기꾼에게 다 날렸을 때에도, 당신은 집을 팔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가족들은 어느 정도의 가난을 감수하여야 했다. 나 역시 그로 인해 옷을 마음껏 골라 사 입을 수 없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아버지는 당신의 집을 팔고 남의 집에 전세로 들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가 임종시까지 지킨 것은 당신의 집이었다. 나의 손윗 형은 형제들 중에서도 비교적 잘 사는 편이었다. 은행에서 외환 딜러로 일하면서 미국과 중국 등 가족들과 외국 생활을 주로 하는 편이었다. 그 형이 국내로 들어와 있을 때 매형의 사업을 돕느라 청동 장식을 만들어 파는 K회사를 알게 되었다. K회사의 대표인 장사장이 형을 꼬드겼다. 사채 이자를 높이 쳐서 줄 테니 돈을 꿔 달라는 것이었다. 형은 그 회사의 재무 구조를 어느 정도 알기에 집을 근저당 설정하여 장사장에게 돈을 꾸어 주었다. 장사장은 고맙다며 형에게 연리 13%의 높은 이자를 매 달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로 인해 형은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형이 K회사에 돈을 빌려 준 지 불과 2년이 안 되어 그 회사는 망해 버리고 장사장은 외국으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이 때문에 형네 집은 불시에 경매에 부쳐지게 되고, 불과 몇 달이 못 가 자신의 집을 다른 사람에게 내 주어야 했다. 형이 비통과 절망감에 허덕일 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집에 들어와라.” 형은 자존심을 구긴 채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왔고, 삼년 동안 근검 절약하며 재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와 산 지 삼 년 후 형은 W은행 미국 로스앤젤레스 지점으로 발령이 나서 가족들과 함께 떠나갔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8-0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8
    "백성들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사무엘상』4:3-4)엘리 제사장 때 이스라엘이 블레셋(오늘날의 팔레스타인)과 싸울 때의 일이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 “사천 명 가량”이 죽자, 이스라엘 장로들이 실로에 있는 여호와의 법궤를 가져다가 진중에 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고 만다.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린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다”(『사무엘상』4:10-11). 그들은 여호와의 법궤를 우상처럼 섬겼고, 하나님을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려 하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마치 자신들의 종처럼 다루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종처럼 다루어질 분이 아니다. 하나님을 경시한 결과는 처절한 패배로 끝날 뿐만 아니라, 백성의 지도자까치 처참하게 죽는 결과를 가져왔다.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었을 뿐만 아니라, 엘리도 아들의 죽음 소식을 듣고 놀라 의자가 뒤로 넘어지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던 여호와의 법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아이 이름을 ‘이가봇’(“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의미)이라 이름 짓고는 세상을 떠났다. 이와 같은 사실이 다만 과거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그 실상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것을 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이다. 요즈음 일부 교계 지도자들의 반목과 질시, 성직자들의 입바른 소리만 하고 구체적인 실천이 없는 설교, 교인들의 일탈된 행동 등은 바로 블레셋 군대 앞에 선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심지어 어떤 이는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성경책만 가지고 있으면 해악이 미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므로 현대의 교인들은 여호와의 법궤에 담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너리즘에 빠져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행동하는 것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한때 주님이 박사학위를 받게 해 주셨으니, 대학 교수직을 가지는 것도 주님이 인도해 주시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것이 여호와의 법궤를 우상처럼 섬기는 매너리즘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노력하면 이루어질 것 같던 소망이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개인의 자존감을 상실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이 ‘대학 교수직’을 우상화한 데서 온 필연의 결과였다. 이 때문에 나는 수많은 세월 동안 좌절의 고배를 마시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너무 한 곳에만 경직되어 살아온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상대방의 부조리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온 나에게 삶의 방향을 전환하게 하는 비등점이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우상화시켰던 ‘여호와의 법궤’를 반성하며, 나의 능력에 대하여 객관적인 검증을 해 나갔다. 나 자신 학문 연구를 게을리하지는 않았는가, 인간 관계에 소홀한 점이 없었는가, 너무 절망에만 사로잡혀 있지는 않았는가 등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하였다. 그러자 나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는 가족과 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서 무얼 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그들을 위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에게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였고, 딸네 집에서는 가사 노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아들의 취업을 위해서 진심어린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대화가 없던 가정에 대화와 웃음이 생겨났고, 가족간에 신뢰가 형성되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의 눈의 티끌은 보고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일부 교계 지도자들이 그러하고, 정치인들이 그러하며, 조직 내에서의 개인과 개인이 그러하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존감에 빠져 진정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내 탓이오’라고 외치며 내 안의 들보를 걷어내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할 때 우리 사회에 더욱더 건강한 인간 관계가 형성되고,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에 살 맛 나는 인간미가 살아날 것이다. 나를 긍정적으로 개조할 때에 내가 비판하던 상대도 변화될 것이다. 이 순간 내가 교회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주님이 나를 통하여 이루실 일을 잊지 않았는지 점검하여 볼 일이다. 내 탓이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7-0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7
    정릉에는 백악(白岳)의 줄기가 뻗어나와 산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곳이 있다. 그 봉우리의 분지에는 K대학과 D외국어고등학교가 자리잡았고, 그곳 능선의 한 끝에 슬레트 지붕을 한 양옥 한 채가 올망졸망한 집들 사이에서 조금 높이 솟아 있었다. 그 집은 삼십여 미터쯤 되는 긴 골목길의 막다른 곳에 있었다. 어머니는 아침에 그가 출근할 때마다 밀레의 「만종」에 나오는 여인처럼 기도하였다. ‘주여! 우리 아들이 가파른 골목길을 내려가다가 팔이 부러지지 않게 하여 주소서. 직장 생활이 힘들지 않게 하소서. 그리고 청춘의 팔팔한 힘이 오래도록 유지되게 하소서.…’이러한 기도는 어느 해 겨울에 그가 빙판길에 넘어져 팔이 부러진 이후 생긴 어머니의 습관이었다. 가끔 그는 어머니의 기도가 자신의 등에 꽂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골목 끝에서 잠깐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눈을 감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능선 위에서 비치는 햇살이 가림막처럼 어머니의 등 뒤에 비쳐졌다. 젊을 적에는 어머니의 기도가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잘 알지 못하였다. 그저 자식을 위해 관행적으로 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머니의 아침 기도는 15년 동안 이어졌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남과 동시에 그 기도도 중단되었다. 장례식을 치른 지 6개월 후 아버지가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에게 ‘어머니의 유산’이라며 상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두터운 성경책과 함께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승용차 앞에서 방긋이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니. 이건 위급할 때에 대비해서 제가 어머니께 사 드리는 것입니다.”은사인 성봉 선생의 장례식장을 다녀와서 그가 행동에 옮긴 것이 바로 승용차 구입이었다. 그것은 성봉 선생이 심근경색증으로 쓰러졌을 때 차가 없어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사연을 접한 후, 그가 곧바로 실천한 행동이었다. 어머니는 그의 효심에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어느 날 아침부터 골목길에 세워 놓은 그의 승용차가 산뜻하게 세차되어 있었다. 처음에 그는 그것을 세차비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서비스일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새벽마다 어머니는 수대에 물을 담아 다리를 절룩거리며 삼십여 미터의 골목길을 걸어나가 아들의 승용차를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놓았다. 그는 그런 어머니를 극구 말렸다. 노인을 부려먹는다는 동네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두려웠지만, 중풍을 맞아 몇 번이나 쓰러진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어서였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병이 될 수도 있어.”그는 그런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였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영하 17도의 날씨에도 어머니는 세차를 하였다. 그러나 세찬 바람이 차를 꽁꽁 얼게 하였다. 어머니는 더운 물로 그걸 녹이느라 십여 차례 골목길을 오갔으나, 아들의 출근 시간이 되어도 꽁꽁 언 성에는 더욱 두터워질 뿐이었다. 그 때문에 그 날 아들은 직장에 지참을 하고 말았다. 그 후로 어머니는 세차 행위를 그만두었지만,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어머니의 반찬을 준비하는 손길이 더욱 진중하여졌으며, 아침 기도에는 온기가 흘러나왔고, 아들의 구두가 광채가 날 정도로 닦여져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가 결혼한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는 그의 자녀들을 정성껏 돌보아 주었고, 어머니의 온아한 품성은 손자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찬바람이 세게 불던 날 어머니의 삶도 끝이 났다. 그러나 어머니의 기도와 사랑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딸이 결혼해서 출산하였을 때, 그는 미국에 있는 딸네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딸아이와 외손자의 건강을 위해 그는 기도하고 열심히 집안 일을 도왔다.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를 하여도 그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이 기뻤다. “아빠. 그렇게 쉬임없이 일하면 힘들지 않아?” “아니야. 내가 네 할머니한테 받은 은덕을 생각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사실 예순을 넘긴 나이에 가사 노동을 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어느 이름 모를 곳에서 샘솟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에게서 전해진 힘이었다. 유대인의 『탈무드』를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다. “내 대신 내 어미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등이 없어서 너를 업어 줄 내 어미를 네게 보냈노라. 내게는 손이 없어서 너를 붙들어 주고 어루만져 줄 내 어미를 네 곁에 보냈노라. 나는 너를 품어 줄 가슴이 없어서 어린 너를 품어줄 어미를 네 곁에 보냈으며, 내게는 젖이 없어서 생명의 젖줄을 너에게 보냈노라.”이 구절을 읽으면서, 그는 자신이 체감한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가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감지할 수 있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6-20
  • 그리스도인의 가정
    오늘의 이 사회는 세속화 속에서 공업화, 도시화, 핵가족, 세대 문제로 가정부재현상에 놓여 있다. 이러한 가정부재 현상은 가정이 비인격적 집단으로 변하고 있으며, 교육을 가정 외의 기관에 전적으로 의뢰하고 있음에 그 문제가 있음도 알게 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기독교교육의 차원에서 예일대학의 신학부의 '랜돌프 크럼프 밀러'는 기독교교육의 난제를 풀어 줄 단서를 말하는 가운데 기독교적 삶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삶의 가정을 교육의 장으로 하여야 한다고 하며 신학의 재발견을 강조한다. 즉 화해의 목회차원에서 가정을 구속적 세포라고 주장하면서 사회의 변화 속에서 가정은 기독교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대 가정의 부모들은 가정을 신앙생활화를 위하여 신앙의 삶의 대화의 장으로 만들어야 하고, 신앙의 진정한 대화가 이루어지는 때에 그 대화의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물음과 삶의 목적과 삶에서 참을 추구하는 대화와 만남의 공동체로 삶의 가치와 삶의 생활에서 삶의 자리를 심어주어야 한다고 주장함에 주목한다. 진정한 가정은 진정한 부부 사랑의 결실이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최상의 선물인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고 성숙하여 또 다른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도록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쏟는 가정을 말한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준비는 혼인하기 전부터 이루어진다. 가정은 자녀 출산이 부부 사랑의 절정이라면, 자녀 교육은 부모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요 의무이다. 교육에 대한 부모의 권리와 의무는 인간 생명의 전달과 직결되는 것이므로 본질적인 것도 알게 한다. 부모의 자녀 교육 권리와 의무는 부모와 자녀의 특유한 사랑의 관계 때문에 타인들의 교육 역할과 비교해 볼 때 본래적이고 일차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체하거나 양도할 수 없는 것이므로 타인이 완전히 위임받거나 빼앗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가정은 더욱 풍요로운 인간성을 기르는 한 학교이며 처한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덕행을 가르치는 최초의 학교이므로, 자녀들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덕행, 친절, 책임감, 정직, 예의범절, 감사하는 마음, 협동심, 이타심 같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가정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부모는 자녀의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전인 교육을 촉진할 수 있도록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진심으로 가득 찬 가정환경을 신앙으로 조성해 주어야 하며, 부모는 자녀의 본보기가 되기도 한다. 가정은 성장기의 자녀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자녀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라며 체험하고 배운다. 그래서 부모는 사랑에 대한 일차적 교사이며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이 가득 담긴 행동과 언어로 표현한다. 무엇보다도 부부 상호간의 사랑과 신뢰가 가장 좋은 가르침이 되는 것이고, 이를 체험한 자녀들은 자신들이 성장하며 느끼고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랑과의 관계의 공동체를 자연스럽게 엮어 나가는 것이다. 오늘의 현대 문명이 물질적 세속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자녀조차 신앙에서 유리된 생활을 하기 쉽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인 부모는 자녀에게 풍성한 삶의 바탕에 신앙적인 가치들을 우선적으로 깔고 그러한 삶의 본보기로 사는 삶을 가져야 한다. 인간의 가치는 무엇을 가졌느냐에 있지 않고 어떤 인간이냐에 있기에 여기서 충분한 믿음을 일러주어야 한다. 개인주의와 이기심의 극심한 충돌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갈등으로 흔들리고 갈라진 오늘의 사회 속에서 살아야 하는 자녀들에게 각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끌어 가는 참된 정의감으로 무장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해 특히 가난하고 곤궁한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염려와 공평한 봉사와 섬기는 참된 사랑의 마음으로 삶이 자라가야 한다. 부모들 자신이 솔선수범하고 가정에서 기도 생활을 실천할 때 자녀들이 인격의 완성과 믿음으로 구원과 성화의 길을 더욱 쉽게 갈 수 있게 된다. 이런 신앙의 체험을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그 삶을 배워가야 한다. 이러한 가정에서 교회의 삶을 공동으로 책임 있게 연대(連帶)하며 살아야 한다. 부모는 말과 모범으로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최초의 신앙 선포자가 되어야 하며, 각자의 고유한 신앙적 사명을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가정은 교회의 본질을 잘 드러내고 교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6-0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6
    학위만 받으면 모든 게 쉽게 풀릴 줄 알았다. 얼마나 기다렸던 결과였던가. 4년 동안 밤잠을 설쳐 가면서 수백 편의 논문을 읽고 수천 장의 독서 카드와 원고지 앞에서 씨름했었다. 네 살 난 아들이 문을 두드린다.“왜?”“아빠. 이거 가지고 놀아도 돼?”조금 전에 가격이 싼 편이어서 사 온 조그만 참외들을 아들이 발로 차면서 논다. “그래라.”나는 싱크대로 가서 아들 주먹만한 참외를 씻어서 행주로 닦은 후 거실 바닥에 놓았다. 아들은 그걸 손과 발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재미있게 논다. 하도 재미있어 하길래 물놀이 할 때 사용하던 공을 장롱에서 꺼내어 주었더니, 아이는 그걸 가지고 거실을 뛰어다니며 좋아한다. 그러다가 나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박스에 가득 담긴 논문을을 꺼내어 홅어 보았다. 벌써 이력서를 보낸 지가 두 달이 지났지만, K대학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나와 동갑내기인 안교수가 이번에는 어려울 거라는 말이 귓가를 스쳐갔다. “이번에는 모 처에서 추천한 인물이 들어와서 어려울 것 같네요.”이 말을 듣고 문단 선배인 이교수를 찾아갔더니, 걱정하지 말고 이력서를 내 보라고 해서 자료를 제출했었다. 커다란 박스에 그동안 발표하였던 저서와 논문들을 가득 채워 제출하였을 때, 이번에는 꼭 될 것만 같았다. 이교수에게 농담 삼아 이번에 선배님 덕분으로 되기만 하면 수원에 있는 정자동으로 이사 오겠다는 농담을 건네 보았지만, 이교수는 씩 웃기만 할 뿐이었다. 벌써 열 번째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의외로 순조로와 보였다. 지방에 있는 J대학 총장 앞에서 면접을 볼 때만 해도 자신감이 넘쳤었다. 그러나 매 번 최종심에서 탈락되었다. 직장의 선배들은 실력만 가지고는 안 되는 일도 있다며 불의한 방법을 써 보라고 하였지만, 그건 내 양심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런 일을 했다가는 평생을 두고 앙금을 남길 수도 있었다. 퇴근 시간이 되자, 아내가 반색을 하며 들어왔다. 손에는 수박 한 통과 우편물이 들려 있다. 아들이 공을 차고 노는 것을 보며 아내가 다가가 안아 준다. “여보, 이 참외들 마트에서 얼마 주고 샀어요?”“삼천원.”“나도 삼천원 주고 샀는데, 어쩜 우리 부부는 이렇게 호흡이 잘 맞수?”하면서 부엌으로 가서 참외를 깎아온다. 한 조각 맛을 본다. “역시 맛은 별로네. 그래서 과일은 좀 비싸더라도 좋은 것을 사야 한다니까. 여보. K대학에서 자기한테 우편물 왔데?”나는 아내에게서 K대학 로고가 새겨진 봉투를 받아 서재로 들어가 펴 보았다. 가슴 조이며 펴 보았으나, 이번에도 실패다. 그동안 얼마나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던가. 주일 예배 뿐만 아니라, 수요 예배와 금요 철야 예배는 물론 새벽 예배까지 꾸준히 참여했었다. 새벽 예배는 보통 정성이 아니었다. 찬바람이 불어 나뭇가지 끝에 고드름이 달릴 때에도 빠지지 않고 기도를 드렸었다. 주님은 먼 별나라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옆에 계시다고 믿으면서 기도했었다.‘주님. 당신의 능력을 보여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자녀임을 지인들이 확실히 알게 하소서.’하지만 현실에서는 실패의 쓴 잔이 다가왔다. 학위 논문을 쓰면서도 ‘주님. 제 짐을 같이 져 주십시오.’라며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었었다. 그러나 결과는 낙망으로 돌아왔다. 욕실에 가서 샤워를 간단히 끝낸 후 다시 서재로 돌아와 원탁 테이블 앞에 앉아, 기도를 드렸다. ‘주님. 제가 교수가 되는 것은 당신의 뜻이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제가 욕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직도 죄의 늪에 있는 겁니까?’나는 한참 동안 혼자서 고민하다가 『사도행전』마지막 장을 펴들었다. 거기에는 바울이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다가 멜리데 섬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섬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일화가 나와 있었다. 나는 잠시 창문쪽을 바라보았다. 뿌염한 빛이 사각형으로 된 창을 통하여 들어왔다. ‘나에게 멜리데 섬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다운 멋을 가진 존재가 아닐까.’ 나는 그 인간미를 가진 존재가 주님의 뜻이라고 스스로 일러 보았다. 나는 서재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거기에는 아내가 아들과 함께 정답게 앉아 있었다. “당신, 웬일이야? 늘 서재에만 들어박혀 있던 사람이.”“응. 오늘부터 책의 감옥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놀기로 했어.”“쥐구멍에도 별 뜰날 있수. 호호호.”빛은 여전히 거실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빛이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6-07
  • 한 민족의 하나 된 통일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사랑’이라는 말은 ‘아가페’라는 희랍의 단어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 그리고 이 사랑에서 반드시 귀결되는 인간 서로간의 사랑을 가리키는 데 이 낱말을 사용한다. 교부(敎父)들은 빵과 포도주를 모두 사용하는 의식과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하는 사귐의 식사를 모두 가리키는 ‘애찬’(愛餐 love feast)이라는 뜻으로 아가페라는 말을 사용해왔다. 아가페, 주의 만찬(Lord’s Supper), 성찬식(Eucharist)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는 나타난 증거들로 알게 한다. 그리하여 어떤 학자들은 아가페가 주의 만찬의 한 형태였고, 성찬식은 이 의식의 성사(聖事)적인 면이었다고 믿는다. 또 다른 학자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자주 가진 모임을 본떠 만든 사귐의 식사로 아가페를 해석하고, 예수의 죽음을 강조하는 성찬식은 후대에 이 식사와 연결되기는 했으나 결국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믿는다. 예수가 당시의 유대교 의식(儀式) 모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식탁을 같이하는 그 예식은 서로 함께 식탁을 통하여 음식을 나누는데 함께한 자리에 같이 하기에 이를 식구(밥=식사)같이한다)는 의미가 하나의 공동체를 말하기도 함을 알게 한다. 같은 민족 간의 갈등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음을 현실을 실제로 잘 파악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을 지내면서 양극이 이념 갈등이 소멸되지 않고 탈냉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의 정치 상황을 보면 예전 그대로 머물러있음을 알게 한다. 그 어떤 개혁과 개방의 시도도 그 민족 자결권의 시도도 용납이 되지 않고 있음을 보면서 1945년 12월 15일 미국, 영국, 소련 3국의 외상들이 포스담회담으로 우리민족을 일본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즉 일본의 제국주의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보장에도 그들 자국의 이해타산에 묶여 있을 때 처음에는 민족주의 진영이나 좌익에서 이를 한동안 반대하고 나섰지만 조금 있다가 즉시 이를 좌익. 계열에서 태도를 바꾸어 이를 지지하게 됨을 기억하게 한다. 이때부터 같은 하나의 민족이 하나 되어 주변의 나라 협력이 없이도 한 민족의 슬기로움을 가지는 역사를 우리 민족에게 요즘 와서 더욱 느끼게 한다. 이는 선진국 제국주의의 신탁통치의 끝자락을 오늘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는 과거 역사인 이 경험은 선진국 제국주의의 도전에 대한 후진국 민족주의의 응전임을 알게 한다. 지금 우리 민족의 조국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된 민족으로 우리 조국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삼천리금수강산을 가지는 단일민족으로 한 공동체임을 자부해야 한다. 이 세상의 세계와 세상에 함께 살아가는 하나님이 우리 백성인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의 땅임을 자부심 갖고 기도하며 화해의 공동체로 하나님의 동산을 일구어 내야 한다. 예수님의 이 세상에서 친히 보여 주신 사랑은 대가성이 없는 무조건한 사랑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그 의미를 담고 있다. 한 민족이 같은 형제끼리 사랑(통일)한다는 것은 이유가 없는 참 사랑이다.‘통일’은. 우선적으로 가장 중대한 우리 민족의 숙원이요 삶의 길이다. 민족공동체는 민족정기에 따라 과거를 정리하고 미래를 향해 만인의 삶의 길에 그 근본을 보여 주며 열어야 한다. 여기에 온전한 삶의 길이 열린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시아의 중심으로 21세기는 기계 기술과 전자기술이 복합되어 컴퓨터 기술과 전자기수리 일체화된 정보산업이 주요 산업이 등장하고 생명공학 자원기술과 우주 해양개발기술 , 신소재 기술 등 첨단 기술을 중심으로 기술혁명이 예상되고 있는 형편을 갖게 함에 자부심도 갖게 한다. 흔히들 21세기는 기계기술과 전자기술, 첨단기술을 중심으로 기술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겨냥되기 때문이다. 이미 “서해안 시대”를 예고하며 기대하고 있는 민족의 서원이 있음을 알게 한다. 이러한 정황을 살피면서 우리 민족은 단합하여 믿음으로 구원과 서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기에 하나 된 민족의 구원을 위해 남과 북이 “하나 된 민족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오늘의 한국인의 민족관은 남과 북이 통일이라는 숙원이 당위적인 삶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한 형제 민족끼리 삶을 사는 지름길임을 남과 북이 사는 길이요 그리스도의 가르침의 원수 까지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한 민족의 통일 염원을 위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통일기도 청원에 염원을 빈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5-2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5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 ”(<이사야> 49:1-2)주님은 사람을 사랑하셨다. 그러나 사람은 연약하였다. 사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죄의식으로 인해 슬퍼하였다. 그래서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 사람의 잘못을 가르쳐 주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온전한 회개를 하지 못하였다. 의롭게 살려고 하다가도 쉽게 넘어지기를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이 죄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였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개인에게 들어가 사람이 의롭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님은 성령이 개인에게 임재하는 길을 열어 주어야 했다. 그래서 주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친히 세상에 내려왔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심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는 그 뒤뚱거리고 걷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더구나 그 새끼의 모습은 얼마나 우스꽝스럽겠는가. 나귀 새끼를 타시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낮은 자세로 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모습은 구세주의 진정성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허황됨을 풍자한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병을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권능자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참 모습은 그런 권능자에만 있지 않았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재하시는 기회를 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필요했다. 예수님의 몸을 제단 위에 올려 놓는 의식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는 일이었다. 예수은 십자가에서 죽은 후 다시 부활하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했다. 그리하여 제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다시 사신 모습을 보여주고,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함을 알려 주셨다. 주님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베드로를 찾아갔고, 당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을 보고 상심하여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부활하셨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여 달라는 제자에게 직접 창에 찔렸던 자국을 보여 주셨다. 예수님은 당신의 진정성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제자들을 찾아나섰다. 그리고 주님은 사람들이 부활과 성령을 이해하도록 당신이 다시 사신 모습을 직접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에 무지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진정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이 풍자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몰랐던 민중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성을 몰랐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성령이 임재하심을 몰랐던 때가 있었다. 나 스스로의 힘으로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세상 책들을 열심히 읽고 습작도 많이 하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아침마다 영감의 만나를 내려놓고 가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 일곱 시가 되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꿈에서 깨려는 찰나에 주님이 내려 놓고 가신 영감의 만나를 보았다. 그것은 나를 더 성숙한 작가의 위치로 나아가게 하는 주옥같은 모티프였으며, 담론이었다. 나는 그 모티프를 주워 담아 사색하고 글을 써 나갔다. 주님은 영감의 만나만 주시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사탄의 유혹에 빠지려 할 때마다 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순수한 마음을 지켜 나가고, 하나님의 의대로 살아가려고 하며, 그분이 계획한 대로 기도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도를 통해서 내가 살아 있음과 가족과 형제가 건강하고 평안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그분을 인지하지 못한다면 나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전하는 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모르는 민중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의 진정성을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다. 나의 작가 정신을 모르고 원고료를 제대로 못 받는다고 무시하는 사람, 내가 그분께 드리는 찬양의 참모습을 모르는 사람,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이 벌이가 신통찮다고 무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서운함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다가와 작가로서의 길을 인지하시고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걸어 가라 하시었다. 주님은 나에 대한 지인들의 멸시를 믿음의 방패로 막아 주시고, 나에게 현실을 풍자하는 글을 쓰라고 진리의 창을 내어 주셨다. 그리하여 나는 그분이 함께 하는 현재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며, 집필을 하고 가족과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인도하시는 그분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5-24
  • 그리스도교의 십자가
    그리스도교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신 일과 그의 수난과 죽음이 가져다 준 구원의 은총을 믿음으로 살게 하시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나타나게 하는 믿음을 갖게 한다.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신앙인들은 축복 받아야 사는 양, 십자가는 단순한 저주 행위로 인지하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십자가 지는 고난에 대한 바른 인식의 차원을 교회가 예배로 의식을 집행 할 때 십자가를 상징하며 신앙고백을 하며 기도. 봉헌. 축복을 위한 행사에 십자가를 기리며 행사를 주관함에 그 의미를 갖는 것으로 바르게 믿음의 생활을 가져야 함에 이른다. ‘십자가 지는 신앙’에 대한 고난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수세기동안 십자가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깊은 신앙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과 죽음의 권세를 이긴 것에 믿음의 강조를 나타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실제적인 면들을 십자가로 강조하는 그 의미로 신앙을 표시하는 차원에서 사용해 오다가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 이후 루터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십자가를 장식용과 의식용으로 계속해서 사용해 왔고 영국 교회는 세례식 때 십자가의 성호를 긋는 관습을 계속해 오고 있음을 보며 또한 오늘날에는 그리스도교를 믿는 교회는 모두 교회 상징으로 교회 지붕위해 십자가를 세워 교회의 일면을 보게 함에 이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볼 그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이렇게 오늘날의 교회는 십자가를 상징으로 두고 있지만 옛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자리에 십자가를 지고 그 삶으로 믿음의 생활을 함에 주목한다. 여기서 바울 선생은 당시 그의 신앙 고백하는 십자가 (고전1:22-24)신앙에 대한 그의 믿음의 고백에 주목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이요 하느님의 지혜이니라”는 바울 선생의 신앙고백에 순결하게 따라가는 살의 이 믿음에 오늘의 우리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지는 삶의 자리로 돌아온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 몸으로 오셔서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넘어 하늘을 향한 구원의 삶을 위한 스스로의 길을 열어 만인에게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고 그 삶을 넌지시 보여 주심에 감동한 바울선생의 신앙의 삶의 고백을 오늘에 우리는 터득해야 한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자기희생을 보여 주심에 대한 큰 사랑이시다. 십자가는 하느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대 사건이다. 하느님의 속성에는 공의와 사랑이 있는데 하느님은 언제나 공의와 사랑을 같이 취급하시고 동시에 공의와 사랑을 함께 나타내 보이신다. 예컨대 인간은 자기가 죄 지은 대가를 치를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죄를 치를 분은 오직 한분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뿐이시기에 하늘에 계신 우리 모든 사람의 아버지 하느님만이 죄 지은 모든 죄인을 구원하신 자이심을 아는 믿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다. 이 십자가 사랑의 대 사건은 공의와 사랑이 있는 사람의 아버지 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이 친히 사람의 죄를 담당하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아버지로서 사랑을 보여 주심에 그 사랑을 나타내 친히 십자가를 지심에 모든 죄 지은 자녀 된 인류는 그 아버지 되신 하느님의 사랑을 엿보이게 하심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 사랑을 십자가로 열어 보이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고개 숙이고 ‘십자가 사랑’에 감사해야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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