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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회는 쉬운 것이다·34
    죄인은 명령이나 가르침이나 권위로 안 되기 때문에 직접 오셔서 죄인과 코드를 맞춰야 합니다. 이 방법이 예수님의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입니다.“목회는 방법이 아니라 삶입니다.” 데이비드 한센 목사는 말했습니다. 한 시골 목회자의 진솔한 삶과 그의 목회 이야기를 기록한 책입니다.우리는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하나님 아들로서의 구속적 사명을 모방하려는 잘못된 생각에서 피조와 창조주간의 인간이 죽음에 이르는 실수를 범하는 사람들이 사명자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채찍질했던 험악한 로마 병정처럼 사력을 다해 사람들을 내어 몰고 있습니다.저 자신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사람들을 몰아붙입니다. 그래서 아주 좋아 보이는 말이나 단어들이 현실감 없는 지겨운 용어로 거짓말하는 말로 자신을 속이는 위선적인 행위의 반복을 신앙이라고 생각하게 했습니다.사람은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을 해방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지 구속적 대신 속죄의 역할이 아닙니다.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비전이나 꿈을 실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은 하나님의 아들 되신 창조주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지금까지 강대상에서 외치고 있는 목회자들의 ‘말씀’은 그들 자신도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솔직하게 말해서 소리 지르는 그럴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 자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그 위선이 위장된 상태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이유는 그들의 위선으로 돋보이려는 모든 장치입니다. 강단을 높이는 일, 강대 상, 제단 상 뒤에 붙인 십자가 휘장들, 꽃꽂이들, 위엄 있어 보이는 성구들, 호화로운 교주형의 가운 위에 걸친 스톨들, 마치 현대 가격의 평가로 2억에 가깝다는 제사장들이 입었던 금과 보석을 주렁주렁 단 에봇이나 사람의 마음을 신 들리게 하는 음악 기구들이나 빈틈없는 곡들이기도 합니다.강단에서 모든 실수를 덮으려는 이러한 위장된 형태가 바로 자기의 약점을 덮으려는 마귀가 준 장치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삶을 모방하려는 것으로 대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일들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을 훼파시키고 3일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신 것인데 우리는 지금도 그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지금까지 우리의 교회 현장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영적 권위를 모방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간의 힘을 과시하는 우상종교적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평안이 아니라 숨 쉴 사이도 없이 쫓기는 삶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뜻에 의한 삶이라면 우리는 우리라는 정욕에서 생산되는 자기중심적인 불안입니다. 예수님은 순수하시고 순결하심에 우리는 탐심이 가득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평안하시되 우리는 복잡합니다. 예수님은 목적이 분명하시지만 우리는 땅에 매여 있습니다.그런데 우리는 이 귀중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놀랄만한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에게 드렸다면 예수님도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을 집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우리 그리스도인들 안에는 실제로 그리스도의 생각과 마음이 이미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골 3:10).“예수를 바라보자”(히12:2).무 리가 일삼아 하는 실수가 문을 닫아놓고 사는 습관입니다. 이 말을 아주 쉬운 말로 하면 매임 병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꼼짝없이 매여 있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만들어놓은 칸막이적 삶입니다. 예수 잘 믿는다는 사람의 특징이 두문불출하는 것입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는 것이 자기 순결을 지킨다는 수도사적 삶입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7-06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11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11. 살신성인의 선지자 예레미야 요시야가 일으킨 개혁은 가시적(可視的)인 분야였다. 우상을 숭배하는 산당들과 목상(木像)들과 기물들은 파괴되었고 성전은 재건되고 율법책을 펼치긴 하였으나 그 율법책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고 심령에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더 나아가 그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며 개인들의 삶이 변화되는 일은 실현되지 않았다. 이러한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요시야의 개혁이 더 발전되어 백성들의 심령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젊은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서 전반에 걸쳐서 감지되는 그의 성격은 수줍어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백성 중에 만연한 죄악에 대하여 심히 괴로워하며 탄식하는 양심적인 선지자였다. 그리고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나 책임에 매우 충실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고, 의(義)를 바르게 세우는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 굳게 설 수 있는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황폐해가는 유다 백성들의 죄를 깨우치고 그들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할을 감당할 선지자로 예레미야를 선택하셨다. 구별된 소수와 다수의 범죄 집단죄악적인 성향을 가진 인간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그 집단도 역시 죄악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지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그 조상의 시대로부터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듣고 경험하였으나, 그들의 성향과 죄된 습성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거의 다를 바 없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 구별된 소수의 개인들은 있었지만, 집단적으로는 언제나 누적된 죄악으로 파국을 맞이하는 것이 인류 역사에 나타난 교훈이다. 이렇게 반복된 역사를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고 가련한 죄인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도 날마다 깨어서 스스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인간의 죄악적인 경향과 타락한 상태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언제나 죄를 지적하는 곧은 메시지였고,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과 약점을 파헤쳐 지적하는 선지자의 음성 듣기를 싫어하였고 그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선지자들을 미워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미움을 많이 받았고 죽음의 위험까지도 감수해야 했던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가 전한 개혁의 메시지타락한 백성들의 죄악적 유형이 늘 대동소이(大同小異)하기 때문에, 시대 시대마다 일어난 선지자들이 외치는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왠지 보다 강렬하고 더욱 열정적으로 느껴진다. 아마도 그는 감성이 풍부했던 선지자였던 것 같다. 예레미야는 성전 마당에 서서 성전을 출입하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임한 경고를 전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 내용은 주로 이러한 것이었다. “여호와께 경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인아 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을 좇아 스스로 해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히 준 이 땅에니라”(렘 7:2~7). 한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흉악한 죄악과 불법적인 행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법궤가 있기 때문에 불레셋 사람들과 싸워서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몽상에 불과했다. 법궤까지 빼앗기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와 비슷한 동기에서, 유다의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출입하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전을 출입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 ‘착각’에 대하여 경고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마 23:27)다는 말씀이 그들의 실상이었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직설적인 경고의 메시지가 외식하는 백성들과 지도자들의 심기(心氣)를 매우 불편하게 만들었고 큰 부담을 느끼게 하였다. 특히 제사장들에게는 격렬한 분노를 일으켰으며 심지어는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하는 계획까지 세웠다. 아마, 요즘 시대였더라면, 제사장들은 총회를 소집하여 예레미야를 ‘이단’으로 결의하여 백성들이 예레미야와 상종을 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의 행태는 거의 유사한 것 같다. 마음이 유약했던 예레미야는 이러한 사람들의 저항과 분노 때문에 크게 상심하기도 하였다.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렘 20:7,10). 그러나 하나님의 보증이 있었다.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여 건짐이니라”(렘 15:20). 그리고 백성들 중에서도 예레미야 선지자의 음성을 듣고 각성하여 회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도움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예레미야는 죽음을 면하고 끝까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가 주는 현대적 교훈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성전 마당에서 전했던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는 것이다. 제사장들과 유다인들이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있었고 성전을 출입하면서 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가득하였고 그들의 외형은 위선으로 가리어져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성전을 출입하면서 드리는 제사 의식 자체가 자신들을 성별하여 이방인으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도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착각하였던 것이다. 대단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하고 유명한 목사를 초빙한 다음, 그 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안에도 신실한 성도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실 당시 유대사회의 형식화되고 왜곡되었던 신앙의 형태가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에 반복되었고, 중세기 암흑의 터널을 지나면서 발생한 개신교에 또 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요시야의 개혁이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타락의 행태를 청산하는 것이었다면, 예레미야의 개혁은 각 개인의 심령의 부흥과 삶의 변화를 촉구하는 개혁이었다. 심령의 부흥과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는 이방 나라의 채찍을 통하여 징계를 받는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 수순이었다. 어제나 그제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다루시는 방법도 언제나 동일한 것이다. 오늘날 이 교회에 니느웨 성에서 일어났던 회개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야 한다.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욘 3:5-8). 오늘날에도 니느웨 왕 같은 양심과 정신을 가지고 백성들과 교회의 죄악을 직시하며 회개를 촉구할 수 있는 영적 지도력의 필요가 절실하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6-23
  • 목회는 쉬운 것이다·33
    성경은 숫자에 대해 무엇이라 하는가? 예수님은 숫자로 사역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성공과 건강을 크기나 숫자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12명만 데리고 예수님은 함께 먹고 함께 마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두 예수님을 떠났습니다.요한복음 6장 66절에 “그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이 당신이 누구 신지를 드러내는 이 사건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더 큰 실망에 빠뜨리고 급기야 상당수의 제자가 “이 사람이 아니구나, 잘못 짚었어….”라고 하고 떠나도록 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유발했습니다.예수님은 승천하시고 예수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남아 성령 하나님을 기다렸던 사람은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지방에서 사역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는 모든 역사를 통해 남기신 사람 수가 120명이었습니다.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비판의 기준은 교인 수의 증감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오직 네가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에베소교회(행 20:28~31) : 거짓 가르침에서 교회를 지켜달라고.•필라델피아교회(계 3:8, 10) : 네가 작은 능력을 갖추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버가모교회(계 3:1)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사데교회, 라오디아교회(계 3:17) :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발가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요한복음 17장 7절에는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17장 2절에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했습니다.중요한 것은 교회부흥은 인위적이 아니라 사도행전 2장 47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숫자가 성공의 가름을 하는 것인가?한국교회를 위기라고 합니다. 양적 성장이 결국 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양적 성장이 위기의 원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16세기에 유럽의 종교개혁이 일어났는데 이때 왜 개혁이 필요했던 것인가 이미 아는 이야기들입니다.십자군 전쟁으로 교황의 권위는 하늘을 찌르고 새로운 성전 건축을 준비하여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 중심으로 면죄부를 팔아 쏟아져 들어오는 돈을 세며 세계를 정복하는 가톨릭을 꿈꿀 때입니다. 왜 루터를 통해 개혁이 필요했을까요? 루터를 통해 하나님은 교회를 분열시키신 것입니다.오늘의 문제의식은 규모가 우상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아는 확실한 증거들입니다. 목사는 이름에 그의 공력을 낭독해야 하는 화려함이 기본이 되어야 함은 교인의 허세에 대한 자랑거리와 자부심을 갖게 하는 현대사회의 악습의 반복을 교회가 맨 선두에서 사용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들입니다.교회라는 이름 안에 감추어진 것은? 숫자를 우상으로 만드는 역사는 창세기 3장 1절 이하에 나타난 시조가 뱀인 것입니다. 뱀이 교회란 이름 속에 대리점을 차리고 사단이 조정함을 받는다는 것은 뱀이 내어놓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아지고’, ‘선악을 알게 한다’라는 조건입니다. 즉 밝아지려고, 같아지려고, 알게 된다는 사실을 대중화시킨 것이 19세기 촬스 피니였습니다. 이들이 긍정 신학이라는 말로 교회는 인위적으로 부흥될 수 있다는 마케팅 전략을 생산했습니다.숫자가 진리인가? 그 당시 이집트가 진리이고, 바벨론이 진리이고, 로마가 진리였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엄청난 교회가 진리일 수 있습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6-22
  • 김범렬 장로
    안구기증 사무실 출근하며 각종 모임에 바쁜 일정 보내 김범렬 장로(예장통합 미암교회 원로, 81세)는 교계 단체장에서는 물러났지만 그동안 많은 현역을 맡아 왔던 관계로 정기적인 모임과 가끔씩 모이는 일이 너무 많아 은퇴 후에도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우선 (재)안구기증운동협회 사무실에 거의 매일 출근한다.김 장로는 통합측 주일학교전국연합회를 시작으로 평신도가 맡아야 할 단체에서 대표회장과 회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통합측 교단에서는 널리 알려진 평신도 지도자이다.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해 증경회장 자격으로 초청을 받아 자문을 해주며 친교의 시간을 갖는다. 현재도 원로장로회의 정기모임을 비롯해서 장로교육원 이사, 남선교회 장학회 이사로서 활동하고 있다.김 장로는 교단을 초월하여 초교파적인 연합운동에도 많은 활동을 해 왔다.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대표회장, 한국장로회총연합회 사무총장 등을 역임하여 범교단 평신도지도자들과의 유대를 가지면서 매월 정기적인 모임에 함께하며 교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단 내에서는 서울북노회 노회장을 역임하면서 총회와 연합활동에 많은 헌신을 하였다.김 장로는 온화하고 논리적인 무게감을 가진 성품을 가졌다. 신학(서울장신대)을 공부하여 목사와 장로 사이에서 지켜야 할 원칙과 행정에 밝아 관계개선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 “목사와 장로 간의 장로는 목사와 같은 교회의 치리권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목사님의 목회에 협력하여 목사님께 누가 되지 않게 해야 하고, 서로 돕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돕는다는 것은 예와 아니오를 바로 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특히 김 장로는 선교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재)안구기증운동협회 이사장을 맡아 자신의 사무실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39년 전에 ‘목화선교회’를 창립하여 동대문시장과 남대문시장 상인을 중심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고, 전국적인 조직도 만들어 각기 운영하고 있다.김 장로는 또 후배 장로들에게 “장로의 위상을 높여 나가려면 잘 알아야 한다. 교회헌법이나 교회행정을 바로 알아야 장로의 주장과 의견을 바로 전달할 수 있다”고 하면서 감당해야 할 사명에 대하여 조언하고 있다.김 장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게 일했던 것은 노회장 때 최선을 다했던 일이라고 했다. 각 교회를 살피고 각종 행사에 다니면서 축사와 격려를 하며 바쁘게 지낸 일들이 지금 와서는 보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남선교회전국연합회 회장 시절에는 전국을 누비면서 선교적인 사명을 위해 노력했던 일이라고 한다. 김 장로가 각종 행사에서 축사와 격려사를 할 때면 논리 정연한 언변(言辯)에 참석자들은 감동을 받는다.그동안 평신도운동에 많은 심혈을 쏟아온 김 장로는 “장로회나 평신도 단체는 친목단체로서 만족하지 말고 교회와 사회문제에 대하여 바른 말과 성명서 등을 통하여 냉철하게 비판하고 시정을 촉구해야 한다”면서, 교회는 과거 군사정권 하에서도 바른 말을 했는데, 오늘의 평신도단체들은 무기력해졌고 답답함을 느낀다고 했다. 평신도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김 장로는 지금에 와서 좀 후회스러운 것도 있는데, “알고도 실천하지 못했던 일들과, 목회자들과 좀 더 협력하고 긴밀한 협치를 했으면 좋았을 때에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교회연합운동도 “모이면 보람 있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러한 모습이 안보이기 때문에 모이기를 등한시 한다”고 했다. 연합운동이 제대로 되면 교회와 노회, 총회와 한국교회가 잘 발전해 나갈 것인데, 최근엔 지도력을 가진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김 장로는 한국교회가 개혁되려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고, 무엇보다 신앙인답게 살아가야 한다면서 삶을 통해서 믿음과 서로간의 신뢰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김 장로는 슬하에 둔 남매는 가정을 꾸려 나가 살고 있고, 부인 안병연 권사(76세)와 함께 매일저녁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단란하게 주안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6-22
  • 성육신한 예수교회-5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전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들이 진정 복음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는 있는 것일까? 만일 이러한 갈증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어떻게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까? 복음서에서는 먼저 희년의 축복을 들고 나갔다.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그들이 지은 죄와 채무를 탕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예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그들의 인생이 피폐해진 상태에 있던 분들이다. 38년간 거동을 하질 못하고 누워서 사는가 하면, 나병에 묶인 나머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고,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장애로 고통을 겪는 이들이었는데, 시각 장애자와 언어 장애자, 청각 장애자와 같은 이들이었다. 성경에서 희년이라 함은, 남의 집에 종으로 묶여서 자유를 제한 받고 있거나, 재산을 모두 탕진했던 사람들에게, 다시금 모든 것을 탕감하고, 맨 처음 상태로 복귀시켜주는 것이었다. 이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맨 처음 상태로 복귀시키는 시켜주는 것이어서 고난과 억압과 가난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복음이 아닐 수 없었다(눅 4:16-21).그런데 팔레스타인에 등장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경제권보다는 우선적으로 죄와 그의 잃어버린 건강에 대한 채무를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저들에게는 인간성의 회복의 첫걸음임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구원의 경험은 예수께로 믿음을 갖고서 다가오는 사람들 개개인에게서 일어나기 시작하였는데, 복음서 기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리를 얻고, 하나님의 영생을 기업으로 받는 자 됨을 선포한 것이다.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서 구원 받은 표징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사렛 예수께서 십자가로 죽임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이후,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에 훈련된 사람들에게 자주 얼굴을 보이시고, 저들 보는 앞에서 하늘로 높이 올리셨다. 이 일이 있은 후, 열흘간 예루살렘의 마가의 집 이층 거실에 모여 기도하던 120여명의 사람들에게, 바람 같은 소리와 함께 성령이 내려오셔서, 각 사람에게 불꽃으로 임하셨다. 이를 목격하고 성령을 받은 베드로와 사도들은, 요엘의 증언을 들어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과거에는 우리가 알다시피 특정한 임무를 띤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선포하는 사람들에게는 제일 먼저 ‘성령의 나타남’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로 우리가 짐 진 모든 채무들을 탕감하신 이후부터는,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그 증거로 각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내어주신 첫 번째 선물이라면,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두 번째 선물은 성령님이시다.누구든지 그가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를 탕감 받으면, 하나님의 신이신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여 계시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신이 한정된 지성소에 계시던 것과는 달리, 각 사람을 성전삼아 그의 내면에 임재하신 것이다. 이 복음으로 인해서, 오늘 날 우리 사회의 인권과 가치가 보편적으로 많이 회복이 되었지만, 그 시절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구원이 있었다. 지배자나, 글을 아는 이들이나, 뛰어난 이들에게만 구원이 독점 되었고, 일반적으로 서민들에게나 여인들에게 구원이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하였다. 그런데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성령이 임하시는 것이었다. 이로써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하늘의 은총을 받았고, 자신들도 영혼이 있고, 구원을 받았음을 확증할 수 있었다. 성령이 자신들에게 임하신 증거들이 방언이라든지, 병 고침의 은사라든지, 예언의 은사라든지, 각양 은사들이 각 사람들에게서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인 교회가 구성되었고, 이로써 이들에게서 나타난 공통점은, 저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통치권 안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이같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가 수용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이룬 이들에게, 서서히 죄에 관한 성찰들이 일어나게 되었고, 율법으로 길을 걷던 이들도 점차로 복음의 가르침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이 일상화 되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옛 사람과 그의 율법적인 삶이 폐기된 것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찾았기 때문이다. 사단의 권력 아래에서 품삯을 받으며 종노릇하던 이들이 예수의 피 값으로 모든 채무가 탕감되어서, 죄와 사망으로 억압되던 흑암의 권력에서 해방되어, 용서와 수용과 사랑으로 다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안으로 들어와 사는 거룩한 시민권자가 되었던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6-22
  • 83. 제54회 총회장 문재구(文在球) 목사
    전남 구례 출생문재구(文在球 1902.4.24-1981.2.4) 목사는 전라남도 구례에서 출생하였다. 구례(求禮)는 동으로는 하동군, 서는 곡성군, 남은 승주군과 광양군 북은 남원군과 인접해 있다.이 지역 역시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일찌기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조선야소교장로회 사기(史記)에 보면 이 지역에는 1908년(戊申年)에 장성(長城) 율곡리교회, 강진(康津) 학명리교회, 장흥(長興) 석금리교회와 더불어 구례읍교회가 설립되었다(조선야소교장로회 사기 上, 차재명 편, 기독교창문사 1928, p.259-262 참조).문재구 소년이 태어난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조선왕조가 500년 간의 수명을 다하고 외부로부터 개방을 요구받으며, 미래를 내다 볼 수 없는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한말의 어수선한 시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정치가 혼미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먹는 문제와 생활에 여유가 있을 수 없었던 시기에 태어났으니 희망이 있을리 없었다. 당시의 경제사정은 지방관리들의 부정부패와 매관매직으로 사회질서가 붕괴되어가고 있었고, 관리들의 학정이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봉기로 이어지고, 외적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남해안과 서해안을 제집 드나들 듯 날뛰고 있으니 일반 백성들의 삶이 말이 아니었다. 이럴 때쯤 기독교 복음이 조선의 남단 전라도에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 의해 전해졌다. 목포와 광주에 이어 전주와 순천을 거쳐 이곳 구례땅에도 구원의 복음이 남장로교 선교부에 의해 전파되었으니 문자 그대로 복된 소식이요, 구원의 소식이었던 것이다. 이 지방에 첫 발걸음을 내대딘 선교사는 배유지(Eugine Bell, 1868.4.1-1925.9.28, 裵裕祉)였다. 배유지 목사는 1868년 4월 1일 미국 캔터키주 스코트선교구에서 출생, 1891년 센트럴대학교를 졸업한 후 1894 켄터키신학대학을 졸업하고, 1873년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나주, 목포 등에서 선교활동을 한 선교사이다. 그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먼저 여의고 잠시 귀국했다가 1904년 12월 다시 내한하여 수피아 여학교와 숭일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어서 광주기독병원 설립에 공을 세우기도 했고, 1911년 10월 15일 전라노회를 창립하고 부회장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이어 1914년 선교사로 예장 제3회 총회장이 되었다. 배유지 목사는 1919년 평양장로회신학교 교수를 지내다가 1925년 9월 28일 광주에서 오랜 격무로 병고로 사망했다(내한서교사 총람, 김순태 박혜진 공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4, p.123 참조). 평양 장로회신학교 제38회 졸업 목사안수순천신학교·총회신학교 강사 역임“절대신앙, 절대순종”이 목회철학“WCC·NCC에 가담한 목사 강사 초청 않기로김화복·박덕종·양춘식 등 신비주의 운동가들 집회 강사로 초청 불가”구례읍교회 설립과정을 잠시 살펴보면, “求禮邑敎會가 設立하다 先堤에 本郡居高鉉表가 多年 外國에 체류하다가 歸來後 救世軍이라 自稱하고 同地에 傳道하야 信者가 百餘人에 達함에 六拾圓을 捐補하야 鳳南里에 家屋을 買收하고 禮拜堂으로 使用하더니 義兵의 亂을 因하야 敎人은 離散하고 禮拜堂은 日兵의 占據가 되니라…(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上 1928, 기독교창문사, p.262 참조).재구 소년은 고향에 설립된 교회를 통하여 선교사들에 의해 기독교인이 되어 새로운 영적세계와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는 1921년에 정식으로 기독교에 입신하여 이듬해 1922년에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1923년 선교사들이 세운 순천매산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선교사의 추천을 받아 평양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 1943년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제38회로 졸업하였다. 그해 가을에 목사로 장립받고 1943년부터 1946년까지 고향의 구례읍교회에서 목회하였고, 1923년부터 1939년까지 한국농촌진흥운동에 헌신하였으며, 1945년부터 1963까지 순천노회가 세운 순천보통성경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 1946년부터 1966년까지 순천시 가곡교회(1920년대 설립) 위임목사 시무 후 원로목사로 추대받았다. 1954년 순천노회 노회장이 되었고, 그는 총회장이 되기 전에도 이미 1957년엔 순천신학교 이사와 강사를 역임했으며, 1958년에는 한성신학교 이사와 같은 해에 교단내 호남협의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1958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운영하는 총회신학교 강사와 이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다시 1968년 예장 제53회 총회에서 부회장에 당선되었고, 이듬해 1969년 9월 25일부터 30일까지 서울장충교회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54회 총회에서 역경과 고난 가운데 부름받아 신앙의 맥을 세운 그에게 교단의 수장(首長)의 위치인 총회장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다.그의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는 설교 한편을 요약 소개한다. 성경본문 시편 116편 12절을 통해 <여호화께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제하의 설교를 살펴보면, “부족한 종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감사하고 더우기 늦게나마 종의 직분까지 주셔서 주의 몸된 교회를 봉사할 수 있게된 것은 제가 받은 축복 중 축복입니다. 내가 걸어온 신앙의 길에는 물론 부끄러운 것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간증할 수 있는 몇가지를 피력하고자 합니다.”라고 전제하고서는, 그 첫째가 예배 성수의 문제(主日聖守)가 가장 큰 은혜임을 고백하고 있다. 바쁘다는 핑계로 교통의 어려운 핑계로 성수주일을 범하지 않는 기쁨과 감사로 평생을 보내게 된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은혜로 생각하였다.둘째로는 평생을 교역자이면서도 타교역자의 요청이나 상회 지도자에게 존경과 순종으로 일관해 살아온 것을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었음을 고백하며 살았다. 셋째 자기의 삶이 과연 주님과 교회와 성도들에게 희생과 봉사의 자세로 살게 하신 것에 대하여 이것이야말로 주께서 당신에게 베푸신 가장 큰 은혜였음을 설교문을 통해 고백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결론적으로 문 목사는 자기의 지나온 길을 가만히 돌아다보면서 늘 감사한 것은, 불충분하고 불의한 종임에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늘 붙들어 주셨다고 진솔하게 설교에 나타내보였다. 이와같은 절대신앙과 절대순종과 헌신이 바로 문재구 목사의 철학이요 목회관이었다고 생각한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편, 예장총회 출판부 2015 서울, p.55-58참조).마지막으로 문재구 목사가 총회장으로 재임했던 제54회 예장총회 결의안을 잠시살펴보면, ① 차남진 목사를 미국 선교사로 파송하다. ② 전북대회 조직을 허락하다. ③WCC와 NCC에 가담한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지 않기로 하다. ④ 총회신학교 교장으로 박형룡 목사를 인준하다. ⑤ 산아제한에 대한 문의건은 성경원리상 불가하다. ⑥ 대통령·정부·국회에 다음사항을 정책부에 맡겨 심의 건의하기로 하다.(문화재란 명목하에 사찰에 국고를 지원하고 있는 일, 예비군 훈련에 있어서 목사 전도사는 훈련에 있어 대신 교양지도를 할 수 있게 해 주실 일, 교회당 300m 부근에 오락실을 설치하는 일, 지방신학교와 성경학교에 당국이 간섭하는 일, 주일성수 문제에 관한 일, 군목·군승의 공동의식 반대에 관한 일). ⑦ 주일에 일반학교에서 각종행사를 하는 일에 대하여 정부 당국에 건의토록 하다. ⑧ 성직자 활동 한계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확인하다(목사의 정치활동에 관하여서는 제38회 총회결의대로 한다. 정교분리와 양심자유의 기본원리를 존중하되 집단조직 행동에 참가하지 못한다. 성직자는 언제나 복음설교와 말씀을 파수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신성과 권위를 위해 조심하여 교회에 덕을 세워야 한다.) ⑨ 불경건한 신비주의 운동과 김화복, 박덕종, 양춘식 씨와 WCC, NCC 노선에 가담한 목사를 강사로 초청하는 일과 집회에 참석하는 일을 금지하기로 하다. 그 어느 총회보다 교단 내외의 이슈가 많았던 총회였던것 같다. 문재구 목사는 목회자의 모범을 몸으로 실천해 승리한 지도자요 한 생을 오로지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만을 외치다가 간 우리 목회자들의 전형이었다. 파란만장한 한 시대를 살며 복음의 역군으로 우뚝선 호남의 대표적인 초기 교회지도자였다. 1981년 2월 4일 79세의 일기로 그렇게 소망하며 살다가 주님의 나라로 영민하였다. 그의 아들 문인협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서울 강일교회를 섬기다가 일선에서 은퇴하였다(한국기독교대사전 박용규 편저, 성은출판사 1978 서울, p.354 참조).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7-06-22
  • 믿음은 존재의 행위
    믿음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근본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것 없이 사람들 사이의 교제도 있을 수 없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교도 없다. 믿음의 본질은 신약에서 처음으로 발전되나 구약에서도 경험의 중요한 단계를 밟아 나타난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그를 창조주로,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의 구원하시는 자비를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를 온전하신 구주요 인간의 영혼의 절대적인 주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인 십자가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맺은 것이다.그리스의 정치철학 고전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존재를 연구하면서 존재의 1차적 의미는 모든 것이 밑바탕에 있는 본질 또는 그 형상이라고 한다. 인간은 행복을 바라는 존재로서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신앙적 덕을 실천함으로 가능하다는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존재 개념에 단일한 의미를 부여하려 함을 알게 된다. 대표자 토마스 아퀴나스 등 스콜라 철학은 중세 후반기에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 자연과 인간을 조화시킴으로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스콜라철학이 등장하고 신앙적 덕과 영으로 행복을 추구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만물 속에 투영시키고 생명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찾게 하신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만물을 보면 생명은 모채를 통해 잉태하고 낳는 과정이 사랑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잉태를 알게 한다. 이는 인간의 생명이 근거가 되고 땅은 개체생명의 모체로서 생명의 산실로서 역할을 한다. 그리하여 모든 생명들은 이 땅에서 상호교류하며 소통하며 평등하게 누릴 권한과 성장하는 기회를 4계절을 통해 똑같이 제공받는다. 이렇게 땅은 생명의 생성과정에서 하늘의 창조질서를 따라 생명을 지속하고 유지한다.세상에 존재하는 진리 가운데 만고불변의 법칙은 “생명만이 생명을 생성시킬 수 있는 생명작용이 가능하다는 것과 생명들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 또한 과학적인 사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과학에서 무생명으로 보았던 햇빛, 땅, 물, 공기 등도 본질적으로는 생명력을 보유한 생명이라 한다. 왜냐하면 이들의 생명작용에 의하여 생명들이 생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회복에 앞장서서 생태계의 위기를 보며 삶의 환경을 살리는 실천이 여기에 요구됨도 알게 한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 하실 때 그 안에는 질서가 있었고 하나님의 주권이 있었고 하나님을 향한 생명의 경외(敬畏 )가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세계는 선했으나 인간들이 그 위에 군림하고 억압하는 타락과 그 죄로 심판을 받는 점을 자연은 알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은 모든 생명관계 안에 일하고 섬기며 책임지는 청지기적 존재로서 삶을 영위하여야 하며 생명은 서로 존중하는 상호적인 관계를 갖게 함을 알게 한다. 이 상호적인 관계에서 서로 나누는 사랑의 자리를 알게 한다. 사랑은 서로가 행하는 것으로 서로 이끌리는 것이다. 결국 사랑은 하나님이 창조 과정에서 모든 의식 체계에 부어 주신 이끌림이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하나님의 실재에 참여하며 거기서 하나님의 실재를 끌어들인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무한한 사랑이시다. 여기서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드님의 상호적 사랑이시고 인간 존재와 모든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 주시는 분이다. 그리하여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의 승리는 강압이 아니라 설득력과 매력 또는 마음을 끄는 힘, 결코 소진되지 않는 무한한 영혼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생명이 차오르는 힘은 능동적으로 자기를 성장 성숙해 낸다. 꽃이 피는 것은 꽃의 가능성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이 결핍을 채웠기 때문이다. 사랑의 힘으로 조건을 능동화시켜 생명을 탄생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는 생명은 없다. 생명은 존재한다는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 다. 그리하여 생명은 우주를 지탱하는 힘이며 그 지탱하는 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현대 사회는 행동 기준을 상실한 시대이다.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명확한 답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초고속으로 달려가는 현대문명 앞에 참된 삶의 의미와 가치관에 의미를 가졌던 낡은 윤리체계와 행동기준이 무너지고 거기에 대처할 새로운 윤리체계와 행동기준이 아직 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윤리적 상황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6-22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10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10.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엘리야 당시 아합은 북방 이스라엘의 왕이었다. 남방 유다에도 신앙적으로 선한 왕 보다는 악한 왕들이 더 많았다. 유다의 열 두 번째 왕 아하스의 통치 기간 중 유다의 배도와 타락은 극도에 달했다. 이전에 우상숭배에 저항해 오던 많은 사람들까지도, 심지어는 제사장들 중에서도 아하스의 권력과 위협에 굴복하여 우상숭배에 적극 가담하므로 하나님 예배를 가장한 거짓된 의식을 통하여 유다를 타락의 골짜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그들을 견책하며 하늘의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가 바로 이사야였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 1:10~12). 오늘날에도, 신실한 믿음 없이 친교를 위하여, 사업상 거래를 위하여, 사회활동의 하나로 교회를 출입하는 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다.이러한 배도와 타락을 주도한 아하스 왕의 아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유다의 개혁에 앞장섰던 히스기야 왕이다. 그러나 히스기야를 이어 왕이 된 그 아들 므낫세는 할아버지 아하스의 기질을 받아서 또 다시 유다를 타락시킨 대표적인 왕이 되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 왕도 여전히 악한 왕이었으나 그 다음 대(代)에 또 이변이 일어났다.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는 유다를 가장 성공적으로 개혁하고 부흥시킨 대표적인 왕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닮지 않은 두 아들, 히스기야와 요시야의 개혁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히스기야의 예배 개혁 사업북방 이스라엘이, 배도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앗수르에게 지속적인 공격을 받으면서 국운이 쇠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본 히스기야 왕은 북방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국가의 부흥과 개혁을 착수하였다. 우선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 봉사의 회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말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협력을 요청하였다. “우리 열조가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이켜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대하 29:6) 우상을 섬기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이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로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대하 29:10)라.왕의 이러한 요청과 독려에 힘을 얻은 유다의 경건한 지도자들은 즉시로 힘을 모아서 성전의 문들을 고치고 제단을 보수하고 성전의 거룩한 도구들을 제 자리에 놓고 하나님께 제사하며 예배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리고, 왕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는 제물을 드렸고, 먼저 자신들의 죄악과 함께 온 이스라엘의 죄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구하였다. 성전 문들이 닫혀있는 어두운 세월동안 희망을 잃고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방황하던 백성들은 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감동하였고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온 나라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회개의 부흥이 일어났다.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였고 지도자들을 용기를 내어, 여러 해동안 지키지 못했던 국가적인 유월절 축제를 다시 열었다. 수많은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북방 이스라엘에서도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동참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의 언약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였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대하 30:26). 지도자의 책임과 사명옛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백성들의 운명은 왕에게 달려 있었다. 선하고 영성이 있는 왕을 만난 백성들을 행복하였고, 악한 왕을 만난 국민들은 불행하였다. 그만큼 지도자의 정신과 영성과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나 지도자가 되려고 하면 안 된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목사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의 상태가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한 사람의 인품과 신앙과 능력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과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는 우선 자신이 하나님 앞에 바르고 정직하고 경건하게 서야 한다. 지도자나 목사들은 백성들에게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본을 보이며 따라오게 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개개인의 영생과 영멸에 영향을 주는 목사의 역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목사나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 길을 선택하기 전에 매우 심사숙고 해야 할 것이다. 목사가 된 이후에도 순간순간 자아를 살피며,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를 살펴야 한다. 목사는 대접을 받는 직업이 아니라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시야의 율법회복 개혁요시야는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으나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심성을 가진 신앙심이 깊은 왕이었다. 8년 후 16세가 되었을 때에 그는 평생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순종하며 살 것을 결심하였다. 20세가 되면서부터 요시야는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전국을 순회하면서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대하 34:3)렸다. 그리고 그 제단의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대하 34:5) 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다.요시야가 26세가 되었을 때 성전 수리를 시작하였다. 성전 보수 공사를 하던 중 제사장 힐기야가, 오랫동안 잊혀진 바 되었던 율법책을 발견하였다. 100여 년 전 히스기야의 개혁을 통하여 유월절을 지키기 시작했을 때에 매 절기마다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주는 법이 제정되었다. 히스기야의 체세동안에 나라가 번영했던 것은, 백성들이 율법책을 읽고 들으며 그 언약의 책에 주어진 법도를 즐겨 순종한 결과였다. 그런데, 므낫세가 그 모든 규례와 법도를 버렸고, 그의 부주의와 태만 때문에 율법책의 사본을 잃어버렸다. 이리하여 백성들을 그 귀중한 교훈을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여러 가지 우상들을 만들어 숭배하는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어 왕에게 전달하였다. 왕의 요구에 따라 사반이 그 율법책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 왕은 자기의 옷을 찢으며 부르짖었다. “우리 열조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치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대하 34:21).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들을 긴급하게 소집하여 성전으로 올라갔고, 그 때에 모든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도 모두 함께 모였다. 왕이 직접,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왕하 34:31)고 천명하였고 백성들은 모두 이 말씀을 따르겠다고 응답하였다. 왕의 결심과 결단으로 유다 나라에 감동적인 개혁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대하 34:33)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선두에 서서 교단과 각종 조직체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이, 교회의 성도들을 목양하는 목회자들이, 요시야의 정신으로 개혁사업을 시작한다면 한국 기독교회는 수년 내에 큰 부흥과 개혁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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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6-09
  • 목회는 쉬운 것이다·32
    기업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자기 자신도 모르게 거짓도 그리고 위선을 할 수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에서도 감정 자체가 무디어져서 시간이 갈수록 우상의 도시에서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신들과 우상을 만들게 됩니다. 그것이 현대교회에서 사용하는 교회성장이라는 프로젝트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은 각종 마케팅 기법을 동원하여 시장 조사를 하고 판촉을 하고 이벤트를 하며 매출을 늘리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 쓰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크고 작은 것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른 것도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요나의 경우 10만이 넘는 한 도시 전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경우는 한 번 설교에 수천 명이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울은 수일 동안 애쓰고 힘썼으나 단 몇 명만이 복음을 받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격차와 선교에 관한 평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요나와 같이 베드로와 같은 비전을 둔다든지 희망사항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고 하지 않았고 장기적인 목회 계획도 없었기에 이들 모두는 자유했습니다.어느 책에서 한국교회는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을 세 가지로 평했는데, 곧 ‘삼허현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그 상세한 내용을 기록했는데 무릎을 칠 정도로 그 말에 동감했으며 그보다 중병에 진단은 매우 단순한 일이었으면서도 치유하기 힘든 뱀이 제공한 ‘뻥’의 속성이었습니다.선악과를 먹으면 분명히 죽기 때문에 성경은 ‘정녕’ 죽으리라고 했는데 ‘죽지 않는다’라고 하여 먹으면 너는 ‘밝아지고, 같아지고, 알게 된다’라는 오늘의 삼대 뻥을 주신 것입니다. •첫째 허수(虛數) : 교인 수 등 중요한 통계치는 두 배, 세 배로 과장합니다.•둘째 허세(虛勢) : 물량주의에 자기과시욕으로 정직성을 상실합니다.•셋째 허상(虛像) : 큰 것을 갈망하여 고무풍선에 바람을 계속 집어넣는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합니다. 결국, 터져버려 추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알면서 반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숫자에 매이기에 허세와 허상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믿음이라는 단어로 포장합니다.현대교회의 최고의 가치와 숫자를 중심으로 합니다.크고 많은 것이 옳다는 이 세상의 가치를 성경의 진리라고 믿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여기에서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며, 진정한 교회를 할 수 없으며 교회가 마치 비즈니스 개업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한다는 의미보다는 교회를 차리고 개업한다는 생각이 신학생들의 갈등인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서 교회는 기업입니다. 그리고 목사가 사장이요, 회장으로 둔갑되어 으리으리한 공간과 값 비싼 가구와 골동품으로 장식하며, 그보다 명령하고 통치자로 군림하여 많은 직원을 지배하는 것을 목회하려는 사람들의 꿈이 되었습니다.그보다 최고급 승용차로 같은 무리와 경쟁하는 상류 사회에서 끼리끼리 필드에서 골프채를 자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최상의 축복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기에 기업, 재벌가의 대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기업의 사장을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성이 오히려 일반 기업주보다 한 술 더 뜨는 이단 종파의 교주가 된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일반 기업의 형태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성으로 위장했으니 감사도 받지 않고 폭리를 누리고 있다고 하면 잘못된 말이 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교회라는 이름 안에 마케팅 전략이 들어오게 되어 교회당 건축에 더 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터 드리커의 말에 빌 하이벨스 목사는 사무실 앞에 걸어놓은 표어가 ‘너의 비즈니스는 무엇인가? 너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이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써 붙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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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광재 칼럼
    2017-06-09
  • 전주 한옥마을 이야기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두 시간 정도를 가면 전주역에 도착합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택시비가 약 5600원 정도가 나옵니다. 한옥마을 입구 왼편은 오목대입니다. 고려 말 이성계가 전라도에 들어온 왜구를 물리치고 승전을 기념하는 잔치를 병사들에게 베풀었다는 곳이지요. 그 입구에서 100여 미터 가량을 들어가면 ‘경기전’이 있지요. 이곳에는 이성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어진이 있습니다. 입구 오른편에 중앙초등학교가 있고, 그 초등학교 뒤편에 ‘최명희 문학관’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17년간의 자료 고증과 수 년간의 집필을 거치고 1년여 간의 교정을 끝낸 후 『혼불』이라는 대하 소설을 출간한 최정희의 친필 원고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소설 문체에 서정의 옷을 입혀 한국인의 역사의식과 혼을 담은 그녀의 필치를 엿볼 수 있기도 하지요. 경기전 돌담길과 최명희 문학관 사잇길로 150여 미터를 가다 보면 동문 예술의 거리가 나오고 예전의 동문 사거리가 나옵니다. 그 사거리 왼편 모서리의 남쪽에는 ‘조화당’이라는 제과점이 있었는데, 1960년대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나의 큰누님은 매형이 그곳에서 주말마다 단팥죽을 사 주며 청혼하는 바람에 결혼하였고, 내가 그 제과점에서 앙꼬빵을 100원 어치씩 사다 주는 심부름을 한 덕에 큰형과 형수가 결혼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였습니다. 명절 때면 어머니가 떡가래를 뽑는 방앗간은 사거리 오른쪽 모서리에 있었고, 그 옆에는 새벽마다 종소리를 울리며 두부를 파는 두부장수의 집이 있었습니다.그 제과점에 다다르기 전 왼편에 내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터가 있습니다. 예전엔 88평의 대지 위에 40평의 한옥이 세워진 매우 아름다운 집이 있었는데, 현재는 삼층 건물이 세워져 있어 옛 모습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지요. 그러나 나는 문인들과 함께 그곳을 갈 적마다 예전의 한옥을 그려보곤 합니다. 40여 평의 마당에는 제법 굵직한 바윗돌이 죽 둘러쳐진 가운데 소나무와 각종 과실수와 화초 들이 심겨져 있었고, 여름에는 넓은 툇마루 위에다 커다란 모기장을 펴 놓고 7형제가 그 안에 들어가 마당 위의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을 바라보며 오순도순 이야기하다가 잠이 들곤 하였습니다. 한 번은 잠에서 깨어 소변을 보기 위해 오강을 찾다가 그만 20대 처녀였던 누님의 배를 누르는 바람에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갑자기 아악 소리가 들이자 도둑이 든 줄 알고 큰형은 방망이를 들고 불을 켰고 식구들이 모두 눈을 부스스 뜨면서 일어났습니다. 여기저기서 “웬일이다냐?” “왜 그려.”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나는 얼떨결에 소리쳤습니다. “소변 보러 오강을 찾다가 그만 누님 배를 눌렀그만이라우.” 그러자 “그려.”, “아따 나는 도둑이 든 줄 알고 간뎅이가 떨어져 나간 줄 알았당께로” 하며 각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소란은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마당 수돗가에서 당시 대학을 다니던 큰형이 양치질을 하며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이. 자가 처녀 젖가슴 만질려고 헌 것 아니여?”이 말은 10살밖에 안 된 나에게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명문 전주고에서 우등생이었던 작은형도 한 몫 거들었습니다. “그럴 지도 모르지라이잉. 나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입문』책을 본께 야들도 여덟 살만 되면 성욕을 가질 수 있다는디, 누님. 야가 누님 어디를 만졌소?”누님은 얼룩무늬 원피스의 배를 만지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잠결에 잘은 모르겄는디 배를 누른 것 같혀. 갑자기 누르니께 아프더랑께.”작은 누나들도 토끼 눈을 하고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건 나를 영 엉큼한 놈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나는 그저 오줌 싸러 모기장을 들추고 나가다가 그냥 누님 배를 누른 것밖에 죄가 없는디.”그러자 큰형이 나직하게 말했습니다.“야. 솔직히 말혀 봐라. 너 누님 젖가슴을 만지고 싶은 게 아니었어?”나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습니다. “나는 그냥 소변 보러 가다가 누님 배를 짚은 것 뿐인디.”그러자 식구들의 의심의 눈초리를 제지한 분은 어머니였습니다.“야 이 녀석들아. 그런 소리 허들 말어. 이 열 살배기도 안 된 것이 뭘 안다고 너희들이 야단법석이여. 얘가 어렸을 적부터 내가 데리고 다녀봤지만, 네 살 이후부터는 나한테 젖 달라고 허지를 않았던 순수한 애여. 너희들이나 엉큼한 마음 먹지 말고, 우리 막내를 엉큼한 애로 몰아가지들 말어.”나는 그제서야 나의 진심을 알아 준 어머니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전주 고향집 앞을 지나면서, 나는 어릴 적 한없이 사랑을 퍼 주기만 하셨던 어머니를 그려 보았습니다. 내가 이제껏 순수를 지키며 살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신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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