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1(일)

지난 칼럼
Home >  지난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지난 칼럼 기사

  • 오늘의 시대를 보며 인간의 삶의 자리를 살핀다 2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힘든 유혹(뇌물)과 함께 요청이 오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할 때 무엇이 그 잣대 노릇을 할까? "모래위에 집을 짓는다던가?" "밑이 빠져 새는 물통"처럼 헛수고는 말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 제일주의와 권력이라는 등식관계를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사회 제도 속에서 권력 남용이라는 인식의 현실에 시달려 왔다. 가치가 혼돈된 시대에 방황하는 국민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인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개혁의 방향은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의식 개혁이 먼저 더 중요한 정치 현실임을 주지한다. 오늘의 정치의 위기는 잘못된 가치의식과 그 규범에서 유래된다고 본다. 양심의 빈곤, 윤리의 타락, 질서의 굴절이라는 정신적 질환은 '정의 보다는 불의, 신뢰 보다는 불신, 질서 보다는 무질서가 속출하는 처절한 사회현실'을 보게 한다. 삶의 가치는 반드시 정로(正路)를 걸어가야 얻어진다. 정치가 진실과 정의와 인권과 박애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자기이권을 중심으로 음모를 일삼는다든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국민을 기만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결과는 허무와 몰락 일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자기의 양심과 신념, 신조를 속이지 않고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범한 아량을 보여주며 진실을 말해 주는 자세는 존경받는 생활 자세이며 영향력을 가진 몸가짐이라 할 수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합리적 판단과 소신에 따라 결정을 행하려고 하는데 이에 다른 결정을 내려 주도록 자기와 친한 동기 동창생이 혹은 친척이 혹은 고향 친지가 부탁해 오는 경우에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로서는 도저히 힘든 유혹(뇌물)과 함께 요청이 오는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할 때 무엇이 그 잣대 노릇을 할까? "모래위에 집을 짓는다던가?" "밑이 빠져 새는 물통"처럼 헛수고는 말아야 한다. 화이트헤드(A.N.Whitehead,1861-1947)는 "과정신학"을 신학에 적용하여 인간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공간과 시간과의 관계를 전제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제시함을 알게 한다. 이는 인간과 공간의 삶의 관계가 내면적이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이 행동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조정함과 동시에 행동하는 것으로 공간을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은 인간의 생활 속에서 사실과 의미를 갖게 되고 사물에 있어서는 사실공간, 자연공간, 인간적 공간으로 그 의미 있는 공간이 된다. 무엇보다도 공간에 있어 인간은 신체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마음에 의해 살아가는 것임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지금에 와서 인간을 포함해서 모든 창조 우주세계를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보게 하는 통찰력으로 그 신앙을 갖게 한다. 이는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공유하는 '우주공동체 의식'을 제공하는 신앙임과 동시에 하나님과 만물과의 신비한 관계를 깨닫게 하는 영성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사는 삶'으로서 우리는 우주와 만물을 단순히 물질의 세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몸의 일부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보살펴서 함께 살아가는 우주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삶의 가치를 구원하는 삶으로 살아가게 하심의 하늘의 뜻을 알게 한다. 이를 "하나님의 시간에 붇둘린 삶"이라 한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신 피조물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계심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주전체와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지음을 받은 몫이 있는 삶의 피조물임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모두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야 되는 삶으로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의 삶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을 사는 사람은 하느님께 붙들린 삶을 살고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깨달아야 한다. 이는 곧 인간이 모두 영원한 시간 안에 생명의 삶을 살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영원한 시간 안에 잠입해 있는 시간과 역사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항상 그 삶은 종말을 보고 산다. 시대의 변화는 새로운 문화로 옷을 바꾸어 입고 시절에 따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시간에 붙들린 삶"으로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삶임을 명심해야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7-14
  • 성육신한 예수교회-52
    바울이 돌아가기 직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디모데후서를 보면(딤후 3:9-18), 그가 떠나가기에 전 까지 함께한 자는 ‘의사인 누가’였다. 이 사람은 바울을 끝까지 지켜본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들은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주제로 기록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켜본 바울 사도는, 신학자들의 견해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수난의 메시아’를 전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난 십자가의 복음’에 집중한 나머지 비롯된 주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 복음서들은 복음을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선포하였고, 사도들은 복음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주장은, 바로 최근까지 알려진 견해이다.그런데 신약신학자들은 이차대전 이후부터, 오늘의 한국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지만 열매가 약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이다. 복음에 대한 이해를 마치 한 이단종파의 구원론 같은 정도로만 인지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열매가 없는 이런 이유에 관하여 그 근원을 신학적인 통찰에서 찾으려는 노력으로 인해서, 지난 한세대의 신학적인 논쟁 결과로써,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란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면, 저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칭함 받고,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나라로 옮겨진 천국시민권자가 되기 때문에, 저는 구원을 받은 자로서, 구원과 소명에 따른 책임을 갖는 자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시민이 된 것이다.‘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구교인 가톨릭에서만 왜곡되었던 것이 아니고, 종교개혁 가운데에 있는 개혁교회들에게서 있어온 것이다. 가톨릭이 ‘좌향좌’ 이었다면, 개혁교회는 ‘반 우향우’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으리라. 바울은 로마서 서론에서 그가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 하였으나, 개혁 학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치중하다 보니 ‘성령에 의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아들로 선포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홀히 하여 왔던 것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십자가를 지시려고 골고다로 향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자기 백성들을 사망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써 값을 치르시고,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던 자기 백성들을 속량하여, 하나님나라의 통치 아래로 옮겨 놓으신 사건임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다.복음서 중에서도 절반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초점을 둔 요한복음서 마저도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하였다. 우리는 복음서가 먼저 쓰인 이후에, 바울 서신이 쓰인 것으로 착가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이지만, 기록의 역사에서는 바울서신이 제일 먼저 선포된 복음이다. 누가가 증거하는 사도들의 행적들에서 바울은 얼마나 역동적으로 사역을 하였는지, 후진들인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다. 이 뿐 아니라 그는 자신이 알던 지식과 경험을 모두 오물같이 여기고 폐기 처분 하였다. 이는 오늘의 복음 사역자들이 스펙으로 여기는 학력과는 정 반대이다. 저는 오로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성령의 나타나심을 앞세웠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죽은 자가 일어났고, 병인들이 치유되었고, 심지어는 사도들의 그림자가 자신들에게 스쳐가기를 바랬고,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뒤를 밟아 순교됨으로서 음부의 권세가 교회에 굴복되었다.하나님나라가 서려면 주권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시위된다. 군대가 징집되고 지휘관들이 임명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나라의 통치자로부터 지휘관들이 먼저 권한과 능력을 받는다. 이는 오늘의 사관학교 졸업과 함께 지휘관 임명 절차에 잘 나타나 있다. 기름부음에 있어서만큼은, 모세와 아론의 대관식에 짝퉁 불이 등장할 수 없었던 바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대관식에도 짝퉁 기름부음이 불가하였다. 친히 성령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하시는 그리스도께 기름 부어진 것이다. 사도들도 그러했고,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부어졌다. ‘하나님나라’에 있어서 오늘의 개혁교회가 슬며시 포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희가 성령으로 권능을 받고, 나의 증인이 되리라’일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7-14
  • 홍덕선 장로
    원곡 김기승의 제자로 개인전 27번… 매주 사랑의 쌀 조찬기도회 참석 춘파 홍덕선 장로(예장합동 목동중앙교회 원로, 72세)는 개인 및 단체의 서예전 준비에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금년 들어서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서예전람회 공모전 겸 시상식, 제9회 대한민국기독교서예상 시상식 및 전시회, 제11회 한국기독교서예협회 회원 전,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명시, 명언 특별 전시회 등을 개최하였다. 홍 장로는 기독교서예협회의 회장을 맡아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전시회 등 큰 행사를 준비하는 일에 바쁘지만, 교계연합행사에도 열심히 참석하고 있으며, 특히 매주 토요일 사랑의쌀나누기운동본부 조찬기도회는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다.1980년도 제1회 서예전시회를 예총화랑에서 개최한 이래 지금까지 27회의 개인전시회를 열어왔다. 아마도 대한민국 서예가 중에 가장 많은 전시회를 개최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무엇보다 홍 장로의 서예작품은 모두 성경 말씀만 일관되게 작품화 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서예가로서 보람과 긍지를 가진다고 말한다. “정성껏 준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시할 땐 많은 성도들이 공감하고 하나님께 영광이지요.”홍 장로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탐독하고 5시에 새벽기도회를 다녀와 6시부터 붓글씨를 습작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홍 장로가 서예가로서 명성을 얻고 유지하는 데는 그의 꾸준한 노력과 습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전시회를 위해서 평소에 쉬지 않고 준비해 온 결과 매년 3회 이상의 개인전시회를 열 수 있다고 한다.홍 장로는 어릴 때부터 서예실력이 뛰어나 많은 상과 표창을 받았고, 1965년부터 서예가로서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세에 서예학원 강사로 시작 서울 청파동에서 서예학원을 열어 40여년동안 후진양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서예가로서 홍 장로는 동아일보 문화센터 서예 강사 27년, 기독교방송 서예 강사 20년, 서울 환일고등학교와 신광초등학교 교사들에게 20여 년간 서예 지도를 하였다. 그 외에도 럭키 금성(LG)에서 서예지도를 했고, 한국도로공사에서도 직원들에게 10여 년 동안 서예 지도를 하여 서예가로서 널리 알려진 예술인이다.홍 장로는 국전 서예부문 입선과 특선에 이어 초대작가와 국전심사위원을 역임하여 서예가로서 정상에 올랐다. 서예가로서 예술성을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원곡 서예상, 기독교서예대상, 기독교문화상, 한기총 문화예술상 등 수상경력도 다양하다.홍 장로는 원곡 김기승 서예가로부터 사사(師事)를 받아 원곡의 제자로서 추사체 이후 대한민국에서 원곡체를 보존 계승하고 있는 서예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존경하는 인물은 원곡 김기승, 갈물 이철경, 일중 김충현 선생 등 대한민국의 대표 서예가를 꼽고 있다.홍 장로는 80년 목동중앙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고 본 교회와 합동측 교단을 위해서 많은 헌신을 하였다. 교단총회에 총대로 파송 받아 상임위원장과 중요 요직을 거치면서 교단 발전에 기여했고, 전국장로회연합회외 전국남전도회연합회에서 부회장으로 역할을 잘 감당하였다. 홍 장로가 교회와 교단에서 존경받고 인정을 받는 것은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때문이라고 주위에서는 평가한다.홍 장로가 한국교회를 염려하면서 바라는 것은 “예수님은 사랑이신데 사랑이 없고 다툼과 시기가 가득한 현실이 안타깝다”며 화평을 이루는 교회와 연합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평신도운동 역시 “서로가 양보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보다 진취적인 사업을 전개하여 교계에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홍 장로는 평생 동안 서예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부인 안순복 권사(70세)의 말없는 희생적인 도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자녀들 1남 2녀는 모두 결혼했고, 저는 먹을 것, 입을 것,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은 걱정이 없습니다. 항상 집 사람이 다 알아서 하니까요.”라면서 가장 복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7-1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48
    나는 주일날 W교회 2부 예배 찬양대 석에 섭니다. W교회에는 예쁘게 꾸민 찬양대실이 있는데, 100여 명 이상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들이 놓여 있습니다. 창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교회의 넓은 마당과 벚나무 등이 심겨 있는 정원을 볼 수 있습니다. 창 밖 경치를 보며 녹차를 한 잔 마실 수 있는 여유를 가지다 보면 연습 시간이 됩니다. 숨을 깊게 들이쉰 후 대포알처럼 내뱉는 발성 연습을 한 후 본당에 들어가서 경건하고 정성들인 찬양을 부르고 목사님 설교를 듣습니다. 나는 다니엘 세이레 새벽 기도회에 꼭 참석합니다. 새벽 3시 50분에 일어나 간단히 세면한 후 집에서 6킬로미터 떨어진 교회에 갑니다. 어둠을 밝히는 불빛이 예배당 안을 환히 밝힌 가운데 삼백여 명의 교인이 속속 모여들어 예배를 봅니다. 예배가 끝난 후 나는 기도합니다. 아들이 정규직에 취업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딸아이가 임신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아내가 믿음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도록 기도하고, 형제들의 장수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침이면 책상 앞에 앉아, 그 날 주님이 주신 영감을 정리합니다. 이스라엘 민중에게 왕따를 당하던 삭개오를 나무에서 내려오게 하여 그 집에 머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남이 알아 주지 않아도 고독의 한가운데 앉아 글을 쓰는 나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합니다. 주님이 동행하심으로 글은 생명을 가지고 usb에 차곡차곡 쌓입니다. 주님은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함께 하십니다.두 달에 한 번씩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집 근처의 뷔페에 갑니다. 손자가 태어났다는 이야기, 손자들 돌보는 이야기와 함께 건강을 챙기라는 조언을 하면서 맛있게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갈 즈음 나는 팥빙수 기계쪽으로 가서 유리 그릇에 눈처럼 소복히 어름을 넣고 팥고물과 우유와 떡알과 미숫가루를 넣고 빙수를 만들어 먹습니다. 건강을 위해서 딱 한 그릇만 먹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임이 없는 날이 더 많습니다. 아내와 아들이 출근한 집에 아내가 차려 놓은 밥상이 있긴 하지만, 점심은 주로 동네 나들이를 하면서 먹는 편입니다. S동에 있는 메밀 국수 집은 제 단골입니다. 원래 나는 비빔 국수를 좋아하지만, 짠 것이 몸에 안 좋다 하여 그냥 물에 말은 국수를 먹는 편입니다. 요즘 들어 음식점이 잘 안 되어서인지 신장 개업한 집이 많습니다. J순대국집이 육천원짜리 한식 뷔페로 바뀌는가 하면, 엊그제까지 손님이 차고넘치던 K감자탕집은 요즘 한가합니다. 집에 오면 아내가 사다 놓은 빨간색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합니다. 앞치마를 둘러야 그릇을 씻을 때 물이 튀지 않습니다. 그릇 세척기가 있긴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 별로 사용 안 합니다. 설거지를 끝내면 싱크대와 식탁을 깨끗이 닦습니다. 설거지가 끝나면 빨래를 합니다. 세탁 시간은 19분으로 맞추어 놓습니다. 그래야 전기세가 절약됩니다. 와이셔츠나 바지는 탈탈 털어서 양손으로 쭉쭉 펴서 건조대에 걸어야 빨래가 말랐을 때 구김살이 없습니다. 집안 청소와 요리 이야기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家事가 끝나면 주일날 부를 찬양을 이어폰을 꽂고 듣습니다. 행여라도 위아랫집에 소음으로 들리면 안 되니까요. 가사를 먼저 익히고 내가 찬양하는 모습을 표정 연기까지 해 가며 마인드 컨트롤합니다. 가끔 솔로를 준비할 때면 일주일 내내 스마트폰을 들고 연습에 연습을 더합니다. 이래 뵈도 내가 음치를 면해 2부 예배 솔리스트가 된 것은 이런 연습 덕분인 것 같습니다. 오후에는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성경 구절을 인터넷에서 찾아 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 힘이 생겼다는 삼손 이야기,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넓은 땅을 확보하였다는 다윗왕 이야기, 주님이 주신 미모로 바벨론 왕에게 잘 보여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냈다는 에스더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사람들의 인간미를 상상해 봅니다. 저녁에는 퇴근한 아들과 식탁에 같이 앉습니다. 비록 계약직이긴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아들에게 마음 속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나처럼 우둔해서 취업을 할 수 있는 자격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절대 실망의 눈치를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자녀에게는 오로지 절대 긍정, 절대 낙관이라는 아름다운 마음이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내가 감사한 것은 나의 평범한 일상에도 주님이 동행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하고 말씀 보며 찬양하는 생활은 삶의 기쁨이며 활력이 되는 생활입니다. 내가 가족과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나와 동행하신다는 믿음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천국과 영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게 합니다. 그러기에 평범한 나에게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함께 하십니다. 이 주님은 오늘도 나와 동행하십니다. 이것이 나의 삶이 평범하면서도 위대한 이유입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7-14
  • 목회는 쉬운 것이다·35
    속세를 떠나서 깨끗한 세상 속에서 살아야 도를 지킬 수 있다는 중들과 같은 도피 행각입니다.기독교는 예수님의 삶처럼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셨음은 곧 구원받은 사람의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오늘 교회는 매임병이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만의 것으로 모이게 하는 것은 이단 종파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교주가 목사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방송 설교를 선교한다고 해놓고 꼭 자기 교회에 와서 상담하라고 자기 교회 전화번호를 가르쳐 줍니다. 그러면 제주도에도 교회가 수 백 개요, 목사님도 수 백 명인데 서울 강남까지 전화한다면 그곳 목사님은 모두 잘못된 이단이라는 말인가?하나님은 이런 방법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실 것인가? 그들이 외치는 모든 선교나 목회는 예수님의 삶은 분명히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함께 일하는 자가 목회입니다. 동역자입니다. 예를 들면 출근 표에 도장 찍고 내 방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출근하고 그분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언제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것이 목회입니다. 일시라도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임재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흔들릴 수 있지만, 그분의 임재의 실체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7절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로마서 8장 29절에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미리 정하셨다”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지만, 그 자리에 그냥 두시지 않고 그분은 우리를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과 나누신 그 불변의 친밀함을 우리와도 똑같이 나누고 계시다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일 뿐 그리스도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구속자의 역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일 뿐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같이 살려고 애쓴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만의 권위를 넘보는 것이 되는 것으로 그는 분명히 사람의 목숨은 붙어 있으나 죽음적 삶과 고통 속에 지옥의 삶을 살고 있게 될 것입니다.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이방 종교의 교주로, 이단종파의 교주로 비참한 생애를 마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열정이 결국 비참한 죽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한 예일 수 있습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요”(계 21:2). “우리는 그분과 연합한 자요”(롬 6:5).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다”(고후 3:18). 우리가 결혼에서의 행복은 ‘함께 거한다’라는 의식입니다. “둘이 한 몸으로써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다는 것과 둘이 한 몸을 이루었으니 아무도 가를 자가 없다고 했으며 둘이 한 몸 되었으니 그 비밀이 크도다”라고 했습니다. 한 몸의 원칙은 자상함과 친밀함이 있고, 정직함이 있고, 꾸준한 대화를 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점점 그분을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행복이란 시간이 갈수록 서로 닮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래오래 함께 삶으로 사람들은 말소리, 대화의 내용, 심지어 생각마저 닮아갑니다.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우리도 그분의 생각, 그분의 원칙, 그분의 태도를 취하게 되고 그분의 마음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결혼 관계가 그렇듯 하나님과 교제도 전혀 부담이 아니라 기쁨인 것입니다.우리가 하는 목회가 예수님처럼 살아갈 때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가. 기쁨과 환희가 터져 나오는 생수의 샘이 터지고 강물이 흐르듯 행복한 일인 것입니다.“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자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며 쇠악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 84:1~2).목자와 양의 관계가 행복해집니다.시편 100편 3절을 보시면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리시는 양이로다.” 시편 23편 4절에서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7-14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12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12. 다니엘과 세 친구의 위대한 신앙 솔로몬의 치세가 끝나면서 이스라엘은 남방 유다과 북방 이스라엘로 분열되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추종하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남방 유다를 세웠고, 나머지 열 지파는 솔로몬의 신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을 따라 북방 이스라엘 왕국을 만들었다. 북방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하기까지 19명의 왕이 있었고, 남방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마지막 왕 시드기야까지 20명의 왕이 일어났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히스기야나 요시아를 비롯한 극소수의 왕 이외에는 모두가 악한 왕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 지도자의 부실함과 불안정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의 완전한 지도자는 하나님 밖에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왕들의 무능함과 실책 때문에 나라는 늘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우상숭배에 빠져들었고 국가는 피폐해져 갔다. 남방 유다의 계속적인 배도와 타락의 결과로 당시 신흥 강대국으로 등장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채찍이 되어 유다에 징벌이 내려지려 하고 있었다. 예레미야를 통해 보여준 행동화된 비유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예레미야는 한 가지 특별한 일을 시도하였다. 그 당시 가장 경건하고 자신들의 삶에 충실한 사람들로 알려진 레갑 사람들(겐 족속 요나답의 후손들 : 왕하 10:15,16 참조)이 있었다. 예레미야는 성전의 한 방으로 그 사람들을 모은 다음 포도주를 차려 놓고 마시도록 권하였다. 레갑 사람들은 그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이유는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렘 35:6)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선조의 명령을 200년 이상 충실히 지켜온 레갑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들과 대조시켜서 그들의 불순종과 배도를 깨닫도록 하셨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선언하신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는지 다소나마 느낄 수 있다(렘 35:14~17).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뜻을 정한” 다니엘마침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 바벨론을 통해서 내리기 시작하였다.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다를 침공하여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고 성전의 기물들도 탈취해 갔다. 이 때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 중에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느브갓네살 왕은 유다 포로들에 대하여 특별한 정책을 세웠다. 유다의 왕족들과 귀족들 가운데 총명하고 탁월한 청년들을 선발하여 왕궁으로 불러들인 다음, 그들을 바벨론화 시켜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에 익숙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교육을 시도한 것이다. 이 교육 과정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며 원칙을 고수하는 일에 있어서 매우 확고한 입장을 취하였다. 왕궁에서 제공하는 기름지고 화려한 육류 위주의 식단을 거부하고 깨끗한 물과 채식을 요청하였다. 교육 책임을 맡은 환관장은 매우 황당하였으나, 10일의 시험 기간을 거친 다음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다니엘의 요청대로 채식을 제공하였다.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10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단 1:20).성경에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한 내용들은 주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역사가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속성은 거의 동일한 것이기 때문에, 도덕적 교훈이나 일상생활에 관련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은 곧 오늘날 우리 각 개인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요청은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심리와 생리와 인체의 필요를 정확하게 아시고, 사람의 몸과 마음을 가장 건강하게 건전하게 관리하고 유지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하나님의 어떤 말씀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결코 인간에게 손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큰 유익과 축복이 된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뜻을 정하여”(단 1:8) 바로 이 선택을 한 것이다. 결과는 큰 축복이었다. 어떤 면에서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지식과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진리’로 인정하여 믿고 순종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실천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라도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잘 했다’고 별도의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 자체(순종의 열매)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느브갓네살 왕은, 바벨론 국가의 영원한 존속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두라 평지에 거대한 금 신상을 세우고 그 낙성식에 나라의 모든 관리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낙성식의 핵심적인 의식은 당일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그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것이었다. 만약에 절을 하지 않으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단 3:6) 죽일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감히 절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요동치 않았고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꼿꼿이 서 있었다. 그들은 즉시 왕 앞에 붙잡혀 갔다. 왕은 그들이 평소에 매우 충실하고 탁월한 청년들이라 죽이기는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살려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절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단 3:17)실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8) 라고 공손하면서도 확고한 모습으로 왕에게 아뢰었다. 왕의 호의를 무시하는 이 괘씸한 청년들에 대하여 왕의 분노가 격발되었다. 풀무불을 칠 배나 뜨겁게 하여 그들을 집어 던져 넣었다. 세 사람을 던져 넣었는데 네 사람이 풀무불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온 사자가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을 목도한 왕과 모든 관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단 3:28).오늘날 이 시대에도 다니엘처럼 “뜻을 정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므로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어떤 환경이나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굳건하고 순결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충성을 다하는 종들이 많이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바로 교회의 희망이고 능력이다. 교회의 개혁은 어떤 전략이나 이벤트나 서적이나 설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니엘과 그 세 친구들 같은 확고부동한 믿음의 전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나 본을 보이면서 전진할 때에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것이다. 변화나 개혁이라고 하는 것은 ‘가르침’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바라봄’으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그의 양심적이고 확고한 신앙과 인품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실패했을 것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7-07
  • 오늘의 시대를 보며 인간의 삶의 자리를 살핀다 1
    어느 시대든지 세월을 따라 시간은 가고 시대는 변화한다. 우리의 신앙의 형태도 그 시대의 상황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창조질서를 따르려면 본래의 약속이 지켜져야 하고 이를 회복하여야 한다. 오늘날처럼 이 시대가 속도에 따라 사회적 정황은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시대적인 삶의 자리(Sitz im Leben=삶의 정황))에 본래의 창조함을 받은 가치관이 요청된다. 우리에게는 만고불변의 하늘의 가치를 지니고 태어났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신앙의 삶의 가치관으로 우리에게 열어 보이신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성육신(incarnation) 하심으로 세상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시며 이를 실현하시기 위해 '길'과 '진리'와 '생명'을 몸의 이치(生理)로 삶의 말씀과 행동으로 이를 실현하도록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하늘의 뜻(理致reason; logic)을 다했고 이로서 세상에서 하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삶을 말씀으로 이를 행하며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물에는 일정한 원리원칙이 있고 여기에 따르는 질서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규칙이나 규범들이 있다. 여기에 그 까닭이나 이치로 뜻을 나타내려고 동양 사상에서는 리(理)를 일컬어 뜻을 알게 한다. 이를 서양 사상에서는 로고스(Logos 理性)라 하여 하늘의 이치(理致)로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로 일이나 행동에서 앞뒤가 맞고 체계가 서는 것으로 이를 알게 한다. 이 로고스를 신학적으로 풀이하면 이 로고스 이해는 우주의 법칙으로 이성을 말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요한복음(1:1-14)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하늘에는 천리(天理)가 있고 땅에는 지리(地理) 있고, 수(數)에는 수리(數理) 있고 사물에는 사리(事理)가 있고, 약(藥)에는 약리(藥理) 있으며, 법에는 법리(法理)가 있고, 몸에는 생리(生理)가 있고, 마음에는 심리(心理)가 있고, 학문에는 학리(學理)가 있으며, 도덕에는 도리(道理)가 있다. 이렇게 사물의 정당한 조리(條理)로서 이치(理致)가 있다. 우리는 이 이치를 깨닫는 본성을 이성(理性)이라고 한다. 이렇게 모든 사물에는 리(理)가 있다. 사람이 삶을 영위하며 살아 가는 데는 사리(事理)가 있어 사리에 맞게 행동하고 사리에 맞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 생활이요, 합리적 정신이요, 합리적 태도가 된다. 그리하여 인간에게서 이성과 양심을 없애버리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이렇게 만물의 이치와 판단이 사람에게 없으면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와 사물에는 일정한 원리원칙이 있고 불변의 질서와 법칙이 있다. 예를 들면 물이 높은 데서 아래로 흐르고 섭씨 100도가 되면 물이 끓고 0도가 되면 물이 얼어 얼음이 된다. 이는 만고불변의 이치로서 예컨대 이는 물의 불변의 속성이요 법칙인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정치 제일주의와 권력이라는 등식관계를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사회 제도 속에서 권력 남용이라는 인식의 현실에 시달려 왔다. 가치가 혼돈된 시대에 방황하는 국민들을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정치인에 거는 기대는 자못 크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 개혁의 방향은 제도 개혁도 중요하지만 정치인의 의식 개혁이 먼저 더 중요한 정치 현실임을 주지한다. 오늘의 정치의 위기는 잘못된 가치의식과 그 규범에서 유래된다고 본다. 양심의 빈곤, 윤리의 타락, 질서의 굴절이라는 정신적 질환은 '정의 보다는 불의, 신뢰 보다는 불신, 질서 보다는 무질서가 속출하는 처절한 사회현실'을 보게 한다. 삶의 자리는 반드시 정로(正路)를 걸어가야 얻어진다. 정치가 진실과 정의와 인권과 박애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자기이권을 중심으로 음모를 일삼는다든지 자신의 출세와 영달의 기회로 국민을 기만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 결과는 허무와 몰락 일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자기의 양심과 신념, 신조를 속이지 않고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생활한다는 것,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고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대범한 아량을 보여주며 진실을 말해 주는 자세는 존경받는 생활 자세이며 영향력을 가진 몸가짐이라 할 수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무엇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합리적 판단과 소신에 따라 결정을 행하려고 하는데 이에 다른 결정을 내려 주도록 자기와 친한 동기 동창생이 혹은 친척이 혹은 고향 친지가 부탁해 오는 경우에 갈림길에 서게 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7-06
  • 84. 제74회 총회장 이성택(李聖澤) 목사
    평남 대동군 출신이성택(李聖澤 1919. 2. 17) 목사는 평남 대동군 대보면 태평외리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대적 배경 역시 조선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참담한 식민지배를 받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철없는 어린 시절을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암울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다행스러운 것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던 기독교의 요람이었던 평양인근에서 태어난 것이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평양은 평안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대동군에 둘러 쌓여 있으며, 남쪽은 중화군(中和郡)에 접해 있고 4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로서 단군왕검이 도읍한 이래 기자, 조선, 낙랑, 고구려의 도읍지였으며, 조선개국 이래 북쪽의 관문 의주로 연결되어 있어 대륙으로부터는 조선 입구의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1866년 중국에서 선교하던 로버트 토마스(Rev. Robert Jermain Thomas, 崔蘭軒) 목사가 제너럴 셔어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조선병사들에게 배포하다. 순교의 피를 흘린 이래, 복음의 사역자들이 이곳을 향해 계속 들어와 폐쇄사회로 일관했던 조선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목숨을 받친 곳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복음의 선각자들에 의해 문호가 개방되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어질만큼 평양은 어두운 18세기 역사를 뒤로 하고 서서히 밝고 희망찬 새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리하여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사 언더우드의 답사 이후 마포삼열(Rev. Samuel Moffett 1864. 1. 25~1939. 10. 24) 선교사를 위시한 많은 선교사들이 내한하여 조선의 기독교의 복음의 횃불을 들었던 것이다. 소년 이성택이 태어난 대보면은 평양에서 그리 멀지않은 진남포 쪽으로 내려오는 길목이어서 자연히 선교사들의 발길이 닿았고, 급기야 고향 대보면에도 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고향교회에 출입하며 유년 시절을 보내었고, 이웃에 있는 기독교계 학교인 취명학교에 입학해 1932년에 졸업하였다. 1948년 2월 기독교도연맹 가입 반대운동1·4후퇴 때 가족 두고 혈혈단신 월남피난 중 대구에서 총회신학교 졸업김제 가실교회·대구 신일교회·서울 평안교회서 시무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창립 멤버암울한 일제하에서나마 건전한 신앙 덕택으로 애국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를 기독교 신앙을 통해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해방 이듬해 1946년 평양노회에서 운영하던 득신고등성경학교에 입학, 복음전도자 수업을 닦기 시작했으며, 1948년 2월 조선기독교도연맹 가입 반대운동에 앞장섰다가 12명의 동료와 함께 중퇴하고 만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고, 그해 10월 UN군 참전으로 북진하는 국군에 의해 평양이 함락되어 회복되자 온 가족을 이끌고 대포면에서 평양으로 나와 잠시 머물며 전세를 광망하였다. 그때 미8군 부대에서 노역(勞役)을 하던 중, 북진했던 국군과 유엔군이 그 해 12월 중공군의 합세로 밀려나자 이듬해 1월 4일 피난민 대열에 끼어 남쪽으로 피난을 왔다. 당시 평양에 진주했던 군당국에서는(헌병대) 짧게는 7일, 아니면 늦어도 한달이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온 가족을 북한에 남겨둔채 혼자 성경 찬송만 손에 들고 피난길에 오른 것이 오늘에 이르렀고, 언필칭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이성택 목사는 모든 면에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면서도 그의 마음과 얼굴 한 구석에는 남이 알 수 없는 수심이 드리어져 있다. 그는 월남한 후 지금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눈물의 기도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대구에까지 내려가 전쟁 중에도 대구서문교회(당시 명신홍 목사 시무)에서 문을 연 총회신학교 “현 총신대 신학대학원 전신” 예과에 입학, 고학으로 학업에 매진하여 1956년 총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첫 목회지로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가실교회(김제시 진봉면 가실리 92)에 부임하여 만 3년 동안 열심으로 섬기었다. 이곳에서 사역하던 중 피난민들 중심으로 갓 출발한 대구 신일교회의 부름을 받고 목회지를 전북에서 대구로 옮겨, 이곳에서 16년간 독신의 몸으로 최선을 다해 목회의 황금기를 보내었다. 1956년 당시 한국교회 월남교역자들의 중혼문제가 장로교뿐만 아니라, 감리교회와 성결교회 등에서도 불거져 큰 이슈가 되고 있던 터다. 예장 교단 안에서도 문제가 되어 재혼한 목사들 중엔 개교회를 사임하기도 하고, 교단으로부터도 징계를 받는 일들이 생기었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이성택 목사는 지혜롭게 독신으로 일관하여 주위로부터 성자(聖者)라는 칭송을 받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잠시 전란을 피해 고향을 등진 것이 50년, 60년의 세월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성택 목사는 피난해 나온 이후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 하는 마음을 온전히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이러한 그의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과 경건함을 인정받아 교단을 이끌어가는 총회장에 이른지도 모른다.1976년 대구 신일교회 사역을 마감하고 증경총회장 김윤찬 목사(제49회, 52회 총회장 역임) 후임으로 서울 평안교회(중구 순화동 6-9) 담임목사(1976. 9. 10)로 부임 원로목사(1996. 1. 2)로 추대되고 퇴임하기까지 승리로운 목회사역을 마감하였다.그는 일선 목회를 하면서 교회가 속한 평양노회와 예장총회를 위하여, 또 사회선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섬김의 본을 보이기도 했다. 1978년 평양노회에서 분립한 동평양노회 초대회장으로 피선되었고, 1982년 총회군목부장으로, 1987년 군복음화후원회 이사로, 1988년 9월에 대구 서문교회에서 모인 총회에서 교단 부총회장으로 당선되었으며, 이듬해(1989년) 9월 12일에서 22일까지 모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4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인 총회장에 선출되었다. 총회장을 역임한 이후에는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으로 한국교회 전체를 위한 명예로운 자리에 올라 교단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그의 목회철학을 엿볼수 있는 설교 한편을 요약해 본다. 성경 누가복음 5장 1~11절을 본문으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제목의 설교를 보면, 그의 신앙과 인생관, 목회관이 잘 나타나 있는 그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말씀 속에 베드로의 속마음과 신앙이 주님의 마음에 꼭들어 맞았다고 설파한다. 이 말 속에서 베드로는 주님의 명에 따라 그물을 던진 그속에는 배 두 척도 모자랄 정도로 큰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란 고백 속에는 입버릇처럼 하는 껍데기 회개, 입술로만의 회개류에 속하는 회개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회개와 겸손과 순종은 꼬리가 아닌 머리되는 지름길이요, 이것이 제자 아닌 수제자의 길로 가는 지름길임을 그는 가르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두고온 가족들, 성도들, 교회를 생각하면 이성택 목사는 늘 하나님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말 밖에 고백할 말이 없었다고 생각된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 편, 예장총회출판부, 2015서울, p.150-153).그는 평안교회를 사임한 후 지금까지 교회의 성원과 배려로 평생을 가르치고 설교했던 주옥같은 성경적 메세지를 <나의 경건생활>이란 제목으로 책을 간행하고 있다.(제1권 2015년 3월, 제2권 2015년 9월, 제3권 2016년 7월, 제4권 2017년 6월 간행되었고, 제5권이 이어 간행될 예정이다.) 그 내용을 살펴 보건대 군더더기 없는 순수성경본문 중심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목회자들과 한국교회를 향한 저자의 필생이 담긴 선물이 아닐까 생각한다(성광문화사, 2015 서울).그가 재임했던 예장총회 제74회 총회 결의안을 몇가지 요약하면, 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인준하고 총회장은 대정부 대외관계에 자유로이 참여하도록 하다. ② 녹화방송예배는 예배모범에 위반된다고 결의하다. ③ 동서울노회 분립을 허락하다(동서울노회, 서울동노회) ④ 강원노회 분립을 허락하다(강원노회, 북강원노회) ⑤ 총회에 은급부를 신설키로 가결하다. ⑥ 김기동씨를 이단으로 규정하다. ⑦ 십자가 강단 부착건은 1957년도 총회에서 결의한 대로 부착할 수 없다고 결의하다. 이성택 목사는 퇴임 이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평안교회와 교단의 발전을 위해, 나아가서 남북통일의 그날을 기대하며 쉬임없는 기도로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북통일을 갈망하는 마음이 이성택 목사보다 더한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7-07-06
  • 윤경원 장로
    기독시민운동 상임총무로 바쁜 일상 보내며 연합사역에 몰두 윤경원 장로(예장합동, 흰돌교회 원로, 78세)는 30여 년간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현재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기민협) 상임총무로서 매일 사무실에 출근하여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아침 9시에 서울 신설동 사무실에 출근하여 협회 임·역원들과 교계 여러 지인들과의 대화로 시작하여 대외 협력을 위한 협조와 당부에 이르기까지 2~3시간을 전화 통화를 한다. 인간관계와 협력의 일환으로 가지고 있는 대화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일하는 시간이 늘 부족하여 쫓기고 있다고 한다.윤 장로는 오랜 공직생활을 하면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조금 늦은 감이 있으나 서울 영등포 흰돌교회에서 장로 장립 받고 남서울노회 부노회장을 역임하고, 총회에 총대로 나가 ‘이슬람대책위원회’를 결성하는 데에도 역할을 하였다. 본 교회에서는 ‘교회설립 40년사’를 오랜 공직생활에서 경험한 경륜을 토대로 발간해 내기도 했다.윤 장로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교계연합운동에 참여하여 빈틈없는 성격과 행정경험으로 월드컵기독시민운동본부의 대외협력국장을 맡아 2002년 월드컵대회 당시에 가장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월드컵경기 성공개최를 위하여 한국교회의 저명하신 인사들이 참여하여 많은 일을 했지요. 이미 고인이 된 김준곤 목사님, 이영덕 전 국무총리, 박세직 장로님 등이 함께 일을 추진해 냈지요.” 한국교회가 일체감을 가지고 월드컵경기 성공개최를 위한 적극적인 기도회, 친절, 질서, 청결, 정직운동 등을 펼쳤다. 이 운동은 월드컵경기가 개최되는 서울, 부산, 대구, 울산, 광주, 전주, 인천, 수원, 제주 등 10개 도시에 지역협의회를 조직하여 운영하였다.윤 장로가 맡고 있는 기민협은 월드컵대회 후에도 2002년 9월 아시안게임 성공 지원다짐대회, 200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성공지원활동 등을 통해 기도운동, 스티커제작 배포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기독시민운동중앙협의회로 개편되면서 윤 장로는 사무총장을 맡아 더욱 활기차게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2004년 6월 2일 서울 명성교회(김삼환 목사시무)에서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골목 청결운동’을 통해 깨끗한 서울 가꾸기 선포식을 가졌고, 사회 지도층을 초청한 가운데 장애인 인식개선 사업도 전개하였다.윤 장로는 조직개편으로 더 책임이 많은 상임총무를 맡아 기민협의 사업 확장과 회원 증강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4대강 살리기 성공지원 활동, 서울 G-20 정상회의 성공지원 활동, 핵 안보정상회의 성공지원 활동, 퇴폐성 영상문화 개혁 등을 위해 기도회와 홍보활동을 전개해 왔다.최근에는 ‘차별금지법’ 입법저지활동과, 통일기도운동으로 한국교회에 경각심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통일기도회는 특별 세미나, 통일 글짓기대회, 통일마라톤, 백두산, 한라산, 독도 등에서 기도회를 개최하는 등은 기민협이 심혈을 기울러 추진하는 사업이다. 윤 장로는 이러한 사업추진을 위해 매일같이 사무실에서 기획하고 준비하는 일에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윤 장로는 한국교회연합 총무단의 일원으로 연합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은 실망스럽고 바람직하게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합기관이 통합이 안 되고 있는 이유도 ‘감투싸움’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단문제 운운하지만 사실은 이단문제는 핑계에 지나지 않습니다”면서 지도자들의 명예욕을 지탄했다. 윤 장로는 평신도운동에 대해서도 말했다. “평신도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신도운동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녹아 나는 소금이 돼야 합니다. 땀 흘리고, 눈물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실천이 필요합니다.”윤 장로는 찬송가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 갑니다’를 즐겨 부르며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을 교훈으로 간직하고 오염되지 않고, 절개 있는 신앙인으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한다. 부인 신임선 권사와의 사이에 3남 1녀를 두고 다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7-06
  • 기독교인의 행복론 - 47
    오늘도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다섯 번 돌았습니다. 개나리가 꽃봉오리를 피워올리고 있었고, 벚꽃도 제법 꽃잎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단지 안은 정오가 가까운 때인지라 한가롭게 거니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곤 적막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미세 먼지로 인하여 하늘은 거무튀튀하였지만, 그나마 햇빛도 나무 그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섭니다. 오늘도 나는 살아 있습니다. 건강을 위하여 일정한 보폭으로 걸을 수 있고, 눈으로는 나무들 사이를 건너가는 까치도 볼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움켜쥐기도 하고, 팔을 힘차게 저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 안 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으며, 형사 죄를 지어 법정에 갈 일도 없습니다. 세금은 제 때 냈으며, 마음만 먹으면 가까운 지인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 내 나이 예순을 넘겼지만, 서재에서 언제든 필요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으며, 한가한 때를 만들어 한천 가를 산책하며 벚꽃을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 새벽에는 차를 몰고 우이동에 있는 W교회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아들의 취업과 딸의 임신을 위해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이 믿음과 건강과 행복을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직장을 은퇴하였으니 각종 문학 단체에서 얼마든지 열심히 일할 수가 있습니다. J낭송문학회에서는 춤과 노래와 시낭송이 어우러진 ‘몸시’ 공연을 하였고, H시인협회 임원회에서는 한 해의 마스터플랜과 로드맵을 제시하였으며, 기독문인단체에서는 협회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도 내놓았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K동호회에서는 시창작 강의를 하였고, P동호회원들과는 전주 문학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전주 문학 기행에서는 한옥마을에 들러 경기전을 둘러보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보았으며, 돌담길 안과 밖을 걸으며 여행객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경기전 뒤편의 고향집도 둘러보았습니다. 현재는 삼층 건물이 들어서 있어서 옛 한옥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옛 풍경을 그려보았습니다. 큰누나가 매형과 데이트하던 동문 사거리의 제과점 ‘조화당’을 떠올려 보았고, 명절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떡가래를 뽑아달라 했던 방앗간을 그리며 옛 동무들을 그려보기도 하였습니다. 고향의 옛 자취가 사라진 것을 보면서, 딸아이가 결혼해서 미국에 가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내와 아들이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지라 가끔 거실 안이 공허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집에 있으려니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몇 번이나 수첩을 뒤적여 봅니다. 다음 주에는 탈장 수술을 받은 매형 병문안을 가야 하고, 11일에는 P시인 시비 제막식에 참석해야 하는군요. 22일에는 종로3가에 있는 C홀에서 ‘몸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고, 27일에는 H시인협회 세미나에 가서 주제 발표를 해야 합니다. 이를 보면 작가 생활이라는 것이 바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아내는 “당신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고도 아깝지 않아?” 하면서 은근히 직장 생활을 더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고, 얼마 전 잠깐 귀국했던 딸아이는 “아빠를 보면 박지원의 『허생전』에 나오는 ‘허생’이 생각나.” 하면서 실용성이 부족하였던 양반에 나를 빗대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34년을 직장 생활하여 가족을 먹여 살렸던 나를 백수로 취급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서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렇지 않은 것은 나와 동행하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예레미야 애가> 3:24). 주님은 내가 고달플 때 “애썼다”며 위로해 주시고, 내가 외로울 때 동행해 주시며, 내가 힘들 때 강한 기운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눈 앞의 안위를 도모할 때 영원을 보게 하시고, 죄로 인해 괴로워할 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내가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도모하는 것은 주님이 나와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에게 주께서 주신 달란트로 기독 시학을 정립하라 하시고, 날마다 영감을 주시면서 멋과 낭만이 있는 푸른 초장으로 나를 이끄십니다. 주님은 주일날 예배 시간에 내가 애교를 부리며 부르는 찬양을 열납하시고, 나를 ‘일 對 일’로 만나 주십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기업이 내가 하는 일이 되고, 행복한 작가가 되어 행복하게 일하게 하십니다. 나는 그 여호와의 기업이 이 땅에서 빛을 발하게 하기 위하여 나의 달란트를 최선을 다하여 활용합니다. 주님이 동행함으로 나는 사람들 앞에서 배꼽춤을 출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사무엘하 6:14). 다윗은 “하나님의 궤”와 함께 함에 너무 기뻐 춤을 추었습니다. 나 역시 주님이 동행하심을 찬양합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7-06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