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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시영 장로
    기드온협회·초교파장로회에 참석하며 친교 윤시영 장로(중앙성서교회 원로, 77세)는 매일 새벽기도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집안정리(청소, 정돈, 설거지 등)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휴대폰에 담겨진 하루의 일정을 찾아 나선다. 초교파적으로 활동하며 알게 된 사람들과의 친분으로 자문을 구하거나 논의의 대상이 많기 때문이다.윤 장로는 오랜 기드온협회 활동을 해 왔고, 지금도 매주 화요일 협회 조찬모임에 참석하여 예배 드리고 기드온의 활동대책을 논의한다. 매월 모이는 은평구초교파장로회 월례회에도 명예회장으로서 참석하여 후배들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 장로직을 은퇴했지만 초교파 활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교계에서는 많은 인사들과 교분을 가지고 있어 만나며 식사하는 시간도 빼놓을 수없는 일과이다. 윤 장로의 넓은 인간관계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현재 윤 장로는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와 한국기독교영남장로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연합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특히 윤 장로는 건강을 위하여 매일 빠짐없이 청계천을 걸으며 시내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챙기고 돌아온다고 한다.윤 장로는 젊은 20대에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15년여 동안 근무했고, 88년부터 2002년까지는 ‘포천생수’사업으로 매우 큰 이익을 내는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다.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윤 장로는 한문, 히브리어, 헬라어 등에도 능통하다. 한국국제기드온협회(기드온협회)에서는 1982년 10월 기드온협회 서서울캠프 창립멤버로서 교회부장을 맡아 서울시내 400여 교회를 순회하면서 모금을 하기도 했고, 86년에는 전국대회 간사로서 행사운영을 담당하였으며, 서서울캠프 회장을 역임하고 본부 전국이사로서 사역했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은평캠프를 비롯하여 고양캠프, 마포캠프, 포천캠프 등을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자이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은평캠프는 매주 화요일에 모여 ‘주간기도회’를 가지면서 예배를 드리고 대책회의를 가진 후 친교의 시간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고 한다.윤 장로는 “기드온 사역이야 말로 하나님의 복음사역의 최일선에서 성경을 보급하는 기관으로서 지금 북한 성경 500만부 보내기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본부와 함께 모금을 하고 있다”고 했다. 기드온협회는 해외성경보급을 위한 확장사역과 저개발국성경보내기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학교, 교도소, 호텔, 병원, 경찰 등에 성경을 보급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또한 윤 장로가 중심이 되어 은평구초교파장로회를 16년 전에 창립하여 기도중심의 단체로 매월 80여 명의 장로들이 모이고 있다고 한다. 윤 장로는 은평구 교구협의회와 교경협의회에도 참여하여 목사 장로간의 밀접한 교류와 친교를 나누고 있다. 은평구 지역에서 범교회적인 행사에서는 윤 장로가 빠질 수 없는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윤 장로의 탁월한 인간관계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윤 장로는 한국교회 연합운동에 대하여 “지도자들이 겸손과 온유로 일해야 하고, 교단이기주의를 벗어나야 한다”면서 “평신도들도 교회와 사회의 기독교적인 사명을 깨달아 사랑으로 용납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윤 장로는 교회 시무장로 31년간 예배와 기도생활, 교회헌신에 모범을 보여 후배들이 잘 따르고 존경하고 있다. 지금도 가정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특이하게 ‘예비하라’는 가훈을 정하고 있다. 김금순 권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자녀들의 효도를 받으며 주님 안에서 복된 가족을 이루고 있다. 특히 본 교회의 설립자 강태국 박사를 존경한다는 윤 장로는 찬송가 434장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인도하시니’ 와 456장 ‘주와 같이 길 가는것 즐거운 일 아닌가’를 즐겨 부르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6-09
  • 성육신한 예수교회-50
    바울이 그의 목회 사역이 후반기에 들어서자, 그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전한 그의 복음을 로마로 보내는 서신에 총정리를 하게 된다. 우리가 논문을 쓰게 되면 서론을 맨 나중에 쓰면서, 논문의 주제와 내용을 간결하게 요약하여, 읽는 이들로 하여금 먼저 논문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듯이, 바울도 로마서 1장 1절에서 17절에 잘 안내하여 주었다. 그가 지금까지 열성적으로 전하게 된 복음은, 모세 오경과 선지자들과 시 문서들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셨던 바대로, 다윗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에 관한 소식으로서, 저가 사람들에 의해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음을 당하셨지만, 죽은 자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에 의해 부활하심으로 나타내신 권능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확인되신 메시아이신 예수에 관한 것이었다.바울은 이 메시아이신 예수로부터 사도직을 받아서, 모든 인류에게 이 소식을 선포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 오신 것을 가르쳐서 믿게 하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등극하신 예수께 순종하도록 하려는 사명을 받은 자임을 명료화 하였다.우리가 여기서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우리의 주님 예수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로서, 인류를 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하는 사명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이뤄냈는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는 오늘과 같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명예가 실추되고,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맛을 잃은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짓밟히다시피 하는 이때에, 목회 사역의 전열을 재정비 함에 따른 절실한 요청 때문이다.바울은 복음을 시리아와 소아시아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와 고린도에 전하면서, 그 자신 혼자서 사역을 하질 않고, 팀 사역을 하였다. 로마서와 목회 서신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역자들이 바로 그의 동역 자들이다. 저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지나온 자리에 남아서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놓은 사람들이다. 후에 문제가 있더라도 아프터 써비스를 단단하게 해서 제품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주는 오늘의 기업인들이 마치 로마서를 터득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 동역 자들이 갖춘 요소들을 보면, 첫째로 그들이 인류에게 전하려는 복음의 내용을 명료하게 파악하고 전했다는 것이다. 마치 항공모함의 함장과도 같은 책임을 맡은 자 같고, 저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모함을 따라서 움직이는 함장들과 같이, 문제와 상황을 잘 파악하고 대응하는 능력들을 갖추었던 것이다. 특히 이들에게서 누구든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들어나는 외적인 모습들이 있었다면 군인들 모두가 제복을 착용한 것 같이, 저들 모두가 한 결 같이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관련하여 항시 강조하기를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고 있는 것처럼 그의 동역 자들도 바울을 본받으라 한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성육신하신 분으로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질 아니하고, 겸손하고, 주의 깊게 경청하여 자기에게 다가오는 혈루증 연인까지도 놓치질 아니하고 삭개오 같은 이도 편견 때문에 잃어버리질 아니하고, 수가성의 남편을 여섯 번째 둔 여인마저도 포용하고 녹여낼 수 있었던 온유함을 갖추고 있었다.바울이 로마서 서신에 밝힌 것처럼, 그는 오로지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려 해서 평생을 달려 왔고, 로마서도 그래서 기록했으며, 이 서신을 읽는 모든 이들에게 복음만을 전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 자체가 복음을 잘 인지하고 훈련되어 있다는 말도 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 자체가 인간의 재주나 지혜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가 복음을 막상 전하려 하면, 복음 자체가 스캔들이 되기 때문에, 사람을 설득하고 믿음을 일으키고 순종을 이뤄내려면 사람의 재주로는 어떠한 변증도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는 성령과 항시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다.바울의 복음 전달 능력에 있어서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의 지식만으로는 설명이 될 수 없고, 그가 보여준 본보기도 한계가 들어나고 있기에, 저는 그의 사역 중반부터 세상에서 쌓은 스펙과 소중한 것들을 모두 폐기처분하고 하나님의 영에 바싹 붙어서 하나님 아버지가 말씀하시며 보여주시는 것에 집중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그의 사역의 비밀을 우리와 공유한 것처럼, 아버지가 말씀하시질 않고 보여주시질 않은 것은 하질 않았다는 것이다. 저가 사람들에게 복음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까지도 전달할 수 있었고,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성과를 이뤄낸 것도 모두가 이 사역의 비결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6-09
  • 82. 제75회 총회장 유인식(兪仁植) 목사
    전북 김제 출생유인식(兪仁植 1928. 12. 30) 목사는 전북 김제에서 1928년 유영근(兪永根)의 5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불신가정에서 혼자 예수를 믿던 할머니를 따라 예배당에 다녔다.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판사(判士)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서울법전(法傳)에 들어갔으나 얼마 되지않아 6.25 전쟁의 발발로 남침한 북한 인민군에 쫓겨 죽을 고비를 몇차례 겪은 후 생각지도 못한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총회신학교(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전신)로 인도했다. 전쟁 와중에 피난온 대구에서 당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후원하는 성경구락부(聖經具樂部) 교사로 고학을 하면서 신학훈련을 받았고, 1956년 28세에 대한예수교장로회 군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목사로 장립을 받고 부임한 첫 목회지가 이리북일교회였다. 여기서 8년동안 목회사역을 하면서 노회 서기로 봉사하기도 했다. 1963년 광주 중흥교회로 전임해 16년동안 목회활동을 하면서 교단 인준신학교인 광주신학교(현 광신대학교 전신) 강사로 봉사하였고, 1965년엔 광주시 연합제직회 부회장, 1968년 전남노회 정화동지회장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1974년엔 동서선교훈련원(원장 조동진 목사)에서 운영하는 세계선교대학원을 졸업하였고, 1976년엔 조선대학교 법정대학과 동 대학교 행정대학원(行政大學院)을 수료하였다. 후일 본교단 정·부회장을 역임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총회적으로 규칙부장과 고시부장을 역임하였고, 규칙부장과 전북신학교 교장으로 총신대학교 운영이사로 봉사하기도 했다. 또 총신대 부설 교역자 재교육기관인 목회대학원 원장과 총회유지재단 이사장, 교단지 기독신문 발행인 겸 논설위원을 역임하였고, 호남협의회장과 남북통일기도협의회 총재를 역임하였다.1978년 6월 17일 중흥교회를 사임하고 김제시 요촌동 김제중앙교회(1910년 7월 7일 설립)로 부임해 1998년 12월 31일 원로목사로 추대 되기까지 신실하고도 성실한 목양일념의 철학을 펼치고 은퇴하였다.교회사가(敎會史家) 김요나 목사의 평대로 그는 “여주동행(如主同行)을 신조로 평생을 목양일념(牧羊一念)에 불태운 전라도가 배출한 특출한 교회지도자요 행정가였다.”(김제노회 반세기, 김요나 편저, 김제노회 역사 편찬위원회 2002, p.740-741참조, 한국교회인명록 유상일 편, 크리스챤라이프 편 1987, p.128). 김제중앙교회 재임시에 1988년 교회당을 신축하였고, 1989년 예장 제74회 총회에서 부총회장에 당선되고, 이듬해 1990년 9월 18일부터 21일까지 본인이 시무하고 있는 김제중앙교회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75회 총회에서 교단의 수장(首長)인 총회장에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1991년 11월 5일 새성전 건축 기공예배를 드린 후 연건평 1,049평 규모의 대예배당 헌당예배를 드렸고, 아울러 정종엽 김두환 정창규 박영호 김길수 김형천 황석진 장로장립과, 이효현 송준식 고석만 임채태 서낙원 윤영석 정수곤 한상수 김태환 이종진 안수집사 임직과 구정순 백금옥 안영자 안정순 정창자 강화정 서예순 권사 취임식을 함께 거행하였다. 김제중앙교회는 유인식 목사 부임 20년만에 교세도 3,000여명으로 증가하여 노회 안에서나 총회 안에서도 지도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유인식 목사 시무 중 특기할 사항은 첫째, 1992년 3월 7일 교회 부속 교육기관으로 선교유아원을 설립 교회내외 어린이 대상 간접선교의 장을 펼친 것을 들 수 있고, 둘째 해외선교에 관심을 기울인 것이다. 1994년 1월 1일 브라질에 박동실 목사를 단독선교사로 파송하였고, 같은해 2월 9일엔 필리핀에 최무림 목사를 선교사로 선정해 파송한 것을 들 수 있다. 셋째 1994년 8월 21일 본교회 선교지인 필리핀에 아세아선교훈련원을 설립하여, 교회 종교법인 평화교회(C.O.P)를 설립하였고, 동시에 아시아 크리스챤아카데미(ASIA CHRISTIAN ACADEMY)를 설립하여 유치원과 국민학교 및 중·고등학교 인가를 취득한 것이다. 이어서 아시아신학대학과 대학원설립과 세계선교대학원(World Theological Semindry)을 본교회에서 설립 운영하기로 결의하고 초대 이사장에 장경현 장로, 서기에 문용언 장로를 임명했다. 전북지역에서 가장 진취적이고 미래적인 선교 프로젝트로 여타 교회들이 눈뜨지 못한 신선한 해외선교전략을 펼친 것이다.(김제노회 반세기, 김요나 편저, 같은책 p.398-399 참조). 이러한 유인식 목사의 목회사역의 성공을 인정해 미국 켈리포니아 주에 있는 크리스챤대학교(Christian University)에서 명예신학박사(D.D) 학위를 수여했다(1977년 가을).유인식 목사의 인생관과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는 설교 두 편이 있다. 예장총회 100회 기념 설교집(역대총회장의 증언)에 의하면 누가복음 18장 1-8절 본문으로 “기도응답 비결”이란 제목하의 그의 설교를 보면, 기도응답의 비결에 대하여 ①항상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합니다(눅 18:1-8).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의 예를 들어 쉬지않고 구하는 자에게 또 부르짖는 자에겐 꼭 들어 주신다고 했으며, ②믿음의 기도여야 응답됩니다(마 21:22). 신자들이 기도할 때는 무엇이든 무르짖는 자에겐 꼭 들어주신다고 했으며, ③서원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신다(심상 1:10-11). 한나의 기도 예를 들면서 제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헌신하게 하겠다고 서원한 예를 들었다. ④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하신다(시편 81:7). 아삽의 예를 들면서 고난 중에도 기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⑤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눈물의 기도를 할 때 응답하신다(사28:1-8). 유명한 히스기야 왕의 예를 들면서 위기 속에서도 눈물로 회개하는 기도를 한 결과 히스기야를 살린 것처럼 성도들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눈물로 돌아오는 믿음의 자녀가 되자고 강조하고 있다. ⑥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응답 받는다(요한 16:24). 성도들은 어떤 문제에 봉착할지라도 눈물로 간절히 간구할 때 응답받는 신앙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는 유인식 목사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설교이기도 하고 자기의 목회철학이기도 한 것이라고 보여진다.두번째 설교인 성경 갈라디아서 6장 14절의 본문을 가지고 <바울의 자랑>이란 제하에, 가문좋고 학벌좋고 로마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문에서 싫어하고 로마에서 죄인취급을 당하면서도, 죄인으로 취급받아 사형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바울이 자랑할 이유가 무엇인가? 반문하면서 설교를 이어가고 있다. ①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를 자랑해야 된다. ②사죄와 생명을 주는 십자가였기 때문에 천하인간에 다른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를 자랑해야 된다. ③십자가는 우리 인간을 사랑한 표증이기 때문에 그를 자랑해야 한다. ④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승리하였다는 표증이기 때문에 그를 자랑해야 한다. ⑤기독교는 부활과 생명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를 자랑했다. 바울처럼 우리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신자가 되어야겠다고 했다. 유인식 목사 자신의 목회사역의 중심점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설교라 하겠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 편저, 예장총회출판부 2015초판, p.167-173참조). 마지막으로 그가 재임했던 제75회 총회 주요 결의안을 정리해 보면, ①이단연구가 탁명환씨를 본교단 강단에 세우지 않기로 가결하다. ②목사 장로 집사 권사의 70세 정년제 건은 2년 후부터 시행하기로 하다. ③양인노회를 북강원노회로 명칭 변경을 허락하기로 가결하다. ④은급국을 설치하기로 가결하다. 유인식 목사는 주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은혜롭게 잘 감당한 후 1998년 12월 31일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남은 여생을 여유롭게 보내며 후임(김춘식 목사)의 목양 승리를 위해 뒤에서 기도로 지원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1999년 12월 70세 정년은퇴하면서 그가 속한 김제노회로부터 공로목사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사모 박양자 사이에 5명의 자녀가 부모들의 신앙지도 아래 자라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7-06-09
  • 성령의 역사와 그 믿음
    오순절 때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이 소동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세계 각처의 디아스포라 방문객들을 놀라게 했으며 사도 베드로는 이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설교를 했다(욜 2:28-32). 또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도 베드로의 강한 메시지로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위대한 구원 역사가 일어나 제자들의 수는 날로 늘어났다. ‘성령의 역사’는 삶에서 일구어지며 일구어 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이시다. 오순절 때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임하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행 2:9-11). “성령의 역사(役事)”는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가 삶에서 일구어지며 일구어 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나타내심이다.여기에 파스칼은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 믿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져서 믿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살기를 간구한다. 파스칼은 그의 명상록 팡세(Pense'es)에서 그는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매료된 믿음의 삶을 구상했기에 '팡세'라는 미완성의 유작인 '팡세'를 유작으로 남겼기에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를 피력하여 당시 세계전쟁에 나간 프랑스 군인들의 배낭에는 항상 성서와 함께 팡세가 들어 있었다고 후에 사람들은 간증한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증언으로 성령의 능력에 간증함을 알게 한다. 세계대전 때 젊은 프랑스 젊은이들은 포성이 들리고 포연이 자욱한 참호 속에서도 ‘팡세’ 열독은 대단함을 알게 한다. 그는 과학자요 수학자로 천재였다. 그가 남기는 믿음의 절규는 인간의 육체를 기계 또는 이성으로 비유하면서 “기계를 굽혀라” ‘그리고 교회에 나가 육체의 습관이 영혼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영혼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기울게 하여 바보가 되라’고 그의 명상록에 기록했다. 그는 ‘팡세’에서 이성의 판단이 그칠 때 하나님의 은총은 마음을 비추리라'고 한다. 이는 “성령을 받은 삶”으로 사는 믿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또한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하나님의 영이 자연 속에 계시하듯이 인간의 정신 속에 성령이 계시함을 알게 하고 또한 몸속에 있다고 한 말은 정신이란 우리를 기쁘게 하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고, 이 정신의 에너지는 이러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우리 안에서 일으키는 살아 있는 에너지 성령이다”라고 한 말에서 성령의 역사를 깨닫게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령과 함께 한 ‘삶의 의미’를 새겨 본다. 그리하여 성령 강림은 사람들을 변화시킨다. 성령의 역사는 갈라진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고 잊어버린 진실을 증언하게 한다. 그 성령의 임재와 역사는 오늘도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우리들이 변화된 삶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의 좁은 생각의 반경이 넓어지고 우리의 닫혔던 마음이 열려 갈등과 분열, 폭력과 미움 그리고 편견과 아집을 버리고 강도 만난 사람을 긍휼로서 감싸 안았던 사마리아인의 삶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오순절 때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가 임하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소동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세계 각처의 디아스포라 방문객들을 놀라게 했다. 오순절 때 급하고 강한 바람과 불이 혀같이 갈라지는 “성령의 역사(役事)”가 임하자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성령의 역사(役事)”는 하나님의 계시(revelation)가 삶에서 일구어지며 일구어 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의 나타내심이다. 그러므로 파스칼은 모든 사람들이 창조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안 되는 믿음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져서 믿을 수 있기를 기다리며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주어진 삶을 살기를 기원하는 것이다.파스칼은 그의 명상록(Pense'es)에서 인간의 육체를 기계 또는 이성으로 비유하면서 “기계를 굽혀라” ‘그리고 교회에 나가 육체의 습관이 영혼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은총이 영혼을 하나님의 방향으로 기울게 하여 바보가 되라’고 그의 명상록에 기록함에 삶을 깨우치게 한다. 이성의 판단이 그칠 때 하나님의 은총은 마음을 비추리라고 한다. “성령의 역사와 그 믿음”으로 삶을 사는 믿음을 알게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6-09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 -9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09. 불후(不朽)의 개혁자 엘리야 [3]갈멜산의 대결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분노가 치솟았다. 특별히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바알과 아스다롯의 제사장들 850명이 몰살당했다는 소식은 이세벨의 이성을 잃게 만들었고 당장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하였다. 갈멜산에서 바알신이 처절하게 패배한 소식도 들었을 것이고, 엘리야의 기도로 하늘이 열리고 이미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사탄에게 완전히 사로잡힌 이세벨의 마음에는 도무지 회개하는 심령이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믿는 신, 바알을 압도적으로 패망케 한 엘리야와 하나님에 대한 원한이 극도에 달한 나머지 사신을 엘리야에게 급히 보내어, “내가 내일 이맘 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왕상 19:2)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고, 엘리야는 낙심천만하여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엘리야의 인간적 면모완악한 이세벨에게 갈멜산의 이야기나 하늘이 열리고 비가 오는 일은 감동적인 사건이 아니라, 옛날 애굽의 바로 왕처럼 그의 마음을 더욱 강팍하게 할 뿐이었다. ‘감동’이 아닌 ‘감정’이 치밀어 오른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하자, 엘리야는 이세벨의 의외의 반응을 보고 매우 당황했었던 것 같다. 갈멜산의 대승리 이후 어쩌면 인간적인 면에서 약간은 우쭐해 졌을지도 모르는 엘리야는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바닥으로 추락하였고,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 길에 올랐다.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에 불과하다. 엘리야 같은 믿음의 거장도, 인간적인 위협에 잠시 믿음의 끈을 놓친 순간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고 연약한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만약 엘리야가 이세벨의 협박에 두려움 없이 이전처럼 단호하고 당당하게 대처했었더라면,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해서 그의 생명을 보호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땅에는 더 신속히 효과적인 개혁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세벨에게 겁을 먹은 엘리야는 죽을 힘을 다해서 약 150㎞를 도망하여 남방유다 국경 근방인 브엘세바에 이르렀다. 유다 땅에 들어와서도 엘리야는 여전히 불안감을 느끼고 하루 길을 더 걸은 후에야 조금 안심이 되어 쉬다가 잠이 들었다. 천사가 그를 깨웠고 음식을 준비해 주었다. 참으로 자상하신 하나님의 손길이다. 하나님을 등지고 도망가는 엘리야를 나무라지 않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더 도망할 수 있는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보라. 음식을 먹고 힘을 얻은 엘리야는 일어나서 다시 300㎞ 이상을 걸어서 호렙에 도착하였다. 지칠대로 지친 엘리야는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그가 호렙산의 한 동굴에 들어가서 신세 한탄을 하면서 절망 중에 앉아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였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왕상 19:11). 잠시 후,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다. 다시 불이 일어났다. 그러나 여호와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불이 지나간 후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참된 개혁이란 요란한 구호와 과격한 행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감동이 일어나고 심령의 변화가 나타나서 그것이 개혁으로 연결되는 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조용하면서도 능력 있는 역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조용히 말씀하셨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엘리야는 하나님께 떼를 쓰듯이 이렇게 말했다. “온 이스라엘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고 주의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습니까? 그런 와중에도 저는 정말 하나님 사업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습니다. 사실 저 혼자 남은 것 같은데, 이제 저까지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꾸짖지 않으시고 다시 조용히 말씀하셨다. “엘리야, 너 혼자 남은 것이 아니야. 바알에게 굴복하지 않고 바알의 편에 기울어지지 않은 사람이 아직 7천명이 남아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서 내가 지시하는 일들을 이루도록 할 것이니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은, 갈멜산의 승리 이후 기고만장했던 엘리야의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성급한 성격의 엘리야에게 차분하고 겸비한 심령을 일깨워 주셨다.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지시(왕상 19:15~17)를 받아서 수행한 후에 그의 후계자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사명을 인계한 다음, 죽음을 맛보지 않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신비한 경험을 통해서 지금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다. 엘리야의 마지막 사명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열왕기상 20장부터 기록되어 있다. 이제 엘리야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고 그의 삶을 통해서 오늘날 현대교회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들을 몇 가지 살펴보고자 한다.엘리야의 경험에서 배울 교훈들구약시대가 끝나면서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말 4:5)낼 것이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께서 초림하시는 날’,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날’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초림 전에 엘리야와 같은 사명을 가진 선지자가 나타날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 엘리야가 세례(침례) 요한임을 예수께서는 친히 언급하셨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의 오시는 길을 평탄케 하여 백성들이 예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일이었고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수의 재림 직전에도 엘리야와 같은 사명을 가진 개혁자들이 나타나야 할 것이고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 역시, 예수의 재림을 맞이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정결하게 준비시키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종말의 시대에 엘리야의 사명을 가진 자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가? (1) 마음이 순수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구약의 엘리야나 신약의 엘리야 세례 요한이나 모두 산 속 아니면 광야 같은 시골 출신이다. 그만큼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순수했다는 것이다. 개혁자의 사명을 완수하려면 세속화 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야 한다.(2) 자신이 먼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회개하라”고 외치려면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여 정결함을 받고 날마다 자아가 깨어지고 죽어서 굳건한 믿음으로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지켜야 한다.(3) 죄를 죄라고 지적할 수 있는 담대한 용기가 필요하다.-엘리야가 아합 왕의 부패와 타락을 지적했듯이, 세례 요한이 당시 헤롯 왕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죄라고 지적했듯이, 현대의 엘리야도 엄연한 죄를 눈 감고 지나가지 말고 죄를 죄라고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4)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개혁자는 옳은 일을 위해서라면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의지를 가지고 끈기 있게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엘리야는 지치고 탈진하여 넘어졌지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 전진하였다. 이것이 개혁자의 정신이다.(5) 주변의 상황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한다.-엘리야가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그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왕상 19:3)였다. 그때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바라보았다면, 도망하지 않았을 것이다.오늘 이 시대에도 엘리야가 필요하다. 아무리 교회가 세속화 되고 타락하였어도 하나님께서 숨겨 두신 현대판 ‘7천명’이 남아 있다. 이 시대의 엘리야들이 함께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면, 예수의 재림 전 또 다른 개혁의 역사가 시작될 것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6-02
  • 예수 승천과 파루시아
    금주 5월 25일은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지 40일이 되는 날로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승천일’을 기념해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갖게 해야 한다. 신약 성서에서 보면 사도행전1:에서는 예수가 부활한 뒤 40일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가 그들이 보는 가운데서 구름에 싸여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 되어 졌고 요한복음서와 누가복음서에서도 승천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승천의 의미는 예수의 죽음과 그가 부활한 뒤 승천했고 영광을 받으셨다는 사실에 대한 믿음과 그가 아버지에게로 돌아갔다는 의미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리하여 그리스도교에서 승천 축제는 4세기 이래로 동서양이 모두 부활절 후 40일이 되는 날에 베풀어진다. 승천의 신학적 의미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모든 이들에게 내려지는 최종적인 구속의 행위, 즉 그리스도가 “하늘로 올려짐으로 그가 우리를 하느님과 고난과 기쁨을 함께하는 자로 만들 것이라는 사실이다”라는 것임을 알게 한다. 이렇게 ‘예수의 승천’은 초대 교회에서 세례 때 사용하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도 언급되어 있다. 승천 축제는 그리스도교도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부활절. 오순절과 같은 정도로 중요하게 여겨 왔으나 4세기 이래로 동서양이 모두 부활절 후 40일 되는 날에 베풀어 행사 되어 왔다. 그러다가 중세기에 와서는 승천 축제는 보다 적극적이고 시각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 행사 진행은 축제와 그림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와 함께 감람산에 올라갔던 것을 흉내 낸 행렬, 십자가를 세우는 것, 교회 지붕을 통해 부활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올리는 것 등이 포함되어 진행되었다. 서양에서는 승천을 다룬 최초의 작품은 예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구름으로 부터 나타난 하느님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고 있는 그리스도를 옆면에서 그림 그리는 것으로 11세기 까지 지속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예수의 승천”은 르네상스 시대와 바로크 시대에 미술의 주요한 주제였고 두 시대 미술 모두 그리스도가 그의 상처를 보여주고 있는 성상화를 담고 있음을 보고 오늘의 교회의 행사에서는 승천의 의미와 그 행사가 아예 없이 “예수 승천”의 의미부연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음에서 본래의 신앙의 특색을 드러내지 못함에 유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오늘의 교회예배갱신으로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지적 한다면 교회의 예배는 교회의 전통 예배로 부터 출발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오늘의 교회예배가 그 전통을 살려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전통은 신학적이고 역사적인 바탕에서 그 의미를 갖게 하기 때문이며 예배의 질은 세계교회의 공동의 예배 유산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폐쇄적인 교파주의 예배전통을 지양하고 전통의 유산을 확인해 가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과 승천을 달리해 왔다. 이는 사실이다. 예컨대 승천절을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중간에 위치하게 되면서 현존 하시는 그리스도를 지시하기도 하고 성령 강림이 승천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사건임을 시사해 오기도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아는 것은 영원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신학적 인식을 가지고 이를 실행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로 이는 승천이 현대신학에서 무시 받았던 것도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는 신앙의 실천에 무관하게 이해하는 그런 점에 기인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성찬 및 예전의 의미를 현존 하시는 그리스도의 빛에서 조명만 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행위를 일상의 우리의 삶 가운데서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그 행위를 나타내는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신앙” 만이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신앙이 될 것임을 알게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님의 승천을 그린 대부분의 성화들의 전통적인 특징은 그 몸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한다. 그리고 특징은 오른 손을 들어 땅 아래의 사람들을 향해 축복하는 예수님의 모습인데 이는 세상의 모든 교회들을 위한 축복을 뜻한다. 승천의 목적 중의 하나가 우리가 거할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하기 위함(요한14:2)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의 승천은 성서적이고 사도적인 사건이기에 반드시 기억되고 기념되어야 한다.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서인 제2 스위스의 신앙고백서에도 승천하신 예수님은 더 이상 인성을 가진 자로서 이 세상에 없음을 강조하지만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부재를 인식하면서도 우리는 성찬의 떠과 포도주를 통한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나아가 승천하신 모습그대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고대하게 된다는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6-01
  • 81. 제85회 총회장 김동권(金東權) 목사
    충남대전 출생김동권(金東權 1941.1.5~) 목사는 충청남도 대전에서 태어나 영동에서 자랐다. 불신가정이였지만 어린 시절을 꽤 똘똘한 소년으로 성장하였다. 10대 후반 초등학교 시절에 친구따라 처음 교회에 발을 드려놓았다. 그 후에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세상에 더 좋은일이 어디 있겠는가? 라는 자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이 그에겐 청소년기에 흔히 몰아닥치는 방황의 시기를 큰 어려움 없이 잘 넘기는 계기가 되었고 훗날 그때가 하나님의 부름이 아니었나 생각하였다. 그가 태어났던 시대적인 배경을 잠시 살펴보면, 세계 제2차 대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 동·서 냉전기류가 세계를 휩쓸고 있었고, 대한민국 역시 이러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 주위 강국들의 패권을 겨루는 환경 가운데 이 나라 역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좌왕우왕하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느 누구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어두움의 그늘이 짙어만 가는 미래가 보이지 아니하는 암울한 시기였다. 김동권 목사는 총회신학교를 졸업한 것이 계기가 되어 1959년 경남 진주 출신 사모와 결혼한 후 진주 지역에 있는 칠암교회(1955년 3월 6일 설립) 부교역자로 부름받아 진주땅을 밟게 되었고 3년동안 사역한 후 지역 내의 모교회격인 진주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 2007년 2월 12일 원로목사가 되어 은퇴하기까지 32년동안 오직 한 교회에서만 목회사역을 감당한 목회자의 모범을 보였다. 그가 시무했던 진주교회는 호주장로교선교회 소속 거열휴(Dr. Hugh Currell, 巨烈烋, 1902-1943) 선교사와 박성애(朴晟愛)가 전도하여 북문(北門) 안에 초가 3칸을 예배처소로 정하고 예배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1906년 진주읍 대안면에 예배당을 건축하였다. 1918년 진주읍교회가 전도회를 조직하고 여전도인 김성심(金誠心)을 청하여 진주지방에 본격적인 전도를 하였다. 진주에 복음을 전해준 거열휴는 아일랜드 로얄대학(Rayal College)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02년에 내한하여 1915년까지 의료선교사로 사역하였다. 처음엔 부산지부에서 활동하며 조선어를 익혔다. 당시 부산에는 미국 북장로교에서 이미 의료선교를 하고 있었음으로 커렐은 진주로 임지를 옮겨 진주지부를 이끌어가며 선교하였다. 1907년 안동학교와 정숙학교를 설립하였고, 1911년엔 본국에서 모금해 와 베돈병원(Payton 기념)을 완공하였으며, 1913년 세브란스전문학교 교수와 진주성경학원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15년 8월엔 진주읍교회를 조직 교회화 해 초대 당회장이 되어 오늘의 진주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내한선교사 총람 김승태, 박혜진 편, 1994, p.191 참조). 진주 지역은 호주선교사 거열후가 씨 뿌려진주교회 맡아 32년간 한 교회서 목회성경이 가르치는 농사의 원리 따라 ‘평생목회’총신대 재단이사장 및 운영이사장 역임“한국교회 강단에서 ‘내세신앙’ 훼손되고 있다”김동권 목사는 진주교회를 목회하며 명실공히 경남서부지방의 모교회로써 선교와 교회성장의 모범이 되었고, 교회가 성장해 감에 따라 교단 대사회적인데 이르기까지 역할을 단단히 감당해 나갔다. 그는 진주노회 구성원으로써 후배들에게도 존경받는 지도자로 발돋음 하게 된다.그의 경력을 살펴보면, 진주교회를 섬기면서 그가 속한 진주노회의 노회장으로 10회기가 넘는 노회의 성장 발전에 이받이 한 것만 보아도 그의 인화(人和)와 지도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얼마전 ‘평생목회’ 기자와 대담을 하면서 그의 목회관을 피력한 글을 옮겨본다. 그는 평생목회를 하면서 오직 성도를 위한 기도와 강단목회를 했다. 심방과 말씀을 잘 먹여야 한다는 일념으로 목회를 하였다. 거처가 지방이어서 서울에 있는 총회나 여러 선교단체에서 활동해야 하느라 여러가지 어려움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목회자는 교회와 성도 앞에 겸손해야 한다. 정직한 목회가 가장 바람직한 목회다. 물질과 생활에 정직함은 물론이며 모범적이어야 한다. 거짓은 사탄의 속성이다. 정직함은 성령의 은사다. 하나님 앞에 충성도 책임감이다. 자기 위치를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격월간 평생목회 2016년 10월~11월로 p.35 참조). 그는 최근 증경총회장 설교모음집에 기고한 갈라디아 6장 6~10절을 본문으로 “심은대로 거두리라”는 제하에 바울 사도가 언급한 농사의 원리를 인용, 그리스도인의 삶을 비교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였다.첫째, 거두기 위해서는 심어야 한다. 본문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로다. 둘째, 심는 씨의 종류대로 거두게 된다. 본문 8절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셋째, 때가 되면 거두게 된다. 본문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폐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며 거두리라. 넷째, 심는 씨는 작으나 거두는 것이 많다는 원리이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심는 것이 있어야 때가 되면 심은 종류대로 거두게 된다. 그러나 농부는 씨가 부실하고 성장 가능성 없는 것은 뽑고(눅 13:7) 새로 씨를 뿌리다(역대 총회장의 증언, 홍정이 편, 예장총회출판부 2015 pp.277~280 참조). 이 설교에서 그의 신앙과 목회철학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자상하고 다정다감해 많은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의와 진리에 어긋날 경우엔 무서우리 만큼 단호하다. 이것이 그의 철학이 아닐까? 그는 총신대학교 재단이사장과 운영이사장을 역임하였고, 총회정치부장, 교단 원로목사 회장, 교단선거관리위원장을 비롯, 대한성서공회 재단이사장을 역임하며 교단의 대외적인 위상을 드러내기도 하였다.그가 진주교회 재임시엔 진주교회 70년 연혁사(1976. 12. 28)를 비롯 진주교회 80년사(1985. 11. 27)를 편찬, 교회의 과거사를 정리하였다. 1994년 6월 18일 현 예배당 기공식에 이어 1997년 3월엔 선교장학회를 조직 인재 양성에도 힘썼다.1997년 11월 15일엔 현 예배당 건축을 완공하고 헌당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1999년 1월부터 중국인선교회를 조직하여 고국을 떠나 진주지역에 기거하며 생활하는 다민족들의 영혼구원을 위해 중국어예배를 시작, 젊은이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나타내 보이기도 했다. 2000년 9월 26일부터 29일까지 김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진주교회에서 회집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5회 총회장에 당선됨으로 교단의 수장자리에 올랐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목회자가 소명을 잃어버리면 국가와 교회는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오늘의 사회적 현실을 두고 외치는 선지자의 음성이라 생각된다. 그는 또 한국교회 강단에 내세신앙이 훼손되고, 보이는 현실에 치중하는 한국교회를 질타한다. 보는 예배가 아니라 겸손하게 희생이 따르는 드려지는 예배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지금은 물질에 집착하는 불신앙적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한다. 그는 1938년 9월 27일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사건을 두고 그 날이야 말로 한국교회 치욕의 날이었다고 갈파한다. 작금에 이르러 해노회와 총회가 제명했던 주기철 목사의 복권선언이 있었지만 해벌 받아야 할 당사자도 없고, 당시 책벌에 앞장섰던 당사자(총대)들도 없는 장소에서 후배들의 복권선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고 자문한다. 한국교회의 원로로써 후배들과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는 모습이 한국교회는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그가 재임했던 제85회 총회 중요결의안을 살펴보면, ① 총회 임원선거를 제비뽑기로 하기로 가결하다. ② 미주지역 노회와는 친목유대 관계만 유지하기로 하다. ③ 총회주일 세례교인 의무금 불이행교회는 총대권 제한 및 제증명 발급을 중지하기로 하다. ④ 한기총과 한장연에 소속한 교파와는 연합운동을 지속하기로 하다. ⑤ 본 총회가 허용치 않는 여목사와 여장로는 강단에 세울 수 없다. ⑥ 본 총회가 설정한 윤리에 위배된 교직자(주초)는 강단에 세움을 금한다. ⑦ 여교역자가 여전도회 임원이 될 수 없다. ⑧ 목사 결혼 주례건은 신자에게 당회장은 재량으로 하기로 하다. ⑨ 교단 기관목사로 70세 정년제도가 적용되는 것으로 가결하다(제100회 총회 회의 결의 및 요람, 이승희 김창수 편, 2016, pp.34-35 참조). 김 목사의 슬하에는 두 아들이 있으며 모두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사업과 신앙에 매진하고 있다.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7-06-01
  • 성육신한 예수교회-49
    교회가 60을 넘기면 얼마나 성숙해지는 것일까? 구약에서 보여주는 광야 교회가 가장 비중 있게 보여주는 그림은 성막일 것이다. 이 성막 안에서 매일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드리는 번제를 비롯하여 속건(배상)제와 감사제등, 이와 같은 여러 제사 행위를 통해서, 백성들은 저마다 개개인이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었다. 지극히 거룩한 지성소에는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 행사를 치르면서 절정에 이른다. 대제사장은 이날 백성들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씻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가는데, 그가 속죄의 피를 가지고서 하나님을 뵙고 나오게 되면, 모든 백성들은 다시금 거룩하게 되어서, 거룩한 도시, 거룩한 시민, 거룩한 국가 시스템을 단단하게 갖춘다.이스라엘의 시스템은,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하나님께로부터 백성들에게 나아오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이 바로 제사장, 임금, 선지자였다. 시기마다 상황에 따라서 주도권이 옮겨가는 경우는 있었지만, 안정된 평화 시기에는 조화를 잘 이뤄 있었다. 백성들이 평상시에는 임금의 통치를 받는다거나, 제사장의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였다. 그러나 유사시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대면하고 백성들과 상관하였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실천하도록 함에 있어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분들은 지극히 소수였고, 백성들 모두는 몇 안 되는 이들을 잘 따라 주었다.우리가 모두 아는 바이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A.D. 30년 이후 모두 해체되고 붕괴된다. 한 사람만 출입하던 지성소 휘장을 찢어버리시고, 누구든지 들어 올 수 있게 하신 것이었다(눅 23:44-46). 이에 관하여 당시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라(히 10:19-20)’ 하였다. 특정화된 한 사람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고, 모든 것이 움직여지던 시스템이 바뀐 것이다. 아직도 원시적인 사회나 국가는 피라미드 구조와 같은 조직으로 형성되기 일쑤지만, 시민 개개인 모두가 빠짐없이 은사를 부여받고, 각자가 가진 은사와 재능이 활성화 되어서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통합되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누가는 그의 복음에서 이러한 역사가 어떻게 진행이 되어 진 것을 두 권의 기록을 통해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한사람에게만 성령이 임하여 계시는 구약과는 다르게, 사도행전이 시작되면서, 예수의 이름 안에서 모임을 갖는 회중 개개인 모두에게, 성령이 임하여 계시는 것이었다. 맨 처음 성령은 각 사람에게 불꽃으로 나타내셨지만, 성령의 임재가 내면화 되어서, 모세나 다윗에게 나타나던 영적 은사가, 저들에게도 확연하고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노란 자와 흰 자로만 구분되었던 달걀 같은 단세포에 지나지 않던 교회가, 분화와 통합을 거쳐서 병아리로 탄생되듯이, 머리와 손과 발이 모두가 갖추어져 있는, 성령으로 소통되는 유기적 공동체가 탄생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세속적인 사회는 전통적인 조직에서 벗어나질 못하지만, 새로 탄생된 교회에서는 각자에게 부여된 은사들이 활성화 되었고 존중되었다. 새로 탄생된 교회는 개개인에게 어떠한 규칙이나 제도를 세분화 하는 것을 절제하였다. 몇 가지 단순한 것을 제외하고는 사람을 옭아매질 아니하였다. 요즈음 우리네들이 모이게 되면 일상으로 회장을 뽑고, 조직을 두는 것과는 전혀 모양새가 달랐던 것이다. 만인에게 열려진 지성소와,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됨으로서 인하여 오는 영적인 변화와 흐름을 교회가 통제하질 않은 것이다. 교회가 환갑을 넘길 즈음,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의 비결을 교회와 나누었다. 베데스타 못에서 38년을 거동하질 못하고 누워있기만 하던, 한 병인을 구원하였는데, 그날이 바로 안식일이라서 논쟁과 소요가 일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한 그리스도 사역의 비결을 공개하였는데, 이는 환갑을 맞이하는 당시 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리스도가 그를 보내신 하늘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와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과, 아버지가 보여 주시는 것에서 벗어나질 않았고, 항시 그가 듣고 본 그대로 사역했던 것이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그렇게 하였고,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사역 까지도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며, 아버지가 보는 것을 같이 보았다. 모세에게 불꽃이 일어나는 떨기나무가 지성소였다면, 그리스도의 지성소는 바로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던 겟세마네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지성소의 휘장을 찢으시고 누구에게나 지성소를 여심은......, 당신과 나를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성령이 계시는 지성소로 초대하심은 왜일까?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6-01
  • 신현국 장로
    노년의 건강 비결은 하루 세끼 밥 잘 먹는 것 신현국 장로(98세, 서울영천교회 은퇴)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자녀들과 가족을 위한 기도와 교회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다. 그리고 동네 아파트 공원에 나가 산책으로 건강한 하루를 시작한다. 낮 시간에는 근처 사회복지회관에 나가 담소하고 친교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의 일과이다. 그렇지만 신 장로는 “저의 건강 비결은 매일 끼니를 거르지 않고 식사를 잘하는 것입니다.”며 “저는 밥을 많이 먹어요.”라며, 건강을 위해서 특별한 약이나 건강식품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한다.신 장로는 매주일 수원에서 서울 서대문구 독립문 앞에 있는 본교회(서울영천교회)를 오전 10시 30분에 도착하여 은퇴장로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11시 예배에 참석하며 오후 예배까지 교회에서 하루를 보낸다. 이 교회에서는 제일 연세가 많은 어른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신 장로는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 그대로 말수가 적고,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수긍하는 편이다.신 장로는 1919년 경기도 이천시 율면 신추리에서 태어나 26세에 면서기로 공무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농촌에서 교회를 섬기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 공무원생활 15년 동안에 부면장에 오르기까지 성실하게 살아왔다. 신 장로는 고향에 있는 초원교회 개척 멤버로서 교회당을 건축하기까지 충성을 다했고, 오늘의 모 교회는 아담하고 성도의 수도 3백여 명에 이르는 좋은 교회가 된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신 장로는 공직에서 물러나 고향 농촌에 적응하고 살기 위해 10년여 동안 농사일에 전념해 왔다. 그러다 농촌생활을 청산하고 66년 서울로 생활근거지를 옮기게 되었다. 서울에서 출석한 교회가 바로 서울영천교회(고신)였고, 이 교회에서 집사에서 장로까지 이르게 되었다.신 장로는 공무원생활과 농사일을 하다가 갑자기 서울에 오니 막연하기도 했지만 당장 할 일을 찾기 어려웠다고 한다. 어느 지인의 소개로 면장갑과 고무장갑을 판매하면서 기업에 납품도 하여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고 여유가 생겼다. 교회 옆 아파트에 살면서 교회생활에 충실한 결과 서울영천교회 안수집사로 장립을 받고 이어서 1981년에는 장로로 임직하게 되었다. 그동안 교회생활에서 모범을 보였기 때문에 98세의 노년에도 성도들은 신 장로의 모습에 감동을 받고 있다.신 장로는 30년 전 소천한 윤태옥 권사와의 사이에 3남3녀를 두었다. 혼자가 된 후에도 신앙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신 장로의 직계 자녀손들은 무려 33명이나 되는 다복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장남 가정에서 지내고 있는 신 장로는 교회와는 먼 거리에서 살고 있지만 교회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신 장로에게 가장 가슴 아프고 후회스러운 일은 고향 이천에서 평온하고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고 했으나 46세의 젊은 나이에 부면장에서 강제 해직된 일이라고 회고한다. 그 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우 가슴이 아픈 일로 기억된다고 했다.그러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지금의 서울영천교회에서 장로가 되어 은퇴하기까지 살아온 것이 너무 감사하다”며 아무 후회와 욕심 없이 주님나라 갈 때까지 신앙생활에 전념하고자 한다고 했다.신 장로의 장남은 올 해 72세이며 장녀는 74세이니, 이들 자녀들도 도움과 효도를 받아야 할 나이임에도 신 장로는 어쩌면 더 건강한 노년을 보내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살고 있다.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를 즐겨 부르면서 틈틈히 성경을 읽고 지낸다. 항상 자녀를 위해 기도하면서 남은 생을 주님께 맡기고 살겠다는 신 장로는 내년에 있을 100수 잔치는 서울영천교회의 경사로운 행사로 치러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6-0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45
    중세 유럽에서의 카니발은 축제의 이면에 비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가령 축제 기간 동안에는 서민들이 성직자나 군주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욕을 해도, 그들은 구금되거나 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직자나 군주는 축제 기간 동안에 있었던 비판적인 소리를 참고하여 정책에 반영하였던 거지요. 이 때문에 축제 기간 동안에는 한편으로는 개인의 달란트를 한껏 발휘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던 스트레스를 한껏 날려 버리는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었지요. 이 축제에는 성직자와 군주와 민중이 다 함께 어우러져 축제가 끝난 후 전개될 새로운 일상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보면 축제 때의 쓴소리는 성직자와 군주와 민중이 공통 분모적으로 다루어야 할 진실을 향한 정당한 의견이 분출되었던 셈입니다. 요즘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쓴소리를 보면서 민중의 목소리가 과거에 비하여 많이 높아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쓴소리 이면에 감추어진 사랑을 망각할 때에 그것은 우리 사회에 분열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도자를 뽑고 쓴소리를 하는 것은 다같이 잘 살아 보자는 관심 때문일 겁니다. 개인과 민족과 나라에 상관이 없다면 그러한 일에 무관심하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위대한 점은 민중이나 이스라엘 분봉왕이나 로마 황제에게 다 통하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죄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사랑으로 해결하였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국가간의 이익 다툼이나 분단 현실이나 동서간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근본 자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입니다. 너와 나가 한마음으로 가져야 할 것은 사랑입니다. 여야간의 갈등이나 정책 갈등의 이면에 진정으로 작용해야 할 것은 너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럼 사랑은 어디서 단련되어야 할까요. 용광로에서 불의 담금질을 거쳐 순금이 나오듯이, 개인의 인품을 단련시키는 기본적인 장소는 가정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가정은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등 가족이 만나 생동하는 기쁨을 나누는 곳입니다. 이 가정에서 개인이 사회에서 할 역할의 추임새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살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참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지요. 남자·어린아이·청년·장년·노년·남편·아들·아버지·할아버지·교수·시인·평론가·친구·동호인 등 참으로 개인이 많은 역할을 상황에 따라 하면서,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가정에서의 역할인 것 같습니다. 이는 신생아를 보러 갈 때나 지인의 장례식에 가 보면, 사람들이 가족 중심으로 모여 있는 데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던 딸아이가 필자의 집에 잠시 와 있습니다. 1년 동안 기다리던 아이가 안 생기자 인공 수정을 하기 위해서 집에 온 것이지요. 딸아이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가정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生과 死의 결정은 주님이 하시는 일인지라, 부부가 아이를 가지게 되는 것은 부부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지요. 그래서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니는 중입니다. <시편>에 “새벽을 깨우리로다”란 말씀이 있지요.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 중에 빠졌도다 (셀라)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6-11).새벽은 우주에 놓인 내 영혼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삶이 육적이나 물질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영혼의 세계와 균형을 유지할 때에 나의 시야가 넓어지고 세계를 향한 힘이 생기게 됩니다. 이 새벽에 주어지는 힘으로 너와 나가 함께 하는 우리와 민족과 세계를 바라보며, 오늘도 나는 가정에서의 멋을 생각해 봅니다. 집안을 깨끗이 정리하고, 가족이 나눌 기쁨을 찾아 식탁 위에 앉습니다. 그 날 하루 있었던 일상의 고마움을 가족에게 알리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내일 당장 죽음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기에 오늘 하루를 보람있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생각하고, 내 안에 자라고 있는 사랑이 실천으로 옮겨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며, 주어진 시간에 주 앞에서의 진지한 마음으로 일상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석양의 빠알간 햇빛과 함께 하루 일을 마친 이들이여! 이제 살 맛 나는 가정을 그려 보십시오. 그리고 신뢰의 향기와 함께 가족들의 인간미를 만나 보십시오. 주님이 동행하는 가운데 너와 나가 행복해 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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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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