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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42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 제1악장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카라얀이 지휘하는 모습은 내 청춘의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어떻게 눈을 감고 한 시간 이상을 지휘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그의 지휘를 남몰래 골방에서 흉내내며 ‘예술의 멋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고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강렬한 선율에 맞추어 강하게 지휘봉을 휘젓다가 부드러운 선율에서는 눈을 지그시 감고 감미로운 세계에 빠져드는 것 같은 카라얀의 폼을 나는 끝내 잊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청년 시절 S교회 성가대의 지휘자로 서게 된 것은 순전히 카라얀의 지휘 흉내를 낸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주일마다 강한 선율의 악보를 선곡하여 일주일 내내 카라얀 폼을 흉내내며 연습에 연습을 더하였고, 성가대원이 스무 명 남짓의 적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멋진 지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내가 그토록 열심히 지휘를 한 것은 현이의 옆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나는 현이의 연주를 귀담아 들었고, 그녀의 손길을 통해서 나오는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꿈을 꾸듯 아름다운 상상을 펼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이가 학생인지라, 결혼을 하려면 5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성가대 선배인 Y가 흘린 정보에 의하면, 현이가 직장을 한 3년 다니면서 결혼 자금을 저축해야 결혼이 가능하다네요. 그래서 나는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현이가 빨리 성년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도 ‘사내가 맘만 먹으면 빨리 할 수도 있겠지’ 하면서, 어느 날 작심을 하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물론 추석 명절을 핑계로 설탕을 한 포대 사들고 말입니다. 그러나 현이는 그녀의 부모님이 계셔서 쑥스러운지 방에서 나오질 않네요. 내가 느닷없이 현이의 집을 불쑥 찾아가서 그랬는지, 아니면 내가 음정과 박자를 제대로 몰라서 그랬는지, 어느 날 나는 지휘자에서 베이스 대원으로 강등되었지요. 그리고 내가 지휘했던 자리에는 현이가 올라섰습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도 아쉽지가 않았습니다. 식사 시간이면 현이 옆에 앉을 기회가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현이 옆에만 있으면 왜 그리도 가슴이 콩당콩당 뛰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는지요. 오히려 현이 옆에 있는 여자애한테는 말이 술술 나오는데, 정작 현이에게는 한 마디도 말을 못 붙이는 거 있죠. 거기다가 백화점 선물 세트를 싸들고 현이네 집에 찾아간다는 후배도 있네요. 그러던 어느 날 현이가 성가대원들 앞에서 자신은 약혼자가 있다고 선언해 버리네요. 현이를 좇아다니던 후배의 얼굴이 노랗게 변하데요. 나도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현이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겨우 꺼냈지요. 집으로 가는 길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얼마 후 아내를 만나 사십여 일만에 결혼하였지요. 6개월 후 성가대장인 장선생이 우리집에 놀러와서 왜 현이와 결혼하지 않았냐고 귓속말로 묻네요. 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아, 약혼자가 있는데, 어떻게 청혼을 합니까?” 했지요. 그랬더니 장선생이 한 마디 덧붙이네요. “당신 후배들이 자꾸만 추근덕거리니까,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그렇게 한 거지이. 아, 나한테 현이가 그렇게 말한 사연이라도 물어보지 그랬어?”아무튼 이래저래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여인과의 결혼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 충격으로 나는 한동안 결혼 전의 사건을 잊느라 오랜 시간을 허전한 마음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야 나는 진심으로 주님 앞에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짝은 하나님이 맺어 주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는 동안 내가 콤플렉스가 심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추남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열등감은 여성 앞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가 없었지요. 그러나 내가 주님 앞에 진심으로 다가섰을 때 주님은 나의 열등감을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는 글재주였습니다. 그래서 30여 년을 글쓰기로 담금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벽마다 주님께 영감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매달림에 주님은 새벽마다 예쁘고 고운 생각들을 내 머리맡에 놓고 가셨습니다. 아침마다 주님이 놓고 가신 영감을 노트에 적어 놓고 감미로움에 젖었습니다. 그리하여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먼저 주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이번 글은 어떻게 써야 독자들을 감동시킬 수가 있을까요. 주님 이번 글은 어떠한 맥락으로 논리를 전개할까요. 이와 같은 대화를 끊임없이 하면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주님이 놓고 가신 영감을 붙들고 글쓰기에 매달리고, 산책을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영감을 떠올리고 하는 동안, 나는 점차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확인해 갈 수 있었습니다. 글쓰기가 즐거웠고, 주님과 대화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것이 한때 사랑하였던 사람과의 이별 후에 생긴 나의 변화였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7-04-20
  • 목회는 쉬운 것이다·28
    왜 사람들이 사람을 비판하고 무시하는가? 그리고 원수라고 생각하는가? 이것은 정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극단적인 이방 종교에 젖어있다는 증거입니다.내가 만일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 안에서 자신이 사랑과 평화를 느낄 뿐입니다. 나아가 세상 속에서도 사랑과 평화가 되는 것입니다.예수님의 탄생 목적도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평화로다”라고 했습니다.우리가 순간마다 외우며 고백하는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문에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머리와 지체로 본 에베소서의 기록이 한 몸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체의 존재가 머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거론하고 따질 이유가 없는 매우 중요한 체험적 표현입니다. 이 귀중한 공식이요, 원리를 알기 때문에 의욕을 잃지 않는 것은 테레사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가?”나는 무리를 보지 않습니다. 오직 개인만 볼 뿐입니다. 나는 한 번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한 사람을 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번에 딱 한 사람만입니다이와 같은 아주 쉬운 일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일입니다. 언제나 한 알의 밀알입니다. 내 앞에 나를 보고 있는 그 사람입니다. 분명히 내가 먹고 마시는 만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교회도 그리고 교회 부흥도 개인의 한 사람 바로 내 앞에 보이는 그 한 사람이면 됩니다.마귀는 많은 무리를 보여주고 우리가 박수갈채의 꿈을 갖게 합니다. 이것은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순수하고 아주 쉽고 매우 작은 일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무리란 마귀의 숫자일 수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도 의욕을 잃지 않는 이유를 “오직 한 사람이 작은 그리스도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하나님의 완벽한 사랑과 평화 안에 거하면 그 사랑과 평화가 그들의 일상 속으로 흘러 넘쳐 결국 온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많은 무리나 많은 성과는 마귀의 바람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극소수를 무시하고 큰 것, 거창한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것은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분은 너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전능자이신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체만 덩치가 커 버리면 정신지체인일 수 있습니다. 지식의 기능이 약화합니다.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 내포된 삶입니다. 어떻게 해야 함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엄마 앞에서 어리광스럽게 엄마의 기쁨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만든 의식이 나 방법이 돼서는 안 되고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완벽해짐도 아닙니다.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보시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 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그 사랑의 주인공인 예수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아껴주어서 누구도 울지 않는다면, 모두가 사랑하고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가 서로 나누고 교만을 내려놓는다면, 누구도 죽지 않는 세상을 보게 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습니다.우리는 지금 형식주의에 물든 교회, 교회의 예배방식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종교의식에서 그 탈을 벗으면 불순종이라는 고정관념이 우리나라의 유교적 습관에 물든 교회가 문밖을 내어다 볼 수 없는 사람들로 된 기형 그 자체로 한 번도 치료해볼 생각도 없이 병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병신이 이해할 수 없는 독선이 결국, 이 꼬락서니를 만드는 것입니다.똑같은 형식, 주일만 모였다가 주중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버려둔 채, 주일이면 경매시장처럼 눈을 부릅뜬 사람들이 서로 경쟁이나 하듯 아우성을 치고 장사꾼들의 그 모습을 주님은 망가뜨리셨는데, 우리는 그 일을 또 하고 있습니다. 어느 목회자의 회심한 이야기입니다. “이제껏 나는 지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알려고 애써왔다. 말만 번지르르했을 뿐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이 고백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한 번도 지식적으로 논리 정연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내가 가진 것 전부일 뿐입니다. 더 좋은 것, 귀한 것을 기다리시지도 않습니다. 그분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고 그럴 듯한 설명서도 없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것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4-20
  •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특집 / 개혁하는 교회 : 종교개혁은 끝나지 않는다-5
    1부 성경에 기록된 신앙개혁의 역사5. 개혁의 기준은 ‘하나님의 법’이다 서언‘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는 말이 있다. “옛 것을 공부하면 새 것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성경을 연구해보면 오래 전 옛적에 하나님께서 인간(죄인)이 죄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이치와, 구원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그 원리를 상세하게 말씀해 놓으셨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변동될 수 없는 성경의 진리나 원리가 왜곡되고 변질되어서, 성경이 가르치는 원래의 뜻을 벗어난 교리나 관행이나 제도들이 만들어지고 그것들이 교회에서 통용되면서 수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중세교회의 말틴 루터의 개혁이라는 것도, 어떤 새로운 교리나 제도나 체제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성경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로마교회의 왜곡된 교리나 제도를 성경의 원안대로 돌려놓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래서 그의 개혁의 모토는 ‘오직 성경’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개혁’이란, 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에 가감했거나, 사람들 마음대로 고친 것들을 원상대로 복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구원의 원리를 회복해야 한다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구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을 기초로 하는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첫째, 죄인이 어떻게 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는가? 들째,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셋째, 그리고 실제적인 구원과 영생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이 원리와 방법은 사람이 연구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생활을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육을 받았다(신 5:15 참조). 6일 동안 내리던 만나가 7일째에는 멈추었고, 그 날 안식일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광야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시내산 앞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엄청난 일들이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직접 현현(顯現)하시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요구 사항을 집약한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이다. 얼마 후 십계명이 기록된 두 돌비를 보관하는 법궤와 함께 성소가 건축되었는데, 그 성소의 구조와 제도 안에 구원의 원리, 성도의 생활,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상태가 설명되어 있었다.(1) 뜰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칭의)-성소는 뜰, 성소,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장소인 뜰에서 죄인이 제물(양)에게 안수하므로 자신의 죄를 전가(轉嫁)한 다음, 죄를 뒤집어 쓴 양이 번제단에 불태워지는 의식을 통해서 죄인이 의롭게 되는 절차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죄 없는 의인에게 전가시키므로 자신이 타의에 의해서 의롭게 되는 것을 칭의(稱義)라고 한다. 뜰의 번제단과 성소의 입구 사이에 위치한 물두멍은 제사장이 성소를 출입하며 손과 몸을 씻는 곳인데 영적인 의미로는 침례(세례)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뜰은 죄인이 어린 양이 표상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장소이다.(2) 성소에서 구현되는 그리스도인의 삶(성화)-성소 안에는 떡상과 향단과 촛대가 있다. 뜰에서 구원을 경험한 성도의 삶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떡상)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기도(향단)를 통한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촛대 안에 들어 있는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고, 기름을 연료로 해서 타오르는 촛불은 성령의 역사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변화되는 모습으로 이웃들에게 빛이 되는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대체로 이 성소의 단계에서 좌절하며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성화(聖化)의 신앙이 심히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종교개혁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개혁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변화되어 예수를 닮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의 기초를 이룬다.(3)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영화)-지성소에는 법궤가 있고 법궤 위에는 쉐키나 영광의 형태로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다. 1년에 하루 7월 10일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대면하였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것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성경에 수백 번 언급된 주님의 재림의 날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그분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 날에 우리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요일 3:2)이라고 하였고, 사도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하여 주님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즉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고전 15:51)될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들이 장차 하나님을 만나서 살게 될 영광스러운 변화를 ‘영화’(榮化)라고 한다. 이것은 ‘개선’이나 ‘개혁’을 넘어서는 ‘개벽’이다. 개혁의 지표-계명위에 언급한 성소 제도의 전반적인 의미는 이렇다. 뜰에서 이루어지는 칭의는 한 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며, 이것은 구원을 받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오직 믿음만 행사하면 되는 것이지, 인간측의 어떤 노력이나 공로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재림 시에 있게 될 영화 역시 순식간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그러나 ‘성화’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삶에 있어서 평생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일이다. ‘칭의’가 갓난아이로 태어난 상태라면 ‘성화’는 그 아이가 자라나는 과정이다. 그러니까, 구원이란 ‘이미 얻은 구원’(already)을 기초로 해서 자라나며 성숙해지다가 ‘장차 얻을 구원’(not yet)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고 권면하였다.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지향(志向)해야 하는 지표는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쉐키나), 혹은 존재의 기초(시 97:2 참조)로 자리 잡고 있던 지성소의 법궤 속에 들어있는 십계명(도덕법)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십계명은 폐하고 ‘사랑’으로 대치되었다고 말하는데,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개혁교회 신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9장 ‘하나님의 율법’ 5항에는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도덕법의 이 같은 의무를 전혀 폐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시킨다”고 되어 있다. 예수께서도 친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 5:17)고 하셨고,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한 부자 청년이 구원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권면하신 바 있다.필자가 ‘개혁’과 관련하여 ‘율법’ 혹은 ‘계명’을 강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교회나 성도들의 생활이 늘 변질되고 부패하여서 ’개혁‘이 필요한 근본 이유는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서 자의(自意)대로 살아가는 것이 쉽고 편한 인간의 죄된 본성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치리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과감한 개혁을 시도한 왕들은 모두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 율법을 기준으로 나라와 백성들을 바로 가르쳤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교회와 성도들의 삶을 개혁하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명하신 법도와 계명을 깊이 살펴서 그 원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 지난 칼럼
    • 종교개혁500주년 특집
    2017-04-14
  • 목회는 쉬운 것이다·27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바른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예수님처럼 살자.” 예수님의 구속을 이루기 위한 십자가를 지심은 예수님의 몫입니다. 그가 우리의 무거운 짐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생과 공생 즉,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시고 살아가신 삶은 우리가 능히 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시려는 십자가 지심입니다.우리의 의무는 세상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선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앞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평안해질 수 있는 사람이 성령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삶은 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우리는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데 능숙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복음이라고 하여 예수 믿어야 지옥 가지 않는다는 말이 지옥을 연상케 하여 기분을 망가뜨리는 것과 같은 행동을 사명으로 알고 극단적 용어가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행동이 됩니다.한 예로 자기 자식에게 “너는 무엇이 되려고 이렇게 공부를 안 하느냐?”라고 한다면 자녀는 공부를 잘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언어 습성이 늘 부정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신앙이 좋다는 사람치고 부드러움보다 극단적이 되고, 손을 잡기보다 손가락질에 능숙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어떤 사람이 「인간의 질과 새로운 길이란 이야기」를 이렇게 구분했습니다.원래의 사람 : 내가 과거에 격은 고통과 학대나 절망을 부지불식간에 남들에게 전해줍니다.새로운 사람 : 사랑 안에 거하면서 내 삶이 치유되고 변화됩니다. 그리고 그 치유와 변화가 나를 통해 더 넓은 세상으로 퍼져간다고 합니다. 나의 재정적인 안정, 정치적 신념, 영적 성향과 관행(나의 욕구를 중요시함).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를 가장 높은 가치이자 삶의 수액으로 여기게 됩니다. 거함의 길을 따라가면서 나와 남들이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중심으로 인생의 모든 측면(개인적인 재정, 남들과의 일상적 상호작용, 시민의 책임)을 살아갑니다. 내 영적 방향과 경험을 너무 소중히 여긴 나머지 남들의 영적 방향과 경험을 무시합니다.사랑 안에 거하면서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인정하고 모든 종교적 전통과 영성을 존중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구하게 되고 사랑 안에 거하면서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영적으로 겸손해집니다.내가 하나님과 관계에서 발견한 것들을 자신 있게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동시에 남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됩니다.폭력과 억압을 자행하는 자들이 변화하도록 돕지도 않으면서 비판만 하고 있습니다.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학대와 폭력, 억압의 희생자들을 구하고 치유하기 위해 애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으로 인해 가해자들의 변화를 위해 서로 독려합니다. 가해자들도 과거에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성경 속에서 말씀하신 거함의 삶세상의 악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로마서 12장 17절부터 보시면 “아무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라고 했습니다.“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신 32:35).“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오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21).사람들에게 아무런 권한을 주지 않았습니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함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처리할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할 일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할 이유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눌 것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후히 주시고 누르고 흔들어서 주신다는 것은 내가 감당할 만큼만 주시는데 사람의 곳간에 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이 주시면 많이 먹고 마실 것을 보급해야 할 의무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성령 받은 공동체적 삶의 가치입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4-14
  • 김사철 장로
    계간지 ‘안개꽃 세상’발행 등 문학 통한 전도활동에 심취 한국교회평신도지도자협회(한지협) 초대회장 김사철 장로(81세, 기침 월드비전교회)는 지금도 거의 매일 서울 종로 5가 기독교회관 한지협 사무실에 나와 여러 가지 자문을 하면서 회원들과 만나 친교를 나누고 있다.한국교회 평신도운동에 40여 년간 진력해 온 김 장로는 평신도단체 여러 곳에서 실력있는 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중요한 평신도행사에서는 김 장로의 차분하고 지적인 능력이 발휘되어 행사의 기획과 진행을 맡아 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밤, 평신도지도자포럼, 남북통일을 위한 기도회 등등 각종 행사에서 중심역할을 감당해 왔다.한지협을 창립하는 과정에서도 김 장로의 세심한 조직과 계획으로 역할이 컸고, 초대회장을 맡아 한지협을 교계에 알리며 매우 활발하게 이끌어 갔다. 교단을 초월하여 참여하고 있는 한지협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연합과 일치, 교회 갱신을 촉구하는 성명서 발표, 논평과 메시지를 발표 하는 등 교계에서 한지협이 주목 받는 단체로 이끄는데 가장 큰 역활을 감당해 왔다. 그래서 지금도 한지협이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조언하고 있다.김 장로는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언론학을 전공했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틈틈이 쓴 시를 모아 시집을 4권(들꽃 한 송이, 아름다운 출발, 바람의 소원, 풀꽃의 노래)이나 출간할 정도로 기독교 문단에 알려진 중견 작가이기도 하다.상록수문학회 대표회장을 역임한 김 장로는 지금도 문학에 대한 동경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최근에는 「안개꽃 세상」이라는 소책자를 계간으로 발행하여 군부대, 경찰, 교도소 등에 보내면서 열정을 보이고 있다. 지금도 창조문예, 장로문학, 상록수 문학 등 순수 문학지에 계속해서 작품을 발표를 하고 있으며, 국민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김 장로는 노년에도 교계단체 행사에서 참석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교회가 연합하고 하나 되는데 앞장서 왔으며, 특별히 연합사역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관심과 노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에 와서 평신운동이 약화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지금은 평신도 단체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유명무실(有名無實)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김 장로는 “평신도운동을 전개할 재정적인 여건도 그렇고, 평신도단체가 바른 말을 못하는 것은 교단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고 평했다.김 장로는 원만한 대인관계로 동료들과 후배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고, 그동안 한국교회평신도단체협의회 창립벱버로서 부회장과 침례교단의 전국적인 단체의 회장을 고루 거쳤기 때문에 지면(知面)이 넓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한국교회가 찬송가의 난립으로 어렵게 되었을 때에 김 장로는 평신도단체의 임원으로서 찬송가 통일작업에 깊이 간여하였고 산파 역할을 하여 성사시킨 일은 김 장로의 숨은 공로로 남아 있다.김 장로가 좋아하는 찬송가는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278장이다. 어쩌면 이 찬송도 연합과 일치를 모색하는 사랑을 강조한 찬송이다. 마음에 깊이 간직한 성구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편 1절이라고 한다.가족은 부인과 3남 1녀로서 장남은 목사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차남은 의사, 3남은 직장인으로 각자의 길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매일 종로 5가에 나오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 그리고 시간 틈틈이 근처 야산을 산책하는 것이라고 한다. 김 장로가 매일같이 기도하는 제목은 자녀들과 가족이 화평하고 건강하며 한국교회가 연합하고 일치하여 하나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지난 칼럼
    • 신앙으로 초대
    2017-04-14
  • 성육신한 예수교회-45
    A.D. 2세기까지 내려오던 유대인의 미쉬나 중에는 63개의 항목으로 된 “피르케이 아보트”(Pirkei Avot)가 가장 유명하다. 이는 일반적으로 “Ethics of the Fathers”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미쉬나의 1장 2항에 보면 이 세상을 받쳐주고 있는 기둥이 ‘토라와,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에서의 예배와, 친절한 행실’로 되어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의 기둥이 서로의 중요성이나 가치가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시대마다 어느 시기에는 성전 예배가 주를 이룬 적이 있었고, 성전이 붕괴된 이후에는 ‘토라’가 중심이 되었다.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시기에는 율법사나 서기관들이 제사장들과 쌍벽을 이루며 그들의 세상을 받쳐 주었는데, 역시 금전이 많이 흐르는 은행과 금고 역할을 하고 있던 성전의 지도자들인 대제사장이나 성전 파수대장이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리더십은 한 사회 안에서 창끝과 같이 서열을 다투는데, 오늘날의 풍토에서도 비쳐지고 있듯이, 금전이 많이 흐르는 대형교회가 순위에서 가장 앞서고, 복음을 맡은 신학교의 교수들은 두 번째 순위에 있다. 만일에 복음을 맡은 자들이 윤리적 권위나 가르침의 권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의 영적 권위는 가장 앞설 것이다. 그러나 사회 윤리적 기초가 되는 ‘토라’의 가치가 중요도에 있어서 성전에서 돌아가는 시스템보다 뒤떨어지게 되면, 그 사회는 오염되기가 쉬울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에 많은 교회들이 도시 안에 포진하고 있고, 매일 같이 예배가 드려지고 사람들을 정결하게 씻기고 거룩하게 하지만, 오염되고 있는 속도와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였음이다.교회가 주축이 되었던 세상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복음(성경)’을 앞세운 것도, 교회가 사회를 정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질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어둡게 하고 세속에 물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종교개혁 당시에는 교회의 제도가 모든 일에 있어서 앞서있다 보니, 예수의 가르침이 교회의 횡포에 밀려나 있었던 것이다. 교회의 중요성을 먼저 생각하다 보니 성경을 뜯어 고치는 일들과 복음을 왜곡시키는 일들이 빈번(頻繁)하였다. 이러한 경향들은 교회의 중요성을 우선시하고 성경해석을 한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풍토가 고쳐지질 않다보니, 결국에 가서는 복음은 항상 차선책이 되었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다가 구색을 맞추게 되었고, ‘교회론적인 복음’이 되었다.지금의 한국교회가 ‘다시 거룩하기’를 내 걸고 갖은 애를 다 쏟는다. 하지만 이러한 슬로건이 교회주의를 우선시하는 시스템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요식행위에 그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비쳐질 때에, 겉으로만 거룩해지는 모습으로 치달을 수 있다. 아무리 많은 량의 소나기가 퍼부었어도 땅 속으로는 스며들지 못하는 현상으로 결과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사막에 비가 내리면 상식적으로 빗물이 땅 속으로 스며들 것 같지만, 비가 표면으로만 흐르면서 와디 같은 강을 만들고, 모랫더미가 흘러가는 것이다. 요즈음 신학자들이 교회의 강단에 서는 빈도도 잦아졌다. 정말 그 학자들에게서 순수한 복음이 선포된다하기 보다는 교회론적인 복음으로 포장되기가 쉬울 것이다.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는 지식인은 교회로부터 보이지 않는 사슬에 묶여서 제한되기 때문이다.주후 80년경에 요한계시록이 기록된다. 이미 그 시기는 교회가 50년의 역사를 가진 때였다. 대다수의 교회들이 그리스도와 복음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빌론 음녀와 함께 치부되고 있었다. 계시록 한 장 한 장이 펼쳐지면 심판의 막이 오르고 우레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림은 왜일까? 계시록의 교회는 하나님의 보좌에 계시는 그리스도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내리고, 열두 가지의 열매를 맺는 강가에서 산다. 진정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시는 교회의 모습이다.그런데 계시록이 기록된 지 10년 후에 가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요한에게서 재설정되어 세상에 나온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이면 누구든지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바로 그가 하나님 아들로서의 권리를 취득한다.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론적인 개념에서 이동되어 개개인의 삶에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통치가 교회 바깥의 개개인의 삶에서는 효율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오늘의 교회는 생수가 흐르는 교회가 되든지, 신도 개개인의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오는 교회이어야 할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7-04-14
  • 77. 제94회 총회장 서정배(徐貞培) 목사
    경북 김천 출생서정배(徐貞培 1944.8.11~1016.5.28) 목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대양리 천동에서 부친 서기준과 모친 구옥희 사이에 1남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940년대는 일제 말엽 조선총독부가 전쟁물자를 거두기 위해 조선천지를 수탈하던 시기로, 세상천지가 어떻게 돌아갈지 기약없는 불안한 시대에 시골 한 촌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었다. 농민들이 애써 지어놓은 농산물은 자기들이 맡겨놓은 것인양 공출이란 미명하에 약탈해갔고, 백성들은 들과 산을 헤메며 풀뿌리와 채소로 연명하며 가난을 동무로 삼고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1945년 갑자기 맞이한 8.15광복절은 우리민족에게는 천혜의 복음이었지만, 준비되지 못한 당시 우리사회는 8.15 해방이 한편으로는 전 사회가 좌우의 사상적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이 정배 소년이 태어난 시대적인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가 태어난 지역엔 이미 대구에 자리 잡고 있던 미국 북장로교 선교지부(Mission Station)에 의해 경상도 북부지방인 김천지역에도 일찌기 기독교 복음이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에 보면 1904년(甲辰年) 합동공의회 시절에 이미 경부선을 끼고 있는 김천읍 황금동에 선교사 부해리(Rev. Henry Bruen, 1874-1957)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고(史記 上 1928, p.116), 이듬해 1905년(乙巳年)엔 김천읍에 유성교회(柳城敎會)와 광기교회(光基敎會)가 설립되었고(史記 上 1928, p.133), 드디어 1906년(丙午年)에는 정배 소년의 고향(대양리)에도 기독교 복음이 전해졌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金泉郡 大陽敎會가 成立하다. 先是에 當地人 幾名이 傳道人에게서 福音을 듣고 信從함으로 敎會가 設立되었는데 宣敎師 傅海利 領袖 金仁倍 助師 李載旭 李漢奎 等이 視職하니라”(史記 上 1928, p.163)고 기록하고 있다.소년 서정배는 점점 자라면서 마을에 있는 대양교회에 친구들과 함께 주일마다 학교처럼 출입하게 되었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생소한 환경이기도 하였지만 경제사정으로 멀리 나가 학교교육을 자유로이 할 수 없었던 정배 소년에겐 교회야 말로 학교를 유치원이요, 지적(知的) 영적(靈的)인 자양분을 받고 성장한 교육기관이기도 하였다. 불신가정서 태어나 주일학교서 신앙교육대구신학교·총신대 거쳐 목사 안수울산 대광교회 설립 중형교회로 성장시켜인자하고 조용한 성품의 지도자 면모 가져“사회법정 고소자 회원권 정지” 결의그가 청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내면서 세상적인 지식에는 어두웠어도 교회교육을 통하여, 또 신앙생활을 통하여 점점 성숙한 청년으로 성장해 갔다. 같은 고향 주위에도 이웃에 복전교회(福田敎會)와 좀 떨어진 선산(善山)에 청산교회(靑山敎會)가 들어서게 되어 일제하에서 해방된 조국은 기독교로 말미암아 정신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점점 안정되어 갔다. 소년 서정배는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등지고 김천에서 대구를 거쳐 울산광역시에 정착하게 되었다. 1975년 대구신학교(현 대신대학교 전신)를 거쳐 총신대학교 신학연구원을 졸업하고(제68회), 울산광역시 남외동에 전세를 얻어 예배실로 6평을 할애하여 강단과 의자를 갖추고 오늘의 교세가 된 대광교회를 가족과 함께 개척예배를 드림으로 본격적인 목회의 길을 걷게 된다. 그해 10월 16일 제109회 부산노회 정기회에서 정식 등록과 함께 교회설립 허가를 받게 되었으며, 이듬 해 1980년 7월 11일 같은 울산에 반구동 9-7번지를 대영교회의 도움으로 성전을 지을 대지 92평을 매입하였다. 같은 해 8월 20일 위의 대지에다 53평의 아담한 단독예배당을 짓기 위해 기공식을 가졌다. 그때의 감격을 서정배 목사는 자주 동료들에게 이야기하였다. 12월 7일엔 감격적인 입당예배를 드리므로 오늘의 중형교회로 발돋음하는 계기가 될 줄은 주님밖에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1982년 11월 26일엔 미조직 교회가 제1대 장로 장립식을 하면서 교회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당회가 조직되었다. 이듬해 3월 11일엔 노홍균 집사 기증으로 종탑을 건립하였고, 1983년 4월 20일엔 서정배 목사 위임식과 노홍균 집사의 장로장립이 있었다.1984년 8월엔 목사 서재실을 건립하였고, 1988년 10월 14일엔 약사동 619-21번지에 있는 주택 1동을 구입해 목사관으로(연건평 46평 2층) 사용하게 되었으며, 1991년 12월 1일엔 내외선교사업을 위해 선교위원회를 조직, 첫 사업으로 1992년 10월 26일 울산시 다운동 97B6N에 전도사 조헌제를 파송하고 성산교회를 개척했다. 또 1993년 11월 22일 파키스탄에 대광교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설립기금을 현지인 사역자 알 타프칸 목사에게 전달하였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 예배공간 확장 필요성이 대두되어 1996년 1월 4일 신축대지 163평을 구입, 새성전으로 연건평 360평 규모의 성전을 신축해 1996년 3월 1일 준공 헌당예배를 드렸다. 서정배 목사는 1989년 4월 10일 개최된 19~20 회기의 울산노회장에 이어 2007년 4월 55-56 회기의 노회장을 재임하였고, 2015년 9월 12일엔 원로목사 추대예배와 함께 제2대 정일제 목사 위임 감사예배를 온교회와 노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었다. 서정배 목사는 시무하던 대광교회를 개척이후 한 눈 팔지 아니하고 오직 한 교회만을 위해 한생을 모범적인 목회자로 헌신 봉사한 보기드문 전형적인 목회자였다. 그의 이러한 헌신과 충성심을 주님께서 인정하시고 2008년 9월 22일 예장총회 부회장으로 선임되었으며, 이듬 해 2009년 9월 21일부터 25일까지 울산 우정교회에서 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제94회 총회장으로 당선, 교단의 수장(首長)의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그는 인자하고 조용한 지도자의 성품을 갖추어 지도자의 면모를 가졌다. 서정배 목사는 대구에 있는 대신대학교 출신으로서 첫번째 총회장으로 당선돼 모교의 채플에 초청되어 후배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후배들을 격려하던 모습이 새롭다. 그 당시에 필자가 대신대학교에 몸담고 있어서 그 광경을 목격하였기에 서 목사에 대해 열전을 기술하면서 더 깊은 감회에 잠시 잠겨본다. 그는 CBS 이사로, CTS 대표회장으로, 한국찬송가공회 이사장으로, 여러 기관에서 교단의 대표로 활동하였고, 은퇴 후에도 부산에서 간행되는 교계 언론기관(크리스챤타임 대표 양원 장로)의 후원회 이사장으로, 다방면에 봉사자로 몫을 감당해오다 뜻하지 않은 병고로 2016년 5월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그가 재임했던 제94회 총회의 중요 결의안을 살펴 보면, ① 임시목사에 대한 헌법개정을 위해 연구위원을 선출하기로 하다. ② 타교단과의 강단교류 권한에 대한 법적 해석의 건은 현행대로 하기로 하다. ③ 세계개혁주의 보수교단협의회 조직 및 세계대회 개최를 추진하기로 하다. ④ 세례교인 헌금제도는 제93회 총회 이전으로 환원하되 모든 상비부 산하기관 특별위원회의 지출예산은 수입예산에 맞춰 조정하기로 하다. ⑤ 사회법정 고소지에 대한 제90회, 91회 총회 결의는 폐지하고 적법한 절차에 의해 결정된 총회결의에 반하거나 거역하는 회원은 회원권을 정지하고 회원으로서 가지는 권한과 지위를 박탈하여 그 효력은 즉시 발생하도록 하며 소속 하회에 통보하여 불이행시 총회가 직접 척결하는 내용을 권징조례를 적용하여 시행하기로 가결하다. ⑥ 총회기관 구조 조정하기로 하다. ⑦ 해외한인교회 노회 조직을 위한 연구위원회를 조직하다. ⑧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교단의 입장정리를 신학부에 맡겨 처리하기로 하다. ⑨ 구제부 횡령사건 처리를 위하여 기소위원 3인을 선정하고 특별재판국을 설치하다. ⑩ 상설재판국 시행을 위하여 규칙을 수정하고 시행하기로 하다(제98회 총회의 회의결의 및 요람, 김영남 황규철 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사무행정국 2014. 서울 p.38-39 참조). 서 목사는 그가 급성암으로 소천한 대구 계명대학교 부속 동산의료센터에서 2016년 5월 3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總會葬)으로 장례절차가 이루어졌다.슬하에 사모 이성자와 사이에 1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 성일은 한의사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으며, 딸 현숙은 출가해 가정을 이루어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7-04-14
  • 종려주일과 고난주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위하여 공히 예루살렘의 입성을 축하하는 그 행보에 영광을 받으신 날로 그 성덕을 기리기 위해 종려주일을 맞으며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그 행보로 종려 주일로 지키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인간의 짐을 지시고 그 낮아짐을 보이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주간을 지키게 함을 알게 한다. 이는 고난의 의미를 시작하는 주간을 지키기 위한 주간과 종려주일로 지키게 되는 그 믿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종려주일을 첫날로 고난 주간의 의미를 가진다. 16세기 종교 개혁이후고난주간 의식으로 종려주일 행사를 지키는 의미도 상실했으나 오늘날 교회들이 종려주일의 의미를 상기하고 교회의 한 절기로 지키게 됨을 알게 한다. 이는 예수님이 유월절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을 때 그들을 구원자로 믿고 예수님을 환영하며 호산나! 호산나! (지금 구원하소서)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호하던 그 날을 못 잊어 기념하는 종려주일을 지킨다.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기 까지 모든 일들이 이 한 주간 동안에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은 AD30년 니산월 9일(AD 30년 4월2일)은 우리 주님이 입성하시는 주일이며 또한 여기에 고난 주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한다. 주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들이 자신의 겉옷과 종려나무 가지를 길에 펴거나 손에 들고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환호한 날이어서 “호산나 주일”, “종려 주일”이라 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고난주간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일주일의 행적으로 우리 그리스도교의 ‘구원사’에 중요한 사건이다. 왜냐하면 이는 예수님을 정확히 알게 하고 구원의 은총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이룰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이를 믿고 그 뜻을 믿음으로 알게하고 이를 이미 믿음으로 깨우친 독일의 교회음악 작곡가이며 세계적인 음악가 ‘요한 세바스챤 바하’는 17세기 후반에 가장 뛰어 난 음악가로서 2백 년 동안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시킨 진실한 크리스챤으로 종교 음악에 교회의 예배와 직접 관계가 있는 ‘수난곡’ ‘오라토리오’같은 음악을 성서의 말씀으로 토해내는 것이다. 특히 ‘수난곡’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의 이야기를 묘사한 점에 그의 믿음을 따르게 한다. 그 음악의 형태는 ‘오라토리오’와 마찬가지로 오케스트라 반주에 레치타티보를 곁들인 웅장한 것이다. 이렇게 바하는 ‘수난곡’을 다섯 곡이나 작곡했다. 그 다섯 곡은 ‘마태복음’, ‘요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그리고 피칸더(picander)의 대사에 곡을 붙인 것 등이다. 이 중 ‘마가복음’과 피칸더에 의한 곡은 분실되어 없고 ‘누가복음’에 붙인 곡은 위작으로 간주되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난곡’은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뿐이다. 독실한 신자인 ‘바하’는 자기에게 주어진 특별한 음악성향으로 성서의 말씀을 믿음으로 토해냄을 알게 한다. 그가 자신이 작곡한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마지막 부분에는 항상 이렇게 기록해 둔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Soli Deo Gloria!) 라는 뜻을 지닌 의미로 그의 믿음의 고백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고난을 음미하는 신앙은 고난의 삶속에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삶으로 살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신앙인의 결의가 무엇인가를 종려주일을 맞으며 일주일간의 예수님의 고난주간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7-04-14
  • 목회는 쉬운 것이다·26
    최소한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한다면 그리고 전지전능하신 무소부재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각 개인에게 영감하시는 방법도 다르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결국,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어떤 강조가 아니라 그분이 나라는 개인에게 역사하심에 대한 간증이나 감사함만 있을 뿐이지 어떤 학문적 정의를 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수 있습니다.앎이란 의지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밝혀주신 진리를 우리의 영이 받아들일 때 나타나는 각자의 현상이어야 할 것입니다.요한일서 4장 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라고 했습니다.고린도후서 3장 17절에서는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서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문제는 주 안에서 자유로우냐 입니다. 만일 자유로운 삶이라고 하면 사람들에게 연결된 복잡한 고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감옥이라는 창살로 꼼짝할 수 없게 하는 조건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인간이 꿈꿔온 인간의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는데 도구로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신비스러운 기도응답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욕구를 응답하는 사단의 역할을 예수님으로 착각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진정한 자유란 세속적 자아가 아니라 즉, 수 없는 변화에 의한 불안정성이 아니라 영적 자아가 원하는 대로의 자유함입니다.자유는 삶의 방식으로 기꺼이 풍성한 삶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기꺼이 완벽한 사랑과 무조건적인 포용과 완전한 평안과 무한한 기쁨과 풍성한 삶의 종, 그 자체입니다.예수님의 자유함은 희생이었습니다.바울은 감옥에서 찬양함이었습니다.제자들은 그물을 내려놓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마더 테레사는 섬김의 삶 자체였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감옥에서 지내면서였습니다. 마틴 루터킹은 죽음을 무릅쓴 행진이었습니다.자유는 이기적이 아닙니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곧 자유입니다. 자유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들이마시는 공기의 일부라고 합니다.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는 상표를 붙여서 사랑과 포용 그리고 선한 목적, 예수 생명적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오직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적 삶에서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귀중한 사실이 안식이라는 의미입니다.모세의 십계명에서 안식일이라는 의미가 곧 이와 같은 것입니다. 한 날을 기념하고 축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안식의 진정한 삶에 대한 간증과 감사인 것입니다.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은 미움과 이기주의로부터 자유가 아니라 사랑할 자유를 누리며 사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점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사랑하는 것입니다.험하고 좁은 문이란 개념은 세상적 생각에서 즉, 자기주의에서 인간의 감옥 같은 공간 안에서의 예수님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일 뿐,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우리를 구속하시려는 대신 속죄로 하나님의 방법이며 사랑의 표현일 뿐 우리 자체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가 이루어 놓으신 것 자체가 험하고 좁은 길인 것입니다.우리의 본성으로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완성하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 우리가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자유로움입니다.누가복음 4장 18절에서“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내게 기름을 부으시고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포로가 된 신앙포로가 된 현대 교회종교라는 틀 속에 포로된 교회자기 생각이란 고정관념의 포로습관이라는 포로학문이라는 포로 교육이라는 포로의식이라는 포로심리학이라는 포로마케팅이란 수단과 기업적 포로로부터 자유함. 이것이 성령이 임하신 목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곧 자유로움입니다. 자유로움은 나 자신이 성공적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의 실제입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7-04-0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41
    딸아이가 D구청에 여권 서류를 신청하러 다녀오면서 “아빠, 노래 자랑에 한 번 나가 봐.” 했을 때, 가슴에는 뭔가가 콩닥거렸습니다. 그것은 체면과 욕망 사이의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체면이란 학생들 앞에서 강의하는 교수로서 그런 노래 자랑에 나가는 것이 체면을 구기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고, 욕망은 평소에 출판 기념회 등을 찾아다니며 축가를 부르곤 했던 데서 오는 자신감과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S시인 칠순 기념 회갑 기념 출판기념회에 갔을 때 사회자가 나와는 잘 아는 K인지라, 필자는 그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서 축가를 부르겠다고 자청하였습니다. 때마침 자켓 주머니 안에는 제자가 만들어 준 반주 MR도 준비되어 있었던 터라, 나는 선뜻 축가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K는 “글쎄. S시인 하고도 상의해 봐야 할 것 같고.”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더구나 그 자리에는 문단의 원로를 비롯하여 요즘 잘 나가는 작가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K는 S시인의 가족과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받더니 잰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 “그래 정교수. 잘 해 봐요.”그리하여 유명 성악가들의 축가를 필두로 하여 내 순서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출판 기념회가 무르익어 갈 즈음 사회를 보던 K왈, “이번 순서는 원래 식순에는 없지만, 정교수가 축가를 자청해서 부르겠다고 해서 넣어 보았습니다. 한 번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그리하여 나의 애창곡인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나는 표정까지 섞어가며 구성지게 불렀습니다. 세상의 온갖 것을 감싸안을 듯한 표정과 어린아이처럼 천진스런 미소가 지나가고, 바리톤 음성이 나오는 구절에 가서는 방송에 나오는 성악가처럼 가슴을 펴고 양 팔을 널찍이 벌리면서 늠름하게 불렀습니다. 그러자 앞자리에 앉아 있던 구 교수를 비롯한 문인들이 입을 손으로 가리며 킥킥 웃는 것이었습니다. 왜 웃는 걸까. 노래가 끝나고 나와 가까운 사이인 H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H도 킥킥 웃으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표정과 폼은 그럴 듯한데, 목소리는 영 아니여. 크크크.”이 말을 들은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나와 버렸습니다. 이런 체험이 있던 지라, 딸아이가 노래 자랑에 나가라고 했을 때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로서 노래 자랑 체험을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출연하게 된 것이 ‘KBS 전국 노래 자랑 1500회 특집 방송’(2010.1.31 방영)이었습니다. 처음 예심이 D구청에서 열렸을 때, 강당 안에는 600여 명 가량의 사람들이 관객석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각설이·해군·예비군·밤무대 가수 등의 복장을 하고 자신감을 내비치며 거들먹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처럼 가디건 차림은 별로 튀어보이지 않은 것입니다. ‘에이. 나같은 사람이 되겠어? 1차 예심만 하고 가야지.’ 이러던 것이 1차 예심을 무난히 통과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젊었을 때부터 다져진 내 표정 연기가 한 몫 한 것 같았습니다. 2차 예심은 반주기를 틀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으나, 그 역시 나의 표정 연기로 인하여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자가 자꾸만 틀려 구성 작가인 김선생이 몇 번이나 다른 노래를 해 보라고 해서 겨우 통과된 것이었습니다. 평소에 음정이나 박자에 별로 신경을 안 썼으나, 이번에는 방송 출연이니 만큼 정확해야 했습니다. 나는 본심에서 “땡”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밤새도록 인터넷 음악을 틀어 놓고 음정 박자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드디어 ‘KBS 전국 노래 자랑’에 출연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나는 W교회 성가대에서 자신감 있게 찬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할 때에도 철학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생각한 철학은 하나님 앞에서 되도록 예뻐 보여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므로 어린 아이가 예쁜 짓을 하듯 ‘하나님, 저 예뻐요?’ 하며 귀엽게 노래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때로는 청소년들이 노래하듯 예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울상을 지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때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예쁘게 노래 부르고, 때로는 성악가 흉내를 내 가며 열정적인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주님이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행복을 주시러 이 땅에 오셨다고 생각하고, 주 앞에서 예쁜 표정을 지으며 노래 부르면 주님이 ‘잘 한다’고 칭찬하실 뿐만 아니라 복을 듬뿍 내려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찬양을 예쁘게 불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하는 가운데 나는 주님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 주 앞에서 어리광부리지 말고 진지하게 불러라.’ 그 후 나는 자숙하면서 주 앞에서 진지하게 찬양하기로 다짐하였습니다. 이것이 주 앞에서 찬양하는 나의 새로운 법칙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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