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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사에는 하늘의 때가 있다 2
    삶으로 쌓여진 흘러가 버린 시간들 속에 있었던 인류, 사회, 문화 등의 일들을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한다. 그런데 ‘히스토리에’는 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나간 시간들 속에 있었던 일들로 역사(歷史)이고, 또 대부분 ‘나’ 와는 시간적으로 ‘나’ 공간적으로 상관없이 발생된 것들이기 때문에 실존적으로 ‘나’와 특별한 상관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이 의미 있는 시간 속에서 특별한 뜻을 가지고 일어난 일이라면 또 그 사건의 의미가 올바로 풀이되어 전해졌다면, 그 사건은 나와 특별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또 그 사건은 나의 시간 곧 '나'와 관련된 시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성서는 대부분 신앙인들의 삶의 역사이다. 픽션(fiction)이나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기록된 진솔한 역사이다. 고난과 역경과 시련 속에서 살아간 수난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희망의 역사이다. 꿈의 역사이다. 그들이 그 엄청난 시련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변함없는 양심과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과 양심이 있는 자만이 역사를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고, 더구나 신앙인에게는 “구원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며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흘러가는 시간도 있고,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이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헬라어로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한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연대기를 말할 때 영어로 ‘크라너클’(chronicle) 또는 ‘크러날러지’(chronology)라고 한다. 이는 천문학적으로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며,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다. 매일 한 번씩 어김없이 낮과 밤이 찾아오고, 매년 한 번씩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동식물이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시간이다. 철새들이 철 따라 이동하고,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와 알을 낳고 죽어 가는 시간이다. 이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웃고 울며, 분내고 기뻐하며, 번민하고 수고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에 시간의 의미를 살리는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한 시간을 알아야 한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 이 의미 있는 이 시간을 ‘카이로스’라 부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하나님의 시간’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어떤 일이 수행되기 위한 시간 또는 특정한 시간을 가리킨다.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실행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특히 하나님의 활동이 전개되고 그 분의 계획이 실현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교에서는 이 시간을 '구원의 시간(카이로스)이라 한다. 역사(History)에도 두 가지가 있다. 조사나 탐구에 의한 순수 “역사”가 있고, 해석이나 뜻으로 본 풀이한 “역사”가 있다. 순수역사를 독일어로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하고, 풀이역사를 ‘게쉬크테’(Geschichte)라 한다. 역사는 시간적으로 보면 과거에 속한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한 곳에 모아 적으면 역사가 된다. 개인의 역사를 모아 적으면 전기나 자서전이 되고, 신앙체험을 모아 적으면 간증집이 된다. 간증집은 ‘게쉬크테’로, 전기는 ‘히스토리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전기라고 해서 반드시 ‘히스토리에’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신약의 4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적은 글이지만 ‘히스토리에’이기보다는 ‘게쉬크테’이다. 그래서 4복음서를 ‘예수의 생애’라 하지 않고 ‘복음서’라는 이유를 알게 한다. 이는 복음서의 기록 목적이 단순히 예수가 역사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복음서를 읽는 이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려 했기 때문에 복음서라 한다. 그리하여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보다는 천국복음을 전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 복음서가 예수의 생애를 조사 탐구해서 있는 그대로 적은 글이라면 ‘히스토리에’라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복음서는 예수의 생애의 대부분을 생략한 채 죽기 전 일 년 또는 삼 년 동안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말씀들과 베푸셨던 행적들 가운데서 일부만 골라서 전하고 있고, 그렇게 한 가장 큰 목적이 그것을 읽고 예수를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려 함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6-12-15
  • 목회는 쉬운 것이다·14
    마태복음 28장 19절에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이 말의 정확한 번역은 “가면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입니다. 빌립이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에 영적 문제로 고민하는 남자를 우연히 만나 성경 공부를 인도하게 되고 그 덕분에 그 남자는 그리스도의 의미에 눈을 뜨게 됩니다.하박국 2장 2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함께 사는 삶 자체가 교회입니다. 목회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사람과 함께 사는 것, 내가 속해 있는 그곳에 모든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한 예로 마치 마을 이장이 마을 주민을 돕는 것처럼 교회가 처한 그곳에서 함께 살면서 예수님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입니다.교회 생산의 방법과 중요성은 한 교회를 크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교회도 교회를 생산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합니다.교회에 대한 의미 부여에 따라서 바른 신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오직 교회를 중심으로 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라고 한 에베소서 5장 22절 이하처럼 머리와 지체라고 하여 결국 한몸이라는 확실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목회자가 한국적 유교적 관습에서 검은 양복을 입고 검은 넥타이를 맨 사람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로서의 숙련공으로서 다양한 생활 속에서 삶 그 자체가 목회라는 사실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방향을 가르치는 것이 목사가 아니고, 그 지시함을 받는 것이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이 되어 주는 것이 바로 목사이고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우리를 통해 우리와 한 존재로서 이 땅에서의 임재가 목회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되는 것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위선적 표현이 아니라 그 말 그대로입니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바로 개혁주의생명신학 실천이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 그 자체인 것입니다. 목회나 전도도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서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 매일 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돌봐주고 격려해주고 위로해 주는 것이 전도요, 목회인 것입니다.우리는 지금 아주 먼 곳까지 와 있습니다. 교회를 성과 위주로 기업화하려는 목회는 결국 교회가 아닌 기업으로 조건에 의해 타락하게 되어 거기서 또 다른 어려움이 산출된 것입니다. 그 대표가 한기총 집단일 수 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발언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근본적으로 변할 수 없는 똑같은 손짓만 하는 이야기는 교회의 근본적 변화를 말할 수 없도록 모두가 올무에 묶여 있습니다.최소한 개혁주의생명신학 실천이 그 무서운 올무에서 해방하게 해야 하는 이 시대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났습니다. 지금까지의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통적인 형태와 구조와 종교란 틀 속에 가두는 일은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모세 시대는 모세의 법이 구약종교의 시스템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희생제물이 있어야 하고, 제사장제도가 있어야 하고, 장막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 가지를 모두 완성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단번에 드려진 진정하고도 완벽한 희생 제물이었습니다.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장막 자체가 하나님과의 연결점이었습니다.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몸 혹은 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로서 서로와 세상을 향해 사역하는 것이 목회입니다. 그래서 교회 건물은 진정한 의미의 교회에 있어서 필수요건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거룩한 장소 개념이 아니라, 오직 거룩한 사람들일 뿐입니다.역사적으로 보면 A. D. 200년까지 교회 건물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교회는 마치 산불처럼 거침없이 퍼지는 현상이었으며 기동성, 유연성, 관계, 겸손, 포용 같은 특성을 보였다고 합니다.유럽교회들이 교회당의 훼파가 그 거창하고 아름다운 예술적 가치를 가진 성전이라는 무용성을 우리는 뒤늦게 교회 부흥이라는 명분으로 실패한 기독교의 모습을 뒤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6-12-08
  • 기독교인의 행복론 -31
    작가는 언어 예술을 통해서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류를 감동시키는 담론을 계발하기 위해서 사색하고 독서하고 글쓰기를 연마합니다. 그 담론이 괴테와 같이 독일을 통일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하고, 톨스토이와 같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기도 하지요. 그리하여 작가는 위대한 글이 나오기까지 쉬임없이 인간과 자연과 문화의 멋을 창출하지요. 최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언어 예술을 창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를 갈구하고 있지요.필자도 작가가 되기까지 부단한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온 것 같습니다. 예술의 아름다움을 몸으로 체현하기 위하여 여자 무용수들 틈에서 반바지 차림으로 무용을 배우기도 하고, 난해한 철학 서적도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한 번도 후회를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천성적으로 작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자존감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34년간 걸어왔던 교육자의 길을 과감히 내던지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지요. 내가 전업 작가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은 하루를 온전히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글과 놀이를 하고 글을 통해서 아름다운 세계를 몽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수많은 스승을 찾아다녔습니다. 시인 서정주 문덕수 선생 등을 찾아다니며 장르론도 익히고 문장 실습도 하였습니다. 스승은 내가 작가로서의 정도를 걸어갈 수 있도록 나침판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배운 것을 직접 글로 체현하는 데에는 나만의 사색과 독서와 글쓰기가 요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삼십여 년간의 글쓰기에서 터득한 것은 ‘탈경계’였습니다. 한국 전쟁으로 인하여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트라우마를 겪었지만, 아직도 분단의 경계는 풀어지지 않은 채 수십만 명이 이산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카인의 질투처럼 동족끼리 상대를 비방하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계를 푸는 데에는 카인 콤플렉스-형제끼리 질투하며 싸우는 데에 치중하는 콤플렉스-를 극복할 담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을 겪으며 인류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여 화해와 용서의 담론이 온 세계에 전파된 바와 같이, 탈경계는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동과 서로 갈린 경계를 해소하는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담론을 통하여 김정은이 평화의 감각을 받아들이고 남과 북이 민족의 동질성과 멋을 추구할 수 있다면, 탈경계는 성큼성큼 일어나서 한국인의 기질을 더욱 고양시키는 멋을 추구하게 할 것입니다. 탈경계는 비단 정치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 사이에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수많은 평론을 읽으면서 너무 어려운 비평 용어들로 인하여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멀어지고 작가들이 글감옥에 갇혀 대중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합니다. 글은 독자에게 놀이로서 작용하면서 감동을 주어야 할 텐데 글만의 감옥에 갇혀 도서관 서고에 갇혀 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생선 가게에 아무리 싱싱하고 좋은 생선이 있어도 소비자가 사 주지 않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 일을 위해서는 작가가 글 밖으로 걸어나와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내가 작가가 되겠다고 작심하게 된 것은 李箱 때문이었습니다. 고교 시절 이상의 「날개」를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행동이 당시 관습으로는 파격적이어서 ‘아, 이런 세계도 있구나’ 하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내’라는 인물들을 보니 작가가 직접 체험한 기생 금홍과 유사한 점이 많았습니다. 작가의 체험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개연성을 높여 주었던 것이지요. 작품에 나오는 새롭고 멋진 인물들을 생각하며, 대학 시절 이상의 「날개」에 대한 논문을 처음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학술상도 타고 문예지를 통해 등단하면서 나도 저런 멋진 세계를 연출하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작품이 작품을 낳는다고 좋은 작품을 보면 나도 저렇게 좋은 작품을 써 보겠다는 오기가 생긴 것이지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러한 감동을 주려면 작가가 먼저 자신의 글에 대한 감동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수많은 적극적 독자들이 작가가 되겠다고 팔을 걷어부치는 걸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나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편의 글을 생산하기 위하여 수없는 시간을 사색과 독서와 자료 찾기에 쏟아붓는 열정이 없는 한, 좋은 글이 나오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남들이 알아 주지 않는 시간과 정성을 들이면서도 좋은 글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흥분이 있기에 오늘도 나는 글을 씁니다. 영원 위에 남을 만한 흔적이 있다면, 나는 지금 현재, 그것을 주워 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12-08
  • 성육신한 예수교회-32
    요한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서론격인 1장을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세세히 묵상하여 보면, 가장 핵심적인 문장은 1절에서 18절에 기록된 송영일 게다. 이 송영을 오늘의 복음송들 중에 특히 경배송들과 비교하면 비슷한 점이 많다. 요한의 공동체가 기록한 송영은 요한복음서의 시작부터 마지막에 이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 짧은 노랫말에 모두 담아낸 것이다. 6-8, 15절에 삽입된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빼고서 다시 읽어보면, 시인의 시상과 노래하는 음률이 그대로 살아난다. 아무리 수만 번 다시 읽어도 이 노랫말은 경이롭기만 하다. 과장법이라는 생각이 들 수는 있어도, 지금까지 인간의 역사 가운데서, 랍비이던 서기관이던 제사장이던 선지자 철학자라도, 심지어 아브라함이나 모세라 할지라도, 그 아무라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었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품속에 계신 독생자(獨種子)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계시하시므로, 저들 요한 공동체의 신도들은 드디어 하나님의 영광을 뵈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저들은 고백하며 노래하고 경배한다. 우리가 곡조와 음률과 노랫말을 함께 들음으로서 온몸과 영혼이 전율하며, 이성과 영이 하나가되어 청중들과 함께 공감을 이루는 곡을 말하라고 하면, 베토벤의 교향시 ‘환희’가 아닐까? 이 교향시는 우리 찬송가에도 나와 있긴 하지만, 작시자의 원 뜻을 너무나 손상시켰기에, 교향시 원곡을 들을 때처럼 감동이 일지는 못한다. 그러나 원곡 그대로 듣는다면, 그런 감동과 이 요한 공동체의 송영이 다르질 않을 것이다. 요한교회의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거룩한 구원 사역과, 본을 보이심을 서로 나누면서,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접할 수 있었다. 이 영광을 보고 그대로를 그려내는 화가 렘브란트처럼 저마다 예수를 사람들에게 그려줄 수 있었다. 이 교회의 신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자신들이 들려주는, 낭송하는 이 복음을 듣고 믿으면, 아무라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를 얻게 되었음을 의심치 않았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 들어가 여러 날 있다가 산 아래로 내려 왔을 때에, 그 얼굴로 반사되어 나오는 거룩한 광영을 차마 백성들에게 보일 수 없어서 수건으로 얼굴을 싸서 숨겼다. 이처럼 주님의 임재 가운데에서 머무르면, 누구라도 자기 자신의 거룩함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이 공동체의 일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은 권세가, 마치 임금의 양아들이 된 자들보다도 더욱 확실하게, 권력을 거머쥔 실제 하나님의 아들들이었던 것이다.이들이 고백하며 노래하며 찬양하는 ‘하나님의 은혜’란, 구약을 전통적으로 지켜오던 시인들과 서기관들과 랍비들에게서 귀가 닳도록 들으며, 입술이 모두 헤어지도록 낭독한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신앙의 연속성에서 이제야 역사적 인간 예수로부터 계시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실제로 보았고, 들었고, 아는 바가 된 것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 바와 같이, 진리를 안다는 것이 이성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경험하고 누리는 자체를 모두 내포함인만큼, 이 공동체는 예수로 인해서 계시되어진 하나님의 진리를 아주 풍부하게 경험하였던 것이다. 여기에 ‘진리’란 가시적인 현상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실체’란 뜻이다.‘계시’란 계시하는 자와 계시된 자가 하나이질 않으면 불가하다. 사람이라야 사람을 보여줄 수 있듯이, 하나님이라야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기에, 인간으로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저를 보내신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우리 인간에게 나타내신 것이었다. 요한 교회의 신도들은 저마다 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온전하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마다 하나님의 자녀 됨의 권세와 권력에 동참한 것이다. 저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누구든지’ 이다. 결코 집단으로 경험된 것이 아닌, 개개인이 저마다 인격적으로 믿고 경험된 예수였다. 그래서인지 요한 일서에서도 강조하는 것을 보면, 한 집단의 지도자나 그의 지혜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에게 기름 부어짐으로 인해서 인지된 식별능력이 돋보인다. 요한교회의 생수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부터 흘러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에서 솟아나서 흘러나오는 교회이다. 정부도 붕괴되고 국가도 붕괴되고 교회도 붕괴되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그러나 개개인의 배에서 생수가 샘솟아서 흐르는 교회는 온 세상을 넉넉하게 살려내는 교회가 될 것이다.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6-12-08
  • 64. 제83회 총회장 길자연(吉自然) 목사
    평남 신안주 태생길자연(吉自然 1941.4.19~ ) 목사는 평안남도 신안주(新安州)에서 믿음 좋은 장로 아버지와 권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년 길자연의 부모는 평소 장로와 권사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란 이래야 한다는 것을 실천적인 삶으로 보여주신 삶이었다. 당시 신안주교회(1905.11.3 설립)에는 한국교회 순교자 명단에도 들어있는 최원초 목사가 시무하고 있었고, 최 목사의 영성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광복 직전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월남한 길자연은 동대문 가까이에 있는 동도교회(東都敎會)에서 최훈 목사를 만났고, 그로부터 많은 영적감화를 받았다. 최훈 목사 역시 기도의 사람이요 성경을 손에서 떼는 법이 없는 성실하고 근면한 목회자였다. 이 분을 통해 ‘목사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하는구나’하는 것을 배웠다.길자연은 기독교계통의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학과로 진학해 한의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선친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부원장으로 수련을 쌓기 시작했고, 졸업하던 그 해 10월에 대학생 시절에 만난 여성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잠시 지금의 고양 땅이 된 금촌으로 분가 해 나가 한의원을 개업했으나 손님이 오지 않았고, 금촌 용주골에 정착 10개월만에 옆동네인 주내로 병원을 옮겨 재개업을 했으나 운영의 어려움은 여전하였다. 이러한 때 파주에서 한의원을 경영하면서 그 동네의 작은 교회를 섬기게 되었는데 주일학교엔 부장도 교사도 없었다.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일학교 부장과 전도사 역할도 하며 인근교회에 교사를 파송해 돕기에 이르자 주위에 있는 기존 교회들이 오히려 의아해 하였다.이곳에서 길자연 청년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발견하게 되었고 느슨했던 자신의 신앙을 회복하게 된다. 이 무렵 성령충만을 다시 체험하게 되어 소명의식(召命意識)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여기 이대로 있어서 안되겠다 싶어 신학공부를 해야겠다고 결단했다. 만 29세가 되던 해 칼빈신학교(현 칼빈대학교 전신) 야간부에 학사편입을 했다. 낮에는 아버지를 도우며 한의사 생활을 하며 야간이면 학교로 달려가 장차 전도자의 훈련을 받았다. 한의사 개업 중 소명의식 느껴 신학공부동도교회서 최훈 목사 지도받아 기도에 열중신림동에 교회 세워 오늘의 왕성교회로왕성교회 부흥 요소는 ‘금요철야기도회’한기총 대표회장 등 교계연합과 일치에도 기여신학교 입학하기 전에 신·구약 성경을 마음 먹고 정독을 하였는데, 졸업할 때쯤 되니까 머리에 꽝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때부터 성경읽을 때 맥이 통하는 것이었다. 구약성경을 보면 신약성서 내용이 보이고, 신약을 읽으면 구약의 메세지가 보였다. 어느날 동도교회 최훈 목사로부터 뜻밖의 제의를 받았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줄태니 7,8년 공부해 학위를 받아 와서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하게나…” 이 제의를 받고서 신바람이 나 열심히 공부했고 고등부 교사로 사역에 전념했다.드디어 1973년 2월 신학교를 졸업하고, 3월 2일부터 지금의 워커힐 뒷동산에 조그만한 기도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6개월동안 기도했다. 그때 그 기도원에서 한국신학의 태두(泰斗)인 정암 박윤선 목사가 함께 있었다.서울 관악구 봉신교회 교역자로 신개척이나 다름없는 작은 교회에 부임, 전도자로 출발했다. 성도라야 40여명이었는데 남자 성도 겨우 4명, 그것도 모두 무직자였으니 교회 형편을 알만하지 않은가? 봉신교회로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 어린 딸을 하늘 나라로 보내는 아픔이 있었고, 교회는 어려워 기도하며 말씀을 전했으나 부흥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즈음 신림동과 봉천동이 분동(分洞)되어 교회 이름이 어울리지 않아 한가람교회라고 바꾸었는데, 사람들이 또 이단교회라고 비아냥거려 신림동교회라고 다시 교회명을 바꾸었다. 신림동교회가 오늘의 왕성교회(旺成敎會)가 된 것이다.왕성(旺成)이란 이름도 사도행전(6장7절)에 말씀이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 많아졌다는 말씀에 근거해 작명(作名)한 것이었다. 그러나 교세는 여전히 어려워 자립은 요원해 보였다. 이때 12시간 비상기도를 하게 된다. 전체 성도 40명 중 29명의 제직(집사)을 세웠으나 교회봉사에 희생하고 헌신하고자 하는 자가 없었다. 직분이라도 맡으면 열심히 봉사하기를 기대했으나 그것은 허상이었던 것이다. 왕성교회에 부임하면서 마음에 결심한 목회비젼과 목회철학 3가지를 결심하고 실천하고자 하였다. 첫째는 당시 교회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는 절간(사실은 굿집이었다)이 없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노력한다. 둘째 당시 동숭동의 서울대학교가 신림동으로 이전하며 교회 앞으로 대로가 나는데 여기에 한국 최고의 지성들을 움직이는 복음주의의 대표적인 교회로 부흥시킨다. 셋째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는 목회를 하기로 결심하고 교인들 앞에 함께 기도하고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길자연 목사 기도목회 이야기, 길자연 저, 생명의말씀사 2004 서울초판 p.1~31 참조). 왕성교회 길자연 목사는 이렇게 하여 어느 정도 교회가 안정되어 가며 부흥과 발전의 계기가 마련되자 본격적인 목회사역의 불길이 붙었다. 왕성교회 부흥 요소 가운데 하나는 길 목사가 계획하고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금요철야기도회’라 여겨진다. 길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철야기도를 열심히 하다보니 기도에 불이 붙게 되고 불이 붙다보니 습관이 생기게 됐다. 그래서인지 그때 생긴 철야기도는 30년이 넘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이는 곧 교회 부흥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다섯 사람 정도 예배당에 나와 금식하면서 밤을 지새우는 금식기도팀까지 생기기도 하였다. 왕성교회는 교회 뒤에 있는 절간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가 왕성교회가 힘을 합쳐 기도한지 6년 2개월만에 절간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까지 왕성교회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기도의 결과였다. 길 목사가 왕성교회에 부임한 후 예배당 건물을 두 차례 건축하였다. 처음 28평짜리 교회를 헐고 132평 짜리 교회로 지었고, 부임 후 8년만에 600평의 대지 위에 오늘의 왕성교회로 발돋음했다. 왕성교회는 예장 전국총회가 모일 수 있을 정도로 큰 교회로 성장 발전하였고, 길자연 목사는 교정(敎政)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자기교회만 아니라 왕성교회가 속한 평양교회 노회장과 기독교문화선교회 이사장(1984.12)을 비롯, 총신대학교 이사(1995.10~1000.11), 대한예수교장로회 제83회 총회장(1998.9), 1999년 10월엔 한국교회를 위한 영성목회연구회를 조직 총재에 취임하였고, 2000년 1월에는 한기총 부설 통일선교대학장, 같은 해 3월 한국항공선교회 이사장, 같은 해 9월엔 총신대학교 운영이사장이 되었고, 2003년 1월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에 피선(12대,17대 2회 역임)되어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하여서 그의 지도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2006년 12월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 이사장, 2007년 1월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이사장으로 2007년 12월 칼빈대학교 총장, 2013년 12월엔 교단인재양성의 산실인 총신대학교 제5대 총장에 취임해 봉사하기도 하였다. 그가 재임했던 제83회 총회 중요 결의안을 보면, ① 지금까지 시행해왔던 총회주일헌금을 세례교인 의무금으로 변경하다. ② 은급기금 미가입교회는 총회에서 발행하는 제증명 발급을 중지하기로 하다. ③ 총회 산하 선교부를 폐지하고 ‘총회세계선교회’로 개편하기로 하다. ④ 교계에 문제되고 있는 ‘말씀보존학회 대표 이송오’를 이단으로 규정하다. ⑤ 외국인근로자선교협의회에서 봉사하는 목사를 선교사로 인정하기로 하다. ⑥ 총신대학교 대학원 안에 교회전문사역과정을 신설하기로 하다. ⑦ 여성안수(목사직과 장로직)는 불가하며, 단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하며 지도력을 적극 개발하기로 하다. ⑧ 사순절을 성경적 절기로 지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더 연구키로 하다.길자연 목사는 왕성교회 원로목사(2012.12.27 추대)를 끝으로 목회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한국교회의 질적인 성장과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용인시에 한국교회 영성훈련원을 설립 한국교회 미래를 위한 지도자 훈련에 매진하며 여생을 바치고 있다. 그가 섬기던 왕성교회는 그이 아들 길요나 목사가 대를 이어 목회하고 있다.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6-12-08
  • 만사에는 하늘의 때가 있다 1
    성서의 전도서에 보면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하심은 준엄하게 몸 사리는 때의 삶을 살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몸를 사려서 생각을 제대로 하고 시간을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진리는 영원하다. 진리 안에서 살아가는 데는 삶에 사실(fact)이 있고 또한 사실(事實)이 있는 곳에 헛되지 아니한 진실(眞實)이 있다. 이는 세상의 삶에서 나타나는 시간 속에서 삶에 도리나 이치에서 사실과 진실이 밝혀짐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하늘의 때’를 알지 못하면 진실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사실과 진실의 차이를 안다. 진실은 지혜를 수용하고 사실은 지식을 수용한다. 지혜와 지식은 성(性)은 같지만 내용은 다르다. 이것은 지혜와 지식의 차이이다. 지식은 학교에서 배움으로 틀에 박히지만 지혜(슬기)는 ‘하늘의 때’를 따라 나타낸다. 사람으로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는 지식 있는 삶 보다는 지혜로운 삶이 우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지혜는 적은 지식을 가지고도 많이 사용할 줄 알지만 지식은 아무리 많이 배웠어도 지혜가 없으면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식의 문을 여는 것도 지혜이며 지식의 문을 닫는 것도 지혜인 것을 알아야 한다. 지혜 없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요 시체이다. 어떤 일이 자신 앞에 벌어졌을 때 우리는 먼저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으로 감정을 유발시키고 그 감정에 의해서 행동하게 된다. 이미 행동이 진행되었을 때는 우리의 머릿속엔 진실을 판단할만한 시간이 없다. 행동은 결론을 내리고 사실을 진실화하기 위해 자기합리화와 정황 논리를 만들게 한다. 그러기에 여기서 사실과 진실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했다면 사실 앞에서 진실을 볼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진실을 보았을 때 사실 속에서 진실을 볼 수 있는 양심을 가진 자만이 진리를 말할 수 있다. 사실과 진실은 ‘하늘의 때’ 안에 있다. 오늘의 주제는 “만사에는 하늘의 때가 있다”를 증언하려 한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다. 지금 우리는 “사실과 진실의 혼란”에 빠져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의 국정농간에 휘둘려 국민들 모두가 ‘대통령 하야’를 위해 부르짖고 있다. 참담한 현실에 국민들은 온통 촛불 시위로 이를 항의하고 있다. 이러한 삶의 정황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그리하여 차제에 사실(事實)과 진실(眞實)을 생각해 본다. 사실은 실제로 있거나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한다. 진실은 거짓이 없고 바르고 참 됨을 말한다. 사실과 진실의 차이점은 시간의 흐름 위의 어느 한 순간인 시점의 유무(有無)인 것이다. 여기에 시간이란 삶을 동반한 그 행적은 사실과 진실을 안고 있는 시간의 껍질을 알게 한다. 고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실로 진실이 아닐 때도 많다. 인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사실은 실제와 꼭 같이 여실(如實)하게 드러남을 보게 한다. 사람과 인간은 다르다. 사람은 개체적 의미를 알게 하고 인간은 통전적인 의미를 알게 한다. ‘사람’을 일컬어 사람이라 하는 것은 ‘사람’은 태어난 것을 말하고 그 사람은 생각과 말을 하고 기구를 만들어 쓰며 사회를 이루어 사는 삶을 인간이라 말한다. 흔히 “이 사람아! 인간이 되어라”하는 말을 종종 듣는다. 인간이 갖는 이성은 주변과의 관계로서 삶을 생명으로 함께 영위함에 있기에 양심으로 나타난다. 생각해 보면 한국사회는 그 동안 근대화, 산업화로 추진 과정의 부작용으로 인해 사회전반에 걸쳐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던 모든 갈등과 모순 등이 표출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해결해야 할 정치권과 사회지도층은 오히려 스스로의 비리와 부도덕성으로 인해 국민의 불신만을 사고 있어 사회전체가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 이러한 사회문제로 자유민주주의와 국가의 시장경제체제라는 자본주의에 기인하여, 부를 축적하게 된 사회는 배금주의에 빠지게 되고 도덕적 가치가 삶의 목표를 잃고 오직 부와 명예만을 추구하는 등의 목적을 위한 전치(前置)현상이 우리 사회에 나타남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속에서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 일탈현상을 겪게 된다. 이것은 인지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정의적인 가치적 문제로 번져 서로의 양극적인 대립현상이 나타나 갈등으로 혼란을 이루고 있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6-12-08
  • 목회는 쉬운 것이다·13
    첫째, 누구나 교회가 건물이 아닌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모든 행동으로 보아서는 교회가 장소요, 건물이며 교회활동이 특정한 날과 특정한 시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은 교회가 아닐 것입니다.그 귀중한 제시가 성경에서 정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7:49, 행 17:24, 사 66:1).우리는 십계명을 범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십계명을 범했다는 것은 지체로서 머리와 이원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교회가 아니며 로마서 1장 24~27절 말씀대로 ‘내버려 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십계명 중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의 중요성은 살았느냐 죽었느냐의 표시가 됩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 동체임에도 섬기는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이 아니라 창조주이십니다.◦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없는 신을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자기 성공과 자기가 주인공이 된 우상을 만들고 있습니다.◦망령되이 일컫고 있습니다. 신의 이름을 뇌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성공을 위한 수호신으로 일컫고 있습니다.◦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든 신을 만나는 날일 뿐 구속주신 주 안의 삶 자체와 주일 개념이 안식일이란 개념에만 중심이었습니다. 교인을 만들고 있을 뿐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둘째,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고 다른 사람을 섬길 영적 능력이 있다고 말하지만, 교회는 이런 진리를 전혀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사와 직원 중심으로 한 계급 구조는 소수에게만 의존하는 건강하지 못한 패턴을 낳고 있습니다. 일반 성도보다 목회자가 하나님과 더 가깝고 성경 지식과 영적 지혜에서 월등하다고 생각합니다.자녀의 영적 교육을 아동 목회 프로그램과 부교역자들에게 철저히 의존합니다. 아이들도 아버지와 엄마에게 하나님에 관하여 배우려 하지도 않고 책임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사람들의 내면(속사람)부터 변한다고 가르치셨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외적 모습을 신앙 성숙의 척도로 강조하고 있어 위선적 삶을 살게 했습니다.예를 들면 잘 입고, 예배 행사에 잘 참석하고, 남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하고, 헌금을 많이 내고, 성경을 자주 인용하고, 앞에 나서서 일하고, 교회의 많은 직책을 맡고, 전도를 많이 하고, 자녀를 예의 바르게 기르고, 나쁜 습관이 없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영적으로 성숙하다고 가르칩니다.여기에서 부작용은 잘 보이려는 위선에 능숙하게 할 뿐 부족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없게 하는 시스템이 현대교회라는 사실입니다. 넷째, 헌금한 재정이 잘못된 곳에 사용됩니다.신자가 드린 연보가 교회의 시스템에 의해 사용되기 때문에 현장적이 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곤궁한 사람에게 나누는 일이 복잡해졌고 재정이 목회자의 꿈을 성취하는 정치하는 비용으로 편중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없는 형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교회는 장소나 프로그램 그리고 조직에 빠지게 되어 교회로써 가치관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일들 교 회는 건물이, 당회, 제직회나 직원 그리고 프로그램이 없어도 교회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에 빠져든 교회, 세상적 올무에 묶인 교회를 바로 구출하는 일이 개혁주의생명신학 실천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요구하는 교회를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의 핵심은 관계입니다.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세상과의 관계입니다. 교회는 언제 어디서나 여러 모양으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입니다. 누구와도 함께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이런 작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교회가 언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과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은 장소와 시간, 사람의 무한한 관계에서 예배, 제자훈련, 교제, 선교, 봉사, 책임성, 베풂과 같은 교회의 삶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일상 속의 만남과 사건에 늘 눈과 귀를 열고 살아가며 그 속에서 나타나는 기회를 포착하고 활용할 줄 아는 신자들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 지난 칼럼
    • 허광재 칼럼
    2016-11-24
  • 기독교인의 행복론 -30
    1905년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기는 을사늑약이 일어난 후 고종은 이것을 세계에 알리고자 1907년 네델란드 헤이그에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합니다. 그러나 이 일이 일본에 알려져 강제로 폐위를 당하고 순종이 즉위합니다. 그리고 조선의 군대는 해산됩니다. 왕이 강제로 왕위를 빼앗기고 군대가 해산당하는 것을 보면서 백성들은 나라의 주권이 빼앗기는 과정을 피부로 실감하게 됩니다. 이때 평양의 산정현 교회에서 회개 운동이 일어나 ‘일백만 구령 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 선 사람이 바로 1907년 1월에 장대현 교회 목사가 된 길선주입니다. 그는 장로로 있던 1905년부터 새벽 기도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07년에는 선교사 블레어 등과 함께 부흥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의 부흥회에서는 뜨거운 간증과 함께 회개 운동이 일어났고, 한국교회사상 미증유의 성령 강림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후 한국 교회는 성령 강림, 간증, 회개의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1970,80년대에는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80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을 확보하게 되는 부흥의 불길이 일어났습니다. 수 천 개의 개척 교회가 생겼고, 그 가운데에는 대형 교회로 발전한 교회도 있었습니다. 나아가 2000년 이후에는 해외로 나간 선교사 수가 폭발적으로 불어나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의 통계에 의하면 한국교회 선교사는 총 27,205명(2015년 기준)이라고 합니다. (이번 현황 조사가 이루어진 대상은 교단선교부 39곳과 선교단체 195곳이었으며, 이 중 교단 파송 선교사는 12,000여 명, 선교단체 파송 선교사는 16,400여 명으로 약 4:6의 파송 비율을 나타납니다.) 한국 교회가 이와 같은 발전을 이룩한 것은 한국 교회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새벽 기도, 철저한 십일조 헌금, 성경 말씀을 개인에게 적용하는 성경 읽기, 회개 운동, 부흥회와 간증, 믿음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세계를 향한 비전 등의 한국 교회 나름의 신앙 체계가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서 2013년 1,003명, 2014년 932명, 2015년에는 528명으로 급격한 파송 수 저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KWMA 발표에 의하면 앞으로 이러한 추세가 이어진다면 은퇴 등의 선교사 자연 감소 및 이탈 등을 고려할 때 향후 10년 내에 한국선교사는 6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향후 한국 사회는 사물 인터넷 시대로 접어듭니다. 자율 운행자가 나오고, 인공 지능 로봇이 등장하며, 온 세계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상품 매매나 사물간의 연결이 폭넓고 간편하게 이루어집니다. 또한 게임․영화․웹툰․음악 등의 재미있는 볼거리가 스마트폰 안에서 다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와 의의 절대성이 예전처럼 강력하게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복음 전파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물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진리와 세상 어느 것보다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등의 기독교의 본질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럼 이 기회에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21세기의 환경에서도 주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곧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어서 아무리 세상 문명이 발전하였다 하여도 다 창조주 하나님의 주관 아래 놓여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가 왜 자녀들을 사랑하지요. 예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의 행동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죄에서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의를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곧 경건과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인간미를 발휘하는 삶이 발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일상의 행복을 느끼면 어떨까요. 일상예배 시간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표정으로 찬양을 하면 어떨까요. 믿음의 형제들과 식사를 하며 아름다운 정담을 나누면 어떨까요. 말씀 보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을 즐기는 삶을 살면 어떨까요. 해외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선교사들을 기도와 편지와 물질로 지원하면 어떨까요. 북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인터넷을 활용하여 복음을 전파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간의 경계를 해체하고 하나님의 편에서 탈경계를 모색하고 사랑을 실천하면 어떨까요. 나아가 이 모든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하면 어떨까요. 아브라함을 이끄신 하나님을 생각해 봅니다. 주 안에서의 신앙 생활은 즐겁고 화평합니다. 행복하십시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6-11-24
  • 성육신한 예수교회-31
    유대인들의 기도문 중에는 여자로 태어나질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는 기도문이 있다. 이에 대한 궁금증을 아니 가질 수 없었던 한 생도가 랍비에게 물었더니, 랍비가 이르기를, 이는 남자로서 그만큼 국가에도 책임을 지고 있듯이, 남자가 여인보다도 무거운 책임을 지닌 것임을 뜻하며,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 중차대한 책임을 잘 감당해야 하겠다는 긍정의 기도라고 설명하여 주었다. 아무리 완벽하게 기록된 기도문이라 하더라도, 조금은 시대나 상황에 따른 차질도 일어나고, 심지어는 괴리가 되기도 한다. 회당에서 매일 드려지는 기도 가운데에, 나사렛 당을 없이하여 달라는 기도는, 없어지기는커녕, 전 로마가 나사렛 예수를 신앙하는 정황이 벌어지자, 상당한 고난을 치루는 결과를 경험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성향의 기도가 개선되질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칭 빛을 세상에 비춰준다고 공공연하게 공언하면서, 오히려 거꾸로 가는 것이 현실이 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바울이나 요한의 복음을 집중해서 수차례 읽어가다 보면, 아주 역발상적인 상황들이 진행되고 있음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로마서 서신인 두루마리를 여인인 뵈뵈 집사가 고린도에서 바다를 건너 로마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로마서 마지막 부문에 이 서신을 전달하는 뵈뵈를 위한 소개문에서 발견되어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여인들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불가하게 여겨졌었는데, 어떻게 그 시절에 여인의 몸으로서 바다를 건너가, 로마의 시민들을 일일이 찾아가며, 바울의 복음을 일점일획 자구하나 틀리지 않고, 낭독하며 해설하여 주었을까? 이런 일들이야말로 남자들이 해야 하던 일들이 아니었던가?바울이 가장 중요시하는 그의 사역 마지막에 기록한 복음 내용은, 베드로의 서신에서도 들어났듯이 오해의 소지들이 있어서, 자칫 잘못하여 사사로이 해석했다가는 바울도 추락하고, 로마서도 추락하고, 바울의 희생이 헌신짝보다도 못하게 되었을 결과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복음이란 실천력이 퇴색하여지면, 이론만 난무하게 되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신도들에게 주의를 단단히 하였는데, 끼었던 반지가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에서 빠져 나가는 것처럼, 믿음과 행실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당부하였는데, 이는 실제로 그러한 일들이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바울이 삼여 년 간 가이사랴에서 구금되었다가, 황제에게 재판을 받으려고 로마 항구에 도착하였을 때에, 뵈뵈가 전한 복음을 읽고서 성숙하여진 시민들이, 줄을 서서 바울의 로마 입성을 환대하였다. 이는 뵈뵈의 복음 전달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사례이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아직도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서 발견되지 않고 있는 것들이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합병되어 국가의 모든 것을 상실한 1920년에, 어린 나이에 여성으로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여인의 입에서 나온 “두려워 말라”는 강론이나, 1921년의 “캄캄한 밤 사나운 바람 불 때”를 보면, 김활란여사의 가슴과 머리는 얼마나 담대하고 의지가 강하였든지, 한국여성의 기개가 어떠함을 알 수 있다.여인들을 대놓고 응원한 복음서는 어느 복음서보다도 요한복음서가 맨 앞이다. 바울도 여인들을 존중하고 격려하며 차별하지 않았는데, 어느 익살맞은 장난꾼이 그랬는지는 몰라도, ‘여인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문구를 바울 서신에 몰래 집어넣은 것이었다. 이러한 행위는 몇몇 문장을 첨부함으로써 그 진리가 가진 가치와 뜻을 퇴색시키려는 것이다. 일본의 독도 주장이라던 지, 중국의 광개토대왕비의 훼손 사건 등이 그런 것이다. 그러나 뇌가 있는 자라 하면, 누구라도 복음서 자체가 진리를 변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우리가 지금도 여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일을 서슴없이 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은 이 지상에서 가장 소외된 사마리아여인을, 유다의 가장 최고봉인 학자와 견주어서, 가장 명백하게 복음의 빛을 받아, 생수가 솟아나는 인격자가 되었음을, 복음서 앞자리에 상정시켰다. 어디 이 뿐이랴? 복음서 맨 마지막 십자가상에서의 대화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요한교회의 어머니가 된다. 요한교회가 어떻게 여인들을 존경해 주고, 지도자의 자리에 함께 앉게 하였을까? 오늘 같은 이 혼란스러운 정국에서도, 묵묵하게 예수를 잉태하고, 그리스도를 양육해낸 어머니가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 지난 칼럼
    • 영성논단
    2016-11-24
  • 63. 제91회 총회장 장차남(張次男) 목사
    경북 상주 태생장차남(張次男 1940.9.10~ ) 목사는 경상북도 상주시 복룡동에서 부친 장수만(張守萬)과 모친 김봉필(金鳳弼) 사이에 차남으로 태어나 네 살 때 부모를 따라 만주로 이주해 여섯살 때 해방(解放)을 맞이했고, 이듬해 2월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이미 국경선엔 소련군이 지키고 있었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걸어서 건너야 했다. 3.8선을 넘을때는 돈을 주고 고용한 안내원을 따라 한밤중에 고향을 향해 움직여야 했다. 그는 말한다. 만약 그때 조국으로 귀환하지 못했다면 지금 저희 가족은 만주에 살면서 조선족으로 불리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기독교 복음에 접할 기회를 놓쳤을지 모른다. 중국에서의 종교개방이 이루어진 것은 최근의 일이었으니까.…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한다. 열한살 때 6.25 전쟁이 일어나서 피난길에 나섰는데 나룻터에 와 보니 배 한 척이 있는데 서로 타고 건너겠다고 아귀다툼이었다. 이미 형은 강을 건너갔고 남은 가족들은 얕은 강쪽으로 아버지의 목마를 타고 낙동강을 건넜다. 어릴 때는 몸이 약해 병치레를 많이 해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쳤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라는 부친의 말씀에 할아버지께서는 갈 때는 못 가더라도 시험은 쳐보라고 하셨다. 시험에 합격은 했으나 학비가 걱정이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시기 중학교 때 중병을 앓고 있을 때 예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신앙적인 계기가 되었고, 19살 되던 1958년 당시 김천(金泉)에 있는 경서고등성경학교에 입학하였다. 당시엔 모두 어려운 시가라 정식 고등학교에 못가서 성경학교를 통해 신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으로 1959년 김천시 무안동의 천막교회의 개척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였다. 자전거로 가서 수요기도회를 인도하고 토요일이면 그곳에서 자고 주일예배를 인도하였다. 그해 9월 제44회 대전총회에서 예장이 합동과 통합으로 나뉘는 아픔을 겪었다. 상주의 모(母)교회는 통합측이었지만, 장 전도사는 다음 해에 서울에 있는 총회신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합동측 목사의 길을 걷게 된다. 경서성경학교 거쳐 총회신학교 졸업부산지역서 40여년 간 목회“삼손의 손에 잡힌 나귀턱뼈처럼”교계의 화합과 연합일치에 열심일본어로 기록된 총회록 번역사업 결의1960년 동대문에 있는 서울창신교회(권연호 목사)에 출석했는데, 그해 연말부터 교육전도사로, 1966년말까지 강도사가 되기까지 섬겼고, 그후 대구로 내려가 삼덕동에 있는 성덕교회(聖德敎會)에서 강도사로 1967년 11월 목사로 장립 받고 부목사로 섬기고 있던 중 아무 연고도 없는 부산중앙교회(노진현 목사)의 부름을 받고 내려가 6년 반을 섬기다가, 1975년 2월 해운대교회로 와서 2년간 시무하던 중, 같은 지역 내에 있는 온천제일교회에 1977년부터 32년간 위임목사로 봉직하고, 교단이 정한 70세 정년보다 1년반 앞당겨 조기은퇴함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말한다. 지금 돌아보아도 목회의 길이 저에겐 참 순탄했어요. 누구에게 삿대질 한번 안 받아보고, 멱살 안잡혀 보고… 물론 교회라는 곳이 온갖 애환과 빈부귀천 팔도강산 사람이 다 섞여있는 곳이라,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잘 헤쳐나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그는 또 자신을 삼손의 손에 들린 나귀턱뼈같은 존재였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늘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혀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고 생각할 때, 지난 58년의 목회사역에 고단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나의 목회 회고록 ‘소명과 순명’, 쿰란출판사 2015, p.48 이하 참조.) 그는 교정(敎政)에도 남다른 면이 있다. 장차남 목사는 온건하고 합리적인 성품을 지닌 한국교회 대표적인 보수 교계 지도자로 인정받고 있다. 경서고등성경학교를 마치고 총회신학교 대학부와 대학원에 진학(구 총신예과 및 본과), 박형률 박사 지도로 조직신학관계 논문지도를 받고 졸업하였다(Th.M 과정). 부산에서 사역의 3분의 2가 넘는 목회를 하면서 노회를 이끌어가는 부산노회장으로 부산신학교(교단 인준) 교수와 교장, 영·호남 기독교지도자협의회 공동회장, 한국교회대부흥100주년기념대회 상임공동대회장, 한국교회 일치를 위한 교단장협의회장, 기독교 C.T.S-TV 공동대표, 북한교회세우기연합공동대표 등을 역임하면서 지도력을 발휘하였으며, 은퇴 후에는 부산에서 서울로 거쳐를 옮겨 온천제일교회의 후임목회자가 마음놓고 편히 소신을 가지고 목회하도록 배려하는 형으로 교계에서 몇 안되는 존경받는 지도자이다.그는 자신의 목회철학 회고담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평생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으로 하나님께 평생 인고(忍苦)의 목회, 중용(中庸)의 목회, 섬김(奉仕)의 목회를 모토(Motto)로 최선의 목회를 하려고 미력을 다했노라고… (신앙계 2016년 8월호, 최선미 기자와의 대담 p.10~16참조).장차남 목사는 자신의 회고록인 <소명과 순명> 머릿글에서 자신의 한평생 삶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나의 일생을 소명(召命)과 순명(順命)으로 인식한다. 내가 성도가 되고 목사가 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 곧 소명(召命)이다. 그후 나의 사역 일체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르는 순명(順命)이었다. 더블어 내 생애 전체가 소명과 순명이로되 결코 내가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회고록 같은 책 프로로그 참조).나는 장로교 목사로 칼빈주의 정통신학 노선이자 수구적이면서 보수적의 입장이다. 하지만 진부하고 화석화 된 수구적인 보수주의가 아니라 참으로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되 지키면서 개혁적이고 실천적인 보수가 되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장차남 목사의 회고록 소명과 순명을 내면서 앞장서서 추진했던 김승동 목사(구미상모교회)는 간행사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연극의 제목이 아무리 멋이 있어도 주인공이 마지막 무대에서 많은 관중으로부터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내려와야 제목다운 연극이 되고 조연이나 관련자들까지 피곤이 물러가고 주인공과 함께 했던 시간이 행복으로 가슴에 밀려 올 것이다. 남편이 남편다워야 아내가 행복하고, 아버지가 아버지 다워야 자녀가 행복하다. 어떤 자리에 앉았다가 내려올 때 자신이 어떤 평가를 받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 로마교황 프란시스코(Francisco)가 뒷담화(남의 뒤에서 험담하는 것)만 아니해도 성자(聖者)라고 했듯이, 장차남 목사가 그런 분이 아닐까 여겨질 때가 많다. 타인을 질타하는 것보다 그럴 마음의 이유가 있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을까요? 하면서 언제나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것이다.장차남 목사는 2006년 9월 19일에서 22일까지 자신이 시무하고 있는 부산 온천제일교회에서 개회된 제91회 총회에서 총회장으로 교단의 수장이 되는 자리에 올랐다가 2009년 5월 5일 온천제일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받은 후 현재까지 총회장 재임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은퇴 후에도 지금까지 교계의 화합과 연합일치를 위해 타교단장들과 교류를 하면서 교계 지도자로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그의 신앙인격과 포용력을 나타내주는 지도자의 모습이라 하겠다. 그에게는 문필력이 있어 2015년 3월 20일에 간행된 회고록 <소명과 순명> 외에도 ① 목회 40년 그 현장을 말한다. ② 한국교회 목회 현장을 말한다. ③ 사랑하고 축복합니다가 있고, 또 강단에서 선포된 설교집 ① 한 생명의 가치 ② 승리자 예수 ③ 위대한 터전 ④ 새벽을 깨우는 신앙 ⑤ 위기상황에서 교회의 한 일 ⑥ 우리는 한 골육이다 ⑦ 나는 기도할 뿐이다. 등 17권에 이르는 저서들이 있다. 그가 재임했던 91회 총회에서 결의된 중요안건들을 보면, ① 평양대부흥100주년 기념예배를 장감성 연합예배로 드리기로 결의하고, 7월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신앙대회를 개최하기로 하다. ② 21세기 찬송가를 본교단 산하 개교회 예배용으로 사용하기로 하다. ③ 4월 마지막 주일을 장애인 주일로 허락하다. ④ 총회 안에 긴급구호단 설립을 허락하기로 하다. ⑤ 이단연구조사위원회를 상설키로 하다. ⑥ 총회차원의 전국교회 인재 데이터 구축하기로 하다. ⑦ 일본어로 기록된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회의록을 임원회에 맡겨 한국어로 번역하도록 하다. ⑧ 예장출판사는 현행대로 운영하되 총회에서 파송된 이사들의 법적 권한은 총회의 권익확보를 위한 임무수행 범위를 제한하기로 하다. 장차남 목사의 사역을 정리하면서 우리교단 지도자들이 역사인식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장 목사는 슬하에 1남2녀의 자녀를 두었으며, 모두들 부모님들의 신앙의 대를 이어 가며 교회와 사회의 일원으로 충성을 다하고 있다.
    • 지난 칼럼
    • 합동총회장 열전
    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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