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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4
    최근 들어 한 탈렌트가 지인과 관련된 음란물을 카톡방에 올려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이는 관련 여성에게 수치심을 일으키게 할 뿐만 아니라, 그의 윤리관이 올바르지 못함을 잘 나타내는 사례다. 우리 사회에서 여러 사람들이 야동에 대한 관음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는 우리 사회에 성 윤리관이 바르게 정착되어 있지 않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사례를 들춰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건전한 인간미를 발굴하는 일도 필요한 것 같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나온다. 그 중에 사마리아 땅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강도를 당해 쓰러져 있는 유대인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인이 천시하던 사마리아인은 그를 여관에 데려가 치료하고 그의 숙박비까지 내 주고 간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시키기 위한 비유다.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이 원관념에 해당한다면, 선한 사마리아인의 행위는 보조 관념이다. 율법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아름다운 마음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그 자녀에 대한 사랑을 유추해 볼 수가 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서 비유를 많이 사용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에게 구약시대부터 내려온 역사나 율법이 굳어진 언어를 사용하면, 그들이 이해를 못하거나 식상해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 같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과 그 자녀를 화목하게 하기 위해 희생양 역할을 해야 하고, 이는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에 바탕한다는 말을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말해 봐야 설득력이 없다고 보신 것 같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의 일상에서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로 그들에게 다가갔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가 그것이다. 하나님의 인류 구속에 대한 원대하신 계획을 그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그래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유대인을 도왔듯이,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을 몸소 행하는 것임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요즘에는 사회에 다양한 문화 양상이 나타나면서, 교회에서도 기존의 경건함만으로는 교인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록 계도하는 데 한계가 없지 않다. 물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절대성을 부각시키면서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윤리관 확립에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경건한 마음을 가지다가도, 네비게이션이 작동하고, 자율 주행 자동차가 다니고, 인공 지능이 발달한 세상에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는 교인이 없지 않다. 예배당에서는 건전한 마음을 가지다가도 교회 밖에서는 죄를 짓는 양가 감정을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는 성직자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의 경건함만 보고 교회 밖에서의 이중적인 생활을 모르는 척하는 데서 나온 역설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교회 밖의 일상에서도 신자로서의 경건함과 멋을 유지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신자가 일상에서도 교회에서와 같은 경건함을 표현할 수 있는 멋을 연출하는 것도 그 한 방법이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임재하신다는 것을, 머리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나타내는 신자로서의 멋을 교회 안에서 제시하여도 좋을 것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옮기면서 배꼽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었듯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에 얽매인 데서 벗어나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어린 아이가 부모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듯이, 전지전능한 하나님 앞에서 예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예배 시간에 찬양을 부르며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에 나오는 로봇춤을 추어 보는 것이 어떤가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의견을 내가 다니는 교회의 장로에게 내놓았더니, ‘추수 감사 찬양제’ 시간에 한 번 시도해 보란다. 팔백여 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에 교인들이 자리를 잡고 목사의 설교가 짤막하게 끝나자 기관별로 찬양을 하는 대회가 열렸다. 물론 이 대회에는 등수를 매기지 않고, 참가한 모든 기관이 상품을 받는 축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일 먼저 순교한 제자는?”이렇게 퀴즈가 진행되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이 정답을 맞춘 자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주일학교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기관별로 찬양이 진행되었다. 나의 차례는 일곱 번째였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주만 바라볼지라」가사 중 일부). 나는 이 찬양을 부르면서 마이클 잭슨의 「빌리진」에 나오는 로봇춤을 추었다. 교인들이 눈을 휘둥그레하고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날 찬양제는 멋있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5-10
  • 예수 부활의 의미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리인 그리스도의 부활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이렇게 그가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죽음·악마'를 물리친 그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사건을 기념하는 날을 부활절 또는 부활제라고 하는데, 이 날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주요축일이다. 복음서 기록에 의하면, 여자 제자 몇몇이 예수의 무덤으로 갔는데, 이 무덤은 산헤드린(유대인의 최고 종교법정)의 일원이며, 예수의 은밀한 제자였던 아리마대 요셉의 동산에 있었다. 그들은 거기서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옮겨져 있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없음을 알렸다. 나중에 여러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보았고, 심지어 그가 문이 잠긴 방으로 들어오는 것도 보았다. 또한 제자들은 갈릴리에서도 그를 보았다(예수가 나타난 장소와 시간에 관해서는 복음서마다 다름). 복음서 외에 부활한 주(主)가 40일 동안 지상에서 활동하다가 승천한 것을 언급한 기록은 〈사도행전〉에만 있다. 이슬람교에서도 심판 전에 죽은 자가 부활한다는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이와 비슷한 신앙은 누구도 실제로 보지 못했고, 이후 직접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던 이도 고작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예수의 육신이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사실과 그 후에 예수가 자신들을 방문했다는 사도들의 확신은 가히 세계를 바꿔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이 명백하게 불가능한 사건이 문자 그대로의 진실이라는 점에 대해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믿음을 품었으며, 이는 그들의 도덕, 문화,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행동에 극적인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속주인 유대에서 카리스마 있는 치유자이자, 떠도는 계시적 설교가였던 예수는, 전통적인 많은 관습을 고의로 조롱하고 유대주의의 기반인 모세의 율법 대신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여 유대인의 종교적 제도를 전복시켰다. 그가 유월절 축제를 위해(날짜는 확실하지 않지만 서기 30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것은 자신의 운명과 대면하기 위한 의도적 행위라고 해석해 왔다. 산헤드린(고대 예루살렘의 유대인 최고 의회이자 법원)과 대제사장이 선고를 내리고, 로마 총독의 도움을 빌어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했다. 한 신도가 그를 개인 무덤에 묻었고 로마 군인들이 경비를 섰는데, 사흘 후 그의 유해는 사라졌다. 그 날, 그리고 이후 몇 달간 여러 차례에 걸쳐, 그의 친구들은 살아 있는 모습의 예수를 목격했다고 확신했다. 첫 목격자는 막달라 마리아였고, 이후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예루살렘과 다른 곳에서 예수를 보았다. 그 결과, 예수의 추종자들은 그의 가르침과 죽음을 재평가했고, 그 안에서 비길 데 없이 강력하고 긍정적이며 변화를 낳는, 하나님이 내린 메시지를 보았다. 오늘날까지 그 메시지는 온 세계의 사람들을 강하게 이끌고 있다.예수 부활에 관한 기록은 신약성서 4복음서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초대교회의 보편적 확신과 합의를 표현하는 다양한 신학적 표현들은 “신약성서” 전체에서 발견해서 알 수 있음을 믿음으로 신앙인들은 믿음으로 이를 감당하게 한다. 그래서 그 이후 예수 승천하심으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믿는 신앙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심을 믿고 사랑으로 이를 감수하는 것이다. “예수 부활의 의미”는 죽음 이상의 생명으로 사랑을 강조함에 그 의미를 두고 있음에 그 믿음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따라서 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부활한 예수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대로,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4-26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3
    이스라엘 역사에서 남북투쟁시대에 유다왕국의 아사왕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개혁자로서 성공한 왕이었지만, 군사 외교 정책의 실책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다. 그의 외교 정책은 세상적으로 보면 매우 지혜로운 것 같아 보인다. 유다가 이스라엘과 자주 충돌했던 시기에 이스라엘 왕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여 유다에 있는 성전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았다. 그러자 아사는 이스라엘과 접해 있던 나라 아람 왕의 벤하닷에게 "은금"(뇌물)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공격해 달라 하였다. 이에 벤하닷은 이스라엘 성읍들을 공격하였다. "벤하닷이 아사 왕의 말을 듣고 그의 군대 지휘관들을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되 이욘과 단과 아벨마임과 납달리의 모든 국고성들을 쳤더니"(『역대하』16:4). 이에 다급해진 바아사왕은 유다와의 접경에 있던 "라마 건축하는 일을 포기하고 그 공사를 그친" 후 아람왕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치중한다. 그러자 유다의 아사왕은 "바아사가 라마를 건축하던 돌과 재목을 운반하여다가" 유다에 "게바와 미스바를 건축하였"다. 이는 세상적으로 보면 매우 훌륭한 외교 정책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왕 아사에게 전한 말은 이러하다. 아사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을 때에는 아무리 강한 군대를 상대하여도 다 승리하였는데, 벤하닷과의 은밀한 거래는 여호와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람 왕의 군대가 아사 왕의 "손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은즉 이 후부터는 왕에게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한다(『역대하 16:7-9)』). 아사왕은 이 말에 크게 진노하여 그를 감옥에 던질 뿐 아니라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학대하였다(『역대하』16:10). 또한 그는 하나님의 징계로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였으나 그 때에도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역대하』16:12).이는 의원에게 구한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가 어려울 때 사람에게 의지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불신앙을 꾸짖는 말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병들어 그 일이 있은 지 2년 후에 죽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보면 지도자가 진리에 기초한 정책을 펴지 않을 때 하나님의 책망을 받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를 보면 개인도 진리에 기초한 원칙대로 살아가야 함을 알게 된다. 필자도 지난 삶을 돌이켜 볼 때 진리에 기초한 원칙대로 살아왔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순전히 성령이 인도하신 대로 따른 결과였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필자도 젊은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학위를 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새벽 잠을 줄여가며 독서와 논문을 써야 했고, 서너 살 안팎의 아이들과 노는 시간도 줄이며 연구에 매달려야 했다. 친척들 결혼식에 축하하러 갈 시간을 줄이고, 공적인 모임에 갈 때에도 교통 시간을 아끼기 위하여 택시를 타야 했다. 그리고 수 년간을 도서관에서 밤늦게 연구에 매진하면서 강의도 병행하여야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학위를 따서 안정된 교수직을 얻어야겠다는 조바심이 앞섰다. 그러나 학위를 따 놓아도 교수직을 얻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십여 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지만, 그것이 교수 자리를 얻는 데에 결정적인 결과물이 될 수는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든 임용되고자 하는 대학에 연줄이 닿아야 했고, 그러한 연줄이 잘 닿으면 최종 후보에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연줄이 어쩌다가 잘 닿았다 하여도 지인들은 불의한 일을 요구하였다. 그것은 나에게 상당한 시간 고민과 갈등을 하게 만들었다. 다행인 것은 내가 그때 불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선교사인 형에게 자문을 구하였을 때, 형이 말하였다. "불의한 일로 네 영혼을 팔아먹지 말아라. 죽는 순간까지 네 양심에 따라다닐 불의한 일을 하지 말아라." 나는 형이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한때 들었지만, 끝내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근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내가 불의한 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것이 매우 잘 한 일이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하게 한 결정적인 성경 말씀이 진리에 기초하지 않은 아사왕의 실책이었다. 분명 이 세계에는 진리가 살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따라 진리대로 살려고 노력한다. 성경 말씀에는 의와 불의를 구별하게 해 주는 성령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성령은 내가 성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여 주시며, 불의한 일을 경계하도록 이끄신다. 그리고 성령은 내가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와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사탄이 시험을 하였는데, 나라고 해서 시험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시험을 성령이 능히 이기게 하여 주시리라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리하셨고, 믿음의 선진들이 그러하였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4-26
  • 사순절에 새기는 거듭남
    바울 선생의 믿음의 전 생활은 그의 믿음의 고백에서 ‘자신이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말함에 주목한다(고전2:1-2) 예수님의 지상의 삶 전부와 그 사역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환히 밝혀 주심을 알게 한다. 하느님의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은 사람이 영적 생명을 부여 받아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야 하기에 (요한복음1:13 )하느님께로서 난 자녀의 권세를 받음은 ‘거듭남’의 삶을 알게 한다. 그래서 위로부터 난 영적인 자들은 새 생명으로 다시 나게 하심은 사람은 비로소 영적 생명을 부여 받는 것이다. 여기서 아는 것은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느님의 능력으로 난자 즉 거듭난 자라야 “십자가 지는 복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순절을 지키며 부활절의 생명 된 희망을 찬양하며 찬송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교회는 사순절의 교회력에 따른 행사를 갖게 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스스로 고난을 당하신 십자가를 생각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하심을 믿음으로 감당하게 하신다. 인간은 그 죄의 대가를 스스로 해결 할 능력이 없다. 그럼으로 십자가 사건을 용서함을 받은 믿음의 행세를 하며 그리스도인이라 믿음의 자부심을 갖기도 한다. 그럼으로 우리는 지금 사순절을 맞아 여러 가지 믿음의 감회를 가지고 있다. 서방교회에서는 사순절을 지키는 믿음에 골몰하는 반면에 삶의 거듭남을 강조함에 주목한다. 재의 수요일에 시작해 부활절 전까지 6주간 반 계속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한 것을 본떠서 일요일을 제외한 40일을 금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 8주 전부터 시작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금식 일에서 제외한다. 부활절 축제 전에 준비와 금식의 기간을 지킨 것은 사도시대부터였다. 이 기간은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시기였고, 죄인들에게는 참회의 기간이었다. 초기의 수세기 동안 금식규율은 엄격했으며, 동방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서방에서는 이 규율이 점차 완화되어 엄격한 금식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면제되어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만이 사순절 금식일로 지켜졌으나, 참회예절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영국성공회의 〈성공회 기도서〉는 사순절을 금식으로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루터교를 비롯한 개신교 교회에서 사순절은 다양한 예배와 전례로 지켜지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느님의 자기희생이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는 하느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사건이다. 이는 하느님의 속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곧 공의와 사랑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항상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나타나 시행함을 믿게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이를 잘 나타난 하느님이 행하신 사건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친히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스스로 고난을 당하시고 삶에서 친히 그 아픔을 보여 주시는 놀라운 한 사건임을 친히 당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십자가 사건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삶으로 보여 주신 공의와 사랑의 사건임을 삶으로 보여 주신 관계를 믿게 한다. 바로 이러한 삶의 자리에 화목(Propitiation), 구속(Redempition), 칭의(Justification), 화해(Reconciliation)로 해석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것은 그 의미가 자신의 생명을 드러내어 인간과 그 모든 생명을 살려 구원했다는 지대한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게 한다. 여기에서 이를 깨닫게 하는 것은 구속의 의미로 오심을 믿게 하심을 우리는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곧 생명 안에 본체이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함을 깨닫게 함이다. 베드로 전서1장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 할 씨로 된 것이니 하느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하심을 거듭나게 하신다.거듭남의 그 의미는 단순한 외적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면의 개조와 영적 재창조를 말함에 있음을 주목하게 한다. 결국 거듭남이란 생명의 본체요 근본인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위로부터 새롭게 영적으로 태어나는 사순절이 되어야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4-17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2
    국어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바리새파의 유력한 정치가. 예수에게 밤에 몰래 찾아와 가르침을 구하고 예수를 변호하는 데 노력하였다고 한다.”그는 산헤드린의 의원이었다. 산헤드린은 행정기관일 뿐만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사법관청이었다. 유대인 중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하여 사법적 판결을 내리는 곳이었다. 그 사법적 판결은 오직 율법 해석의 권한을 가진 율법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한번 내려진 판결은 유대인을 영원히 매기도 하고 풀기도 하는 절대적 판결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산헤드린에서의 율법학자가 얼마나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집단이었는가를 가늠하게 한다. 그 당시 평민으로서 백성의 우두머리가 되는 길은 오직 한 길밖에 없었다. 그것은 율법학자가 되어 산헤드린에 진출하는 것이다. 이 신분은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평민으로서 율법학자가 되려면 랍비로부터 모든 전승 자료와 유대인들의 종교적 의무와 사회적 의무를 담고 있는 할라카(에스라 이후 유대 교사들이 전승한 유대교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생활방식)를 통달하게 해야 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종교법과 형법의 모든 문제에 대하여 독자적으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율법학자가 되어, 이후 40세가 되면 서품을 받아 완전한 율법학자가 되었고, 또한 율법학자단에도 가입할 수 있었다(요아힘 예레미아스).바리새인이며“유대인의 지도자(또는 산헤드린 공회원)”(『요한복음』3:1)인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셨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받아 예수의 시체를 가져갔을 때에 그 장례를 도왔던 사람이다.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요한복음』19:39,40).『요한복음』3:1-15에는 니고데모가 예수께 질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가 질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당시 바리새인은 부활과 천사와 영이 다 있다고 믿고 있었다(『사도행전』23:8).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낸 랍비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 근거로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을 들었다.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3:3). 니고데모는 이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한복음』3:5-8).이를 보면 니고데모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성령’이었던 것 같다. 곧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론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니. ‘성령’이나 ‘거듭남’의 의미를 이해하였을 리가 만무하다. 초기 기독교가 부흥하게 된 것은 이 성령이 신자들에게 임해서였다. 곧 주님이 성령이 되어 오셔서 하나님이 선택한 자녀로서의 능력을 행하게 하신 것이었다. 니고데모는 삼위일체가 되시는 주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고, 그가 성령임을 몰랐던 데서 오는 무지였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이들에게 성령이 알게 하여 주는 것이지, 개인이 임의로 알고 싶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기도해야 할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백성인가를 묻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이해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령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하나님의 의대로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하여야 하는 것이다. 성령이 그 비밀을 알려 주실 때에 신자가 진정한 행복을 만끽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부귀와 권력보다 더 존귀한 것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는 것이다. 신랑되신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불치병과 불구된 자를 고치시고, 남자만 세어도 오천 명이 되는 무리에게 오병이어의 축복을 내리시고,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고, 사나운 물결을 잠잠케 하시고, 주님이 몸소 부활하셔서 성령이 되어 오시는 것이 어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오늘날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였다 하여도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한 이는 없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성령이 임하셔서 나에게 주님이 어떻게 임하시는가를 알게 하시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4-17
  • 십자가를 지는 믿음
    2019년 예배력에 따른 성서일과에 따른 신앙생활을 통해 살피어야 하는 성경의 일과를 따르면 이번 주간은 3월31일 주일, 넷째 주일로 사순절 기간에 넷째주일이다. 이는 순교자들을 기르는 주일이기도하다. 이를 기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이기에 예수의 삶을 사는 이유로 그 삶을 사는 그 믿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구약에서는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에 대해 오른 뺨을 치면 왼 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 까지 주라는 예수님의 삶은 무슨 믿음인지를 알게 한다. 특히 예수님이 산상에서 가르치신 삶의 교훈을 우리는 지금 어떻게 이해하고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생각하게 한다. 예수께서 남기신 교훈은 마태복음5장에서는 삶을 구체적으로 말씀 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오른 뺨을 치거든 왼쪽 뺨을 돌려 대며,’속 옷을 갖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가지게 하라 ‘고 하신다.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까지 동행하라 하시며 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심을 깨우치게 하신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 ‘너희가 먼저 대접하라 하신다’ 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십자가의 대속으로 믿음의 삶을 가르치신다. 여기에 예수님의 근본 간절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우치게 하신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든 바울 선생은 “내게는 우리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신 신앙고백을 배우며 삶의 영위에 그 사심을 깨우치게 한다. (갈6:14) 이는 바울선생의 뒤를 따라 우리의 삶이 이 믿음으로 삶을 영위해 살아야 함을 믿음으로 감당케 한다. 말하자면 성령으로 거듭나 오늘의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삶을 사는 자는 이러한 삶의 철학을 가지고 “십자가의 믿음”을 삶의 현장에서 이를 구현해 살아야 한다. 이는 곧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느님이 주신 나의 생명을 구원으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삶을 지니고 살아야 함을 이번 사순절기간을 맞이하여 마음다짐이 믿음의 그리스도인의 삶에 고백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삶의 고백을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으로 나에게는 예수 십자가를 지는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심에 주목한다. 오늘을 살아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내 삶을 드러내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지는 믿음” 외는 없다”고 하는 고백하는 행함을 고백 한다. “종교개혁은 당시 사회에 만연한 사회의 병폐에 대한 도전임을 알아야 한다. 어떤 좋은 공로나 인정으로 그리스도교의 구원이 아니고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함을 받는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일어나는 혁명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이는 믿음이 삶에서 나타난 행함임을 알게 한다. 믿음과 행함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다. 믿음이 없는 행함은 나올 수 있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 또한 나올 수 없다.오늘날의 교회는 삶에 대하여 너무 안일함과 평안함에 안주하는 삶이 깃들어 있어 나태하고 안일함에 감사하는 믿음임을 스스로의 삶에서 이를 기원하고 이를 축복인 냥 착각하고 있지는 아니한가? 스스로 “십자가 지는 믿음”이 없음을 오늘의 우리 삶에서 살피게 된다. 한 생명을 귀중하게 받아 이 세상에 태어 나 마냥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생명을 부여받아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 영적으로 그 삶을 영유해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의 교훈은 언제나 주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의 역사를 전제로 함에 주목해야 한다. 예수님의 믿음과 행함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십자가의 삶은 그 점을 이 사순절 잘 알게 현실로 보여주는 구원의 사실이다. 그리스도 교회가 부활절을 준비하는 참회 기간으로 정하여진 사순절(Lent)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온 정성으로 마음을 다 하여야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4-05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1
    신앙의 개념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영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주님을 영적으로 만날 수가 있다. 주님은 성인이나 유명 성직자에게만 임재하시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에게도, 병자에게도, 소외된 자에게도 찾아오신다. 평범한 자에게도 찾아오신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23:10)빛나고 뾰족한 화살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광석을 불에 녹이고, 단단한 흙으로 된 틀에 넣어 모양을 만들고, 쇠망치로 수백 차례 두들기고, 페이퍼로 연마하고, 기름을 묻혀 헝겊으로 닦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쇠는 단단해지고 그 기능에 걸맞는 형태로 단련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을 훈련시키실 때에도 이와 같은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셨다. 주님은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 내보내시며 복음을 전파하는 실무를 겪게 하셨고, 기도와 사랑의 본을 보이셨으며, 몸소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당하셨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16: 24), 여기서 “자기 십자가”가 고난당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십자가에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연단의 과정도 포함된다. 바울도 여러 번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어냈다. 그가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가는 과정도 연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큰 고비 중의 하나는 배를 타고 가던 중 유라굴로 광풍을 맞은 것이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다스에 걸릴까 두려워하여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사도행전』27: 14-19). 필자는 이 구절에서 사공들이 배 안의 짐과 기구들을 바다에 버리는 행위에 주목하였다. 배를 가볍게 해야 배 안으로 들어오는 물의 무게를 줄여 배가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이치 같은데, 사람도 욕심을 비울 때 영적으로 건강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한때 대학 정교수의 꿈을 꾸고 수천 권의 책을 사 모으고 지식을 쌓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독자들로부터의 인기를 얻기 위하여 성에 관한 책들도 틈틈이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러한 명예욕이나 욕심은 ‘유라굴로 광풍’을 맞은 뒤 비우게 되었다. 책도 약 2500여 권을 도서관에 기증하거나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서가가 정리되면서 내가 쌓아야 할 인간미가 무엇인가를 모색하게 되었다. 욕심을 비우니 새로운 영감이 새벽마다 차올랐다. 그것은 나에게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즐거운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영적인 양식을 채우는 데 골몰하게 된 것은 유라굴로 광풍을 견뎌내고 터득한 연단의 이치였다. 나는 이러한 이치를 주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영적 체험이라고 믿는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체험을 담대하게 고백하는 것만으로도 복음이 증거되는 기회가 되었다. 바울은 대제사장 아나니아 앞에서도, 벨릭스 총독 앞에서도,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자신에게 일어난 영적 체험을 담대히 증거하였다.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있던 공회에서도 부활을 말하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사도행전』23:7)길 정도였다. 바리새인들은 평소에 부활과 천사와 영이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사두개인은 그것이 없다 하였던 것이다. 이들 사이에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시고 부활하심과 성령이 오심과 다시 오실 것을 증거하여야 했는데,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이를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유대교 대표와 군주와 총독 앞에서 담대히 말할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그리고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사도행전』23: 3)라는 예언대로 A.D. 66년에 민란의 와중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도적들의 손에 의해 죽고 만다. 주님은 바울을 연단시켜 죄수의 신분으로 당시의 종교와 정치 지도자들을 상대하게 하신 것이다. 기독교는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주님이 연단시킨 종들을 통하여 변화해 왔다. 유대교인들을 상대하면서 기독교 교리를 확립하였고, 세계의 중심지였던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하였으며, 부패한 카톨릭과 대립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남녀간·인종간 갈등도 청교도 정신과 함께 극복되었다. 그것은 영적 체험을 가진 수많은 주님의 종들을 통한 변화요, 개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지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님이 어떻게 임재하시는가를 주지하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4-05
  • 사순절을 맞으며
    서방교회에서는 “재의 수요일”에 3월 6일(수) 시작해 부활절 전까지 6주간 반 계속되며,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금식한 것을 본떠서 일요일을 제외한 40일을 금식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동방교회에서는 부활절 8주 전부터 시작하며,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금식 일에서 제외한다. 부활절 축제 전에 준비와 금식의 기간을 지킨 것은 사도시대부터였다. 이 기간은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준비하는 시기였고, 죄인들에게는 참회의 기간이었다. 초기의 수세기 동안 금식규율은 엄격했으며, 동방교회에서는 지금도 그렇다. 서방에서는 이 규율이 점차 완화되어 엄격한 금식 규정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면제되어 재의 수요일과 성 금요일만이 사순절 금식일로 지켜졌으나, 참회예절은 여전히 강조되고 있다. 영국성공회의 〈성공회 기도서〉는 사순절을 금식으로 지킬 것을 규정하고 있다. 루터교를 비롯한 개신교 교회에서는 이렇게 “사순절”이 다양한 예배와 전례로 지켜지고 있다.그리스도교인들이 성주간과 성금요일로 이어지는 여러 예배의식의 절정으로 지키고 있는 부활절 의식에서 많은 민족적 풍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중에는 유럽인의 고대예식과 상징적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으며, 부활이라는 주제와 관련 있는 중동 이교도들의 봄의 축제들로부터 유래된 것도 있다. 이 풍습들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예를 들어 사순절 기간 동안 먹지 못하게 되어 있던 달걀이 이 의식에선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것으로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풍요의 상징이었고 후에 유럽에서도 역시 같은 상징으로 쓰였던 큰 산토끼가 북아메리카에 서식하지 않으므로, 그보다 작지만 인간의 풍요와 달의 주기(週期)를 상징하는 부활절 산토끼로 대체하여 준비한 달걀과 함께 둥지에 넣거나, 달걀을 멀리 감추어 아이들이 찾도록 하는 놀이가 부활절 풍습으로 이용된다.가톨릭교회에선 '예수 부활대축일'이라 하여 전례서가 정한 대로 예식을 행한다. '재의 수요일'로 시작되는 사순절은 성(聖)3일로 끝나게 된다. 성목요일에는 성사집행에 사용되는 성유(聖油)의 축성미사를 교구별로 주교좌성당에서 드리며, 저녁에는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여 성만찬미사를 드린다. 그 후 그리스도의 부재(不在)를 나타내기 위해 보라색 천으로 십자가상 등을 가린다. 성금요일에는 망부활미사(부활 전야예배)를 드리며 가능한 한 단식을 한다. 개신교에서는 1947년 교파에 관계없이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나, 1960년대에는 분열과 대립으로 별도의 행사를 가졌다. 1978년 다시 통합되어 대도시별로 부활절 새벽에 연합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달걀에 채색하고 장식하여 선사하기도 한다. 내 삶 속에서도, 다시 살아남의 기쁨이 있길 소망하다보니, 먼저 죽어야한다. 죽지 않으면 어찌 다시 살아남의 경이로움을 체험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믿음의 경험을 맞이해야 한다. 아주 조그마한 내 자심의 몸의 움직임, 마음의 동요, 힘 듦 속에서도 부활의 기쁨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우린 만남 속에서도, 부대낌의 힘 듦 속에서도, 마른땅에서 움트는 새싹의 경이로움을 기대하며 때를 따라 오는 자연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음도, 그분의 부활이 있었음임을 고백하면서 긴 육신의 아픔 속에서 봄은 대지를 이기고 일어나 향긋한 봄의 생명을 내듯이 이제 땅에서 일어나듯이 믿음을 가지는 그리스도인은 여기에 준비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렇게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다. 예레미야서에 " 10:23 “주님,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아무도 자기 생명을 조종하지 못한다는 것도 제가 이제 알았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경험을 가지는 기간임을 그리스도인은 준비하고 부활절을 지켜가야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9-03-21
  • 기독교인의 행복론 - 100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당신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성경은 물론 수많은 문학 작품과 철학 서적을 읽었고, 수천 시간을 사색해 왔다. 당신을 찾기 위하여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였고, 2500여 권의 문예지와 전집들을 버리고 서가를 정리하였다. 제법 널찍한 벽면을 채운 가로 세로 30칸의 책장에 그동안 흐트려져 있던 책들을 분류하여 넣었다. 우선 가운데 제일 윗 칸에 신학 서적을 꽂은 후 그 아래에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철학 서적을 채워 넣고, 그 좌우 옆 줄에는 소설집과 시집들을 꽂았으며, 가장자리에는 역사서와 수필집, 희곡집과 비평과 문학사 관련 서적을 넣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어 나갔다. 칸트에 관한 책을 읽은 후, 구약사와 신약사, 그리고 수많은 성경 인물들을 섭렵하였다. 그러면 나는 당신을 찾을 줄 알았다. 그러나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신을 찾기 위하여 인터넷에서 천문학에 관한 지식도 쌓았다. 은하수에는 보통 2천억 개 이상의 별들이 모여 있었고, 그런 은하단이 또 수천억 개 더 있었다. 그 많은 별들 가운데서 지구는 한 점 먼지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그 지구 안에 이루 셀 수조차 없는 생물들이 살고 있었고, 인간도 그 중 한 종에 해당하였다. 그리고 인류가 나오기 수억 년 전에 맘모스가 살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공룡이 살고 있었다. 몇 번의 빙하기에 그 많던 생물들이 다 죽었고, 또 생겨났다. 성경에서는 말하였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었다고. 그리고 당신이 빛과 어둠,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 뭍과 바다를 만들고, 식물과 생물을 만들고,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그리고 일곱째 날에 하시던 일을 마치고 안식하셨다고. 그래도 나는 궁금증이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저 수많은 별들을 만든 당신의 크기는 얼마이며, 홀로그램처럼 몸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존재인가를 끝없이 질문하였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부활하신 것을 제자들이 보았다고 하는데, 그리고 성령이 그 제자들에게 임하였고, 그 자녀들에게도 임하신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임하셨는가를 자문하여 보았다. 나는 당신을 직접 본적은 없으나, 청소년 시절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 털수건을 둘러쓴 천사를 본 적은 있다. 그는 내 온몸이 빨려들어갈 것만 같고 세상의 어느 누구도 그토록 맑을 수 없는, 크고 파아란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는 당신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때는 내가 믿음이 없던 때였으니까. 그리고 당신이 대문을 나선 후 곧바로 천사임을 확신하고 뒤따라 나갔을 때에 당신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후로 또다시 천사가 나타난다면 나는 내 정성을 다하여 그에게 무릎을 꿇으리라 다짐하였지만, 아직까지 그는 나에게 직접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으셨다. 그 후로 나는 당신이 임재하심을 몸소 체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당신을 찾고 또 찾았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몸소 느끼고 싶었다. 그것이 당신을 찾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존재한다고 믿으면 당신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리라고 생각하였다. 특히 『마가복음』9:23에 있는 말씀이 나에게 다가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을 따라서 나는 열심히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당신의 능력이라면 능히 하시리라 믿고 대학 교수직에 도전하였다. 학위를 받은 후 10년 동안 스무 군데 이상의 대학에 이력서를 내 보았으나, 모두 허탕이었다. 내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가 하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였으나, 돌아오는 것은 좌절과 절망뿐이었다. 나는 문을 두드렸는데 왜 안 열리나 하고 의구심도 가져 보고,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계속하여 문을 두드렸다. 그래도 열리지 않았다. 나의 실망은 너무 컸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고 그 시간에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그 생활이 5년간 지속되었지만, 그 문은 그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그때 직장 선배가 나에게 다가왔다. “하나님이 형제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형제의 마음을 바꾸어 다른 기도를 하게 하실 것입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교회에 다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예배 시간에 찬양을 열심히 불렀다. 처음에는 내가 30년 이상 해 온 찬양 실력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당신께 정성드려 찬양을 드렸다. 어린애가 예쁜 짓을 해야 그 부모가 더 잘 해 주지 않던가. 그러는 사이에 당신과 나 사이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분명 그것은 믿음의 성장이었다. 작가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마음이 없어지고, 내가 십 년 이상 줄기차게 연구하였던 성담론에 관심이 없어졌다. 그리고 아침마다 영감이 생겨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 칼럼을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 지난 칼럼
    • 기독인의 행복론
    2019-03-21
  • 창조문예 임만호 장로 “문학은 시대를 초월한 공유의 산물”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윤동주 ‘십자가' 중- 시퍼런 총칼의 억압만이 가득한 암울한 일제 강점기, 별과 바람을 노래하며,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민중들에 약속했던 시인 윤동주. 그의 노래는 희망이었고, 생명이었다. 한 권의 시집은 나라를 잃은 아버지의 애국심이었고, 한 줄의 시는 오늘을 사는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문학은 우리 시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를 지나 근대 민주화를 이루는 동안 문학은 우리 시대가 지었던 기쁨과 슬픔과 아픔과 감격의 표정을 기록했다. 문학은 또 다른 역사의 증거로 그렇게 우리는 문학을 통해 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모두와 공유하고 있다. 그런 문학은 기독교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시편과 잠언으로 대표되는 기독교 문학은 하나님의 복음을 이 땅에 전파하는 가장 위대한 매개체다. 한강의 기적에 비견될 정도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교회의 대부흥의 이면에도 한국 기독교 문학이 자리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윤동주로부터 시작된 문학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오늘, 시인 윤동주가 뿌린 한국 기독교 문학의 씨앗이 수많은 기독교 작가들에 의해 널리 퍼져, 하나님의 복음이 아로 새겨진 열매로 세상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창조문예’ 한국 기독교 문학의 수준은 가히 전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들의 역량은 물론이고, 그 대대적인 참여도는 일반 문학과 구분되어 한국 기독교 문학이라는 독립적 장르를 구축했다. 한국 기독교 문학의 이러한 발전이 가능했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월간 창조문예’(발행인 임만호 장로)의 등장을 빼놓을 수 없다. 흩어져 있던 기독교 문학을 체계화 시키고, 정제된 검증을 통해 이를 다시 대중들에 소개한 창조문예는 단번에 한국 기독교 문학계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교계의 신뢰와 인정을 바탕으로 기독교 작가들의 공식 등용문으로 자리하며, 기독교 문학의 지경은 엄청난 확대를 이룰 수 있었다. 올해로 22주년을 맞은 창조문예, 여전히 한국 기독교 문학계를 대표하는 창조문예의 성공과 발전 뒤에는 발행인 임만호 장로의 노력과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임 장로 본인 역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시인으로서 “하나님의 복음 위에서 기독교 작가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창간했다는 창조문예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짙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고 있다. 창조문예, IMF로 폐간 위기 겪기도 “오늘도 시리도록/ 차가운 거리에서/ 순례자는 방황하는 어린 양 한 마리/ 어둠으로 고요한 지금/ 당신의 체온을 느끼며/ 영혼의 쉬임은/ 안식의 호흡으로/ 저녁의 커튼을 드리웁니다” -임만호 ‘안식의 호흡’ 중- 창조문예가 지난 22년을 이어오는 동안 배출한 작가는 무려 307명이다. 경제적 위기에 가장 예민한 출판계에서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266호를 발행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고 하나님의 축복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녹녹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난 1997년 한국교회에 제대로 된 문학 정론지가 없던 시절 창조문예의 창간은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모두가 뜯어 말렸고, 그 역시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은사인 김신철 선생(아동문학가)의 명령(?) 섞인 권유와 박종구 목사(월간목회 발행인)의 적극적인 추천을 물리치지 못한 임 장로는 결국 우려 반, 기대 반으로 창조문예를 창간하게 된다. 그러나 우려가 현실로 변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서가 아니었다. 창간 1년 후 터진 IMF는 생존마저 위협했다. 그나마 운영의 기반이 되어줬던 크리스챤 서적조차 위태한 지경이었고, 결국 창간 1년 만에 폐간을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크리스챤 서적에서 출간했던 ‘반주 주석 성경 세트(35권)’에 대한 대량 구매가 이뤄진 것이다. IMF 위기로 사람들의 문화 지출이 극도로 축소된 상황에서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임 장로는 “이는 정말 기적이자, 하나님의 은혜였다. 주석 성경과 출판에 대한 노하우가 빛을 발하기도 했지만, IMF라는 괴물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면서 “이를 통해 창조문예는 결국 폐간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나님이 창조문예를 주관하셨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자리를 잡지는 못했다. 여전히 주변에서는 기독교 문학 잡지에 대한 성공을 의심했다. 창간 초기에는 잡지에 실을 작품 수급조차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발생하는 손해는 어쩌면 당연했다. 사실 임 장로는 예나 지금이나 적자가 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고 전했다. 임 장로는 창조문예를 운영하는데 있어 재정에 연연하지 않았다. 적자를 극복하기 보다는 그저 감내했다. 사업하는 사람에 있어 적자를 감내한다는 것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한 힘든 일이지만, 임 장로는 이를 사명으로 버텨냈다. 창조문예가 이대로 문을 닫는다면 이제야 자리잡고 있는 기독교 문학계의 후퇴는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버텨내면 시간이 지나자 창조문예는 그의 바람대로 기독교 작가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었다.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권위 있는 등용문이 되었다. 임 장로는 “나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사실 사업적인 부분만 따진다면 창조문예를 결코 성공했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창조문예는 지금 모든 기독교 문학인들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의 공간으로 성장해 왔다. 이는 경영학으로 결코 평가할 수 없는 너무도 소중한 가치다”면서 “특히 307명이라는 기독교 작가들을 배출했다는 것은 창조문예에 있어 가장 큰 성과이자, 하나님의 축복이다”고 말했다. 기독교 문학의 저평가 “차이를 무시한 근본적 오류” “흙으로 빚었어도 흙이 아닙니다/ 당신을 닮게 하신 마음입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임만호 ‘나의 영혼’- 임만호 장로는 유독 기독교 문학에 대한 강한 긍지와 자존심을 내비쳤다. 기독교 문학이 일반 문학에 비해 한 단계 수준이 낮다는 일부의 비아냥거림에 “한국 문학의 흐름을 모르는 매우 무지한 평가”라며 매우 거세게 반응했다. 임 장로는 “지금까지 한국 현대 문학 속에서 기독교 문학을 평가하는 작업이 거의 없었다. 이는 분명 한국교회가 문학을 등한시한 결과이기에, 한국교회의 잘못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기독교 문학을 저평가 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가 있다”면서 “현대 문학에서 기독교의 기여는 매우 결정적이리만큼 상당한 수준이다”고 정정했다. 이는 130여 년 전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선 이후 의료, 교육, 경제 등 근대 발전에 있어 기독교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일반적인 상식에 더해 문학 발전에 있어서도 기독교가 근간을 이뤘다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한글 성경의 보급은 우리나라에 한글을 대중화시키는 토대가 됐고, 이는 기독교가 단순한 외래사조나 외래종교가 아닌 우리 민중의 생활 속에 용해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임 장로는 “한국 기독교 문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평가를 받고 있는 1919년 순 문예지 ‘창조’는 현대 문학 사조의 새 영역인 자연주의·사실주의 문학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 잡지의 주요 동인이었던 김동인, 전영택, 주요한 작가의 작품 속에는 기독교 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면서 “기독교 문학에 대한 근거 없는 단순한 편견을 넘어 역사적 측면에서의 연구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어필했다. 결정적으로 기독교 문학과 일반 문학 간의 근본적 차이를 지적했다. 일반 문학이 예술적 기교와 언어적 유희에 상당히 치중하는 반면 기독교 문학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복음에 있다는 점이다. 즉, 기독교 문학의 근본적 목표는 복음의 전달로, 결코 이를 일반 문학의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임 장로는 “기독교 문학의 근간이자, 정수라고 평가받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그 중에서도 잠언과 시편은 감히 평가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의 엄청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면서 본인 역시 성경을 시로 표현하는 여러 연구를 하고 있지만, 잠언이나 시편에는 결코 견주지 못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독교 문학의 예술적 기교가 일반 문학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코 복음을 핑계로 예술적 한계를 무마하겠다는 꼼수가 아니라, 종교라는 편견으로 작품에 대한 순수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독교 문학이라는 것이 특별히 일반 문학과 일정 선을 긋고 영역을 나눠 구분할 수 없는 점도 언급했다. 이미 기독교가 우리나라의 최대 종교로 자리하며, 일상의 문화 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학의 절대적 특징인 함축과 비유는 굳이 하나님이나 복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이도 충분히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게끔 하기에 기독교 문학을 특정 영역에 한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오류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두고 임 장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윤동주의 작품을 기독교 문학과 일반 문학으로 구분할 수 있는가?”라며 “그의 작품은 종교를 넘어 모두가 사랑하며, 그 수준 또한 최고로 인정받지만, 그는 분명한 기독교 문학가였다”고 덧붙였다. 달팽이의 꿈 ‘창조문예 문학학교’ “달팽이는 두 뿔로 꿈을 꾼다/ 흙으로 여민 가슴 내밀고/ 축복으로 내려오는 빗살 속에/ 달팽이는 경건한 기도로/ 세미한 음성을 들으며/ 두 뿔로 꿈을 꾼다” -임만호 ‘꿈꾸는 달팽이’ 중- 기독교 문학을 체계화 시킨 임만호 장로의 또 다른 목표는 바로 교육이다.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문학 교육을 통해 기독교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서울 강남에 위치한 창조문예 사옥 지하에 마련한 공부방을 통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임 장로는 추후 ‘창조문예 문학학교(가칭)’를 시작해, 후진 양성 뿐 아니라 기독교 문학의 이론적 정립과 연구를 병행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창조문예 문학학교’라는 임 장로의 도전은 창조문예라는 기반이 있기에 충분한 실현 가능성이 있다. 매년 창조문예를 통해 등단하는 신진 작가들에 정규 교육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장로는 “등단이라는 개념은 작가로서 무르익거나 완성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 첫발을 내딛었다는 걸음마의 상징이다. 당연히 등단 이후에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면서 “그동안 한국교회에는 문학 교육에 대한 정규적인 커리큘럼이 없었다. 이를 학교를 통해 정립할 수 있다면 기독교 문학의 상당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고 기대했다. 여기에 현재 한국교회 위기의 결과로 나타난 주일학교의 위축에 있어, 문학을 통해 이를 타개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주일학교 어린이나, 중·고등부 청소년들이 문학을 통해 쉽게 성경의 메시지를 접하며, 교회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임 장로는 “문학은 작가 스스로에 만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더구나 기독교 문학은 복음을 담고 있다. 복음을 널리 퍼져 나갈 때 그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다”면서 “한국교회의 위기 극복에 있어 문학계가 담당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언제든 최선을 다해 협력할 것이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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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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