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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 실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배성이다. 이 사회 속에서 사는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직화 시키고 있는 모든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부패 요소를 개혁해야 할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이 삶을 헌신적으로 받아 수용하고 믿음으로 이를 승화시켜 가야 한다. 비인간화 하고 하나님을 우상의 대상으로 전락 시키는 어떠한 인간의 법이나 제도에 대해 이를 변화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으로 자기의 삶을 마감한 나사렛 예수,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침묵하시면서 자기의 존재가 하나님의 아들이심도 중요하지만 십자가의 도를 깨우치는 믿음으로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떻게 사는 삶인지를 십자가를 지신 그의 삶을 제시하신다. 그리스도교의 표시인 십자가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표시는 십자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십자가와 교회를 동시적으로 연상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물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어놓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와 죽음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극복해야 하는 고통을 뜻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맞고 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겪으신 수난과 부활을 기억하기 위하여 부활절 전 40일간 경건하게 지내는 기간이다. 사순절의 시작을 알리는 교회력의 절기를 말한다. 재(Ash)의 수요일(Ash Wednesday)에 그리스도인들은 재(ash)를 이마에 바르고 죄를 고백하여 그리스도의 수난을 40일간 묵상하는 사순절 의미를 생각한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부활절을 앞두고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내어 주신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식을 준비하면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금식을 행한 것으로 부터 유래하였다.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기 위해 유월절 전에 금식을 행했는데, 초대교회 성도들은 신앙의 성장과 회개를 통한 영적 준비라는 차원에서 구약의 유월절 만찬을 새롭게 해석하여, 주님께서 제공하신 성찬식에 앞서 금식을 행 했던 것이다. 수난주간을 포함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수난 당하신 사건에 담긴 구속사적 의의를 살펴보면서 회개하고, 각성하며 절제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바로 사순절이다. 오늘 본문에서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저희의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저희의 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을 인하여 옥에 갇힌 자를 놓고 예수를 넘겨주어 저희 뜻대로 하게 하니라.”또한 성서에서 십자가의 이미지는 수난과 어떤 경우에는 순교로 이어지는 사도의 신분의 표시였다(눅9:23).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성서에서 십자가의 이미지는 수난과 어떤 경우에는 순교로 이어지는 사도의 신분의 표시였다.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이것을 십자가에 대한 매일의 결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십자가를 지다”는 표현은 십자가에 못 박힐 자가 가로 지른 나무를 지고 처형 장소까지 가는 보통의 처형 습관을 상기시킨다. 그러한 요구는 예수를 따르는 자는 누구든지 수난 받을 것과 십자가에 못 박힐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을 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수난과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말씀을 믿게 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헌신의 귀감이 되어야 함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이사야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는 이러한 수난을 당하시면서도 예수께서는 털 깎는 자 앞에서 양과 같이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않으셨다. 이 점을 수난주간에 은혜로 감사하는 기간이 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성령께서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역사를 행하는 것은 그 믿음이 빚진 자의 입장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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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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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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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6
- 1960년대에 형들이 신문에 난 한 고등 학생의 주검을 보고 분노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때의 정황을 들여다 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분노한 마산의 학생?시민들은 부정 선거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습니다. 경찰이 폭력으로 탄압하자 잘 조직되지 못한 시위는 곧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러나 4월 11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당시 마산 상고 1년, 17세)의 시체가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민중의 분노는 다시 폭발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마산 시위를 “공산당이 들어와 뒤에서 조종한 혐의가 있다”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의 저항이 누그러들지 않자 이승만 정권은 정치 깡패를 동원하여 4월 18일 평화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는 고려대 학생들을 구타하였습니다. 그러나 항쟁은 전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전 날의 테러에 분노한 서울의 학생·시민들은 광화문 일대를 가득 메웠고, 분노한 시민들은 마침내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몰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경찰은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피의 화요일’을 만들었습니다. 그 뒤 항쟁은 부정 선거 반대를 넘어 이승만 퇴진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이 혁명은 학생과 시민 들이 광복 후 한국 사회에 쌓여온 모순에 맞서 싸운 것이기 때문에 독재 정권의 타도에 그치지 않고 민주?자주 운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어릴 적 보았던 형들의 분노를 돌이켜 보면 나는 개인에게도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에게는 불의에 저항하는 양심이 있는 것이지요. 그 양심은 언제나 인간 심리에 놓여 있다가 진리에 어긋난다 싶으면 가차없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지요. 내가 직장을 처음 잡았던 80년대 초에 옆 자리에 있던 동료인 E가 갑자기 짐을 싸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다른 직장으로 옮기게 되었냐고 E에게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수그린 채 “개인 사정 때문”이라는 짤막한 말만 남긴 채 떠나갔습니다. 몇 개월 후 나는 그가 직장을 떠난 것이 자의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군부 권력이 정권을 잡고 있을 무렵에 그는 회식이 끝나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당시 정권의 위선을 비판하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었던 운전수가 모범 운전사 자격이 되는 상점을 받기 위해 그대로 S경찰서에 신고하는 바람에, E는 그만 안정된 직장을 잃고 말았던 것이지요. 물론 E의 술주정이 섞이긴 했겠지요. 그러나 사석에서 말한 것까지 통제를 하는 권력을 보고 나는 개인에게도 힘이 있어야겠다는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힘 가운데 하나가 불의에 저항하는 양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진 남북 투쟁 시대에 유다 왕국의 아사왕 이야기는 나의 양심을 일깨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비야의 아들인 아사왕은 41년간 유다 왕국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한때 그의 어머니의 우상 숭배를 꾸짖고 아세라의 가증한 우상들을 찍어 불사를 정도로,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는 58만 명의 군대로 100만 명의 세라 군대를 물리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전략을 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 전략이란 이스라엘의 바아사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의 성전으로 예배 드리러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국경에 라마성을 건축하려 하자, 이스라엘 후방에 있는 아람왕에게 뇌물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공격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 전략의 성공으로 아사왕은 라마성에 있던 건축 재료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나라에 게바와 미스바 두 성을 건축하였습니다(<역대하> 16:6). 이는 외교 정책으로 보면 아주 멋진 세상 지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 하나니가 아사왕을 찾아가 책망합니다. 하나니의 책망은 이렇습니다. 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아서 이스라엘의 바아사를 이기고 다메섹까지 영토를 넓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이를 보면 세상 지혜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의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세계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이것 또한 개인에게도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의 진리가 있습니다. 외딴 섬의 기암 절벽에서 자라나는 풍란의 기氣가 있는가 하면, 시멘트 바닥의 틈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꽃이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가 있는가 하면, 개로 태어난 동물도 있습니다. 연안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있는가 하면, 심해에서만 사는 물고기도 있습니다. 존재나 사물마다 살아가는 이치가 있는 게지요.이 가운데서 인간이 살 맛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정情이 진리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정이 지구 곳곳에 듬뿍 자라 누구나 행복을 누리는 삶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시골에 가면 평상에 앉아 나그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노인의 정, 직장 생활의 노고를 위로해 주는 직장 동료의 정, 아름다운 세계를 가꾸어 나가는 작가의 정들이 만나 평화로운 세상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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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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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 - 김영실
-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나,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는 것 한가진들 실어 안오리, 남촌서 남풍불제 나는 좋다나”아름다운 가사를 실은 이 노래는 민요처럼 부르면 민요같고, 가곡같이 부르면 명곡같다. 천천히 슬픈 마음으로 부르면 단조같고, 빠르고 즐겁게 부르면 장조다. 지금은 천국에 계시지만, 평소 음악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께서 나의 어린 시절 불러주셨던 노래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가요, 교육자가 되었다. 역사 내내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지냈던 우리네의 노래는 거의 슬픈 단조가 많지만,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추운 겨울을 이겨낸 기쁨이기에 즐겁고 명랑한 멜로디로 노래한다. 봄이 오면, 나는 다른 여러 개의 봄노래와 함께, 아직도 귓가에 들려오는 아버지 목소리의 ‘남촌’을 즐겨 부른다. 봄에는 봄노래를, 가을이 되면 가을 노래를, 노을을 노래하고, 파란 하늘에 대한 멜로디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인생길은 본인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행복을 선물한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꽃피는 사월이 되었다. 부모가 먼저 찬송과 기쁜 노래를 집안에서 항상 부르고 생활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행복하게 자란다. 아침에는 기독교 방송에서 나오는 찬송가를 같이 따라 부르던지, KBS FM 93.1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을 틀어 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자존감’과 ‘자존심’은 말이 비슷하지만 뜻은 전혀 다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자신을 존 귀히 여길 줄 알며, 이웃과 친구들에게서 깊은 배려를 보인다. 이런 자녀로 키우려면, 먼저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때에 맞는 칭찬이 절실히 필요하다. 또한 아이가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한두 개 잘 다룰 줄 안다면, 그는 평생을 높은 자존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아이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부모는 아기때부터 아이가 원하는 활동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면, 혼자서 밥먹기, 혼자 목욕하기, 설거지나 청소, 자동차 세차 돕기등... 아이가 원할 때 배려하며 같이 일을 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간혹 예쁜 옷을 버린다고 못하게 하는 분들을 만나는데, 아이의 뇌발달과 높은 자존감을 위해서는 조금 더 부지런히 세탁기 뚜껑을 열라고 나는 조언하고 싶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하나는, 사람의 별명을 동물로 비교하여 부르는 것이다. 아들의 턱이 뾰족하다고 아들을 ‘메뚜기’라고 별명지어 부르거나, 식사를 잘한다고 ‘돼지’라고 부르는 것 등은 삼가야 한다. 아이의 외모가 생긴 그대로 하나님의 작품이며, 준수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부모님의 목소리로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자존감이 높아야 누가 나의 외모를 보고 놀리고 괴롭히고 왕따를 시켜도 너끈히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내가 아는 성악가 중에 한분은, 키가 무척 작지만 어려서부터 항상 웃고 다녔다. 그분이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엔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 배가 고파 울면 어머니가 품에 안고 “아들아, 너는 하늘이 낸 선물이야!”라는 말씀을 음식대신 먹여 주셨단다. “키가 작으면 어떻고 얼굴이 검으면 어때? 넌 하늘이 낸 선물인데...” 어머니의 배려있는 말씀 덕분에, 그분은 현재는 미국에서 쥴리아드 음악원을 1등으로 졸업하고 음대 교수로도 재직하며 백악관을 드나들며 공연하고 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대인 관계가 원만할 수 없는데,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주로 많이 생각하게 되므로, 나를 존귀하게 생각하고 내면을 키우기 보다는, 남의 시선에만 치중하다보니, 주로 보이는 외모만을 가꾸는데 돈과 시간을 허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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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과 ‘자존심’의 차이 - 김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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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7
- 최근에 가장 관심을 집중시킨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을 보면서, 인간의 지성과 감성이 집단화 되어서 시스템적인 지성을 효율적으로 융합 시키면, 알파고를 이길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인공지능은 감정이 없고, 우리 인간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 일이 없어서, 내적치유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없기에, 아무래도 기계와 인간이 총체적으로 대결한다면 기계가 한수 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는다. 몇 해 전부터 반려 견을 키우는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에서, 동물들이 그들을 돌보는 주인으로부터, 일방적인 돌봄을 받다가 갑작스레 소외와 방치, 심지어는 학대와 버림을 받음으로 인해서, 신뢰와 희망을 잃은 유기견이 된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데 이 상처받은 짐승들에게 관심을 가진 한 방송사가 이웃나라의 한 동물심리사를 초청해서, 대략 30분 정도에 짐승과의 소통이 이뤄지면 즉각 상처가 치유되어서, 다시 건강하게 회복되어 장애 없이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물들 거의가 30분 정도면 시원하게 회복되는 것이었다.그런데 이와는 달리, 우리 인간 사회는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다. 내적 치유가 쉽게 이뤄지질 않는다. 세계에서 사회적 갈등의 골이 가장 깊고,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치러짐으로 인해서, 국가 경쟁력마저 바닥을 칠 정도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난 4년간 국회가 운영되어지는 것을 보니,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이렇게 국민을 두려워하질 아니하고 제 임무와 업무에 태만한 자들을 또다시 선출해야 하는 것인가? 형편이 이렇다보니 국민들 피로도가 너무 높다. 국가가 위기에 노출되었을 경우 시간을 놓치지 않고 다시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이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예수께서 가르치신 말씀 가운데에, 심판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사회적인 기강을 바로 잡고, 국가 정의를 바로하기 위해서 법률심판관이 있기 마련인데, 신화에서도 보면 제우스가 들고 있는 막대기가 오늘의 계량기의 일종이다. 사람마다 죽어서 그 심판대 앞에서 계측을 받게 되는데, 성경에서는 저마다 그의 인격 내면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 기록된 영상과 녹음들이 낱낱이 심판 주 앞에서 자동으로 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태의 복음서에서는 계측기에 미달된 저들을 보내는 영원한 불 못이 등장한다. 이 불 못은 본래 마귀들을 위해서 준비된 것인데, 오히려 사람들이 그 불 못에 마귀들과 함께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마귀가 어떤 자 이기에, 저들을 위해서 특별하게 불 못을 만들어야 했을까?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였기에 악마가 들어갈 불 못에 함께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마귀가 재판 받는 날에 저들도 함께 판결을 받는다고 하는 것을 보아서, 마귀나 사람이나 모두 그 근본이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귀라는 자는, 천사들이 낮 동안에 밭에다가 부지런히 좋은 씨를 뿌리면, 저들은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나쁜 씨를 뿌려서, 좋은 성과가 불가하도록 악순환 시킨다는 것이었다. 항상 거짓말과 속임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조금 고상한 말로 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란 것이다.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선거유세 중에, ‘아벨은 나의 이웃입니다. 나는 아벨을 지키는 자입니다.’ 라 하였는데, 이와는 달리 지식을 갖추었다는 어떤 나라는 군사력을 확대하여 이웃국가를 위협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시민들 모두가 그들의 거짓말을 신뢰하도록 고차원으로 연구해서, 정치인들에게 과외수업을 시킨다는 말들이 빈말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묵시 문학을 보면, 가장 원리적인 가르침을 시민들에게 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종교지도자나 책임 있는 자들이 메시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요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지혜로운 식별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고, 이미 자신에게 정직한자는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때문이리라. 잠자는 자에게는 그 날이 도둑의 것이 되겠지만, 항상 그 마음이 깨어있는 자에게는 깊은 밤이라 할지라도 등불을 밝히고 기름도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밤이라 할지라도 밤이 아니며, 재앙이 저를 삼킬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이미 삼중고를 짊어진 상태에 있다. 머리에는 핵을 이고 있고, 국가를 방위할 능력은 남에게 담보한 상태이고, 더더욱 처량한 것은 거짓말하는 무책임한 자들에게 둘러 쌓여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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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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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42회 총회장 전필순(全弼淳)목사
- 경기 용인 출신전필순(全弼淳 1897.4.7~1977.2.14)) 목사는 경기도 용인시 외사면 석천리 농촌에서 전규식(全圭植)의 5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호는 일우(一愚)이다. 하나님 앞에 한 어리석은 인생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어렷을 적에는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정평리교회 교인 심문택(沈文澤)이 세운 봉양학교(鳳暘學校)를 1912년에 졸업하고 가까이에 있는 실업학교(實業學校)로 진학, 1년간 잠업(蠶業)과 축산(畜産)에 관한 기술을 익혔다. 이 무렵 경성(京城) 연동교회에서 내려와 열심으로 전도하던 원세성, 박용희 등에게 전도를 받아 장평리교회 교인이 되었고, 1914년 당시 순회선교사였던 톰스(Rev.U. Selwys, Toms·都瑞元)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정식으로 기독교에 입신하였다.1919년 경성으로 올라와 중앙기독교청년회(YMCA) 소년부 간사로 있으면서 사립 아현보통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고 봉사하다가 나중엔 학감(學監)이 되기도 하였다. 1918년에는 대영성서공회(大英聖書公會) 서기로 근무하였고, 1919년 1월부터는 연동교회 원세성(元世性)의 추천으로 연동교회 조사(助師)로 부임 11월까지 거의 한 해동안 사역하였다. 당시 3.1독립운동의 주역들이었던 함태영, 이상재, 박용희, 김마리아 등 연동교회 교인들의 연락을 취하는 책임을 맡았고, 3.1운동 후에도 독립탄원서를 미국 영사관에 보내는 한편, 민족대표 33인들의 석방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렸으며, 상해에 있는 임시정부로 연락을 취하면서 계속적으로 민족독립운동을 추진해갔다. 이 일로 인해 그해 11월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1년형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 옥살이를 하기도 하였다.민족독립운동으로 1년간 옥살이1921년 5월 출옥 후 일본으로 건너가 고베신학교(神戶神學校)에 입학해 학업을 이수하고 1926년에 졸업하였다. 1926년 4월부터 연동교회 조사(Helper)로 있으면서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가서 교단 헌법에 따라 1개월간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1927년 6월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목사안수를 받은 후 묘동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광화문에 위치하고 있는 피어선성경학교(현 평택대학교 전신)에 강사로 출강했다. 1927년 일본에서 종교단체(통합)법안이 일본제국의회에 제출되자 장로교회 대표로 일본을 방문해 종교단체법안 제정 반대운동을 벌 이기도 하였다.문서선교기관인 ‘기독창문사’창설한때는 윤근(尹槿) 등과 함께 의논하고 조선예수교청년회 전국연합회를 구성, 전국을 순회하며 전도강연회를 펼치기도 하였고, 윤치호, 이상재, 박승봉, 유성준, 박용희 등과 함께 순수기독교 문서선교 사업기구인 기독교창문사(基督敎彰文社) 창설에 참여하기도 했다. 기독교창문사는 선교사들이 초교파적으로 세운 조선야소교서회(C.L.S)와는 달리 조선인에 의해 설립된 출판사였다. 이 출판사의 대표적인 출판물 가운데는 일제 당국에 의해 출판이 보류되고 있었던 조선야소교장로회 사기(朝鮮예수敎長老會史記)를 출판하였고, 또 당시 성경번역위원회 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연동교회 담임목사였던 카나다 출신 선교사 제임스 게일의 사역(私譯) 성경전서를 출판했던 것이다. 이 게일의 사역성경전서는 당시 한학에 능했던 이원모(李元模)의 도움으로 직역이 아닌 의역(意譯)을 추구한 한국 성경번역사적으로도 의미있는 출판물이었다. 이렇게 볼때 기독교문화사적으로나 출판사적인 의미에서 보다라도 기독교창문사를 설립한 것은 이 게일의 사역성경을 선교사들의 공동성경번역위원회 회원 전체가 인정하지 않은 관계로 당시의 대영성서공회의 출판에 막히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윤치호씨의 도움으로 게일의 사역성경을 기독교창문사 이름으로 출간되기에 이른 것이다. 묘동교회 사임 후 기독신보 기자 활동전필순 목사는 묘동교회를 사임한 후에는 기독신보(基督新報)에 기자로 입사해 사장에 이르렀고, 1933년에는 YMCA 이사, 피어선고등성경학원 이사장 겸 원장을 역임하였다. 1935년에 수송교회에 부임해 다시 목회사역을 감당했으며, 기독교사회복지 기구인 태화여자관 이사와 1937년엔 자기가 몸담아 일했던 기독신보 이사를 맡아 봉사하기도 했다(연동교회 100년사 고춘섭편저 금영문화사 1995, 서울 p.300-305, 기독교대백과사전 제13권 한영제 편, 기독교문사 1995. 5판 pp.824-825 참고).전필순 목사는 민족적인 수난 역사 한 가운데서 민족과 함께 목자로서 지도자로서 괴로운 순간이 많았던 것이다. 1937년 7월 일본이 만주땅을 항해 소위 중일전쟁을 일으키게 되자 이를 지지 찬양하는 편에 본의 아니게 서게 된다. 당시의 언론매체 매일신보(每日新報) 7월 25일자 호외(戶外)에 ‘太陽은 蒼空에 높이 떳다’라는 제목의 그의 글이 실린 것이다. 그 달 26일 종로 YMCA청년회관에서 개최된 각 종교단체 연합시국 강연회에서 같은 제목으로 감리교회 양주삼 목사와 함께 기독교계를 대표하여 강연했다. 친일 활동에 가담1938년 8월 윤치호 김우현 등과 함게 중앙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주최한 기독교애국 좌담회에도 참석했다. 1939년 9월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연맹 평의원(平議員)에 선임되었고, 같은 해 12월 남대문교회(南大門敎會)에서 경성노회지맹(京城老會支盟)을 결성할 때에는 노회장으로서 이사장직을 맡았다. 이른바 친일행위의 현장에 몸을 내던지고 말았다. 일본록기연맹에서 간행하는 <록기(綠期)> 1937년 11월호에 “日本의 진정한 적은 어디에 있는가?”란 글에서 일본이 막대한 물자와 고귀한 피를 흘리는 이유는 팔굉일우(八紘一宇)의 대성업(大聖業)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 대업을 이루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가 적(敵)이라고 하였다. 1941년 4월 연동교회로 재차 부임 목회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경성노회 노회장으로서 총회부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1941년 12월 미영타도좌담회(米英打倒座談會)에도 참석했다.그는 또 1942년 시국강연회 연사로도 활동했고, 같은 해 2월 갈홍기, 심명섭 등과 함께 “국민문학(國民文學)”에서 주관하는 반도기독교의 개혁을 말한다는 좌담회에 참석했다. 같은해 4월 조선기독교연합회(朝鮮基督敎聯合會) 부위원장을 맡았다. 9월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에서 일본기독교단 통리(統里) 도미타(富田蒲)의 래방을 계기로 기독교의 일본화의 급무라는 주제로 조선호텔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했다. 같은 달 조선장로교회 헌납 해군기 명명식에 동참하기도 했다. 1942년 11월 국민총력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연맹 주최로 조선신궁(朝鮮神宮)에서 개최된 황군환자용 자동차 3대 헌납식에 정인과(鄭仁果), 김응순(金應珣) 등과 함께 참여했다. 같은 달 안국동교회(安國洞敎會)에서 경성노회와 경기노회가 합동해 경기노회를 조직하고 노회장에 선임되었으며 국립총력경기노회연맹을 맡으며 친일행각을 계속하였다.연동교회 목사로 재차 부임해방 후에도 계속 연동교회를 맡아 사역했다. 1949년 3월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고 4월 불구속으로 석방되었다. 그해 8월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 나왔다. 1953년 총회신학교 이사와 연세대학교 이사를 역임했고, 1957년 9월 19일에서 24일 부산중앙교회에서 개최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42회 총회장으로 당선되어 그동안 일제 하에서 피치못할 정세 아래에서 죽지못해 친일했던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통열하게 뉘우치며 회개하였다. 애석하게도 전필순 목사는 1959년 9월 대전에서 모인(중앙교회) 제44회 총회가 정회된 후 당시 에큐메니칼 신학을 지지했던 측이 서울에 올라와 전필순 목사가 시무하던 연동교회에 총회 속회를 하는데 동조함으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가 탄생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되었다. 그가 이끌었던 당시 총회 결의안의 중요한 안건을 보면 ① 당시 동구권의 항가리 의거에 의연금을 보내기로 결의하였으며, ② 국제선교협력 모임었던 IMC대회에 한국대표로 한경직 목사와 유호준 목사를 파송하기로 하다. ③ 외국 선교부는 해체하고 협동사업부를 두기로 하다 ④ 교회안 강단 전면에 십자가를 부착하지 않기로 가결하다. 전필순 목사는 1961년 6월 그가 섬기던 연동교회 원로목사로 추대와 동시 명예로운 은퇴를 하였다. 1963년 연세대학교에서는 그의 사역의 공로를 인정, 명예신학박사(D.D) 학위를 수여했으며, 1977년 2월 14일 주님의 품으로 영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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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제42회 총회장 전필순(全弼淳)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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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부활신앙
- 그리스도교에서는 죽음을 해석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극복해야 할 문제로 이해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멸절하는 비존재, 허무의 권세로서 인간의 삶에 대결해 있다. 어떻게 이 죽음의 권세에서 희망을 가질 것인가? 어떻게 죽음을 정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그리스도교는 삶과 죽음의 구원자인 하늘과 땅의 창조자요 지배자이신 하나님이 이 죽음을 어떻게 하시는가?를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이를 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성서가 보여주는 하나님의 고난을 알아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죽음으로 내어주신 아가페 사랑인 인간을 위한 죄인으로 대신하여 죄인이 되셨고 죄인의 선고를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십자가를 지셨다. 여기서 인간은 모두가 인간의 심판과 죄는 물러가고 인간은 믿음으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인간은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한다.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을 이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신앙으로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에게는 부활이 약속된다. 그는 죽음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의 약속으로 들어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그리스도와 같이 죽으면 또한 그와 같이 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독일의 성서신학자 오스카 쿨만은 그리스도교의 죽음에 대하여 영혼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을 말하면서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예수의 죽음을 비교하는 가운데 플라톤이 주장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아름다운 죽음이라 한다. 이러한 논리로 삶은 영혼의 죽음이 되고 죽음은 더 높은 삶으로 비약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요 육신으로 부터 분리된 영혼은 죽지 않고 파멸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즉 이원론의 입장이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죽음에 대한 태도를 눈물로서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는 하나님께 기도와 간구로 요청하신 점을 알게 한다. 그는 죽음에 직면하여 우시고 부르짖는다. ‘이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소서!’ 하지만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당신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신다. 비존재(Non-being)에서 왔다가 무(Nothing)로 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우리가 비존재의 시간은 아버지, 아들, 성령의 내적 삶의 시간과 그의 목적적 뜻의 시간인 것이다. 사람의 시간과 탄생은 하나님과 땅과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의 순리로 신앙하게 한다. 사람은 유한하고 죽는다. 이러한 인간을 하나님은 그의 참된 교제하는 상관자로 선택하심을 알게 하신다.예수의 부활체를 영적으로 해석하려는 일체의 입장은 성서의 가르침과는 반대된다. 무엇보다도 제자들이 얼굴과 음성으로 예수를 알아보았다고 했다. 더욱이 몇몇은 그의 몸울 만져 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제자들의 목전에서 먹었고 또 같이 식사를 나누었다. 여기에 예수는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영은 나와 같이 살과 뼈가 없느니라고 하신다. 여기에 도마는 상처 자국을 만져보고 확인을 하자고 까지 했다. 사람의 몸을 지닌 그리스도가 무소부재하게 되었다면 그의 참 인간성은 소멸되고 승천도 실재 사건이 되지 못함을 여기서 확실히 하고 싶다. 예수의 몸은 살과 뼈를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는 영화롭게 된 조건 속에 있었으며 시간과 공간의 법칙에 무관하게 활동할 수 있었음을 알게 한다. 여기에서 바울은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영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의 부활체의 형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영적이라는 말은 언제나 성령의 통제를 받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영체란 하나님의 영이 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는 몸을 의미한다. 우리는 유한된 존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된다. 영광스러운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가장 놀라운 표현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것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할로서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더불어 죽음에서 일어나야 한다. 죄의 짐이 없는 생명세계로 돌입하여 자유와 영광으로 하나님의 부활체의 몸으로 살아야 한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죽음과 삶의 분리를 떠나 부활의 증인이 되고 생명을 지속하는 삶에 부활신앙이 되는 믿음을 회복하는 “부활절”로 지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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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칼럼
- 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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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서 부활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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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십자가의 길
-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가지려 한다. 이는 구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삶에 의미를 가지려 한다. 삶이 힘이 들고 무기력 해 질 때 늘 자신에게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묻는다. 이는 여기에서 세상사는 힘이 이 때에 나오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신학에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의 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말하면서 동시에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이다. 오늘의 본문이 말하듯이 그것은 대속(代贖) )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이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는 것이요 구약에서도 희생제물을 통한 속죄하심을 볼 수 있지만 예수의 사역에서는 중심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그가 믿는 도리를 십자가의 도리를 '십자가의 말씀'이라 한다(고전1:18).예수께서 받으신 고난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 되었을 때 정치적인 사건으로 처리되었지만 이는 자기의 목숨을 온 세상을 위한 희생의 제물로 드리우게 된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에 가로놓인 죄를 용서하심이요 사랑의 증거요 화해의 역사라는 것으로 구원의 반열에 앉게 하심임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교의 복음은 가로막힌 사이의 관계를 십자가로 화해로 구원에 이르게 함을 믿게 한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가이샤라 빌립보 지방을 지나가게 될 때에 세상 여론이 예수 자신을 누구라 하더냐? 하는 물음에 제자들이 들려주는 말은 세례 요한,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하니,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시는 말씀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라는 말씀이 끝나기도 바쁘게 주님은 자기의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말씀 하시기를 “인자가 반드시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나서 사흘 후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였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다. 비로소 예수께서는 자기가 걸어가야 할 고난의 길을 열어 보이신다. 여기에 베드로의 반응은 육적인 축복으로 받은 은혜만을 생각한 정도의 고백을 하게 된다. 여기에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반응이시다. 마치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사탄의 유혹처럼 느끼는 점에 단호함을 보이신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은 무엇인가? 예수님의 고난은 이기적인 고난도 아니고 인격적 완성을 위해 수도하는 그러한 수난도 아니다. 그는 수탈당한 민중(百姓=나라의 근본)을 보고 깔보고 억누르고 있는 지배집단과 인간을 부당하게 비뚤어지게 하는 기존의 사탄 세력에 고난을 당한 이의 형편을 돕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예수님이 당한 수모와 고난과 핍박과 죽음을 피하려 해서는 아니 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사랑의 모습이 십자가의 고난에 숨겨져 있다. 높으신 하나님이 자기를 십자가의 모욕과 고통으로 사랑의 낮은 자리로 옮기심을 보게 한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랑을 완성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일어 난 구원의 사건임을 알게 한다.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이 하늘 공간에 계신다는 것으로가 아니라 역사의 미래에 계시면서 현재의 삶에서 나타내 보이시는 성령의 능력 가운데서 역사의 현재 속으로 바로 지금 오시고 이 삶의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것을 믿게 하는 것이다. “사탄아! 물러가라!”는 주님의 준엄한 말씀과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사람이 삶을 영위하며 살아가는데 삶 속에서 감정과 이성이 늘 따른다. 여기에 그 삶이 순간적인 감정에 휘말리기보다 이성적인 생각으로 선택의 요구를 하게 되는 일을 여기서 경험하게 된다. 예컨대 이것이 이치에 맞는 행동일까? 하는 삶의 물음에 놓이게 된다. 이때 이는 본질적인가? 이치에 맞는 행동인가? 하는 물음으로 스스로 마음을 비우는 선택으로 자기를 부정하는 과정에서 마음을 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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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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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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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15회 총회장 김석창(金錫昌)목사
- 평북 철산 출신김석창(金錫昌, 1876-1950) 목사는 평안북도 철산(鐵山)에서 태어났다. 어렸을때 마을에서 운영하는 한문사숙(漢文私塾)에서 천자문을 습득하였다. 당시의 천자문 교육은 모든 향교와 개인사숙에서 밥벌이를 위해 학교 기초교육으로 문자를 암기식으로만 가르치는 교재가 아니었다. 천자문은 한 면에 8글자로 이루어진 125개의 문장으로써 이 문장을 통해 우주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깨우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문학적인 요소가 가득담긴 책이며, 논어(論語)에서 주역(周易)까지 3500년 동안의 동양철학(東洋哲學)을 총망라한 인간교육을 위한 최고의 고전입문서이다. 김석창은 어릴 때 이미 인간의 귀중함과 윤리도덕의 기초를 잘 다졌던 것이다.그는 아버지와 함께 농토를 일구어 가면서 생활하다가 고향에서 결혼한 후에 전 가족이 선천(宣川)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미 이곳 선천은 미 북장로교가 선교부 자리를 잡고 선교에 몰두하고 있었다. 청년 김석창은 때마침 선천 선교부에서 선교에 힘을 쏟고 있는 위대모(Rev. Norman C. Whitmore, 魏大模)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고 그 길로 부모들과 함께 온 가족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들은 선천읍교회에 출석하였다. 신성학교 설립해 민족지도자 양성김석창은 그때부터 위대모 선교사를 뒷바라지 하는데 온 정성을 다하였다. 이 무렵 선교부에서는 이곳 선천에도 미션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기에, 그 결과 1906년 드디어 남자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이미 이곳에는 1900년에 선천읍에 여성교육 기관인 보성여학교(普成女學校) 가 설립되어 있었다. 그때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지만, 남성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도래된 것이다. 이름하여 신성학교(新成學校)가 설립된 것이다.김석창은 신성학교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고 이 겨례를 사랑하는 민족지도자를 기르는 학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랫고, 이 일을 위해 자신도 이 학교를 위하는데 큰 몫을 감당하였다.선천선교부는 김석창의 선교열의에 감동을 받았고, 위대모(N.C. Whitmore) 선교사는 김석창에게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진학해 교회지도자가 될 것을 권유하였다.평양 장로회신학교 졸업 목회자의 길로이를 쾌히 허락한 청년조사 김석창은 곧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 열심으로 정성을 다해 학업에 임하였고 교역자로써 필요한 신앙적인 인격도야에 최선을 다한 결과 1911년 조선야소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되기 직전인 1911년 3월 제4회 평양 장로회신학교 졸업생이 되었다.평북노회에서는 그를 졸업과 동시에 선천남교회(宣川南敎會)를 개척 설립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였으며 김석창은 그해 가을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자신이 개척 설립한 선천남교회의 담임목사가 되었다. 김석창 목사는 젊은 청년시절부터 애국애족하는 마음이 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가 관계하고 있는 신성학교와 보성여학교에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전개된 1919년 3.1민족독립운동이 비밀리에 전개되고 있을 때, 김석창 목사는 신성학교 교사이면서 자기 교회 교인이었던 홍성익, 김지웅, 양준병 등과 함께 모여 의논하였다. 선천에서도 이미 신성학교와 보성여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3.1만세 시위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3.1만세운동과 선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구속드디어 선천지방에서도 3.1독립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주동자를 색출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일본 경찰 당국은 평소 사상을 의심하고 있었던 김석창 목사를 지목해 그를 구속하였고, 그와 함께 모의했던 양쪽 학교의 교사들까지 구금, 평양형무소에 수감하였다. 이듬해 1920년 4월에는 신성학교 출신인 박치의에 의해 선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에도 일제당국은 김석창 목사가 연계되었다며 그를 끌고가 그에게 심한 고문을 가하였다. 결국 김석창 목사는 이 일로 인해 8년간의 긴 옥고를 치루었다. 김석창 목사는 이때 받은 잔혹한 고문의 여파로 평생동안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불구의 몸으로 지날 수 밖에 없었다.선천남교회 성도들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김석창 목사를 위해 옥바라지 하는 것은 물론 그의 가족들을 지극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아 주는 일에 배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석창 목사는 그가 석방되던 해에 평북노회장에 당선되었고, 그는 이미 1919년과 1940년에 두번이나 노회장을 역임했으니, 이번에 세번째 노회장이 된 것은 지역내 교회들이 김 목사의 신앙 인격과 지도자로써 존경해 왔던 증거라 하겠다. 공산당의 피습으로 병고 얻어해방 후 1946년에는 곽산교회(郭山敎會)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도중에 괴한들에게 피습을 당해 오랫동안 병고를 겪기도 하였다. 1947년 진갑을 맞이해 함께 모인 자리에서 가족들에게 이곳에서는 공산당의 횡포로 앞으로는 신앙생활이 어려울 것을 예견하고 모두들 남쪽으로 월남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자신은 교회를 위하여 교인 한 사람이라도 남이 있으면 목자로써 끝까지 돌보아야 할 임무가 있음으로 월남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였다.6.25전쟁 중 공산군에 총살 당해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쟁 중에 북한 공산군에게 붙잡혀 총살당하였다.그가 총회장에 피선되었던 해는 1926년 9월 11일부터 17일까지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렸던 제15회 총회였다. 당시 참석한 총대로는 목사 86명, 장로 86명 선교사 36명이었다. 이때 카나다장로교 선교부가 1925년 7월 본국에서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가 연합해 카나다연합교회선교부로 개칭되었다. 이를 반대했던 카나다장로교 선교부가 조선에서 철수하였다. 그들은 일본으로 선교지를 변경해 재일조선인교회를 지원하였다. 일제 말엽에는 일본 고등계 형사들의 감시로 정상적인 목회활동은 못하였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선천남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듬해 1946년에는 성역40주년 기념표창을 받기도 하였고, 집으로 귀가 도중 공산당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으나 그들을 예수의 사랑으로(마 5:44~45) 용서해주었다.총회장 재직시 금강산수양관 설립결의196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의 애국활동을 기억하고 건국공로 훈장이 추서되었다. 그가 총회를 이끌었던 제15회 총회 결의 사항을 살펴보면 ① 강원도 금강산에 교역자 수양관을 설립하기로 하다(대지 8,000평, 석조본관 2층 건물, 기숙사 및 정원을 조성하기로 함.) ② 1928년 7월 미국에서 개최될 세계주일학교대회에 한국대표로 파송하기로 함. ③ 총회 개최일자를 9월 제1차 주일 후 금요일 하오 8시에 개회하기로 의결하다. 일제하 어려웠던 동토의 식민지 시절에 이어 1919년 3.1민족독립운동과 6.25전쟁을 겪는 와중에서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이끌어온 한국기독교선교100년사에 아름답게 한송이의 백합화가 되어 한국교회 미래의 지향점을 제시한 위대한 교회지도자로 대를 이어 향기를 발하고 있는 김석창 목사 같은 순교자적인 희생과 헌신 모범이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김석창 목사야말로 우리들의 영원한 목자장(牧者長)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목자였다고 하겠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羊)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주님께서는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요 10:16)는 말씀대로 순교를 각오한 성실하고도 진실된 참목자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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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15회 총회장 김석창(金錫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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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6
- 우리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성경에 등장하는 지도자들의 손에는 칼이 없었다는 것이다. 최근 모세가 등장하는 영화에서, 모세의 손에 칼을 쥐어주긴 하였지만, 이는 흥행을 위한 반짝 아이디어일 뿐이다. 성경을 기록하고, 가르치는 서기관들의 고집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의 손에 무기를 들리지 않게 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아주 단단한 전술적 무기 체계를 갖추게 되었는데, 이는 수천 년을 유리하며 방황한 끝에 마련된 조치라 보인다. 만약에 백성들이 좀 덜 도덕적이고 해이해 진다하더라도, 무기 시스템을 구축한 상태에서는 평화의 균형이 그렇게 심하게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장을 해제한 상태에서 백성들의 도덕성마저 결여된다면, 국가의 운명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로 치닫게 되기 때문이다.세계대전 이후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민주 정부를 수립한 국가들 중, 이스라엘이나 일본에 비교하여 보면, 우리 정부가 가장 국가방위와 안보에 취약하게 노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더더욱 시민들은 주변 정세에 민감하지도 않을뿐더러, 정치인들마저 국가 실력을 구비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종교인들의 기도행사를 더욱 의지하는 면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있던 시기에 율곡선생이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했으나, 정치적인 실리만을 챙기기에 바빴던 조정은, 당파 싸움에만 관심을 빼앗긴 나머지, 국가 방어력을 갖추는 데에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변두리 촌민의 눈에도 국가적 위기가 보이는데, 중앙의 책임 맡은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혼을 빼앗기고 있는지......, 밤이 깊어 자리에 누어도 차마 잠을 이룰 수 없으니 이 무슨 재앙인가?삼월 문턱에서 UN의 대북 제재가 결의되었는데, 이 같은 결의안은 북한에 예측 불가한 사태를 발생시킬 수 있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시점을 보면, 주변국에서 지나치게 압박을 하자, 국민의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주게 되었고, 소소한 충돌이 빈번해지더니 결국에 가서는 세계대전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하인리히 법칙이 알려 주듯이, 이미 우리에게 붉은 신호가 점등된 상태임을 알아차려야 한다.몇 가지 질문을 해 보자. 왜 우리에게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국가들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로 헌법을 수정하려는가를 생각해보라. 왜 그리 급하게 서두르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라. 더욱이 이를 부추기는 미국의 속내는 무엇인가? 더욱이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들이 있어왔는데,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이전에, 미국이 우릴 배재한 상태에서 저들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중국은 북한에 아무런 조치 없이, 우리에게는 도가 지나친 발언으로 연일 퍼부었던 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 개성 공단을 철수하고, 싸드(THAAD)를 설치하려고 하였더니, 미.중이 만나 북한제재 안을 내어 놓고, 대북 제재를 충실히 하는 듯, UN 결의까지 이뤄졌다. 이 또한 불안한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집권 시절 1991년 1월 7일 옌볜 자치주를 찾아, 옌지(延吉), 룽징(龍井) 혼춘(琿春)의 방천과 두만 강변을 둘러보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도 역시 부주석이던 2001년 8월17일부터 21일까지 4박5일 동안 옌볜을 방문했다. 이어서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15년 7월 16일 옌볜자치주를 찾았다. 왜일까? 두만강과 압록 강변에 전진 배치되어 있는 군대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할까? 혈맹이라고 항상 불러대는 북한과 전쟁을 하려는 것일까? 두만강은 혼춘을 거쳐 동해로 흘러가나, 중국은 동진하려하나 코앞에서 러시아 국경에 막혀선지 오래다. 어디 그 뿐이랴, 러시아의 항구들은 겨울에 모두 얼기 때문에 군함들이 나진선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이들 뿐일까? 일본은 항시 대륙에 진입하기 위해서 우리 땅을 호시탐탐 엿보질 않던가? 이미 북한은 누수가 시작되어서 언제 붕괴될지는 시간만 모를 뿐이다. 수많은 북한의 동포들이 남한으로 들어온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갑자기 무너졌다고 한번 가상해보자. 우리의 지난 역사에 비추어 보아서, 가장 먼저 어느 군대가 이 땅에 들어오게 될까? 70년 만에 온 한반도의 지정학적인 전략적 호재를 이웃 국가들이 놓칠 리는 만무하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민낯을 들어낸 바와 같이, 싸드(THAAD)가 배치되면 저들은 국경을 쉽게 넘어올 수 없다. 바로 싸드 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저들은 국익을 위해서 전략적 행보를 하지만, 우리는 국가 존속과 민족의 목숨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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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한 예수교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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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봄날, 새는 추락하지 않는다 - 이미옥 간사
- 새가 하늘을 날고 있는 줄 알았는데 공중에서 선회만 할 뿐 그대로 제자리다. 느닷없이 피어난 하얀 매화 꽃 내음을 맡아서일까? 새의 날갯짓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자리다. 새가 봄 멀미? 그렇다면 어지러워 땅으로 떨어지면 될 것을 애써 공중에서 머무른다. 새의 본연을 지키려는 듯 온 힘을 다해 날갯짓을 해대는 새 한 마리가 잠시 심장을 멈추게 한다.저 새의 심장도 봄이 오는 계절 앞에선 꽃 멀미에 잠시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일까? 다행히 작은 생는 하늘이 품에 받아들여 추락하지 않는다. 대신 전진하며 날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순간, 하늘에서 들려오는 메시지. “보았니? 네 모습이란다”. 언젠가부터 생명 없는 새처럼 날지 못하고, 그렇다고 추락하지도 못하고 겨우 목숨만을 잇고 가는 나의 삶의 모습이다. 분을 낼 일이 있어도 죄를 키우지 않고 스스로 자정시키는 바다처럼 어룽대며 벌겋게 달아오르다 재 한 줌 되어 영문 밖으로 버리어진 내 자화상.나의 영혼은 시편 기자의 입술을 빌려 애써 저 볼품없는 작은 새처럼 맴 맴 비상하지 못한 채 맴돌며 노래한다.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니”얼마나 살아 있는 동안 위선의 옷을 더 입을 것인가? 또한 찬양하는 삶이길 소망하며 나의 영혼은 얼마나 피흘릴 것인가? 누군가의 표현대로 생명의 90%가 증발하고 간신히 버티고 있는 늙은 나이에 비로소 생명과 사랑에 버들개지 눈뜨듯 뜨여지는 때, 하늘의 부르심. 때가 차매 “마리아야, 마리아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이 황당한 꿈 같은 일이 일어났다. 2015년 7월 5일. 그 후, 달맞이꽃빛을 한 노란 꽃잎을 마구 먹어댔다. 밤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나타나 안된다고 손을 내저으셨다. 애써 하늘의 싸인이라며 나중을 위한다며 그날을 일기에 적었다. 2015년 7월 22일.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인치듯 적었다. 마리아는 말하지 않았다. 요셉에게.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늘의 언어, 하늘의 일을. 땅의 사람이…. 그러나 안다. 하늘의 사람이면서 땅의 한 청년의 십자가의 죽음을. 그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간 것을. 이 사순절에 그래서 입안에서나마 간절한 기도로 고백하는 것이다. 그 길을 가는 것이라면 그냥 가는 것입니다, 라고. 이제 노란 꽃잎을 자신의 입술로 마구 집어넣어 먹어댄 이 땅의 여인들은 열매를 위해 씨방을 내놓고 부활의 재생의 힘을 키우며 하늘의 빛을 구할 것이다. 꽃은 열매를 위한 준비. 잎은 나무 전체를 위해 일하지만 꽃은 열매만을 위한다.다시 사순절 봄날, 새 한 마리를 통한 메시지를 묵상한다. 더 이상 한자리에 머물지 말고 그분의 역사가 펼쳐지도록 네 생명을 내놓으라. 네 죽음의 자리에서 부활의 생명이 꽃 피리니….하늘과 땅의 합일이야말로 인간이 가야 할 단 하나의 길이며 인생의 최고의 길이고 목적인 것을. 그분이 오늘도 밤낮으로 업고 안고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사랑가 불러 주신다. 사랑 사랑이야,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이야.또 경상도 어디선간 그분 향해 절규의 노래를 목청에 피나는 줄도 모르고 외쳐댄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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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봄날, 새는 추락하지 않는다 - 이미옥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