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2(목)

지난 칼럼
Home >  지난 칼럼

실시간뉴스

실시간 지난 칼럼 기사

  • 감사절 - 배성산목사
    자연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것은 믿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갖게 한다. 인간의 존재도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자연과 인간이 생존하는 것을 알게 한다. 존재하는 것은 때에 따라 변화하기에 천하만사가 기한이 있어 가을에는 철을 따라 산과 들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게 한다. 지금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서 제 자리를 지키면서 철을 따라 처한 환경에서 묵묵히 한 생명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라면서 변화하여 세월을 따른다. 그 모습은 다양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을 자아내면서 꽃과 나무들로 계곡에 처하여도 기다림과 외로움을 감당하며 생명은 그 무엇이라도 이미 그 자체로서 더 이상 아름다움의 자태를 들어내고 자연에게서 수확한 많은 영글어 가는 열매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를 알게 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11-22
  • 삶의 길은 감사 - 배성산목사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늘 정치와 권력과 돈이 있다. 정치는 방법이요 권력은 힘이요 돈은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인 돈이 있어야 에너지가 생긴다. 이 돈으로 안될 것이 없다. 그러나 사실로 이 돈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쌓은 모든 것들 까지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한다. 정치생명도 권력 생명도 사람의 생명도 이 돈에 의해서 끌려 다니고 영향을 받는다. 본능, 운명, 삶들이 결국 이런 것에 연결되어 삶의 길을 만들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르는 것에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인간의 삶이 이러한 돈과 권력이 삶의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할 삶의 길은 무엇인가? 예수는 "내가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한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고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께 나가는 여기에 인간의 삶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본래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부터 인간이 창조자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창조하는 것에는 생명이 되게 그 길을 알게 하고 이를 진리 되게 하셔서 이 삶의 길을 열어 보이신다. 삶은 세상창조하신 의도가 여기에 있기에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조자를 기쁘시게 하며 그의 거룩한 이름을 높이고 그의 행하신 일을 감사 찬양하는 일이 우리 삶의 길인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그러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것이다’(고전10:31). 또한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롬14:8)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인간 본연의 삶의 길을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살아감으로 불안과 공포가 조성되고 전쟁과 테러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즉 하늘을 가리면 삶의 그늘이 생기고 하늘을 가리지 않으면 삶의 그늘은 삶의 뒤안길로 숨는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11-14
  • 말씀과 약속 - 배성산목사
    하나님의 창조의 속성(屬性)은 사물이나 만사에 근본적으로 딸리어 있으면서 그 바탕을 이룬다. 그러므로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계시하신다. 즉 질서와 아름다움의 하나님, 정사와 권세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한다. 이것은 일반 계시이고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계시를 특별 계시라고 하는데 사람은 특별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죄용서와 영생의 약속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와 사랑의 아버지 되심을 온전히 믿도록 계시를 주신다. 여기에 말씀이 약속이 되어 하늘의 뜻을 이룬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도 약속의 관계에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은 창조자의 의도를 따라 사는 삶은 창조자의 뜻을 따르지 아니한 관계는 있을 수 없음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에덴에서 아담에게 약속을 하시고 삶을 이루게 하셨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노아의 홍수도 아브라함과의 약속도 믿음의 행로로 스타트함을 알게 한다. 이 약속의 실현이 무시되면 그 결과는 죽음이라는 결과를 얻게 됨을 성서는 일러 준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11-06
  • 가을은 생명을 알게 하는가 - 배성산목사
    사람이 늙는다는 것이나 자연이 시든다는 것은 시간이 세월을 흘러 자연의 질서를 따라 생긴다는 것을 알게 한다. 또한 나뭇잎이 낙엽이 진다는 것은 땅으로 떨어져서 그 땅에서 생명을 알게 한다. 낙엽귀근(落葉歸根)이란 말은 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생명이 본래 났거나 자랐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생명은 본연의 곳으로 가기위해 열매를 맺고 씨를 거두어 미래의 한 생명으로 가는 생명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가을에는 낙엽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생명이 땅 아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인생의 삶의 길은 가야할 곳을 알게 하고 그 길을 가게 한다. 주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신다. 이렇게 자연은 사계절의 질서인 한 해의 사철을 통해 생명의 성장 성숙이 철을 따라 움직임을 알게 한다. 이렇게 우리는 자연의 질서를 가진 가을을 통하여 인생의 삶에서 삶의 의미나 목적을 알게 한다.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돌아 가셨다'는 의미는 삶의 실제를 존재로 말하려 함을 알게 한다. 창세기 본문에서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할 것이니라'. 신약 본문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라 함은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은총과 그 사랑 안에서 하늘의 길을 알게 한다. 이는 하늘이 준 생명과 하늘에 감사할 일 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얻은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로 생명을 알게 하는 것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10-24
  • 믿음은 약속의 성취 - 배성산목사
    까?” 하박국은 “왜 당신은 불복자를 내려다만 보시고 간악한 자가 의로운 자를 삼킬 때에 잠잠히 계시나이까?” 예레미야는 “당신은 나에게 기만의 시내가 되시렵니까?” 욥은 “나는 나 생활에 이제는 싫증이 났습니다. 나는 내 불편을 마음대로 표시하겠습니다. 나는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께 말하련다. 이렇게 당신의 종이 하는 일을 압박하고 멸시하고 간악한 자의 계획을 좋게 여기시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보십니까?”예수님도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무거운 시련의 고비를 맞이할 때마다 많은 성서의 선진들도 이렇게 절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해 보면 삶을 익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모든 생명에 시련은 성장의 법칙이요, 인간의 인격은 이 세계의 폭풍우와 긴장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키일케고르는 자신의 시련과 번민 속에서 마침내 그는 필사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육체에 음식이 필요하듯 믿음에는 시련이 필요하다. 명예, 행복, 건강, 평안한 환경은 인간의 영혼을 잠들게 한다. 사람은 죽은 뒤에만 비로소 평등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이미 시련에 의해서 평등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시련에 의해 성장하며 성숙해 진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10-04
  • 성숙한 믿음의 삶 - 배성산목사
    성숙한 믿음은 그 삶이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을 같이 하여 성숙된 삶으로 그 인격이 신앙생활에 나타나야 한다. 인격은 그 사람의 품격을 말하며 윤리 면에서 도덕 행위의 주체와 심리적으로 지·정·의로 주체가 나타나야 하고 법률로서는 법률적 행위의 주체이어야 하며 사회학적으로 말하면 공동생활의 주체로서의 인격적 삶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서 품격을 이루어야 한다. 이는 한 개인으로서 독립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다는 것이 담긴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9-27
  • 믿음은 약속의 성취 - 배성산목사
    구약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약속이 담겨 있는 말씀이고 그 약속을 이스라엘 백성이 지키지 못하기에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낸 자임을 믿는 사람들과 다시 언약을 하여 이전 약속은 구약이 되고 새로운 약속은 신약이 됨을 본 히브리서는 말한다. '"그 첫 번째 언약에 결함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언약이 생길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나무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보아라. 날이 이를 것이다.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을 것이다."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의 말씀이며 믿음으로 이를 성취하신다. 또한 믿음을 사회심리학에서는 개인의 특정한 믿음이 사회관계에 대한 개인의 태도를 결정하거나, 고정 관념을 형성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성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9-13
  • 다양성 안의 일치 2 - 배성산목사
    “다양성 안의 일치”는 이 시대에 처한 오늘의 세계교회에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연합은 십자가에서 그토록 장엄하게 나타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에 대한 증거이다. 교회는 국가적, 문화적, 혹은 지역적 고립주의를 피하기 위해 가능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판단과 목적과 행동의 일치를 성취하기 위해 국적이 다른 해외신자들과 함께 섞이고 함께 봉사해야 한다. 교회는 일치된 연합으로 전 세계적인 선교에 저해 요인이 될 별도의 국수주의적 관심사를 조장시켜서는 절대적으로 안 된다. 지금 이 시대에 범세계적인 그리스도교의 일치와 협력을 지향하는 에큐메니즘 운동은 (ecumenism) 그리스도교회들의 보편성을 강조하며 당위적인 이 시대의 하나님의 선교이다. 근대의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프로테스탄트측은 1910년 에든버러 세계선교회’(Edinburgh World Missionary Conference)에서 시작, 가톨릭 측의 원칙은 1964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화되었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9-06
  • 다양성 안의 일치 1 - 배성산목사
    오늘의 시대에 에큐메니칼 운동은 “하나님이 인류의 아버지 됨과 만민이 형제 됨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선교 또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더욱 완전히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이 세계를 온전하게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교회의 분열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교회의 일치와 하나 됨은 십자가의 은총 안에서 이미 주어져 있고 이 신앙에서 하나 됨을 드러내고 가시화 하여 실현하는 교회의 일치운동임을 알게 한다. 나아가 교회의 일치는 하나님과 분열되어 있는 세상을 하나님과 일치되게 하는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분열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분열되어 신음하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일치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되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분열되어 있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 불의, 폭력, 부도덕 등의 얼굴을 하고 있는 죽음은 인간과 세계를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그리스도를 통한 일치의 길은 현재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극복한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8-23
  • 삶의 절대가치 - 배성산목사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세상을 구원하는 목적 가치가 있기에 그 죽음을 통하여 삶을 다시 사는 절대적인 가치를 기준하여 보여 주신다. 삶의 절대적인 가치는 참된 길, 참 진리, 참 생명으로 구원을 얻는 가치이기에 삶의 행로에 절대적인 가치로 믿음을 부여(賦與)하며 사는 삶으로 증거를 삼으신다. 조물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 세계의 모든 것은 창조자의 본디대로 사는 필연적인 사실이기에 이를 수용하여 절대적인 가치관을 형성해야 한다.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을 영위(營爲)하기 위해 삶의 현실을 판단하는데 두 가지 판단기준이 있다.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이다. 예를 들면 여기 꽃이 있음을 표현하는데 ‘이 꽃은 장미꽃이요'하는 사실 그대로의 판단으로 알게 하고 '이 꽃은 아름다운 꽃이요’하는 것은 가치판단을 알게 한다. 우리 인간의 사회생활은 이러한 판단에서 살아간다. 있다 없다, 좋다, 나쁘다. 이 물건은 편리하다, 불편하다. 이 행동은 옳다, 그르다. 이렇게 삶을 영위하며 살아간다.
    • 지난 칼럼
    • 배성산
    2013-07-2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