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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 - 배성산목사
- “가난한 마음”은 마음을 쓰는 태도로 사람의 마음씨(心根)를 알게 한다. 생각이나 의식 또는 정신을 외부로 부터 자극에 일어나는 기분이나 느낌을 머리로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기쁨을 같이하며 가슴열고 그와 함께 기도하는 충만한 마음이며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우리들 마음속의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죄이다. 그 죄는 하나님중심의 약속을 어기고 땅의 형편 따라 인간중심의 아집으로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죄의 그늘에 있게 됨을 안다. 이로 인해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인류의 죄 문제, 죽음의 문제, 인생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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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마음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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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 배성산목사
-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그 사람이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사느냐하는 문제는 중요하다. 여기에 많은 사람이 갖는 관점이 따른다. 인생관, 가치관은 인간의 근본 문제에 대하여 확립된 기본 신념이다. 왜냐하면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삶에는 모든 사물에 대해서와 인간관계에 신뢰와 확고한 가치관에 의한 삶의 자세가 하늘 앞에 어떤 마음으로 역사인식을 가지고 소명과 사명으로 사느냐 하는 문제는 삶에 분명한 철학이 있느냐 하는 문제에 이르게 한다. 이는 지금 살아가는 삶의 정황과 시대인식에서 어떤 결정으로 시대분별에 척도가 되는 삶의 길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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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새 일을 행하리라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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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와 예수의 비유 - 배성산목사
- 자연의 계절은 철을 따라 지난해도 올해에도 한결같이 창조질서를 따라 봄, 여름, 가을, 겨울철이 일 년 사시절을 바꾸지 않고 순응하는 것을 보면서 인생의 삶은 왜 이리 변화무쌍(變化無雙)한가 하는 비정한 마음에 지쳐서 하늘의 뜻을 맞는 가을의 기분이 여기 있다. 자연은 환경이나 경우의 변화에 익숙하게 순응하여 자연의 풍광(風光)을 나타내 지금 가을의 철을 보게 하여 자연을 보는 것에서 신앙심을 갖게 한다. 여기에 우리는 신앙하는 믿음을 갖는다. 그 믿음은 아는 것, 보는 것에서 깨달음으로 마음의 상태를 이룬다. 그리하여 믿음은 믿는 마음이요 이 신앙으로 그 믿음을 받드는 행위로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보게 하고 믿게 하는 이는 누구이며 자연의 질서는 곧 우주의 창조하신 분의 뜻대로 창조의 질서는 따르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 깨달음에서 피조물은 조물주를 따라 행한다는 이치를 터득한다. 그리하여 성서에는 그 창조질서가 그 이유대로 인생의 삶을 땅에서 태어나게 하시고 삶의 환경에서 자연을 따라 시절을 따라 철을 따라가게 하고 하늘에 계신 분이 우리를 이 땅에 두신 까닭을 알 수 있도록 한다. 즉 땅에서 창조의 질서를 보고 우주의 이치를 알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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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질서와 예수의 비유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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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 안에서 - 배성산목사
- 성서 전체에는 생명과 빛을 함께 언급하고 있다. 빛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다. 이는 성서의 위대한 원칙이다. 우리는 주님의 빛 안에서 빛을 보는 자이다. 생명은 항상 빛을 뒤따르고 오직 빛만이 생명을 태어나게 한다는 진리를 알게 한다. 은혜가 사랑의 표현인 것과 같이 진리는 빛의 표현이다. 빛이 비칠 때 마다 우리는 진리를 받는다. 빛은 어둠 가운데서 빛난다. 진리는 빛의 비춤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신성한 빛이 비칠 때 우리는 진리를 보며 이 진리들은 실재(實在)들이다. 우리에게 신성한 빛이 없고 어둠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모든 것이 헛되고 공허한다. 그러나 우리가 빛 안에서 행할 때 우리는 실재를 보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그리고 빛 안에서 행할 때 그리스도, 그 영, 교회, 몸과 그 몸의 지체들이 우리에게 실재가 된다. 즉 하나님의 거룩함과 사랑과 은혜 이 모두 우리의 실재가 됨을 알게 한다. 이를 풀이하면"(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6) "생명의 빛 안에서"는 제목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행하여지는 삶의 사실을 알게 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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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빛 안에서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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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왜 오는가? - 배성산
- 우 리말에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말은 ‘오동잎 한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이 온 것을 안다’는 의미이다.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 가을이 영글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봄철에는 모든 이가 시인이 되고 가을에는 철학자가 된다고 한다. 자연은 결코 갑작스런 비약을 하지 않는다. 철에 따라 더위가 오고 물러나고 하는 것은 옥신(auxin)이라는 생장 호르몬이 저온에 시들면서 나무줄기와 잎자루 아래 틈새에서 낙엽이 모두 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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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왜 오는가? - 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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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사랑 - 배성산목사
- 사람이 삶에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가지면서 삶을 영위하다가 정(情)을 주고 사랑하고 다시 이별하며 산다는 것은 삶이 얼마나 힘든 질곡의 과정인 것을 알게 한다. 그러나 “정과 사랑”이 없는 삶은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한 삶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변화하고 발전하는 힘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에 이른다. “정과 사랑”은 삶을 풍요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힘이다. 사람에게 생기가 돌게 하고 삶이 넘치려면 삶에 이 감성의 욕구가 넘치어야 한다. 이 삶에서 이성과 감성의 경험이 충족될 때 우리의 삶은 행복을 느낀다. 여기에 정(情)의 감성은 중요하다. “정과 사랑”은 외형적으로는 비슷하나 그 작용하는 힘의 근원과 역할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은 혈연 지연의 육신 중심적인 성격을 갖지만 ‘사랑’은 진리를 바탕으로 한 영혼 중심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 감성의 욕구는 “정과 사랑”이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 욕구요 또한 누구한테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이다. “정과 사랑”은 삶의 욕구에 두 면으로 한 면은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려는 것이요 또한 면으로 내가 사랑의 객체가 되려는 것이다. 이러한 감성의 욕구가 어린이었을 때는 사랑을 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어른이 되면 차차로 누구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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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사랑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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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알게 하는가 - 배성산목사
-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다. 만상의 가을 자연 정경에 삶을 누리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들이 생겨난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태어난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 이라는 물음에 선다. 사람이 태어남에도 뜻이 있고 한 평생 신명(身命)을 바치고 세상을 떠나 죽을 때도 뜻이 있어 자연의 질서를 통하여 생명을 다하는 자연의 섭리는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가을에는 누구나가 여행자가 되고 싶어 자연을 따라 산하를 누비며 전국의 명소나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 나서기도 하고 떨어지는 나뭇잎에서 앙상한 가지의 삭막함과 우수를 느끼는 가을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이 가을에 자연에 끌려 마음 추스리는 그대로의 끌리는 마음에 겨워 신앙하는 마음작정도 하게 한다. 미국 멀티비 뱁콕(M.D.Babcok1858-1901)목사가 작사한 '내 아버지의 세상(This is my Father's World, '참 아름다워라')은 그가 매일 아침 가까운 산의 숲속을 거닐면서 묵상과 기도를 하는 가운데 이 찬송가에서 이 자연환경을 노래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크도다." 자연에서 풍기는 생명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솜씨라는 하늘 묻은 그 뜻을 알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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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알게 하는가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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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는 감사절 - 배성산목사
- 자연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것은 믿을 수 있다는 의미를 갖게 한다. 인간의 존재도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하는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자연과 인간이 생존하는 것을 알게 한다. 때에 따라 천하만사가 기한이 있어 가을에는 산과 들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게 한다. 지금 우리는 주어진 공간에서 제 자리를 지키면서 철을 따라 처한 환경에서 묵묵히 한 생명으로 당당하고 떳떳하게 자라난 자연의 생동감을 본다. 다양한 형태와 아름다운 빛깔을 자아내면서 꽃과 나무들로 계곡에서 처하여도 기다림과 외로움을 감당하며 생명은 그 무엇이라도 이미 그 자체로서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라 온 천하를 물들인 자연에게서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를 알게 한다. 이렇게 성서의 가르침이 형성된 것은 세계의 본질에 대한 명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연을 통해서 만사를 알게 하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보고 믿게 하면서 행하는 행실을 통해서 형성되었음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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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는 감사절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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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 - 배성산목사
- 오늘의 시대는 착하게 사는 것이 미덕이라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이 시대는 옳고 그른 것이 따분하고 선한 것이 오히려 이용해 먹기 좋은 것이 되고 착한 것이 바보가 되고 순수한 것이 멍청한 것이 되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는 것으로 변해버리며 옳지 않는 것이 옳은 것으로 점점 인정되는 현실이 되었다. 이는 어린이다운 순수함이나 순결한 마음으로는 어리석음이요 무조건적인 사랑기운으로 사는 아직은 미숙하고 여린 태도는 어린이의 작은 모습에서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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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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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소유와 삶의 존재 - 배성산목사
- 한국 사회는 지난 세기 동안에 근대화라는 구실인 경제성장이라는 사회 구조적 변화로 정치구조의 민주화, 경제구조의 산업화, 생태구조의 도시화, 계층구조의 평등화 등으로 중요한 사회변동을 경험하고 있다. 또한 해방 후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속도가 급속하게 변화했다는 이유로 그 특성은 가치갈등과 가치체계의 혼란을 야기하고 말았다. 특히 사회 속에서 물질만능주의로 배금주의가 팽배해 있음을 안다. 여기에 에리히 프롬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대접한다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무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은 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 목숨을 건다. 여기에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아름다운 꽃을 보고 그 꽃을 소유하기 위하여 꽃을 꺾어 집으로 가져왔다면 그것은 이미 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꽃을 죽이는 것이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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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소유와 삶의 존재 - 배성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