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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림사랑이시다 - 배성산목사
- 신학자 몰트만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세상에 내려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계시하고 경험하게 하고 예수 십자가의 고난과 자기희생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계시한다’고 하면서 이 그리스도의 헌신 속에서 아버지의 헌신을 예수의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정의는 떠오르는 해와 같고 하나님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한 데까지 내려가는 사랑을 알게 한다. 성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먼저 나타난다고 말한다. 우리 인간이 이미 죄인 되었을 때 사랑 받을 만한 가치가 없을 때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다.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인간들과 나누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삶을 나누기 위해 친히 내려오신 성육신은 임마누엘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의미하며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중심이 되는 것을 알게 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지금 가지고 있는 가치. 선함. 공로를 보고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사랑하시며 죄인까지도 사랑하심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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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림사랑이시다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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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내림사랑 - 배성산목사
- 주님께서 하나님을 아버지(아빠)라 부르라고 가르쳐 주신 의미가 있다. 이것은 인간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아빠라고 친히 하신 말씀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합친 말로 부모라는 뜻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인 ‘우리가 자녀이며 또한 상속자가 되었다’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는 것은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창조주의 자녀이며 그 분의 모든 부요 함이 우리에게 상속할 존재가 되었다는 포부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게 했는가?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외아들로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주님은 스스로 종이 되어 낮아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음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부활하셔서 우리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자녀가 되게 하신 그 은총이 갖는 의미는 순전한 "하나님 아버지의 내림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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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내림사랑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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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 배성산목사
- 사람들이 생활해 가는데 필요에 따라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 자기 나름의 절대자에게 간구(干求)하는 기도를 자기입장에서만 드리는 형편을 보게 된다. 그 간구하는 자기처지에 따라 내용이나 방법으로 간구한다. 이는 간구하는 자의 욕구충족으로 자기 도취에 머무르는 일상을 알게 한다. 인간 사회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주어진 삶의 가치관, 입장, 처지가 있으며 생활 형편과 환경에 따라 행동하는 생활이 다르기에 사물을 보아서 알고 분별하는 견문과 학식에 따라 그 견식(見識)이 또 다르다. 이러한 각자의 입장이나 안목에서 간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물이 다 차이가 나고 구별이 있기에 천차만별인 각자 다른 간구가 된다. 이러한 간구는 자기생활의 필요와 탐욕의 수단으로 만 기도하는 사회생활에서 이기심만이 조장하는 삶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간구가 인간탐욕의 수단으로 조장되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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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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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나타나는 것이다 - 배성산목사
- 삶은 순간(瞬間)들의 연속이다. 그 순간은 ‘삽시간’(瞬間)으로 극히 짧은 시간을 말하고 그 연속은 극히 짧은 시간이어서 지금(至今)이란 시간을 알게 하고 그 시간은 없어짐에서 나타남으로 시간을 알게 한다. 삶도 마찬가지로 있음에서 나타남으로 이어가는 시간의 삶을 알게 한다. 이 시간의 삶이 생명을 알게 한다. 이 삶은 생명의 씨앗이 싹트기 위해서는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치를 알게 한다. 생명의 특징은 “보이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다”는 것은 이를 알게 한다. 생명은 살아 있기에 보는 것만이 아니고 생명이 죽음을 전제한 삶의 나타남으로 진리를 알게 한다. 그리하여 진리도 낡은 진리가 새로운 진리가 되는 것을 알게 하고 생명이나 진리가 항상 신선하고 기운차야 한다. 그리하여 보는 것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명은 그 특징이다. 우리는 지나간 부활주일을 맞이 했다. 부활주일 전에는 사순절과 고난주일을 보내고 즉시 부활을 맞게 된다. 우리는 십자가의 죽으심이 어떠했나와 누구를 위한 죽으심이었나를 보았다. 그리고 부활로 나타나심의 생명을 알게 하고 이로써 구원의 사실을 믿게 하는 것이다. 이는 생명의 삶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울 사도는 지우금(至于今)으로 ‘이제야 이르기까지’ 지금(至今)의 뜻을 알게 한다. ‘지금’으로 고린도후서6:2에서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 하신 말씀에 유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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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은 나타나는 것이다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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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개신(改新)하고 있는가? - 배성산목사
- 지금 한국 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회와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하여 왔다. 한국 사회의 급성장과 성장주의 신화는 성공주의와 실용주의에 편승하면서 부정적인 현상들이 교회내의 심각한 부작용들과 영적인 질병들로 병들어 가고 있음을 본다. 이는 교회의 영적각성과 개혁이 시급하게 필요한 현실에 처해 있음을 알게 한다. 예컨데 교회의 내부 현실에서 신앙생활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서에 대한 이해와 그 권위가 생활의 삶에서 말씀이 포기된 듯 한 믿음을 보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나 강단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 신학자 개인의 학문적 입장이 더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설교의 내용은 기복적이거나 성공적인 것으로 실리 위주의 만사형통의 서원(誓願)에 급급하고 교파는 늘어나고 있으며 자격없는 목회자만 늘어나 교회는 자질없는 목회자로 채워가고 있다. 그리하여 신앙은 물량적이고 배금주의에 빠져 신학이 없는 우매신앙과 샤머니즘으로 우쭐되고 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망각하고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교회는 진리의 공동체라는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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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는 개신(改新)하고 있는가?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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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삶의 끈 - 배성산
- 예수의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의 부활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분의 뜻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에 대한 신앙이다. 사도신경은 기독교의 신앙이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에 근거한 것임을 말한다. 곧 부활신앙이 부활사건이다. 이는 현존하신 그리스도의 삶은 죄 된 세상을 구원하는 삶의 자리가 우리의 신앙의 내적 근거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한다. 부활신앙이 기복적이거나 타계신앙으로 이어져 현재의 삶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식의 부재로 부활신앙을 왜곡(歪曲)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누구의 부활을 말하는가? 분명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분을 알게 한다. 즉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내적인 연관성을 맺음으로 그 끈을 알게 하고 부활 사건이 예수의 구속의 십자가의 맥락 안에서 곧 삶의 구원론의 끈으로 이어짐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예수는 죄와 죽음과 율법의 세계에 대항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이것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준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부활은 삶의 끈"으로 인간 구원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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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삶의 끈 - 배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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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연합예배는 . . . - 배성산목사
-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칼운동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세계교회운동, 교회일치운동, 교회연합운동 등으로 진행되면서 8.15해방 이후 1947년부터 시작된 부활절연합예배가 그 중심 역할을 해왔다. 부활절 예배는 장로교회의 분열의 파급 등으로 1962년부터 보수·진보의 양측으로 갈리어 예배를 드렸으나, 1973년부터 양측의 노력으로 명실상부한 연합예배로 환원되어 지금까지 부활절연합예배가 이어져왔다. 교회의 하나됨은 교파들의 획일적인 일치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다양성 속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교파들은 부활을 증언하는 복음에 근거하여 교회의 일치를 지향해야 하고, 성서의 다양한 메시지들에 근거하여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일치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로 하나된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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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연합예배는 . . .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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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사회를 본다 - 배성산목사
- 몇 일전(3월19일) 광화문 네거리 이순신 동상과 세종대왕 상 사이에서 어느 한 스님이 슬로건을 걸고 세상을 한탄하며 세종대왕 상 앞에 신문고를 울리고 있었다. 세종대왕님이시여! “어찌해야 합니까?” ‘양심이 쫄아버린 이 슬픈 사회를’[양심사회가꾸기] 라는 제하의 문으로 쌀쌀한 날씨에도 이를 사회에 직고(直告)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는 사회의 구석구석이 양심이 바싹 말라서 물기가 없이 졸아 붙어 모든 사회의 관계가 깨어지는 아픔을 보게 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오늘에 이러한 우리의 ‘깨어진 공동체’를 보는가! 하는 마음이었다. 이는 내 자신의 양심에게 던지는 비수(匕首)의 깨침이었다. 이는 실용성을 따라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심과 정의가 없는 삭막한 사회를 보는 것이었다. 이 사회는 도덕성이 피폐된 위험한 사회인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신용과 신뢰의 관계가 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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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진 사회를 본다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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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세상 - 배성산목사
- 사람이 사는 세상은 철을 따라 세월 따라 사는 삶이다. 그리하여 만사에 때가 있다. 창조의 질서가 이미 땅이 있는 한, 심고 거두는 일, 추위와 더위, 여름과 겨울, 낮과 밤이 쉬지 않는 그 이유를 창세기8장은 이를 알게 한다. 그런데 오늘의 세상은 물질 문명의 향유를 일삼아 철을 거슬려 세월을 거슬려 삶에 익숙해 가는 타락한 세상을 즐기며 살고 있다. 이는 제철을 상실한 상태를 보며 사는 것이다. 제철은 동물이나 식물들이 자라거나 거두어들이기에 가장 알맞은 시기를 말한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꽃 방에 가면 사시사철의 꽃을 볼 수 있고 대형마트에 가면 철과 상관없는 온갖 과일이 넘쳐난다. 여름에는 에어컨, 한 겨울에도 난방시설로 철을 모르고 지낸다. 일상의 삶에서 의식 없이 철없는 삶으로 철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오늘의 우리의 삶을 보는 것이다. ‘철이 없다’, ‘철이 안 들었다’는 말은 나이 값을 못한다던가 물정이나 사리를 모른는 데서 생기는 말이다. 이는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어서 배려와 관용이 없는 일상에서 철없는 우리 아이들을 보며 어른들도 그 철없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이다. 이를 가리켜 철부지(철不知)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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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없는 세상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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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 수업은 교회교육의 기회 - 배성산목사
- 한국교회는 학교의 ‘주5일 수업’ 실시에 따른 비상한 대체(代替)를 위해 간절히 간구하고 이를 한국교회는 신앙교육의 장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신앙과 인격형성의 교육을 펼쳐 미래 지향적 청소년 교육과 문화라는 삶의 준비를 위해 교회가 이를 수용하도록 현실적인 대비가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우선 사회가 학교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들로 인해 학교교육의 현장(現場)에서 많은 문제들을 이제는 사회 전반이 다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동안 자생적으로 자유학교, 대안하교, 탈학교론으로 교육에 대한 불신에서 부분적인 개혁이 아닌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고 있었다. 이는 그 현상으로 학생의 인권과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바탕으로 전개하여 왔고 교과교육에 부적용 학생, 왕따, 학생간의 폭력 등의 증가는 학교교육의 한계를 알게 하고 학교교육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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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 수업은 교회교육의 기회 - 배성산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