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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적 근본주의와 광신
    ◇종교적 근본주의는 처음 선포된 진리를 보수하고 그것을 실천하며 전통적 교리를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모든 종교전통에는 근본주의 운동이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Christian fundamentalism)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영국과 미국의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유럽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해 주창한 기독교의 한 신학사조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주요 교리는 기독교의 전통교리인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나사렛 ‘예수의 신성’, 예수의 ‘동정녀 탄생’, 예수의 ‘십자가의 대속’, 예수의 ‘육체적 부활과 재림’, 성경의 ‘축자영감설과 무오’를 믿는 것이다. 이것은 보수주의나 개혁주의에서도 강조되는 내용이지만, 근본주의는 이 다섯 가지 교리를 가장 중요시 한다는 점이 다르다.◇신학이나 종교에서 전통적 교리를 고수하고자 하는 이 근본주의는 흔히 오늘날 세계를 피로 물들이는 이슬람 테러분자들처럼 자칫 종교적 광신(狂信)을 불러와 그 종교의 근본을 오히려 해치는 결과를 오기도 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테러를 일삼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대체로 그 종교를 보수(保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 관계로 종교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로인해 세계는 지금 평화주의를 주창하는 이슬람이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종교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정치적 테러뿐만 아니라, 타종교에 대한 박해도 서슴치 않는다. 마치 중세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던 티무르와 같이 이슬람 외에는 어떤 종교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당연히 인권도 없다.◇우리나라는 대표적 다종교 사회이다. 불교, 기독교, 천주교가 비슷한 신도수를 가지고 있고, 유교는 종교로서는 그 기능을 다했지만 전통문화로서 아직도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종교간 갈등이나 충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일탈적 행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려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종교계도 어떤 종파이든, 종교적 근본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경전에 대한 신학적 재해석을 거부하는 데서 오는 ‘광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도 코란에 대한 이슬람 신학의 재해석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일부 경전의 구절이 무차별 테러에 악용되고 있는 광신적 행위이다.◇건강한 종교행위와 병적인 종교행위는 곧 ‘신앙과 광신’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다. 종교인이 광신에 빠지면 그 종교가 추구하고자 하는 근본이념과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영적 세속적 유익을 위해 종교가 악용된다. 우리가 종교적 열광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종교문제는 사교(詐敎)의 문제가 아니라 광신(狂信)의 문제이다. 광신은 같은 교리라 할지라도 어떤 태도로 믿느냐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믿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즉 신행(信行)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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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06
  • 어리석은 자
    ◇한 무리의 등산객이 산 계곡을 오르다가 쉼터에서 숨을 돌린다. 그들의 대화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요즘 한국의 종교계에 대한 비판도 곁들여졌다. 한 남성이 대뜸 "하늘 파는 놈들 치고 사기꾼 아닌 놈이 없다. 공자도, 석가도, 예수도, 모하멧도 ... 사기꾼이다"라고 호기있게 소리쳤다. 그가 그들 인류의 스승들에게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아무도 대꾸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무지한 대화에 괜히 끼어들어 봐야 논쟁만 깊어질 것 같아서이다. 오늘날 인류사회의 지배종교와 사회철학은 주전 7세기경부터 주후 1세기경까지 약 1천 여년 사이에 나타난 것이다. 이 시대를 인류사의 차축(車軸)시대라고 부른다. 그 시대 사상가들에 의해 인류사가 굴러가고 있다는 뜻이다.◇이사야, 엘리야, 엘리사 같은 구약성경의 예언자들이 활동했으며, 주전 6세기경엔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했고, 페르시아에서는 짜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교를 설파하고, 이스라엘에서는 유대교가 탄생했으며, 중국에서는 공자가 유교를 집대성했다. 그리고 그리스 로마사회를 이어 예수가 탄생하고 기독교가 나타났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이리스토텔레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과 맹자, 노자, 장자, 묵자 등 중국의 철학자들도 모두 이 시기 사람들이다. 힌두교의 ‘베다’, 불교의 ‘불경’,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 유대교의 ‘구약성경’과 ‘탈무드’, 유교의 ‘사서삼경’, 기독교의 ‘신약성경’이 모두 이 시기에 나타난 사상들이다.◇이들의 사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인류사회는 샤마니즘 사회였다. 윤리적 신관이 없는 사회였으므로 당연히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 같은 것이 있을 수 없고, 인권개념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을 말하는 이런 고전 종교 사상들이 일어남으로써 인간이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신(神)과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비로소 인류사회는 사회적 규범이 생기게 되었다. 그것은 당연히 그 종교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다. 인간의 참된 삶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이런 종교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인류는 아직도 문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암흑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모두 그들 인류의 스승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 인류의 스승들을 무식한 세 치 혀로 싸잡아 사기꾼으로 몰려가니 그 일단의 책임이 그들을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있는 듯하다.◇‘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무지하여 세상의 이치를 잘 모르니 그냥 지껄이면 말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시 14:1).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에게 말한다.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어다”(욥 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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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22
  • 동방 교회에 대한 박해
    ◇기독교 초기 유프라테스 강 동쪽에 본거지를 둔 동방 기독교는 인도와 시리아와 이란과 메소포타미아와 이라크와 아르메니아와 터키와 중앙아시아 등지에 널리 퍼졌으나,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았다. 처음에는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하는 사산조 페르시아로부터 조직적인 박해를 받았다. 샤푸르 2세는 조로아스터교의 광신적인 종교재판관들을 내세워 19만여 명의 기독교인을 학살했다. 또 예루살렘에서도 약 9만명의 기독교인을 죽였다 524년에는 아라비아의 남쪽 예멘의 함야르 왕국에서 모든 성직자와 수녀들과 수사들을 교회당에 몰아넣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끔직한 만행이 벌어졌으며, 나머지 기독교인들은 모두 목을 베어 죽였다. 그 때 4,700명이 순교하고 1,300명의 아이들은 노예로 팔렸다.◇630년 마호메트가 이슬람을 일으킨 후에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복장을 할 수 없었으며, 공공장소에서는 가슴과 등에 노란 헝겁조각을 붙여서 기독교인 표시를 해야 했다. 이 법을 위반하면 죽든지, 가족이 노예로 팔리든지, 아니면 무슬림이 돼야 했다. 850년 칼리프 무타와킬(Mutawakkil, 847-861)은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차별을 강화했다. 기독교인들은 노란 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2개의 특수한 단추 같은 것을 꽂고 다녀야 했으며, 여자들도 노란 베일로 얼굴을 감추고 다녀야 했다. 또 기독교인들은 금요일에 시장에 출입할 수 없었으며, 자녀들은 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울 수 없도록 했다.◇14세기 말 티무르는 가는 곳마다 교회당을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을 학살했다. 사마르칸트에서는 기독교인 해골과 진흙으로 성을 쌓았다. 그로인해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기독교가 사라졌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도 동방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끊이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은 1894~1896년에 30만명의 무고한 아르메니아 기독교인을 학살했고, 1908년 제1차 세계대전 중에 160~180먼명을 학살했다. 또 1864년 7월에는 쿠르드인들이 약 2만명의 기독교인들을 무차별 살해하고 죽은 사람들의 귀를 잘라 자신들의 지도자 바드르 칸에게 보냈으며, 젊은 여자들은 노예로 팔거나 무슬림 족장들에게 진상했다. 또 1915년 4월에는 터키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의 명령으로 기독교인 200만명이 희생됐다. 이 집단학살은 터키 정부가 계획한 것으로, 무슬림 토착민들은 살해된 기독교인들의 재산을 나누어 가졌다.◇동방 기독교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복음서·십자가 표지·세례·성찬이다. 그들은 이것을 기독교의 네 기둥이라고 한다. 성례전은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고 성찬은 빵과 포도주 두 가지를 다 준다. 십자가는 부활 후의 ‘빈’ 십자기이지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화체설을 부인하고, 죽은 사람들을 위한 미사, 향의 사용, 성인들과 성모 마리아에게 대한 기도를 금한다. 그 교회당에는 성상(聖像)과 성화(聖畵)가 없고, 십자가에 못박혀 매달린 형상도 없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지극히 성경적 신앙을 가진 형제들이 이렇게 오랜기간 박해를 받아왔음에도, 서방의 어느 교회도 그들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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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9
  • 초원의 기독교제국의 꿈
    ◇기독교 초기 로마밖 유프라테스 강 동쪽에서 성장한 교회를 ‘동방 기독교’(혹은 동방교회)라고 한다. 이 교회는 페르시아와 인도와 중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다. 그리고 한때 중국과 몽골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이 교회를 중국에서는 ‘경교’(景敎)라 하고, 몽골에서는 ‘야리가온’이라고 한다. 11세기 초 몽골 초원에는 수많은 부족이 서로 힘을 겨루며 살았다. 그 중 케레이트와 나이만과 웅구트라는 유력한 부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12세기 말 케레이트 부족의 지배자 토그릴 칸은 그 조부 마르쿠즈(마가)와 부친 쿠르자쿠즈(키리아쿠스)가 모두 세례명을 가진 기독교인이었다. 후에 세계의 정복자가 된 테무친(징기스 칸)은 토그릴의 가신으로 오래동안 함께 지냈다. 타타르가 테무친의 아버지 예수게이를 독살하자 그를 추종하던 자들이 테무친의 가족을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테무친은 아버지의 동맹자 토그릴 칸에게 몸을 의탁했다. ◇테무친은 메르키트 부족에 납치된 자신의 아내 보르테도 토그릴의 군사적 도움을 받아 다시 찾아왔고, 부족장 자리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테무친은 승승장구하여 칭기스 칸(대양의 지배자)으로 옹립되었다. 그 즈음 토그릴 칸은 몽골의 지배자들 가운데 최강의 자리를 차지했고, 칭기스 칸의 도움만 있으면 모든 몽골 부족들의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래서 몽골 초원에 ‘기독교 제국’을 만들 꿈을 꾸었다. 당시 카자흐스탄 동쪽에 있는 발하슈 호수와 만주 사이에 살고 있는 돌궐족과 몽골족의 약 30-40%가 동방 기독교의 교인들이었으므로 이런 생각을 가질 만했다. 그러나 1204년 징기스 칸은 한때 후원자였던 토그릴 칸을 몰아내고 자신이 지배자가 되고자 했다. 토그릴은 도망치다가 서쪽에 있던 나이만 부족에게 살해되었고, 그로부터 2년 후 1206년 몽골 동쪽 오논 강가에서 징기스 칸은 스스로 카칸(왕중왕)에 등극한다,◇이리하여 징기스 칸은 케레이트 부족을 몽골족에 통합시키고, 토그릴의 질녀(자아 감부의 딸) 이바카 베키(Ibaka Beki)를 자신의 아내로 삼고, 그 여동생 베추미시 베키(Bektumish Beki)를 큰 아들 주치와 결혼시켜 맏며느리로 삼았으며, 또 다른 여동생 소르칵타니 베키(Sorquqtani Beki)는 막내 아들 톨루이와 결혼시켰다. 이들은 모두 동방 기독교 교인이었다. 징기스 칸의 셋째 아들 오고타이도 메르키트 부족의 기독교인 토레케네와 결혼해 아들 구유크를 낳았다. 구유크는 제3대 대칸이 되었다. 특히 소르칵타니 베키는 기독교 신앙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톨루이와의 사이에서 이들 넷을 낳았는데, 큰 아들 뭉케는 몽골제국의 제4대 대칸이 되고, 둘째 아들 쿠빌라이는 몽골의 대칸과 중국 원제국 황제가 되었으며, 셋재 아들 훌레구는 이란에 일한국이라는 몽골제국을 세우고 칸이 되었다. 그리고 넷째 아들 아릭 부케는 큰 형 뭉케가 죽자 한때 제5대 대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토그릴이 죽고 케레이트 족이 망함으로써 초원의 기독교제국에 대한 꿈은 영원히 사라졌다. 만약 당시 초원의 기독교가 성공했다면 지금 아시아 기독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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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6-01
  • 향유 사건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 가운데 ‘향유 사건’이란 것을 전하고 있다. 4복음서가 공히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상당히 중요한 의미로 받아들여졌던 사건인 것만은 확실하다(마 26:6-13, 막 14:3-9, 눅 7:36-39, 요 12:1-8). 이 향유 사건은 예수님의 장사(葬事)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 추가되고 있다(마 26:12, 막 14:8). 그러나 아마도 이 기사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데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막 14:9)라고 한 예수님의 말씀이 무게를 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마태복음=“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6-7). 마가복음=“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3). 누가복음=“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36-38). 요한복음=“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1-3).◇사건의 장소를 마태와 마가는 베다니 시몬의 집이라고 했고, 요한은 베다니 나사로가 있던 곳이라 했는데, 누가는 지명은 언급없이 바리새인 시몬의 집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향유를 부은 자와 부은 곳에 대한 표현이 다르다. 마태복음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가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마가복음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가 300데나리온 가치’의 향유를 ‘머리’에 부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죄인인 한 여자’가 향유를 ‘발’에 부었다. 요한복음은 베다니 나사로가 있는 곳에서 ‘마리아가 300데나리온 가치’의 향유를 ‘발’에 부었다. 여기에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과 바리새인 시몬이 동일인인지, 또 죄인인 한 여자와 마리아가 동일인인지 여부는 알 수 없다.◇요한복음은 그 잔치집이 마치 나사로의 집인 것처럼 표현하고 있고, 향유를 부운 마리아가 나사로의 누이인 것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향유를 부운 여인을 비난받을 만한 짓을 하는 ‘죄인인 한 여자로’ 표현하고 있다. 만약 베다니 문둥이 시몬과 바리새인 시몬이 동일인이라면, 그 바리새인은 한때 ‘문둥병’을 앓았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란 이름을 가진 향유를 부운 ‘한 여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어디서나 이 여자의 행한 일도 함께 전해져 그리스도인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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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18
  • 종교 규제법
    ◇대선정국을 맞아 기독교계 주변의 일부 인사들이 대통령 후보들에게 ‘이단·사이비’ 종교에 대한 규제법을 만들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는 중세 기독교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 종교자유를 기본권으로 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기독교계 인사들 가운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자신들이 믿는 특정신앙은 ‘정통’이고, 다른 사람들이 믿는 신앙은 ‘사이비적’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나오는 발상이디. 사이비 종교는 마땅히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임으로 규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이 사이비 종교인가를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리고 사이비 종교행위는 형사법으로 다스리면 된다. “법은 이단을 모른다”는 것이 종교자유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종교에 대한 규제법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종교자유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보인다.◇헌법 제20조 1항의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의 종교자유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내심상의 신앙의 자유이고, 다른 하나는 외면적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이다. 내심상의 신앙의 자유는 혼자서 마음 속에 무엇을 믿는 것임으로 시비를 하거나 제한할 수 없는 절대적 기본권으로서 자유이다. 그러나 외면적인 종교적 행위의 자유는 자신이 믿는 바를 실제 겉으로 드러내어 행사할 수 있는 자유이다. 예배의 자유, 종교적 집회 결사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선교의 자유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외부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때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기본권으로서의 자유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적 행위의 자유에서 빚어지는 사회질서와의 충돌은 이미 형사법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그런데도 구태여 종교에 대한 규제법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愚)를 범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왜냐면 종교를 법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 제20조 2항에는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정부가 법적으로 특정한 종교만을 종교라고 정의한다면, 그외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셈이 되어 결국 특정종교만을 합법화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비국교화라는 헌법적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더우기 법은 교리나 신학 등에 따라 특정종교만이 합법적이거나 정통이라고 할 수 없다. 이단논쟁은 그 종교단체의 내적 자율의 문제일 뿐,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사이비인지 규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단·사이비 종교의 규제법을 만들수 있는 것인가.◇모든 종교는 처음에는 기존질서에 의해 이단이거나, 사이비 종교로 비난받았다. 불교는 힌두교에 의해, 기독교는 유대교에 의해, 이슬람은 기독교에 의해, 양명학은 주자성리학에 의해 이단 또는 사이비였다. 종교에 있어서 이단과 사이비의 문제는 종교 내부의 정통성의 문제일 뿐, 결코 법으로 규제할 문제가 아니다. 정통종교는 정신(正信)을 가르치고, 국민들이 사이비 종교에 속지 않도록 종교적 상식을 넓혀가야 옳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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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5-04
  • 부활절 논쟁
    ◇예수님은 그 해 유대력 니산월 14일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시고 유월절 어린양(고전 5:7)으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어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혔다가 안식일이 지난 새벽 미명에 부활하셨다. 이는 성경이 명백히 기록한 날자여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날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역사적 기독교는 이 ‘부활절 날짜’를 놓고 오랜 논쟁을 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유월절 어린양으로써 대속의 죽으심을 중요시 할 것인가, 주의 부활일을 중요시 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즉 부활절이 유월절을 기준으로 주 중(7일) 어느 날이 되든지 유대력 니산월(첫달) 14일에 지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주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주일)을 지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사도 시대가 지나고 주후 2세기에 이르면 교부 시대라고 하는데, 이 시기의 교회는 세 가지 절기를 지켰다. 그것은 유월절(부활절)과 오순절 그리고 주현절이 그것이다. 기독교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여 파스카 스타로우시몬(Pascha Staurosimon, 본 유월절)이라 불렀고, 바로 이어지는 그리스도의 부활일을 부활절이라 불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슬픈 날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곧 이어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 동시에 이어졌다. 그래서 소아시아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은 니산월 14일에, 유대교 유월절에 맞추어져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니산월 14일 저녁부터 15일 해뜰 때까지 유대교의 유월절 양 대신, 성찬과 애찬으로써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인 주의 만찬을 기념했다. 그래서 이들은 ‘14일파’라고 불렸다.◇소아시아 교회들과는 달리 로마 교회는 기독교의 출발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유월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주의 날’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님이 죽으신 니산월 14일에 맞추다보면, 그 날이 주님이 부활한 일요일이 아닌 다른 요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니산월 14일에 맞추는 수난 기념일은 기독교의 부활정신과 거리가 있다고 보았다. 이렇게 되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간에 부활절 논쟁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313년 기독교가 로마로부터 ‘합법적 종교’로 공인되자, 325년 니케아에서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가 모였는데, 그 회의에서 조정된 것이 “춘분 이후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을 부활절로 한다”는 결정이었다. 그리고 성경적 부활절을 주장한 ‘14일파’는 오히려 이단으로 몰려 교회에서 파문당했다.◇그런데 이 부활절 논쟁은 유대교에 대한 기독교의 독립에 관한 문제도 깔려 있었다. 왜냐하면 처음 초대 교회에는 유대인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2세기에 이르러서는 차츰 이방인들이 중심이 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니케아의 결정은 기독교 교회력의 독창성과 그것이 유대교로부터 독립된 것이라는 점을 천명하는데 있었다. 초기 기독교가 부활절을 ‘12월 25일 성탄절’과 같이, 어느 한 날자를 정하지 못한 것은 주의 부활이 ‘안식 후 첫날’이라는 것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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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7
  • 목마르지 않는 샘물
    ◇예언자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며 환상을 본다. 그는 어느날 예루살렘의 성전 문지방 밑에서 스며나온 물이 큰 생명의 강을 이룸을 본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척을 측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척을 측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측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애 오르고, 다시 일천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겔 47:3-5). ◇그 강가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그 물이 바다에 이르니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었으며,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아나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강 좌우 가에서 각종 실과 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12절)고 했다.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 생명수 강을 보았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 22:1,2).◇예수님은 사마리아 우물에 물 길러 나온 여인에게 “이 (우물)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고 했다. 예수님이 여인에게 주고자 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은 무엇인가? 그것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의 피이다.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피를 먹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있고, 부활의 약속이 있다.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요 6:54,55). 이 말씀을 믿고 그 살과 피를 먹는 자만이 죄인이 변화되고 인생이 부활한다.◇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물이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47-53). 사람은 비로소 이 물을 마셔야 영원히 갈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영생에 이르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영원히 설파해야 할 기본진리이다. 기독교의 이 진리는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리스도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에서 나온다. 이는 마치 성전 문지방에서 스며나온 물이 큰 생명의 강이 된 것 같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킨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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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20
  • ‘헌금’
    ◇한국교회는 참으로 특이한 기록을 많이 가진 교회이다. 첫째는 세계선교 역사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가 세워진 것이고, 들째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헌금을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새벽기도부터 철야기도까지 기도하는 교회라는 것이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 한국교회는 ‘돈이 있어야 교인노릇을 한다’는 자조(自嘲)를 자주 듣게 된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돈이 필요치 않은 시대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교인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너무 많은 경제적 부담을 가지게 된다. 이는 교인들에게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다.◇초대교회에는 십일조와 헌물과 연보라는 세 종류의 헌금이 있었다. 십일조는 소득의 십분의 일을 구분해 바치는 것이고, 헌물은 감사함으로 바치는 것이며, 연보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는 헌금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가. 기본적으로 십일조, 주일헌금, 감사헌금, 약정헌금, 절기헌금, 특별헌금 등이 있고, 여기에 주일헌금도 주정헌금, 월정헌금이 있으며, 감사헌금에는 생일감사헌금, 심방감사헌금, 부흥회감사헌금, 특별감사헌금 등이 있고, 절기헌금에도 부활절헌금, 고난주일헌금, 성탄절헌금, 어버이주일헌금, 맥주절헌금, 추수감사헌금 등이 있고, 특별주일헌금에도 성서주일헌금, 평신도주일헌금, 신학교주일헌금, 총회주일헌금 등이 있다. 여기에 구역헌금, 선교헌금, 헌신헌금, 건축헌금, 송구영신헌금, 신년헌금, 특별새벽기도헌금, 세레교인 의무헌금이 있고, 여름성경학교, 체육대회, 수련회, 교회창립기념, 각종회비 등이 따른다.◇또 특별한 명목의 감사헌금이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다. 순산헌금, 출생축복헌금, 백일축복헌금, 헌아식헌금, 새차구입헌금, 범사헌금, 개업축복헌금, 사업축복헌금, 가족방문헌금, 이주헌금, 이사헌금, 새집마련헌금, 새로운보금자리헌금, 화목가정행복헌금, 부동산매매헌금, 환갑헌금, 진갑헌금, 장수헌금, 장례헌금, 추모예배헌금, 결혼축복헌금, 결혼기념헌금, 신혼여행축복헌금, 백일기념축복헌금, 가족건강기도헌금, 수술헌금, 치유헌금, 기도응답헌금, 주님영접헌금, 등록헌금, 침례헌금, 교인인도헌금, 주님동행헌금, 주님인도헌금, 주님사랑헌금, 주님은혜헌금, 성령충만헌금, 깨달음헌금, 시험잘친헌금, 합격헌금, 입학헌금, 학업헌금, 졸업헌금, 환란극복헌금, 평안헌금, 말씀헌금, 목사차량헌금, 교회차량헌금, 부지매입헌금, 간증감사헌금, 출장보호헌금, 여행보호헌금, 면허취득헌금, 사고보호헌금, 집수리헌금 등이있다.◇여기에다 최근에 희안한 이름의 헌금이 또 하나 생겨났다. 이름하여 ‘기동헌금’이다. 기둥헌금은 교회의 기둥같은 담임목사의 몫이다. 한국교회에 왜 이처럼 우스깡스런 이름들의 헌금이 나열되고 있는가. 그것은 한국교회가 바로 기복주의 교회로 변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은 자유를 얻으러 교회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모임마다 쏟아지는 헌금타령에 마음의 짐이 되어 짓눌린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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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4-01
  • 영혼의 귀향
    ◇성경은 인간을 영(πνευμα)과 혼(ψυχη′)과 육(σα′ρξ)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론에서 이것을 삼분설이라 하는데, 흔히 영과 혼을 하나의 개념으로 보고 ‘영혼’과 ‘육체’로 이분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과 육체는 각기 본래의 고향으로 귀향한다는 개념을 갖는다. 그래서 영혼은 본래의 고향인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육은 그 고향인 흙으로 간다. 이를 우리 민족전통은 혼(魂) 귀(鬼) 백(魄)이라 부른다. 혼은 양기(陽氣)의 응집으로 밝고 깨끗하고 청정한 것이어서 하늘로 가고, 귀는 음기(陰氣)의 응집으로 인가(人家)로 들어와 후손으로부터 조위(弔慰)를 받으며, 백은 흙에서 왔음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아무개가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죽음관에는 사후 영혼에 대한 몇 가지 설(說)이 있다. 영혼불멸설과 영혼수면설 혹은 영혼죽음설이 그것이다. 영혼불멸설은 영혼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원한 것이어서 사람의 죽음 후에도 영원히 산다는 것이고, 영혼수면설은 사람이 죽으면 최후 심판 때까지 잠잔다는 것이며, 영혼멸절설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영혼도 죽는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성경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 셋은 모두 ‘부활’에서 만난다는 것이 기독교의 사후관이다. 그리스도 안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천사장의 마지막 나팔소리에 부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학적 견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독교는 복음의 진수를 ‘영혼의 귀향’ 즉 ‘영혼의 구원’에서 찾았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라고 하시고,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전 3:11,21)라고 말한다. 인간 영혼의 신(神)에 대한 갈망은 영혼은 신과 함께 존재해야 할 것으로 신의 본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천상의 피조물로서 우리의 신적 부분은 우리의 영혼이 최초로 태어난 하늘에 머리를 부착하게 하고 하늘을 향하여 꼿꼿이 서서 살게 한다.” ◇어거스틴은 영혼의 신에게로의 상승(ascent to God)은 “인간 영혼이 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교리에 있다고 했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영혼의 신에 대한 사랑과 동경을 그의 참회록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그것은 육체의 아름다운 모양도 아니고, 계절의 질서도 아니고, 눈을 기쁘게 하는 밝은 빛도 아니고, 그렇다고 음악의 아름다운 멜로디나 꽃이나 향유나 향수의 향긋한 냄새도 아니며, 맛나나 꿀맛도 아니고, 육체적 사랑을 할 때 껴안는 즐거움도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내 사랑 속에는 세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는 당신을 사랑할 때, 내 영혼 속의 빛과 선율과 향기와 식물을 포옹하기도 합니다. 나는 시공을 초월한 빛이 영혼에 비칠 때, 시간을 초월한 선율이 들릴 때, 바람이 흩어버릴 수 없는 향기를 맡을 때, 먹음으로 줄어들지 않는 양식을 먹을 때, 헤어지지 않는 영원한 포옹으로 안기울 때,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이 모든 것을 사랑합니다.”
    • 연지골
    • 연지골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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