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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 재산
    ◇몇해전 서울의 한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해 30여년간 열심히 목회한 끝에 쓸만한 교회당과 교육관을 짓고, 서울 근교에 청소년 수련원도 설립하는 등 꽤 성공했다는 한 군소교단 목회자는 교회본당과 교육관을 교인들 몰래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목사와 매매계약서를 쓰고 아들에게 매도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주일예배에서 광고하기를 ‘이제부터 이 교회의 주인은 아무개 목사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장로들이 교회의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니 교회가 그 아들에게 매도된 사실을 알고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교인 공동체의 총유(總有)재산인 교회당을 목사가 임의로 아들에게 매도한 것은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재판이 진행되어 목사측과 장로측이 재판정에서 만났다. 재판정에 증인으로 나온 그 목사왈, “재판장님, 내가 30여년동안 밤낮으로 고생하여 만든 재산을 저 놈들이 빼앗아가려 하니 지켜주시오”라며, 장로들을 향해 도둑놈들이라고 소리쳤다.◇또 이런 사례도 있다. 교단과 신학교를 설립해 중급교단을 만든 한 목사는 교단신학교를 아들 딸 며느리 등 자기 식구들을 내세워 운영하면서 꽤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교단의 교세가 늘어나면서 교단목사들이 ‘이제 신학교를 총회가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서자, 그 모든 것이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 그 목사는 증경총회장들을 모아놓고 ‘교단과 신학교도 모두 내 사유재산’이라고 주장했다. 끝내 교단이 갈라졌다. 그런데도 이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교단도 한국교회의 정통성을 가졌다는 연합단체에서 회원교단으로 활동하고 있다.◇종교집단에서 신도들이 낸 헌금으로 만들어진 재산을 그 종교의 지도자가 마음대로 소유권을 행사할 수 있는 종교집단은 ‘무당네’밖에 없다. 그외 모든 종교집단의 재산은 신도들의 총유재산(그 공동체에 그 재산의 소유권과 관리 처분권이 있다는 의미)이다. 특히 기독교에서 교회의 재산은 기독교 전체의 것이고, 개교회의 재산은 그 교회에 속한 신도 모두의 총유이다. 어떻게 목사가 그 교회의 재산을 개인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한국교회에 이런 목사들이 어찌 이 두 사례만이겠는가. 지금 꽤 잘 나간다는 은퇴목사들의 퇴직위로금 경쟁도 바로 이런 정신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은 ‘내가 이 만큼 교회재산을 늘려놓았으니 교인들이 헌금한 돈 몇십억쯤 챙겨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런 목사는 교회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았을 뿐, ‘교회’가 뭔지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돈 몇 푼 가졌다고 교계 지도자 행세를 한다.◇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모든 것이 공적(公的)인 것이다. 여기에는 사적(私的)인 것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교회를 사유화(私有化) 하려는 자들의 정신세계는 돈을 숭배하는 물신숭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은퇴목회자들이 빼간 교회의 재산은 교회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신도들이 깨어있어야 교회재산도 지킬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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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08
  • 변화산 사건의 교훈
    ◇마태복음 17장에는 저 유명한 변화산 사건이 나온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는데,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무엇인가 의논하는 장면이 펼쳐진 것이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가운데, 베드로가 불쑥 예수님께 우리가 모세와 엘리야와 주님을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여기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했다. 이에 제자들이 놀라 두려워서 엎드려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고 했다. 이에 제자들이 눈을 들어보니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1-8)는 것이다.◇여기에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가 나온다.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들에게 전한 자로 신명기 34장에 의하면, 이 변화산 사건으로부터 1300여년 전에 이미 죽어 장사된 사람이다(신 34:1-8). 성경은 이 모세의 시체를 놓고 천사장 미카엘이 마귀와 소유권을 다투었다는 기록도 남기고 있다(유 1:9). 또 엘리야는 구약 예언자의 대표자로서 이 변화산 사건으로부터 900년 전 사람이다. 그는 열왕기하 2장에 의하면, 그의 제자 엘리사가 보는 앞에서 불수레와 불말이 호위하는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다. 둘 다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자들이다. 예수는 모세가 전한 율법을 완성하고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킨 분으로, 변화산 사건은 곧 닥칠 십자가 희생을 앞두고 있는 때였다.◇그런데 분문은 구름 속에서 난 음성을 듣고 제자들은 엎드려 심히 놀라고 두려움에 떨었다. 그렇다면 이 음성은 그 옛날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던 음성이나(출 3:4),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 이세벨의 낯이 두려워 도망가 숨어있던 엘리야에게 들려운 세미한 음성(왕상 19:12)이 아니라,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이 들은 책망의 음성(행 9;4)과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왜 하나님은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를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여기 있는 것이 좋겠다는 베드로의 말에 그처럼 다급한 음성으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했을까? 이는 바로 이어지는 구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에 있다.◇베드로는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을 동격에 놓고 초막 셋을 짓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는 모세나 엘리야와는 그 신분이 다름을 말하는 것이고, 예수의 복음이 모세의 율법이나, 엘리야의 에언과 동일시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다”(히 3:3-6). 따라서 복음은 생명의 떡이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과한 예수 밖에는 없다는 사실을 변화산 사건은 증언하고 있다. 복음은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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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24
  • 태극(太極)
    ◇국민안전처 장관 내정자(박승주)가 서울 도심 광화문 한복판에서 열린 무속 행사의 주요 인사로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 그 자격에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과 단(檀)민족 구국천제 재현 문화행사”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 행사는 소위 정신문화예술인총연합회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인 단체가 주최한 ‘굿판’이다. 그런데 이날 이들이 입고 나온 민속 의상에는 모두 커다란 태극무늬를 달고 있다. 태극이 곧 그들의 정신세계를 상징한다는 뜻이다. 한국의 무당네 집은 붉은 깃발과 하얀 깃발로 표시하지만, 중국의 무당네 집은 태극으로 표시한다. 그들의 복장 또한 태극이다.◇그러면 태극은 무엇인가? 한 마다로 태극은 중국인의 창조신(創造神)이다. 유교철학 주역계사 상 10장에는 “태극(太極)으로부터 천지만물이 처음 났으니, 태극이 음양(陰陽)을 낳고, 음양이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팔괘(八卦)를 낳았다”고 했다. 이 말은 우주의 창조와 섭리가 태극 원리에 의해 지배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또 태극이 낳았다는 ‘음양’이란 무엇인가? 우주가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천지의 조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양과 음은 곧 해=달, 하늘=땅, 낮=밤, 영혼=육체, 정신=물질, 남자=여자, 의식=무의식, 이성=감성, 남쪽=북쪽, 봄=가을, 여름=겨울 등으로 대비된다.◇이 음양의 두 상대적 에너지가 우주 안에서 질서 있게 작용하는 것을 ‘조화’라고 하는데, 이 에너지를 곧 기(氣)라고 부른다. 양(陽)의 에너지를 양기(陽氣)라고 하고, 음(陰)의 에너지를 음기(陰氣)라고 한다. 이 음양의 기는 네 가지 상징인 사상(四象; 즉 太陽, 少陽, 太陰, 少陰)과 우주간에 운행하는 다섯 가지 원기(元氣) 즉 오행(五行=水火木金土)에 의해서 우주의 삼라만상이 서로 생하기도 하고(相生), 서로 극하기도 하면서(相剋) 파동치며 운행하는데, 이 파동이 모여서 물질이 되고, 사람이 되며, 세상이 된다고 믿는 사상이다. ◇하나님의 오묘하고 신묘막측한 창조 섭리 원리를 인간이 모두 다 알 수는 없다. 중국의 선현들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어느 정도 이해하려는 방법으로 이 음양오행설의 이론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피조물인 이 음양오행설이 창조주의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로마서 8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든 이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신성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어져서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 그리하여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태극음양 사상은 인간의 종교성의 타락으로 인해 창조주의 자리에 앉은 것이다. 그리하여 피조물을 주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타락한 상징이 되었다. 이 태극 사상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한 나라의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장관이 된다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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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10
  • 최태민
    ◇1970년대 중반 ‘대한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자신이 총재 명함을 들고 ‘목사’ 행세를 해온 최태민은 기성교회 목사는 아니다. 그는 한국 기독교가 운영하는 어떤 신학교에서도 공부한 일이 없고, 정식으로 목사 양성과정을 거친 일이 없다. 한때 절간에서 승려행세를 하다가 1973년경 자신이 만든 ‘영세계’(靈世界)라는 신종교집단에서 칙사로 불렸다. 그런데 최씨가 1975년 이 영세계를 구국선교단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어느날 목사 호칭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당시 목사안수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이비적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국선교단은 전국에 지부를 만들고 ‘십자군’이라 부르며, 그들은 군복에 별이 몇 개씩 붙은 계급장을 달고 다녔다.◇그후 유신 권력 주변에서 새마음봉사단을 만들어 박대통령의 딸 근혜씨를 총재에 앉히고 전국에 경로병원 등을 운영하는 등 행세를 하며 시중에 많은 루머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사이비성이 있는 기성교회 목사들이 가담해 마치 교계단체처럼 행세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교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런데 이번에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 국정 농단이라는 또다른 스캔들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다시 한번 ‘최태민 목사’가 언론에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언론이 최태민을 목사라고 호칭하면서 어떤 진보적 신학교를 졸업했다는 등 확인되지 아니한 정보를 전파하기도 해, 마치 기독교계에 그런 인물이 있있던 것처럼 오해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그러나 최태민은 70년대 초에 무자격자에게 안수를 해주고 몇 푼의 돈을 챙겨먹던 기독교계 주변에 서식하던 사이비적 집단에서 안수를 받았다. 그 교단이 조○종 목사가 운영하던 종합총회이다. 종합총회는 잠실의 한 아파트에 본부를 두고 몇 십만원씩에 신학교 졸업장을 매매하고 목사안수를 해주던 총회이다. 한국교계에 이런 사이비 교단이 많이 섞여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진 일이다. 심지어 통일교 신도들이 만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이름을 가진 교단도 있고, 전도관 출신 인사들 끼리 만든 교단도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종교자유에 따라 누구나 교회도 설립할 수 있고, 교단도 만들 수 있다. 교단이나 교회를 기독교계 어느 기관의 허가를 받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일이 벌어지는 원인은 장로교가 수백 개의 교단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교계의 분열로 인해 기성교회가 그 같은 사이비적 교단의 출현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상실한 것이다. ‘똥파리’는 썩는 냄새가 나는 곳에 날아와 쉬를 슨다. 교단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그런 똥피리들이 붙어 쉬를 슬 자리가 없는 일이다. 분열과 분쟁을 일삼는 한국교계에 그 책임의 일단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목사 이름으로 사회와 교회를 우롱할 사이비들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교계를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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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02
  • 기성교회 안에 도사린 ‘사이비’들
    ◇한국기독교는 중세 기독교의 더러운 유산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중세교회는 가톨릭의 교황주의를 떠받치는 신학과 교리와 다른 주장은 모두가 이단으로 몰아 처단했다. 세례는 믿는 자의 고백에 바탕해야 한다는 주장도, 평신도도 전도할 수 있고 설교할 수 있다는 주장도, 교회의 최고 권위는 교황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는 주장도 모두 이단으로 몰려 사형에 처해졌다. 심지어 평신도가 성경을 읽는 것도 금지됐다. 이는 가톨릭의 통일성이 기독교 역사에 남긴 비극이다. 오늘날 한국기독교가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장로교가 대세를 이루는 한국기독교는 소위 개혁주의 신학과 다른 것은 모두 이단시 된다. 곧 ‘나하고 다른 것은 모두 이단이다’라는 것이다. 신학에서는 ‘다른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다.◇통일성 만을 강조하던 로마 가톨릭 신앙을 떠나 만인사제론과 ‘오직 성경’을 주창한 프로테스탄트는 그 성경을 보는 눈에 따라 다양한 교파를 양산했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루터주의(루터파)와 개혁주의(쯔빙글리파)와 칼빈주의(장로회파)가 먼저 일어났으나, 이어 재침례파, 환원파, 자유파 등 다양한 교파가 나타났다. 새로운 교파가 생긴다는 것은 그 신앙집단이 주장하는 신학이 기성 교파의 것과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트는 처음부터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 왔다. 다양성 속의 일치란 ‘너와 내가 무엇이 다른가를 찾는 것이 아니고, 너와 내가 무엇이 같은가’를 찾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믿는 믿음이다. 그것이 곧 복음이다. 이 복음을 믿는 자는 모두가 형제요 자매이다.◇그런데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이단’이란 말만 나오면 이성을 잃는다. 사실 이단은 역사적 기독교의 정통교리라는 벽 앞에 세워보면 단번에 드러난다. 구태여 그것을 연구해 봐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을 알고 교회의 역사와 교리사 및 신학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상식선에서도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남의 심오한 영성체험을 자신이 체험한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시 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어떤 이단감별사들은 아예 “이대로 가면 한국교회는 이단 천지가 된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연구’라는 명목 아래 끝없이 이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이단보다 더 무서운 것이 한국교회 안에는 짝 갈렸다. 정통교리로도 판단하기 어려운 기성교회 안에 도사리고 있는 ‘사이비’짓들이다. 교회 안의 사이비는 정통개혁주의를 표방하고 기성교회의 교권집단의 보호를 받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참진리와 사이비 신앙이 구분이 어렵게 된다. 중세교회가 그랬다. 오늘날 한국교회도 이 함정에 빠져 있다. 자신들이 사이비짓을 하면서 남의 신앙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다. 이 사이비짓은 꽤 이름있는 목회자들에게서도 발견되고, 교계에서 내노라 하는 인사들에게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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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21
  • 박해하는 ‘장로교’
    ◇중세 종교개혁 시대에는 장로교도 이단이었다. 프랑스의 칼빈파(위그노)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가톨릭의 박해를 받았다. 칼빈파는 교회를 세울 수도 없었고, 무기 소지, 군대 모집, 세금 징수, 순회 설교 등을 일절 금지당했다. 프랑스의 장로교도인 위그노들은 1572년 8월 24일 성 바돌로매 축제일에 벌어진 대학살에서 7만 여명이 희생되었다. 그래도 양심의 자유와 예배의 자유를 양보할 수 없었던 칼빈파는 여덟 차례(1562-1563년, 1567-1568년, 1568-1570년, 1572-1573년, 1574-1576년, 1577년, 1579-1580년, 1585-1598년)의 내전 끝에 1589년 8월 4일 생클루선언과 1591년 낭트칙령으로 공적인 예배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생클루선언은 이전에 칼빈파 예배가 거행되던 도시들과 장소에서 다시금 칼빈파 예배를 허용한 것이고, 낭트칙령은 칼빈파가 새로운 교회를 건축할 수 도 있고 종을 달 수도 있는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장로교가 이단으로 몰려 박해받은 것은 프랑스뿐만 아니다. 화란에서도 장로교는 이단으로 몰려 수만명이 죽임을 당했다. 그런 박해받던 장로교가 한국에서는 박해하는 종교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통합측 제101회 총회는 그들이 이단이든, 아니든 일단 ‘이단혐의를 받는 자’는 무조건 짓밟아도 좋다는 살벌함을 드러냈다. 자신들이 단 한 차례의 면담도 변호도 소명 기회도 허용하지 않은 채, 멋대로 이단으로 정죄해 놓고, 마치 죽일 놈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이 ‘사면’운운하며, 2년간 통합측의 지도를 받으라며 ‘갑질’을 해대더니, 다시 ‘한 번 이단은 영원한 이단’이라며 그들의 인권을 무참히 부정해버렸다. 그들은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 셈이다.◇장로교 정치 원리는 ‘교회의 정의’보다 ‘양심의 자유’가 우선한다. 제1장 원리 제1조 양심의 자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그가 각인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어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성경에 위반하거나 지나친 교훈이나 명령을 받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신앙에 대하여 속박을 받지 않고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통합측은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총회의 결의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회를 이단으로 결의하고 그들과 담을 쌓고 멀리했다. 따라서 장로교에 의해 이단혐의자로 규정된 자들은 그 양심의 자유를 부정당한 것이다.◇만국장로교회가 믿고 따르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31장 ‘대회와 회의에 관하여’ 제3항은 총회의 결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사도시대로부터 지방회의나 총회의 구별 없이 가진 모든 대회와 회의는 과오를 범할 수도 있었으며 실제로 여러 번 과오를 범해왔다. 그러므로 그 회의를 믿음과 실생활의 법칙으로 삼을 수 없고, 이 두 가지를 돕는 것에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무엇이나 ‘우리 총회가 그렇게 결정했다’며 총회의 결의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고 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교권주의의 대표적 횡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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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0-12
  • 통합측 교단의 오만
    ◇“그동안 우리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회를 이단으로 결의하고 그들과 담을 쌓고 지내왔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이단과 사이비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측면에서 우리와 같이 성경과 기독교를 믿고 고백하는 교리에 근거한 형제들까지 이단과 사이비로 정죄하고 담을 쌓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도 우리와 같이 성경과 복음,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장통합측 제100회기 총회 특별사면위원회가 김기동, 박윤식, 이명범, 변승우 목사에 대해 사면을 발표하면서 선언한 총회장 담화문의 내용이다.◇ 담화문은 이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난날 자신들이 행한 적절하지 못한 신앙행위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개하고 용서를 바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대할 때, 성경과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 아닌 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거스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용서는 권리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입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에큐메니칼 역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선언문이다. 그러나 통합측의 이 선언문은 채 열흘이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통합측의 원로인 증경총회장들이 이 역사적 선언문을 발표한 총회장을 겁박해 취소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 열린 제101회 총회에서 총대들은 사면결의 자체도 무산시켰다. 이것이 작금 한국교회의 수준이다. 이로써 통합측은 교계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지도력을 잃었고, 또한 한국교회는 사회에 대한 지도력도 상실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통합측은 그들 자신들이 인정한 대로 통합측 교단의 교회와 성도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교리를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갑질’을 해왔다.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이 이단으로 몰려 상처를 받고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다. 이들은 어느날 갑자기 ‘이단 교회’ 교인이라는 주홍글씨를 단 채로 약혼이 취소되고, 직장에서 일터에서 소외 당해왔다. 차라리 복음을 몰랐으면 다른 종교라도 기웃거릴 터인데,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어” 그리스도를 배신할 수는 없기에, 마치 문둥병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기독교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수십수백억원씩 돈을 들여가며 선교도 하고 전도도 하는데, 왜 어째서 한국교회와 함께 가고 싶다는 ‘형제들’을 이단으로 내친단 말인가? 당신네의 신앙은 옳고 상대의 신앙은 틀렸다고 여기는 그 오만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총회장 한 번 되려고 수십억원씩 돈을 쓰는 타락한 교단이 어찌 남의 눈의 먼지를 탓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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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09-29
  • 황색 십자군
    ◇이슬람에 정복된 성지(聖地)를 회복한다는 명분하에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일으킨 중세 ‘십자군’은 1291년까지 약 2백년간 지속되었다. 그런데 성지에서 이슬람을 몰아내기 위한 십자군은 동양 몽골에서도 일어났다. 이를 일명 ‘황색 십자군’이라 한다. 몽골은 1253년 오논 강 기슭에서 쿠릴타이(장수들로 구성된 족장회의)를 개최하고, 중국에서의 전쟁의 종결을 위해서는 쿠빌라이에게 맡기고, 이슬람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해방시키는 일은 훌레구에게 맡겼다. 당시 훌레구는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쿠릴타이에서 그가 받은 명령은 기독교 신앙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훌레구는 이란에 세운 일칸국의 칸(황제)이였고, 그의 아내 도쿠즈 카툰은 케라이트족 기독교인이었다. 또한 지휘관 키트 부카(Kit-Buka)는 나이만족으로서 열렬한 네스토리우스 기독교인이었다. ◇‘황색 십자군’은 아르메니아의 미노르(길리기아) 왕 헤토움 1세와도 동맹을 맺었다. 헤토움 1세는 친히 대칸 몽케의 본거지에 가서 7개 조항의 조약을 제시했다. 그 조약은 ①모든 백성과 함께(칸이) 세례를 받을 것, ② 기독교인과 타타르(몽골)족 사이에 우정을 확립할 것, ③ 성직자에게 세금을 면제할 것, ④ 성지를 (회복하면) 기독교인들에게 반환할 것, ⑤ 바그다드의 칼리프를 제거할 것, ⑥ 왕이 요청하면 모든 타타르 지휘관들은 지체 없이 도움을 제공할 것, ⑦ 무슬림이 이전에 아르메니아인에게서 빼앗아 간 땅을 반환할 것 등이었다. 칸은 헤토움 1세가 제시한 조건에 응할 것을 약속했다. ◇군사 원정은 1256년 1월 아무다리야 강을 넘어 1257년 말에 이란의 모든 이스마일리파의 요새를 일소하고, 1258년 2월에는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훌레구는 신조(信條)와 상관없이 점령지의 모든 기독교인들에 대한 살육과 약탈을 금했다. 이어 몽골군은 헤토움 1세와 그의 사위 안티오크의 군주 보에문트 6세의 병력을 합치고 시리아로 진격했다. 1259년 봄에는 몽골군이 팔레스타인에 도달했다. 성지에서 이슬람 지배의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교황의 특사는 자신들의 허락없이 몽골족과 동맹을 맺은 보에문트를 교회에서 파문하고, 십자군 기사들과 수도사들은 몽골 십자군을 배신했다. ◇1259년 가을, 훌레구는 전장(戰場)에서 대칸 몽케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몽골 제국에서는 대칸이 죽으면 모든 일이 중지되었고, 징기스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쿠릴타이에 직접 출석할 것을 요구 받았다. 따라서 훌레구는 키트 부카가 지휘하는 2만명의 병력만 팔레스타인에 남기고 이란으로 되돌아갔다. 그후 시돈을 통치하던 줄리앙 백작의 십자군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몽골 정찰대를 덮쳤다. 격노한 몽골군은 시돈을 살육했고, 십자군은 몽골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틈에 쿠투즈가 이끄는 이집트의 맘루크(국가노예) 군사가 예루살렘 왕국의 영토를 통과해 몽골군 배후의 갈릴리로 들어가 몽골군을 덮쳤다. 이로써 황색 십자군은 분쇄되었다. 쿠투즈는 승리 후에 다마스쿠스로 입성하면서 그 곳에 사는 모든 기독교인을 살육했다.
    • 연지골
    • 연지골
    2016-09-08
  • 초원 지대의 복음화
    ◇12, 13세기 몽골과 중앙아시아 전역에는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었다. 초원의 가장 유력한 종족인 케레이트족과 나이만족은 부족 전체가 기독교를 믿었고, 웅구트족과 메르키트족에도 기독교인이 많았다. 초원을 통일한 징기스칸은 4명의 아들 중 셋째 오구타이와 넷째 톨루이를 기독교 여성들과 결혼시켰다. 징기스칸에 이어 대카안(황제)이 된 오구타이는 메르키트족 토레게나(Toregena)와 결혼했고, 징기스칸 사후 임시 대칸(1227-1229)을 지낸 막내 톨루이는 케라이트족 공주 소르칵타니 베키(Sorqoqtani-Beki)와 결혼했다. 칸의 본거지에는 교회가 세워졌고, 징기스칸의 손자 손녀들은 기독교 신앙을 존중하도록 양육되었다. 소르칵타니와 그 자녀들 주위에는 언제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몰려들었다.◇톨루이와 소르칵타니의 아들들은 몽케, 훌레구, 쿠빌라이, 아릭 부케이다. 몽케는 제4대 대카안으로 황제가 되었고, 훌레구는 이란에서 일칸국을 세워 황제가 되었으며, 쿠빌라이는 중국에 원나라를 세워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아릭 부케는 몽케를 이어 몽골의 대카안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기독교인 소르칵타니의 네 아들들은 모두 황제가 되었다. 심지어 소르칵타니는 섭정의 위치에 있었다. 이에 따라 궁정에는 수 많은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이 정치권력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쯤되면 사실상 몽골은 기독교 사상의 영향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동양의 복음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세계 기독교는 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서방 라틴 로마교회나 동방 그리스 정교회는 동양의 네스토리우스교도는 가톨릭 유럽의 친구도 형제도 아니고, 이단이자 적일 뿐이라고 여겼다. 이는 순전히 자신들과 교리와 역사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초원 지대 유목민들은 기독교인이 되었어도 그리스인들 눈에는 여전히 야만인이었고, 라틴인들 눈에는 여전히 미개인이었으며, 이교도는 아니지만 이단자들이었다. 서방 기독교는 동양의 네스토리우스교회를 같은 그리스도교회의 형제로 여기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정교도들은 교리의 문제보다 마유주(馬乳酒)를 마시는 것을 죄로 여겨 마유주를 마시는 유목민들을 마치 기독교 신앙을 버린 사람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유목민들이 마유주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기독교의 교리주의가 낳은 맹점이다.◇기독교가 본래의 가르침대로 복음전파에만 충실했다면 세계는 지금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그 모습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기독교의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이때 놓친 것이다. 그리하여 동양에서 꽃을 피었던 네스토리우스 기독교는 서방교회와 단절된 채 900여년을 버티다가 초원에서 사라져 갔다. 그로부터 8백여년이 지난 지금 복음은 아메리카를 거쳐 다시 동양에 상륙하여 그 옛날 네스토리우스교도들이 이루고자 했던 초원 지대의 복음화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 연지골
    • 연지골
    2016-09-01
  • 기업교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남긴 유일한 기관인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것(마 16:18), 자기 피로 사신 것(행 20:28),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딤전 3:15),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고전 1:2), 만세와 만대에 감취었던 비밀(골 1:26), 최후의 승리자(계 21장)가 그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성령으로 거듭난 인격들이 이룩한 사랑의 공동체이지, 예배당이란 이름의 건축물은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예배당이란 이름의 화려한 건축물을 교회로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거기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오는 신자들 역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 성도(聖徒)로서 성화된 삶의 목적이 아니라, 세속적인 사심(私心)과 개인주의(個人主義)에 병든 무리들이 기복심(祈福心)을 채우기 위해 모여든다.◇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피로 사신 참교회의 원형은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120 문도의 성령받은 공동체이다. 그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영적 가족으로 거듭나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기에 힘쓰며 하나님을 찬미하고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생활을 했다. 서로의 얼굴을 가족처럼 알고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함께 나누는 영적 형제들로 결속된 사랑의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였다. 그러나 거대하게 기업화 된 현대교회는 서로가 서로간에 얼굴도 제대로 몰르고 교제할 수도 없고, 구제할 수도 없는 의식화 된 교회로 전락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무리 속에서 소외(疎外)를 느낀다.◇성령의 임하심으로 하나된 사랑의 공동체는, 첫 사람 아담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그 배필 하와가 이루어졌듯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것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온 것은 무엇인가? 물과 피이다.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요1서 5:5-7). “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면 그것이 무슨 이름을 가졌든, 또는 어떤 공교한 교리를 내세우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성령의 임하심과 물과 피로 이루어진 사랑의 공동체만이 예수의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사심(私心)과 개인주의를 버리지 못한 기복주의자(祈福主義者)들이 상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교회는 복음화(福音化)란 이름의 상업주의로 변질된 종교기업화(宗敎企業化)에 지나지 않는다.
    • 연지골
    • 연지골
    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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