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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과 성령
    ◇2천년의 그리스도의 교회 역사는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끌려왔다. 하나는 성령의 사역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의 사역이다. 그 예로, 초대교회는 성령의 사역이, 종교개혁 시대에는 성경의 사역이 표면에 강하게 나타났다. 어느 한 쪽이 약화되면 다른 한 쪽이 표면에 나타나 교회를 이끄는 상승작용을 한다. 그리고 교권주의가 교회를 강력히 통치할 땐 성령도, 성경도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채 잠복했다. 중세 가톨릭 시대가 대표적인 예이다.◇20세기 초, 현대교회에 성령의 사역이 강력히 나타난 것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고등비평으로 인하여 성경의 권위가 심각하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가 회복되면 성령의 사역은 표면에 크게 드러나지 않고, 성도 각 개인의 심령에 내주(內住)함으로 역사하신다.◇현대교회의 성령운동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운동이나, 고린도교회의 성령운동과 달리, 은사주의 현상에 치우친 면이 강하다. 그로인해 기독교의 계시신앙이 신비체험이나 은사체험에 매몰되고 있다. 그래서 마치 방언, 예언, 환상, 입신, 엑스타시 등 현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특히 오순절 파는 아예 방언을 할 줄 모르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방언은사를 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방언과 고린도교회 방언 그리고 현대교회의 방언이 각기 다르다. 사도행전의 방언은 사람을 향해 한 것이지만, 고린도교회 방언은 하나님을 향해 한 것이다. 또 사도행전 방언은 듣는 사람이 각기 자기 말로 들었으나, 고린도교회 방언은 통역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교회의 방언은 개인의 신앙생활의 향상을 위한 것이다.◇그러면 성령운동의 현상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무시하고 성경만을 강조해야 하는가, 또 성경만을 강조하다 보면 율법주의이고, 바리새적인 신앙형태로 굳어질 우려가 있다고 해서 성령운동의 현상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은 보편적 신앙생활에 있어서 둘 다 옳은 태도가 아니다. 바람직한 신앙생활은 성령의 조명(照明)을 통하여 성경을 깊이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시는 성경에 나타나 있다. 그래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한다. 그리고 성경의 저자는 성령님이다. 따라서 성경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는 성령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다. 참된 설교자와 신비주의자의 차이는 성경보다 성령을 앞세우는 사람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기본은 성경이 규범이 되어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에는 피조세계의 조명과 창조와 섭리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진리가 보다 잘 보존되고 전파되며 육체의 타락과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하여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하며 위로하시기 위함이다. 이와같은 이유로 진리를 온전히 기록한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성경이 완성된 후에는 이전에 하나님께서 자기백성에게 지신의 뜻을 직접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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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20
  • 성경의 기본원리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창조’ ‘타락’ ‘언약’ ‘구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님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주권을 주셨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첫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이브는 간교한 뱀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실과를 먹고 영원한 생명을 잃었다. 그것이 인간의 원죄이고 타락이다. 당시 인류는 아담의 허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인류가 범죄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순종한 인간을 그대로 버려둘 수 없어 구속의 언약을 맺고, 때가 차매 그 언약에 따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십자가에서 대속하시고 인류를 구원하셨다.◇인간의 타락의 결과는 ‘가난’ ‘고통’‘질병’‘죽음’이었다. 땅은 저주를 받아 온 땅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인간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자식을 낳으며, 밭의 채소만 겨우 먹고 사는 궁색한 삶에 처해졌다. 이제 인간에게는 배고픔과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따라왔다. 그리고 육신은 필경 흙으로 돌아간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축복을 받은 인간은 그 복을 빼앗기고, 이렇게 하여 가난과 질병과 죽음의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순종하고 배반한 인간을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시다가 모든 날 마지막에 그 아들로 직접 말씀하셨다”(히 1;1). 그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아직 이 언약의 메시야가 오지 않았다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고, 사도들은 약속대로 그 언약의 메시야가 이미 오셨다며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은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여기에서 갈라졌다. 복음서의 마태는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셨다고 믿었고, 마가는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종’으로 오셨다고 믿었으며, 누가는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인자’로 오셨다고 믿었고, 요한은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고 믿었다. 이것이 성경의 기본원리이다.◇예수는 “나는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아무도 없느니라”(요 14:16)라고 말씀한다. 그러므로 예수가 곧 길이다. 그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다. 예수가 곧 진리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아는 것이 유일한 진리이다. 예수가 곧 생명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예수가 곧 부활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 11:25). 예수가 곧 하늘로서 온 생명의 떡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 6:48). 예수는 생명의 빛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이것이 곧 잃은 생명을 회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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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6-07
  • 전도자와 소명
    ◇성경에는 두 종류의 예언자가 있다. 하나는 ‘구두 예언자’이고, 다른 하나는 ‘문서 예언자’이다. 그들의 예언은 성경으로 엮여져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를 깨닫게 한다. 오늘날 설교자들과 함께, 문서 전도자들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소명자로 부름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그 사명이 설교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목회의 일’이다. 목회는 곧 하나님 나라 운동이다. ◇전도자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누구나 이 하나님 나라 운동에 동참한 자이다. 이것을 우리는 ‘소명’(召命)이라고 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소명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 어떤 기쁨과 충만이 있는 자이다. 그것이 없이 이 일에 나선다면 전도자보다 따분한 직업은 따로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성 우물가에서 먹을 것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했다. 그 양식은 먹음으로 줄어드는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늘로서 내려온 떡, 곧 그것을 먹음으로써 영생하도록 하는 생명의 양식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누구나 생명의 양식인 이 떡을 먹어야 비로소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다.◇전도자는 이 떡을 배불리 먹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다. 전도자로 부름 받은 자는 세상의 것에 한 눈을 빼앗기거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소명을 가진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의 가치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미련해 보이고, 어찌보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에게는 확실한 목표와 확고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전도자로 부름을 받아 그 길에 나선 자는 좌로나 우로나 기웃거리지 말고 오로지 소명에 생명을 걸어야 한다. 소명을 받고도 돈을 좀 벌어서 가족들이 먹고 살게 해놓고 그 길에 나서겠다는 사람은 이미 실패한 사람이다. 이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다. ◇성경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라고 했다. 이 비밀이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골 1:26)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기독교는 이 복음의 비밀을 붙잡은 사람들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키는 공동체이다. 당장 내일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싸줄 양식이 떨어져도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겠지 하는 믿음으로 오늘을 버티는 전도자는 좀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이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붙잡은 사람이다. 여러분은 무엇을 붙잡았는가? 누구를 붙잡았는가? 모세나 엘리야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예수를 붙잡은 사람은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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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24
  • 땅에 쓰신 글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끌고 와 예수께 고발한 사건이 나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고 물었다. 성경은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일러라”라고 첨언하고 있다. 이에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두 번째 땅에 쓰시니 저희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씩 흩어져 갔다”(3-9)라고 기록하고 있다.◇여기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양심이 화인(火印) 맞은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과연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흩어져 갔을까! 오히려 자기들은 아무 죄도 없는 것처럼 먼저 나서서 돌을 던지지 않았을까?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은 것은 예수님이 땅에 쓰신 글 때문이라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선택하고 3년동안 천국복음을 가르치셨으면서도 글은 단 한 줄도 남기지 않으셨다. 그래서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가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고 의아해 했다(요 7:15). 예수님이 글을 썼다는 기록은 본문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 글 내용이 무엇인지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로지 사랑을 설파해 왔다. 그러나 신명기 22장 22절에는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이라”고 되어 있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은 죽을 운명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만약에 예수님이 그 여인을 사랑의 정신에 의해서 용서하라고 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고, 율법대로 실행하라고 한다면 여태껏 예수님이 설파해 온 사랑은 거짓이 되고 허위가 되어 예수는 가짜 선생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한 처지에 처했다. 그런데 고발자들은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데려오면서도 남자는 데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 남자가 서기관이거나, 바리새인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에 대해, 한 설교자는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처음에 땅에 쓰신 글은 “그 남자도 데려오라”고 쓰셨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도 그들이 계속 이 여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빨리 말하라고 다그치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하시고, 이번에는 또 다시 땅에 “그 남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당신들을 율법에 고발하겠다”고 쓰셨을 것이라고 설교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요 12:47). 율법을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고발하겠다는 말에 겁을 먹고 서로 눈치를 보며 하나씩 하나씩 흩어져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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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5-10
  • 로트르담 대성당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로트르담 대성당이 4월 16일 화재로 불탔다. 파리대주교좌 성당이기도 한 로트르담 대성당은 1145년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초로 세느 강 시테 섬에 건축된 성당이다. 그런데 노트르담 성당은 건축된지 50여년 만인 1194년에도 대화재로 성당 서쪽 부분이 소실되어 30여년에 걸쳐 재건축 되었고, 또 프랑스 혁명 때 심하게 파손되어 19세기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한 바 있다. 성당 내부는 172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또 내외 벽면에는 성경 내용을 담은 4000개의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다행인 것은 그 유명한 ‘장미창’과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번 화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유럽이나 남미 등 가톨릭 국가의 주요도시에는 대성당이 많이 있다. 이들 성당은 대부분 성모 마리아에게 헌당된 것으로 조교좌 성당으로 쓰인다. 로트르담 대성당도 성모 마리아에게 헌당되었다. 로트르담(Notre Dame)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인류의 최고의 귀부인인 성모 마리아를 지칭한다. 그러면 왜 이렇게 많은 대성당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헌당되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한 로고스인 말씀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 예수로 오셨기 때문이다(눅 1:26-38). 마리아의 순종이 없었다면 인류 구원의 역사는 또 다른 순종하는 마리아가 태어날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독교는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그 예수를 낳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후 성모 마리아는 로마교회에 의해 차츰 신격화 되어 ‘천상의 모후’ ‘조물주의 모친’ ‘지혜의 보좌’ ‘공경하올 그릇’ ‘황금의 전’ ‘언약의 궤’ ‘하늘의 문’ ‘천신의 여왕’이 되어(천주교의 성모덕서 기도문) 성경의 마리아와 멀어져갔다. 성경에는 이 마리아에 대해 ‘주님의 어머니’(눅 1:14), ‘예수의 어머니’(요 2:1), ‘그 어머니’(요 2:12), ‘네 어머니’(요 19:27), 또는 “내 주의 모친”(눅1:43), “그 모친”(요 19:25), “예수의 모친”(행 1:14)이라고 불리웠을뿐,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불리운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로마교회는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마리아가 예수를 수태할 때 원죄에서 면죄되어 무죄하며, 예수님처럼 육체가 승천했다고 믿으며, 마리아를 또 다른 중보자로 세워 중보자이신 예수에게 보다 자애로운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사람이 더 많다. “오, 거룩하신 하나님의 어머니시여, 우리는 당신의 보호의 품안으로 들어갑니다” “원죄 없으신 여왕이여, 세상의 죄를 면하여 주시는 천주의 고양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한다.◇마리아는 인류의 모든 여인 가운데서 가장 공경 받아야 할 여인임엔 틀림 없다. 그를 통해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류의 구세주로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도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 한 인간임으로 숭배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역사적 기독교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부여할 때, 그것은 마리아를 높여 숭배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고,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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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26
  • 보혜사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4:16, 15:26). 이는 주께서 사도들에게 내가 아버지께로 가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한 내용이다. 주님은 그 약속된 다른 보혜사가 곧 성령이심을 밝혔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고 했다.◇그런데 이처럼 성경이 보혜사에 대해 명백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보혜사에 대한 오해가 많다. 그러면 보혜사는 누구인가? 보혜사는 인류 구원사역을 위해 하나님 안에 계시던 존재이다. 첫째는 ‘독생자’(獨生子)로서 중보자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창조자 하나님 품 안에서 ‘나신 분’으로, 때가 차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로 태어나셨다. 이것을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이라 한다. 둘째는 ‘다른 보혜사’로서 성령(聖靈)이시다. 성령은 인간을 구원하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신 분’이다. 따라서 보혜사는 성삼위(聖三位) 하나님이시다.◇그런데 때때로 사단의 유혹에 빠져 성경을 오각(誤覺)한 사이비들 중에는 자신이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이는 성삼위 하나님을 참칭하는 참람함이다. 참빛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된 이후, 세상에는 재림 예수나, 보혜사를 참칭하는 사이비들이 수없이 나타났다. 사단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것이다. 이는 진리에 대한 비진리이고, 빛에 대한 어두움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여기에 동기상응(同氣相應)하고, 유유상종(類類相從)한다. 자신들 속에 사이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기에 현혹되어 몰려다니다 끝내는 패가망신한다. 한국교회 주변에도 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이비들이 출현했고, 또 그들을 따라다니다 신앙도 잃고 재산도 잃은 사람도 많다.◇앞으로도 우리사회에 ‘재림 예수’와 ‘보혜사’는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는 모두가 가짜이다. 거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성경은 재림 예수와 보혜사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렇게 온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재림 예수는 초림 예수처럼 더 이상 여인의 몸을 통해 어린 아이로 오시지 않는다. 재림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신다”(행 1:11). 그것도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하늘로 쫓아 강림하신다”(살전 4:16). 어느 날 슬그머니 우리 주변에 나타나 ‘내가 재림 예수다’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보혜사는 인간이 아니고 우리 속에 내주(內住)하시는 성령님이시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보혜사로 자처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이다. 그를 가까이 하는 자도 망하게 된다. “어리석은 자는 온갖 말을 믿으나 슬기로운 자는 그 행동을 삼가느니라. 지혜로운 자는 악을 떠나나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스스로 믿느니라”(잠 1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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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17
  • 사이비
    ◇중세 기독교는 가톨릭(catholic)이라는 이름아래 보편성과 통일성을 추구했다. 그러므로 가톨릭교회의 스콜라신학과 다른 것은 모두 이단이었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그 둑이 무너졌다. 종교개혁파는 기독교의 보편성을 담보하면서도 다양성을 추구했다. 따라서 프로테스탄트 내에는 다양한 신학적 배경을 갖는 교파들이 생겨났다. 교파가 다르다는 것은 신학이나 신조가 다르다는 뜻이다. 지금은 프로테스탄트 내에 교파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신학이든, 성경해석이든 간에 무엇이 달라도 그 주장이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교파가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름의 교파이든 역사적 기독교의 보편적 정통주의를 담보할 때만이 그 정통성을 인정받게 된다.◇그러면 기독교의 정통주의는 무엇인가? 기독교 정통주의는 니케아 시대의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에서 비롯된다. 이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즉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면 기독교이고, 삼위일체를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니라는 말이다. 기독교의 정통과 비정통은 여기에서 갈라진다. 그러면 삼위일체 교리를 인정하고, 성경의 기록대로 하면 정통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사도시대와 교부시대를 거치면서 성경해석의 정통주의를 확립해 왔다. 흔히 기독교의 정통성을 이탈했다고 지적받는 섹트주의자들 중에는 ‘우리는 성경대로 하는데 왜 이단이라 하는가’라며 항의한다. 그러나 역사적 기독교의 성경해석을 부정하고, 성경을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면 이는 ‘이단’이거나, 또는 ‘사이비’가 된다.◇예를 들면, 최근 한국교회 주변에 “요한계시록은 2천년동안 바르게 해석된 일이 없는데, 나에게 갑자기 계시록을 해석할 수 있는 지혜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요한계시록 해석을 부어주고 있다”며, 역사적 기독교가 그동안 해석하지 못한 계시록을, 마치 하나님이 자기에게 딱 맞는 열쇠를 주어서 완벽하게 해석할 수 있었다는 듯이 주장하는 목사가 있다. 이는 그에게 그런 놀라운 경험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사이비’임이 분명하다. 그는 지난 2천년 간의 계시록에 대한 역사적 기독교의 해석을 일거에 부장해버렸는데, 그러면 자신이 한 해석은 무조건 옳다는 것을 누가 확인할 수 있는가. 하나님인가, 신학자들인가, 동료 목회자들인가.◇이 사람은 또 ‘방언을 못하면 목사가 아니다’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설교할 자격이 없는 목사가 너무 많아요. 성령 세례도 안 받은 것들이, 방언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목삽니까? 성령 세례도 안 받고 방언도 못하는 것들이 무슨 자격으로 설교를 합니까”라고 했다. 이쯤되면 이 사람은 보편성을 넘어선 사람이다. 성경은 예수를 주님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한다(고전 12:3). 성령은 믿는 자에게 내주(內住)하신다. 그것이 곧 성령 세례이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교회의 방언은 1901년 1월 3일 처음으로 미국 캔사스주 토페카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면 그 이전에 설교자는 모두 가짜란 말인가? 한국교회 주변에는 이런 자의적 성경 해석으로 오만을 떠는 자들이 많다. 모두 ‘사이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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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4-05
  • 두 이단
    ◇1059년 로마 라테란에서 모인 지역 공의회는 ‘성직매매’와 ‘니골라주의’라는 두 이단을 금하는 법령을 통과시켰다. 당시에는 수도사나 독신으로 살 것을 선언한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하급 사제이든, 상급 사제이든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살았다. ‘성직매매’는 중세의 주교좌를 아들이나 조카 등에게 세습하는 과정에서 돈을 주고 주교직을 얻는 행위를 말한다. 당시 주교는 국가의 왕이나 황제가 재가했다. 따라서 왕실의 측근들을 움직이지 않고는 주교직을 얻을 수 없었다. 더욱이 후계자가 주교로서의 인품이나 지식을 갖추지 못한 경우이면 더욱 돈으로 그 자리를 살 수 밖에 없었다. ◇교회의 성직록에 그 이름이 오르면 매달 정해진 급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는 사제뿐 아니라, 부제나 차부제도 포함되었다. 그들은 교회에서 성직복을 관리하거나 성찬에 필요한 성물을 구매하고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중세에는 성직을 돈 주고 팔고 사는 행위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 폐습이었다. 그것이 만약에 주교나 추기경 또는 교황들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경우에는 그로 인한 폐해가 훨씬 컸다. 그런 이유로 1075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의 성직자 독신제도가 선포된 것이다. 그레고리우스는 “모든 성직자는 독신이어야 한다. 결혼한 사제는 이혼하라. 여자를 숨겨놓고 있는 자는 간음한 자로 처벌하겠다”는 회칙을 선포하고, “만약 (아내를 두고 사는) 음행의 죄를 범한 사제들이나 부제들이나 차부제들이 있다면,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과 성 베드로의 권위에 힘입어 그들이 회개하고 행실을 고치기 전까지는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금한다”고 선언했다.◇니골라주의는 계시록 2장 6절의 음행과 관련된 ‘니골라당’에서 나온 말이다. 에베소교회에 대하여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라고 했다. ‘니골라주의’는 성직자가 ‘자의적으로 몰래 끌어들이는 여자’, 죽 첩을 두는 경우를 말한다. 당시 교회는 성직후보자가 미혼일 경우 독신으로 지낼 능력이 있는지를 물었고, 그럴 능력이 없다고 대답하면 법적으로 결혼이 허용되었다. 하지만 재혼은 금지됐고, 신부가 반드시 처녀여야 한다는 레위기 법도 준수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분위기에서 가정을 세워가는 성직자들은 존경을 받았고 주교직의 적임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축첩은 가증한 범죄로 여겨져 교회는 첩을 둔 성직자의 미사집례에 평신도들이 참석하지 말 것을 규정했다.◇그럼에도 성직자들의 축첩 행위는 비밀리에 지속되었다. 중세교회가 윤리적 도덕적 일탈에 지나지 않는 ‘성직매매’와 ‘니골라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당시 교회의 성적 부패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개혁의 대상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런데 이를 막아보겠다고 도입된 성직자 독신제도는 교회의 유익보다 폐해가 훨씬 더 컸다. 무엇보다도 성직자들의 축첩과 방탕이 신성한 결혼생활을 대체하고, 그들의 성적 불륜이 평신도들의 신망을 저해했으며, 중세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한 중요한 요인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오늘날 개혁주의 교회도 이 ‘두 이단’을 경계해야 마땅하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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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1
  • 크리스천 사이언스
    ◇미국 남북전쟁의 여파로 생겨난 또 하나의 미국산 이단은 크리스천 사이언스(Christion Science)이다. ‘기독교과학협회’라고도 불리우는 크리스천 사이언스는 1879년 미국 보스톤에서 메리 베이크 에디(Mary Baker Eddy)라는 여인에 의해 창시된 기독교계 신종교이다. 에디는 회중교회에 열성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어릴 때부터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며, 건강이 나빠 제도권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가정에서 책을 읽으며 부모님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1843년 조지 글로버와 혼인했으나 아들 하나를 두고 일찌기 남편을 잃었다. 그후 척추병으로 고생하던 에디는 피니어스 큄비라는 사람을 만나 병을 깨끗이 고쳤는데, 큄비는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병을 고치는 예수의 치료법을 재발견했다고 믿었다.◇에디는 그때부터 신약성서에서 크리스천 사이언스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론과 체계를 발전시켰다. 그것이 1875년에 출판된 ‘건강과 과학’(Science and Health)이다. 이 책은 그가 죽기 전에 ‘성서에 비추어본 과학과 건강’(Science and Health with Key to the Scripture)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신(神)의 영감을 받아 쓴 것으로 간주된 이 책과 성서는 그들 신앙의 경전이 되었다. 1879년에는 에디와 그 추종자 15명이 보스톤에서 “초기 그리스도교와 후대에 상실된 치유 요소”를 회복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과학자 그리스도의 교회’를 설립했다. 이것이 ‘크리스천 사이언스 제일교회’이다. 이 교회의 특징은 설교자나 설교가 따로 없고, 그 대신 ‘독서자’가 있어서 성경이나 에디의 책을 선택해 읽는다. 이들은 월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저널’, 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파수병’, 일간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를 창간하고, 한때 ‘메사추세츠형이상학대학’을 설립해 가르치기도 했다.◇크리스천 사이언스는 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성서의 계시적 권위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인류 구원 역사의 중심 사건으로 믿는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므로 하나님과 동일시 될 수 없다고 본다. 예수를 다만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대한 뛰어난 모범으로 본다. 그러나 예수가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몸소 죽음을 이김으로써, 반드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질 때 질병과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려면 그 이면의 영적 존재질서를 깨달아야 한다. 정신 또는 영(Spirit)만이 진리이며 사랑이며 힘이며 생명이며 선이다. 정신 또는 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실재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 내면의 신성(神性)의 원리를 깨달을 때, 모든 질병과 죄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1880년대 말에는 100개가 넘는 교회들이 미국 대서양 연안과 중서부 주들에 설립되었고, 1910년 경에는 2400여 개로 늘어났다. 그러나 에디가 교인수가 영적 생명력의 척도가 될 수 없다며, 교회와 교인수를 공식적으로 집계할 수 없도록 규율로 정해놓아 현재 크리스천 사이언스가 얼마 정도의 교세를 가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한국에도 서울 종로구 필동에 교단본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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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07
  • 몰몬교
    ◇오늘날 전세계 교회를 괴롭히는 이단은 모두 미국의 남북전쟁 중에 탄생한 것이다. 미국의 남북전쟁은 1789년부터 1865년까지 지속되었다.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회’라고 부르는 몰몬교는 1820년 미국 뉴욕주 온타리오 만체스터에 사는 당시 15세 소년 조셉 스미스(Joseph Smith)가 기도 중 예수님을 만나 세상의 부패한 교회를 떠나라는 지시를 받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른 ‘회복된 교회’를 창립할 것을 결심한 데서 비롯되었다. ◇조셉 스미스는 다시 1823년 9월 21일 하늘로부터 온 사자를 만난다. 그의 침실로 찾아온 그 천사는 이름이 ‘모로나이’(Moronai)라고 했다. 그는 이 아메리카 대륙에 금판에 기록된 책이 묻혀 있는데, 그 책 속에 구세주께서 친히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古代) 주민들에게 전해 준 완전한 복음이 기록되었다고 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827년 9월 22일에 조셉 스미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인근 지역 구모라 언덕에서 그 천사가 말한 금판에 기록된 책과 우림과 둠밈을 찾았다. 그때 찾은 금판의 내용을 번역한 것이 ‘몰몬경’이다.◇몰몬교는 네 가지 경전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교의 ‘성경’이고, 둘째는 ‘몰몬경’이며, 셋째는 ‘교리와 성약’이고, 넷째는 ‘값진 진주’이다. 몰몬경은 구약성경의 일부 내용을 소설 형식으로 꾸민 내용이지만, 그들은 주전 600년에서 421년 사이에 실제 미 대륙에 살고 있던 종족들의 종교 및 역사를 기술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미 대륙에는 주전 2200년경 근동에서 바벨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되어 민족이 나누일 때 바다를 건너온 ‘야렛’(Jared) 족과, 주전 588년경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기 전에 바다를 건너온 ‘리하이’(Lehi) 족과,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때 유대왕 시드기야의 아들이 목숨을 숨겨 바다를 건너와 이룬 ‘뮬렉’(Mulekites) 족이 있었다고 한다. ◇이 세 종족 가운데 리하이는 아내 세라이아 사이에 ‘레이맨’(Laman), 레뮤엘(Lemuel), 샘(Sam), 니파이(Nephi)를 낳았는데, 장자 레이맨이 그들의 죄악에 대해 예언하던 넷째 니파이와 싸워 리파이 족은 멸절되고, 레이맨 족은 저주를 받아 인디언이 되었다고 한다. 그때 니파이 족의 멸망사를 기록한 사람이 바로 모로나이이고, 그의 부친이 몰몬(Mormon)이라는 예언자였다는 것이다.◇몰몬교는 그들의 신조에서 “우리는 영원한 아버지 하나님과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교리와 성약에서는 “우리는 하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아나니, 하나님은 무한하시며 영원하사 영세무궁토록 불변하시고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니, 천지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이시라”(교성 20:17)고 했다. 그러나 요셉 스미스는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도 한때는 우리와 같은 분이셨다. 그러나 지금은 승영(昇榮, Exaltation)하시어 저 하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신다.”(예언자 요셉의 가르침 341)라고 했다. 그들은 삼위일체로 영존하시는 한 분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승영한 ‘하나님들’을 믿는 셈이다. 따라서 성경을 말하고, 하나님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정통성을 가진 그리스도교는 아닌 것이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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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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