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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골] 성도의 교제
    ◇역사적 기독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통적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가 사도신경이다. "I Credo,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사도신경은 초대교회 박해 시대부터 단편적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6세기 경, 보편적 기독교를 지칭하는 가톨릭의 정통 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역사적 기독교가 채택한 수많은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많은 성도들이 사용해온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사도신경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이어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의 그리스도 주' 되심을 고백하며, 성령의 사역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고백한다. 그리고 죄 사함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는 것이 사도신경의 내용이다. 이 가운데 특이한 것은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성도의 교제'(The Communion of Saints)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맺은 모든 인간 관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곧 여기에서 고백하는 '성도의 교제'이다. 이 세상에서의 성도 간의 교제는 육적 인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예루살렘'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6장 '성도의 교통'은 "모든 성도들은 성령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 그의 은혜와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영광 안에서 그와 교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성도들은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 연합에서 떨어져 있다면, 진정한 성도라 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미날리티(Nominality)이다. 자신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기독교인으로서의 모범된 삶을 산다고 자부할지라도, 교회공동체의 연합 안에서 교제가 끊어졌다면 진정한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공동체에서 '가나안'(안나가) 교인으로 전락한 노미날리티는 이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리고, 매일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헌금은 모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고, 또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린다 할지라도, 거기에 성도의 교제가 빠졌다면 그 예배는 온전한 예배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의 날은 성도들의 사귐을 위한 특별한 교제의 날이다. 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일예배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제는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성도(聖徒)의 사귐'(Holy Communion)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공동체 내에서 성도 간의 분쟁이나, 또는 목회자와 교인 간의 갈등은 옳지 않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라는 고백은 우리의 찬송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그가 어떤 교파, 어떤 개교회에 속했던 간에 모두가 '하나'이고, 또 '하나'가 되어 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에서도 성도의 교제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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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8
  • [연지골]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
    ◇ 법무부장관 한동훈은 후보자 시절,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하던 일명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이대로 통과되면 결국 국민만 손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가 당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을 함부로 팔지 말라'는 항의를 받았다. 이에 한동훈은 그 법을 집행할 법무부장관 후보자로서 침묵하는 것은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라고 되받았다. 이 말은 정치인이나 공무원 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는 더욱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성경은 한 사회의 지도자가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벙어리 개'와 같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파수꾼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고 규탄한다(사 56:10,11). ◇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 이 세상에서 '목회자'라는 직업은 정치인처럼 권력이나 명예를 얻는 것도 아니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처럼 인기를 누리거나 돈벌이가 되는 직업도 아니다. 하나님의 소명에 의한 봉사직일 뿐이다. 이 봉사직은 더우기 누가 억지로 시켜서 하거나 또는 경제적 이득을 바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사명감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직업의 종사자들보다 더 직업윤리 의식이 강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회직은 매우 힘들고 따분한 직업이 된다.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과 다른 점은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한다는 자부심이 함께 있는 것이다. ◇ 양심의 문제 역시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에 있어 가장 우선하는 것이다. 장로회 정치 원리 제1조는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다. 하나님이 각인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어... 그 양심대로 할 권리가 있으니 아무도 남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양심의 자유는 목회자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그런데 목회자가 세상 권력이나, 교권이나 혹은 상사나 선배의 눈치를 살피느라 양심의 소리를 외면한다면, 그런 사람을 어떻게 바른 목회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는 그가 그 직업에 충실한 바른 직업인인가, 아니면 사이비 직업인인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다. 양심은 천부적인 것이고, 또 양심을 주재하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이 양심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이의 양심은 수정같이 맑고 깨끗하여 작은 먼지에도 반응하지만, 어떤 이의 양심은 발바닥같이 둔하여 왠 만한 모래알에도 반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 불의에 침묵하는 것은 '벙어리 개'란 말은 도둑이 담을 넘는 것을 보고도 짖지 않는 개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개는 집에서 애지중지 키울 이유가 없다. (요즘 애완견의 경우는 좀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사회가 건강하려면 한동훈과 같이 불의한 일에 대해서는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직업군에서 많이 일어나야 한다. 목회자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목회자들이 이 말을 중요한 화두로 삼는다면 우리 교회와 사회가 매우 건강해 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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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4
  • [연지골] 부활의 날인가, 부활 주일인가
    올 해(2022년) 4월 17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날'과 '부활 주일'이 같은 날 겹친 날이다. 부활절을 ‘부활의 날’로 할 것인가, ‘부활 주일’로 할 것인가는 초기 교회의 논쟁 중에 가장 첨예한 문제였다. 주후 325년 니케아 이전의 교회는 두 가지 절기를 지켰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유월절(니산월 14일)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부활로부터 오순절 날에 이르는 오순절이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의 유월절과 부활절은 가장 깊은 슬픔과 가장 높은 기쁨이 만나는 연속적인 행사로 연결되었고, 이를 '파스카 스타우로시몬'(pascha staurosimon)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파스카 아나스타시몬'(pascha anastasimon)이라고 불렀고, 후에는 이를 '부활절'(Easter)이라고 했다. 파스카 스타로우시몬은 슬픈 금요일에 해당하고, 파스카 아나스타시몬은 기쁜 주일에 해당하는 날로서, 이 주간은 두 큰 사건을 기념하는 거룩한 주간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흠도 없고 티도 없는 '유월절 양'(고전 5:7)이 우리 죄를 위해 죽임을 당하신 예언적 예표로 이해했다. 이스라엘이 유월절을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 받은 사건이 곧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가 구속될 일을 예표했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유대교의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성 금요일부터 그리스도가 부활한 17일 부활절 전야까지는 금식 기간으로 지켜졌다. 이 때 교회에는 부활절 철야 기도회가 있었다. '부활절 철야'는 온 회중이 각별한 신앙심으로 새벽까지 철저하게 지켰다. 구속 사역으로 완성한 부활을 기념하는 날은 점차 기독교 유월절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 부활절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기독교 유월절 시기와 금식일의 시기에 관하여 지역의 교회마다 관습의 차이가 있었고, 그 차이로 인해 격렬한 논쟁이 발생했다. 소아시아 교회를 비롯한 동방 교회는 니산월 14일에 엄숙한 금식으로써 기독교 유월절을 지켰다. 그리고 금식을 마치는 17일에는 성찬과 애찬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성취된 기독교 유월절과 구속의 잔치를 베풀었다. 니산월 14일 저녁에 베푼 성찬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을 기념한 것이었다. 이 관습은 그리스도께서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죽으셨다는 사상을 강력히 내포하고 있었다. 이들을 '14일파'라고 한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 또 다른 서방 교회들은 부활절을 음력 3월 보름 다음에 오는 주일 날(일요일)에 '부활 주일'로 기념했다. 이로 인해 초기 기독교회는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부활의 날'에 기념할 것인가, '부활 주일'에 기념할 것인가를 놓고 오랜 기간 논쟁이 계속되었다. 이 문제는 교회 밖의 세상에서 볼 때, 교회의식의 통일성이 크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였다. 이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325년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인 니케아에서 부활절 문제를 논의한 결과 로마교회의 관습을 따라 춘분 이후(3월 21일) 첫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을 '부활 주일'로 지키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 따르면 부활절이 이르면 3월 22일부터, 늦으면 4월 25일 사이에 오게 된다. 그리하여 부활절은 '부활의 날'이 아니라, '부활 주일'에 지켜지도록 강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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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2
  • [연지골] 언더우드 기념관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총회가 에큐메니칼(통합측)과 엔에이이(합동측)로 갈라진 이후, 한국교회에서 최근 하나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쾌거를 이룬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8일, 통합측 서울노회 소속의 경신학원(이사장 이효종)과 합동측 경기노회 소속의 혜화동 혜성교회(담임목사 정명호)가 이룬 '언더우드 기념관' 준공식이 그것이다. 지상 3층, 지하 4층, 연면적 3,500여 평 규모의 언더우드 기념관은 혜화동 서울성곽을 끼고 자리잡고 있는 경신중고등학교(교장 신광주) 부지에 들어선 체육관 및 교육시설이다. 여기에는 강당(예배당), 체육관, 주자장 등이 들어서 있다. 주일에는 혜성교회의 예배실과 교육관으로 사용된다. 이 건물은 경신학원이 부지를 내고, 혜성교회가 건축비를 담당해 136년 전 이 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이름으로 준공한 것이다. 경신학원과 혜성교회는 언덕 위에 골목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서 있다. 이 언더우드 기념관은 설계에서부터 내외부 설비와 완공까지 혜성교회가 건축비 250억원을 들여 준공해 경신학원에 기증했다. 1,1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은 평일에는 학교가 사용하다가 주일날에는 혜성교회가 에배당으로 사용한다. 학교측과 교회측이 이같은 시설 건립을 계획하게 된 배경은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학교 운동장이 잔디구장으로 바뀌면서 주일날 학교 운동장을 이용하던 혜성교회가 주차 공간이 사라지자 학교측과 협의한 끝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로써 학교측은 숙원이던 강당과 체육관이 마련되고, 교회측은 주차장과 새로운 예배당이 확보된 것이다. 한국교회에서 학교와 교회가 서로 필요에 의해서 강당을 지어 학교측에 기증하고, 주일날 교회가 사용하는 사례는 더러 있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교단이 다른 학교측과 교회측이 서로의 필요를 위해 윈윈하게 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장로교회에서 '통합측'과 '합동측'이라고 불리우는 두 교단은 1959년 제00회 총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로 논쟁하다, 서로 간에 사소한 감정을 넘지 못하고 에큐메니칼운동의 주체인 WCC를 지지하는 'CAL측'과 미국 복음동지협의회를 지지하는 'NAE측'으로 갈라졌다. 그 후 칼측은 서울 연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하고 '통합측'이라 불렀으며, 엔에이측은 서울 승동교회에서 총회를 구성하고 '합동측'이라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교단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개혁주의 신학과 개혁파 신앙고백의 전통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갈라져 있을 이유가 전혀 없는 장로교파이다. 그런데도 이 두 교단의 답답한 지도자들 중에는 마치 상대를 이단시 하며 거부해왔다. 그래서 한때는 양 교단 목회자 간의 강단교류를 아예 금지하는 등 형제를 정죄했다. 그런데 이번에 두 교단 간에 성취된 에큐메니칼적 업적은 한국교회의 하나의 귀감이 되고도 남는다. 곳곳에서 이런 사업이 논의되고 성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바로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라고 함과 같은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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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10
  • [사설] 이재명 후보 크리스챤은 맞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가짜 교인' 논쟁이 뜨겁다. 이재명 후보가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나는 아내와 함께 분당우리교회에서 주님을 모신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 교회에서 10년 전에 이미 제적된 사람이라고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재명은 '가짜 교인'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런 비난은 틀린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현재 그 교회에서 10년 전에 제적되었다면, '분당우리교회' 교인이 아닐 뿐, 한국기독교의 '크리스챤'은 맞는 것이다. 왜냐면 한번 그리스도에 대한 공적인 신앙고백을 한 사람은 어떤 특정교회의 교인명부에 올라있는가 여부에 관계 없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흔히 크리스챤 노미날리티(Nominality)라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헌법에는 교인의 정의를 "교인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그리스도인(크리스챤)이라 부른다"라고 되어 있을 뿐, 특정교회 등록 여부를 따지지는 않는다. 단지 교인의 의무를 다 했느냐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성도가 된 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가운데 거룩한 교제와 교통을 유지해야 한다"(제26장 제2항). 또 총회 헌법 제19조에는 "교인이 신고 없이 교회를 떠나 의무를 행치 않고 6개월을 경과하면 회원권이 정지되고 1년을 경과하면 실종교인이 된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소속 교회의 교인의 자격정지일 뿐 기독교인으로서의 자격정지는 결코 아니다. 따라서 '가짜 교인'이란 말은 틀린 말이다. 한국교회 주변에는 이들 노미날리티 외에도 특정교회에 소속되지 않고 믿음을 가지는 크리스챤들도 상당히 많다. 이들은 공적인 신앙고백을 통해 세례를 받고, 한때 특정교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다가, 교회 구성원 간의 갈등이나 어떤 이유로 매 주일 교회에 출석하지는 않지만, 자기의 종교적 신분을 기독교인이라고 밝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집에서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며, 교회의 특정행사, 즉 성탄절이나 부활절 또는 기독교 의식으로 진행되는 친인척의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도 부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또 교회 앞에서 세례를 받거나 공적인 신앙고백이 없었다 하더라도, 창세 전에 예정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된 자라면 구원 받은 성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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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 [연지골] 소명과 지혜
    사실 목회자(전도자)는 사명감(使命感) 없이는 그 직을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 하나님으로부터 목회자로서 소명을 받았다 하더라도 사명감이 결여되면 그 소명은 힘든 짐이 되고 만다. 우리 주변에 목회자로서 사명감을 가졌다며 나서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자들도 더러 있다. "어리석은 자가 사명감 느끼면 주변 사람들이 피곤케 된다"는 말 그대로 이다. 그러므로 소명을 받은 사람은 무엇보다 그 소명을 감당하기 위한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께 끝없이 지혜를 구하는 기도가 요구된다. 성경은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잠 3:15-18)라고 했다. 그러므로 소명(召命) 받은 자는 그 소명을 감당하기 위한 사명감과 함께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언제나 하나님께 지혜의 충만을 간구해야 한다. 성경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 1: 5-8)라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구하지 않은 채, 자기 말재주만 믿고 어리석고 무지한 채로 교회의 지도자로 나설 때 그 공동체는 그런 지도자로 인해 분쟁과 분열에 휩싸이고 혼돈에 빠진다. 어리석은 자는 방자하여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잠 14;16). 한국교회도 지혜롭지 못한 인사들이 지도자 연체 하며 사명감을 드러내는 바람에 교계연합이 파탄나고, 교단이 분열과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교단의 총회장들도, 각 연합단체의 대표들도, 누가 봐도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미달한 데도 자신의 세속적 욕망과 명예심 만을 앞세우는 바람에 연합단체가 분열하고 교단이 흩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장로교 300개 교단 시대도 이런 어리석은 자들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지 않은 채 사명감을 앞세우는 바람에 생겨난 현상이다. 자신은 소명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누구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이 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지혜는 '소피아'(Sophia)이다. 이는 모든 사물에 대한 완전한 인식 곧 최고선(最高善)에 대한 지식을 이르는 말로써, 소피아는 곧 그리스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품 속에 독생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떠나서는 진정한 지혜를 만날 수 없다. 지혜는 사람의 지식과 가르침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도 없다. 지혜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이미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소명을 받은 목회자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과 함께 지혜의 충만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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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 [연지골] 소시오패스
    ◇정신병리학적 개념에서 일반적으로 사회적 성격장애 또는 품행장애 현상을 드러내는 사람을 '소시오패스'(Sociopath; 반사회적 성격장애)라고 부른다.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인격이나 감정 따위는 상관없이, 거짓말을 일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평소에는 학교나 직장에서 평범해 보이고, 사교적으로 보이지만, 때때로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드러낸다. 그러다가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면, 즉각 잘못을 시인하고 임기응변적인 변명과 말재주로 반성하는 듯하지만, 곧바로 같은 행동을 일삼는다. 이런 소시오패스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전 인구의 약 4% 정도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밖으로 드러내 사회적 영향을 크게 끼칠 수도 있고,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다. ◇내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로 민주당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씨를 향해 한 정신과 의사가 '소시오패스'의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후보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사람들을 현혹할 수 있는 장기를 가졌지만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무자비하게 타인을 이용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정신병리학적 용어 중에 '사이코패스'(Psychopath)가 있다. 사이코패스는 자기 감정에 미숙하고 때때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순간적으로 충동적 감정을 드러내지만, 소시오패스는 자신의 감정 조절에 뛰어나고 타인의 감정을 잘 이용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순한 양처럼 행동하며 미소를 지으며 타인에게 친절을 베푼다. 그러다가 어느 날 충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며 반사회적 행동을 드러낸다. ◇전문가들의 주장에 의하면, 사이코패스는 생물학적, 유전적 원인에 의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지만, 소시오패스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한다. 유년 시절에 학대나 방임 등을 겪으면서 자신이 무시 당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면서도, 그 사람이 느끼는 기분에는 전혀 상관하지 않는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 반사회적 행동을 예사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떤 종류의 자신의 실패도 인정하지 않는 '독재자'가 되고, 나라와 사회를 미증유의 혼란과 분열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 같은 유형을 대표적 소시오패스로 진단한다. ◇또 전문가들은 고급두뇌집단이나 종교지도자들 가운데서도 이런 소시오패스가 활동할 수 있고, 나아가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과 같이 이런 유형의 인간들끼리 하나의 집단이 형성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교계에도 소위 '이단 감별사'들 중에 이런 인사들이 더러 있다. 그로 인해 교계의 분열을 자초했다. 저들은 자신들의 판단은 모두 옳고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멸시하는 오만을 가진다. 자신들이 가진 얄팍한 지식의 잣대로 상대방을 판단하고, 자신의 신학적 신앙적 경험은 진리로 믿으면서, 다른 사람의 신앙적 체험은 무조건 이단으로 매도해 버린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한 에큐메니칼의 분열은 이런 소시오패스의 기질을 가진 이단감별사들의 농간에 놀아난 교단지도자들의 미숙한 판단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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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18
  • [연지골] 초기 기독교 문서들
    △초기 기독교에는 정경(正經, canon)으로 채택된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와 사도들의 서신들과 요한계시록 외에도, 유대기독교 복음서들과 영지주의자들의 문서 등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복음서에는 '히브리인복음' '나사렛인복음' '에비온인복음' '이집트인복음' '베드로복음' '마리아복음' '니고데모복음' '바돌로매복음' '야고보원복음' '빌립복음' '요셉복음' '맛디아복음' '위(僞)마태복음' 등이 있고, 또 사도들의 활동을 기록한 '베드로행전' '바울행전' '요한행전' '도마행전' 안드레행전' '바울과 테클라행전' '바나바행전' '빌립행전' '빌리도행전' '야고보행전' '다대오행전' '열두 사도행전' 등이 있으며, 또 편지로는 '사도서신' 고린도3서' '라오디게아서' '바나바서신' '그리스도와 압갈서신' '구세주대화록' '베드로의 빌립보 편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 '요한외경' '베드로순교록' '바울순교록' '베드로선포' 등이 있고, 또 묵시록적 형태에는 '디다케' '열두 사도들의 교훈' '시벨레 예언집' '에스라 5,6서' '솔로몬의 유언' '엘카시아의 책' '바울묵시' '아담묵시' '야고보묵시' '베드로묵시' '도마묵시' '스데반계시록' '야고보 제1,2계시록' 등도 있다. 이외에도 영지주의적 작품으로는 '도마복음' '진리복음' '나세네인시편' '솔로몬 송가' 등이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중세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성경 밖의 교회의 전승은 일체 인정하지 않자, '교회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성경이 교회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즉 기록된 성경과 교회의 전승이 같은 권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초기 교회 안에 돌아다니던 수많은 문서들 중,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고,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가를 구분하고 확정한 것이 곧 가톨릭교회라는 것이다. 보편적이란 뜻의 '가톨릭'이란 말은 초대 기독교 전체를 이르는 말이었다. 지금의 로마 가톨릭과는 다른 것이다. 로마 가톨릭은 로마 교구를 중심으로 1054년에 동방교회인 그리스 정교회와 갈라질 때 붙은 서방교회의 이름이다. 당시에는 기독교 전체에 5대 교구가 있었다. 5대 교구는 예루살렘 교구, 안디옥 교구, 알렉산드리아 교구, 로마 교구, 콘스탄티노플 교구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구와 안디옥 교구 그리고 알렉산드리아 교구는 일찌기 이슬람에 점령됨으로써 크게 힘을 쓸 수 없었다. △그러면 이들 문서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것은 성령의 감동으로 영감된 정경(성경)으로 인정받아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어떤 것은 성경 밖의 '기독교문서'로만 분류되었는가? 마태복음으로 시작되는 27권으로 된 신약성경의 정경화(正經化) 과정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많은 문서들 가운데 정경성의 핵심은 하나님의 영감(靈感, inspiration)이다. 초기 교회는 어느 책이 참되고 권위가 있는지를 그 책들의 사도적 기원에서 찾았다. 역사적으로 정경화 과정은 당시 교회 지도자들이 보증하는 책들을 수용하고 승인하는 과정이었다. 신약 27권에 대한 정경화가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선언이 나온 것은 4세기 후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성령이 교회를 통해 이루신 사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교회는 성경을 소유하며, 성경은 유일한 신앙의 규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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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17
  • [연지골] 신장 위구르
    ▲ 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반군 탈레반이 접수했다고 한다. 탈레반(Taleban)은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를 정책으로 내세우는 군사조직으로 '학생들'이란 뜻이다. 1980년대 탈레반이 처음에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샤의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하자 제일 먼저 위험에 빠진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재빨리 탈레반과 손을 잡았지만, 수도 카불이 너무 빨리 무너지고 탈레반이 완전히 정권을 잡은 이상 중국과의 밀월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신장 위구르'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새국경을 뜻하는 신장(新疆, 신강)은 본래 위구르 제국과 준가르 제국을 비롯 수많은 왕국이 있었던 곳으로, 근세에는 동투르크스탄(East Turkstan)이란 위구르족의 나라였다. 이를 중국이 청나라 강희제 때 점령해 합병했다.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크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와 국경을 맞대어 있는 신장에는 위구르족, 한족, 하사커족, 후이족, 키르기스족, 몽골족, 타지크족, 시보족, 만주족, 우즈베크족, 러시아족, 타타르족 등 47개 민족으로 구성된 2,300만명 정도가 그들 오아시스 도시에 살고 있다. 이 중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족은 전체 인구의 절반에 채 못 미치는 약 1,100만명이다. 중국정부가 한족 이주정책을 진행해 위구르족보다 한족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 한반도의 약 8배 넓이가 되는 신장은 남쪽에 그 크기가 남한의 약 4배쯤 되는 '타클라마칸'(塔里)이란 사막이 있고, 그 사막 북쪽에는 길이 약 3000Km, 너비 약 350-480Km의 '천산산맥'(天山山脈)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까지 뻗어 있으며, 사막 남쪽에는 티베트에서 시작되는 '곤륜산맥'(崑崙山脈)이 서쪽으로 뻗어 히말리야에 이른다. 이 산맥들은 1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 설산이 첩첩으로 쌓여 있다. 그리고 천산산맥과 북쪽 알타이산맥 사이에는 계곡과 분지와 '준가르'라고 부르는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기름을 비롯한 온갖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 성도(省都)인 우루무치와 유전지대인 커라마이 등 2개 지급시(地級市), 21개 현급시(縣級市), 62개 현(縣), 6개 자치현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장에는 도시마다 삼자 기독교회가 설립돼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위구르족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독교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족이다. 신장지역에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경교'(景敎)라고 부르던 네스토리우스 교파이다. 이 교파는 페르시아 바그다드에 선교본부를 두고 5세기 이후 중국과 중앙아시아 전역에 선교했다. 이후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기독교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 신장이 다시 이슬람 국가가 된다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족을 위한 기독교 선교도 어려움에 처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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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7
  • 정치와 종교
    세상을 바꾸려면 먼저 인간 본성이 바뀌어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인 죄성(罪性)을 가지고 있어 그 본성이 양심과 도덕에 의해 바뀌지 않으면 결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이 인간 본성이 바뀌려면 개개인의 도덕관념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도덕관념은 철학이나 또는 정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종교를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죄성을 가진 인간의 양심과 도덕의 척도는 각기 달라 정치로는 인간 본성을 바꿀 수 없다. 중세 르네상스 이후 종교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많았지만, 인류 사회 발전에 종교만큼 위대한 업적을 남긴 그 어떤 것도 없다. 종교를 비판적으로 평가한 근대 인문학이나 자연과학, 또는 종교를 아예 인민의 아편으로 취급한 공산주의 운동도 끝내 종교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것들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가치관은 그 사회의 주류 종교에서 나온다. 종교가 사회통치 철학을 제시하고, 시민의 도덕관념을 형성시키며, 사회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그 사회의 주류 종교가 건강한 도덕성을 가지면 그 사회도 건강하게 되고, 주류 종교가 건강성을 잃으면 그 사회도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사회가 건강성을 유지하려면 그 사회의 주류 종교가 바른 도덕관념에 서야 한다. 또한 그 사회의 주류 종교가 다신교적 윤리를 가진 종교라면 사회가 분열하고, 그 종교가 범신론적 윤리에 서 있으면 사회 구성원의 정신 상태가 저급한 윤리의식에 빠지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일신론적 윤리를 가진 종교사회가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이끌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오늘날 사회는 경제도, 문화도 정치가 지배한다. 그래서 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 정치가 권력을 갖고 권력이 재화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종교가 끼어들어 선악(善惡)의 구분을 요구한다. 정치인들은 이런 종교가 자신들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 같아 꺼림칙 하다. 그래서 주민에 의해 선출되는 정치집단은 종교와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하는 것이다. 표를 얻기 위해서 가까이 하기에는 부담스럽고, 또 멀리하기에는 표를 잃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정치를 순화시키고, 그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종교이다. 따라서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무시하고 정치가 종교를 멀리할 때 그 사회는 독재화 한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 방역 정국에서 정치로부터 매우 부당한 편파적 대우를 받아왔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교회예배금지’ 행정명령이다. 극히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정부는 전국 6만 교회에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일방적으로 내렸다. 이는 정치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예배를 위한 교회의 존재 목적을 무시한 행위로서 매우 부당한 조치이다. 교회는 예배공동체이다. 정치가 교회의 예배를 금지시키는 것은 독재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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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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