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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해는 대한민국 시민사회가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심한 갈등을 한 한 해였다. 그 갈등을 해소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집권세력이 오히려 조장한 면이 짙다. 좌파독재를 규탄하는 인파는 연말까지 광화문을 꽉꽉 메웠다. 아직도 그 갈등은 진행형이다. 아마도 4월 15일 제21대 총선이 끝난 후에라야 수그러들듯 보인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도 평온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정부를 규탄하는 일에 나서 본 일이 없는 보수우파 교회들이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이유는 하나, 문재인 좌파정부가 친북 사회주의화를 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한국기독교는 6.25를 통해 종교를 박해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악랄함을 체득하고 있다.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다. 단지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려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문 정부는 교회로부터, 또는 보수우파로부터 좌파독재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정책이 용공주의로 가는 길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지난 대선 때 국민 다수는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수 국민의 불안 정서를 외면하고, 국정경험이 없는 좌파코드 정책으로만 가고 있으니 모두가 우려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합하고 예루살렘에 왕궁과 성전을 짓고, 또 전국 곳곳에 국고성을 짓는 등 국가 발전에 기여한 솔로몬의 개발독재 치적이 끝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솔로몬의 전재정치에 억압받아온 백성들의 불만으로 여론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북쪽 열 지파가 르호보암을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를 수습하고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 르호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세겜으로 갔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거기서 북쪽 지파들과 협상하라는 중신들의 충고를 외면하고, 백성은 오히려 더 강경하게 억압해 말을 듣는다고 주장하는 젊은 참모들의 의견을 따라 협상을 거부했다. 그로인해 국가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어느 사회나 정책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불만세력이 생기고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맛보게 된다. 이제 새해에는 정부도, 교회도, 시민사회도 갈등을 봉합하고 우리 내면사회가 먼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한반도 평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부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끝까지 좌파정책에만 매달리면 우리사회 모두가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남미 포플리즘 좌파정부의 실패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리고 새해에는 개혁주의 교회가 주축을 이루는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의 개혁과 갱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교회만큼 큰 개혁세력은 없다. 6만여 개에 이르는 한국교회는 매 주일 기독교적 가치관에 바탕한 사랑, 정의, 평화, 평등, 자유의 개념을 설파한다. 우리사회에서 이만한 정체성을 확립한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맘만 먹으면 한국사회를 하루 아침에 바로 세울 수 있다. 2020년은 교회와 국가가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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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 목사와 장로의 갈등
    ◇한국기독교는 장로교회가 전체 교회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 장로교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불리우는 교회인데, 교인의 대표, 즉 장로(長老)에 의해 치리되는 대의제(代議制)로 운영되는 교회를 통칭한다. 장로교의 장로제도가 유교적 권위의식이 강한 우리사회에 조화를 잘 이룬 것이 장로교가 크게 성장한 이유라는 평도 있다. 개 교회의 장로 장립이 곧 교회의 지도자로서 하나의 계급화로 이해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장로가 되기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잘 보이고자 교회에 모범을 보여왔다. 헌금도 남보다 많이 하고 봉사에도 앞장 섰다. 장로가 되고자 하는 교인들의 열심 덕으로 교회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래서 장로교회의 성장을 보고 장로제도가 없는 감리교나 침례교까지도 한국에서는 장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장로’(elder)가 교인의 대표라는 의미는 교회 정치에 있어서 대의직(代議職)으로 선출되었다는 뜻이지, 신앙생활 전반의 대표적 교인이란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교회봉사를 위해 부름받은 교회의 직분자이기에 목회자와 함께 협력하는 동역자가 되어야지 판단의 권위자로 교회 앞에 서서는 안된다. 물론 이는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목회현장에서 목사와 장로 사이에 갈등이 생겨 ‘장로 때문에 목회를 못해 먹겠다’는 목사들의 불평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 한국교회 침체요인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장로교 헌법은 장로의 직무를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하고 △교인들의 교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하고 △교우를 심방하여 위로하고 교훈하며 △교인의 신앙을 살펴 특별히 심방할 자가 있으면 목사에게 보고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장로는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신령적 책임을 맡되, 어디까지나 교회 전임자인 목사의 협력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장로교 헌법의 정신이다. 성경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교단헌법의 정신대로 목사와 장로 양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욕망을 비우는 것이다.◇본래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전임(專任) 지도자는 ‘장로(長老)’라고 불리었다.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에서 장로로 불리운 사람은 모두 교회의 전임 사역자였다. 중세 종교개혁 때 그 장로 가운데 신학을 공부한 설교자를 “가르치는 장로”(딤전 5:17)로 이해하여, 따로 떼어 ‘목사(牧師)’라고 부른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 이전에는 ‘사제(司祭)’였다. 가톨릭교회의 신부가 곧 장로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지면서 ‘세속 직업을 가진 장로’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엿새동안 세속 직업에서 종사하다가 주일날 교회에 나와 ‘당회’에 참여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제도는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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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20
  • 세계교회협의회(WCC)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총무 울라프 트베이트는 지난 11월 1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제68회 총회에서 ‘새계명의 길을 걸어라’는 제목의 연설을 했다. 그는 교회일치운동이야 말로 주께서 주신 새계명의 본질과 목적이라며, ‘소비주의 기독교’ ‘병 고치는 기독교’ ‘번영신학과 번영복음의 기독교’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차별주의 기독교’ ‘민족주의 기독교’를 벗어난 진정한 대안이 에큐메니칼 기독교운동이라고 했다. 사실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만큼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는 기독교운동은 없다. 특히 한국교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 용공이니, 종교다원주의니, 혼합주의니 하며 WCC를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들 가운데 WCC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1948년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창립된 WCC는 성경을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교회들의 코이노니아이다. 요한복음 17장 21절의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골로새서 1장 20절의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에베소서 1장 10절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세 가지 말씀을 모토로, 성육신 교리와 칼케톤 정통 그리스도론을 배경으로 교리헌장이 이루어졌다. 여기에 다시 1961년 뉴델리 총회에서 ‘성경’과 ‘삼위일체 하나님’이 첨부되었다.◇WCC의 1948년 암스텔담 창립총회 주제는 “인간의 무질서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이후, 1954년 미국 에반스톤에서 제2차 총회는 “그리스도는 세계의 평화”,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제3차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세상의 빛”, 1968년 스웨덴 웁살라에서 제4차 총회는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1975년 케냐 나이로비에서 제5차 총회 는 “오늘의 구원에 관한 좋은 소식”, 1983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제6차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 1991년 호주 캔바라에서 제7차 총회는 “오소서, 성령이여-만물을 새롭게 하소서”,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제8차 총회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희망 중에 기뻐하라”, 2006년 브라질 포르트 알레그레에서 제9차 총회는 “하나님 당신의 은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소서”, 그리고 2013년 대한민국 부산에서 제10차 총회는 “생명의 하나님, 우리를 정의와 평화의 길로 인도하소서”였다. ◇WCC에는 현재 110개 국 이상에서 로마 가톨릭을 제외한 349개 교단이 가입해 있다. 여기에는 대륙별로 유럽이 81개 교단에 2억8700만 명, 아프리카가 92개 교단에 1억3193만 명, 북미는 31개 교단에 7200만 명, 아시아는 75개 교단에 6260만 명, 중동이 12개 교단에 970만 명, 라틴아메리카가 28개 교단에 450만 명, 카리비안이 13개 교단에 260만 명으로, 모두 5억7000만 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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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2-06
  • 이슬람의 개종정책
    ◇7세기 초 지중해를 끼고 기독교가 한창 번창하던 시기, 아라비아에서 모하멧의 이슬람이 일어나 서진(西進)하자 오랜 역사를 가진 기독교 도시들은 아주 짧은 시간에 하나 둘 이슬람에 점령되어 갔다. 635년에 다메섹이 점령되고, 638년에는 예루살렘이 점령되었으며, 639년에 에집트가, 641년에 알렉산드리아가, 697년에 카르타고가, 732년에는 두로와 베니게가 점령되었다. 그리고 이슬람은 시리아와 아나톨리아(소아시아)를 넘어 그리스와 발칸반도까지 진출했다. 모두 전통적 기독교 사회였다. 칼리프나 슐탄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이슬람은 점령지 시민들의 종교를 인정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점령지의 이슬람 국가들에는 마을마다 이슬람 모스크의 미나렛만 보일 뿐, 기독교회의 십자가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그 많은 기독교인들의 후예들은 어디로 가고 교회는 모두 어떻게 사라져 갔는가? ◇1453년, 1천년을 넘게 버텨온 기독교왕국 비쟌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된 후 투르크는 시민의 절대 다수인 기독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정책을 도입했다. 하나는 ‘세금’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왕립학교’제도이다. 오스만은 모든 신민들에게 일종의 주민등록제도를 실시하고 거기에 종교란을 두어 무슬림과 타종교인을 세금 정책으로 차별화 했다. 무슬림 보다 타종교인에게 모든 세금을 훨씬 높게 부과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월이 지나면서 종교로 인한 불이익을 감내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하나 둘 무슬림으로 개종해 갔다. 지금도 일부 이슬람권에서 이같은 제도가 실행되고 있다.◇둘째는 궁성 내에 엘리트 교육을 위한 ‘데브시르메’(Devsirme)라는 제도를 만들어 기독교 집안 10대 소년들을 징집하여 이슬람으로 개종시켜 교육시킨 것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노예 신분으로 끌려왔지만, 학교 등록과 함께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이슬람의 샤리아법, 아랍어, 페르시아어, 터키어를 공부하고, 수학, 음악, 역사, 서예 등의 과목을 공부하였다. 이 왕립학교에는 등위가 있어서 정예 고급관료는 상위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다. 중위에서는 사관학교와 같이 군(軍)에 복무하는 '예니체리' 대원과 포병, 기병 및 근위병 장교를 양성했으며, 하위에서는 행정기구에 소속된 관료들을 배출했다. 이들은 모두 황실의 후견으로 어디서나 굉장한 후대를 받았다. 그리하여 이 왕립학교 출신들이 사실상 관료조직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도 자녀들의 출세를 위해 이슬람으로의 개종을 반대하지 않았다.◇왕립학교 출신 가운데 군사교육을 받은 '예니체리'는 현역에 있는 동안에는 결혼도 금지되었고, 또 세금도 면제되었으며, 예니체리 사랑관 외에는 아무도 그들을 처벌할 수 없는 특권을 누렸다. 그들의 업무수행 능력은 매우 뛰어났으며, 16세기 초에 이르면 그들의 권력이 막강해져 슐탄의 후계 자리를 좌지우지 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수백년 간에 걸친 이 두 가지 정책으로 오스만 영역에서 교회는 모두 사라져 갔다. 오늘날 터키에는 약 3%의 정교회인들이 존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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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22
  • 프랑스의 개혁파 ‘위그노’
    ◇16세기 초, 프랑스에서도 교회개혁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교회의 개혁파를 ‘위그노(Huguenots)’라 한다. 위그노는 독일에서 일어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이 프랑스 안에 스며든데서 비롯되었다. 1518년 파리 근교 모(Meaux)의 주교인 기욤 브라소네가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와 루터의 개혁사상을 받아들였다. 그는 같은 개혁사상을 가진 르페브르라는 사제를 부주교에 임명했다. 르페브르는 1521년부터 1525년까지 인문주의 동료들과 함께 ‘모 서클’이라 칭하는 개혁모임을 만든 사람이다. 거기에 요한 칼빈(쟝 칼뱅)을 제네바 개혁에 동참시킨 기욤 파렐이 있었다. ‘모 서클’이 1524년 신약성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자 파리 소르본느 신학대학은 이를 이단서적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의회가 나서서 브라소네 주교를 루터파 이단으로 비판했다. 이에 프랑스어 성경은 금지되고, 브라소네 주교는 개혁에서 손을 떼고 ‘모 서클’은 해체되었다. 그럼에도 루터의 저술과 쯔빙글리나 다른 개혁자들의 책들도 프랑스에 소개되어 읽혔다.◇당시 국왕 프랑수아 1세는 이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벌금에 처하거나 투옥하거나 화형시켰다. 그리고 1546년 ‘모’에 최초의 위그노 교회가 설립되었으나 그 해 당국의 검색을 받아 예배 중에 62명이 체포되고 그 중 14명이 사형 선고를 받고 그 해 10월 8일 공개적으로 화형당했다. 그로부터 2년동안 파리의회는 500명을 이단으로 정죄하여 투옥하고 그 중 68명을 사형시켰다. 그로부터 끊임없이 박해가 시작되다가 1572년 8월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교회의 종소리에 맞추어 위그노에 대한 대학살이 벌어졌다. 이 날이 마침 성 바돌로매 축일이어서 ‘바돌로매 대학살’이라 부른다. 이 날 파리에서 희생된 위그노만 1만2천여명으로 추산된다. 그 후 대학살은 여러 도시로 확산되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수가 희생되었다.◇살아 남은 사람들은 체포되어 노예로 전락하고 남자는 양 발에 착고를 찬 채 갤리선의 노잡이가 되어 죽어갔다. 비무장을 주장해 온 위그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귀족군에 합류하여 왕과 주교의 군대인 가톨릭군에 대항할 수 밖에 없었다 이로인해 프랑스는 끝없는 종교전쟁에 휘말렸다. 이 후, 처음에는 자신도 위그노 신앙을 가졌으나 프랑스 국왕이 되기 위해 가톨릭 신앙으로 돌아간 앙리 4세가 1598년 4월, ‘낭뜨 칙령’을 통해 위그노들에게 상당한 자유를 허용했으나, 이 칙령도 1685년 10월 18일, 루이 14세의 ‘몽텐폴로 칙령’에 의해 취소되고, 위그노에 대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수 많은 위그노들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은 인근의 종교자유가 허용된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 ◇프랑스 개혁파 위그노는 오늘날 세계교회가 ‘장로교’라고 부르는 칼빈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다. 한국교회는 약 70%가 장로교이다. 이 개혁파 신앙은 그냥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희생을 딛고 지켜온 신앙의 자유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이처럼 혹독한 고난 속에서 박해를 통과한 위대한 신앙이 한국교회에서 그 성결성과 전투력을 잃고 기복주의로 변질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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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24
  • 신정통주의
    ◇기독교 신학사조에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신정통주의’(Neoorthodoxy, 新正統主義)이다. 신정통주의란 말은 ‘정통주의’를 새롭게 해석했다는 뜻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고고학과 과학적 탐구 및 역사비평 등의 영향으로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고등비평이란 이름으로 이성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했다. 같은 성경에서도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어떤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성경의 권위가 훼손되었다. 이에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자들의 고등비평 등으로 밝혀진 성경의 일부 문자적 오류는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창했다. ◇이처럼 신정통주의 신학은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난 신학사상으로서, 그 신학적 모티브가 정통주의를 회복한 종교개혁 신학의 원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신정통주의라고 불리우게 된 것이다. 그 대표적 신학자는 독일의 칼 바르트이다. 바르트는 처음에 자유주의 신학자로 시작했다. 그는 헌신적인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건설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자유주의의 인간에 관한 낙천주의에 환멸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바르트는 신학이나 철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눈길을 돌렸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어떤 지식을 계시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신다. 그래서 그는 “성경은 과거의 계시에 대한 기록이고, 장래의 계시에 대한 약속”이라고 했다.◇바르트는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선험적(先驗的) 지식을 가졌다고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계시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활동은 어떤 사건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점에서 그는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선험적 지식을 부인한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시기 전에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애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후에야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다 해도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를 알려면 이성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바르트는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불가피하게 죄에 떨어지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죄 가운데 살기를 원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죄가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되고, 용서되고, 패망되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 19:26). 이것이 바르트의 인간론의 주제이다. 인간의 새생명도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안에 있다. 그래서 바르트는 그리스도가 성육신 하신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이 인간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약속이라고 했다. 이처럼 신정통주의는 삼위일체, 창조주, 인류의 타락, 원죄,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의인, 화해, 하나님 나라 등 정통주의 신학에 대해 논술함으로 어거스틴, 칼빈, 바르트로 이어지는 정통주의로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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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16
  • 기독교 근본주의
    ◇오늘날 종교적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고 하면 이슬람 원리주의를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있었던 기독교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신학적 논쟁은 미국 전체 교회의 관심사였다. 미국에서 근본주의란 말은 자유주의 신학운동을 반대하면서 주창한 보수적 신학사조 중 하나로서 기독교의 기본적 신앙, 즉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의 5대 원칙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성경의 무오(無誤)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육체의 부활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것이다. 이것들은 정통주의가 중요하게 여긴 신학적 논제들이다. ◇그래서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정통주의를 수호한다고 생각했다. 보수주의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근본주의 조상들과 깊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느겼고, 근본주의 전통 안에서 가장 잘 말하고 있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아 근본주의자와 보수주의자는 갈라섰다. 근본주의자들은 과학이나 현대발전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이 가진 신앙적 원칙 안에 안주하려 했다. 그 결과 이들은 대부분 주요 교단에서 배척을 받고 내적 분열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근본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신적 안정을 보다 학문적 제약을 받지 않는 군소교단에서 찾게 되었다. 이제 신학자들은 근본주의가 더이상 신학적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은 학문적으로 자유주의자들과 맞서 싸우겠다고 나선 것이다. ◇근본주의자 또는 보수주의자란 말은 일반적으로 성경의 축자영감을 믿는 사람들, 즉 성경 말씀이 직접적이고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들이 처음부터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거나, 또는 전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정통적 기독교를 보수하려는 데만 관심을 가졌다. 그런데 정통적 기독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무오설이라는 교리가 절대 필요함을 느낀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만일 성경의 무오설이 무너지면 기독교 교리 전체에 의심이 따르게 되고, 마침내는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이를 것이며, 예수의 신성도 부인하게 되고, 구원의 확신도 잃게 되며, 윤리적 파탄을 낳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현대세계에 하나님도 없고, 종교적 도덕도 없는 인간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근본주의자들에게 성경의 무오 교리를 보호하려드는 열심을 자극했다. 근본주의의 중심은 구원에 있다. 그래서 그들의 유일한 질문은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세상에 죄가 들어왔으며, 인간은 그의 영혼에 아담의 죄책을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무엇인가 그를 위해서 행하시지 않고는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가 없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정의를 충족시키고 인간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인간이 예수로 온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구원의 대속이 될 수 없다. 이것을 가감없이 믿는 것이 근본주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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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27
  • 기독교 자유주의
    ◇20세기의 대표적인 신학사조(神學思潮) 중 하나가 ‘자유주의’(Liberalism)이다. 이를 '현대주의'(Modernism)라고도 부른다. 자유쥬의는 모든 신앙은 이성과 경험의 장애를 통과하여야만 한다고 믿는 사상이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는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e)보다 내재성(immanence)을 중시한다. 그러므로 초월해 계신 하니님이 특별한 사건에만 기적적으로 개입하여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전생애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점진적 변화의 방법이요, 자연법칙을 통한 방법이지, 어떤 일은 자연의 힘으로 말미암고, 어떤 일은 초자연적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인한다. 자유주의자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 또는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서, 또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계심을 보는 것이다.◇자유주의자의 하나님에 대한 증거 중 하나가 종교적 경험이고, 또 그러한 경험은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므로 다른 종교들도 계시를 가진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자유주의자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인정치 않는다. 정통주의에서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초자연자가 역사하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지만, 자유주의자들에게는 동정녀 탄생이 불필요한 일이다. 많은 자유주의자들도 예수를 신적 존재 또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본다. 그러나 어떤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를 다만 위대한 종교적 윤리적 지도자의 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그래서 대부분의 자유주의자들은 역사적 예수를 연구하는데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기독교가 예수라는 완전한 인간 위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의 중요한 과업은, 4복음서 저자들의 증언과 바울의 신학으로 덧입혀진 종교적 예수를 해부하여 참다운 예수를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거기서 나온 표어가 “그리스도가 아니라 예수를” 또는 “바울의 신학이 아니라, 예수의 종교를”이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교리(敎理)를 대표하는 분이고, ‘예수’는 단순한 갈릴리의 에언자(豫言者)를 의미하는 것이다. 또 바울이 예수를 신학이라는 검은 안개 속에 숨겨버린 잘못을 범함으로써, 예수가 본래 나타내고자 한 참 종교를 퇴색시켰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도 참다운 예수, 혹은 역사적 예수가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가에는 합의를 보지 못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은 원죄에 대한 교리도 부정한다. 이것은 자유주의자들이 본래 죄성을 가진 인간 자체의 불안전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 본성 그 자체에는 근본적으로 잘못이 없다는 데서 나온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 크게 문제 삼는 죄는 원죄나 일반적인 죄가 아니라, 부패한 정치, 이기적인 착취, 스스로 의로운척 하는 독선주의, 민족 차별 등등의 구조악이다. 오늘날 미국교회에서 종교철학이나 종교심리학이 신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20세기 미국교회에서 이러한 생각을 가진 자유주의자들이 쟁취한 승리의 결과이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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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9-05
  • 기독교 정통주의
    ◇우리는 흔히 기독교 정통주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여기에서 ‘정통’(Orthodoxy)이란 말은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려는 위협(이단)으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이단’(Heresy)은 정통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이다. 기독교 초기에 나타난 이단은 노스틱주의(Gnosticism)였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노스틱주의자들은 언제나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 곧 영지(靈知)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비밀은 당시에 택함받은 노스틱주의자들에게만 전해졌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창설했으나 물질적으로 눈이 어두운 유대인들에게는 숨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런 주장을 하는 노스틱주의를 배척했다. ◇만일 노스틱주의가 승리하였더라면 기독교의 복음은 선택받은 몇몇 사람에게 주는 복음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는 사람이 아니고, 많은 ‘비의종교’(秘義宗敎)의 신(神)들 중의 하나가 되고, 교회공동체는 세상을 부정하는 금욕적 집단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 강력한 이단을 내어쫓기 위해 일어섰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통적 입장을 공고히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것이 곧 교리(敎理)의 확립이다. 교리는 외부의 공격을 막는 데는 방패(防牌)가 되고, 상대를 공격하는 데는 창(槍)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아직도 고백되는 사도신경은 이 때에 작성된 것이고, 이 교리는 노스틱주의에 대한 훌륭한 방패가 되었다. ◇사도신경은 맨 먼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신앙을 확증한다. 이원론 사상을 가진 노스틱주의자들은 이 세계가 악한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에 악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물질계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으로 선하고 또 사용할 가치가 있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도신경은 또 예수는 곧 “하나님의 독생자시며 우리 주님”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가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고, 역사적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 받으시고, 또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고 선언한다. 이는 예수의 완전한 인성에 대한 신앙을 확증하는 것이었다. “몸이 다시 산다”는 것 또한, 영혼은 선한 것이고 육체는 악한 것이라고 믿는 노스틱주의의 신앙을 부인하고, 육체의 가치와 지상생활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독교사상에서 제기된 문제는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이었다. 이 문제 또한 이단의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본질’(homoousios)인가, ‘유사본질’(homoiousios)인가 하는 문제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를 논한 삼위일체 교리는 결코 철학적 논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계시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은 325년 니케아에서부터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까지 오랜 기간 이어졌다. 기독교의 정통주의는 수 세기동안 이어진 이 논쟁을 거치면서 확립된 것이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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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2
  • 봉건의 산물
    ◇19세기의 과학문명과 20세기의 공산주의는 둘 다 똑같이 종교는 곧 사라질 봉건시대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종교는 미신과 인민의 아편으로 몰려 척결의 대상이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교회를 “낡은 사회에서 반동 통치계급의 정치적 비호 아래 근로자들의 계급의식을 마비시키고, 제국주의 침략자들의 반동적 사상, 문화적 침투의 중요한 수단”으로 규정했다. 심지어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일종의 미신이다. 예수를 믿든 부처를 믿든 그것은 근본적으로 미신을 믿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종교인들을 데리고 공산주의 사회로 갈 수 없다”며 종교 말살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과학문명이 꽃을 피우고 공산주의가 인간의 정신을 할퀴고 있던 20세기에 세계 종교인구는 그 이전 세기의 배로 증가했다. ◇현대인은 전통클래식 종교뿐만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신종교(新宗敎)에까지 깊은 관심을 갖는다. 현대인의 삶의 모든 것이 종교적 관심으로 기울러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엔 무엇이 종교이고, 무엇이 종교 아닌지를 구분하기조차 모호해져 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 세계 혹은 영성 세계가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인이 과학지식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오히려 종교를 광신화 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사실 현대사회가 과학으로 종교의 세계를 증명할려는 시도 자체가 전혀 틀린 발상이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세계가 얼마든지 있다. 돈이나 명예가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삶을 즐길 만한 충분한 돈과 명예를 가지고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과학이나 지식이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인류사는 기원전 900년부터 기원전 200년 사이에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전통이 탄생했다. 이를 '축의 시대'(Axial Age)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시기가 인류의 정신적 발전에서 중심 축(軸)을 이루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기독교는 여기에서 나온다),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이는 모두 어떤 모양으로든 종교의 산물이다. 인류는 이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 이 시기에 축적된 지적, 심리적, 찰학적, 종교적 자양이 인류의 정신사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대한 인류의 정신사를 봉건시대의 낡은 산물로 여기고 부정해버리는 과학 만능주의나 공산 유물주의는 오히려 허황하기 짝이 없는 정신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다.◇자연과학을 비롯한 현대문화는 오랜 인류의 정신적 노력의 산물이다. 이것은 종교와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한 종교를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강한 현대인이라면 수천년 동안의 축적되어온 종교의 가르침에서 지혜를 얻되, 현대사회의 갈등과 혼돈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종교를 봉건시대의 산물로 여기고 쉽게 거부하거나, 종교의 순기능을 받아들여 현대문화와 부단히 조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병든 현대인이고, 후자는 건강한 현대인이다. 똑같은 논리에서 종교인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와 문화를 거부하고 종교적 신앙에만 매몰된 사람과 그것과의 신앙의 조화를 부단히 추구하는 사람의 차이이다.
    • 연지골
    • 연지골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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