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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투(MeToo)운동, 사과와 용서하는 계기 되기를
    최근 우리 사회가 미투(MeToo-나도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운동이 활발하다. 이는 지난 1월 29일 현직 서 모 검사가 자신이 2010년 남자 선배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서 검사가 지난 7년 동안 이런 아픔을 감춰오면서도 느꼈을 고통이 안타깝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미투(MeToo)운동의 대상자들이 우리 사회 여러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계, 영화계, 연극계, 기업, 종교계, 사회 전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례 가운데, 여성을 성적 도구로 생각하여, 그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에 분노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들을 보면, 문학계의 유명인사인 고 모씨, 문화예술계의 연출가 이 모씨, 배우 이 모씨, 윤 모씨, 김 모씨, 예대 교수 한 모씨, 인간문화재 하 모씨, 배우 출신 조 모씨, 또 다른 조 모씨, 오 모씨, 화백 박 모씨, 극단 대표 최 모씨 등이 관련자로 지목되면서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거기에다 종교계에서도 정의/양심을 부르짖었던 한 모 신부가 이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성적 피해와 수치심을 당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이것을 강자의 논리로 또 다른 피해를 유발시켰다며, 이를 당장 바로 잡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성추행이나 성폭력도 문제지만, 여성 앞에서 ‘성희롱’과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도 문제이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던 인사가 청와대에도 있고, 근자에 임명된 법원의 고위직도 거기에 포함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명확한 조치가 없는 것은 유감이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진상 규명과 관계자 처벌, 성폭력 문제 근절, 성범죄 없는 일터 만들기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은 여성을 직장 내에서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여성을 같은 인격체의 동료로 볼 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쉬쉬’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진정으로 깊이 사과하고, 또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므로, 오랫동안 가져야 할 깊은 상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세 번째는 여성을 ‘성의 상품’으로 만들어 가는 현상을 지양(止揚)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으로 노출시켜, ‘성의 상품화’를 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네 번째는 정부와 공공 기관에서부터, ‘성적 문제’의 전력(前歷)이 있는 인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공직에서 퇴출시키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미투(MeToo)운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기독교계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성경 십계명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탐내지 말라’(출20:17)고 하신다. 지난 번 서 검사에게 성추행을 한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가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져 매우 곤혹스러웠다. 우리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모든 범죄가 인간의 잘못된 욕심과 오도된 상황 인식에서부터 벌어짐을 깊이 깨닫고, 다시는 이런 불미스럽고,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차제에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죄와 잘못에 대해서는 밝히고 고치되, 어렵고 힘들어도, 상대편을 용서하는 마음도 갖게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이는 무조건 죄를 덮자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이 정죄하는 마음보다 훨씬 크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잘못에 대한 지적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인사들이 대부분 진보성을 가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계나 여성가족부가 즉각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여성계가 서 모 검사 때에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성명서를 냄) 정의와 바른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도 진보/보수로 편을 가르는가? 의아했었다. 또 하나는 미투(MeToo)운동이 남성을 혐오하거나 공격하는 수단이 되지 않고, 남녀 상호 간에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촉매제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미투(MeToo)운동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것인데, 이를 통하여 관행이나 악습들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부당하게, 지금까지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아픔에 위로를 보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3-08
  • 설날의 한 평화 메시지-임 영 천 목사
    우리의 최대 민속 명절인 설날(구정)을 맞이하여 평소 제각기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아들과 딸들이 부모 집이라고 찾아오고, 손자 손녀들까지 대동하고서 옛집으로 밀어닥쳤다. 3대가 한자리에 모여 담소하고 맛난 음식도 들게 되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건강증진에 보태어 쓰시라고 금일봉씩을 전하고, 부모는 또 손자, 손녀들에게 세뱃돈이라고 각기 봉투를 건네니 그 역시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가정에 따라 윷과 같은 놀이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겠다. 그런데 2018년 올해의 설날에는 단순히 민속 명절의 의미만이 아닌 또 다른 뜻이 곁들여져 있어서 그 기쁨과 즐거움을 크게 더해 주었다. 설날을 전후하여 국제 스포츠대회인 동계 올림픽이 강원도의 평창에서 열리고 있어서 이를 티브이(TV)로나마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국민 모두의 또 하나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느 해 설날에 우리가 주도한 이런 큰 국제 스포츠대회를 우리나라에 불러들여 함께 관람할 수 있었던 때가 따로 있었던가. 고작해야 우리들끼리만의 민속씨름대회 정도가 아니었던가. 무술년 올해의 설날은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경사가 겹친 대단한 민속명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이웃나라 중국에서 춘절이라고 하여 떠들썩한 명절 행사가 치러지고는 있지만,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다 보냈다고 하는 보도가 나돌기는 했지만, 그러나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매우 의의가 큰 일대 겹경사가 그들의 이번 명절에서도 있었다고는 볼 수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무술년 설날의 일대 겹경사는 부득불 한국인들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다. 과거 다른 나라에서 행해졌던 동계 올림픽들에서는 쇼트트랙 경기에서 금메달이 많이 나오거나, 아니라면 이상화가 주도한 여자 빙속 경기에서, 그리고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경기 등에서 우리들이 큰 기쁨을 맛보았었다. 모두 소위 ‘빙상’ 경기들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우리들이 과거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설상’ 경기에서까지 금메달이 나왔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큰 일대 수확이라고 하겠다. 스케이트가 아닌 썰매의 일종인 스켈레톤 경기에서의 금메달리스트 윤성범의 등장은 피겨스케이팅의 퀸이었던 김연아의 요즘의 공백을 사실상 메꾸어 준 일대 쾌거라고 보아야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 보아야 알겠지만, 여자 컬링 선수단의 새로운 등장 역시 국민들의 가슴에 시원한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음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그러나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특별히 예찬되어야 할 점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남/북한의 화해무드 조성이었다고 판단된다. 어느 누군가가 우리의 이번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란 말로 폄하하려고 시도했다 하더라도, 엄연한 사실은, 평창올림픽에 대한 국제적인 찬사와 이 스포츠 행사에 대한 전 세계적인 기대와 희망이라고 보아야겠다. 북한의 핵 위협에 불안해하고 있는 전 세계인들은 이번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준 남/북의 화해무드 조성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전시효과에 그치지 말고 올림픽 폐회 이후에도 지속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들은 모두 트럼프의 돌발적인 발언과 예기치 않은 어떤 행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궁지에 몰린 북한의, 마치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들 듯 하는 어떤 돌발적 행동이 미국과의 사이에서 행여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 와중에 핵무기라고는 전혀 지니고 있지도 않은 남한마저 예기치 않은 극단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더욱 없기를 바라고 있을 터이다. 세계인들은 한마디로 세계 평화의 도래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제3차대전의 화약고로 남/북한이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난 6.25 한국전쟁에 전 세계의 청년들이 참전해 허다히 목숨을 잃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평화를 외쳐대고 있다. 그 후손들이 지금 평창의 올림픽에 참가해 세계의 평화를 몸으로 부르짖고 있는 셈이다. 남북 아이스하키 혼성팀이 다른 모든 나라의 팀들에게 전패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과거의 허물(죄과)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의미라고 해석해 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2-23
  • 한국교회의 ‘Me to’ 운동-홍 성 표 목사
    우리는 요즘 며칠 사이에 충격적이나 이미 수 없이 보고 들은 사회적 이슈가 들끓는 점을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죄인을 다루고 법을 집행하는 소위 ‘사회정의 구현’을 목적과 목표로 일하고 있는 준사법기관의 검차내부의 성적추행이나 성폭행 사건을 다름 아닌 현직 여검사로부터 듣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소설형식을 빌어 고백을 통한 검찰 조직 내부의 실상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명 언론사의 매인 뉴스룸에 나와서 앵커와의 대담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명백히 들어 내놓고 단회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글과 뉴스를 통해서 나라를 온 통 들쑤시고 있고 평창 올림픽 뉴스를 대체하고 있다. 남북의 극단적 기장과 전쟁고조의 분위기 속에서 단절 되었던 남북의 대화가 오래 만에 해빙을 맞은 시기에 이 뉴스는 평창 뉴스의 반감을 덜기에 충분하다. 국정 농단과 촛불혁명을 통해서 출현한 문재인 정부가 9개월을 맞고 있는 과정에서 반역사적 적폐청산은 계속 되고 이명박의 다스와 국정원의 특수 활동비의 비리와 부패를 파헤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사건은 박근혜와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국정농단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국가적 상처에 분노를 더해 간다. 그런데 현직 검찰조직의 현직 검사가 8년 전에 있었던 검찰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국장의 공공의 장소에서의 여검사에 대한 공공연한 성추행이 만천하에 고백되고 있는 것이다. 상명하복 일사불란한 조직공동체에서 여성이라는 가부장적 성적학대 행위는 아마도 밝혀진 것은 약과일 것이다. 아직도 여성이란 성적차별의 대상으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동안 남성중심의 문화에 억눌리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자리는 가슴앓이와 말 못할 한들로 가득하다. 한 여가수의 ‘여자의 일생’ 이라는 가요에서 보듯이 여자는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하는 식의 삶의 현장에서 서리서리 한들이 쌓여 온 것이 사실이다. 지아비를 섬기고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칠거지악’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 온 여인들의 한이 무엇으로 쉽게 풀리겠는가? 그렇기에 서지현 검사의 고백은 다시 한 번 우리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 온다. ‘검찰공화국’에서 당한 인권의 문제들이 역사에 가득하다. 죄 없는 자들을 간첩으로 몰아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한 ‘인혁당’ 사건 뿐 아니라 불의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며 저지른 숱한 죄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동료 현직 검사를 농락한다면 힘없는 민중들을 얼마나 농락하고 멸시와 무시를 하며 거드름을 피우며 권력의 칼끝을 휘둘렀겠는가? 수사권과 기소권 종결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검찰공화국의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무소불위의 권력집단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벌벌 떨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조직의 권력의 힘을 통한 공적인 폭력이 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워서 얼마나 많은 성추행과 성폭행, 성적 억압을 자행해 왔는가? 한국교회의 도덕 불감증과 신을 앞세운 무소불위의 권력을 통해서 폭력을 행사해 온 죄들의 낱낱이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성직을 팔고, 교수라는 이름으로, 모든 조직의 힘으로 자행해 온 우리 사회의 공적 폭력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억압하고, 병들게 하며, 죽음으로 내 몰았는가를 철저히 회개하는 일 없이 한국교회의 내일은 기대할 수 없다. 교회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살지 못하는 한 그것은 성서적이지도 않고 정의와 사랑을 가르칠 아무런 명분도 능력도 없다. 교회와 신학교에서부터 이런 성적 범죄를 덮어 두어서는 안 된다. 이런 범죄가 있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내의 도덕불감증은 교회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교회사 속에서의 성폭력의 문제는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교회도 이러한 모순을 벗어나지 못하고 교권이나 성직의 힘을 통해서 숱한 범죄적 행위를 저질러 왔다. 대개의 경우 성폭력은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의 자본과 권력 혹은 성차별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 교회가 이점에서 획기적인 고백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2-09
  • 평창 올림픽과 남북교류의 전망/홍 성 표 목사
    김정은의 파격적인 신년사와 1.9일의 장관급 고위실무회담을 통해서 2년여 동안 중단된 남북의 대화의 자리가 재개 되었다. 마지막 남북 만남의 보루였던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하고 빗장을 잠근 반역사적인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촛불혁명으로 극복하고 들어선 문 정부의 2년 차에 이루어진 카이로스적 사건이다. 이러한 결정적 고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단초가 된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든 동기든, 혹은 핑계거리든 남북의 얼어붙은 강물을 뚫고 평화의 이야기가 재개 된 준비 된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임을 자임하고 쌓여 있는 반역사적 반사회적 적폐청산들을 연일 언론 매체에 쏟아 놓고 있다. 검찰개혁과 사법부의 개혁, 공정위를 통한 재벌의 횡포와 중소기업 간의 바른 관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제도적 개선과 방향 모색 등 그동안 불의와 부패의 썩은 고리들을 끊고 정경유착을 통해서 자본과 권력의 동반 폭력들을 거두어 내고자 한다. 친일과 독재의 세력들은 몸부림을 치면서 이러한 개혁 드라이브를 시기 질투하며 추악한 행패들을 연출하고 있다. 새로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하여 개헌을 내세우고 6월 지방선거와 함께 매듭을 짓고자 한다. 검찰공화국의 횡포와 불의와 폭력을 통한 그동안의 민중들에 대한 폭압과 살아 있는 권력에 아부아첨하며 굳어진 고리들도 거두어 내고자 한다. 경찰과의 권력 균형들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경찰들은 법을 지키며 억울한 민중들의 삶을 보살펴 왔는가? 개인과 개인 간의 폭력들로 인하여 상처와 죽음이 닥치기도 하지만 국가의 공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던 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제의 군국주의 아래에서 벌어진 전쟁범죄, 그중에서도 성노예의 잔혹한 일들에 대한 진정한 사좌와 반성과 회개가 없는 마당에서 아직도 정의의 근거는 서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산적한 문제들이 쌓여 있지만 남북의 만남과 대화는 평창의 화두로 시작 되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차관급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의 상봉문제 등과 함께 남쪽에서 요구하는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가 있다. 북쪽의 요구는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과 한반도 평화협정 등이 있고 자주적인 우리들끼리의 민족 주체적 통일의 길을 지향하자는 요구들이 있다. 여기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기지개를 크게 펴고 있는 러시아와 한반도의 분단을 통하여 새로운 군국주의 부화를 용트림 하는 일본 등의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들의 높은 담들이 있다. 1. 9일 회담에서 남북은 3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내고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반도 긴장 완화 공동 노력,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의 합의 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합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 등을 지금 실무회담을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고 있다. 남북의 공동 단일팀과 관련해서 여자 아이스학키 선수들과 전부와의 갈등 관계가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선수들 각자의 땀 흘림과 소위 인권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고 새롭게 열린 모처럼의 남북관계의 시작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서로의 양보와 우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지혜를 모아서 할 일이다. 역사의 앞날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 될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최고의 과제이고 사명이다. 국가당국의 주도로 시작되는 통일운동만으로는 남북의 길이 형식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민중을 주도로 하는 민간 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모든 남북의 분야들의 교류가 시작되고 조건 없는 만남들이 물결처럼 파도쳐야 한다. 국제적인 환경과 관계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남북 주체들이 만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근본적 해결의 시작이고 완성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만남의 시작이 변질 되어서는 안 된다. 만남은 지속되어야 하고 확장 되어야 하며 활성화 되어야 한다. 평창이 진정한 남북의 만남과 평화 정착의 흔들리지 않는 토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2-03
  • ‘통일’ 만남이 답이다/홍 성 표 목사
    2018년 1월 1일은 진실로 역사적인 날이다. 반역사적, 반민족적, 반민중적 정권 이래 무려 10년 만에 새 역사가 열리는 해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만의 역사가 반복되거나 번복되는 역사가 아니다. 분명히 역사는 새날을 통해서 새롭게 되어 진다. 거꾸로 가고 후퇴하는 역사일 지라도 그 것은 새 날과 새 역사를 잉태하고 만다. 배신과 절망의 역사일 지라도 반드시 옳음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어지럽다. 우리는 갈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생명이 움트는 새로움을 본다. 인간들이 만든 과학과 이성의 문명의 끝이 어디인지 누구도 모르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핵전쟁과 원전사고, 그리고 탐욕으로 빚어지는 생태계의 파괴와 자연의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파멸과 생명체의 단절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창조의 과정은 멈추지 않고 생명과 희망의 씨앗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일제치하의 갖은 고초와 죽음과 어둠의 진흙탕에서도 하나님나라 운동을 그치지 않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외세에 등진 해방과 독립을 맞이하였다. 미소 양 강대국들에 의한 찬탁과 반탁으로 나누어지고 사회주의 운동의 독립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독립주의 진영 운동가들로 하여금 남북은 갈라지고 찢겨진 채로 진정한 해방과 독립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분단과 해방공간에서의 미군정과 남북의 서로 다른 두 체제는 1992년 유엔에 의해서 두 개의 나라로 승인받게 된다. 그리고 분단 73년을 살고 있다. 우리의 통일운동은 진정한 한반도의 독립운동이다. 우리는 독일과는 다르고 베트남처럼 민족상잔을 겪은 분단의 처절한 아픔을 겪은 민족이다. 그리고 주지하는바 지구상에서 마지막 분단국가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과 미군정의 결탁, 박정희의 군부 쿠테타와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 10년간을 휘둘려 왔다. 지난 1년간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역사의 적폐청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친일과 반역사적 , 반인륜적 독재와 학살정권과 함께 다시 반역사적, 반민족적 정권의 찌꺼기들을 청산하지 않고는 역사가 바로 설 수 없고, 역사가 바로 서지 않고는 진정한 독립의 성취와 분단을 극복하는 한반도의 봄은 오지 않는다. 한반도의 봄은 통일이다. 그 통일은 단순히 국토의 통일이 아니라 민족의 지난 아픔들을 치유하고 가슴을 활짝 열어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구체적인 실천에 있다. 진정한 평화는 차별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너’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다함없는 사랑의 마음이며 행도의 실천인 것이다. 이러한 분단의 극복을 통해서 통리로 가는 답은 남북이 조건 없이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만남을 통해서 밥상공동체를 이루고 먹고 마시며 속내와 진심을 털어놓고 피차 도울 것은 도우며 함께 더불어의 삶을 순차적으로 실현해 가는 일이다. 말만 무성하고 삶의 실천이 없는 것은 무의미한 소음이 될 뿐이다. 만나서 스킨쉽이 있고 부딪히고 논쟁도 하면서, 타협과 협상을 해가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 평창올림픽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기화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고 2015년 이후 끊어진 소통의 전화를 복원하며 이산가족의 상봉과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군사 무력충돌의 상호불가침 약속을 하며 민간교류 운동을 활성화 하고, 개성공단을 다시 열며 금강산 관광의 재개해야 한다. 만나야 사랑도 하고 생명도 잉태한다. 우리는 북조선의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의 남북 만남의 신년사를 단순한 전략과 제스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미중과 러일 등 주변 강대국과의 지혜로운 외교채널들을 통해서 이 기회를 분단의 벽을 헐고 통일로 가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고 교파의 다름이 따로 없으며, 종파의 차이가 따로 없다. 단순히 한미동맹의 차원이 아니라 미중과 북의 비위를 맞추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대한 시 점, 카이로스의 카이로스로 받아 들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바로 이 문제에 달려 있고 북의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과 남의 통일부장관 조명균의 첫 회담을 통해서 실타래처럼 얽인 문제의 단초를 풀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2018년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이 민족의 새 역사를 여는 분단극복과 통일로 가는 잉태의 날 되기를 기도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1-22
  • 파사현정의 성탄절을 보내며-임 영 천 목사
    정유년(2017) 올해의 성탄절은 다른 해의 성탄절에 비해 크게 다른 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에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촛불집회가 새 정부를 앞당겨 탄생시킨 해에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점이다. 이 첫째와 둘째의 일들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므로 그 의미와 감회 또한 그만큼 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탄절은 한 해의 마지막 달(12월)에 있고, 또 날짜도 하순(下旬, 25일)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날을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1년을 반성하는(되돌아보는) 날로 삼는 것도 좋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1517)에 소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때의 프로테스탄트는 곧 로마 가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트(저항)이었다. 기성(旣成) 가톨릭교에 대한 신생(新生) 개신교의 항거였던 것이다. 기성 가톨릭교회의 어떠한 면에 대한 항거였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기성교회(가톨릭)의 악습에 대한 항거였다고 할 것이다. 악습이란 곧 나쁜(좋지 않은) 습관이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던 악습들 중의 하나는 바로 ‘세습’ 문제였다고 하겠다. 세습이란 기득권을 무비판적으로 대를 이어 후대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당시(중세)의 기성교회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는데 그런 기성교회를 선대의 주교가 후대의 주교에게, 마치 아비가 자식에게 그러하듯 아무런 거리낌(뉘우침) 없이 주교좌 성당을 물려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대(代)가 거듭될수록 더욱 타락할 수밖엔…. 결국 종교개혁이란 역풍을 맞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종교개혁 기념행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과거사로 기념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 지도자들이 기념의 행사에만 열을 올리지,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개신교 울안의 교회세습이란 악습이 자리를 잡아가더라도 무관심 일변도로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형교회들의 교회세습은 ‘당신들의 천국’ 만들기에 불과할 뿐 우리 모두의 천국(하나님 나라) 건설과는 무관하다. 성탄절 아기 예수께서 그들을 바라보실 때 “저 지독한 욕심꾸러기들!”이란 반응밖에는 달리 무슨 긍정적 반응을 따로 보이실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 ‘욕심’이란 것에 대해선 또 어떻게 해석되었던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그 결말의 두려움이 이미 적시(摘示)되지 않았던가?작년 10월 29일에 이른바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끝내는 국회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뤄내더니, 다음 단계로는 헌재(憲裁)에서의 파면마저 이끌어내어 전(前) 대통령의 권좌로부터의 완전 실각을 성사시켰다. 그리고는 금년 5월 10일에 문 대통령의 새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정치적 혁신을 이루겠다고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지금까지 높은(70% 이상) 지지를 받아왔다. 촛불집회의 정신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이었기 때문에 새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과라고 보아야겠다. 적폐청산(積弊淸算)이란 말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해 보자면 곧 파사현정(破邪顯正)이 된다고 보겠다. 교수신문이 내년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뽑았다고 한다. 그것은 올해의 적폐청산을 내년에도 파사현정으로 계승하자는 뜻이 되겠다. 교수신문을 통해 전국 교수들이 보여준 진의도 알고 보면 촛불민심과 같다고 생각된다. 적폐는 청산되어야 하며, 또한 사악(사특)한 세력은 파멸되고 올바른 이들이 크게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지식인이요 지성인인 전국 교수들이 풀뿌리 서민들의 촛불혁명 대열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비교적 다른 이익집단에 덜 유착되어 있고 이해관계에 있어서 비교적 거리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 모세가 적폐세력인 애굽 왕 바로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광야로 진격하고 있었을 때, 그 성과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 불만세력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모세를 배척하기 시작했다(민수기 14장).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이 그와 매우 흡사한 것 같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말이 있듯이, 물색 모르고 날뛰는 이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진격하는 모세의 군대를 훼방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의 진격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방해꾼들의 패배와 파멸(민 14:26~)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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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3
  • 큰 십자가, 작은 십자가-강 경 신 목사
    “큰 교회는 십자가, 누가 이 큰 십자가를 지겠나” 이 말은 최근에 세습 문제로 시끄러운 한 대형교회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기독교 안팎에서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여전한데, 이 교회는 정면돌파로 세습을 감행하였다. 이로 인해 온갖 말들이 무성하고, 이 일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화제 거리가 되었다. 언론과 TV매체들이 연일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지탄을 받았다. 어쩌면,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에 그 교회는 가장 큰 일(?)을 행하였다. 이제 그 교회는 한국교회의 선두주자가 되어, 부흥의 견인차가 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대물림은 결코 사욕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부흥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교회들과 가슴을 졸이며 애를 태우는 목회자들에게 “우리를 보라”고 자랑하며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세상의 시선이 차갑고,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데, 무슨 수로 다시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도 좋으니 내 교회만 더 크게 되고 잘되면 된다는 말인가? 최근에 발표된 ‘2017 소형교회 리포트’는 한국교회 목회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설문조사에 응답한 목회자들의 거의 절반은 현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 지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교회가 성장하지 않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이들이 추구하는 목회가 ‘교회성장’(33.5%) 보다는 ‘건강한 교회’(66.5%)라는 것이다. 비록 교인 수가 늘지 않아 교회성장이 안되고 교회 재정이 열악하여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자신의 목회에 만족한다”(73.3%)고 한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무엇일까? 그들은 교회가 작아서 작은 십자가를 져서 만족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더욱 크고 무거운 것이다. 과연 십자가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십자가는 참 십자가가 아니다. 나아가 십자가는 사명이다. 내가 좋아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싫어도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지는 것이다. 아무리 십자가가 고난과 희생을 요구할지라도 묵묵히 지고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십자가를 너도 나도 지기를 원하는 대중적인 십자가로 바꾸었다. 십자가를 성공의 통로요, 번영의 도구요, 영광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교회를 성공적인 기업처럼 부러워하며,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성공한 CEO처럼 우러러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아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다. 이들이 큰 교회를 세웠다고 해서 큰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라고 명령하신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이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져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대로 십자가이다. 고난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될 수 없다. 다시 대림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가? 오늘의 교회는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우리에게 십자가의 신앙을 올곧게 가르쳐 주신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시를 쓰셨다. “주님을 따르다가 옥에 갇히어/ 온갖 고생 다하다가 죽을지라도/ 십자가의 큰 고난 생각을 하면/ 아직도 내 고생이 부족하구나/ 깨어라. 주께서 오신다/ 주님 위해 살다가 목숨 바치자.” 그렇다. 십자가의 큰 고난을 받는 사람이 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다. 큰 교회가 큰 십자가가 아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말자.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신앙은 십자가이다. 이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목숨까지 십자가의 제물로 기꺼이 바쳤던 것이다.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주기철 목사님은 외치셨다. “깨어라. 주께서 오신다. 주님 위해 살다가 목숨 바치자.”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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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8
  • 종교인과세 무엇이 문제인가?-장 헌 일 목사
    현행 종교인소득 과세 체계는 종교인들이 종교단체로부터 받는 소득을 기타소득 중 ‘종교인소득’으로 규정하되, 종교인이 원하는 경우에는 ‘근로소득’으로 신고·납부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매월 종교단체가 종교인소득을 지급할 때 근로소득과 같이 원천징수 납부할 수 있다. 그러나 작년 10월부터 소위 ‘탄핵정국’ 이후 관련 매뉴얼 등이 준비될 수 없었고, 이는 올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과세당국이 종교인소득 과세를 위한 준비를 지난 6월에서야 뒤늦게 시작하면서 교계에서는 종교인 과세가 47년 만에 시행되기 때문에 종교의 고유한 역할과 사명을 간과한 채 만약 일방적으로 과세를 시행한다면 많은 문제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어 지난 6월 19일 여의도 CCMM에서 국민일보와 한국공공정책개발연구원(원장 장헌일)이 공동주최한 제5차 ‘종교인과세대책을 위한 컨퍼런스’를 통해 종교인과세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례비로 제한하여 과세해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한바가 있었지만, 8월에 가서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 정부 측과 한국교회 TF팀이 처음으로 간담회를 가졌다.이러한 가운데 지난 9월 9일 정부는 돌연 주요 종교기관들을 향해 ‘세부과세 기준 자료(안)’을 제시했는데, 이는 종교인 과세가 아니라, ‘종교과세로 종교활동과세, 종교침해과세’ 성격을 띠고 있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특히 심각한 종교편향성까지 보이고 있어 정부는 종교단체들과 다음과 같은 사항에 대한 대비가 없다면 향후 조세마찰 등으로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될 것이 명약관화 하다.실제 각 종단 별로 수입금액의 종류와 비용인정 범위가 상이함에도 국세청과 종단 간에 상호 협의된 상세한 과세기준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또한 지금까지 종교인소득이 과세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교인소득을 계산하는 회계와 종교단체의 회계를 구분하지 않고 운영해 왔다. 따라서 종교인 회계와 종교단체 회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수입금액의 종류와 비용범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이 종교인 소득이고 무엇이 종단 소득인지 등에 대해 국세청와 종교단체 간의 폭넓은 협의와 홍보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탈세관련 제보로 인해 세무조사가 이뤄질 경우 제보의 진위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실이 언론 등에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해당 종교인 및 종교단체의 도덕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고, 국가권력과 종교 간의 마찰이 불가피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처음 시행되는 종교인소득 과세제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검토와 면밀한 준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첫째, 과세당국은 종교인 소득회계와 종교단체 회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을 만들고, 각 종교, 종단 등과 긴밀히 협의하여 종교인 소득에 포함되는 종교단체별로 다양한 소득원천과 비용인정 범위, 징수방법에 대하여 상세한 과세기준을 협의·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 종단별 소득구조 특성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세부 과세기준에 따른 과세 및 징수에 대한 예행연습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둘째, 탈세관련 제보가 있을 경우에는 영리법인에 대한 세무조사와 마찬가지로 세무조사권이 신중하게 발동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일선 세무서에서 받은 탈세제보는 국세청으로 이첩하여 국세청이 수집 분석한 과세자료와 대조를 통해 명백한 탈세 혐의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각 종단에 넘겨 추가 자진신고 납부를 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실제 대부분의 선진국의 경우 과세당국과 종교단체 간에 사전에 협의된 구체적인 과세기준에 따라 자진신고하면 납세의무가 종료되는 ‘협의과세제도’를 운용하고 있음).셋째, 현재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에만 적용되는 근로장려세제를 모든 종교인소득에 대해서는 근로소득으로 신고·납부 선택 여부를 불문하고 적용될 수 있도록 금년 중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하다.지난 대선 때 각 당 대선후보들은 헌법에 명시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고 정교분리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조세저항과 사회와 국가적인 혼란과 국론분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종교의 역할과 중요성을 감안하여 종교인과세를 2년간 유예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부는 종교인들이 조세저항 없이 자진납세 할 수 있는 기준과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종교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제2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불변의 가치이며 어떤 경우에도 침해될 수 없는 천부적 가치이다. 종교의 특성과 목회자 사역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종교정책은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뿐이기 때문에, 정부는 종교인과세를 졸속행정으로 종교간 갈등을 유발 시켜 국민화합을 저해하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충분한 시간을 갖고 협의할 것을 촉구한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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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25
  • 세상의 소금으로서의 기독언론-임 영 천 목사
    지금으로부터 만 일년 전인, 2016년 10월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일단의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는 이른바 촛불집회의 시발이었다. 시민들의 이 자발적인 모임은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거의 매주 토요일에 어김없이 모이되, 그 숫자도 점차로 불어나기 시작하였다. 그 거대한 집단의 위력은 대단하여 끝내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루어내더니, 다음 단계로는 헌재(憲裁)에서의 파면마저 끌어내어 그의 독재권좌로부터의 완전 실각을 성사시켰다. 그리고는 금년 5월 10일 문재인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 정치적 혁신을 이루겠다고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을 국민 대다수가 긍정적으로 봐주고 있음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끊임없는 인사정책의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음은 국민들을 매우 실망스럽게 하고 있다. 어느 후보자가 실정법적으로 문제가 없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관습법이나 도덕법에서도 별 하자가 없는 후보자가 내세워질 때 국민들은 소위 ‘개혁’지향적이라는 새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핵 위기 조성 국면을 빌미 삼아 심화되고 있는 트럼프 미 행정부의 군사 외교 면에서의 남한 정치에의 과도한 개입이 국내의 뜻있는 인사들에게 상당한 위구(危懼)의 감(感)을 자아내게 하고 있음도 사실이어서, 이 혼란한 정국을 문재인 새 정부가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해 나갈지 우려되는 바 없지 않다. 트럼프가 남북 상호간의 군사적 대결을 부추김으로써 미국의 대량 무기판매를 기도(企圖)하는 것까지야 지나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 예기치 않게 남북 간에 실제로 전쟁이 발발한다거나 나아가 세계대전으로 확전(擴戰)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볼 때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역할(대처능력)이 매우 중차대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빈부 간의 격차가 심하고, 보혁(保革) 간의 대립이 심하며, 거기에다 동서의 지역 간 골도 깊어서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의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게 아니라 근래, 또는 현재 터지고 있다고 보아서 틀림이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라는 형식을 통해서 금년 내내 터지고 있어 왔다고 하겠다. 실은 이 두 가지의 대립적인 집회가 빈부의 격차와 보혁의 대립, 그리고 지역 간의 골 문제 등을 모두 다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틀림이 없다 할 것이다. 정치인들도 이들 어느 한쪽 집회의 암시성에 잘못 이끌리면 자기처신의 불투명성까지 드러내고야 마는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전에 거대 야당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바른정당이란 신당을 만들었던 의원들이 최근 자기들이 만든 그 정당이 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했던지 옛 정당으로 다시 복귀하고 만 사건도 알고 보면 그 어느 한 집회의 잘못된 암시성에 스스로가 최면당해 일어난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로 인해 다른 정당들 상호간의 지각변동과 한국정계의 혼란상마저 부추기고 있음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세속사회의 실상이 이렇다면 그럼 기독교계는 어떤가 묻지 않을 수 없다. 혹 세속사회가 저러한데 기독교계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라고 자위하려는 사람들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문제를 그렇게 보아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왜냐면 예수께서 우리를 가리켜 “세상의 소금”(마 5:13)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세속사회가 혼탁하니 우리 기독교계도 별 수 없이 부패해질 수밖에 없는 게 아니라, 그 부패해지려는 세상을 ‘소금’으로 바로잡아 부패하지 않게 하는 게 예수의 정신을 따르는 기독교회(곧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기독교계가 어떤가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한마디로 말해 한숨부터 나온다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특별히 올해가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여서 이런 심정은 더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종교개혁가들이 도전했던 대상은 바로 로마교회의 왕권의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교회의 잘못된 제왕의식으로부터 모든 교계의 비리와 부정부패가 흘러나왔었기 때문이다. 이 잘못된 것들을 우상파괴정신으로 분쇄하려고 했던 게 바로 종교개혁가들의 위업(偉業)이었다고 보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오늘의 교회의 지도자들이 스스로 자기정화를 하기는 어렵다는 게 교회세습과도 같은, 기독교계의 악습(제왕의식의 분출)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었다고 한다면,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교정하도록 끊임없이 지도 편달하는 소금의 역할은 기독언론밖에 없다고 볼 때, 창립27주년을 맞은 <교회연합신문>의 사명이 그만큼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11-17
  • 왜 한국에만 에이즈 환자가 늘고 있는가? -심 만 섭 목사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자료들에 의하면, 한국만이 유일할 정도로,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질병관리본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에이즈 환자가 총 13,584명인데, 이는 10년 전인 2007년에 비해 2.6배 증가한 것이며, 특히 10대의 경우, 지난 2007년에는 99명이었는데, 지난해에는 417명으로 4.2배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또 20대가 1,243명에서 3,523명으로 2.8배 증가하였으며, 30대도 1,759명에서 3,699명으로 2.1배 증가하는 등,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격히 번져나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하여 인재근 의원은 ‘10대 청소년의 높은 증가율은 국민 건강 차원은 물론, 국가재정 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또 다른 의원인 자유한국당의 윤종필 의원이 밝힌 자료에 의하면, 에이즈 환자 치료에 들어간 국가 재정은 연간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윤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에이즈 환자 치료비는 2014년에 714억 원, 2015년에 810억 원, 2016년에 921억 원으로 해마다 크게 늘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에이즈 환자는 제3군 감염병으로 치료비를 국가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는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90%, 나머지 5%는 국가(질병관리본부)에서 지원하고, 그 나머지 5%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므로, 결국은 100% 국민 세금으로 부담하는 것이 된다. 거기에다 간병인비까지 지원하고 있어, 이제는 해마다 1,000억 원이 넘는 국가재정을 에이즈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5년부터 2016년까지 건강보험공단이 에이즈 치료를 위해 지출한 재정은 5,415억 원이나 된다. 여기에다 국가와 지자체와 간병인비 등을 포함하면, 그 재정은 훨씬 초과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에 대한 대처가 없이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에서 막대한 재정 지출이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물론, 국가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치료비가 들어가고, 장기적으로 치료를 요하는 에이즈 환자에 대하여 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들도 우리 국민이며, 국가가 보호하고 치료해 주어야 하니까.그러나 문제는 왜 한국에는 에이즈 환자가 줄지 않고 계속 늘어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번 국감에서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밝힌 바에 의하면, 에이즈의 주 감염 원인이 남성 동성애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동안 에이즈의 치료와 예방의 주무 기관인 질병관리본부는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의 감염 경로를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까지는 에이즈의 발생 원인이 ‘이성·동성 간 성 접촉’으로 표시했다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는 ‘성 접촉’으로 표시하는 등, 애매하게 하였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이즈 환자의 92%는 남성이다. 또 최근 신규 감염자의 94.3%가 남성이다. 이를 감안하면, 에이즈의 감염 원인이 남성 간 성 접촉에 의한 것임은 분명한 것이다. 그 동안 시민 단체나 기독교계에서 질병관리본부에 정확한 실태파악을 위한 제언과 감염의 주 요인에 대하여 홈페이지에 표기할 것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서 성일종 의원이 보건복지부장관과 질병관리본부장에게 여러 자료를 보이면서, 에이즈의 주요 감염 원인이 남성 동성애에 의한 것임을 묻자, 이를 시인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에이즈 환자 증가와 그 실태는 분명, 이에 대한 행정의 문제와 사회적 분위기에 의해서, 잘못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 일본, 호주 등은 에이즈 감염자가 줄고 있는 상황(특히 가장 많은 에이즈 환자를 보유했던 아프리카에서는 급격히 줄고 있음)에서 우리나라만 늘어나고 있어, 국민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다. 특히 10대와 젊은 층에서 급격히 늘어나는 것은 대단히 우려할 일이다(2016년 에이즈 신규 감염자 수는 1,062명으로, 이 중에 20대가 360명-33.9%, 30대 241명-22.7%, 40대 193명-18.2%로 20~40대가 전체의 74.8%를 차지함)그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는 무분별한 ‘쿼어축제’의 허용으로 본다. 현재 서울과 대구에서 허용하고 있고, 부산에서도 열렸고, 제주에서도 허용된 상태이다. 마치 동성애가 축제처럼 보이기 때문에 젊은 층에서 동성애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동성애를 통해 에이즈가 확산되는 것이다. 둘째는 언론들의 ‘인권보도준칙’에 의한, 에이즈의 문제점에 대한 실태와 정확한 원인을 보도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의 경각심이 무너진 것이다. 셋째는 정부의 안일한 행정 때문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에이즈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본다. 넷째는 차별금지법 제정 움직임과 일선 교육청에서의 동성애 조항을 포함시킨,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것들이 무비판적으로 만들어져, 청소년과 젊은 층에게 동성애를 권장한 꼴이 되었다. 다섯째는 일부 정치인들이 이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하지는 못할망정, 비호하고 두둔하는 행태를 보인 때문이다. 이번 국회 국감에서도 일부 지자체장들이 동성애를 옹호한 것에 대하여 질의하면, 정치적 견해를 다르게 하는 의원들이 이를 차단하는 등,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을 보였다. 마지막으로는 일부 목회자들이 ‘쿼어 신학’이니, 뭐니, 하면서 성경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에이즈의 증가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상당히 밝혀졌다. 그러므로 국민의 건강을 위한 일에 여·야가 따로 없고, 정치와 이데올로기가 있을 수 없으며, 민·관이 따로 없다. 이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지혜를 모아, 에이즈를 예방하는데 주력해야 하고, 확산되는 원인을 차단하는데, 뜻을 보태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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