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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다다와 철용이 사이의 거리/임 영 천 목사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 작가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자(愚者), 곧 바보(백치)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들을 제법 발표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1925),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1935), 그리고 최태응의 <바보 용칠이>(1939) 등이 그때에 나온 작품들이다. 이들을 일컬어 우리는 일제 시대에 나온 ‘3대 우자 소설’ 작품들이라고 불러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 중 특히 <백치 아다다>는 여주인공 아다다의, ‘돈’ 때문에 일어난 불행한 말로가 매우 극적으로 표출되어 있어서 다른 우자 소설들과 다소 구별되는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주인공 아다다는 아버지가 마련해준 지참금을 갖고 시집을 가서 남편과 다정하게 사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이 외지에 나가 돈을 많이 벌고 딴 여자 하나를 데리고 들어온 뒤로 아다다는 불쌍해지게 되었다. 이후 남편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아다다는 끝내 자신이 살아갈 새 길을 선택한다. 그것은 이웃 가난한 노총각 수롱이와의 새 결합이었다. 수롱이는 전부터 아다다에게 호감을 지녔던 청년으로, 그녀가 시집에서 쫓겨난 것을 알고는 다시 그녀에게 접근했고, 한편 아다다는 돈 때문에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해 돈 없는 수롱이와 함께 살면 아무 문제가 없으리란 판단 하에 둘의 새 결합이 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둘은 그들의 마을을 떠나서 신미도란 섬으로 가서 새로이 정착하기로 한다. 신미도로 왔을 때 아다다는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무일푼인 줄 알았던 수롱이가 지금껏 머슴살이로 모아 두었던 돈을 꺼내 보이며 그 돈으로 밭을 사자고 했을 때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돈이라면 원수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그녀는 수롱이 몰래 그 돈을 꺼내 바닷물에 흩날려 버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수롱이는 눈이 뒤집혀 아다다를 발로 차 바닷물로 처넣어 버린다. 아다다는 결국 그 ‘돈’ 때문에 비극적인 말로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우자 소설’은 그 후에도 더러 나오는 편이다가, 올해 한만수의 <철용이를 찾습니다>(2018)란 작품의 출현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소설 역시 ‘돈’의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면에서 <백치 아다다>와 어떻게든 연관되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돈’의 문제에 관한 한, 두 작품은 너무도 큰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시대와 사회가 변화하니 ‘우자 소설’에서의 돈의 문제도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변해 가고 있는 것 같다.현재 갓 회갑을 넘긴 철용이는 그가 사는 마곡리 마을에서 남을 위해 가장 충실하게 일을 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그 일(노동)이 그 자신에게 합당한 보수를 보장해 주지는 못했다. 그는 정신지체장애 2급의 장애인이었으므로 아예 변변치 못한 사람으로 취급되어 늘 홀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언제나 값싸게 부려지기 일쑤였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마을의 현(現) 이장이 다른 친구와 함께 그곳 지구대에 찾아가 실종 신고를 하려고 했다. 그가 장애인이란 사실을 안 지구대에서는 면사무소에 가서 그의 자세한 인적사항을 알아 가지고 오라 했다. 그들이 면사무소에 갔을 때 그곳의 사회복지사는 철용 씨가 그동안 장애인 수당과 기초수급권자 수당 등 월 55만원씩을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이장 일행은 이 사실의 여부를 철용이에게 직접 확인해 보려고 그의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의 집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반겨준 것은 철용이가 아니라 사람이 죽어 썩는 역한 냄새뿐이었다.그러면 철용이는 왜 죽었을까? 자연사, 자살, 타살 등 여러 답이 제시될 수 있겠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전(前) 이장이 철용이의 수당을 대신 받아 챙긴 것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혐의가 기울고 있는데, 사실이 그렇다면 아무래도 그 돈의 수령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전 이장이 직접, 혹은 누구를 사주해 철용이를 살해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이처럼 우자(愚者)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또는 아다다나 철용이나를 막론하고 돈을 더 추구하는 자들에 의해 속절없이 희생되기 마련인가 보다. 바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 곧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힐 수밖에 없다고 하는 그 원리가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다다는 순간적으로 격분한 수롱이의 우발적 범행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 같다. 그러나 철용이는 추측건대 전 이장의 계획적 모의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볼 때 아다다의 죽음과 철용이의 죽음 사이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죽음에 있어서 우발적인 것과 계획적인 것의 차이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두 우자들에 관한 소설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변화한 시대상과 사회상을 읽고 있다. 그만큼 시대와 사회는 무섭게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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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9
  • 국가의 공직자들이 해야 할일-심 만 섭 목사
    현 정부 들어서, 진보적 성향의 법조인들과 진보성향의 인사들이 각계에서 대거 약진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러나 법조인이나 공직자들이 지나치게 특정 이념에 치우치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위하여 우려스러운 일이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3명의 대법관 후보자를 추천하여, 현재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진행하고 있다. 대법관들은 실제로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지는 않지만, 법관으로서 최고의 명예와 권위를 가지며, 하급심에서 판결한 내용에 대하여 법리 해석을 다시 내리는 등, 그 권한과 책임은 막강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법률이 가지고 있는 법리를 제대로 해석/적용하되, 편향되지 않고 공정하며, 일선 법원에서 혹시라도 올바르게 적용치 못한 법률이 있다면, 최고의 전문성과 공평성으로, 불편부당(不偏不黨)하지 않게 판정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후보자로 거명되는 면면을 보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우선 김선수 후보자는 진보적 법률가들의 모임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사무총장과 회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노동법과 인권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활동 가운데 주요 경력을 보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심판에서, 통진당 변호인단 단장을 맡은 이력이 눈에 띤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 사건 변론을 맡은 바 있고, 또 법외 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변론을 맡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이비 종교단체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전능신교)신도들의 난민신청 소송 대리인 역할도 하여 논란이 있었다. 거기에다 일선 판사의 경험은 없다. 다음으로는 노정희 후보이다. 노 후보는 진보적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경력을 가지고 있다. 노 후보는 여성, 아동 등의 법적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성 평등 문화조성을 위한 이슈를 주도하였다(호주제 폐지, 성매매 관련사건, 성폭력 사건 등) 지난 해 4월 이화여대에서 개최한, ‘젠더평등의 실현을 위한 법제적 과제’에서는 학술대회 사회를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동원 후보자는 다른 부분에서는 무난하지만, 성소수자의 인권증진을 위한 법인체의 설립신청을 법무부가 반려한 것에 대하여,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어 우려된다.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국가인권위원장 후보에 최영애 현 서울시 인권위원장을 추천했는데, 최 내정자는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당시, 동성애 사이트의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 기준에서 ‘동성애 항목’을 삭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동성애가 청소년들에게 유해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2016년 서울인권컨퍼런스에서 동성애 차별금지법의 좌장으로 참여한 바 있다. 또 2016년과 2017년, 서울 동성애 퀴어축제 개막식에서는 성 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상상할 수 없다고 동성애를 한껏 옹호한 인물이다. 거기에다, 정부는 민변 사무차장과 대변인 역할을 했던 황희석 씨를 법무부 인권국장에 임명하므로, 동성애를 포함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발표하였는데, 이에 대하여 국민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 문제점들을 살펴보면, 법무부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시도하고, 행정안전부에서는 공무원을 대상으로 친동성애적 인권 교육을 시도하고, 국방부에서는 친동성애적 자문위원회 결성과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대체복무제 신설을 시도하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표준국어사전에 친동성애적 표제어 등재와 또 친동성애적 문화콘텐트를 개발하며, 동성애를 보호하는 방송심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교육부와 여성가족부, 경찰청에서는 친동애적 인권 교육을 전반적으로 강화하는 쪽으로 그 내용들이 실려 있다. 이를 정부에서는 이달 중 국무회의를 거칠 것으로 보여, 매우 우려된다. 우리나라가 ‘인권 국가’가 되고,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전통적 가정과 사회의 가치관과 질서, 윤리와 도덕, 그리고 종교적인 덕목들을 무시하고, 이를 특정 이념에 의해서, 일시에 제거하려 한다면, 오히려 이것은 국가의 미래를 해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주문한다. 우리 사회 법률 전문가들과 공직자들은 특정 정파나 이념에 사로잡히지 말고, 국가의 미래와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존엄이 무엇인가를 유념하여, 이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 주기 바란다. 성경에서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인데, 다스리는 자들은 악한 일에 두려워하라고 하신다(롬13: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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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7-26
  • ‘대체복무제’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박 재 영 변호사
    헌법재판소는 최근,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 종류 조항(병역법 제5조)에 관하여는 재판관 6대3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반면에, 병역거부 처벌 조항(제88조)은 합헌 4·일부위헌 4·각하 1로 합헌이라는 의견을 유지하는 결정을 내렸다.다소 복잡해 보이지만 쉽게 말해서, 정당한 이유 없이 병역을 거부하는 자를 처벌하는 병역거부 처벌 조항의 경우(제88조), 국민개병제 원칙에 따라 헌법에 부합되는 조항이므로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 자체는 옳다는 것이다. 반면 병역의 종류 중 하나로 대체복무제를 법에 규정해 놓지 않은 것은(제5조), 대체복무제를 통해서라도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자에 관하여 일체의 예외없이 병역거부자로 간주하여 형사처벌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함으로써 병역 종류 조항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상황을 제거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양심의 자유와 국가안보라는 공익을 조화시킬 수 있는 대안이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그저 무시하기만 하는 중대한 임무 해태행위에 해당하므로, 그러한 임무를 더 미룸으로써 개인에게만 책임을 더 이상 전가하지 말고 새로이 입법해야만 한다는 취지이다. 헌법재판소에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가 제기된 것은 2004년 8월과 10월, 그리고 2011년에 이어 이번이 4번째였는데, 그 이전까지는 전부 합헌 결정을 내렸던 헌법재판소가 처음으로 그 입장을 바꾸어서 대체복무제의 도입을 입법강제함으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금지되도록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내용을 접하면서 구약성서에 나오는 다니엘과 그 세 친구를 함께 떠올리게 된다. 바벨론의 포로가 됨으로써 그 나라 백성이 되었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육식을 하지 않을 자유를 구했고, 그와 반대로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할 자유를 구한 바 있으며, 세 친구들의 경우 원하지 않는 신에게 드리는 예배(경배)에 참여하지 않을 자유를 구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들의 그러한 요구들이 바벨론이라는 나라에 대한 자신들의 충성을 해치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차원에서의 충성이라고 강변한다. 그러한 모습에 비추어 보면, 어느 국가가 어떤 국가적 상황을 근거로 하여 그에 속한 개인들의 행동에 관하여 어떠한 내용의 법적 제재를 가할 때에, 가능한 범위 내에서라면 최대한 신중하게 그 제재조치를 이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나 타인의 생명을 합법적으로 빼앗는 제도인 사형제의 경우 오판의 가능성 등에 기초한 사형수 자신의 인권문제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 보면 사형을 집행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비록 그 행위가 합법적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 즉 사형수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을 자유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더 그러하다.이러한 관점에서 향후 헌법재판소의 동향이 주목된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서는 무엇을 하지 않을 양심적 자유를 보장하려 했던 헌법재판소가, 향후 그와 반대의 입장에서 어느 국민이 무엇을 할 양심적 자유를 보장받으려 한다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유, 예를 들어 동성과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도록 양심(?)에 따른 자유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 등을 할 경우 이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관한 우려 또는 관심이다. 결국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이 시대의 판단 기준이 우리의 천부적인 양심이 아니라 타락한 인간의 본성(로마서에서는 육신, 영어로는 sinful nature로 표현되고 있다)이 원하는 것을 하게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국가가 소수의 권리라고 하여 그저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면서 노력하는 자에게 그에 상응하는 길을 열어주는 합리적 결정을 해 주고 있다는 밝은 희망의 공존이다. 지금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판단의 중심을 과연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 우리가 지키고 보호해야 할 것이 우리의 거룩한 양심인지, 아니면 인간적인 본성인지에 관해 다시 한 번 겸손히 심사숙고하면서,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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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18-07-13
  • 브론테 목사와 브론테 자매 작가들-임 영 천 목사
    필자는 (사)한국문인협회가 주관한 2018년 해외 한국문학 심포지엄에 주제 발표자로 선정되어 5월30일부터 6월8일까지 8박10일 일정으로 영국(런던)엘 다녀왔다. 심포지엄 행사가 있었던 날 하루를 제외하고 나머지 날들에는 영국 일원의 관광 행사도 짜여 있어서 참가자들 여럿이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여기저기를 살펴볼 수 있었다. 특히 몇 군데 기독교 건물들이 있어서 그곳들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처음에 보게 된 건물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시에 있는 존 낙스 장로교회였다. 매우 웅장하고 거대한, 뭇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물이었다. 다음으로 본 것은 요크셔 주의 외딴 마을 하워스에 소재한, 브론테 자매의 부친 패트릭 브론테 목사가 근무한 소규모의 파리쉬 교회였다. 그 다음에는 제인 오스틴의 유해가 안치된, 햄프셔 주(주도 윈체스터)에 소재한 윈체스터 성당이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중 가장 웅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이었다. 그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패트릭 브론테 목사가 봉직한 하워스의 파리쉬 교회와 그 부속 건물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앞서 본 네 군데의 기독교 건물들 가운데서는 가장 규모가 작은 교회당이 앞으로의 이야깃거리로 부상한 셈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표현이 여기엔 아주 제격인 것 같다. 2백여 년 전 패트릭 브론테 목사가 봉직했던 하워스의 파리쉬 교회는 지금은 세계의 관광 명소로 되어 있다. 그 일원을 가리켜 “브론테 목사관 박물관”이라고 칭하며, 달리는 “브론테 자매 기념관”이라고 칭해지기도 한다. 전자는 그곳의 교구목사 패트릭 브론테와 그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부르는 명칭이라 하겠고, 후자는 작가로 활약했던 브론테 자매와 그들의 작업장(집필실)을 중심으로 해서 부르는 호칭이라고 보겠다. 요즘 관광명소로 떠오른 그곳을 종교인들은 주로 “브론테 목사관 박물관”이라고 부를 것 같고, 문화계 인사들이나 일반인들은 대체로 “브론테 자매 기념관(박물관)”이라고 부를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종교(교회)와 문학이 합쳐져서 거창한 효과를 낸 관광 명소도 사실 드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만일 누가 이렇게 물었다고 치자. 샬롯 브론테와 에밀리 브론테 두 자매가 없었다면 하워스의 이 파리쉬 교회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졌을까요? 당연히 “아니오”란 응답이 우세할 것 같다. 그렇다면, 부친 패트릭 브론테 목사가 없었다면 “브론테 자매 기념박물관”이 지금처럼 국제적 관광 명소로 떠오를 수 있었을까요? 이에 대한 응답은 그리 간단할 것만 같지는 않다. 목사였던 부친이 없었더라도, 그리고 부친이 봉직했던 그 교회의 사택(목사관)이 없었더라도 두 자매의 예술적(문학적) 능력이 발휘되지 말란 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목사인 부친과 그 교회가 두 딸들에게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개성과 독창성이 너무도 특출했던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작가)의 경우는 조금 다를는지 모르지만, 언니인 샬롯 브론테(‘제인 에어’의 작가)의 경우엔 목사인 부친과 교회의 영향력이 다대했으리라 여겨진다. 그의 작품 자체가 그 점을 증명한다. 그의 대표작 <제인 에어>(1847)는 종교성과 도덕성 내지는 교훈성이 매우 강한 작품이다. 그 때문에 이를 교훈소설이라고 불러 지나치다고 할 수 없으리라. 필자는 이 작품을 위고의 <레미제라블>(1862)과 톨스토이의 <부활>(1899)과 함께 같은 계열(교훈소설)의 작품으로 보고 싶다. 이런 결과에 이른 것은 목사인 부친과 교회가 샬롯에게 너무도 큰 영향을 끼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비록 동생 에밀리만큼 개성과 독창성이 특히 강한 편은 못되었을지 모르지만 샬롯 역시 강한 개성의 소유자였던 것만은 틀림없다. 대표작 <제인 에어>가 “강력한 여성상과 새로운 유형의 작중인물 조형, 여성주의적 선언 등 시대를 앞지른 사고가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것을 보면 언니 샬롯이라고 해서 개성이 동생(에밀리)만 못한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언니와 동생 두 자매가 “북아일랜드 출신인 부친(브론테 목사) 특유의 날카로운 감수성, 강한 의지 및 냉정하기 짝이 없는 이성(理性)“과 믿음을 이어받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개성적이며 돋보이는 작품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등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목사였던 부친과 그 딸들이 서로 합력하여, 그 어느 작가의 박물관보다도 손님들에게 인기 있는 박물관, 또 어느 큰 교회보다도 손님들이 더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특유한 기념관 교회를 만들어 놓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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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시평
    2018-06-30
  • 북미 정상회담과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김 남 식 목사
    우리는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세계를 요동치게 하였고, 6.13 지방선거에서 진보의 압승, 보수의 몰락이라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기대와 우려가 함께 나타나고 있는 실정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주는 의미와 합의문이 보여주는 방향에 대하여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다.우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한반도 평화를 논의하면서 대한민국은 ‘주도국’이 아니라 ‘중재국’임을 자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과 함께 지혜로운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통일에 대한 환상보다 통일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더욱 힘을 모아야 한다.첫째, 역사적 만남은 변화의 시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은 역사적 사건이다. 해외 유력 매체들도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첫 악수를 나누자 “획기적인 정상회담의 문이 열렸다.”(월스트리트저널), “새로운 변화가 온다”(폭스뉴스) 등의 헤드라인을 쏟아내었다. 우리는 이러한 두 정상의 만남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로 가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나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진정한 평화의 길로 가는 걸음이어야 한다. 진정성을 가진 만남이어야 역사를 변화시킨다. 둘째, ‘부족한’ 공동성명이다. 미북 정상들이 발표한 공동성명의 합의수준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회담의 핵심 주제는 북한의 비핵화에 있다. 미국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CVID를 강조하였는데 합의문에는 이것이 빠지고 ‘완전한 비핵화’라는 모호한 표현만이 들어갔다. ‘완전한 비핵화’ 약속을 담은 공동성명에 대해 외신들은 ‘합의문 수준이 약하다’ ‘과거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낮은 점수를 주었다. AP는 “성명의 상당 부분 ‘추가논의’에 할애해 이전 공동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평가하였다.19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 4.27 남북판문점선언과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추가 조치를 주목하며 과연 이것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우려가 있다.비핵화 문제는 선언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를 합의하였는데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논의’를 한다면 과연 이것을 글자 그대로 믿을 수 있을 것인가?지금까지 우리는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많은 경제적 원조를 하였고, 사상적 면에서도 빗장을 여는 행동을 하였으나 그 결과는 빈손이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생존의 문제이며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평화와 직결된다. 그러기에 구체적 방안이나 일정이 없는 모호한 표현의 ‘부족한 합의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 우려스럽다.셋째, 북한의 인권문제가 무시당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북한의 인권침해는 이번 회담에서 무시 당하고 있다”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또 뉴욕타임즈는 탈북자 박연미 씨의 영상을 홈페이지 전면에 실었다. 일본은 이번 회담에서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아베 수상이 미국으로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회담하였고, 결국은 ‘납치자 문제’를 제기하는데 성공하였다.6.25 한국전쟁시 전사한 미군 유해들을 발굴하여 송환하기로 합의하였으나 북한에서의 인권침해 문제는 철처히 외면 당하였다. 이것은 인류의 공동선(共同善) 사회의 공의(公義)를 무시하는 행위이다. 세계가 기대했던 것은 미국이 공언한대로 북한으로부터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대량파괴 무기와 모든 사거리 탄도미사일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으로 폐가하는 것’(CVID)에 대한 명확한 합의였다.그러나 그 결과는 ‘완전한 비핵화’라는 ‘모호한 표현’이었고 앞으로 추후 논의 과정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켜 볼 수 밖에 없다.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지, 한국의 군사비 부담, 무역 불균형 등을 거론하였다. 한미 군사훈련은 한국과 미국이 논의할 문제이지 북한과 협상할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중재자’란 이름으로 언제까지 그들이 부르기를 기다리는 ‘대기조’여야 하는가?CNN의 뼈있는 평가를 주목해 보자. “역사적 정상회담은 따뜻한 말로 분위기가 고조됐지만 비핵화에 대한 모호한 약속으로 끝을 맺었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6-21
  • 동성애 반대운동 효과가 있나-심 만 섭 목사
    동성애에 관한 것은 우리나라에서 20년 전만 해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지난 2000년 방송인 모씨가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면서 비로소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 후에 2000년대 초반 트렌스젠더에 대한 호적정정문제가 대법원에 까지 올라가서 또 한 번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하였다.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곳에서 퀴어축제가 벌어질 정도로 동성애자들과 이를 지지하는 단체들이 동성애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지금은 서울, 부산, 대구, 제주 등지에서 퀴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동성애자들의 이러한 활동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인권문제와 동성애자가 대표적인 소수자 보호를 위한 여러 가지 사회적인 움직임들이 있어 왔다.그렇다면 국민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지난 2013년 한국교회언론회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를 통하여 동성애 인식을 조사한바 있다. 이때 동성애는 정상적인 사랑의 방법이 아니라는 국민들의 생각이 73.4%를 나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민의 대다수는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 이였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갤럽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입장이 40%대까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해야 된다는 의견들이 70~80%대까지 올라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2018년 5월 한국교회언론회가 한국갤럽을 통해 동성애 인식에 대한 것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국민들의 여론은 53.4% 까지 다시 조정된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를 종교별로 보면, 동성애를 사랑의 형태로 보지 않는 것으로, 기독교가 70.4%, 불교가 57.7%, 천주교가 49.9%, 무교가 43.1% 순으로 나타나, 기독교가 가장 분명하게 동성애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해 한국갤럽이 조사한 동일한 설문 결과 보다는 동성애를 사랑의 형태로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 15.7% 포인트 늘어났다. 그렇다면 불과 1년여의 짧은 기간 동안에 국민들이 생각하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 변화는 무슨 이유일까.그것은 지난 2013년 국회의원 66명이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할 때에 동성애 조항도 들어갔었고, 이에 대하여 국민들이 자각하게 되면서 반동성애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이 반동성애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국민들에게 이에 따른 여러 가지 부작용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이처럼 시민단체들의 노력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의식이 바뀌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관찰해 본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또 여러 가지 정치적인 지형의 변화와 함께, 인권을 포함한 동성애 옹호를 나타내는 현상들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른 성문화와 동성애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현상들을 알리는 역할이 국민들을 설득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 것으로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는데 있다. 일회성 관심이나 문제제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으로 동성애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속에 반드시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칫하면 지나친 편향으로 내몰릴 경우가 있다. 그것은 상대적 입장에서 그 문제점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그 부정적 결과와 후유증에 대한 것을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기도 하다. 앞으로 동성애 문제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점점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그럴수록 이에 대하여 관심 있고, 국가의 미래와 청소년들의 장래를 생각하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대목이라고 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6-08
  • 데스크칼럼/주필 김형원 장로
    갑자기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위대한 흑인 지도자 ‘용서와 화해’의 정치인 넬슨 만델라가 생각난다. 그는 1918년 7월 18일 태어나 2013년 12월 5일 95세의 나이로 서거했지만 그의 용서와 화해의 정신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기리고 있는 아름다운 정신이다.만델라는 남아공의 흑인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어 27년을 감옥에서 지냈다. 전 세계는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과 만델라 석방을 외쳤다. 그리하여 1993년 만델라는 석방됐고, 1994년 남아공 최초의 자유롭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한 평등선거실시로, 최초의 흑인대통령에 당선되었다.그토록 오랜기간 정치적 박해로 감옥에서 지낸 만델라 대통령은 백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하지 않고,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설치하여 7,112건의 사면 요청과 849건의 사면을 단행하여, 과거사를 청산하고 흑백갈등이 없는 국가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다. 만델라는 처벌과 보복대신에 용서와 화해를 선택했다. 참된 자유를 구가하는 정치인에게만 가능한 용서와 화해의 정치가 그에게서 이루어진 것이다.남아공의 백인 소수의 통치하에서 수 세기 동안 억압과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가 없는 나라를 주창했던 만델라 대통령은 분노와 한을 품은 사람들에게 국민통합과 국가미래 역사에 정치적 실천을 보여주었다. 만델라는 정작 자신은 거칠게 살았지만 그의 정치는 유연한 겸손과 온유였다.‘용서가 없는 미래는 없다’(1999, 데스몬드 투투). 오늘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생각하면서 가슴깊이 밀려오는 만델라의 용서와 화해는 어느 날의 우연한 독백인지도 모르겠다.오늘의 문제인 정부는 남북을 넘어 세계를 향하여 ‘평화’를 외치고 있으나, 막상 국내에는 전직 대통령들을 둘씩이나 감방에 가두어놓고 과연 어떤 평화를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만델라 대통령처럼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먼저 용서와 화해의 길을 찾는 것이 평화가 아닐까. 어쩌면 우리는 ’적폐청산‘이란 과거에 얽매여 미래와 내일에 대하여 불확실한 걸음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인간에게는 누구나 지난날의 원한과 분노가 있을 수 있고, 더구나 권력이나 정치인에게는 수없는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겠지만, 만델라 대통령처럼 용서와 화해로서 과거를 청산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더 아름답고 박수를 받을 만한 일이 아닐까.한국교회 또한 오늘의 시점에서 깊이 반성하고 주님의 ‘원수사랑’과 ‘죄인을 용서’ 하시는 성경적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여 분쟁과 분열로 혼란한 이때에 사탄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것이다.교회 강단에서는 ‘사랑’을 외치고, ‘관용과 용서’를 부르짖지만, 여차하면 고소와 고발을 일삼는 지도자들이 허다하다. 명예와 욕심으로 가득 찬 지도자들의 정치행각이 교단과 연합을 해치고 있으며, 교회와 성도들을 선동하여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지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서글픈 일이다.대한민국이 만델라와 같은 용서와 화해가 있었다면 ‘건국대통령 기념관’도 건립하고 역대 대통령 기념박물관들도 세워서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난날의 역사적 공로는 깡그리 무시하고 너도나도 물고 헐뜯는 상황으로 암담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성경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했다. 이것이 진정한 용서와 화해의 아이콘일 것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6-01
  • 민족통일·국토통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좌우-박 종 문 목사
    20세기 초 미국은 경제를 풀어서 공산화를 막는 정책을 펼쳐서 오스트리아가 공산화 되는 것을 막았다. 미국은 지금도 경제대국으로서 막강한 경제정책으로 세계가 공산화 되는 것을 막는다. 이번에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마셜 플랜’(경제정책)을 통하여 핵무장을 풀고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바꾸고자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자의 돈을 빼앗아(좋게는 적패청산정책) 서민을 돕는 정책을 쓰고 있다. 가진 자들에게 돈이 들어가면 잘 나오지 않는다. 내놓을 때도 서민을 종부리듯 하면서 쓴다. 또 매춘과 오락으로 사회질서에 악영향을 끼친다. 잘 쓰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회악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돈을 사회정화에 잘 사용하여 윈윈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선한 것을 배우고 행하게 하는 것이다. 남북관계에서 마셜 플랜은 좋은 전략이 된다. 하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분명한 확신이 필요하다. 지난 김대중 정부에서의 ‘마셜 플랜’(햇볕 정책)은 실패했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그것으로 핵무기를 만들었다. 적을 막기 위하여 만들었다지만 무기를 쓰는 사람의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침략으로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침략이 어려울 때는 막강한 힘으로 제2의 야심을 꿈꾼다. 이번에 김정은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핵무장을 풀겠다고 하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통일조국을 꿈꿔왔던 그들이 갑자기 무장해제하겠다는데 어떤 사람이 그 꿍꿍이 속을 알겠는가? 문재인 정부는 핵무장을 푼 ‘두 체제국가’로 상부상조 하자는 것이다. 당장 전쟁만 안 해도 좋다. 국민들도 대부분 그러하다. 하지만 결과를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성경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이미 ‘다 이루었다’고 성취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기에 믿을 수 있지만, 아직 아무 것도 이루어진 결과가 없는데, 믿으라 하면 믿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믿을 자가 있다면 불확실한 결과를 확실한 것 같이 생각해서 믿어보려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이미 다 이루어 주신 것을 믿고 확실한 이론이 있는 실적화 된 것을 믿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 32장에서 야곱이 에서를 만날 준비를 한다. 그때 1차로 마샬 플랜을 짜놓는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전면에 내세워 적의를 가진 형을 만나려 한다. 이런 방법은 반드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야곱은 자신의 부족과 잘못을 알고 2차로 하나님의 힘을 빌린다. “하나님 내게 복을 주시옵소서.” 천사의 날개를 잡고 놓지 않을 때 그 천사의 날개짓으로 환도뼈가 부러진다. 그래도 죽기 살기로 매달린다. 돕는 천사가 하나님의 응답을 전해준다.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새 이름이 주어진다.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라.”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사람에게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야곱은 그때에야 비로소 형 에서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고, 담대히 형 앞에 섰을 때 에서에게서 은혜를 얻었다. 은혜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다. 죄인된 인류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오직 은혜가 있을 때만이 살게 된다. 예를 들면 부모님의 은혜로 핏덩이 아기가 살아나듯이 무능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희망이 된다. 남한과 북한이 하나로 살 수 있는 희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미국이 북한과 국가적 협력관계를 맺어서 북한이 남한 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된다해도 우리의 민족통일은 아니다. 미국은 남한을 60년간 도왔으나 아직도 스스로 통일한 통일조국이 되지 못했다. 통일을 원한다면, 소원한다면 우리 국민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야곱이 체험한 것처럼 응답을 확인할 때까지 말이다. 돈으로 못해요. 힘으로도 못해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기도만이 가능하게 한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1, 2차 판문점 만남은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요, 마셜 플랜의 경제적 원리로 악수하게 된 것뿐이다. 미국은 마셜 플랜으로 공산화를 막았다. 북한문제도 그렇게 생각하고 행하려고 하나 결코 뜻대로 이루지 못한다. 공산국가가 민주국가로 협정을 맺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북한 주변에는 공산국가가 있다. 누가 자기 텃밭에다가 남의 집을 짓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안된다. 두 나라, 두 체제로의 상황은 먼 훗날 더 큰 힘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질 뿐이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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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6-01
  •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불발-임 영 천 목사
    2018년 올해엔 전 세계 문학인들의 관심사였던 노벨문학상 시상식 자체가 열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아유는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의 여파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로 인해 홍역을 앓고 있는데, 노벨상의 원산지 스웨덴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닌가 보다. 스웨덴 한림원의 노벨상 선정위원 18명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여성시인 카타리나 프로텐손의 남편인 쟝 클로드 아르노 사진작가(겸 공연기획가)가 성폭력 혐의를 받게 되면서, 이 스캔들로 인해 스웨덴 한림원의 대외적 신뢰도가 추락됐다고 판단한 일부 선정위원들이 그 위원직을 사퇴한 결과로 일어난 일이다. 프랑스계 스웨덴 사진작가인 아르노는 무려 십팔 명의 여성들로부터 성폭행 피해 고발을 당한 형편이며, 최근엔 그가 과거에 빅토리아 왕세녀를 더듬었다고 하는 혐의까지 받고 있었다. 현재까지 6명이 사임한 실정에다 비활동 위원 2명의 인사를 합치고 보면, 남아 있는 10명의 활동 위원만으로는 선정 작업을 진행시킬 수 없는 현 실정이라는 것이다. 노벨문학상 시상이 1901년부터 시작된 이래 수상자 측의 일방적 거부가 아닌, 선정위원회 측의 어떤 사정으로 인해 시상이 불발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년 이후 75년 만에 처음 발생한 일이다. 그런데, 사직을 한 6명의 선정위원 가운데는 성추문의 장본인인 아르노 사진작가의 아내 카타리나 프로텐손 시인이 들어있는 것은 물론, 아쉽게도 사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이 함께 포함돼 있어서 주위 사람들이 상당히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림원 최초 여성 사무총장이었는데, 폐쇄적 운영에 길들여져 있던 스웨덴 한림원을 새로이 개방적으로 운영하면서 국민들 모두와 동료 위원들로부터 상당히 두터운 신뢰를 받아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 스켄들의 장본인인 아르노 사진작가와 프로텐손 부인이 함께 운영해온 어떤 문화센터에 한림원이 재정 지원을 해준 일과, 또 노벨문학상 심사와 관련해 그 선발 과정과 최종 명단 등이 누군가에 의해 유출된 정황까지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초기 대응 조처가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게 된 다니우스 사무총장이 결국 사의를 표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과거 한림원의 폐쇄적인 운영으로 인해 드러났던, 노벨문학상 시상과 관련된 논란거리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던가. 위대한 작가들, 곧 톨스토이나 마크 트웨인, 제임스 조이스, 그레이엄 그린… 등의 작가들이 결과적으로 영원히 탈락되었다는 사실이 아주 치명적인 것으로 보이며, 다른 훌륭한 작가들을 제치고 자국(스웨덴)의 문인 두 사람에게 시상을 했던 일(1974), 그런데 수상자 두 명 중의 1인이요, 노벨상 선정위원이기도 했던 마르틴손 시인이 자신에 대한 계속된 국제적 비난과 시비를 견뎌내지 못하고 수상 4년 뒤(1978)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상사 등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6년 미국 가수 밥 딜런에게 주어진 노벨문학상은 과연 온당했던 것인가 하는 논란도 많았던 경우였다고 하겠다. 또한 수상자들이 너무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에게 치중된 경향이 있다는 비판도 한림원의 처지에서 보면 피하기 어려운 지적거리였던 셈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한림원 선정위원회의 원상회복이라고 하겠다. 사무총장 직위까지 합쳐 비활동적인 자리 여덟을 채우기 위한 극단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선정위원 자리는 종신직이라는 사실이 요즘 문젯거리로 부상하였다. 종신 선정위원 중의 어느 누가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처리할 마땅한 규정이 없는 셈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신분이 ‘종신’ 위원이므로 ‘사임’이란 개념이 애초에 존립하기조차 않았던 때문이다. 그래도 ‘8명의 빈 자리’만은 엄연한 현실 문제로 돼버린 실정이라면 무슨 대책을 세워야만 내년(2019)의 심사에라도 대비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한림원은 내년에 두 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겠다고 앞서 밝힌바 있으니 말이다. 그 고민이 현 스웨덴 국왕의 어깨를 무겁게 만든 모양이다. 이번의 파문 뒤에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는 한림원 종신위원의 사직을 허용하기 위한 관련 규정의 개정을 논의 중이라고 한 바 있다. 한림원에 대한 든든한 후원자로서 사회 문제에 있어서 늘 중립을 지켜왔던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프 16세가 이번에 발 빠르게 나서서, 현행 한림원 종신위원 법을 조속히 개정해 한림원의 정상적 운영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하니, 불원간 한림원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봄직하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5-18
  • 종교편향 ‘입법발의’ 자제하라/심 만 섭 목사
    우리 사회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종교편향”이란 말이 유행어처럼 번졌었다. 이것을 주창한 종교는 불교이다. 불교계는 MB 정권 초기에 대대적인 ‘범불교대회’를 통하여, ‘종교편향’의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래서인지, 다른 정부에서보다 더 많은 재정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문광부에는 ‘종교편향신고센터’가 만들어져 시시콜콜한 내용들까지 신고가 들어와, 기독교가 압박을 당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불교계에서 주창하는 ‘종교편향’의 수혜자는 기독교이고, 그리고 피해를 본 쪽은 불교계로 등식화 되었다. 그로 인하여 기독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해외선교, 직장선교, 군 선교, 학원 선교, 직장 내 신우회 활동 등 여러 분야에서 위축되었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종교편향’에 앞장선 것인가? 물론 기독교인들이 사회 각 분야에서 열정적이고, 긍정적으로 활동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타종교에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 기독교는 ‘종교편향’이 무엇이라는, 정확한 개념정리도 안 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당한 셈이다. 소위 “정교분리원칙”을 지키는 미국에서는 ‘종교편향’의 의미를 크게 두세 가지로 본다. 하나는 정부로부터 특정종교에 대한 재정지원이다. 두 번째는 행정적 지원이다. 거기에다 특정종교 선전의 목적이 있는 것을 그 범주로 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가 정부로부터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가? 또 어떤 행사를 하는데, 대대적인 행정지원을 받은 일이 있는가? 오히려 불교야말로, 국가로부터 상당한 재정지원을 해마다 받고 있다. 사찰들의 문화재 관리비, 전통사찰들의 관리, 템플스테이 지원, 사찰 성역화를 위한 천문학적 지원, 사찰 건립 지원, 그리고 각종 행사에서의 지원 등,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국가로부터 혹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해마다 받고 있는 것이다. 또 ‘석가탄신일’이 되면, 거리를 뒤덮는 연등 게첨은 무엇인가? 그 전기는 어디서 끌어다 쓰는 것인가? 그런 가운데 지난 4월 18일 자유한국당 김석기 의원을 비롯한 12명이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법률안”(의안번호: 13117)을 입법 발의하였다. 이 법안에 의하면, 소위 전통사찰이 보호받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원활하게 받기 위한 취지로 본다. 그 내용을 보면, 현행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약칭: 공원녹지법) 제48조(문화재 등에 특례)에 제3을 신설하여, 제1항에서는 ‘시/도지사는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정된 전통사찰이나 전통사찰 보존지에 도시공원 또는 녹지에 관한 도시/군 관리 계획을 결정하려는 경우에는 미리 문화체육관광부장관과 협의하여야 한다’로 되어 있고 제2항에서는 ‘제1항에 따른 협의를 거쳐 결정된 도시공원 또는 녹지의 설치 및 관리에 관하여는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를 새로 넣는다는 것이다. 법률 개정 제안 이유를 보면, ‘전통사찰은 문화재와 달리 도시공원 또는 녹지에 관한 도시/군 관리계획을 결정하는 경우에,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다는 특례가 규정되어 있지 않아, 법 적용 간의 혼란이 발생하여 법 적용의 혼란가능성을 배제하고자 함’이라고 한다. 현재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전통사찰법)에는 불교에 상당한 특혜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법 제2조(정의)에서는 ‘전통사찰이란 불교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형상을 봉안하고, 승려가 수행하며, 신도를 교화하기 위한 시설 및 공간으로 제4조에 따른 등록된 곳을 말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 제4조에서 말하는 ‘전통사찰’의 기준은 무엇인가? 1. 역사적으로 볼 때, 시대적 특색을 가지고 있는 사찰. 2. 한국고유의 불교/문화/예술 및 건축사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사찰. 3. 한국 문화의 생성과 변화를 고려할 때, 전형적인 모형이 되는 사찰. 4. 그밖에 문화적 가치로 보아 전통사찰로 등록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찰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3, 4번 같은 경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전통사찰’은 몇 곳이나 되나? 지난 2005년에는 919곳이었는데, 2017년에는 966곳으로, 무려 47곳이나 늘어났다. 그런데 ‘전통사찰’로 지정되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혜택을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도 이번에 일부 의원들이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낸 것은, 각 종교와 국민들의 법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해마다 늘어나는 ‘전통사찰’ 기준도 엄격히 해야 하고, 문화재 등 중요한 문화재적 유산이 있는 사찰로만 한정하는 등, 오히려 그 선정기준과 규정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정해야 한다. ‘종교편향을 하면 안 된다’고 외치는 종교에게, 그 ‘종교편향’의 혜택을 주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종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정치인들은 모르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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