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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국력이 가져온 노벨문학상 수상’
- 지난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의 여류 작가를 발표하였다. 노벨상이 가진 권위와 전통으로 볼 때, 이런 상을 한국 작가가 받게 된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지금까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는 총 121명이다. 그중에 아시아인이 받은 것은 이번까지 포함하여 5번에 불과하다(국적은 4개 나라) 그러는 사이 유럽은 96명, 미국에서는 11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반면에 아시아권에서는 인도의 라빈드라이트 타고르가 1913년에, 일본의 가와바다 야스나리가 1968년에, 역시 일본의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에, 중국의 모옌이 2012년에, 그리고 한국의 한강이 2024년에 수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아시아권에서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살펴보면, 아시아 국가에서도 국력이 강한 나라들의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그만큼 한국의 국력이 세계적인 위상을 갖게 된 것이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국력을 만든 사람들이 누구인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K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K팝은 말할 것도 없고, K드라마, K푸드, K방산까지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드디어 K문학까지 통했다. 스웨덴의 한림원이 한국의 작가와 작품을 눈여겨본 이유가 되지 않을까? 거기에다 한국 작가의 글을 서구에 알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영국의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공로도 지대하다고 본다. 그녀는 영국의 유명한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2010년부터 한국어를 독학으로 공부하여, 우리나라 여류 작가의 대표적인 ‘채식주의자’를 번역하였다. 그리고 이 작품이 2016년 세계에서 3대 문학상이라는 ‘맨부커상’을 수상하게 된다. 스웨덴의 한림원이 2024년 한국 여류 작가를 노벨문학상 작가로 선정한 이유를 보면, ‘역사적 트라우마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을 쓴 작가’로 보았다. 그런데 작가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쓴 것에서 표현된 것들, 그리고 동족상잔의 6.25에 관한 표현들이 왜곡되거나 편향되었다는 곱지 않은 지적들도 있다. 이 작가의 인식이 지나치게 피해자 중심으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고 역사를 비튼 부분들이 드러난다. 2017년 그녀가 미국의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글에서, 한국전쟁을 이웃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평가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러자 당시 문재인 정부의 강경화 외교부장관 조차도 ‘표현과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었다. 그런 맥락에서 역사적 사건을 작가가 차용하여 표현할 때는 매우 겸손해야 하며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동물농장’이라는 작품으로 소련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가 부패하는 과정을 그렸던 조지 오웰은 글을 쓰는 4가지 동기를 밝혔다. 첫째는 순전한 이기심이다. 이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에 의하여 글을 쓰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미학적 열정이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을 찾아 배열하는 기쁨을 말한다. 세 번째는 역사적 충동이다.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에 전하려는 욕구에 의한 글쓰기를 말한다. 네 번째는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고,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이며, 정치적 편향성에 의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 유형은 어디에 속할까?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모두 한 마음으로 축하와 찬사만을 보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폭력을 미워하고, 피해자의 트라우마로 자유롭게 표현된 작품이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게 된 것도 결국은 우리 한국의 국력이 커진 것에 기반하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인에게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돌아오게 된 것은 지금까지 한국 문학의 길을 개척자처럼 닦아온 문인들이 세운 이정표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작가의 창작과 표현은 자유이다. 역사적 사건도 포함된다. 그러나 기왕이면, 왜곡과 편향의 논란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세계가 인정한 한국 문학의 새로운 길은 열렸다.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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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국력이 가져온 노벨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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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동물, 식물, 괴물, 독재, 망국, 증오국회’
- 지난 5일 여당의 원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였다. 그런데 제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100여일 만에 야당이 탄핵(彈劾-소추가 곤란한 대통령, 국무 위원, 법관 등의 고위 공무원이 저지른 위법 행위에 대하여 국회에서 소추하여 처벌하거나 파면함) 7건, 특검(特檢-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비리 및 잘못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기소하기까지의 독자적인 수사를 할 수 있는 독립 수사 기구) 12건, 청문회 13번(인사청문회를 빼고)을 했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가 탄핵과 특검을 이 정도로 해야 할 정도로 국정(國情)이 문란한가?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래도 정치 민주화가 되고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는, 우리나라 국회처럼 포용과 협치와 협상과 상생을 못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제21대 국회에서도 익히 보아왔던 장면이다. 제21대 국회에서 180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 개원하자마자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차지하여, 의석 비율에 따른 관례를 깨기 시작한 것을 필두로 주요 쟁점 법안에 대하여 여·야간에 긴밀한 협조를 하지 않고, 인사 관련 탄핵안은 힘으로 밀어붙여 결국 국민들 간에 심각한 불안과 갈등을 조장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제22대 국회에서도 범야권의 192명 국회의원은 밤중에 11개의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야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보통 여당에게 배분하는 것이 관례인 운영위원장, 법제사법위원장도 야당이 막바로 차지하였다. 더군다나 전혀 전문가가 아닌 사람을 강성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임명하는 악수(惡手)를 두었다. 전문가들은 제21대 국회에서 특정 다수당의 폐해를 네 가지로 지적한다. 하나는 민주화 이후 협치 규범과 관행을 파괴했다.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국회를 극단의 대결 구도로 몰아갔다. 또 하나는 국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을 국회 절차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처리하였다. 심지어 ‘위장 탈당’을 통해서 처리하면서도 부끄러움이 없었고,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생살리기 법안보다는 특정 세력의 표를 얻으려고 포퓰리즘도 서슴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국가 재정에도 엄청난 부담을 주었다. 또한 당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막기 위한 방탄의 수단으로 민의의 전당을 방패막이로 삼은 것을 지적한다. 그런데 제22대 국회도 21대 국회의 폐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 국회는 ‘특검’과 ‘탄핵’ 무드에 사로잡혔다. 물론 특검과 탄핵이 국회가 가진 권리라지만, 지금의 모습은 그 권리를 넘어서고 있다. 온통 특검과 탄핵을 일삼다 보니, 국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는 삼권분립의 원칙에도 위배 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윤석열 정부는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된 법률 여러 건에 대하여 대통령의 거부권을 행사하였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단원제(상·하원이 없음) 국회에서의 경솔과 횡포를 막는 수단이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사용한 경우가 있는데, 루스벨트 대통령이 635회, 트루먼 대통령이 250회,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81건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국회에서 법률을 제정함에 여·야 간에 충분히 협치하지 못하고, 국가의 재정이나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숙의하지 못한 가운데, 거대 야당은 반복하여 ‘탄핵’ ‘특검’ ‘법률 제정’을 하고, 이에 대통령은 계속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이것도 독단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통계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직 대통령을 지지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세력과의 진영 간에 간극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평균 72%포인트였고, 현 윤석열 대통령도 60%포인트를 넘나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34%포인트, 탄핵을 당했던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는 59%포인트였다. 이렇듯 모든 국민들 간의 갈등 조장은 상당 부분 정치인들이 하고 있다. 그들은 국민의 화합과 화평보다는 국민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골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권력 연장에 사용하려고 한다. 우리는 흔히 이웃 나라 난장판 국회를 가리켜 동물국회, 식물국회, 괴물국회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한국의 국회를 보면 여기에 더하여 ‘독재국회’ ‘망국국회’ ‘한풀이국회’ ‘증오국회’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스스로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자세는 결국 국민 무시라고 봐야 한다.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수준 이하의 ‘막가파식 정치인’들을 무조건 두둔하지 말고,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고 교훈하여, 바르고 공정한 정치를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인을 만들고, 정치인의 수준이 그 국가의 미래를 가늠한다는 명제(命題)를 잊지 않게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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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동물, 식물, 괴물, 독재, 망국, 증오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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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남과 북은 보내는 내용이 너무 다르다
- 북한은 지난 5월 28일부터 6월 9일까지 쓰레기를 담은 풍선 1,000여 개를 한국에 보냈다(3,500개를 보낸다고 했다) 그 속에는 가축 거름, 담배 꽁초, 휴지 조각 등 그야말로 오물(汚物)을 잔뜩 담아 보낸 것이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기가 막힌 허접한 발상이다. 이에 남한에서 탈북민 단체가 ‘대한민국은 불변의 주적이라고 주장’하는 김정은의 발언을 비판하는 내용의 전단과 1달러짜리 지폐와 가수 나훈아와 임영웅의 트로트 노래가 담긴 음반과 드라마 ‘겨울연가’의 영상이 담긴 휴대용 저장장치를 보냈더니, 또 오물을 보내는 답례(?)를 했다. 너무나도 격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참으로 남과 북의 차이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드러나는 모습이다. 남한에서는 북쪽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유’와 ‘문화’와 ‘삶에 필요한 것’들을 풍선을 통해 보내준 반면, 북한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위협을 주는 괴상천외(怪狀天外)한 물건들을 보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남한과 북한의 모든 차이는 뚜렷하게 대비가 된다. 남한에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하여 달러와 식량과 문화와 자유를 선물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것도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단체에서마저. 그러나 북한 당국은 우리에게 보내 줄 물건이 쓰레기와 오물밖에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남북 간의 체제에서 너무나 다른 것도 엿볼 수 있다. 북한은 김정은의 허락하에 그의 여동생 김여정이 명령하면 오물과 쓰레기를 모아 남한에 ‘오물 폭탄’으로 보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런 물건을 그 누가 보낸다고 하여도 이에 대하여 엄청난 반대와 비난을 듣게 될 것이다. 사실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사람도 없다. 한국에서는 문재인 정부 시절, 소위 말하는 ‘김여정 하명법’(남북관계발전법개정)을 지난 2020년 국회에서 통과되어, 이를 어길 경우 벌칙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잘못된 법이라고 해도 문재인 정권과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에 풍선을 한동안 보내지 못했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으로 결정하여 다시 민간 차원에서 풍선을 보내게 되었다. 이를 정부에서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이므로 제한할 수 없어, 대북 전단 살포를 막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서 ‘자유’와 ‘독재’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남북 간에 이런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이 되는 것을 금지하기로 한 것은 지난 2018년 4월 27일로, 남북 정상이 ‘한반도 평화의 봄’을 선언하고, 그해 9월 19일 ‘군사 분야 합의서’를 작성한 후 풍선 등 살포 행위를 중지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 합의서를 작성한 후 5년간 3,400여 회의 합의 위반과 우리에 대한 도발을 일삼아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23년 11월 22일 정찰위성 등을 쏘는 등 잇단 도발을 해 왔다. 그리고 북한은 같은 해 11월 23일 ‘군사합의 파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하였다. 또 2014년 1월 5일부터 7일 사이에 서해 완충구역에서는 수백 발의 포 사격을 감행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5월 27일부터 6월 2일 사이에는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하고, 오물 풍선을 보내고, 전방지역에서 GPS 교란작전을 폈다. 약속은 지키기 위하여 맺게 되는 것인데, 이처럼 무참하게 일방적으로 깬다면 그것은 약속이 아니라 기만이 된다. 아무튼 북한의 오물 풍선을 받아 들고,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고, 이 오물 풍선이 앞으로 어떤 용도로 사용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생긴다. 북한이 보내는 풍선에 오물 대신 생·화학물질을 실려 보낼 경우,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정쟁(政爭)의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북한 당국이 노리는 ‘남남 갈등’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국민의 안위와 국가의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정치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 북한은 오물 사건 이후,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자, 오물 풍선 살포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있다. 반면에 최전방 부대 철책선 사이에 대전차 방벽을 높이 쌓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대북 민간 단체들이 보내는 풍선 내용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면, 이것은 북한의 체제가 얼마나 약하고, 악한 정권인가를 가늠해 보는 지렛대가 된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한국에서 보내는 풍선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그 대신 오물 풍선으로 협박하고 휴전선에 장벽을 쌓는다고 하여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유의 물결은 막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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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남과 북은 보내는 내용이 너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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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국회의장, 형님이 적격입니다
- 정치 지도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정치 지도자는 뛰어난 경력과 자질과 경험과 그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와 희생 정신이 투철해야 한다.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정치 지도자가 될 때, 본인도 국가도 국민도 불행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정치인들의 수준과 생각과 행동이 실망을 넘어,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을 정도이다. 지난 4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전체 300 의석 가운데 절반이 훨씬 넘는 171석을 차지하였다. 그러니 국회의장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할 것이 뻔하다. 국회의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회를 민주적이고, 선진국형으로 만들 수도 있고, 또는 다수당의 횡포를 도와주는 후진국형으로 추락시킬 수도 있다. 또 국회의장의 중립적 태도는 국회에서 여•야의 힘의 균형을 잡아주는데에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그들은 국회를 난장판으로, ‘정글의 법칙’으로 만들어 가겠다는 각오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4명의 다선 의원들이 후보로 나왔으나, 두 사람은 당 대표의 입김으로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선의의 경쟁과 조직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아야 되는데, 먼저 당 대표가 막강한 권력으로 ‘교통정리’를 해 버린 것이다.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나? 그리고 두 명의 후보가 남았는데, 한 명은 명심(당 대표의 의중)이 당심이며, 당심이 곧 민심이라고 했다. 명심과 당심은 모르겠으나, 민심은 아니라고 본다. 누가 이런 폐쇄적이고, 일당 독재적이고, ‘더불어’와 ‘민주’를 뺀 당을 계속 지지한다는 것인가?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자신들을 찍어주지 않은 49.5%의 국민들까지도 ‘민심’에 억지로 잡아서 끼워 넣으려고 한다. 그러자 또 한 후보는 명심으로 알려진 당 대표가 ‘형님이 딱 적격이다’라는 말을 했다며, 맞받아친다. 입법부의 수장이며,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 자리가 ‘형님’ ‘아우’가 결정하면 되는 것인가? 하기야 어느 모 방송의 생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현 야당 대표를 ‘대통령’이라고 아나운서가 말해 버리는 기가 막힌 일도 벌어졌다. 국회의원은 우리 헌법에서 당익이 아닌 국익을 우선 해야 되는데(제46조) 이들은 당익 정도가 아니라, 사익(私益)에 준하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현재 야당의 당 대표는 여러 가지 사법적 혐의로 인하여 여러 건의 재판을 받고 있다. 정말 사법부의 정신이 살아 있다면, 그래서 어떤 권력이나 힘 앞에서도 ‘법의 평등 정신’을 구현한다면, 그는 사법의 정의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될 것으로 본다. 그런데도 그 명심이 곧 민심이라니, 제정신이 있는 국민이라면 정신이 번쩍 날 말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장 후보는 ‘형님....’ 어쩌고 하던 사람으로 결정되었다. 명심이 민심이라는 아부도, ‘형님’ ‘아우’ 관계보다는 못한 모양이다. 야당 대표는 국가 서열 8위이다. 그런데 국가 서열 2위의 국회의장을 마음 먹는 대로 만드는 나라, 그런 일을 벌이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권, 우리의 민주주의적 권위와 가치가 이처럼 추락해도 되는 것인가? 오죽 하면 같은 야권에서도 ‘자괴감이 든다’는 사람도 있고, ‘김대중과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와 품격은 사라지고, 폭력적이고 저급한 언동이 횡행하는 1인 정당’이라고 쓴소리를 했을까? 힘은 모두 소진하면, 힘이 없는 것과 다름 없다. 거대 힘을 가진 정당이 그 힘을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에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의 아집과 만용을 위해서 쏟아낸다면, 그들도 국민들에게도 결코 유익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힘이 있는 정당의 행동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어렵다. 부디 국민들이, 국민들의 대표로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라고 선출해 주었으니, 제발 자신들의 조직을 결속하고, 분풀이하듯 힘을 다하지 말고, 국가 전체를 위한 일에 진력하기 바란다. 요즘은 정치권을 보면서, 두렵고 안타까우며, 또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묵상하게 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큰 권력과 권세를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놓으신 것을 찾을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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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국회의장, 형님이 적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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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우리는 총선을 제대로 치룬 것인가?’
- 제22대 총선이 끝났다. 4년 전과 비슷한 의석으로 또다시 여소야대가 되었다. 헌법개헌 저지선과 대통령 탄핵 마지노선조차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우려가 되는 가운데 현 여당이 참패를 당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인데, 그중에 한 정당에서(혹은 군소정당과 합하여) 의원 200명이면, 헌법을 개정할 수 있고, 대통령을 탄핵 소추할 수 있다. 또 국회의원 180석이면 국회선진화법(다수당의 횡포와 독주를 막기 위해 2012년 개정됨)을 무력화할 수 있다. 이 법에는 국회의장 본회의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최장 90일간 논의, 안건신속처리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말하는데, 이런 협력들을 무력화할 수 있는 숫자이다. 그리고 패스트트랙(다른 당의 협조 없이 법안 강행 처리)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필리버스터(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 방해 행위)를 강제로 종료시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의석 150석이면 국무총리 임명 동의,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 대법관 임명 동의, 법안 단독처리, 예산안 단독처리, 상임위원장 다수 확보, 대통령을 제외한 탄핵소추 의결, 계엄해제 요구, 국회의장직 확보 등을 갖게 된다. 따라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175석을 확보하였고, 조국혁신당의 12석 등 범야권이 192석이 된 상태이다. 그야말로 야권은 대통령을 직접 건드리는 것 빼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정부도 여당도 이런 거대 야당의 도움 없이는 무엇하나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번에 대거 당선된 야권 의원들은 과연 국민들의 지도자감이 되는가? 현재 민주당 대표인 이재명 씨는 과거 전과 4범이 있는데 그에 대한 시비도 끝나지 않았고, 현재에도 3가지의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에 대하여 ‘셰셰’하면 된다는 사대주의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서울에 출마한 나경원 후보에 대하여 ‘나베’라고 하였다. 이는 ‘나경원+아베’라는 것으로 즉 친일파라고 선전전을 한 것이다. 이 나베라는 말은 일본어로 ‘냄비’라는 말도 되는데, 이는 여성의 성(性)을 비하하는 것이며, 여성에 대한 강한 경멸의 의미가 있는 표현을 쓴 것이다. 그리고 수원에 출마한 김준혁 씨는 근거 없이 6.25 때 김활란 이대 총장이 이대생을 미군에게 성상납했다고 발언했었고, 심지어 퇴계 이황 선생에 대해서도 성적인 막말을 하였다. 전 최강욱 의원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것을 빗대어 말하면서, ‘암컷이 나와서 설친다’고 하여 큰 논란이 있었다. 이는 민주당 사람들이 여성 혐오에 대한 DNA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그리고 안산에 출마한 양문석 후보는 자신의 딸 이름으로 불법 대출한 것이 드러나 도덕성에 대한 논란이 있었고, 재산 신고가 잘못되어 선관위로부터 고발을 당한 상태이다. 그리고 조국혁신당을 만든 조국 씨는 자녀의 입학 비리 문제로 부인이 이미 4년 형을 살고 있고, 본인도 2심까지 유죄가 나온 상태이다. 뿐만이 아니라, 이 당의 비례대표 1번인 박은정 전 검사는 그의 남편에 대한 ‘전관예우’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후보는 전에 음주와 무면허 운전으로 전과가 있는 사람도 있다. 또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의 울산시장 개입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3년 형을 받은 황운하 씨도 조국당을 통하여 의원에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일반 서민들의 도덕적, 윤리적, 상식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사람들이 국민의 지도자가 된다고 하니 허탈하다. 우리가 국가의 발전과 미래를 위하여 참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데, 싸가지(이조시대 한양에는 4대문이 있었다. 동대문(仁), 서대문(義), 남대문(禮), 북문(智)를 뜻하는데, 이 4가지가 없는 것을 사가지가 없다고 하였고, 이를 전라도 사투리로 싸가지로 표현한 것)없는 인사들을 뽑아놓고 앞으로 4년 동안 그들에게 휘둘리는 것은 아닌가? 이런 결정을 한 국민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수 없음이 안타깝다. 우리는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이 차지하게 되면서, 그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평등법’ ‘군형법개정안’을 발의하고, 가정과 사회에 혼란을 주는 ‘생활동반자법’ ‘건강가정기본법’ ‘모자보건법’ ‘민법개정안’ 등을 발의하는 것을 보았다. 또 코로나 때는 감염병 예방법이라며,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각 시설을 폐쇄하거나 간판을 떼 가는 등의 법안을 뚝딱 만드는 것도 보았다(그것이 교회를 대상으로 하면 교회 시설이 폐쇄되고, 교회 간판도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야 현 정권을 심판한다하여 거야 정당을 만들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반기독교적인 정서를 가진 거대 야당들의 횡포가 시작된다면 교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가진 가치나 성경적 가르침에 대하여 반하는 일들이 세차게 몰려오고 있다. 한국교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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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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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우리는 총선을 제대로 치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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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몰래카메라의 어두운 그림자’
- 최근에 정치권에서는 현 대통령 부인이 고가의 가방을 선물로 받은 것을 두고, 비난하고 있고, 심지어 다른 것과 연계하여 특검까지 해야 한다고 야단이다. 대통령 부인이면 별로 아쉬울 것이 없는데, 또 대통령 재직 시에 받은 선물은 사사로이 사용도 못 해 보고, 나중에 대통령 기록관에 고스란히 보내질 텐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신중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에는 목사라는 직함을 가진 사람이 함정의 몰래카메라를 들이대고 대통령 부인에게 주기 위한 선물을 사고, 전달하는 과정까지 인위적으로 찍어서 언론에 보냈다는 것이다. 몰래카메라도 문제인데, 함정까지 파고, 목사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목사라면 남의 허물도 덮어주고, 연약한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그런 목사가 국회에서 버젓이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는 대통령 부인을 접견하고 소통하는 가운데, 자신이 폭로하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없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대통령 부인을 뇌물수수죄, 직권남용, 청탁금지와 대통령경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데 목사의 직함을 가진 사람이 행동한 것을 보면, 그가 말하는 정의감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정의와는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대통령 부인을 만날 때는 2022년 6월인데, 고향이 같고, 과거 가족들 사이에 왕래한 것을 화두로 만났다고 한다. 그때 대통령 부인의 태도가 불량하고, 인사권을 주무르는 것 같은 언사를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상황들을 채집하기 위하여 그해 9월에 두 번째 만났을 때, 동영상 기능과 증거 채집이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였으며, 선물을 사는 것에서부터 모두 카메라로 찍고, 함정을 파고 물건을 전달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인터넷 언론에 넘겨주었는데, 그 언론이 지난해 11월 이를 공개한 것이다. 몰래카메라로 찍은 지 1년 이상 지난 시점이며, 국내에서는 곧 총선이 이뤄질 시점이다. 이 사람은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 왔는가? 그의 활동을 보면, 그의 실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북한을 여러 차례 드나든 것으로 알려지는데, 2020년 교계의 진보언론과 인터뷰한 것을 보면, 그의 주장을 통해 속내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주장하기를 ‘북조선 사회는 분명히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되어 있으며, 종교를 억압하거나 핍박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500여 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들었던 북한 전문가나 탈북자들이 주장하는 내용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다. 그리고 그가 말하기를 ‘(북한의)가정교회와 지하교회를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지하교회와 가정교회는 전혀 다르다. 북측은 가정교회를 공식 교회로 인정하지만, 지하교회는 불법으로 간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교회는 있을 수 없다.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는 주장은 사기이다’라고 단정 짓는다. 그의 표현을 통하여 그의 성향을 짐작케 한다. ‘북한 선교는 내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민족의 관점에서 봐야지 제국주의적 내지 공격적 선교 방식으로 가면 안 된다. 간혹 북한 당국에 체포되는 선교사, 목사들이 있다. 이유가 있다. 예배 동참을 강요하고 전도용 CD와 책자를 돌린다. 북한은 이걸 원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한다고 변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 사람은 1995년 미국으로 건너가 북한을 왕래하며 ‘통일 운동’을 해 왔다고 한다. 이 사람은 대통령 부인에 대하여 함정을 파고, 몰래카메라로 취재한 것이 정당한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에게 고가의 가방을 준 것은 자신에게 적용되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또 선물을 건네주는 모든 과정을 몰래카메라로 찍은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된다. 그리고 몰래카메라를 소지하고 영상을 찍은 것은 ‘주거침입죄’도 성립된다고 법률 전문가들이 밝히고 있다. 이런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하는 것이 ‘평화운동’이고, 그가 생각하는 ‘정의로운 행동’인가? 그가 그저 한 시민단체의 일원으로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하여도 크게 문제가 될 터인데, 성직자의 직함을 가지고 그런 행위를 버젓이 해 놓고도 반성이나 회개가 없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에 보면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고전10:23)라고 말씀한다. 상대편을 일부러 골탕 먹이고,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조차 비난하는 방식을 차용(借用)하여 행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잘했다고 칭찬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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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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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몰래카메라의 어두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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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언론학생인권조례는 무엇을 노리는가?’
-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0년부터 진보 교육감들에 의하여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다. 벌써 13년이 지났다. 가장 먼저 만든 곳이 당시 김상곤 교육감에 의하여 경기도에서 만들어졌고, 서울, 충남, 인천, 전북, 광주, 제주 등 7개 지역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지난 15일 충남에서는 도의회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문제가 있다 하여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서울시에서도 시의회에 폐지안이 올라왔는데, 일단 법원에서 진보성향 단체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여 보류된 상태이다. 그러나 서울시 의회에서 의원 발의로 진행하면 이를 막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씨는 지난 13일부터 폐지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었다. 그리고 19일에는 서울시 조희연 교육감을 비롯하여, 도성훈 인천시 교육감, 이정선 광주시 교육감, 천창수 울산시 교육감, 김광수 제주시 교육감, 최교진 세종시 교육감, 김지철 충남 교육감, 박종훈 경남 교육감 등이 참여하여 서울시 의회의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도대체 학생인권조례가 무엇인가? 정말 학생들의 인권신장에는 도움이 되며, 다른 분야에는 피해를 주는 것이 없는가? 결과적으로 보면, 학생인권조례는 학생들의 일부분 인권을 보호한 측면도 있지만, 너무 지나치게 교권을 무너트리고, 학습권을 흩은 측면이 강하다. 특히 교권 하락의 문제점 앞에서는 언제나 학생인권조례가 말썽이었다. 이것은 국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 광주광역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에서 18세 이상 700명을 대상으로 ‘교권 강화 및 학생 인권’ 여론 조사를 했는데, 93%가 수업 방해, 교사 조롱, 폭행 등 교권 침해가 사회적으로 심각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그런 이유로는 인성교육의 소홀이 32.1%, 학생인권조례 제정으로 인한 것이 23.6%, 교권보호를 위한 법적 제도의 미비가 20.4% 등이라고 답하였다. 결국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인성교육이나, 교사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인 것보다는 학생인권조례를 먼저 만들어, 지나치게 학생들 위주의 조례를 운용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본 것이다. 실제적으로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를 보면, 학교 구성원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학칙’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제3조 3항에 보면 ‘학칙 등 학교 규정은 학생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제한할 수 없다’고 하여, 학생인권조례가 최우선되어야함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에서 담고자하는 핵심 내용 가운데 중요시 하는 것은 역시 ‘동성애’이다. 서울시의 학생인권조례 제5조 1항에 보면,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가족 형태’가 나온다. 또 제28조 1항에서도 ‘성 소수자’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8항에서도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정보를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런 모든 것들은 ‘동성애’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도 대부분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서울시 의회에 대하여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려는 것은, 민주주의의 퇴보이며,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맹비난한다. 그리고 체벌이 사라지고, 복장, 두발 등 생활의 변화가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본다. 학생 위주의 학생인권조례로 인하여 교권이 형편없이 무너지고, 학생들에게 임신, 출산 등의 자유를 주었을 때,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왜 진보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목숨 걸고 만들고 지키려고 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1968년 3월 프랑스 파리에서는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대학생과 노동자들이 주동이 되어, 소위 ‘6.8 혁명’을 일으켰다. 그들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외치며, 기존의 윤리, 가정, 질서, 가치를 해체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반체제, 반문화, 자본주의에 저항함을 보였다. 이때 이들이 현수막에 걸기를 ‘마르크스, 마오, 마르쿠제’를 등장시켰는데, 마르크스는 공상주의 사상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고, 마오는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을 말한다. 세 번째 사람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허버트 마르쿠제이다. 그는 국가를 전복하는데, 섹스나 마약이 더 우월한 무기라고 믿었다. 그리고 같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에리히 젤리히만 프롬은 성차별과 편견의 배양지가 가정이라며 가족제도의 소멸을 추구하였다. 여기에 더하여 성 해방의 주창자 빌헤름 라이히는 1930년 오스트리아 공산당원이 된 후에 마르크스의 인간해방론을 성욕의 추구와 결부시켜 ‘성 해방’ ‘성 정치’ ‘성 평등’의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였다. 이런 흐름이 오늘날 한국에서도 ‘성적 자기 결정권’과 ‘성 소수자 보호’라는 것으로 포장되어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되고 이를 강조하는 이유가 되었다. 이를 소위 ‘문화막시즘’이라고 한다. 공산주의는 70년 만에 망했으나, 마르크스주의에 결부하여, 성해방, 성정치, 성평등이 학교의 학생들에게 인권이라는 미명으로 ‘네오막시즘’이 주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강행하는 진보•좌파 교육감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의 바른 판단만이 가능하게 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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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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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언론학생인권조례는 무엇을 노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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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정치지도자들의 말 너무 볼품없다’
- 며칠 전 더불어민주당의 대표를 지낸 송영길씨가 자기의 출판기념회에서 현 정부의 모 장관을 지칭하여 ‘이런 건방진 놈이 어디 있나, 어린놈이 국회에 와서...이런 놈을 그냥 둬야 하겠나, 내가 물병이 있으면 물병을 머리에 던져버리고 싶다’고 했다. 여기에 이어서 같은 당의 김용민 의원은 ‘000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금수의 입’이라고 SNS에 올렸다. ‘금수’(禽獸)는 행실이 나쁜 사람을 말하거나 심지어 짐승을 말한다. 그랬더니 같은 당이었던 민형배 의원도 ‘어이없는 00네. 정치를 누가 후지게 만들어?’라고 했다. 또 같은 당의 유정주 의원도 ‘그닥 어린 0도 아닌, 정치를 후지게 만드는 너’라고 거들었다. 우리 정치가 속된 말로 후지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국민의 대표로 뽑힌 정치 지도자들에게서 이렇듯 공개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더러운 말들을 대하고 보니, 참 그 인격이 볼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과민반응일까? 현 정부의 국무위원을 공개적으로 ‘어린놈’이라고 지칭하는 송영길 전 대표는 소위 말하는 86운동권 출신이다. 그런 송 전 대표는 37세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47세에 인천광역시장이 되었고, 50대에 180석의 거대 여당의 대표가 되었다. 그가 문제를 삼고 있는 국무위원은 현재 50살이다. 20년 전, 86운동권 그룹은 ‘60, 70대는 투표하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했었다. 또 ‘50대가 되면 멍청해지니, 60세 넘으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이들 가운데 임종석은 34세에, 조정식은 41세에, 우상호는 42세에, 윤호중은 41세에, 이인영은 40세에, 정청래는 39세에 국회의원이 되었고, 임종석은 51세에 대통령비서실장이 되었다. 이제 86운동권 세대들도 대부분 60세를 바라보거나 넘기고 있다. 20년 전의 다짐을 이들은 어떻게 반추(反芻)하고 있을까? 86세대와 함께 현재 더불어민주당에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이 70여명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정치에 입문하여 20년 이상을 정치적 특권을 누려 온 사람들이다. 연봉 1억원이 훌쩍 넘는 국회의원 예우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200여 가지의 온갖 혜택을 누리고 살아왔다. 그러니 자신들 외에는 뵈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또 다른 사람이나, 국민들 조차도 안중에 없는 모양이다. 근자에는 2030세대를 향한 청년비하 현수막도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는 모르겠고, 나는 잘 살고 싶어’ ‘경제는 모르지만 돈은 많고 싶어’ ‘혼자 살고 싶댔지 혼자 있고 싶댔지’ 등 청년들을 이기적인 집단으로 몰아가는 듯한 표현과 그들을 배제하는 듯한 문구는 그렇지 않아도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청년 세대에 대한 것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이런 소식을 들은 국민들이 이들에 대하여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운동권 전관예우’를 받는 것이냐? ‘86특권 의식’을 누리는 것이냐? 심지어 ‘선민의식’을 가진 것이냐? ‘이조 시대 양반계급을 가진 것이냐?’고 말이다. 이들의 말대로 50대가 되면 멍청해지고, 60대가 되면 아무 것도 맡지 말아야 할 대상이 된 듯하다. 그런데도 86세대 가운데 정치권에서 은퇴를 선언한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을 보니, 이들은 아직도 권력 향유에 대한 미련이 남은 듯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한다. 꼰대는 단순히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비아냥거리는 표현이 아니다. ‘꼰대’라는 말은 본래 군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상관이나 선임자에게 불만을 표할 때 사용된 용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단어는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꼰대의 규정은 뭔가? 회자(膾炙)되는 것으로 살펴보면, 자신의 의견이나 방식은 정답이고, 남이 하는 것은 존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전통이나 관습에 얽매인 것을 말한다. 지금의 86세대의 모습들에서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들이 있지 않은가? 물론 앞에서도 말한 대로 나이를 먹었다고 다 꼰대는 아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왜 유독 86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정치권에서만 이런 현상들이 두드러지는가? 이들 가운데 일부는 30대 젊은 나이부터 소위 말해서 운동권에 몸담았다고 하여, 우리 사회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20년 이상을 권력에 취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지금은 이들의 알량한 민주화운동의 유효기간은 벌써 끝났다고 본다. 약효가 떨어진 것을 가지고 만병통치약처럼 흔들어 댄다면, 가소(可笑)로운 일이다. 생각은 말로 표현되고, 그 말을 따라 행동으로 옮겨질 때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의 시각장애인과 같은 행동을 보인다면, 사고(思考)의 근원을 점검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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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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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정치지도자들의 말 너무 볼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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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국가 부채, 누구에게 갚으라는 것인가’
- 빚을 지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무조건 남의 돈으로라도 잘 먹고 잘살아보겠다는 심보는 도둑의 마음으로서 잘못된 것이다. 물론 사업이나 기업하는 분들에게는 채무 없이는 기업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 국가의 여러 금융 기관들의 활동도 이런 금융 서비스 역할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개인이나 국가가 지나치게 빚에 의존하고 그것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결국은 망하게 된다. 어느 정도가 되어야 나라가 위험해지는가? 과거에 우리 정치권에서는 야당에서 정부에게 국가 채무가 GDP(국내총생산)의 40%를 넘으면 안 된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한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나서는 자신들이 말한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것도 내로남불인가? 참고적으로 ‘국가 채무’와 ‘국가 부채’는 다른데, 국가 채무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상환의무가 있고, 지급 일정이 정해진 채무를 말하는 것이다. 가령, 공무원 급여, 국채, 지방채 등을 말한다. 그리고 국가 부채는 미래에 지출할 재정부담까지 추계해서 산출하는데, 이를테면,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을 포함한다. 우리나라가 1948년 건국과 같은 정부 수립 이후 약 70년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국가 채무는 660조 원이었다. 그런데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5년간 늘어난 부채는 무려 408조 1,000억 원이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의 모든 정권에서 졌던 부채보다 약 61%가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 들어서기 전까지 국가 채무는 GDP 대비 40.1%였는데, 문재인 정권이 끝난 시점인 2022년에는 54.3%로 14% 이상 상승하였다. 과거 문재인 대통령이 속했던 정당이 주장한 것에서 상당히 지나친 상태이다. 물론 국가 채무비율이 높다고 나라가 곧 망하는 것도 아니고, 채무비율이 낮다고 국가가 안정된 것도 아니다. 다만 국가 부채율이 높아도 신용도가 높고, 다른 방법(다른 나라에 대하여 채권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지하자원, 원유 같은 것을 다량 보유함)으로 그 채무를 갚을 능력이 있다면 이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그러나 우리 한국은 과연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그럴 능력이 되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역대 정권하에서 국가 채무의 증가액을 보면, 김대중 정부에서 85.4조 원, 노무현 정부에서 143.2조 원, 이명박 정부에서 180.8조 원, 박근혜 정부에서 170.4조 원인 것에 비하면, 문재인 정부에서는 408.1조 원으로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쉽게 말해서 빚으로 나라를 운영한 것이다. 국가 부채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기 전까지 70년간 1,433조 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5년간 무려 770조 4,000억 원이 늘어났다. 그리하여 국가 부채는 2021년에 사상 최초로 2,000조 원을 넘게 된다. 문재인 정부가 있었던 2022년까지 우리나라의 국가 채무는 1,068조 4,000억 원이었다. 이것은 국민 1인당 2,2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 빚은 우리 후손들에게 미리 가불하여 쓰게 되므로, 그들에게 빚을 떠넘긴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1년 반이 지난 시점에서, 2023년 말까지 국가 부채 예상은 문재인 정부가 넘겨준 부채 금액에서 더 증가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부지런히 구미(歐美)와 중동 등에서 ‘세일즈맨 외교’를 통하여 국가 수출과 국가 신용도를 높이고 있다. 분야별로 보면, 원전, 수소, 친환경 에너지, 미래 차, 금융, 관광, 방산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외 수출을 독려•신장시키고 있다. 이를 통하여 국가 경제력을 튼튼히 하고, 국가 기반을 굳건하게 세우기 바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수십조 원의 성과를 내었고, 최근에도 중동지역을 방문하여 100조 원대가 넘는 경제 분야 수출 약속을 받아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 국가이기 때문에,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지도자들이 이런 활동들을 활발하게 하여야 한다.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잘못된 선택과 그들의 그릇된 정책으로 국가 채무와 부채가 늘어나고 결국 나라가 망한 국제적인 사례들을 잘 알고 있다. 벌지는 않고 쓰기만 하고, 막대한 빚을 내서라도 잠시의 호사스러움과 인기를 누리려는 지도자는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엄청난 국가 부채를 만들어 후대들에게 짐을 져 주는 것은, 일종의 범죄가 아닌가? 우리는 내로남불 정권의 빚더미 잔치 국가를 경험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내로남로(내게 사랑이면 남에게도 사랑이어야)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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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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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국가 부채, 누구에게 갚으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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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독립운동가들을 더 욕되게 하지 말라’
- 최근 우리 사회에서 거론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 인물들이 있다. 홍범도, 김원봉, 정율성이다. 홍범도는 문재인 대통령 시절 그의 유해(遺骸)가 구 소련 지역에서 운구되어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고, 국가에서 제1건국훈장을 수여하였다. 이 건국훈장을 받은 분은 불과 수십 명에 불과한데, 홍범도도 받은 것이다. 홍범도는 이미 1962년 윤보선 대통령 시절에 건국공로훈장을 받았는데, 그를 더욱 크게 격상시킨 것이다. 그러나 1962년 당시에는 홍범도에 대한 구 소련측 정보가 없었기에, 그의 독립군 당시의 기록만으로 포상하지 않았나 싶다. 홍범도가 독립군 활동을 한 것은 맞지만, 1921년 이후 구 소련의 자유시에서 일어난 참변과 그 이후의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의아한 측면이 강하다. 일본군에 쫓겨 독립군들이 소련의 지원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자유시에 모였을 때, 소련의 적군(赤軍) 참여 여부에 따라 대대적 학살을 당한 비극은 두고두고 애통한 일이다. 그러나 홍범도는 당시 해를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의 부대는 적군에 들어갔으며, 그는 모스크바에 들어가 당시 소련의 최고 지도자인 레닌과 트로츠키로부터 상금과 권총, 군복 등을 받았고, 소련군 대위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소련에서 살다가 그곳에서 사망하였다. 그런 홍범도를 역시 문재인 대통령 시절, 독립군 여러 명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 세울 때에 함께 세운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가 과연 공산주의와 맞서 싸우는 장교를 육성하는 육군사관학교에 귀감(龜鑑)이 되느냐는 것이다. 홍범도는 우리나라가 지난(至難)한 어려움이 있을 때, 독립군으로 활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에는 별다른 보탬이 되지 못했다. 그가 소련 사람으로 살았기에 오히려 북한에게는 관련이 될지 모르겠다. 두 번째 인물은 김원봉이다. 공산주의자 김원봉을 전 문재인 대통령은 ‘국군의 뿌리’라고 추켜세우고, 그에게 훈장을 추서하려 했다. 김원봉은 처음부터 사회주의•공산주의 색채를 띤 단체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그가 의열단과 광복군에서 활동했다고 하나, 언제나 그는 공산주의 계열에 섰다. 그는 1948년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협상에 나섰다가 그대로 북한에 남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 후에 국가검열상, 중앙위원회 위원장,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6.25전쟁 중에는 북한군의 후방에서 물자를 공급하여 전쟁을 독려하므로 김일성으로부터 노력훈장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나중에 김일성과의 권력 암투에서 밀려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역시 김원봉은 영원한 공산주의자로, 국군의 뿌리는커녕, 이 나라를 비극으로 몰아넣고 공산화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임에 틀림 없다. 지금 밀양에는 그의 의열기념관이 있다. 세 번째 인물은 정율성이다. 그는 현재 중국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행진가’를 작곡하여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 군대가 싸울 때, 중공군을 크게 고무시키는 역할을 하였고, 북한에도 ‘조선인민군행진곡’을 만들어 준 사람이다. 그는 일찌기 중국 공산당에 들어갔고, 6.25전쟁 때에는 중공군과 함께 서울에 내려와 우리의 소중한 궁중악보를 가져갔다고 한다. 그는 1976년 중국에서 죽었고, 중국 공산당이 만든 혁명투사 묘지에 묻혀 있다. 그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 중국 사람이다. 그런 그를 위해서 현재 광주광역시에서는 기념관을 만들고, 거리를 조성하고, 조형물을 만들고, 기념음악대회를 하는 등 한껏 기리고 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다고 모두, 기릴만한 업적이 되는가? 한때 일제와 맞서 독립 혹은 광복군 활동을 했다 할지라도, 우리 자유대한민국을 세우는데 공훈이 없거나, 반대로 공산주의 활동을 함으로 우리 자유대한민국을 위태롭게 한 사람들을 우리 자유대한민국에서 추앙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그분들이 살았던 시대는 나라 잃고, 국가의 주권이 없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떠돌며, 인고(忍苦)의 나날을 보낸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나라의 정체성은 자유대한민국이다. 이것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고, 부인한다면 국가 정체성에 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분들이 그 당시에 그렇게 살았고,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을 탓하기에는 오늘의 자유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평가하기에는 일정 부분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그분들은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고 본다. 괜히 그분들을 높인다고 들먹거리다가, 과거의 모든 행적이 들춰져 전 국민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민망하고 볼썽사납다. 그분들에게 ‘독립운동’을 넘어 ‘건국’이라는 좋은 옷을 입혀 드리려다 오히려 욕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엄연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자꾸 변명하고, 항변하고, 두둔하고, 덮으려는 것도 아니라고 본다. 역사는 편향된 사람들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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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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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독립운동가들을 더 욕되게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