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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일인사의 감춰진 속내/임 영 천 목사
- 어느 TV방송사와 어떤 한 교육계 인사 사이에 시비(是非)가 붙었다. 그 시비의 내용인즉슨 폭력행위 대(對) 정당방위의 논란이었다. 방송사 측은 당신이 우리 기자에게 폭언과 폭력을 쓰지 않았느냐고 했고, 상대는 그것은 정당방위였다고 했다. 폭력행위와 정당방위-. 어느 국어사전을 찾아보았더니 ‘폭력’을 “육체적 손상을 가져오고 정신적, 심리적 압박을 주는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풀이하였다. 그러니까 폭력 행위는 상대에게 육체적 손상을 입히는 어떤 물리적 강제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물리적 강제력이 전혀 가해지지 않은 속에서 정당방위란 구실 하에 상대에게 어떤 육체적 손상을 입히는 행위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때는 그 육체적 손상을 입힌 사람이 바로 폭력 행위자가 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과거엔 아버지가 아들을 때려도 “교육 차원에서”란 구실로 적당히 변명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매질도 ‘폭행’이 될 수 있으며, 한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엄연한 법적 개념의 폭행이 된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훈계한다고 회초리를 들어도, 또 대학에서 교수가 제자에게 그렇게 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어른이랍시고 손아랫사람에게 함부로 손을 대게 되면 폭력을 쓴 것으로 간주되어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어느 어른이 무슨 일로 손아랫사람에게 손찌검을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사후(事後) 그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게 가해자로서 취해야 할 정당한 도리이다. 손윗사람이 느닷없이 권위의식이 발동해 손아랫사람에게 손을 댔다면 그것은 엄연한 폭력이고 그 행위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자신의 그 행위가 정당방위라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적반하장(賊反荷杖)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서울대 명예교수요, 요즘 친일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반일 종족주의>의 공동 집필자이기도 한 이영훈 대표저자와 MBC 방송사의 시사교양 프로 ‘스트레이트’ 취재진 사이에 벌어진 사건을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 자리해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시청자)의 위치에서 바라본 것을 적은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건을 좀더 부연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시사교양 프로 ‘스트레이트’의 취재진이 몇 차례의 취재 요청에도 잘 응하지 않던 이영훈을 4일 그의 자택 앞에서 어렵사리 만나 소속과 신분을 밝힌 뒤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갑자기 고성을 지르며 녹음 장비를 내려치더니 급기야 취재 기자에게까지 손을 대는 폭력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후 그는 계속해서 기자에게 “야, 인마” 등 폭언성 반말을 해 대며, 20여 분 동안 강압적 자세로 그만의 분풀이 식 훈계를 해 댔다고 한다. 그리곤 그날 저녁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 기자에 대한 자신의 폭력이 ‘정당방위’란 주장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MBC 기자회는 곧 그에 대한 반박 성명을 내었고, 방송기자연합회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시사교양 프로 ‘스트레이트’의 방송을 금지해달라고 한 이영훈의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은 9일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는 소식이다. 전 민정수석 조국은 그의 그 말썽 많은 저작을 ‘구역질나는 책’이라 혹평했으며, 우리가 그를 ‘친일파’라고 부를 자유가 있을 것이라고도 하였다. 한편 자유한국당 의원 장제원도, 우리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옳지 않고, 강제 징용설은 허구일 뿐이라고 저자가 몰아붙이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자해행위”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은 친일파가 아니라 독립운동가(차리석)의 후손이라고 변명한 데 대해서는 차리석의 가까운 후손이 나타나, 조상 이름을 팔 게 따로 있지, 라며 그를 매우 한심한 인간으로 치부하였다. 그리고 차리석을 자신의 외종조부라고 칭한 데 대해서도 외종조부가 아니라 외외증종조부일 뿐이라고 사실을 고쳐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가 사람들을 가장 분노케 한 것은 일본군 위안부가 돈 벌기 위해 자원했던 창부에 불과했다는 식으로 해석한 그의 잔인한 주장이라고 하겠다. 도대체 이러는 이영훈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는 ‘이승만 학당’이란 기구의 운영자요, 식민지근대화론(식근론)의 기수들이 모인 낙성대경제연구소의 리더요, 그 자신이 그 식근론의 견인차 역할을 한 대표적 인사이며, 또한 이 모든 것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한국 뉴라이트 운동의 두취 격 인물이기도 하다는 데에서 답은 찾아져야 할 것이다. 그는 앞으로 그런 뜻을 지닌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기를 걸기대(乞期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세상만이 그가 활개치고 살 수 있는 살맛나는 세상이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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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일인사의 감춰진 속내/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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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중요한가? 동성애 인권이 중요한가?/심만섭 목사
- 우리 한국교회는 최근 동성애로 인한 도전을 심각하게 받고 있다. 서울에서는 시청 앞에서 수년간 동성애 축제를 서울시가 허락하여 벌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전국의 주요 도시들이 서울과 같은 동성애 축제를 벌이려고 하여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그런데다 각 지자체들은 동성애를 보호할 수 있는 각종 ‘인권 조례’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것들을 지역 주민들도 처음에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는 기독교와 시민 단체들에 의하여 그 저의(底意)를 알게 되고는, 지역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지자체들과 상당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경기도의회에서는 ‘경기도 성평등 기본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당초 기독교/시민단체들과 약속한 것을 깨고, 기습적으로 통과시켜, 경기도민들의 반발과 분노를 사고 있다. 동성애가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단순한 ‘성적지향’이나 ‘성정체성’ 문제가 아니라 성경에 의하여, 동성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교회의 입장을 잘 알고 있으면서, 교회를 공격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라, 동성애는 건강한 가정을 깨고, 기독교의 진리를 부정함으로, 교회의 질서를 흔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2014년에 동성애 합법화를 통과 시킬 때 침묵했던 영국교회는 지금은 동성애 문제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동성애를 인정하게 될 때, 단순히 이성/동성의 생물학적 성 구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 성을 말하는 ‘젠더’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수십 가지의 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그 혼란과 무질서는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 한국의 유명한 모 교단의 서울에 있는 모 신학대학에서는 3년 전부터 동성애 문제가 불거져, 교계를 놀라게 하였다. 이 학교에서는 지난 2016년 신학생들이 성소수자의 날을 맞이하여 채플시간에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6색)색의 옷을 입고 참석하였다. 그리고 그 해에 신학대학가 발행하는 신학지에 동성애 모임을 우호적으로 소개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17년에는 역시 신학지에 퀴어신학운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이 학교가 속한 교단에서는 2017년, 총회에서 동성애자가 신학대학에 입학할 수 없고, 이를 지지하는 교수와 교직원의 행동을 금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이 학교에서는 동성애와 관련된 학생들의 활동이 멈추지 않았다. 지난 해 5월에는 성소수자 날에 학생들이 무지개 깃발을 들고 채플에 참석하고, 예배당에서 무지개 깃발을 펼치는 퍼포먼스를 하여, 학교 내, 교단 내 갈등이 점화되었다. 결국 신학대학에서는 총회의 결정에 따라 학생들을 징계하였으나, 지난 해 12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소수자인권위원회는 신학생들의 징계 처분을 무효 하라는 소송을 냈고, 이것을 법원에서는 이 달에, 이들에 대하여 징계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징계 무효 결정을 하였다. 신학대학의 특수성과 교단의 결의에 반하는 법적 판단인 것이다. 교단에서는 이미 총회 결의를 한 바 있고, 신학대학교에서는 이들에 대한 징계 문제를 다시 검토해야 할 처지이다. 그런 가운데 이 교단에서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목회자 후보생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까지 겹쳐, 그 향방이 주목받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차별금지법’에 포함된 동성애 문제를 놓고 지난 수년간 열심히 싸워왔으나, 그러는 사이에도 알게 모르게 교회 속에 동성애의 그림자가 깊이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드러내 놓고, 교회에 대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기독교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성경에 의한 것이다. 동성애를 성경에서는 엄하게 금하고 있으며, 죄로 규정하여, 하나님께 가증스런 행위로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동성애를 인정하라는 압력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성소수자들에게도 ‘인권’이 있고, 인권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교회가 이를 받아들이면, 교회는 망가지게 된다. 지금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합법화를 시킨 구라파 나라들에서 교회들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는 말들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그래서 동성애는 어쩌면 21세기 ‘선악과’를 가름하는 기준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교회가 동성애 문제에서, ‘성경법’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세상의 압력과 도전처럼 ‘인권법’을 따를 것인가? 이에 대하여 보다 분명한 태도를 취할 할 때가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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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중요한가? 동성애 인권이 중요한가?/심만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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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조건-강용원 박사
- 개혁은 살아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의 발전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리더의 존재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적합한 상호작용이 필수적인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오래 전 어느 일간신문에 ‘제왕들의 성공학’이라는 기획물이 연재된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고구려부터 조선대에 이르기까지 아홉 명의 왕을 중심으로 그들의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분석되었다. 물론 다른 상황에서 이루어진 일들이 오늘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더 검토해 보아야 하겠지만, 몇 가지 좋은 시사점은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첫째로 눈에 띄는 것은 개혁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 즉 미래에 대한 확고한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초기의 성공에 도취되거나 성급한 개혁을 시도하는 일은 미래적인 안목이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온전한 개혁은 단지 눈에 보이는 문제의 해결만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이고 포괄적인 것들을 요구한다. 물론 어느 시점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성격은 무엇이며 또한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작업 역시 보다 넓은 미래적 안목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개혁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넓은 그림 속에서 실제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구성원의 설득과 동의를 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비전이 거시적인 방향의 제시라면 개혁은 실제적인 변화를 요청한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그 비전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기보다는 개혁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얻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도 백성의 동의나 공감을 받지 못했던 정치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 분석의 결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며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나의 재임 중에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개혁을 실패하게 만든다. 개혁은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개혁과 혁명의 차이점이다. 셋째, 진정한 개혁은 자기개혁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위나 입장을 앞세우며, 제 멋대로 행하는 자의(恣意)적 리더십이 실패를 가져왔다는 것은 이 점을 강조한다. 진정한 자기개혁이 없이는 동의와 설득,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지도자는 겸손하여야하고, 자기 한계성을 알아야 하며, 부단한 자기성찰을 필요로 한다. 자기만이 개혁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자신은 개혁의 대상이 된다. 많은 지도자들의 실패는 무엇보다도 자기관리에서의 실패이다. 넷째, 측근정치의 문제점이다. 측근정치가 이루어지면 의사수렴의 통로가 좁아져 군주는 한쪽 이야기만 듣게 되며, 공적인 관계가 아닌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많은 것을 의존하게 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분파적 개혁은 성공의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많은 사람들의 이해를 끌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념과 출신과 배경을 뛰어넘는 광범위한 인재의 풀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어적이거나 수세(守勢)적인 지도력, 분파적 개혁, 폐쇄적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음은 자명한 일이다. 더 나아가 주도권, 이익이나 권력, 사리사욕의 쟁취를 위해서 개혁을 앞세운다면 이는 다시 자멸을 의미할 것이다. 이와 함께 근년에 제안된 ‘변혁적 리더십’의 개념 역시 중요한 시사점을 주며 이와 일맥상통하는 교훈을 준다고 할 수 있다. 변혁적 리더십은 ‘거래적 리더십’과 대응되는 개념이다. 거래적 리더십은 단기성과를 보상으로 구성원의 동기를 유발하는 것임에 비해서 변혁적 리더십은 미래의 비전과 공동체적 사명감을 강조함으로 장기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변혁적 리더십에서 리더는 우선 구성원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 자신이 모델이 됨으로 구성원을 이끄는 힘이 되어야 한다. 또한 리더는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그런 변화의 의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비전과 영감을 제시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서 리더는 낮은 수준의 신체적인 필요에 대한 구성원들의 관심을 높은 수준의 정신적인 필요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항상 강조되는 것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으로 여기에는 ‘지적자극’, ‘신뢰감’, ‘인격적 존중’, ‘수행과제의 가치와 당위성 강조’ 그리고 ‘영감적 동기부여’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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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조건-강용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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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문인과 그 기념 문학상 시비(是非)-임 영 천 목사
- 지난번 우리는 최남선 서정주 조연현 3인의 시비(詩碑) 철거의 실제 사례를 보았다. 그들의 시비 철거뿐만 아니라 그들을 기리는 문학상들도 이젠 함께 사라져야 할 운명에 놓여 있음도 지적했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친일 문인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친일문인 기념 문학상’ 문제가 대두될 때에는 위의 3인보다도 자연히 순위가 더 앞서게 되는 춘원 이광수 작가의 사례를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그는 한국 문단(또는 문학사)에서 거목으로 인정되어온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3년 전 이맘때(2016년 7월)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학단체인 한국문인협회가 느닷없이 춘원문학상과 육당문학상을 제정해 시상하겠다고 공표하였다. 앞은 소설가 이광수를 기리는 문학상이고, 뒤는 시조시인 최남선을 기념하는 문학상이다.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자마자 그 사업을 추진하려던 문인협회가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한국작가회의(자실위)와 민족문제연구소가 합동으로 그해 8월 4일 거센 반대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 제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면서까지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유는 명약관화했다. 그들(춘원·육당)이 너무도 잘 알려진 친일 문인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작가회의는 중앙일보사가 제정해 2001년부터 시상하기 시작한, 서정주 기념 문학상인 ‘미당문학상’에 대하여 최근 강력히 반대해 오고 있었으며, 한편 사상계사가 1956년부터 시상해 오다가 요즘은 조선일보사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동인문학상에 대해서도 철폐 주장을 해 오고 있는 판에 느닷없는 춘원문학상과 육당문학상의 제정 문제까지 새롭게 돌출하자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졌던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가 앞서본 바와 같은 “춘원문학상, 육당문학상 제정 규탄 기자회견”으로까지 나아가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떻든 기자회견을 겸한 강력한 반대 집회로 인해 사세(事勢) 불리해짐을 깨닫게 된 문인협회 측의 해당 문학상 제정 철회 발표로 일이 일단락되게 되었던 것은 양쪽 모두에게 천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생각된다.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결성되고(1948) 난 뒤, 반민족행위자라 하여 그 특위에 소환된(1949. 1) 친일 혐의자들 중에 문인 측으로는 이광수와 최남선이 가장 먼저 검거되었던 사례만 보더라도 그들(춘원·육당)이 친일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인물들로 특정되어 있었음이 드러났다고 보겠다. 그들 중 이광수 한 사람만 보자고 하면, 그의 친일 흔적(혐의)에 대해 논의(증언)한 문학자나 평론가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친일 문인들 중에 상당수의 인사들은 1930년대, 그것도 후반 이후로 (친일)활동을 한 경우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희한하게도 이광수는 1920년대부터 그의 정신세계가 친일 쪽으로 기울고 있었음을 상당수의 연구 결과들이 증명해주고 있음은 그 자신을 위해서 매우 불행한 일로 보인다.그런데도 아래와 같은 일까지 있었다는 사실이 우리마저 상당히 슬프게 하는 것 같다. 김병익 평론가가 1970년대(초반)에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하고 있었을 때 그 지상을 통해 이광수의 친일 훼절을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어본 미국 거주의 춘원의 딸 이정화 씨가 김 평론가에게 이렇게 항의 서한을 보내왔다고 했다. “아버님의 애국심이란 열렬하셨습니다. 민족을 위해 친일했다는 뜻을 그대로 독자들이 들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는 자신의 친일행위가 어디까지나 민족애의 발로였다고 주장해온 부친의 말(변명)을 딸이 그대로 되풀이한 것이었다고 김 평론가는 어느 글에서 적었다. 그런데, 시상식이 열리고 있는 조선일보 미술관 앞에서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고 외치는 젊은 문인들의 주장을 직접 들었다고 한다면(하나의 가정일 뿐이지만)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을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 씨가 어딘가에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2010)”이란 글에서는 이렇게 씌어 있음이 보인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라며 매우 애석해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6년 초판’으로 출판된 임종국 평론가의 <친일문학론>이란 책에는 불행하게도 성씨가 김씨여서였겠지만 제1번 순위인 “1,김동인론”이 그의 창씨개명인 동문인(東文仁)이란 일본식 이름과 함께 올라 있음이 확인되어, 아들인 김광명 씨가 “아버님이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다”고 한 그 말이 다소 구차한 변명처럼 들리기도 한다. 친일 당사자든 그 후손이든 바람직한 일은 그 사실을 고백하고 또 만인 앞에 참회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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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문인과 그 기념 문학상 시비(是非)-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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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이 국민통합보다 중요한가? -심 만 섭 목사
- 지난 6일 현충원에서 있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문 대통령의 김원봉에 대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의 추념사를 보면, 앞부분에서는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입니다’라고 운을 뗀다. 그리고 그 뒤에 가서 ‘임시정부는 1941년 2월 10일 광복군을 앞 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 했습니다’라고 전개하고, 한 문단 띄우고 나서,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라고 기술(記述)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문제를 삼는 쪽은 월북하여 북한 내각의 국가검열상(우리나라의 검찰총장격)과 6.25전쟁 중에 노동상(전쟁 중의 물자와 무기를 만들고 조달하는 역할)을 지낸 인물이 어떻게 ‘국군의 뿌리’가 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반발하는 쪽에서는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는 것이지, 김원봉이 국군의 뿌리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추념사를 읽고, 그 앞뒤 문맥을 연결하여 살펴보면, 김원봉과 국군의 뿌리라는 말이 연결점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듯하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여도, 현충원에 잠든 분들의 상당수가 6.25때 북한의 남침으로 희생된 분들이 상당수가 묻혀 있는 곳에서, 북한의 남침 전쟁에 상당히 기여한 인물을 추켜세우는 것은, 분위기상/예의상 맞지 않는다고 보인다. 현충일이 만들어진 것도 1950년 북한에 의한 무력침략으로 인한 엄청난 인명 피해와, 그때의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하여 1956년 제정된 것이다. 사실 문 대통령의 김원봉에 대한 찬사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 2015년 당시 야당 대표 시절, 페이스북을 통해, ‘남북 간의 체제 경쟁이 끝났으니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더 여유를 가져도 좋지 않을까.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 바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2015년 개봉된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고서 SNS를 통해 피력했다고 한다. 김원봉은 1898년 경남 밀양에서 출생하였고, 1919년 중국에서 의열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일제 수탈기관 파괴, 요인 암살 등 무정부주의적 투쟁을 벌인 인물이다. 그리고 1930년대에는 조선의용대라는 군사조직을 만들었고,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하였고, 1944년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을 지냈고, 광복 후 귀국하였다. 그리고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하여 북한에서 장관급으로 승승장구하고, 6.25전쟁 중에 김일성으로부터 ‘조국 해방전쟁(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최고 훈장을 받기도 했으나, 1958년 연안파가 숙청될 때, 같이 숙청되었다. 그의 월북 원인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미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김원봉은 스스로 좌파로 인식하고 월북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원봉을 끄집어내려는 이유는 뭔가? 대통령의 이런 인식 때문인가? 올 2월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보훈혁신위’에서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敍勳)을 제안하였다. 또 최근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는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묻는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42.6%가 찬성하고, 39.9%가 반대한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권, 민간단체, 정부, 광복회, 군사편찬연구소 등도 김원봉에 대한 서훈을 위한 토론회, 학술토론회, 서명운동, 역사에 기록하기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한 사람의 발언과 의식은 상당한 영향력을 갖는다. 대통령의 김원봉에 대한 호의적 발언과 좌파적 인식은 우리 체제의 현실을 보게 한다. 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도 ‘빨갱이’라는 말을 꺼내서, 이 말이 일제의 독립운동 탄압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였다. 이런 서슴없는 발언은 국가 공동운명체의 엄청난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김원봉이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기여한 것은 틀림없지만, 그가 자유 대한민국을 세우는데 기여한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오히려 독립된 대한민국에 비극과 혼란을 준 것은 틀림이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 기초를 공고히 하는데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것을 규정한 ‘상훈법’이 있는데, 이에 맞지 않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대통령의 역사전쟁과 국민통합, 무엇이 먼저가 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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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전쟁이 국민통합보다 중요한가? -심 만 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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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시비 철거와 문학상 논란-임 영 천 목사
- “노벨상조차 거부한 사람”이란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장 폴 사르트르는 자국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범접할 수 없는 사람으로 강하게 인상지어져 있는 인물이다. 1964년 10월 중에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그에게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는 그 상 받기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 수상 거부 소식이 밖으로 흘러나갔을 때 전 세계인들이 모두 놀랐지만 특히 프랑스인들이 더 놀랐었던 것 같다. 그 실상이 안니 코엔-솔랄 지은 ‘사르트르’ 전(傳)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의 그 실상이 코엔-솔랄의 사르트로 전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되어 있다.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르트르가 더욱더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수상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알베르 카뮈가 그에 앞서서 수상했기 때문에 거부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한 시기(猜忌) 질투를 할 계약 결혼녀 시몬느 드 보봐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르트르의 제스처를 놓고서 수많은 터무니없는 오해들이 난무했다고 그 전기는 말해주고 있다. 이때의 그 광경을 필자가 종합적으로 이렇게 요약 촌평(寸評)하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키 작은 한 거인에게 키 큰 소인배들은 결코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그 ‘키 작은 거인’에게서 나온 수상 거부의 돌올한 자세를 보라. 그는 이렇게 썼다. “스웨덴 한림원에 대한 저의 존경심에는 변함이 없지만 저는 올해에도, 미래에도 노벨상을 받을 수 없으며, 받기를 원치도 않습니다.” 일은 그렇게 간단히 끝나버리고 말았다. 아직까지 노벨문학상 앞에서 이렇게 우람한 거인의 용자(勇姿)를 보여준 이가 그 말고 또 누가 있었던가. 소련 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그 상(1958)을 거부하기는 했었지만 그것은 옛 소련 정부의 간섭(압력) 때문이었지 그 자신의 본의는 아니었다. 타의에 의해 막힌 것이지 자의에 의한 용단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볼 때 사르트르의 거인다움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결코 깎이지 않으리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사르트르의 거인 풍모를 예찬한다고 해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어느 문인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진다고 했을 때 사르트르처럼 그 상의 수락을 거부하라고 선동하려는 뜻은 애초에 없다. 기회가 온다면 수락해서 좋고 또 큰 영광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면 그 상이 불명예스러운 상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상이 불명예스러운 상이라고 지적을 당하든 말든 “받아놓고 보자”식의 ‘수상욕(受賞慾)’들이 문인들에게 너무 강하다는 데 있지 않나 여겨진다. 3.1운동 1백주년 및 임시정부 수립 1백주년의 해를 맞이하여, 또는 앞서부터 진행되어 온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의 일환으로 강원도 춘천시 당국이 2012년 춘천문학공원에 세워 놓았던 한국문인들을 기리는 20여 기의 시비(詩碑)들 중의 일부(3기)를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5월3일 이를 전격적으로 단행했다고 한다. 이는 춘천문인협회 측의 요구도 반영된 결과로서, 그곳의 문인들이 과거 친일활동을 했었던 문인들 3인의 시비를 문학공원 경내에서 철거하는 게 옳겠다는 주장을 해 와, 춘천시 당국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마당이라면 그들의 이름을 달고 지금껏 시행돼 온 문학상들도 이젠 그 시상(施賞) 여부에 대한 숙고(재고)가 있어야 할 때가 도래하지 않았나 판단된다. 그 3인이란 서정주 시인, 최남선 시조시인, 조연현 평론가 등 고인들이다. 육당 최남선(1890-1957)은 서울 태생으로, 1935년부터 일본의 신도(神道) 보급에 앞장섰으며 1936년부터 3년 동안 조선총독부의 중추원 참의를 지낸 바 있다. 미당 서정주(1915-2000)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42년부터 3년 동안 창씨개명을 한 그 이름으로 친일문학 작품 활동을 했으며, 그 때문에 최근 그의 호를 달고 시행돼 온 미당문학상이 구설수에 올라 있기도 하다. 석제 조연현(1920-1981)은 경남 함안 태생으로, 창씨개명을 한 그 이름으로 친일의 글들을 상당수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춘천시는 친일문인의 시비 3기를, 철거 이유를 밝혀 제작한 별도의 표지석과 함께 땅속으로 파묻었다. 그 표지석에는 “이곳, 춘천문학공원에 불손하게 들어앉은 일제강점기 친일문인들의 흔적을 이곳에 묻는다. 슬픈 역사도 버릴 수 없는 우리의 것이나 민족의 아픔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까닭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렇다면 이젠 그들의 이름을 딴 문학상들도 함께 지하에 묻혀야 할 때가 온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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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시비 철거와 문학상 논란-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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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위에 갑질은 괜찮은가? - 심 만 섭 목사
- 최근에 4성 장군 출신의 박찬주 육군 대장이 소위 ‘공관병 갑질 사건’으로 지난 2017년 군 검찰에 구속된 이후, 일반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는데, 4월 26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17년 좌파 성향의 모 시민단체의 ‘박찬주 대장 부부 공관병 갑질 사건’이라는 폭로에 의하여, 부도덕한 군 지도자로 낙인이 찍혔다가, 1년 9개월 만에 ‘공관병 갑질 사건’(직권남용)과 ‘뇌물 수수혐의’까지 혐의를 벗게 되었다. 그는 이 일로 인하여, 2017년 사건 폭로 당시에, 국방부에 전역지원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해 오히려 대장 신분으로 국방부 영창에 80여 일간 감금되는 치욕까지 겪었다. 그런데 올 해 4월에 일반 검찰에서도 ‘무혐의’를 내렸고, 서울고등법원에서도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번 기회에 군 내 갑질 문화를 뿌리 뽑으라’고 지시할 정도로 초미의 관심사였고, 각 언론사들도 이를 기정사실처럼 대서특필했었다. 박찬주 전 제2작전사령관은 기갑(機甲) 출신으로 그 방면에 전문가로 알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민단체는 군의 우수한 인재를 범죄자로 몰았고, 군은 신뢰를 잃어버린 결과가 되었다. 그에게 이런 죄목들이 씌워진 연유는 앞으로 차차 밝혀지겠지만, 이런 일들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찬주 전 대장은 뒤늦은 전역사(轉役辭)에서, 군의 철저한 중립을 주장하였고, 또 ‘정치가 군을 오합지졸로 만들어 패전국 군대 같다’는 말도 남겼다. 그의 전역사 중 유명한 것은, ‘평화 만들기(Peace-making)는 정치의 몫이고, 평화 지키기(Peace-keeping)는 군대의 몫’이란 말을 남겼다. 또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오히려 전쟁의 그림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경계하였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대에 그의 말이 깊이 와 닿는 것은 왜일까?우리 시대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갑질 문화 척결’ ‘적폐 청산’ 등의 살벌한 구호와 여론을 형성하면서, 여차하면 누구를 찍어서, 여론 재판과 ‘마녀 사냥식’으로 주류 사회를 허물고 다른 세력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살벌한 전쟁을 보는듯하여 매우 걱정이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혼란과 반목(反目)만 반복되는 것이다. 물론, 소위 말하는 ‘갑질 행태’나 남을 깔아뭉개서라도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려는 권력 독점적 행태는 당연히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아이를 목욕시킨다면서, 목욕물과 함께 아이까지 함께 밖에 내다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이쯤 되면 그 시민단체는 정식으로 박 전 대장에게 사과하고, 그들의 활동에 대한 것을 신중하게 재점검해야 한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면죄부(?)를 준 검찰에 항고’하며, 이를 법원에 재정신청까지 할 예정이란다. 어디까지 갈 것인가? 그것을 국민들이 인정하겠는가? 이번의 박찬주 대장의 경우처럼, 잃어버린 명예와 신뢰, 그리고 국가를 위해 애써온 40년의 충성과 희생에 대한 누명과 오점(汚點)에 대한 것은 누가 보상하는가? 그래도 박 전 대장은 기독교 신앙인으로서, 국가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것이며,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고 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인권’이란 말로 모든 것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당연히 ‘천부인권’은 보호받고 국가가 보장해 주며 사회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모든 주장에 대한 것을 ‘인권’으로 규정하여 수용한다면, 우리 사회는 질서와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므로, 실제적인 피해는 모든 국민과 국가가 떠안게 될 것이다. 소위 ‘갑질 척결’이란 행위가 지나치면, 이는 갑질 위에 갑질이 될 수 있다. 남이 하는 갑질은 안 되고, 갑질 위에 자신들의 갑질은 괜찮은 것인가? 국가기관이든, 시민단체든,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 군인이든지 모두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하므로, 국가와 사회를 밝게 만들고, 미래지향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갑질’의 위험성을 모르고, 계속 갑질로 갑질을 잡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갑질’의 병폐가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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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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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 위에 갑질은 괜찮은가? - 심 만 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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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와 세월특위의 수난과 진로/임 영 천 목사
-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수난 사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었다. 아무리 명분이 뚜렷하고 바람직한 특조위라고 하더라도 그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될 피의자들은 사력을 다해 그 궁지로부터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기 때문에 “허술하게 대처해서는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깨달음을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일제시대 친일행위를 통해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일신의 영달과 자기 가문의 영화를 보장받았던 반민족행위자들이 해방 후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어 자기 존립의 기반이 무너지려고 했을 때 가만있을 리 만무한 것이었다. 뜻있는 국민들 모두가 친일분자/반민족행위자들을 차제에 송두리째 뿌리 뽑아야 한다고 소리높이 외쳤다고 하더라도, 그 피의자들은 그에 비례하여 더욱 기승을 부리며 자신들의 살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친일 경찰 노덕술이 반민특위에 소환되게 되었을 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민특위를 무력(無力)하게 와해시켜 버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다. 이후 한국 정부가 친일잔재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불가피한 결과였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제국으로부터 해방된 프랑스가 비시 정부의 친독분자들을 숙청해 낸 드골 장군의 영도력으로 다시 중흥할 수 있었던 사례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부끄러운 역사였다고 하겠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5주년의 해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다섯 해째가 된 것이다. 당시 거의 하루 종일 세월호가 침몰해 가는 과정을 모든 TV들이 다른 프로들을 제치고 계속 보도했으므로 누구든지 그날 참사의 실상을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첫 번째 의문 사항은 왜 선체 속의 승선자(乘船者)들을 구조할 시간적 여유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데 적극적으로 구조하는 모습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때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치 제 자식이 저 배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왜 책임자들은 구조를 위해 움직이지도 않는지 모르겠다고 통분해 했던 사람들이 실로 부지기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모든 이들이 그날의 일을 애처롭고도 안타까운 일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뒤에 일어난 일들은 더욱더 가관이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다고 본다.다음해인 2015년에 세월특위(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참사의 진상조사에 들어갔다고 하는 보도는 있었지만 도대체 그 기구라는 게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게 아니라 그 특조위원들에 대한 방해 공작이 가해지고 있음이 언론보도를 통해 심심찮게 나돌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치 지난 반민특위 때 엄청난 탄압이 가해져 그 기구가 해체되고 말았던 것처럼 이번 세월특위에도 그와 비슷한 어떤 권력기관의 탄압이 가해져 그 기구가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게 돼 버렸던 것이다. 소위 그 권력을 지닌 자들은 왜 그런 이해되기 힘든 행태를 보여주었던 것일까. 과거에 이(李)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반민특위) 기구를 와해시켜버렸던 것처럼 오늘도 그만한 권력을 지닌 이가 그(세월특위) 기구를 와해시키려고 획책하는 일이 있었단 말인가,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판단해 볼 때, 어떤 막강한 권력기구가 특정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막강한 배후 세력이 그 사건(참사)에 애초부터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실제로 공표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세월호 유가족 모임 또는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그 배후세력이 세월호 침몰 사건에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는지 진상을 파악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당연히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그들의 그 노력이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그들에게 응원가를 불러주고 싶다. 과거 반민특위의 수난이 컸던 것처럼 오늘의 세월특위의 수난도 큰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특조위원에 대한 사찰과 감시가 지속적으로 가해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 기구(세월특위)가 극단의 수난을 당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앞서, 이런 문제에 “허술하게 대처해서는 결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거니와, 금번에 명칭도 새로 바뀐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안의 세월특위에서는 결코 앞서와 같은 시행착오를 다시는 겪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확고히 함으로써 특조위의 앞으로의 진로가 탄탄대로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굳건한 초석을 놓아야 할 것이다. 그 길이 우리 모두가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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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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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와 세월특위의 수난과 진로/임 영 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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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주필 김형원 장로
- 대한민국 국회는 또 다시 통합과 화합의 정치를 외면하고 여야4당과 제1야당 간에 심각한 갈등으로 냉각기가 시작됐다. 여당과 야당, 야당과 여당이 화합하여 통합의 정치를 이루어 내야 하는데, 힘있는 여당과 군소야당이 합류하여 제1야당을 패스하고 역사에 유래가 없는 결정을 하여 정치권은 냉각기로 접어들었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절실한 경제문제와 사회문제에 통합과 화합의 정치가 절실한 때이다. 지난 23일 한국정치는 여덩과 군소야당 야합으로 ‘패스트랙’을 결정했다. 패스트랙(Fast Track)제도란 ‘국회서 발의된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한 제도를 말한다.그동안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을 절대 반대한다는 당론을 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다음 선거에서 원내 의석확보에 유리한 당리당략으로 절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국회는 공전할 수 밖에 없다. 학자들은 선거제도에서 매우 중요한 안건을 전원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특정정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폭거라고 말한다. 선거제도와 함께 합의된 사항의 핵심은 공수처의 수사과 기소권을 원칙적으로 분리하되, 기소 대상이 판사, 검사, 경무관 급 경찰 이상일 경우에 한해서만 기소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제도를 살펴보면, 복잡하기로 소문이 나있는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한 번 더 변경한 것으로 현재 현역의원들 조차 이 법안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복잡하다고 한다. 여당을 비롯하여 친 여당들이 힘을 합쳐서 의원조차 잘 모르는 제도로 선거를 바꾸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자유한국당에 유리하다면 절대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는 제1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선거제도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훌륭한 제도라고 하여도 경기장의 룰(rule)로 채택 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야권의 통합을 막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하다. “민심이 흔들리니까 국정자원 전체를 선거 승리에 쏟아 붙고 있다.”는 말도 있다. 선거제도까지 바꿔가면서 이기려고 한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다. 우리가 여기에서 곰 새겨 볼 것은 “잃어버린 세월을 복구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다가오는 미래를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더 소중하다.”는 말처럼 장래의 국가사회를 책임질 정권과 정치권은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통합 정치’ '화합정치'를 해야 하고 , 여야가 미래의 대한민국건설에 힘을 기우려야 한다. 최근에 와서 정부와 여당은 국민 눈높이 에 맞지 않는 결정을 하고도 국회나 국민에게 사과나 적절한 설명조차 없이 무시하고 있어 말들이 많다. 국 회에 청문회 제도를 두었으면 청문결과에 따라 적절한 인사를 장관이나 재판관에 임명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 정말 정치권 자체가 화합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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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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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주필 김형원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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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종교인의 사회적 / 강 춘 오 목사
- 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사회나 그 사회의 가치관은 주류종교에서 나온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사회는 어떤 종교가 주류종교인가? 지금 한국사회는 전체 인구 4800만 가운데 불교가 2만여 개 사찰에 1200만명, 기독교가 6만여 개 교회당에 1000만명, 천주교가 8000여 개 성당에 450만명의 신도를 거느리고 있다. 여기에다 아직도 유교가 전통문화로써 자리잡고 있고, 상당한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신종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사회에는 대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류종교가 없다는 뜻에서 ‘다종교사회’라고 부른다.그런데 우리정부는 불교를 전통종교로, 유교를 전통문화로, 기독교(개신교, 천주교)를 외래종교로 분류해, 종교문화 지원비를 불교와 유교에만 편향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기독교가 주류종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기독교는 마을마다 교회가 있고, 여기에 10만명이 훨씬 넘는 전임 목회자를 보유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최소한 매주 한번 이상은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이웃과 친교와 봉사를 갖는다. 그리고 마을의 주민들은 목사의 설교에서 구원(久遠)한 이상의 세계를 내다보며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힘을 공급받는 것이다. 여기에서 세상을 읽는 지혜를 얻고, 무엇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끈다. 우리사회의 어떤 집단도 기독교만한 결집력을 가진 조직은 없다.그 결과로 우리사회 정치, 사회, 문화, 경제, 학계 등 두루 기독교인들의 지도력을 볼 수 있다. 매 총선 때마다 정치인의 약 40%가 기독교인이 당선되고, 장차관이나 군고위 장교들 역시 타종교에 비해 기독교인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을 운영하는 총학장들도 마찬가지이다.그럼에도 한국 기독교가 왜 우리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위기라는 말을 듣는가? 이유는 신앙 정체성의 혼란에 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두 바퀴와 같이 신과 행(信行)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信)은 무엇을 믿는가 하는 교리(敎理)의 문제이고, 행(行)은 그 믿는 교리를 어떻게 생활(生活)에 실천하는가 하는 삶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신행(信行)의 일치가 곧 바른 신앙인 것이다. 믿는 교리는 바른데 생활이 그 교리대로 살지 못한다면 ‘사이비’ 신앙인 것이고, 생활은 바른데 교리가 바르지 못하다면 그 신앙은 ‘이단’인 것이다.그러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인의 신앙은 어떠한가? 대체로 그 교리는 성경의 근본주의와 개혁주의를 보수한다고 믿지만, 그 신앙생활은 지극히 기복주의적이다. 불교나 샤마니즘적 민족종교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다. 모두 무병장수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하나님(신)의 빽을 빌려 만사형통 하려는 것이다.그러나 기독교인의 삶은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여기에 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또 제2문은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주신 법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답은 “신구약성경에 간직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여기 어디에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기복주의는 없다. 우리가 하니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면, 자연히 주의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어 만사형통 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이다.그런데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자신의 세속적 유익을 위해 이용하려는 기복주의에 빠져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차별화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기독교인은 세상을 보는 세계관이 다른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하고, 삶의 가치관이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즐거워 하고 추구하는 것을 따른다면 그는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고 할 수 없고, 또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복주의를 가감히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어떻게 해방”(롬 8:2)하셨는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사는 삶, 이것이 부활신앙을 가진 진정한 기독교인의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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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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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종교인의 사회적 / 강 춘 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