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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 동료의식
    동료라고 함은 같은 직장이나 같은 부서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일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의식이라 함은 자신의 언동이나 상태를 분명히 깨닫는 일체의 작용을 말한다. 그러므로 동료 의식이라 함은 만나고 일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의식, 즉 같은 일을 도모하는 관계에서 협력하고 도와주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동료의식을 바로 가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절친한 친구가 되어 함께 동고동락(同苦同樂) 하다가도 의견충돌로 원수가 되어 돌아서고 때로는 법정에까지 가는 예가 허다하다. 성경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했다. 친구나 동료에 대한 절실한 교훈이 되는 말씀이다.우리는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동료관계를 깨뜨리고 돌아서는 일을 접하게 된다. 동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인격모독적인 폭언을 하는 일도 있고, 동료를 향하여 냉소적인 비판을 일삼거나 질투와 경쟁의 대상으로 삼고 멀어지는 경우를 보게 된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된 신자들 간에 맺어진 인간관계는 특별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영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사랑과 은혜로 감싸는 깊은 관용과 포용이 필요하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갈등하면서 죽기살기의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맺어진 영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동료이며 친구인 관계를 부인할 수가 없다.교계연합모임에서도 함께 일하기로 하여 회원으로 받아주었으나 의견대립이나 자신의 비위에 거슬리면 이단이나 사이비로 몰아 배척하는 예도 허다하다. 이러한 싸움으로 인하여 법정에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전혀 동료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형제요 동료라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넓게 보면 이러한 동료의식은 사회폭력을 예방하고, 안정시키는데도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동료의식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너와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에너지를 서로가 공급해 줄 수 있다.어느 노회에서 중심이 되는 교회가 총회법과 노회 규칙을 따르지 않고 같은 노회원인 목사를 고소하고 독불장군식으로 총회가 규정한 일에 반기를 든다. 그 내용을 보면 한 노회원이 교회 행정에 있어 원론적인 발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거슬리는 발언이라 해서 총회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교회규모가 좀 크다고 노회에서 영향력 행사를 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사역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성스러운 공동체의 규범과 원칙을 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의식이다. 노회도 총회도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형제이며 동료로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대인 관계에서도 교회 장로로 함께 일하면서 동료장로에게 인격모독적인 폭언을 하고 사사건건 비판을 하는 것은 그의 장로자질을 의심해야 한다. 교회 당회원들이 서로 반목하고 싸우는 것은 동료로서의 범주를 벗어난 일탈이며 이해와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우리는 아무리 각박한 현실을 살고 있다고 하지만 함께 같은 길을 가고, 같은 뜻을 가지고 일하는 신앙으로 맺어진 영적관계라면 사랑과 은혜로 관용하면서 인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걸핏하면 고소하고 비판한다면 신앙공동체에서 가질 수 있는 동료의식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어느 목사님은 설교에서 “우리 교인들은 한번 싸우면 순교적인 각오로 싸운다”라고 했다. 우리는 ‘죽는 날까지, 영원히 함께’ 라는 철학적인 명제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중심으로 맺어진 성도와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만나고 대화하고 친교하는 아름다운 동료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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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14
  • 불법 교인총회
    지난 2016년 11월 8일 미국에서 치러진 제45대 대선 결과는 이변을 넘어 미국 전체를 충격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바탕으로 승리를 장담했던 민주당의 힐러리 후보를 제치고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경선 내내 온갖 막말과 경악스러운 정책으로 다수의 미국 국민들의 엄청난 반감을 산 바 있다. 하지만 결과는 트럼프가 승리했다. 아무도 예상 못한 충격적인 결과였지만, 엄연한 민주주의 법에 기초한 선거였기에 국민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결과였다. 그리고 그날 밤 미국 곳곳에서는 비슷한 내용의 플랜카드를 든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미국의 대통령이다. 하지만 나의 대통령은 아니다” 미국의 국민들은 결과는 깨끗이 받아들이면서도 전 세계를 향해 자신들의 의지만큼은 보여주고자 하는 듯 했다. 트럼프의 막말과 국수주의적 정책들이 적어도 미국 국민들의 의견은 아니라는 듯 말이다. 수개월 전부터 분쟁을 거듭하고 있는 성락교회의 개혁측 교인들이 최근 개최한 교인총회에 수많은 잡음이 따르고 있다. 소집권 논란부터, 공고 방법 등 다양한 불법시비가 일고 있다. 일단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 이번 교인총회는 불법이 맞다. 당장 최근의 가처분 판결에서 김기동 목사가 대표자로 인정받았기에 김기동 목사만이 교인총회를 소집할 권한이 있으며, 그 외는 불법이다. 하지만 이번 교인총회를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바라보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본질도 없다. 당장 소집권자 문제만 해도 교회 분쟁에 있어 단골로 등장하는 불법 메뉴로 주최측이 이를 몰랐을 리 만무하며, 또한 이를 굳이 합법화 할 수 없다는 것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이번 교인총회를 본다면 이는 그저 한국교회를 향한 교인들의 목소리다. 자신들이 패소한 가처분 판결에 대한 결과는 받아들이면서도 거기에 주저하지 않고 개혁의 의지만큼은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김기동 목사는 분명 법원으로부터 인정받은 성락교회의 담임목사다. 하지만 개혁측은 이번 교인총회를 통해 적어도 ‘나의 목사’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불법인 교인총회가 의미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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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30
  • 교계를 흔드는 대형교단의 ‘갑질’-차진태기자
    연합단체에서 대형교단이라는 위치가 차지하는 바는 매우 크다. 대사회적 영향력은 둘째치더라도, 당장 대형교단이 감당하는 회비와 찬조금은 나머지 군소교단들이 결코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이다. 그렇기에 이들 대형교단들은 연합단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연합단체 위해 군림하는 ‘갑’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혼란과 모순은 바로 이런 대형교단의 ‘갑질’에서 출발한다. 연합단체 안에서는 모든 교단은 평등해야 한다. 이는 교단의 크기와 회비 수준, 대의원 수 등이 차등되는 것과는 별개로 연합의 정신은 단체 안에서의 이해와 협력, 겸손과 타협을 추구한다. 더구나 기독교 단체이기에 이러한 연합의 정신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형교단의 갑질은 이런 연합의 정신을 아예 깡그리 무시해 버렸다. 자신들은 연합단체 위에 있기에 그 단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 단체를 ‘보이콧’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단체를 창립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들이 감당하는 막중한 회비는 이러한 갑질을 단체 안에서 매우 정당화 시키고 있다. 일례로 통합측이 수년 전 교회협 총무 선거에 불만을 품고, 교회협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법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타교단의 실행위원들은 이에 엄청난 분노를 토해내며, 통합측에 대한 강력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한 적이 있다. 하지만 통합측은 이러한 타교단의 요구를 비웃듯 사실상의 행정보류를 통해, 교회협과의 관계를 단절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개월이 지났을 때 상황은 역전된다. 교회협은 통합측과의 대화위원회를 만들며 통합측의 복귀를 위해 적극 나선다. 교회협이 통합측에 먼저 고개를 숙인 꼴이다. 통합측이 사회법 소송을 제기한데 대한 분노는 온데 간데 없고, 통합측의 행정보류가 가져온 엄청난 손실에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든 것이다. 이는 한기총 역시 한교연과의 분열에서 감당해야 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한기연이 이대로 강행된다면, 한교연은 통합, 백석, 기성 등 주요회원 교단들을 잃으며, 당장의 운영비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교회가 대형교단의 갑질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한국교회는 대형교단이 전부가 아니다. 대형교단은 자신의 재정과 역량을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겸손히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을 권력삼아 한국교회를 좌지우지 하려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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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06
  • 한기총을 향한 교계의 기대와 관심
    최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향한 한국교회의 관심이 매우 뜨겁다. 제23대 대표회장 선거를 코 앞에 둔 한기총에 대한 관심은 최근 한교연과 한교총의 통합으로 이룬 한기연을 무색케 할 정도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수년 전 한교연과 분열하며, 주요 교단들이 빠져나가, 한국교회 대표 연합단체로서의 위상을 잃은 것 아니냐는 일부의 괄시도 있지만, 그래도 한기총은 여전히 한국교회의 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올해 이영훈 대표회장의 직무정지로, 또 한 번의 직무대행 체제에 놓이며, 나름의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내부의 불협화음을 단시간 내 극복하고 이번 대표회장 선거를 치르게 된 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역사와 전통의 한기총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런 한기총이 최근 더욱 관심을 받게 된 이유에는 단연 이번 대표회장 선거의 주인공이 후보 3인에 있다. 비록 그 관심이 긍정적이든 그렇지 않든 이들의 행보는 연일 화제를 모았고, 특히 지난 8월 17일 열린 정견 발표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사실 이들 세 후보가 출마할 당시에는 이들에 대해 교계는 기대보다는 실망의 눈빛을 보냈던게 사실이다. 이는 한기총이 맞이한 위기를 타개할 걸출한 인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사실 한기총은 대표회장의 직무정지로 맞이한 행정적 마비 뿐 아니라, 재정이 파탄 났으며, 밖으로는 교계에 무르익은 통합 논의로 정치적 공세에 휘말릴 우려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바꿔 놓은 것이 바로 정견발표회였다. 이날 정견발표회는 후보들에 선거법 위반이나 출신 배경, 금권선거 등을 묻는 개별 질문이 주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요소요소 후보들이 공약한 정책들은 충분히 곱씹어볼만 했다. 이날 정책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것은 서대천 후보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애초에 한기총 내 인지도가 지극히 부족했고, 정치적 경력이 미천했던지라 서 후보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서대천 후보는 현 한국교회의 최대 난제라 할 수 있는 동성애와 종교인 과세에 대한 매우 획기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서 후보는 기존의 한국교회 동성애·종교인 과세 반대운동이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것에 그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현실에 적용시킬 방안을 내걸었다. 서 후보가 내건 정책은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전할 국회의원들의 TF팀 구성과, 구체적인 시행 방안의 법적 적용을 연구할 법조인들의 포럼 구성이었다. 이런 서 후보의 정책이 화제를 모은 것은 그간 한국교회가 내건 동성애·종교인 과세 관련 대책 중 가장 현실적이며, 확실한 방안이라는 평가에서다. 물론 가장 확실한 만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당연한 의문이 따라 온다. 그간 보수 한국교회는 기독당의 국회진출을 최선의 방법으로 여겼는데, 마치 ‘드림팀’을 연상시키는 위 조합이 가능하다면, 기독당의 성공을 능가하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서 후보측에서는 교육계에서 쌓아온 경력과 인맥, 신뢰도를 최대한 발휘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추후 직접 겪어봐야 할 일이지만, 만약 서 후보가 대표회장에 당선이 된다면 이 공약에는 충분히 기대를 걸어볼만 할 것이다. 이에 맞서는 엄기호 후보는 4개월의 임기라는 시간적 제약이나, 한기총이 처한 환경을 반영한 , 매우 현실적인 공약이었다. 엄 후보 정책의 중심은 한국교회 통합을 위해 매진하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교회의 근본적 숙제라 볼 수 있는 통합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어쩌면 한기총 경력 20년의, 최근까지 통합추진위원장을 맡은 관록의 엄 후보가 내세울 수 있는 신뢰의 정책이다. 하지만 한국교회 통합에 대한 총대들간의 온도차가 극심한 상황에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엄 후보에 놓인 분명한 숙제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숙제와 관련 없이 엄 후보의 한기총 20년 경력은 총대들에 있어 매우 큰 안정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엄 후보는 선거 막판까지 관록을 내세워 총대들의 표심을 얻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노아 후보의 공약 중 관심을 끄는 것은 단연 회관 건립이다. 김 후보는 평소 회관이 없는 한기총의 모습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꼈다면서 회관 건립을 목적으로 한 30억원의 재단법인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회관 건립이라는 논제가 그간 한기총 내에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일단은 한기총 회원과 총대들이 회관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얼마나 공감하는지가 정책 적용의 핵심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이날 김 후보가 한기총의 핵심사안인 동성애, WCC, 종교인 과세 등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기는 했지만, 이를 위한 구체적 시행방안에 대해서는 좀 더 세밀한 보완을 통해 총대들의 표심을 자극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총의 선거가 이제 고작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한기총이 이번에 선출하게 될 대표회장은 4개월 임기의 반쪽짜리 대표회장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또다른 측면에서는 가장 위기의 순간에, 가장 예민한 시기를 지낼 매우 주목받을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하며, 총대들은 한기총의 미래를 진정 고민하는 신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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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8-18
  • 데스크칼럼/주필 김형원 장로
    최근 우리 교계는 고소·고발이 너무 빈번하고 남발되고 있다. 걸핏하면 교회문제를 세상 법정으로 들고 가는 현상은 안타깝기만 하다. 어떠한 문제와 쟁의가 있다면 교회법의 절차와 판단에 따라야 할 지도자들이 무조건 불신법정의 판결을 받겠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성경은 신자 간의 불신법정 송사문제는 고린도전서 6장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불가하다고 했다. 주경신학자 박윤선 박사는 “성도 간의 불신법정 소송은 성경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하고 “신자를 걸어 소송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신자 간 소송 불가론(不可論)을 주장했다.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남노회 유지재단 이사장 김길창 목사는 총회와 고신의 분리문제에서 부산 초량교회, 마산문창교회, 영도교회, 진주교회, 거창교회 등 5개 교회를 담임하던 고신측 목회자는 재산을 포기하고 나가라고 통고했다.이때 초량교회를 시무하던 한상동 목사는 교회의 화평을 위해 ‘건덕론(健德論)’을 취하고 교회를 물러났다. 그러나 마산문창교회를 시무하던 송상석 목사는 교회 재산권이 내포하는 교단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상동 목사가 초량교회를 순순히 내어준 일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소송의 ‘정당론(正當論)’을 주장했다. 박윤선 박사는 교회문제는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고, 만약 신자끼리의 쟁의를 가지고 불신법정에 가서 판단을 구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위상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떨어뜨리는 일이며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에 없어야 한다고 했다.그 후 고신교단은 고려신학교 문제로 고소파와 반고소파로 교단이 분열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1950년대의 예배당 쟁탈 소송문제는 ‘교단의 싸움’이었지만, 1970년대 고려신학교를 배경으로 생긴 소송은 ’형제 간의 싸움‘이요 더구나 전자는 ’민사소송‘이었다면 후자는 ’형사소송‘이었다고 경향교회 30년사에서는 기술하고 있다.최근 우리 교계는 고소. 고발이 심각할 정도로 남발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성도들이 성경적인 원리와 사상에서 모든 문제를 검토하고 추진하면서 나에게 유익이 없어도, 내가 손해를 보아도 하나님의 사역에 합당하다면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함께 가야 하고 협력해야 한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의 사상을 실천해야 할 교회 지도자들이 모든 쟁의를 불신 법정에 의존한다면 진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불신자들 앞에 교회가 사랑이 없다고 폭로하는 것은 전도의 문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하나님의 일을 함께하려고 의기투합하여 단체를 만들고 ‘연합과 일치’를 부르짖으면서 출범하고도 결국은 서로가 고소·고발로 치닫게 되는 한국교회는 매우 죄스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일이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일해야 하는데, 알량한 세속적 이익과 명예와 자리다툼으로 싸우다가 마침내 고소와 고발로 이어지는 상황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오늘의 신앙 동지가 원수가 되어 불신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는 지극히 부끄러운 일을 저지르고 있다. 한때 동료로서 교회와 단체를 위해서 일한다고 공언해 놓고 어느 날 갑자기 자기의 뜻대로 안된다고 고소와 고발을 일삼는 사람들이다.우리 교계 언론인 K목사는 수십 차례의 고소·고발을 당했지만 이에 대하여 맞고소를 하거나 대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음해를 받고, 중상모략과 명예훼손을 당하는 경우에서도 한 번도 상대를 고소하거나 대응하지 않았다. “나는 고소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의 신앙철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오는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수많은 상처를 받고, 시련과 고난 속에서 당하는 억울함과 음해를 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사랑과 은혜를 설교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형제를 번번이 고소하고 고발하는 일은 성경적인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저주요 상대를 몰락시키고 파멸에 몰아넣겠다는 악질적인 행위로 밖에 볼 수 없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하고 착한 양심이 우리의 일상에서 되살아나야 하고 아무리 억울하고 분노와 치욕과 음해를 당해도 용서하고 사랑하고 품어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일 것이다. 박윤선 박사의 신자 간 소송불가론은 성경적인 매우 중요한 의미를 교훈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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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7-28
  • 광화문 광장이 ‘떼거지’라고?
    대신(백석) 이종승 총회장의 교단장회의에서의 발언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이 총회장은 지난 7월 3일 열린 교단장회의 모임의 설교를 맡아, ‘촛불’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해 이목을 끌었다. 이날 이 총회장의 설교 메시지는 한국교회 연합을 위해 교단장들이 눈치보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는 한교총의 창립을 논의하는 이날 자리에 지극히 어울리는 메시지였지만, 문제는 설교 주제와는 전혀 다른 발언들이었다. 이날 이 총회장은 “법에는 6법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여기에 두 개가 더 있다. 이는 ‘떼거지법’과 ‘어거지(억지)법’이다”면서 ‘떼거지법’과 ‘어거지법’이 통용되는 장소로 ‘광화문 광장’을 지목했다. 이 총회장은 “광화문 광장이 그런 곳 아닌가? 띠를 두르고 나와서 떼거지를 써대는데”, “기본이 무너진 나라다” 등의 과격한 멘트를 쏟아냈다.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광화문 광장’에 대해 단순히 일상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특히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불의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에 있어 광화문 광장은 지금 ‘촛불’로 기억되고 있다. 여기에 수많은 꽃다운 아이들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곳도 바로 광화문 광장이다. 성급한 일반화일수도 있지만, 이 총회장의 이러한 발언은 ‘촛불’과 ‘세월호’를 겨냥했다고 생각하기 충분한 것이다.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 수십만의 국민들이 혹한의 추위를 이기며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높이 치켜 든 촛불은 결코 ‘떼거지’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해 달라는 유가족의 가슴 아픈 호소를 한국교회가 함부로 ‘어거지’라 불러서는 안된다. 또한 그러한 발언이 무엇보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지켜야 할 종교 지도자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너무도 충격적인 일이다. 더구나 그는 바로 현재 한국교회의 대표 교단을 자처하는 최고 총회장이다. 이 총회장의 발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최근 봤다던 한 방송을 예로 들어 “국회방송에서 고등학생 애들을 데리고 토론 프로그램을 하는데, 주제가 종교인 과세더라. 아이들이 종교인 과세를 시행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더라”면서 “다음에 국회의장을 만나면 따져야겠다. 이 정부 정말 기가 막힌 정부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도대체 학생들이 ‘종교인 과세’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토론이 비난받을 일인가? 또 학생들이 토론을 하는데 주제가 한정되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국회의장은 만나서 무엇을 따질 것인가? 종교인과세를 지지하고 반대하고는 강요할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몫이다. 더구나 학생들의 건강한 토론까지 비난하려고 하는 것은 기독교를 매우 속좁은 종교로 만드는 것 뿐이다. 이종승 총회장은 지금 일개 교단의 대표를 넘어 한국교회 전체를 대표한다는 한교총의 창립 준비위원장까지 맡고 있다.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다양한 의견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직무를 고려할 때,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한 태도와 중립적인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17-07-03
  • 성락교회와 신천지-차진태 기자
    서울성락교회가 원로 김기동 목사를 중심으로 지지파와 반대파로 완전히 양분된 가운데, 사태가 초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며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교회 분쟁에 돌연 ‘신천지 개입설’이 등장하며 이에 대한 진위를 놓고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신천지 발언은 김기동 목사가 지난 5월 21일 예배 설교 중에 “어떤 사람이 나를 보고 인사를 안하는걸 보면 신천지 같다” “성락교회에 신천지 2~300명이 활동 중이다”라고 언급한 것에서 촉발됐다. 이후 6월 2일 양측이 대립했을 당시, 성도들 사이에서 상대를 향해 ‘신천지’라는 지적을 수차례 계속했다. 또한 한 성도는 성락교회 관련 기사 댓글에 “지금 성락교회는 신천지와 전쟁 중이다. 주동자들에게 미혹된 어리석은 성도들이 안타깝다. 신천지 수법을 그대로 빼박았다”면서 신천지 개입을 강력히 주장했다. 베뢰아는 지난 역사에서 한국교회 주요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당한 전력이 있다. 하지만 이에 맞서 베뢰아측은 오해와 억측, 교파 간의 신학적 차이를 무시한 일방적 정죄라며, 자신들은 이단이 절대로 아님을 항변해 왔다. 본인들의 적극적인 반박에도 불구하고 한번 내려진 이단 정죄는 그 어떤 형벌보다 무거웠고, 이들을 교계 변방으로 내몰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그 누구보다 이단이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형벌이고, 종교법이 내리는 사실상의 사형선고와 같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다. 성락교회 분쟁에 등장한 ‘신천지 개입설’이 특별히 안타까운 것은 무분별한 ‘이단 몰이’가 얼마나 큰 폭력이며, 영적살인인지를 너무도 잘 아는 이들이, 그것을 여지껏 겪어온 이들이 직접 행했다는데 있다. 그저 성락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이단에 빠졌다”며 수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평생을 견뎌낸 이들을 향해 ‘신천지’라는 또 다른 ‘이단몰이’를 행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사실 ‘신천지 개입설’은 대다수의 한국교회 분쟁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다.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신천지의 조직적인 전략이라는게 대부분의 주장이나, 이것이 사실로 확인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성락교회의 성도들이 지금은 지지측과 반대측으로 나뉘어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바로 어제까지 하나님 안에 함께 했던 신앙 공동체였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들의 주장대로 이번 성락교회 분쟁에 ‘신천지’가 개입했다면 이는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신천지는 그만큼 무섭다. 하지만 지금 신천지라는 화살은 불특정 다수를 향해 겨눠지고 있다. 만약 이번 사태에서 단 한명이라도 억울한 오명을 써야 했다면,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교회는 ‘신천지 개입설’을 수습해야 한다. 신천지는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멀쩡한 성도들을 신천지로 몰아세우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17-06-09
  • 데스크칼럼-교회에 할 말이 있으면 교계언론을 이용하라
    왜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교계언론을 두고, 세속언론을 통해 교회 문제를 세상에 까발리나? 그 기사를 보는 사람들의 5분의 4는 한국교회가 애쓰 전도해야 할 비기독교인들이다. 그들이 교회에 대한 선지식 없이 교회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글만을 보고 교회에 대한 선입견을 어떻게 갖겠는가. 교회 내의 지식인들이 교회 문제를 비판하려면 교계언론을 통해 교인들을 각성시키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고신대 석좌교수 손봉호 교수는 명망있는 사회교육학자요, 기독교윤리학자로 존경을 받는 인사이다. 그런데 그가 지난 18일 세속 상업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한국교회를 예수가 아니라, 돈을 섬기는 교회로 오해하겠끔 비판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일부러 그의 말을 받아 “한국교회는 예수를 섬기나, 아니면 돈을 섬기나”라는 자극적 제목을 달고 있다.인터뷰의 내용은 종교개혁과 관련하여 돈을 따르는 한국교회의 ‘번영신학’을 비판하는 것으로 상당한 공감이 있다.그는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돈’이다. 교회가 돈을 너무 중요하게 여긴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도 아니다. 그렇치만 상당수 교회가 그렇다. 성경은 돈애 대한 유혹을 경고하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 그 직접적인 원인이 뭔가. 결국 돈이었다.”(지금 한국교회는) “무엇을 섬기고 있겠나. 기독교 역사를 보라. 예배당이 커지고, 교인수가 늘어날 때면 어김없이 돈을 중요하게 여겼다. 지금 한국교회가 그렇다.” “지금은 교회에 돈도 생기고, 명예도 생기고, 권력도 생겼다. 이제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사람도 교회에 들어온다. 교회 가면 돈도 생기고, 명예도 생기고, 권력도 생긴다고 하니까. 교회 역시 사람을 모으기 위해 그러한 방식을 쓰고 있다”고 했다.말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의 약 50%는 매월 생활비를 150만원에도 못미치는 돈을 받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사정은 말하지 않고, 몇 안되는 특별한 교회의 돈 문제를 세속언론을 통해 비판해 전도의 문을 막으려 하나. 세속언론을 이용해 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손 교수뿐 아니라, 소위 개혁적 인사로 자처하는 교회 내의 지성인들이 더러 있다. 그들은 기자회견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를 비판하는 무슨 성명서도 교계언론을 외면하고 돈이 훨씬 많이 드는 세속 상업언론을 이용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제 잘난체 과시하는 것이다.이들이 세속언론을 통해 제 잘난체 과시하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한국교회는 타락한 교회로 인식해 교회를 멀리한다. 심지어 교회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가진 남편은 아내에게 교회 다니지 말라며 이들의 글을 들이민다. 세계교회에서 한국교회만큼 많은 교계언론을 가진 교회는 없다. 교회에 할말이 있으면 교인들을 상대로 하는 교계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17-06-02
  • 데스크칼럼-예배의 회복/주필 김형원 장로
    오랜 교회생활에서 예배에 대하여 배우고 깨달은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이고, 예배를 통하여 영적 충전을 하고 영적 갱신을 이루어 낸다. 그러므로 신앙의 회복은 예배의 회복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성도에게 예배가 없는 신앙생활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개혁과 갱신을 앞세우고 여러 가지 과제들을 내 놓고 있지만 사실은 예배부터 갱신되고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자 칼빈은 ‘오직 성경’이라는 바른 교회질서는 예배의 회복이라고 했다. 어쩌면 종교개혁은 세속화 된 예배 본질 의 회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축복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복’받는다는 현세 중심적인 ‘기복’의 개념에서 개혁이 필요하다. 예배가 인간의 의식으로 전락되었고, 예배를 일상의 시간마다 정기적으로 갖는 행사나 의식으로 생각한다. 한 마디로 예배의 신비로움이 사라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목회자나 성도 모두가 예배를 하나의 시간을 때우는 식으로 급급하고 있기 때문에 예배를 통해 일어나는 신적인 은사에 대하여 전혀 무관심하고 있다. 그냥 설교 듣는 것이 예배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예배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 삼위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시간으로 드려져야 한다. 예배에 참석하여 위로받으며, 치료받고, 즐거워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이는 예배의 목적이 아니고 예배자가 받는 응답, 즉 축복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성경말씀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교회의 예배가 세속화 된 것에는 여러 가지로 살펴 볼 수 있지만, 무엇보다 세속문화의 침투로 인하여 예배를 변질시키고 있다. 예배를 방해하는 것 중에 인간적인 감정과 흥을 돋우는 음악들은 일소되어야 하고, 거룩하고 경건하며, 영적 깊이를 더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이끄는 아름답고 좋은 음악이 필요하다.그리고 예배에 참석하는 예배자의 자세도 중요하다. 어느 교회 K장로는 주일예배를 위하여 토요일에는 힘이 드는 운동이나 등산을 안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예배시간에 졸게 되거나 예배의 자세가 흐트러질까” 해서라고 한다. 또 어느 장로는 주일이면 제일 좋은 양복을 차려입고 새 와이셔츠에 주일에만 매는 넥타이, 심지어 주일날 교회에 갈 때만 신는 구두가 따로 있다고 한다. 모두가 예배를 중요시 하고 예배에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교회 헌법 「예배모범」에서는 ‘단정하고 엄숙하며, 예배시간에는 귓속말이나 인사나 곁눈질이나 졸음이나 웃거나 그 밖에 합당치 못한 행동을 일체 하지 말 것이요’ 라고 명시하고 있다.또한 예배를 말하려면 예배의 핵심인 설교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예배에 참석하여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은혜와 감동을 받기 위해 원근(遠近)에서 성도들이 모여 온다. 그래서 목회자를 통해 선포되는 설교는 중요한 메시지로서 가슴을 울리는 양질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우리가 설교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준비 되고 능력 있는 설교는 회개와 감사, 결단과 헌신이 일어난다. 그런데 목회자가 교단이나 연합사역에 매여 바쁜 일상의 핑계로 인하여 설교준비에 등한히 하고, 중언부언(重言復言)하면서 설교시간을 때운다면 주일예배를 기다리며 정성으로 준비하여 참석한 교인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목회자가 성도들 앞에서 언행일치(言行一致)의 생활을 보여 주지 못하고 설교를 한다면 혹이나 성도 가운데서 “너나 잘 하세요”라고 조소(嘲笑)를 던질 수도 있는 것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17-05-19
  • 데스크칼럼-주필 김형원 장로
    황량했던 대지 위에 파란 새싹들이 돋아나고, 생명들이 용솟음치는 소리가 들리는 부활의 계절이 왔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놀랍고 귀한 일이지만, 예수님의 부활 또한 더 큰 의미가 있고 감사함으로 가장 뜻있게 지켜야 할 절기임에 틀림없다.예수님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의 우리 현실은 정치가 곤두박질 치고 경제가 곤핍하게 되고 잦은 시위와 갈등이 사회를 혼란하게 만들어 미래가 암담하다.지난날 전쟁과 가난 속에서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은 흘러가는 저 구름을 바라보면서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며 ‘주님 고대가’를 불렀다. 오늘도 이 타락하고 혼란한 시대에는 부활하신 주 예수님이 오셔서 알곡과 쭉정이를 심판하는 날이 하루속히 이루어졌으면 좋겠다.예수님의 생애가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부활하셔서 우리들에게 부활신앙의 소망과 능력을 주셨다는데 감격해야 한다. 부활의 소망이 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지금도 더러운 흙탕물 가운데서 상처투성이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도 살겠고, 살든지 죽든지 부활의 소망을 믿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에서 무엇이 두렵고 절망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앞에 전개되는 대자연의 섭리처럼 새 생명들이 약동하는 이 부활의 계절에 자신과 교회가 부활신앙의 원동력으로 시대를 일깨우는 새로운 힘과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부활의 의미를 새롭게 가슴에 새기면서 예수님이 살아 나셨다는 실존적인 부활을 확인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매년마다 맞이하는 부활절을 교회의 최대의 절기로 지켜야 한다. 최근에 와서 부활절에 대하여 크게 비중을 두지 않고 축소 또는 행사를 소규모로 지키는 교회가 많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교회가 경제적 여유를 가지면서 부활신앙에 대한 절실함을 잊어버리고 너무 형식적인 절기로 보내고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가 부활절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부활절을 기독교 최대의 절기로 지켜야 할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제안하고 싶다.△부활절 카드보내기운동-수년전에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는 부활절에 1천만 성도들이 3천만의 불신자들에게 부활절 카드를 보내고 4천만이 부활의 기쁨을 나누자고 발표했다. 그러나 거기에 큰 호응은 없었다. 이제는 한국교회 성도들이 성탄절보다 부활절에 서로가 축하 카드를 보내고 사랑과 우의를 가지는 기회로 삼는 것이 좋겠다. △범교회적인 부활절 문화행사 시행-교계는 연합적인 모임과 협의를 통해 뜻있는 행사를 성대하게 실시하여 축제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부활신앙의 정신을 일깨우는 기념 세미나, 부화절 칸타타, 축하 음악회, 전시회, 작품 발표회 등등의 행사를 통해 부활절의 깊은 의미를 깨닫고, 기쁨과 감사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교회적인 비중 있는 절기 행사-부활절을 바로 알리는 설교와 연극공연, 부서별 음악과 장기자랑 등의 발표회, 부활절 신앙을 고취하는 웅변대회, 백일장 등등의 행사를 한다면 교회는 부활절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새로워질 것이다. 이러한 행사에 불신자들을 초청하여 복음전도의 효과를 거두게 된다면 일석이조(一石二鳥)의 결실을 얻게 되는 절기가 되지 않을까.한국교회는 부활절을 기독교 최대의 절기로 지키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우리는 부활신앙의 원동력으로 하여 분명히 새로운 역사를 이룩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절기의 축제가 요망된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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