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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개혁 502주년에 붙여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여러 기념행사들이 있었다. 이번 주는 종교개혁 502주년 기념주간이다. 세계교회는 이번 27일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주일로 지킨다. 그러나 지난해 500주년을 기념하느라 힘을 많이 빼서 그런지 금년엔 이렇다할 특별한 행사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신교도(新敎徒)들은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서 왔는가를 안다면 종교개혁을 지난간 하나의 역사 정도로 흘러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1517년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에서 독일의 루터파는 그래도 운좋게 제후들의 지지를 받아 비교적 빠른 기간에 그 신앙을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개혁파와 장로파 교회들은 단순히 성경적 신앙을 회복해 잘 믿어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많은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 그들은 모두 이단으로 몰려 끔직한 고문 끝에 죽어갔다. 따라서 우리의 신교(新敎) 신앙은 수백 만명의 생명을 희생하고 쟁취한 신앙이다. 더욱이 한원주의 교회들은 그 보다 더 오랜기간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이단으로 지목된 신교 신앙을 버리고 가톨릭 신앙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고, 가톨릭 교회에서 ‘영성체’만 받아도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오로지 성경이 가르치는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후,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받은 기독교신앙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우리의 이 신앙을 앝잡아보고 ‘너희가 믿는 종교는 개독교이다’라는 희롱과 조롱도 내뱉는다.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 교회가 어쩌다 이런 터무니 없는 비난을 받는가 하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이는 아마도 우리 교회가 종교개혁 정신에 충실하지 못하고, 세상에 우리의 성결된 삶을 보여주지 못한데서 오는 비판이라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신앙의 도리는 저들이 함부로 폄하하고, 조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은 이미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 개혁신앙을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세상과 싸워 이기는 신앙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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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0-23
  • 고소 고발사태 불신사회 조장한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고소 고발 왕국이 되었나! 개인간, 집단간 고소 고발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목사도 고소하고, 스님도 고소한다. 국회도 고발하고 국회의원도 고발한다. 정부도 고발하고 장관도 고발한다. 심지어 정당과 청와대도 고발한다. 사회적 공익을 대변하는 기관들이 고소 고발을 남발한다. 그것도 명예훼손이라며 고소 고발한다. 좀 억울한 일이 있어도 처벌을 요구하는 고소 고발은 자제하라고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 너무도 가볍게 고소 고발장을 내민다. 우리사회의 고소 고발은 문재인 정부 들어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차하면 ‘고소한다, 고발한다’고 어름장을 놓기 일쑤이다. 우리사회에 불신사회가 조성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불신을 해소하려면 많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이 들게 될 것이다. ‘가짜뉴스’는 바로 이 불신에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어쩌면 우리사회 전체가 이 불신으로 인해 심각한 분열에 빠져들고 있는 듯 하다. 서로간 갈등이 있다해도 정치인은 정치로 해결하고, 종교인은 신앙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신뢰받는 사회로 가는 길이다. 더욱이 교회는 교인간에, 또는 교회운영상의 문제로 생긴 사건을 가지고 고소 고발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지금 전국 법원과 검찰과 경찰에 기독교인들 간의 고소 고발건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쌓여 있다. 재산상의 문제가 생겼다면 그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소송할 수 있다. 그러나 명예훼손 운운하며 고소장 들고 가는 교인들은 그리 옳아보이지 않는다. 우리 주님은 그보다 더한 명예훼손을 당하고도 '저들이 몰라서 그런다'며 참았다.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명예가 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명예는 지켜져야 한다. 심지어 죽은 자에게도 명예가 있다. 그러나 누가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고 악의적으로 음해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솔직히 해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끝나야지, 그를 처벌해 달라고 고소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물론 악의적 음해를 당하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고소 고발하여 법적 다툼을 하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이다. 특히 공익적 목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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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0-17
  • 개천절 광화문 집회가 보여주는 것
    지난 3일 개천절에 서울 광화문에서 모인 대규모 집회는 역사상 최대집회라고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세종문화회관앞), 한기총을 비롯한 시민단체(대교빌딩앞), 한국교회기도연합(대한문앞),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비슷한 시간대에 동시다발로 ‘문재인 하야’ ‘조국 퇴진’을 외치는 개별집회를 가진 후, 오후 2시경 하나로 합류했다. 인파는 세종대로 경복궁 앞 광화문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남대문을 넘어 서울역까지와 종각에서 서쪽으로 서울역사박물관 앞까지 동서남북 모든 거리를 꽉 메웠다. 이는 200만이 모였다는 1987년 김대중의 보라매공원 집회와, 같은 해 130만이 모였다는 김영삼의 여의도광장 집회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이번 개천절 집회를 두고 여권은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동원집회’라며 폄훼하지만, 사실은 자유한국당의 동원 인원보다 몇 백배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모여 문재인 정권의 반민주적 행동을 규탄하고, 정권타도를 외쳤다. 이번 집회의 특징은 보수 기독교 세력이 중심이 된 범보수단체들이 앞장서고 보통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이다. 특히 그동안 대정부 정치집회에는 한번도 나선 경험이 없는 보수 기독교 세력이 대거 참여한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 들어 친북좌파들의 반기독교 폄하, 동성애 옹호, 공영방송의 대형교회 비판 등 기독교가 일종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 기독교 세력이 중심이 된 이런 대규모 집회가 언제든지 또다시 열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국 국민을 분열시키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이다. 따라서 정부와 여당은 보수 기독교 세력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솔직히 문재인 정부는 오만한 면이 있다. 역대 정부들은 국민이 반대하는 일에 대해서는 반대세력을 최대한 설득하려는 노력을 기울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문 정부는 국민이 반대해도 그 여론을 무시하고 자기 지지패만 앞세워 밀어붙이고 있다. 조국 사태는 그 대표적 예에 불과하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다.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다. 결국 그 끝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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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10-07
  • 진정한 예배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는 기독교를 인류사회의 한 단순한 종교현상으로 보는 데서 생겨난다. 기독교는 인류의 선각자가 깨달은 단순한 하나의 종교이념이 아니다. 역사적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설명하고 증언하기 위해 구성된 공동체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류 구원의 계시로써 그 품에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 사회에 드러내 보이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카네이션(Incarnation)이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를 ‘인류 구원사에 감취었던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 27). 이 를 또 히브리서는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1-3)라고 했다. 인류는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아래 놓이게 되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고, 그 죄 사함을 위해 하나님 안에 계신 독생자가 그리스도로 오셔서 희생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아무런 죄가 없으므로 자신을 위해서는 속죄할 필요가 없었으나, 인류의 대제사장으로써 자기 몸을 단번에 십자가에 드려 완전한 속죄를 이루신 것이다. 이에대해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라고 하셨다. 이것이 기독교이다.이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 막혔던 허물이 제거되고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예배가 회복된 것이다. 이것이 요한복음 4장이 말하고 있는 참된 예배이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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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9-09-27
  • 교단재판 ‘교단법’이 무시되고 있다
    예장백석대신총회는 지난달 30일 서울동노회 전광훈 목사(사랑제일교회)에 대해서는 ‘면직’, 서울동노회 강영철 목사(참된교회) 서울노회 류기성 목사(머릿돌교회), 경서노회 최종환 목사(송천교회), 중부교회 김병덕 목사(동은교회)에 대해서는 ‘제명’을 공고했다. 이 공고문은 총회장 이주훈 목사와 재판국장 박용재 목사 명의로 발표했다. 이들은 시벌 받는 자가 회개의 증거가 없고 또 다른 범행을 자행할 때에는 재판하여 가중처벌을 할 수 있다는 교단헌법 제94조를 적용하여 가중처벌 했다고 밝혔다.그런데 이 백석대신총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인데 장로교에는 총회 재판국이 목사를 면직하거나 제명할 수 있는 법이 없다. 그런데 어떻게 총회 재판국이 목사를 ‘면직 및 제명공고’를 한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목사의 소속은 노회임으로 총회 재판국이 재판을 했다하더라도 그 재판결과를 그 소속노회에 내려 보내 노회로 하여금 총회 재판국의 판결을 따라 집행하도록 하는 것이 옳은 법이다. 따라서 백석대신총회의 전광훈 목사의 면직과 또 다른 네 명의 목사에 대한 제명 공고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니 총회 재판국이 대관절 장로교법을 제대로 몰라서인가. 아니면 장로교법을 무시해서인가? 몰랐다 해도 국법으로 가면 모두 뒤집어질 재판을 왜 하는지 알 수 없다.한국교회에 장로교가 수백개 교단으로 쪼개져 있어 교권을 앞세워 교단법을 제멋대로 적용하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교회관련 재판이 세속법정에서 줄을 잇는다. 그런데 교회관련 재판이 상식을 넘어 좀 억지스러운 면이 많다. 그러다보니 교단이 판결한 재판이 국법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이다.교회관련 재판은 총회 재판국 판결이 최종심이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어떤 교단을 막론하고 이미 교단재판국의 권위가 실추된지 오래이다. 그래서 결국 총회 재판에 불복하고 교회문제를 세속법정으로 끌고간다. 국법이 최종심이 된 셈이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찌며”(레 19:15).
    • 연지골
    • 사설
    2019-09-27
  • 지금은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발언할 때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경제 외교 안보 모든 분야에서 위기로 내닫고 있다. 정권을 담당한 좌파들의 퇴행적 역사인식은 반일, 반미로 치닫고 있고, 아예 종북세력이 서울 한복판에서 준동하며 자유대한민국을 조롱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행위를 막으려는 공권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사회가 자유대한만국을 유지함에 있어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과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체제가 되어도 상관없다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사회는 안보불안이 심각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미동맹의 흔들림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 세력은 한국교회 밖에 없다. 기독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6만여 개의 교회당과 20여 만명에 이르는 목회자, 약 100만명에 이르는 중직자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실상 다종교사회에서 우리사회를 이끌어가는 종교세력은 기독교이다. 물론 한국교회에도 지금 시국을 보는 시각이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떠한 정치세력도 거부한다는 점에서는 진보도, 보수도 일치한다. 왜냐면 종교의 자유가 없는 사회는 선교도, 인권도, 자유도, 정의도, 사랑의 정신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 특히 종북세력이 우리사회를 분열시키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목회자들이 '영혼의 구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사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역사인식과 바른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야 한다.기독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또한 여당도, 야당도 아니다. 그러나 무신론과 사회적 분열을 확책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히 타도해야 마땅하다. 그것이 기독교가 복음 선포를 방해받지 않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미 교육현장을 비롯한 각계에 좌파들의 득세로 기독교 선교가 훼방을 받고 있는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특히 진보적 기독정치인이나 기독지식인들이 이 점을 인식하고 복음 선포가 훼방받지 않도록 해야 할 사명이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기독교 선교가 방해받는 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09-06
  • 교수 사회의 삐뚤어진 가치관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의 딸 부정입학 시비는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우리사회의 일부 지식인층의 양심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특히 여기에는 우리사회 젊은 세대에 공평과 정의를 가르쳐야 할 대학교수들이 제 자식을 위해서는 공평과 정의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최대한 이용해 편법과 불법적 수단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이들의 행위는 ‘네 아들은 내가 챙겨 줄테니, 내 딸은 네가 잘 챙겨주라’며, 자기들이 잘 아는 교육법을 악용,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 열심히 하라’며 아무도 신청하지 아니한 장학금을 지급해 가며 ‘품앗이’를 하고 있다. 그 장학금은 어떤 모양으로든 결국 자기 자식들에게로 다시 되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기대를 갖고 주는 것이다.이런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진 기득권층의 자식사랑은 거기에 다가가지 못한 다른 자식들의 권리를 빼앗아 제 자식에게 주는 행위이다. 그런 의미에서 심각한 범죄이다. 특히 대학교수들이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은 용서 못할 죄악이다. 그래놓고도 ‘당시에는 그런 행위가 위법이 아니었다’며 제도 탓으로 돌린다. 그런 양심을 가지고 어떻게 강단에 서서 학문의 진리를 말하고, 정의와 평등을 말하는가.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한술 더 떠서 당시 이런 제도의 허점을 노리고 그 제도를 악용해 다른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한 자들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도 없이 “입시제도 전반에 대해서 재검토하라”는 지시만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우리사회 기득권층의 악습을 제도 탓으로 돌리는 결과밖에 안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 대통령이 그간 해온 주장과도 거리가 먼 태도이다.이번 조 후보자 딸의 부정 편법 입시 사건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에 눈이 먼 지식인 사회의 비양심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라는 점에서 철저한 수사가 요구되는 사건이다.따라서 조 후보의 법무부장관 취임과는 상관없이, 이번 사건에 연루된 모든 학교와 교수, 학생 모두에 대한 수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9-09-06
  • 한국교회와 이단 사이비
    한국교회 주변에는 왜 말도 안되는 허탄한 주장을 펴는 이단이나 사이비들이 이토록 자주 나타나는가?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성경을 제 멋대로 자의적(恣意的)으로 해석하여 기성교회 교인들을 미혹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저들의 주장이 터무니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는데, 교인들이 어리석게도 그들의 헛된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한국교회는 성경을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도, 교인들에게 그 성경을 해석하는 보편적 원리는 가르치지 않으므로, 성경을 영해(靈解)하거나, 또는 알레고리(비유적)로 해석하는 자들의 주장에 쉽게 미혹되 것이다. 물론 성경해석은 영해도 있고, 알레고리도 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을 모두 영해로 풀거나 알레고리로 풀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은 특정한 성경구절을 자신이나 또는 자기네 집단의 목적에 꿰맞춰 해석한다. 그러다보니 거기에서 재림예수도 나오고, 보헤사도 나오고, 창조주도 나오게 된다. 저주받을 일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오늘날 한국교회를 어지럽히는 이만희의 신천지, 안상홍의 하나님의교회 등등 수도 없이 나타나는 기독교계 신흥종교는 모두 성경을 ‘사사로이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성경은 이에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 21). 문제는 성경에 기록이 있다고 하여 그 구절을 글자 그대로 아무데나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중세교회가 보편적 교회의 성경해석의 원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성경을 읽는 것조차 금지한 이유가 이런데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는 만인제사에 의해 성경을 보고 해석할 자격이 있다.사실 한국교회에는 수천명에 이르는 신학자들이 있고, 10만명이 넘는 교육받은 목회자들이 있다. 그런데도 교인들뿐 아니라, 교회의 직분자들이나 평신도 가운데 이단 사이비들의 성경해석에 솔깃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모두 기성정통교회의 책임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08-21
  •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 불러온 참사
    10년 전에 한국으로 온 40대 탈북여성이 한국에서 낳은 여섯 살 난 아들과 함께 서울 봉천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지 두달여 만에 발견되었다. 경찰은 이 모자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것으로 사인을 추정하고 있다. 한씨로 알려진 이 여성은 2009년 탈북해 중국과 태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하나원을 수료한 후 기초생활 생계급여로 살면서 제빵 및 요리학원에도 다니는 등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고 죽음을 맞았다. 한 씨는 굶주림을 피해 탈북하여 한국으로 왔지만, 풍요로운 한국사회에서 끝내 굶어죽고 만 것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복지안전망이 이렇게도 허술할 수 있는 것인가. 주민센터나 구청이나 모든 기초지자체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가정이 없는가를 조사하고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어찌하여 젊은 여인이 어린 자식과 함께 굶어죽게 방치되었다는 것인가. 더욱이 그 지역에 촘촘히 늘어서 있는 교회를 비롯한 종교단체들조차 그들의 생활고를 눈치 채지 못하고 그들을 돕지 못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탈북자로 일가친척이나 형제자매도 없는 남한에 와서 제대로 정착하지 못함으로써 말을 터놓고 살아가는 이웃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서는 이웃과 친분을 나누기가 더욱 어렵다. 뿐만 아니라, 사람에겐 체면이란 것이 있어서 ‘내가 배고프니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손을 내밀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지역에 뿌리를 둔 교회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또한 지역교회들이 교파나 교단을 초월하여 모임을 만들어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사들과 정보를 교환할 필요가 있다. 더 이상 한 씨 모자 같은 불행한 죽음이 우리사회에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이웃에 대한 관심을 갖고 생활고에 내몰린 가정이 없는지 세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에는 지자체의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들뿐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돕는 많은 구호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단체에 전화만해도 한 씨 모자 같은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웃에 대한 관심이다.
    • 연지골
    • 사설
    2019-08-21
  • 한일 관계 외교가 답이다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불만을 품은 일본의 경제 규제로 한일 관계가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역대 정부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외교로 풀어야 할 사안을 일본이 경제보복 카드를 내든 것은 헛발질을 하는 것이다. 한국은 사법부를 앞세워서 일본을 압박하고, 일본은 무역 수출규제로 한국에 경제전쟁을 선포한 꼴이어서 괜히 양쪽 국민에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만 쌓이게 되었다.사실을 말하면 그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과거사 문제를 다르게 대처해온 한국측이 빌미를 제공한 면이 있지만, 그 근본 원인은 두말할 필요없이 일본측에 있다. 지금 한반도 분열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내선일체를 내세운 일제의 한반도 침략에 있고, 일제 식민지 36년 간에 한민족에 저지른 죄악에 대한 배상은 단순히 한일협정으로 그 역사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다. 일본은 피해를 입은 그 세대의 요구에 어떤 모양으로든 응해야 옳다. 우리는 역사이래 한 번도 일본열도를 침략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일본은 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한반도를 침략해 7년간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고, 1910년 일제 침략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은 해외에 임시정부를 꾸리고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떠돌았다.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남북분단도, 6.25전쟁도, 그 모든 원인제공에는 일본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제가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노무자로 끌려간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수도 없이 전쟁터에서 희생되었다. 그래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그 억울함을 호소하며 재판을 해온 강제징용 피해자는 그나마 이제 몇명 남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들에게 당연히 해주어야 할 피해배상을 정부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태도는 동의하기 어렵다.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정치인들이 순전히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양국 모두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여기에 동조하는 가벼운 사람들이 애국심을 무기로 불매운동 운운하는 것 또한 옳지 않은 일이다. 한번 상한 감정을 되돌리기는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 연지골
    • 사설
    2019-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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