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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회가 미신 타파에 힘쓰라
    오늘날 한국사회에 온갖 종교적, 영적, 정신적 문제를 다루는 집단이 그 수가 얼마인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돈만 내면 죽은 조상을 극락으로 보낸다는 불교의 천도제, 집안에 맺힌 영적 원한을 풀어준다는 신흥종교의 ‘도방’제사를 비롯, 사주 관상을 보는 철학관, 점괘를 받는 무당네, 심지어 젊은 지성인들의 거리라고 불리는 서울의 신촌 홍대입구와 혜화동 대학로에 즐비해 있는 사주 관상 타로 등 운세를 점치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온갖 ‘미신’이 넘친다. 여기에 기독교도 한 몫 거들고 나섰다. 예언기도제단과 같은 기복주의 집단이 그것이다.19세기 말 한국에 처음 들어온 기독교는 미신에 찌들어 있는 조선사회를 계몽하는데 힘썼다. 처음엔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한국인들의 정신문화를 지배하는 미신을 타파하지 않고는 복음을 증거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미신타파에 나섰다. 그러나 이로이해 교회는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마치 사도행전 16장의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과 19장의 에베소에서 사도바울의 일행이 직면한 데메트리오 사건과 다르지 않았다. 미신을 조장하고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지금 지성과 이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21세기 우리사회에도 똑같은 미신이 조장되고 있다. 사주, 관상 등 운세를 점치는 민간풍속 뿐 아니라, 사람의 정신세계를 진리로 개조해 구원하겠다고 나서는 신흥종교나 기성종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한국사회에서 가장 번성하는 사업이 점집과 부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전근대적 문화적 가치관으로는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그러면 한국기독교는 어떠한가. 1980년대 이후 기복주의에 빠져든 한국교회 역시 미신을 타파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특히 목회자들의 설교에서 미신타파의 역설이 사라졌다.기독교가 한국사회를 건강한 영적 도덕적 사회로 변화시키려면 미신타파에 힘써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의 문화적 정신세계를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곧 우리국민 개개인의 가치관의 문제이다. 가치관이 건강하지 못하면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후진성을 면키 어렵다. 복음은 곧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무장된 가치관만이 미신을 타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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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5-20
  •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쳐라
    지난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춘천 등 전국의 CBS방송과 서울 종로의 한기총 앞에서 ‘신천지’ 시위가 있었다. 이들은 ‘종교탄압 거짓교리 한기총을 해체하라’ ‘거짓과 불법으로 부패한 한기총은 해체하라’ ‘거짓방송 왜곡보도 CBS 폐쇄하라’ ‘반국가 반사회 반종교 방송사는 폐쇄하라’ ‘가정파탄 사회혼란 한기총 CBS 폐쇄하라’ 등의 구호를 내걸고, 흰티셔츠와 흰부라우스에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수천명씩 떼를 지어 연좌농성을 했다. 40-5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이들 신천지 교인들은 거의 모두 기성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성경을 잘 가르친다는 말에 이끌려 신천지 집단에 빠져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신천지에서 배운 성경은 역사적 기독교의 보편적 해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천지 교리에 맞춘 자의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 것이어서 이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신천지가 이렇게 짧은 시간에 많은 교인들을 끌어들인데는, 한국교회 안에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빈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한 주간씩 모여 앉아 성경을 상고하던 사경회도 없고, 주일날 예배 전에 30여분간 모여 배우던 장년공과도 사라졌다. 겨우 주보 뒷면에 실리는 성경공부가 다이다. 오로지 목사의 설교에만 성도들의 신앙교육이 의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설교가 대체로 기복주의적이어서 성경을 체계적으로 배우기를 원하는 교인들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본문과 내용이 전혀 다르게 노는 설교도 많이 있다. 그러다보니 그런 목사의 설교에 만족하지 못하는 교인들이 신천지 성경공부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현대교회 목회자는 매우 바쁘다. 그럼에도 목사가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설교 준비와 교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다. 그것도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성경을 바로 알면 이단에 빠질 수 없고, 시험에 들일도 없다. 성경을 바로 알면 교회에 분쟁도 줄어든다. 성경에서 교회론을 배우고, 기독론을 배우고, 성령론을 배우기 때문이다. 신천지를 탓하기 전에 기성교회의 성경공부 시간을 늘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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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5-11
  • 왜 하필 이 시기에 김조광수인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NCCK)는 왜 근래에 이르러 사사건건 한국 기독교의 보편적 정서를 무시하고 한국교회와 같이 가려 하지 않는가? 교회협은 한국 기독교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가장 오래된 에큐메니칼 교단연합단체이고, 반세기 넘겨 한국교회를 대변해 왔다. 그런데 근래에 이르러 보편적 한국교회의 정서를 무시한 채 연합과 일치를 외면하고 있다.지난 4월 28일, 서울 종로5가 기독교회관에서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이야기 마당’을 벌인다며, 동성애자로서 동성결혼합법화를 주장하고 있는 김조광수씨를 초청하여 토론자로 내세웠다.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을 반대하는 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명백히 죄악이라고 밝힌 것을 조장하고 옹호하는 것은 기독교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성경은 동성애가 죄악이라고 선언하고 있다.레위기는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18:22).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지니라”(20:13)고 하여, 동성애가 심각한 사회악임을 규정하고 있다. 또 왕상 14장 23~24절에도 남색자는 짐승과 교합하는 수간자와 같은 가증한 사회악으로 규정되었다.신약에도 남색자는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9). 또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느니라”(롬 1:27)고 하여 동성애자 자신들이 무서운 질병에 노출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기독교는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다고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취급하고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교회협은 왜 하필 이 시기에 동성애합법화를 주장하는 인사를 토론자로 불러 일방적으로 그의 주장을 들으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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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5-11
  • 영성과 목회자의 소유욕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 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예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공생애를 위해서 사십일 동안 기도하신 후, 성령이 충만한 상태에서 제일 먼저 들은 것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마귀의 유혹하는 소리였다. 하나님의 아들에게도 그러하거늘, 항상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죄성을 가진 인간은 어떠하겠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그 영혼이 부요한 사람일 수록 뱀의 공격이 더 심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즉 영성이 깨어있다는 사람일 수록 뱀의 유혹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오늘날 목회에 좀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네 교회가 어디에다 땅을 얼마에 샀는데 그 땅값이 얼마로 올랐다는 말부터 듣게 된다. 한국기독교의 대교회의 재산축적은 재벌기업의 자본주의 논리에 뒤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교회를 공룡처럼 키워놓고, 은퇴할 땐 “내가 교회 재산을 얼마로 늘렸는데 내게 십수억 주는 것이 뭐 그리 대순가?” 하면서 과도한 퇴직금을 요구한다. 불과 10여년 조금 전에 서울의 한 목사가 소위 은퇴위로금(퇴직금)을 4억원을 받은 것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간 7억에서 10억... 그리고 38억, 60억 짜리가 나오더니, 엊그제는 200억원 짜리까지 나오는 기막힌 일이 교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돈은 모두 성도들이 선교를 위해 사용하라고 교회에 헌금한 돈이다.이들이 모두 영성이 밝다고 존경을 받아온 목회자들이다. 일생을 목회에 헌신해온 이들의 과도한 물욕이 교회 내외의 지성인 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사회로부터 교회가 불신 당하는 원인 중의 하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의 유혹이다. ‘은퇴 후를 생각하라’는 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 탓이다.물질주의에 사로잡힌 교회가 섬기는 신(神)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복주의자들의 잔치에 초대되지 않았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신의 자리에는 ‘맘몬’(Mammon)이 앉아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마귀와 ‘전투하는 교회’에 속한 성도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관, 즉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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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4-28
  • 통합측 특별사면위의 활동
    예장통합측은 지난해 제100회 총회를 맞아 “화해”를 선언하고, 그동안 교단 내외의 여러 분쟁에서 정죄받은 사람들을 사면하고 교계의 연합과 일치에 참여시켜 민족복음화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리하여 통합측은 ‘총회특별사면위원회’를 설치하고 지금 활동에 들어갔다. 미래 한국교회를 위해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이번 통합측의 특별사면위원회는 교단법에 따른 법적 권한이 어디까지인가는 두고라도, 그 선언적 의미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교단 내부의 권징의 문제는 차치하고, 교단 밖의 타교단 인사들에 대한 이단 시비 문제는 한국교회의 이단 논쟁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기대되는 일이다.일부 보수교단으로부터 ‘칼측 이단’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에큐메니칼 교단을 지향해온 통합측은 80년대 이후 에큐메니칼 정신이 퇴색되면서 교계에 이단 논쟁의 바람을 불러왔다. 처음엔 순전히 특정인들에 대한 반감과 시기심에서 시작된 것이었으나, 이후 ‘총회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이대위)가 상설화 되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통합측 이대위는 특정세력에 장악되어 마구잡이 이단 규정이 남발된 것이다. 그 결과 통합측이 가는 곳에는 갈등과 분쟁이 조성되고 교계연합단체들은 분열상태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통합측은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에서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그런데 이번에 통합측의 특별사면위의 활동에 따라, 그동안 교계에서 잃은 지도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미 통합측은 조용기 목사를 비롯, 총회의 이단 사이비 결의를 해제한 예가 있다. 이번에 추진되는 특별사면위의 이단문제에 대해서도 그런 과정을 거쳐 충분히 설득력 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럴 때 통합측은 다시 한번 한국교회에서 지도력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로마 가톨릭과도 같이 갈 수 있다고 믿는 통합측이, 같은 개혁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사소한 표현의 문제를 트집잡아 이단시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고, 민족복음화를 위해서 이번 특별사면위의 활동에 기대를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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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4-28
  • 한국교회 정체성 상실의 원인
    성경의 역사는 다신교(多神敎)와 싸워온 기록이다. 아브라함의 유일신(唯一神) 신앙이 유대교와 기독교를 거쳐 이슬람에까지 이어져 오는 이유는 인류 문화사가 다신교로는 참된 정신세계를 확립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수 천년 동안 이 다신교에 대항해 싸워왔으나, 오늘날에 이르러 결국 이 싸움에서 지고 만 꼴이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등을 타고 더욱 극심화 된 기복주의(祈福主義)라는 물신 숭배(物神崇拜) 사상에 빠졌기 때문이다.이 물신 숭배에 대해서는 기독교 사회학자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도 상품과 돈, 시장과 자본을 위대한 숭배 대상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를 ‘레비아단’(Leviathan)이라고 불렀다. 그는 돈은 이 거대한 레비아단의 피라고 생각했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의 비윤리성을 간파한 헤겔이나 아담 스미스, 막스 베버도 ‘보이지 않는 손’ ‘형식적 합리성’이란 이름의 숭배 대상을 지적하고 있다. 그 숭배 대상은 상품, 돈, 시장, 자본 등이다. 여기에 윤리와 도덕이 있어서 그래도 시장의 가치나 규칙이 미덕이 되는 데, 그 가치나 규칙이 부재(不在)한 경우에는 그것이 곧 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그러면 오늘날 사회에서 돈에 대한 교회의 윤리와 도덕은 어떤 것인가? 한국교회에 있어서 돈과 상품과 시장과 자본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가? 한국교회는 상품(교인)을 많이 생산하여 시장(교회)이 큰 목회자가 자본(물질)을 많이 가졌다는 이유로 존경받고 인정받는 우상숭배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난가?기독교윤리에는 ‘청지기’의 삶이란 것이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요, 나의 생명, 자녀, 가족, 재산은 모두 주인이신 하나님이 청지기인 나에게 잠깐 관리를 맡겼다는 사상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그것을 함부로 관리해서는 안된다는 ‘금욕’이 요구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 이 청지기 정신이 지켜지고 있는가? 아니다. 이 청지기 정신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그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기복주의의 영향이다.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목회자의 소유욕도 바로 이 정체성의 상실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유사신(類似神) 돈이 어느덧 최고신(最高神)의 자리에 앉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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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4-16
  • 기독교 정당의 정치실험 실패 원인
    기독당의 정치실험이 이번에 또 실패했다. 18대에 44만여표, 19대에 25만여표, 이번 20대에는 656,550표(2.63)로 정당득표 3%에 미치지 못해 원내진출은 좌절됐다. 그러나 또 다시 그 가능성은 보여준 선거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2개의 기독당이 마치 교계의 연합단체 간판 내걸듯 교계의 고질적인 분열행태를 보였다. 그런데 이들 기독당이 보여준 행태 가운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내건 공약이 정치집단이 아니라, 완전히 교계단체의 그것과 똑 같은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종교혼합주의 WCC 반대 △이슬람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등. 대관절 WCC와 기독교정당이 무슨 관계가 있으며,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을 반대하고 어떻게 민주정당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차별금지법에 사회에 해악을 끼칠 수 있는 독소조항이 있다면 그것을 반대해야지, 차별금지법 자체를 반대한다면 차별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데, 국민 다수가 그것을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는가. 정치집단이 종교단체인 WCC를 반대하면 이는 종교탄압이 되고,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을 반대하면 독재국가나 은둔국가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지, 대한민국과 같은 민주국가와 글로벌화를 지향하는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슬람과 관련하여 반대를 하려면 민주질서와 세계평화를 해치는 이슬람의 테러, IS이슬람국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폭력, 이슬람 국가의 선교탄압 등을 반대해야 옳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 간판을 내건 기독교정당들은 전혀 상식에서 벗어난 공약을 내걸고 표를 구했다. 우리사회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말은 한 마디도 찾을 수 없고, 모두 '반대'만 내걸고 있다. 이것이 지금 한국교회 주변에서 기생하고 있는 '얼치기 정치인'들의 정신세계의 수준이다. WCC를 반대하고 이슬람을 반대하면 보수 기독교인들의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같은 공약을 내건 것으로 보인다. 어리석은 짓이다. 작금 우리 사회에 기독교 정치세력이 요청된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접근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더우기 이들은 한국 기독교인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다. 종교적 흥분을 충동시키면 쉽게 따라올 것으로 본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 선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진실로 기독교정당을 성공시키려면 은퇴한 목사 장로들이 아니고, 거기에 참여하는 프로정치인들의 정치적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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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6-04-15
  • 제20대 총선 적극 투표에 임하라
    제20대 4.13 총선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총선은 19대 총선에서 정통야당 민주당이 야권연대라는 구실로 국회에 끌여들인 친북 좌파들을 청산해야 할 책임이 유권자에게 있는 중대한 선거이다. 그러므로 여야의 공천과정에서 보여준 불신이 있더라도 모두가 투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할 의무가 있다.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대한민국은 지금 안보와 경제와 정치가 매우 위중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를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위기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놀음으로 계속되는 안보위협과 경제적 문제,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는 국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국회를 그대로 다시 재현할 순 없는 것이다. 20대 국회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그런데 여야 할 것 없이 과연 새로 당선되는 의원들이 ‘새로운 국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매우 회의적이다. 새누라당은 소위 친박과 비박이라는 계파 중심이고, 더민주당은 아직도 친노 중심의 종북 좌파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당선되어 구성하는 국회가 결국 되돌이표가 안된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꼴보기 싫다고 하여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더욱 옳은 일이 아니다.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라는 밀이 있드시, 불신이 쌓인 후보들 중에서도 그래도 기대가 되는 인물을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것은 유권자들의 몫이다. ‘대의민주주의’가 잘못되면 그들 의원들만 탓할 수는 없다. 그들을 뽑은 유권자 전부가 공범이 된다. 그러므로 국회의원 선거야 말로 국방의 의무나 성실 세금납부에 못지 않은 국민의 의무와 권리이다.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지문제 같은 포플리즘에 기댄 공약으로 국가재정을 파탄낼 수 있는 ‘묻지마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의 주장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짜’로 해주겠다는 달콤한 공약이 결국 독이 되어 국가재정을 파탄내고 국민의 경제생활을 어렵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한주간 앞으로 다가온 이번 제20대 총선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선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적극 투표로 민의가 반영된 국회를 탄생시켜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6-04-06
  • 부활 후 첫날
    안식일 후 첫날(일) 새벽에 예수의 무덤을 찾아갔던 제자들은 예수가 살아났음을 확인했다. 예수가 무덤에서 살아났다는 이 소문은 곧바로 예루살렘에 퍼졌다.“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리 되는 엠마오라는 촌으로 가면서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눅 24:13-16).그 중 한 사람의 이름이 글로바로 알려진 이들은 주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 무리 속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주님의 제자들 가운데는 12사도 외에도, 120 문도(행 1:15), 또는 500여 형제(고전 15:6), 그리고 5000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그들은 모두 몸을 숨겼다. 이 둘도 날이 밝자, 이틀 전에 있었던 예수의 처형사건과 그가 부활했다는 소문을 긴가민가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피신하는 중이었다.그런데 부활한 주님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멈추어 서서 좀 언짢은 기색으로 “당신이 예루살렘에 우거하면서 최근에 거기서 된 일을 혼자 알지 못하느냐”라고 힐난했다. 그런데도 주님은 시치미를 딱 떼고 “무슨 일이냐”고 다시 묻는다. 그들은 나사렛 예수의 일이라면서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여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비난하고,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믿었다”고 고백하고 있다.그 말을 들은 예수는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가 예수인 줄 알아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복음이 전하는 주님의 부활 후 첫날에 있었다는 삽화이다(눅 24:13-35). 이는 부활절 후에도 오늘날 교회의 설교의 주제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사건이다.
    • 연지골
    • 사설
    2016-04-06
  • 교계연합지 설 자리가 없다
    현대사회에서 건강한 교회를 지키는 데는 교계언론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것은 방송이든, 신문이든 교회를 개교회에만 맡겨놓지 말고, 한국교회 전체의 성장과 발전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교계언론이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그런데 아직도 교계는 방송보다 신문이 여론의 영향력을 더 행사하고 있다. 대부분 주간지로 운영되는 신문 가운데 교단지는 특정교단의 홍보지에 지나지 않으므로 교계전체의 여론을 아우를 수는 없다. 그래도 교계신문은 특정교단이나 기관에 매이지 않는 ‘연합지’가 언론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이 연합지가 설자리를 잃고 흔들리고 있다. 연합지는 특정 교단이나 또는 단체의 후원이 없으므로 순전히 독자의 구독료와 광고로 유지된다.문제는 최근에 이르러 많은 교단들이 자파 교단지를 만들면서 연합지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특히 교단에서 생산되는 광고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 교단이 가입해 있는 연합단체들에서 생산되는 광고조차도 소속 교단의 교단지를 상대하거나, 아예 교계언론은 무시한 채 수백 수천만씩 드는 일간지를 상대하고 있다.광고주가 자기 광고를 더 영향력 있고 효과있는 매체에 싣고자 하는 것은 누가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광고 내용이 일반시민이 아니라, 교계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교계언론을 이용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도 교계언론을 외면하고 불신자들까지 미주알 고주알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교회 이야기를 일간지를 통해 알리는 것은 오히려 한국교회 성장에 저해요소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굳이 더 많은 예산을 들여 일간지를 상대하는 것은 광고주의 일종의 허영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특히 근래에 벌어진 WCC 논쟁이나 WEA 비판 광고같은 특정교회나 집단을 비판하는 내용을 일간지에 올리는 것은 한국교회 성장을 저해하는 자해행위이다. 한국 기독교가 건강한 미래교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교회와 언론이 두 바퀴가 되어 함께 굴러가야 한다. 교회가 언론을 1년에 단 한번이라도 후원하고, 구독료와 광고로 지원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교계에 연합지가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모두 사라진 경우를 상상해 보라.
    • 연지골
    • 사설
    201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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