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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의 타종교 테러 인류 양심에 대한 모독
    서방 기독교가 한참 교황 중심의 교권을 확립하던 7세기 초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어난 모하메드의 이슬람은 기독교가 로마의 박해 아래 있을 때보다 교회에 더 많은 피해를 끼쳤다. 이슬람은 십자가군 전쟁 훨씬 이전부터 기독교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초기 이슬람의 그 적개심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흔히 이슬람의 기독교 공격이 기독교의 십자군 전쟁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다. 모하메드의 코란 자체에 기독교인들에 대한 비하와 탄압의 정당성이 기록되어 있다.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슬람 근본주의가 오늘날에도 기독교에 대한 공격을 끝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지금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폭력은 모두 이슬람이 저지르는 일이 아닌가? 이슬람이 득세하는 지역의 기독교인들은 오늘도 테러의 위협 앞에 내몰리고 있다. 그것이 이슬람의 전파 방식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위협하고 협박해 그들의 종교에 굴복시키는 전파 방식은 이슬람의 역사와 함께 지속되어 왔다. 중세에는 전쟁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자가 자신의 종교를 강요할 수도 있었지만, 민주주의와 종교의 자유가 발전한 현대사회에서 아직도 그런 억압적 방법으로 종교를 전파할 수는 없는 것인데 이슬람은 아직도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인권과 자유를 중시하는 인류의 종교적 양심에 대한 모독이다. 그런데도 세계 인권단체나 종교자유단체들이 이슬람의 이같은 폭압에 대해서 강력히 경고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세계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지금도 아프리카나 중동 등에서 평화롭게 예배를 드리던 교회들이 폭파되고,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고 있는 현실이 외신을 타고 자주 전해지는데도, 그런 위험에 직면해 있지 않은 교회들은 이를 모른체 외면하고 있다. 세계 기독교가 힘을 모아 유엔을 비롯한 세계 인권기구에 이를 탄원하고, 이슬람을 향해 폭력을 중단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교회도 어떤 방법으로든 이슬람의 기독교에 대한 테러에 대해 경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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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10-17
  •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에 대해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쟁이 정치권의 보혁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4월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정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대해 야당의 반발이 첨예화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그간 검증으로 발간되어온 좌편향 역사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근현대사를 심각히 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결과이다.사실 전교조로 대변되는 소위 진보학자들의 현대사 역사인식은 다분히 좌편향 되었을 뿐 아니라, 현상 자체도 심각히 왜곡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예로 근현대 한국사회의 변화에 가장 큰 몫을 감당해온 기독교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무시되고, 그 기술마저도 타종교에 비해 분량이 턱없이 적다는 점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좌편향 교과서 문제는 19세기 말 기독교 선교가 시작되면서, 기독교가 근대화 된 교육기관인 학교의 설립과 열악한 보건환경에 처한 주민을 위한 병원의 설립, 또한 무속에 찌들린 미개한 정신세계를 개조하기 위한 미신타파운동 및 문맹퇴치와 여성해방, 민주화 등에 공헌한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 국사 교과서의 다수는 이같은 기독교의 활동을 깡그리 무시해버리고 겨우 몇줄로 끝내고 있다.그렇기 때문에 이번 정부 여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좌편향 진보학자들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그들은 그 도를 넘어 혁명적 방법으로 국민의 역사인식을 바꾸려 한 것이다.야당이나 진보진영에서 '유신의 부활' 운운하지만, 정치권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좌편향 역사교과서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에 무조건 반대만 하다가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야당도 우선 현재의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또 어떻게 수정되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우리는 역사교과서의 기독교에 대한 심각한 종교편향이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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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10-17
  • 한국교회도 난민 문제에 관심가져야
    세계는 지금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내전 중인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리의 이웃인 동남아에서도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난민 문제는 국가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국가에만 맡길 일이 결코 아니다. 난민 문제는 정부가 판단하기에는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오늘날 난민 문제는 세계 기독교의 양심을 가늠할 중대한 사안이다. 난민 문제에 세계 각국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이 문제에 이미 깊이 관여하고 나섰다. 그런데 세계교회협의회를 ‘사이비 기독교’라며 욕하는 사람들은 난민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우리의 행동하는 믿음을 내 보일 때이다. 한국교회도 세계 난민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신청하는 사람들을 도우는 일에도 나서야 한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현실적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이들 난민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을 둔 난민 가족들은 더욱 힘겨운 상황을 맞고 있다. 그들이 난민 지위를 획득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는 정부가 알아서 살펴야 할 문제이지만, 당장 먹고 자고 거처해야 할 곳이 없는 이들에게 지역의 교회들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들의 국적이나, 종교나, 사회적 신분 등을 따질 필요는 없다. 그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교회는 필요한 도움을 나누어 주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가 그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그런데 한국교회는 아직 어디에도 난민 문제를 다루는 기구가 없다. 교회협이나 한기총 등에 전문가들이 모여 난민 문제를 논의하는 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그 기구를 통해 정부의 난민 문제에 자문과 후원을 할 수 있다. 한국교회에는 그러한 일에 나설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이 있다.각국 나라에서 외면하는 난민들을 독일교회가 나서서 유럽의 난민 문제의 해결을 촉구함으로써 독일이 난민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서게 되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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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10-10
  • 오늘 당신의 설교가 천년의 교회를 가름한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기독교는 초기부터 두 갈래로 퍼져갔다. 하나는 로마령 안에서 전파된 서방교회이고, 다른 하나는 로마령 동쪽에서 전파된 동방교회이다. 처음엔 로마 사회의 ‘불법적 종교’로 규정되어 박해를 받으며 로마령 안에서 전파된 기독교는 313년 이후 신앙의 자유를 얻었고, 또 392년에는 로마의 국교가 되어 황제와 국가의 보호를 받았다.그러나 로마령 동쪽에서 전파된 동방교회는 아무런 권력의 보호를 받지 못한채 자력으로 복음을 전파하다보니 타종교의 시기와 권력자의 탄압의 위협이 항상 따랐다. 그러나 여러 갈래로 번진 이 교회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를 깨우쳤다. 인도에는 도마교회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과 몽골에는 레스토리우스교회가 그 몫을 담당했다.오늘날 한국과 중국에서 기독교의 복음 전파가 단기간에 성공한 배경에는 당시 전도자들이 남긴 복음사상이 민간에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방에 전파된 기독교가 세력화 하지 못한데는 가톨릭과 같은 강력한 중앙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교리와 성경해석에 있어서 민간신앙이 습합되고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온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의 사역과 노고에 빚진 바가 크다할 것이다.기독교는 우주적 종교이다. 세상의 모든 철학과 사상을 담고도 남는다. 그러나 성경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기독교일 수 없다. 오로지 성경 말씀만이 기독교가 이 세상에 증언하고자 하는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해석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이 성경 한 구절 읽어놓고 자기 생각을 제 멋대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만큼 설교에 신중해야 한다.역사적 기독교는 성경해석이 왜곡될 것을 우려해 중세교회는 자유설교를 금했다. 교회에서는 예전에 따른 메시지만 전달됐다. 이단의 발생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자유설교를 원했다. 그 전통에 따라 오늘날 개신교 목회자들은 말씀이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설교한다. 이 설교는 교인들에게 영적 신앙적 힘과 인생관을 심어준다. 설교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지금 우리교회가 500년, 1000년 후에도 이 신앙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오늘 설교해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15-10-10
  • 왜 똑같은 신앙과 신학을 갖고 통합 못하나?
    한국기독교를 흔히 세계 선교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교회라고 한다. 1세기 남짓 기간에 1천만의 기독교인이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기독교 역사에서 한국교회만큼 수준미달의 기독교 집단도 없다. 신학과 신앙을 같이 하는 한 교파에서 수백개의 교단을 만들어놓고 서로를 비난하고 있다.한국 장로교회는 1947년 고신측의 분열 이후 똑같은 이름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를 300여개나 만들어냈다. 이들 중에는 완전히 특정 지도자의 사적(私的) 종교집단으로 운영되는 교단이 대다수이다. 그러다보니 1년에 한번 개최되는 총회에서 제대로 임원이 개선되는 총회는 20여개에 불과하고, 나머지 총회는 설립자가 죽거나 노망이 들어 그 활동이 불가능할 때까지 총회장 자리를 내려놓지 않는다. 모두 몇푼 안되는 세속적 유익을 노리는 것이다.대관절 이런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과연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무당 절간처럼, ‘배운게 도둑질’이라는 속담처럼 아는 것이 성경 몇 구절과 신학교에서 배운 어설픈 신학지식으로 종교적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성령을 팔아서 ‘영적인 것’운운하며 밥벌이나 해먹고 사는 일인가.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가 모이는 현장에 가보면 어디나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은 주장을 하는데, 어째서 교단이 나누어져 있어야 하는가. 한기총이나 한교연 등에는 아랭이자랭이 장로교 간판이 수십개씩 늘어서 있고, 한국교회에는 아예 장로교만 모인 연합단체가 열 손가락을 꼽을 지경이다.그런데 이들이 이런 교단을 만들어 놓고 무얼하는가. 극히 질낮은 목화자를 양산하는 일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신앙과 신학이 같고 선교적 지향점이 같다면 두말할 필요없이 ‘하나’여야 한다. 그것이 인류를 구원하라고 역사 속에서 부름받은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이다. 어떤 이유로 교파가 생겼다면 그 교파의 특색을 분명히 하여 세계선교에 이바지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 장로교회처럼 똑같은 신앙고백, 똑같은 신학, 똑같은 신앙을 가지고 너도나도 교단을 만들어 간판을 내거는 이런 기독교가 한국 외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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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10-02
  • 장로교 제100회 총회를 보고
    지난 주 한국의 주요 장로교단들은 일제히 제100회 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교단별로 가진 제100회 총회 기념예배 외에는 어느 교단도 역사적 기록으로 남을 만한 어떤 결의도 끌어내지 못했다. 그저 매년 열리는 일과성 총회로 끝난 것이다. 그나마 백석과 대신측의 일부가 통합하고, 고신과 고려측이 통합해 한국교회에 상당한 희망을 걸게 했다.사실 장로교(presbyterian)는 세계교회에서 소수 종파이다. 장로교가 대세를 이루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화란과 스코틀랜드 정도이다. 그 가운데 한국기독교는 대표적 장로교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장로교회는 장로교의 순수 원리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어 곳곳에서 분쟁과 갈등이 일고 있다.장로교회는 본래 평신도 교회로서 철저한 대의제(代議制)로 운영되는 교회이다. 설교자도 개교회의 청빙에 의해 선택되고, 교회의 대표자인 장로도 평신도 가운데서 나온다. 이들이 모여 논의하는 곳이 당회(堂會)이고, 노회(老會)이고, 총회(總會)이다. 그런데 한국장로교회는 ‘목사 교회’로 전락되어 ‘목사감독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설교자와 교회대표인 장로 간에 갈등을 유발한다. 이런 갈등은 장로교 법치대로 돌아가면 문제가 없을 일들이다.교회가 목사를 청빙하여 설교와 교회행정 전반을 위임했다고 하여 목사 멋대로 교회를 운영하라는 뜻이 아니다. 목사는 그 교회의 대표자로 선택된 장로들과 시비 없는 논의를 통해 교회를 이끌어 달라고 맡긴 것이다. 그런데 목사가 설교자로, 또는 지도자로서 교인들의 존경을 받는다는 것을 기화로 교회재정을 자기 유익을 위해 함부로 사용하거나, 자기 뜻에 맡는 직원을 선택하는 등 목사 중심의 교회로 운영하는 것은 장로교회다운 것이 아니다.특히 목사가 부임한지 오래지 않아 그 교회가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보편적이고 지역 대표성이 있는 교회 이름을 요상한 형용사로 바꾸는 등 별 의미도 없는 문제를 들고 나와 자기 목회에 맞추려고 시도하다가 교인들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어리석은 짓이다.한국장로교회는 100회 총회를 맞은 장로교답게 사소한 문제로 생긴 교회분쟁을 접고 민족복음화에 나서자는 대화합 선언이라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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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10-02
  • 교회를 ‘무당 절간’ 운영하듯이 하지 마라
    한국교회에는 어떤 원칙이나 법치가 통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그 사회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을 제공하는 공동체인데, 한국교회에는 그 윤리적 도덕적 원칙이 무시된다. 이혼한 목사가 청춘 남녀의 결혼식에 버젓이 주례를 하며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어떤 범죄에 연루되어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도 자숙기간 없이 강단에서 설교를 한다.그러다가 교회에서 이런 것이 문제가 되어 교회에 분쟁이 생길라치면 자기를 지지하는 패거리들을 모아 교회를 둘로 나눈다. 대부분이 지연, 학연 등 인간적 이해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집단을 구성해 새로운 교회를 형성하는 것이다. 법치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불교에 ‘무당 절간’이라는 것이 있다. 밖으로 보기에는 여타 절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사찰이지만, 그 내용은 개인이 멋대로 운영하는 독립 절간이다. 거기에는 소속 교단 간판도 있고, 정통교단에서 공부한 승려도 있다. 그러나 그 절간의 설립자와 운영하는 사람은 따로 있어 여차하면 그 사찰이 제3자에게 팔릴 수도 있고, 자식에게 상속도 할 수 있는 개인 사찰을 흔히 무당 절간이라고 한다.지금 한국기독교에 마치 이 무당 절간처럼 운영되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 교회에는 버젓한 소속 교단도 있고, 정통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한 목회자도 있지만, 교회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여차하면 제3자에게 팔거나 그 자녀에게 세습하는 교회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무당 절간처럼 운영되어서는 안된다.인류 구원의 비밀을 지닌 하나님의 교회를 마치 무당 절간처럼 하나의 종교사업체로 전락시키는 이러한 세속적 행태는 성령이 운영하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아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종교인 몇 사람 밥먹여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것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는 무슨 학교나 회사나 어떤 종교기관과는 다르다.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교회론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세상에 모든 법과 원칙은 교육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교육이 바로 되면 그 사회나 집단은 바르게 운영된다. 교세를 늘리는 것보다 바른 교회론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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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9-18
  • 문화재와 종교편향
    산세가 뛰어난 전국의 명산에는 빠짐 없이 절간이 들어 서 있다. '전통사찰'이라 불리는 이들 절간은 모두 정부의 종교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래서 절간 관리를 위해 관광객이나 등산객에게도 입장료를 받는다. 그 입장료가 얼마가 걷쳐서 어떻게 쓰이는지는 절간을 관리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또 정부는 매년 전국의 전통사찰 보호를 위해 수백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심지어 강풍에 기왓장 하나라도 파손되면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수리한다. 그들 절간은 신도들의 헌금 없이도 유지된다.이들 전통사찰들은 오랜 것은 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면서 중건된 것도 있고, 조선 시대에 지어진 것도 있다. 대부분 수백년의 역사를 가진 절간들이다. 그 역사만 봐도 당연히 문화재가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 사찰 안에는 불교와 관련된 온갖 종교문화재가 보존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깔고 앉은 수십만평씩의 부지는 불자들의 헌금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고, 대부분 왕조 시대에 왕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국유재산이라고 봐야 한다.나라가 어려울 때 국민복지를 떠안은 것은 불교의 사찰이 아니라 교회였다. 그런데 이제 살만해지니까, 정부는 불교를 전통종교로, 유교를 전통문화로 분류하면서, 2000년의 역사를 가진 기독교는 우리 땅에 비교적 늦게 들어 왔다는 이유만으로 외래종교로 폄하한다. 국가의 종교지원 예산은 90% 이상을 불교에 쏟아부으며 반기독교 정책을 쓰고 있다. 종교편향의 대표적 사례이다.그런데도 불교는 기독교인 대통령이 나오면 제일 먼저 '종교편향'이란 말을 들고 나와 정권의 기를 죽인다. 김영삼 정부 때도 그랬고, 이명박 정부 때도 그랬다. 오로지 대통령이 교회의 장로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행정처분까지도 트집잡아 대통령이 종교적 편향심을 갖고 있다고 시비했다. 그러면 정부와 여당은 절간으로 쫓아가 불교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겠노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은 심지어 공무원 사회의 자발적 기독교 신우회 모임까지도 시비하며 공직사회의 종교활동을 방해했다. 이는 명백한 기독교 선교를 억압하는 행위이다. 한국 기독교가 불교의 이같은 행태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 연지골
    • 사설
    2015-09-18
  • 한국교회도 난민 문제에 관심 가져야
    지금 전세계는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밀려드는 불법 난민은 하루에도 수천명씩 늘어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유럽 땅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죽음으로 내몰린다. 지중해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오는 난민의 무덤이 된지 오래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헝가리를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던 아시아계 난민 71명이 오스트리아에서 트럭 안에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 너무나 비참한 일이다.그런데 유럽사회는 이들 난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높다. 반이민정책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만은 예외이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독일로 오는 난민을 모두 받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의 난민정책이 바뀐 데는 지난 6월 개최한 ‘독일 개신교회의 날’ 행사에서 채택한 선언에 기인한다. 이날 독일교회는 유럽사회가 난민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독일정부에 전달했다. 목사의 딸 메르켈도 이 집회에 참석해 축사했다.독일교회는 매 2년에 한 번씩 ‘독일교회의 날’ 행사를 갖는다. 여기에서 교회가 채택한 사회적 이슈는 독일정부에 전달되고, 독일정부는 대체로 정부정책에 이를 반영한다. 독일교회의 힘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이다.우리나라에도 많은 아시아계 노동자들이 들어와 불법체류를 하며 난민신청을 하고 있다. 불법체류와 난민 문제는 당국이 신중히 처리해야 하겠지만, 이 문제는 한국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당사자에게는 인권과 생존의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다음 주부터 한국기독교의 68%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의 총회가 일제히 열린다. 갈갈이 찢어져 있어 큰 영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장로교회가 전국에 4만5천여 개에 이른다. 당연히 총회에는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사회적 이슈가 제기되고, 총회는 여기에 답을 내어놓아야 한다. 이를 외면하고 총회 내부의 종교적 문제만을 논의하고 끝나는 것은 낭비이다.그동안 교회가 추구해온 ‘분단과 통일’만이 사회적 이슈가 아니다. 우리사회 공동체가 안고 있는 제반 사회적 문제 즉 ‘화해와 치유’ ‘양심적 병역 거부’ 등에도 적극적인 답을 내어 놓아야 한다. 그것이 교회가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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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9-03
  • 신학대학 구조 개혁과 운영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 결과 ‘부실 대학’으로 평가된 4년제 대학 가운데 신학대학 또는 신학대학을 갖고 있는 미션스쿨이 다수 포함되었다. 이들 대학들 중 A에서 E까지 등급을 매겨 D와 E등급은 정원이 감축되고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이나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이 전면 제한을 받게 된다.이번에 발표된 ‘부실대학’(D+,D,E)에 포함된 4년제 대학은 모두 32개로, D+등급은 16곳, D등급은 10곳, E등급은 6곳이다. 이 중에 신학대학 및 신학과를 가진 대학으로 D+등급에 평택대, 안양대, 나사렛대, 그리스도대, 중부대가 들어 있고, D등급에 강남대, 한영신학대가 있으며, E등급에 루터대, 서울기독대가 있다.정부는 지난 2013년 고교 졸업생 숫자가 현재 56만명에서 2023년 40만명까지 줄어 들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학정원을 조정하려는 계획으로, 이른바 ‘대학 정원 16만명 감축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에따라 이번에 ‘대학 구조 개혁’ 차원에서 이같이 발표된 것이다.이들 신학대학들은 그동안 한국교회에 필요한 목회자들을 양육해 왔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들 신학대학 출신들의 헌신에 기인한다. 따라서 어떤 모양으로든 한국교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자기 교파 또는 자기네 교단 소속 대학만이 아니라, 뜻있는 교인들이 신학대학을 후원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 가야 한다.대학도 스스로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먼저는 구조 개혁이다. 그리고 학생을 모집하고, 장학금 등을 모금할 때 교단 안팎의 뜻있는 유지들을 움직여 대학을 후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돈 있는 성도들이 그 돈을 자녀들에게 상속하기 보다 대학에 맡겨 후학을 키우는 일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부해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상당히 큰 기업을 운영하는 실업인들이 많지만 그 사업에서 얻은 잉여금을 대학이나 교회에 기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를 바꾸고 교회를 바꾸는 것은 교육밖에 없다.지금 한국 기독교에는 62개의 신학대학이 있다. 이 중 16개 대학은 종합대학 안에 있는 신학대학이고, 19개는 대학원대학이며, 나머지 27개는 교파나 교단의 신학대학이다. 신학대학을 육성하는 것은 곧 교회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 연지골
    • 사설
    201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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