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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자살 바이러스
    메르스가 진정국면에 들었다. 방역당국과 의료진 그리고 국민들의 선진의식이 그나마 무서운 바이러스를 이 정도에서 제압할 수 있게 되었다. 7월 6일 현재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는 33명이다. 메르스 바이러스가 나타난지 한달 보름여 만의 일이다.그런데 우리사회에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오래동안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는 것 같다. 바로 매일 평균 40여명이 넘게 죽어나가는 ‘자살’ 바이러스이다. 자살로 죽는 사람이 한달이면 1,200명, 일년에 1만6000여명에 이른다.자살 바이러스에 쓰러져 가는 사람에는 대통령도 있고, 대기업 회장도 있으며, 인기연예인도 있다. 한달 보름여 만에 33명이 죽어나간 전염병 메르스에는 온 사회가 무너져 가는 것처럼 야단법석이면서, 어쩌다 우리사회가 이처럼 무서운 자살 바이러스에 대한 대책에는 등한한지 알 수 없다.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온갖 유형이 있다. 사랑에 실패한 사람, 사업에 실패한 사람, 오랜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 경제문제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 우울증을 앓는 사람, 모두 그 삶의 위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경제가 어렵고 삶이 팍팍할 때는 그래도 잘 견뎌낸 사람들도, 이젠 경제적 여유가 좀 생겨 우리사회에 보편적 복지가 늘아나 절대빈곤층이 사라져 가는데도 자살율은 높아져 가는 이유가 무엇인가?이는 우리사회의 이기적 경쟁심 때문이다. 이기적 경쟁심을 부추기는 것은 기복주의이다. 교회 안에도 만연해 있는 기복주의는 경쟁심만 부추길 뿐 인간의 정신세계를 행복하게 하지는 못한다. 기복 행위의 대상은 구체적인 현세적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복 행위를 하는 인간은 구체적으로 바라는 것들이 채워질 때 비로소 행복해질 뿐이다.기복 행위는 언제나 행위자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갖는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이기적인 욕심을 갖는다. 그러나 이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이 길을 가르치는 것이 종교의 사명이다. 그런데 이 시대의 종교는 이기적 욕망을 억제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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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7-09
  • 이신칭의(以信稱義)
    ‘이신칭의’는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가 설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온전한 의(義)를 전가 받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노력이나 생각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3:11).로마 가톨릭교회는 “의화(義化, 즉 칭의)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화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며 행위구원을 강조하고, 오히려 “만일 누구든지 사람이 그리스도의 의의전가에 의하여만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한다면... 또는 우리가 의롭다하심을 받는 은혜는 오직 하나님의 호의뿐이라고 말한다면, 저주를 받을지어다”(트렌트공의회)라고 이신칭의를 저주하며 부정한다.그러나 루터는 “이신칭의 교리는 복음의 진리이다. 그것은 또한 기독교 교리의 기본 주제이다... 만일 칭의의 교리를 한 번 상실하면 모든 참된 기독교 교리를 상실하게 된다”고 했고, 칼빈은 “칭의의 시작은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께 달렸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은혜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게 하시는 성령의 은사이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죄에 얽매인 우리에게 칭의를 선물로 주신다”고 했다. 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칭의는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의 행위로서, 저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엡 1:7), 그의 안목에 우리를 의롭게 여겨 받으시는 것이니(고후 5:21), 이는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심이요,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이니라”(롬 5:9)고 말하고 있다.오늘날 한국교회에 이 이신칭의 교리가 약화되고 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나 이웃의 영혼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선행에 힘써야 한다. 이는 믿는 자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몫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선행은 아무 것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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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30
  • 연예인들의 간증과 개런티
    수년 전부터 사람 좀 모인다는 교회는 인기 연예인이나 이름난 예술가 등을 초청해 소위 ‘간증’ 시간을 갖고 있다. 개중에는 아예 전문적으로 교회만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이 어떤 계기로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간증이 교인들에게는 상당한 관심을 끌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들 중 일부는 교회에 와서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한 간증을 한 후 교회로부터 적지 않은 개런티를 받아가는게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몇몇 인기있는 가수나 탤런트는 세속 행사에서 받는 개런티와 맞먹는 액수를 요구한다. 한 시간 왔다 가면 500-800만원이 보통이고 성악가나 예술가들도 200-300만원의 개런티를 받기도 한다. 좀 잘나간다는 사람은 몇 곡 연주하고 500-60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연예인들을 강단에 세워 간증을 듣는 일은 분명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이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지불해가며 그럴 필요가 있을까? 또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교회를 상대로 자신의 간증을 하고 개런티를 받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는 교회의 세속화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로 밖에 볼 수 없다.연예인이든, 예술인이든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나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으면 돈은 밖에서 벌고, 교회에서는 그 은혜를 나누는 일에 참여해야지, 어떻게 교회를 상대로 돈벌이를 하려 하는가? 이런 연예인 치고 교회에 헌금 제대로 하는 사람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물론 대다수의 기독인 연예인들은 개런티를 받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며, 교회 부흥과 복음 전도에 헌신하고 있다. 다만 몇몇의 일부 연예인과 이들을 동원하는 교회들의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한국교회가 돈 몇 푼 모인다고 이런 식으로 돈을 쓰면 안된다. 그 돈은 성도들이 선교에 사용하라고 교회에 헌금한 돈이다. 연예인 불러 간증 집회를 하면 전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너무 가벼운 짓이다.어떤 교회 목사에게 왜 그런 연예인들을 불러 강단에 세우고 그 많은 돈을 주느냐고 물었더니,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는다면 그 돈이 무슨 대수냐’고 대꾸했다. 솔직히 그런 교회 부목사나 전도사들에게 한달에 월급을 얼마나 주는지 묻고 싶다. 부교역자들에 대한 생활비나 후생비는 사명 운운하며 평준에도 못 미치게 대우하면서 연예인 불러다가 수백만원씩 개런티를 퍼주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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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29
  • 한기총 임원회 분쟁에 대한 우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지난 16일 오전 한기총 회의실에서 모인 한기총 긴급임원회는 친이영훈파와 반이영훈파 간에 격돌이 벌어져 경찰과 119 구급대가 동원된 가운데 이영훈 대표회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반이영훈파 공동회장들을 자격정지 시키고, 직전 대표회장인 홍재철목사에 대한 재정비리를 조사키로 하는 등 강경한 결정을 내렸다.한기총이 여기까지 온 배경에는 이단 문제 재검증이 있다. 한기총은 지난 회기 이단대책위원회와 신학특별위원회, 임원회, 실행위원회, 총회를 거쳐 류광수와 박윤식 목사가 ‘이단 아님’을 발표했으나, 이영훈목사가 대표회장이 된 후 교계연합기관의 통합을 명분 삼아 다시 재검증에 나섰기 때문이다.이렇게 되면 한기총은 법정싸움으로 날을 지샐 것으로 보여 이영훈 대표회장 체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 들 가능성이 있다. 한국 개신교가 정말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회의가 든다.한기총은 한국교회 보수권 교단들의 대표성 있는 연합체이다. 그런데 이미 한번 갈라진 한기총이 또다시 분열한다면 한국교회 보수주의권 연합운동은 지리멸렬하여 설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원로들이 나서서 한기총의 분열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기총에는 이 사태를 중재할 만한 원로가 보이지 않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은 계속 분열해 왔다. 이번 한기총 분쟁도 그러한 보수권 교회들의 고질적 분열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양쪽의 주장을 조정하고 화합하려는 정치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상대에게 절대 지지 않겠다는 패거리들의 기싸움만 등등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영훈 대표회장은 한기총을 복마전으로 생각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패거리들의 놀음에 놀아나지 말고, 한국교회를 지키겠다는 강한 신념을 갖고 한기총을 화합으로 이끌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임원회의 결의가 실행위에 까지 올라가 막다른 길까지 가기 전에 양쪽의 화합을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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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9
  • 교회의 예배와 봉사
    기독교가 자체 종교시설을 짓고 거기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것은 초기 동로마 시대부터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셈이다. 그러다보니 ‘교회’가 곧 ‘교회당’이란 개념이 정착되었다. 그로인해 중세교회는 너무 많은 돈을 교회당을 짓는데 사용했다. 그 전통은 그대로 이어져 오늘날 현대교회도 마찬가지이다.교회의 본 사명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다. 기독교의 3대 사명이 예배(케리그마), 교육(디다케), 봉사(디아코니아)에 있다. 여기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예배’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임으로 예배 없이는 교육이나 봉사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그래서 천주교는 매일 공중예배가 있다. 사람이 둘이 있든, 셋이 있든 사제는 예배(미사)를 인도한다. 그런데 천주교를 개혁했다는 개신교는 오히려 예배가 등한하다. 매일의 새벽기도 외에는 매일 공중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는 ‘설교’ 때문이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청중이 있어야 예배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교회가 갖는 교육의 사명은 성경과 복음을 가르치는 것이다. 학교를 세우고 세속교육을 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복음이 증거되지 않는 교육은 굳이 교회가 맡아 해야 할 일이 아니다. 현대사회는 더욱 그렇다. 교육은 교육당국이 책임을 지면 된다. 그리고 봉사는 교회의 사회적 사명이다. 그러나 봉사나 친교가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가 반드시 사회에 대한 봉사를 해야 하지만, 교회가 사회사업기관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교회의 사회봉사는 이웃 사랑의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오늘날 좀 유식하다는 사람들이 교회가 헌금 거두어 뭐하느냐고 힐난한다. 교회당 짓는 데만 쏟아붓고 가난한 이웃을 위한 사회사업에는 등한하다는 비난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의 본래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교회가 이들의 지적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 교회는 사회 안에서 사회를 섬기라고 부름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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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19
  • 서울시 종교인 분포 조사에 나타난 의미
    서울시민 26.3%가 기독교인(개신교인)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서을시가 2014년 10월 서울시민 4만5496명을 표본조사한 것으로 국민일보가 지난 5월 21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사는 자치구는 용산구(32.8%)이며, 그 뒤를 송파구(32.5%) 도봉구(31.2%) 강동구(29.5%) 영등포구(28.5%)가 따랐다. 비교적 기독교인이 적은 구는 종로구(19.6%) 광진구(16.8%)였다. 이에비해 불교는 전체 10.6%이고, 천주교는 9.4%에 지나지 않았다.또 기독교는 10대(26.9%)에서 60대(25.2%)까지 고루 나타났고, 불교는 50대(13.4%) 이상에서만 10%를 넘었다. 또 남성의 23.8%와 여성의 28.8%가 기독교인이고, 학력별로 보면 기독교는 대졸 이하가 25-26% 정도였고, 대학원 이상에서는 35.8%였다. 불교나 천주교에 비해 대체로 기독교인의 학력이 높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이번 서울시의 종교인구 분포조사는 요즘 제기되고 있는 기독교의 위기론이 근거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최근 안티기독교와 교회 안의 개혁세력 등이 한국교회 일부 대형교회에서 일어난 내부 문제를 확대하여 한국 기독교가 내리막길로 가고 있다는 기독교 위기론을 퍼뜨려 왔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 조사에서 보는 통계는 그같은 위기론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이같은 현상만 보더라도 오늘날 한국사회의 주류종교는 기독교임을 알 수 있다. 어느 시대나 자유로운 시민사회는 그 사회의 지도이념은 주류종교에서 나온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도이념이 과연 한국기독교에서 나온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좀 회의적이다. 이는 한국기독교가 심각히 분열해 있고, 국가나 민족의 미래를 담보하는 지도력이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 통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우리사회가 기독교를 외면하고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아가야 할 사항은 불교에 편중되어 잇는 서울시의 종교문화 지원정책이다. 정부의 불교문화 우대정책에 따라 서울시 종교문화 지원정책도 불교에 편중되어 있다. 서울시는 시민의 26.3%가 기독교인임을 감안해 각 종교지원 등에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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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6-10
  • 정부의 희안한 문화정책
    지난주 서울을 비롯한 전 대한민국 구석구석은 온통 ‘부처님 오신날’ 경축행사로 들떠 있었다. 누가 봐도 대한민국은 불교국가로 인식할 만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주류종교가 없는 다종교사회이긴 하지만, 딱히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류종교를 꼽는다면 기독교이지 불교가 아니다. 현재 신도수만 따져도 기독교는 신구교를 합해 1600만명에 이른다. 이는 1200만 불자에 비해 월등히 많은 숫자이다.뿐만 아니라, 불교는 매주 한번씩 절간을 찾아 설법을 듣는 신도수는 전체 신도의 10%도 안된다. 부처님 오신날을 비롯해 1년에 한두번 절간을 찾는 신도가 훨씬 많다. 그러나 기독교는 개신교의 경우 약 90%가 매주 혹은 매달 한번 이상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천주교의 경우도 개신교보다는 매주 미사 참석율이 약간 떨어지긴 하지만 불교보다는 훨씬 높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 신도들이 각 종교에서 배운 종교적 가르침을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다고 볼 때, 기독교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또한 우리사회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신앙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국회의원 약 40%가 기독교인이고, 역대 정부의 장차관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으며, 군 장성급이나 문화인들 가운데도 기독교인이 타종교인들보다 많다. 그리고 각 지자체의 의회는 더 많은 기독교인들이 포진해 있다. 그런데 왜 이런 대한민국이 5월만 되면 불교국가로 변하는가? 그것은 정부의 정책 때문이다.언제부터인가 우리정부의 문화정책이 유교는 전통문화로, 불교는 전통종교로, 기독교는 외래종교로 규정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모두가 외래 것인데, 한국 땅에 온지 좀 오래된 것은 ‘전통’이 되고, 좀 늦은 것은 그것이 세계적 종교일지라도 외래종교로 취급받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가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매년 ‘부처님 오신날’ 행사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불교에 지원하는 지원금은 그 액수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 연등행사는 불자들의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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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8
  • 종교개혁 500주년 대대적 행사로 치루자
    2년 후 2017년 10월 30일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517년에 시작된 종교개혁은 교회의 개혁일뿐 아니라, 오늘의 근대사회를 이루는 기초였다. 종교개혁으로 인해 중세의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오늘의 시민사회가 형성되었으며, 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싹트 난 것이다. 따라서 종교개혁 500주년은 인류사가 기념할 만한 중요한 날이다. 그러므로 이번에 한국교회가 하나로 뭉쳐 대대적인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할 것을 제안해 본다.지금 한국교회는 각 교계단체별로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각 단체별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대로 추진하고, 별도로 한국교회 전체가 참여하는 행사를 기획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주최자의 문제, 예산의 문제 등 난간이 많겠지만 그동안 한국교회는 대형집회를 여러 차례 기획하고 치룬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뜻만 모이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고 본다.지난해에는 천주교가 광화문을 메웠고, 금년에는 불교가 광화문을 메웠다. 후내년에는 개신교가 광화문을 한번 메우면 어떨까.여기에는 기독교계 뿐 아니라, 일반사회의 각계 인사들도 참여시켜 종교개혁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면 분열과 갈등 속에 있는 우리사회의 치유를 위한 좋은 국민적 행사가 될 것이다. 종교개혁의 덕을 본 것은 교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 문화 경제 사회 전반에 종교개혁은 영향을 끼쳤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세션에 참여하여 발표도 하고, 공연도 하며, 대대적인 축제의 장을 만든다면, 이 날은 또 한번의 개신교의 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교회협, 한기총, 한교연을 비롯한 각 교회연합단체들과 주요교단들이 서로의 경쟁을 잠시 접고 한 자리에 모여야 한다. 그래서 조직과 기획은 기독교가 맡아 추진하고, 사회 각계인사들을 참여시킬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여기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이면 되었지 기독교인, 비기독교인 따질 필요는 없다.종교개혁이 없어서면 기독교는 아직도 유럽사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종교개혁은 세계교회뿐 아니라, 인류사 전체를 구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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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28
  • 한기총, 이단 검증 기준부터 정하라
    한기총 이단검증특위원회는 지난 22일 한기총이 이단을 해제한 류광수목사와 박윤식목사에 대한 재검증 전문위원을 위촉했다. 각 교단에서 파송한 전문위원은 그리스도의교회협의회, 기독교한국침례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예장백석, 예장통합소속이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는 개인자격으로 위촉됐다. 그리고 한두 사람에게 더 합류를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런데 이들 가운데는 류광수목사와 박윤식목사에 대해 이미 이단으로( 규정해 놓은 교단의 대표도 있고, 예단(豫斷)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한기총은 이들과 같은 사안을 놓고 오랜 재판을 한 사람에게도 합류를 권하고 있다고 한다.그 사람들은 이미 그 두 목사를 이단으로 결정해 놓고 있는데, 무엇을 더 검증하겠다고 합류를 한다는 말인가? 재검증은 예단 없이 순수하게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가능한 한 선입관을 접고 참여해야 한다. 이미 그들을 이단으로 규정한 사람들은 배제되는 것이 옳다.류광수목사나 박윤식목사에 대한 교계의 검증은 이번이 네번 혹은 다섯번째이다. 이번에 검증위원에 참여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앞서 한 검증에 대해서는 일체를 거부한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검증 잣대가 다른데, 검증 기준도 없이 그들이 모여 무엇을 어떻게 검증한다는 말인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최소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증 기준부터 정해져야 한다. 성경 해석 몇 구절 들추어서 이단이네, 아니네 하는 논쟁은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고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한국교회에서 이단은 두 종류의 이단이 있다. 하나는 '교주우상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교리적' 이단이다. 교주우상주의는 그 집단의 지도자를 신적 존재로 추종하는 경우이고, 교리적 이단은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를 부정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이다. 이같은 검증 기준없이 설교시간에 내뱉은 몇 마디 신학적 용어 따위를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이번에 한기총이 한국교회에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이단 검증의 기준을 분명히 제시해 앞으로 이단시비에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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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15-05-26
  • 부교역자들의 자괴감
    한국교회에는 줄잡아 약 14만명 정도의 목사와 전도사가 있다. 이들 중 교회의 담임목사는 약 6만명쯤 된다. 나머지는 소위 부목사, 전도사 등 부교역자에 속하는데, 이들에 대한 처우가 매우 부실해 자신들의 사역과 관련 경제적 만족도 및 자존감 정도가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이는 이미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바이긴 하지만, 지난 8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서울 종로 5가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가진 “한국교회 부교역자를 생각하다”라는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부교역자 94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로 더욱 명확해졌다. 이 설문조사 결과는 현재 한국교회 부교역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고, 사역의 불안정성과 과도한 업무에 힘겨워하고 있으며, 인격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체감하는 경제사정은, 매우 어렵다(17.6%), 어렵다(46.6%), 보통이다(30.6%), 만족하다(4.4%), 매우 만족하다(0.8%)로 나타나, 64.2%가 아렵다고 답했고, 55.7%가 현재의 사례비로는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답했다.그러면 현재 한국교회 부교역자가 받는 사례비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 평균 사례비는 전임 부목사 204만원, 전임 전도사 148만원, 파트타임 전도사 125만원으로 조사됐다. 파트타임 전도사는 81.7%가 100만원 수준이고, 전임 전도사는 48.7%가 100-150만원 정도이며, 전임 부목사의 34.6%가 150-200만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또 현재 한국교회의 부교역자의 현실을 묻는 주관식 응답에는 743명 중 80명이 종, 머슴, 노예와 같다고 했고, 60명이 계약직, 비정규직, 인턴, 일용직, 임시직이라고 생각했으며, 41명은 담임목사의 종, 하인, 하수인으로, 39명은 소모품, 부속품 정도라고 응답했다. 이는 소명에 의해 사명현장에 나선 목회자의 자존감과 관련하여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매우 우려되는 현실이다. 소명감으로 목회길에 나선 교역자들이 목회현장에서 처음부터 좌괴감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담임목사들의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문제는 이런 목회현장의 풍토가 대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임목사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교역자는 자신이 담임목사가 되면 부교역자의 처우를 그같이 대우하게 된다는 말이다.
    • 연지골
    • 사설
    201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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