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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기독교의 우파와 좌파
- 지금 우리사회는 정치적으로 크게 ‘극우파 세력’과 ‘보수 세력’, ‘종북좌파 세력’과 ‘진보 세력’이라는 네 가지 정치적 색깔을 가진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우파와 보수를 한데 묶어 ‘우파’라 부르고, 종북좌파와 진보를 한데 묶어 ‘좌파’라 부른다. 그러나 극우와 보수, 또는 종북과 진보를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우파를 ‘보수 세력’이라 하고, 좌파를 ‘진보 세력’이라고 한다. 정당도 좌파는 오랜 집권을 해온 보수 세력을 '타락한 극우파'로 보고 척결대상으로 삼고, 또 우파는 현 집권 여당인 진보 세력을 '종북좌파'로 보고 척결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를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기독교는 해방 후 정치권의 좌우(左右) 논쟁과 북한지역의 공산화 그리고 6·25 전쟁을 통한 좌파의 기독교에 대한 악랄한 적대감을 체험했다. 공산주의자들인 좌파는 기독교를 반혁명집단으로 보고 단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반혁명인사로 몰아 처형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 투옥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좌파 공산주의운동을 모두 반기독교운동으로 본다. 따라서 자연히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우파 자본주의를 친기독교 세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사회는 우파는 극우파와 보수파로 나누이고, 좌파는 종북좌파와 진보파로 나누인다. 그런데 한국기독교 안에는 소수이지만, 극우파도 있고, 종북좌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건전한 보수파거나 건강한 진보파이다. 이 둘이 두 바퀴처럼 교회와 사회를 이끌고 있다. 우리사회는 종교적으로 ‘동불서기(東佛西基)’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은 대체로 보수적인 불교가, 서쪽은 대체로 진보적인 기독교가 번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으로도 동쪽 영남지역은 보수 세력이 강하고, 서쪽 호남지역은 진보 세력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극우파들의 선동적 주장처럼 한국사회가 오래지 않아 종북좌파에 휘둘릴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호남지역에 교회가 버티고 있는 한 그런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기독교는 사회변화를 원하는 진보는 될지언정, 교회를 파괴하려는 종북좌파는 결코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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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국기독교의 우파와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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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닮은 꼴: 100년전 중국의 ‘비기독교운동’
-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1922년, 중국에서는 반기독교운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비기독교운동’(非基督敎運動)이란 것이다. 그 뜻은 기독교가 하는 짓은 다 틀렸고, 기독교는 못된 짓을 하는 집단이라는 것이다. 이 운동은 먼저 베이징대학 학생들과 교수들이 시작했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치적 힘을 실은 것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좌파들이었다. 가장 열심을 낸 조직은 ‘공청단’ (共靑團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이었다. 이들은 “기독교인 한 명 늘어나면, 중국인이 한 명 줄어든다”며, 중국에서 기독교가 계속 전파되면 국가도 망하고 민족도 망한다고 선동했다. 그래서 국민당 정부가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학교에서 기독교를 추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1922년부터 소위 ‘교육권의 환수’라는 명분을 내세워 교회가 설립한 모든 미션스쿨에서 교회를 추방하고 교육부가 직접 관할토록 조치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에 관한 필수 수업을 개설할 수 없고, 선생과 학생들에게 예배 참석 의무를 폐지했다. 그리고 이어 소학교와 중학교에서는 철저하게 기독교를 추방하였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종교교육으로서 선택과목이나 과외활동으로서만 기독교를 인정했다. 학교에서 교회를 축출하는 이 교육권 환수운동은 1927년 5년만에 완수되었다. 그런데 바로 이 ‘비기독교운동’과 ‘교육권 환수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반기독교세력이 모두 기독교 학교 출신들이었다. 당시 유명한 기독교 학교들이 앞장서 정부가 학교를 환수하고 서양선교사들을 축출하라고 촉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때는 아직 중국이 공산화 되기 전이었다. ◇딱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의 미션스쿨이 바로 이 같은 위기에 처했다. 좌파들은 기독교가 학교교육에 개입하는 것을 극히 꺼리고, 학생들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미션스쿨의 본 설립 목적인 구성원의 예배의 참석과 성경공부를 거부한다. 그로 인해 예배와 성경공부가 사라진 미션스쿨은 전교조가 장악한 지 오래이다. 좌파정부는 이 마저도 숨통을 끊으려는 ‘사립학교법’을 순차적으로 개정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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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닮은 꼴: 100년전 중국의 ‘비기독교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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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종교성의 회복- 복음선교의 긴급성
-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전 3:11)라고 한다.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이 곧 종교성의 본질이다. 인류는 에덴에서 범죄로 인해 생명의 창조주와의 관계가 단절됐다. 이에 죄를 범한 인간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에덴 동편에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 3:22-24)라고 한다. 이로 인해 에덴을 잃은 인간의 정신 세계에는 '생명의 주님'이 아니면 메꿀 수 없는 동공(洞空)이 생긴 것이다. 인류는 어떻게든 이 동공을 메꿔보려고 끊임없는 그 생명의 주 하나님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그 신의 용서와 사랑을 받기 위해 제사를 드리고, 또 끝내 희생제사까지 드렸으나 창조주 하나님과의 대화의 길은 죄로 인해 막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 사회가 추구해온 그 종교성은 타락하여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았다. 하나님이 먼저 인류에게 계시하기 전에는 하나님과의 대화하는 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과 생명의 주이신 하나님이 다시 만난 사건이 예수의 인카네이션(聖肉身)이다. 성경은 이를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 1:1,2)라고 했다. 창조주 하나님의 품 안에 있던 독생자 그리스도의 탄생, 그의 십자가의 죽음, 그의 부활이 곧 인류가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생명의 주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여신 것이다. 이로 인해 인간의 종교성이 회복되고 참된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제 인류는 그 창조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예배이다. 이 얼마나 인류가 오랜동안 찾고 갈망하던 아버지이신가. 그런데도 인류사회는 아직도 그 타락한 종교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수많은 사람들이 미몽(迷夢)에 빠져 '종교'의 이름으로 미신과 우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다(롬 1:18-25). 바로 여기에 긴급한 복음선교의 핑요성이 제기된다. 복음이 곧 생명이요, 복음의 조명을 받지 못한 인간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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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종교성의 회복- 복음선교의 긴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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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섹트들
- 종교는 보편성을 잃을 때 섹트(sect)에 빠지게 된다.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교리를 말하면서도 섹트는 전혀 다른 종교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정통성을 벗어난 '이단'(異端)이 되는 것이다. 섹트란 말은 조직체 내부에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진리로 내세우며 남을 배척하는 독선적인 분파를 이르는 말이다. 지금 한국기독교에도 이런 섹트는 여럿이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신천지'나, 요즘 일간지 광고란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며 자신들의 목사를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라며 신성모독을 일삼는 '은혜로교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기독교계 섹트 가운데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이단성을 드러내지 않는 집단들도 있다. 그들은 성경 66권 가운데 특정한 계시만을 강조하며 그 계시가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 완성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이들은 절대 다수의 보편적 교회를 오히려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난한다. 사실은 정통을 강조하는 극보수나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세대주의도 섹트에 가깝다. 이런 집단은 딱히 이단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단성이 있다'고는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독생자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나, 부활 등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주 초기부터 이단설(異端說)이 많았다. 그래서 이단에 대한 정의(定義)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325년부터 787년까지 오랜 기간 벌어진 초대교회의 교리논쟁도 이들 이단설에 대한 정통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도입된 것이었다. 거기에서 확립된 신앙을 '보편적' 혹은 '보편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 지도자 가운데 예언자적인 면모를 지닌 열광주의자가 있어 자신을 기독교 복음의 정통주의자로 자처한다. 한국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예수 믿고 영육간 평안과 구원을 받겠다고 찾아간 집단이 섹트일 때, 구원은 고사하고 재산괴 인생조차 몽땅 그 집단에 바치고 만다. 이것이 비정통주의의 함정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보편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해하고 교인과 국민들이 섹트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해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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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섹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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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목사세계에 '색계'라니?
- 최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문화교류국(225국)에 포섭된 충북지역 사회활동가들의 간첩단 사건이 드러나자,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유튜브와 일부언론에서 통일전선부 산하의 225국에 포섭된 한국목사들이 있다고 보도하고 나섰다. 이들 목사들은 김대중 시대와 노무현 시대에 북한을 방문한 자들로서 소위 북한의 '색계 작전'에 포섭돼 친북활동이나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색계 작전에 포섭된 170여명의 한국목사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며, 이들 목사들 가운데는 공작금을 받고 친북활동을 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이 명단이 지난 정권 때에 청와대에 보고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기독교 목사들은 성적으로 타락했음을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국가안보 저해집단으로 비난 받을 수 있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목사들이 '색계'에 걸려 친북활동과 간첩활동을 한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방북 목사들 중에 일부라도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행동이나 오해를 살만한 일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교계와 사회 앞에 이실직고 하고, 그 직에서 은퇴함이 옳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안당국이 나서서 이들 혐의자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낱낱이 밝힐 것을 요구한다. 만약 유튜브나 일부언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같은 주장은 이미 드러난 간첩사건에 대한 물타기거나, 한국교회에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려는 악의가 있음이 분명함으로 교계가 나서서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줄잡아 약 15만 여명에 이르는 목사가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하에 북한을 이해하려는 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 이상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런데 과연 한국교회 목사 중에 이들의 주장처럼 북한의 색계에 걸려 양심과 신앙에 반한 친북활동 내지는 간첩활동을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이 문제는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임으로 공안당국에서 철저히 조사해 밝혀야 한다. 왜 이런 의혹을 방치해서 윤리와 도덕을 생명으로 여기는 교회를 욕보이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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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목사세계에 '색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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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론의 기능
-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의 국정과제는 오로지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이다. 정치권의 위협이 되는 검찰은 '검수완박'으로 손발을 꽁꽁 묶고,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언론은 ‘가짜뉴스’로 몰아 징벌적 처벌을 가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이다. 여당은 언론의 비판 기사가 오르면 자신들이 뭘 잘못한 것인가 돌이켜 볼 생각은 않고, 오로지 언론을 통제하고 규탄하려고만 한다. 그러는 동안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잃고 민주당도, 청와대도, 정부도 망가져 가는 줄은 모른다. 지금 국민의 여론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30% 대로 내려앉고(최근 리얼미터 38.3%), 여당인 민주당의 지지율도 20% 대(29.7%)로 야당인 국민의힘(38.0%)에 뒤지고 있다. 한국기독교계에도 집권여당과 똑같은 짓을 하는 교단이 있다. 예장통합측의 경우이다. 한국기독교에서 그래도 진보진영을 대변한다는 에큐메니칼 교단을 자처해온 통합측은 자신들의 교세만 믿고 수없이 많은 타교단 인사들에 대해 ‘이단시비’를 해왔다. 자기네 교단과 신학이 달라도 이단, 신앙 형태가 달라도 이단,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아도 이단, 귀신을 쫓아내도 이단으로 몰아 교계를 분열시켜 왔다. 통합측의 이런 황포를 보다 못해 ‘이건 아니라고 봐’라고 몇 마디 지적하는 교계언론이 있으면 가차없이 ‘이단옹호언론’으로 매도하고, 총회 결의라며 아예 교단 행사에 그 언론의 기자의 출입을 막고 보도자료도 공급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통합측은 교계에서 왕따가 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언론은 그것이 사회적 기능이든, 교계적 기능이든 그 사회의 거울의 역할을 한다. 그 거울에 비친 피사체가 더럽게 보이면 거울이 더러워진 것이 아니라 그 피사체 자체가 더러운 것이고, 깨끗하게 보이면 그 피사체 자체가 깨끗한 것이다. 그런데도 여당도 교단도 자신의 얼굴이 더러워져 있는 줄은 모르고 거울 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꼴 보기 싫다’며 그 거울을 깨뜨려버리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얼굴에 묻은 더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울에 비친 더러워진 얼굴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고 깨끗이 닦고 다시 거울 앞에 서면 되는 것이다. 정부도 교계도 마찬가지이다. 거울은 다만 거울일 뿐이다. 언론을 탓한다고 자신들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언론은 홍보든, 비판이든 언론 기능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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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언론의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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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매년 늘어나는 ‘예장 교단’
- 교회연합신문이 매년 발간하는 ‘교회연합주소록’ 2021년 판에는 271개의 교단이 등재되어 있다. 그 중에 220개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이다. 예장교단이 처음 하나의 총회를 결성한 것은 1912년이다. 예장은 1938년 일제 신사참배에 굴복한 것이 원죄가 되어 해방과 함께, 1952년 신사참배 반대파(고신측)의 분열로부터 시작해 1953년 기장측의 분열, 1959년 ‘합동측’과 ‘통합측’의 분열 그리고 1979년 합동측의 ‘주류측’과 ‘비주류측’의 분열이 가져온 결과가 오늘날 220개 예장교단간판이 내걸리는 참으로 부끄럽고 놀라운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 외에도 주소지를 확인 못해 누락된 교단이 여럿 있다. 그런데 이 220개 교단은 개혁주의 칼빈주의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을 근간으로 하는 그 신학과 신앙이 동일하다. 그럼에도 무지하고 어줍잖은 지도자들이 ‘ 저 쪽은 우리 하고 다르다’면서 교단을 따로 차리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신학이나 신앙이 달라서가 아니라, 교단 지도자들의 세속적 욕심으로 인한 타락에서 생겨난 현상이다. 그것도 예장교단 220개 가운데 기껏 20여 개 교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교단 설립자가 노망이 들거나 관 속에 들어가는 날까지 평생 총회장을 하는 군소 1인 독재교단이다. 그래도 그들이 교계연합단체에 가입하여 정통성 가진 대교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국교회를 논한다. 그러다보니 연합과 일치를 논하는 연합단체가 교단분열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있다. 코로나 정국인 금년에도 몇 개 교단이 더 늘어났는데, 교단 창립과 동시에 ‘교계연합단체’에 가입해 임원이 된다. 그 단체의 임원 명함 한 장 들고 다니기 위해서 자기네 끼리 교단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두고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근본은 전혀 다르다”는 뜻의 사이비(似而非)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이비’적 현상을 한국장로교회 지도자들이 아무런 고민도 없이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혁교회가 아무리 다양성을 추구하는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신학이 달라 갈라지는 ‘교파’(敎派)가 아니라, 신학과 신앙이 똑같은 ‘교단’(敎團)을 갈갈이 찢어놓는 행위는 비윤리적이고, 비양심적이고, 비신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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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매년 늘어나는 ‘예장 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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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어처구니 없는 교단 분열의 명분
- 한국기독교는 교파주의 교회로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더해 그들 교파에서 갈라진 교단까지 300여 개에 이른다. 교회의 분열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가장 심각한 분열은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이다. 어떤 공동체든 그것이 분열하면 그 집단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교회가 대내외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이유도 바로 수많은 교단으로 분열해 있다는 약점이다. 그런데 이 장로교 교단분열의 명분이 참으로 희안하다. 신사참배 문제로 갈라진 고신측과 신신학적 문제로 갈라진 기장측을 제외하고, 예장의 분열에는 모두 WCC나 NCCK가 등장한다. WCC는 1948년 결성된 국제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를 이르는 말이고, NCCK는 1924년 한국기독교의 유일한 교단연합체로 결성된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에 이어 1946년 '한국기독교연합회'에 기반을 둔 순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1970년 개명)를 이르는 말이다. WCC는 세계 1,2차 대전으로 수많은 인명이 무고히 희생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세계교회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었다는 자괴감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뭔가를 해 보자고 모인 세계 교회의 모임이다. 이 모임에 참여한 한국교회는 예장통합, 기장, 기감, 한국성공회로, 단 4개 교단 뿐이다. 한국교회의 300여 개 교단 중에 단 4개 교단만 가입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WCC가 생기기 전부터 한국교회를 대표해온 NCCK에는 예장통합, 기장, 기감, 성공회, 복음교회, 루터교, 기하성, 한국정교회 등 단 7개 교단만 가입해 있다. 그런데 뭐가 두려워서 예장쪽 인사들은은 교단을 새로 만들 때마다 'WCC와 NCC를 반대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는지 알 수 없다. 솔직히 한국교회에서 교단 따로 차례 나가는 그들에 대해 WCC나 NCC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예장 소속 목회자들 중에 막상 WCC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 대부분이 '용공주의'니, '종교혼합주의'니, '동성애 지지'니 하는 남들의 비난에 그냥 동조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WCC의 에큐메니칼운동은 용공주의도, 종교혼합주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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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어처구니 없는 교단 분열의 명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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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의 지금 외교정책으로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
- 북한의 지난해(1920년) 국민소득(GNI)은 우리 돈으로 1인당 141만원이었다. 전년 대비(141만8000원) 약 2만원 정도가 줄었다. 이는 남한의 27분의 1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북한의 이 같은 경제 실패는 미국이나 유엔의 제재 때문만은 아니다. 제재 이전에 이미 고난의 행군이니 뭐니 하며 대량 아사 사태가 있었다. 그로 인해 북한 인민들의 목숨을 건 탈북사태가 이어졌음을 세계가 잘 알고 있다. 원인은 북한의 외교 정책의 실패에서 온 것이다. 1945년 해방 후 남북한이 갈라질 때 북한의 경제는 남한 지역보다 월등이 앞서 있었다.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주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대결한 결과가 오늘의 현실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지금의 사회주의 경제정책으로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립을 자초하며 인민의 삶을 왜 이토록 피폐하게 방치하는가. 이유는 권력 세습에 있다. 봉건사회의 왕조가 아니면서도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 세습 국가는 북한 외에 사회주의 국가 어디에도 없다 북한이 과연 핵과 미사일로 무장했다고 해서 21세기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도 개혁개방 노선으로 외교 경제 정책을 바꾸기 전에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대로는 정상적인 국가로서의 구실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유엔의 회원국이면서도 이미 외교 무대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더 어리석은 정책은 아직도 남한에 대해 적화통일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소득 1인당 141만원으로 그 몇 십배가 넘는 경제대국인 남한을 먹겠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한 남북한의 경제 규모는 갈수록 더 벌어지게 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21세기는 경제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국가의 국방 안보 어떤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이 사느냐 죽느냐는 핵이나 미사일 개발이 아니라 외교 정책에 달렸다. 북한은 미국의 트럼프 정부 때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쳤다. 이제 바이든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어놓느냐에 따라 북한의 미래가 달렸다. 지금의 반미정책과 남한에 대한 적화통일 정책으로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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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북한의 지금 외교정책으로는 인민을 먹여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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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팬데믹으로 잃은 교인 성경공부로 다시 찾자
- 한국교회는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그 어느 기관보다 큰 피해를 입었다. 더구나 방역당국의 대면예배 금지조치가 교회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너무 깊다. 백신 접종으로 금년 하반기가 지나면서 팬데믹 상황이 풀린다 하더라도 교회의 회복은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사실 방역당국이 걸핏하면 교회를 표적으로 옥죄는 동안 세속 언론들의 무분별한 보도는 마치 교회가 코로나19의 진원지 마냥 떠벌여 교회가 너무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질병관리청의 지난 1년간 코로나19 확진자 감염원 발표는 교회발 확진자가 11%로 나타났다. 이조차 모두 교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고 밖에서 전염된 것이다. 그러나 국민여론은 교회발 확진자가 44%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목회데이터연구소).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것은 방역당국이 만만한 교회를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급락했다는 조사도 있다. 그렇다고 팬데믹 이후 그들을 탓하고만 있을 수 없다. 교회의 부흥을 꿰해야 한다. 역사적 교회는 시대마다 두 가지 원리에 의해 이끌려왔다. 하나는 성령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이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사도들을 부흥현장으로 내몰았고, 중세교회는 성경이 부흥운동을 이끌었다. 20세기에 시작된 현대오순절 성령운동으로 급성장한 한국교회도 이젠 성경으로 그 내실을 다져야 한다. 특히 팬데믹으로 위축된 교회를 바로 세우는 데는 성경을 체계적으로 가치는 것이 가장 유익한 일이다. 먼저 소수 정예에게 성경을 가르치다 보면 어느 날 교회 안에 한국교회를 살리는 새로운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덴마크 중흥의 아버지로 불리는 농민운동가 그룬트비 목사가 19세기 후반 덴마크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온 국민이 좌절과 실의에 빠졌을 때,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다사 찾자"며 삼애운동(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땅 사랑)을 일으켜 나라를 구했듯이, 한국교회도 이제 팬데믹으로 잃은 교인들을 성경공부로 다시 찾는 운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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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팬데믹으로 잃은 교인 성경공부로 다시 찾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