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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그래도 분열을 그대로 방치할 것인가?
    코로나 팬데믹이 남긴 구호 중 하나는 역설적이게도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였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만고의 진리가 무색케 된 것이다. 그러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는 교회건, 사회건 똑같이 영원히 적용된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둘 다 같은 당에서, 같은 지지자들에 의해 대통령이 된 사람들이다. 그리고 나란히 감방에 가서 앉았다.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은 그 원인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소위 그 잘난 '친이계'와 '친박계' 간의 분쟁의 결과이다. 2017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이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리고 광화문에서 촛불이 난무했다 하더라도 국회에서 박 대통령 탄핵에 동조한 친이계의 반란이 없었다면, 헌법재판소의 탄핵재판이 있을 수 없고, 박 대통령이 임기를 끝까지 마쳤다면, 이명박도 감방에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비단 정치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교계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수백 개의 교단으로 갈라져 있는 한국교회는 오로지 연합과 일치만이 그 답이다. 그러나 교계는 교회협을 비롯 한기총, 한교연, 한교총으로 나누어져 대표성을 잃고 연합과 일치는 간데 없이 사라진 상태이다. 거기에다가 코로나로 인해 모임도 가질 수 없으니 교계연합은 그 존재조차도 희미해져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코로나는 이달부터 시작된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면 후반기에는 우리사회가 어느 정도 일상적 활동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계 역시 이에 적극적 대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보수교계 연합단체들의 통합이다. 그래야만 팬데믹으로 침체된 한국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은 늦어도 상반기 중에는 이루어져야 한다.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언필칭 1천만 기독교인을 자랑하는 한국교회 역시 연합과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를 향한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교계를 대표해야 할 연합단체들이 분열한 사이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세속 상업언론과 좌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이대로는 안된다는 자학적 목소리가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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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06-15
  • 중국 공산당의 ‘항미원조’
    6·25 전쟁은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이 공산주의자 김일성을 앞세워 대한민국을 침략한 침략 전쟁이다. 그런데 중국의 시진평은 지난달 6·25 전쟁 70주년을 맞아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역설하면서 또 다시 역사를 왜곡해 우리 국민을 분노케 한다. 6·25는 공산주의자들의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침략 전쟁임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중국은 항미원조 운운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항해 싸웠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미국에 대항해 싸웠나? 미국이 언제 중국 땅을 침략했나. 아니면 미국의 트루먼이 모택동을 모욕했나. 대관절 중국은 무엇 때문에 항미(抗美)했다는 것인가? 중국은 민족의 반역자 김일성의 침략 야욕을 뒤에서 부추기고 대한민국의 국민을 160만 명이나 죽음으로 내몬 전쟁을 사과키는커녕 항미원조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백보 양보하여 중국 공산당이 김일성의 남침 전쟁에 원조(援朝)를 할 이유가 있었다면 3.8선 이남은 넘어오지 말았어야지,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표로 김일성의 인민군과 함께 3.8선을 넘어 신생 대한민국을 쳐들어 온 자들이 중국 공산군이 아니고 누구인가. 그래놓고 항미원조라는 요상한 조어(造語)로 역사를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 고안당 이런 비툴어진 역사인식에 대해 항의하고 바른 인식을 갖도록 요구해야 한다. 솔직히 전쟁 후에 중국의 원조 아래 있던 북한은 어떻게 되었나? 대한민국이 70년 만에 3만 불 시대를 여는 동안, 북한은 3대 세습을 거치면서 한꺼번에 3백만 명이 굶어 죽는 일이 벌어졌을 뿐 아니라, 아직도 겨우 1인당 1천 불 시대에 사는 지구상 최빈국으로 전락해 인민은 굶주리고 있지 않는가. 그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온 탈북민이 3만5천여 명에 이른다. 전쟁 직후인 1964년 1인당 GNP가 북한은 194불인데 비해, 남한은 겨우 107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60년 만에 전혀 다른 경제적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것 하나만 봐도 중국이 북조선을 도왔다는 원조(援朝)란 말은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중국은 북한의 자원을 수탈만 했지 결코 원조(援朝)한 것이 아니다. 북한 인민들은 소위 백두혈통 김일성 일가에만 속고 있는 것이 아니고, 피로 맺은 혈맹이라는 중국에도 속고 있는 것이다. 6·25전쟁을 항미원조로 미화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 공산당을 규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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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2-14
  •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심지어 매 주일 드리는 예배까지도 ‘온라인예배’라는 생소한 형태로 바꾸어 놓았다. 그로인해 주일날 교회당에 가서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의무인 것으로 여기던 ‘주일성수’의 개념도 달라져 가고 있다. 이제 우리는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며 주일을 성수하겠다는 사람들이 오히려 비정상적 기독교인처럼 여겨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러다가 습관적으로 온라인예배가 고착화 되는 사례들이 생겨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다.한국교회도 최근 수년간 교파나 교단 상관없이 교회당에 모이는 교인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보여 왔는데, 이번 코로나19 이후 대면예배가 회복되더라도 그 이전보다 개교회 모임이 상당히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명목상의 교인인 노미날리티가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노미날리티는 자신은 기독교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상 교회의 모임에는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이다. 흔히 기독교인은 맞지만 교회에는 ‘안나간다’는 뜻의 ‘가나안’ 교인을 말한다.최근 발표된 독일교회의 경우는 지난 1990년부터 2010년까지 20년 동안에 약400만 명이 줄었다고 한다. 이는 전체 독일 개신교인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물론 이것은 코로나 사태와는 무관한 코로나 이전 통계이다. 유럽교회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우려는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교회의 미래가 달린 문제로 읽힌다. 막연히 시간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지혜를 모아야 한다.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한국기독언론협회」와 「한국기독언론법인」이 한국교회 예배회복의 긴급성을 논의하기 위해 “코로나19 사태와 한국교회의 대응”을 주제로 포럼을 갖는데 큰 의미가 있다. 많은 참여가 요청된다. 이런 움직임이 모여 예배가 회복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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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2-14
  • 전광훈 목사는 과연 이단인가
    한 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한때 보수적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연합단체였다. 이 한기총이 분열하여 이제는 유명무실 하지만 그래도 한기총은 우리사회에서 NCCK 다음으로 기독교 대표기관으로 널리 인식되고 있다. 지난 9월 장로교 총회에는 이 단체의 수장을 지낸 전광훈 목사에 대한 이단 시비가 있었다. 예장고신, 예장합신, 예장합동 교단 등에서 전광훈 목사의 이단성 조사가 진행되었다. 청 교도영성훈련원이란 교계 단체를 만들어 일부 목회자들을 움직여온 전광훈 목사는 소위 '광화문 태극기 부대'라는 반정부 투쟁 단체를 대표하기도 한다. 코로나 19 방역 지침에도 불구하고 태극기 부대가 대규모 집회를 계속하자 정부는 전광훈 목사를 공적 1호로 삼고 온갖 억압을 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계도 덩달아 전광훈 때문에 교회 대면 예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비난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그 러면 과연 전광훈 목사가 이단인가. 한 마디로 전광훈 목사는 '이단'은 아니다. 한국교회 주변에는 여러 형태의 이단 및 사이비적 집단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요약하면 다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교주우상주의 이단집단이다. 교주우상주의는 그 집단의 지도자를 특별한 신적 존재로 여기는 경우이다. 둘째는 교리적 이단집단이다. 교리적 이단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삼위일체)를 부정하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이다. 셋째는 신학적 이단집단이다. 신학적 이단은 신학연구라는 미명 하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부정하거나 보편적 기독교의 교리와 전통적 성경해석을 왜곡하는 경우이다. 그 러면 전광훈은 이 셋 중에 어디에 해당하는가. 그는 교주도 아니고, 교리적 이단도 아니며, 그리스도의 대속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이단은 아니다. 그러나 목사로서의 그의 행태에는 다분히 '사이비적' 요소가 있다. 그의 발언과 행동에는 어떤 형태의 자신의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 교회를 이용하려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기독당 창당, 이승만 영화, 선교은행 등등, 심지어 한기총 대표회장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 공적 차원에서 추진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두 사랑제일교회와 자신이 중심에 있었을 뿐이다. 즉 전광훈 목사는 보편적 한국교회라는 공교회적 개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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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2-14
  •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을 영어에서 '크리스챤'(Christian)이라고 한다. 크리스챤은 그리스도에 'ian'이라는 어미가 붙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크리스챤의 삶은 어디서나 그리스도가 가르친 복음으로 죄로 인해 영적으로 해방되고, 억눌린 사람들의 인권이 존중되며,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즉 크리스챤은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해방을 전하는 것이 그 사명이다. 그것이 종교적이든, 문화적이든 인간을 억누르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하는 것이다.예수님은 안식일에 얽매여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면서 안식일에도 선한 일을 행하고 사단의 매임에서 풀어 해방시킬 것을 역설하고 있다.예 수님의 사역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각색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포로된 자와 눌린 자를 자유케 하며,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또 제자들에게도 온 동네를 다니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였다(마 10:8). 오늘날 목사의 사역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도 예수님의 이 가르침의 정신을 전파하는데 있는 것이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있는 크리스챤은 이 가르침을 따라 세상에서 모든 억누르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이 자유를 얻도록 도우는 사명을 받았다. 곧 세상을 바꾸는 사명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복음증거이다. 복음이 증거되면 세상은 반드시 바뀌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세상을 바꾸는 것은 말씀이다. 그 말씀을 가진 크리스챤은 세상에 복을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디서나 사람들이 복을 받고 살도록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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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12-14
  • [사설] ‘벙어리 개’가 된 교회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 19:4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예견하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따르며 기뻐하고 큰 소리로 찬양하며 환호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단속하지 않는 제자들을 책망하라는 요구를 받고 바리새인들에게 한 말이다. 이 말은 요즈음 우리 사회현실과 한국교회와의 관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도 바라고 고대하던 메시야의 현현을 보고도 당시 유대사회의 지도층이요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찬양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성들의 환호를 단속하라고 요구했다. 그와같이 작금 우리사회 지도층과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정부의 실정을 비판키는 커녕, 오히려 그래도 '벙어리 개'는 되지 않겠다며 나서는 일부 인사들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 한국기독교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전국에 6만 개의 개교회와 16만여 명의 안수받은 목사, 수십만 명에 이르는 중직자들이 있다. 여기에 전국 70여 개의 신학대학에 언필칭 신학자만 1천여 명에 이른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파괴되고 헌법상의 종교자유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우려에 대해, 소위 스스로 정통성을 가졌다는 그 잘난 지도자들은 어느 한 사람 나서지 않는다. 그러자 정통성은 고사하고 어디서 무슨 신학을 배웠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목사들이 한국기독교를 대표하는 양 나서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돌들이 소리지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나서야 한다. 교단의 대표성 가진 인물들이 나서고, 대교단들이 나서고, 신학자들이 나서야 한다. 그래서 한국교회를 향한 정부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당당히 국민 앞에 드러내어야 한다. 물론 한국교회에도 진보와 보수 간에 정치적 견해가 갈라져 있음을 안다. 이는 분단사회가 짊어지고 가야할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도 대한민국 건국 후 70년동안 한국기독교는 사회적 혼란기마다 중심을 잡는 일에 앞장서 왔다. 국민들 또한 대체로 그러한 한국교회의 활동을 신롸해 왔다. 그런데 작금에는 왜 이 위중한 시기에 교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코로나19 방역을 앞세워 교회의 예배조차 금지시키는 이 무도한 당국을 향해 어떤 소리도 못하는 '벙어리 개'가 되어가고 있는 것 아닌가. 교회의 기본사명에 대한 행정당국의 억압에 대해 항거하지 못하는 교회는 존재 가치가 없다. 그런 교회는 문 닫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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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9-28
  • [사설] 지금 한국교회는 정부 통제체제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2019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서울 광화문에 모여들었다. 조국 사태를 감싸는 문재인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이후 매주 토요일 대정부 규탄집회는 계속되었다. 일명 '태극기부대'가 그들이다. 그 중심에는 우파 한국교회가 있었다. 소위 전광훈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갈래의 기독교 우파조직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시위를 벌였다. 정부 여당은 매우 놀랐다. 그리고 그 해 말 중국 우한에서 신종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연초 언론과 방역 전문가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중국과의 왕래를 통제하지 않아 코로나19가 순식간에 퍼졌다. 그런데 마침 대구에서 신천지 교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 정부는 신천지를 모든 신코로나19 진원지로 몰았다. 국민들은 신천지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한국교회도 역시 이단이 문제라며, 이 기회에 신천지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동조했다. 그런데 2020년 8월 15일, 서울 광화문에 다시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는 광복절 집회가 열렸다. 오비이락(烏飛梨落), 그 집회에 참가한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자, 정부가 이번에는 방역지침을 잘 따르고 있는 한국기독교 전체를 향해 아예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내리고 코로나19 진원지로 교회를 지목했다. 신천지 때 해보니 한국교회도 통제가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자 국민들은 밖에서 교회를 향해 손가락질 하고, 안에서는 교인들끼리 서로를 탓하며 갈라졌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대면 예배파'와 '비대면 예배파'로 나뉘어 서로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기독교는 정부가 코로나19를 빙자로 교회예배에 간여하려 할 때부터 강하게 저항했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역을 핑계로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도 제한할 수 있다"고 했을 때, 바로 헌법의 기본권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위협임을 각인시켰어야 옳다. 지금 한국교회는 국가 명령 통제체제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최소한 예배금지 행정명령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을 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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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9-16
  • [사설] 정부의 '예배금지' 행정명령은 옳지 않다
    정부 여당은 전국 6만3천여 개에 이르는 기독교회 가운데 극히 일부 교회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하여 교회가 마치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나 되는 양 행정명령을 발동해 교회의 기본사명인 주일예배를 금지시켰다. 예배가 없는 교회는 사실상 그 존재가치가 없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예배금지를 발동한 정부의 행정명령은 코로나19 정국을 빙자한 기독교에 대한 억압이 분명하다.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실패를 행정편의주의로 교회에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에 교회 숫자보다 더 많은 매장을 가진 커피숍이나 식당 등에서 수십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고 해서 같은 업종의 전국 매장들을 모두 문닫게 한 일은 없다. 다만 확진자가 발생한 매장이나 식당을 일정기간 문 닫았을 뿐이다. 그런데 왜 질본의 방역지침을 철저히 따라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는 전국의 수 많은 교회들까지 모두 일괄적으로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내리고 행정당국이 교회 예배를 감시하는가. 이를 두고 교회 내부에서도 교회에 대한 탄압이다, 아니다라는 주장이 엇갈려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백보 양보하여 교회에 대한 정권의 계획적 탄압은 아니라 할지라도 '차별'은 분명한 것 아닌가. 또한 이 차별은 종교간에도 있는 듯하다. 지자체 공무원들까지 나서서 유독 기독교에 대해 감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사회는 다종교사회이다. 다종교사회에서 정부가 어느 한쪽을 두둔하거나 또는 차별화 하는 모습이 드러나면 곧바로 종교간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 갈등은 사회를 분열시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정부가 교회에 대해 예배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헌법상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하더라도 일제강점기와 같이 어떤 이유로 교회 해산명령도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일제는 예수 재림사상을 고조시킨다는 이유로 성결교와 재림파에 대해 교단해산명령을 내린 바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뿐 아니라 한국의 모든 종교계는 교회에 대한 일괄적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내 일이 아니라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하지 말고 정부에 대해 시정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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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9-12
  • 한국기독교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
    지금 우리사회에 이슈가 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합법화 하는 등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다고 비판받고 있다. 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놓고 한국교회에도 두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나는 교회협(NCCK) 인권센터 중심의 지지 목소리와 다른 하나는 절대다수 한국기독교의 반대 목소리가 그것이다. 그런데 이에대해 한국교회와 우리사회에 오해가 있다. 이 두 목소리로 인해 마치 NCC 대 비NCC로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지금 NCCK라고 부르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는 예장통합(9,200 교회), 기감(6,700 교회), 기장(1,700 교회), 기하성(800 교회), 구세군(560 교회), 성공회(150 교회), 루터교(52교회), 한국정교회(10 교회)가 회원 교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6만2천여 개에 이르는 한국기독교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그런데 NCCK 소속 1만9천여 교회 가운데 예장통합과 기감 그리고 기하성은 공식적으로 포괄적 참여금지법을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기장과 구세군, 성공회, 루터교, 정교회인데 이를 모두 합해도 2,500여 교회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 가운데도 반대하는 교회들이 있다. 예장통합은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차별금지법안은 동성애를 조장하는 독소조항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요소가 있어서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철회를 촉구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대관절 한국기독교 6만여 교회 가운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교회는 몇이나 된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NCC는 21대 국회의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일부 세력의 반대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하면서 “한국기독교의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그들은 한국그리스도교를 대표하지도 대변하지도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NCC(인권센터)의 이 성명은 분명히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한국교회의 목소리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대관절 한국그리스도교는 누가 대표하고 누가 대변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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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8-31
  • 코로나19와 한국교회 자학증세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잡히는 듯 하다가 다시 갑자기 재확산 되고 있다. 그 중심에 일부 한국교회가 있다. 용인제일교회나 서울 사랑제일교회 등에서 확진자가 다수 나타난 것이다. 그러자 정부와 여당은 마치 한국교회가 코로나19 확산 진원지나 되는 양 언론을 통해 오도했다. 거기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에서 8·15 집회를 강행하자, 정부 여당은 보수 우파와 한국기독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키고 있다고 공격했다. 광화문 집회 다음 날부터 나타난 확진자를 싸잡아 광화문 집회에 그 원인이 있다고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한국교회는 정부 방침에 따라 아예 예배 모임을 없애고 온라인예배로 대체했다. 그리고 예배 시간마다 이제 국민들이 우리교회를 코로나 확산 주범으로 여긴다며, 코로나 확산의 중심에 있는 교회들은 비난하고 이대로는 교회들은 대한 신뢰도, 전도도 끝났다고 자착하는 기도가 메아리쳤다. 과연 지난 주에 번진 2차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이 한국교회나 8·15 광화문 집회에 있는가. 코로나19의 잠복기는 평균 5.2일이라고한다. 전염이 된 이후최소5일이 지나야 증세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스러운 사람에 대해 14일간 격리하는 원칙이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6일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확진자들을 모두 15일 광화문 집회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는 질병본부의 과학적 논리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정부 여당의 이같은 발언 배경에는 다른 정치적 목적이 개재되어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사랑제일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타난 것은 그 교회가 방역 지침에 따랐다 하더라도 그 교회의 실수임에 틀림없다. 어딘가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국민과 교계에 사과해야 옳다. 그렇다고 하여 한국교회 전체가 마치 죄인인양 자학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교계단체나 교회의 목사들의 언행을 조심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디까지나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할 방역의 제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는 것이고, 방역지침을 따르지 아니한 개인에게 2차적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주객이 전도되어 마치 그 책임이 교회와 우파에 있는 양 오도되고 있다.
    • 연지골
    • 사설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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