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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을 지난 성도의 삶의 모습
- 신종 코로나19로 우리사회의 모든 활동이 비정상화되었다. 교회도 3월 중순부터 예배당에 모이던 예배가 중단되고, 소위 온라인예배라는 기현상이 자리잡았다. 교회의 예배를 행정당국이 행정집행이란 이름으로 중지시키고 이 명령을 어길 경우 과태료와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로 인해 전세계가 같은 날 지켜온 부활주일 예배마저 한 자리에 모일 수가 없었다. 심지어 어떤 교회들은 4월 12일 부활주일을 ‘사회적 거리두기’에 맞춰 두 주간 뒤인 26일 주일에 지키는 교회들도 있었다.이제 코로나19 감염 확진자가 줄어들고 있다. 교회도 일상적 정상화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지나면서 성도가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성도의 교제를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한다. 사실 온라인예배란 것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환경에 처한 경우를 제외하고 공교회의 예배형태로는 바람직 하지 않은 것이다. 역시 예배는 한 마음과 한 뜻을 가진 성도가 한 자리에 모여 공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기도와 찬송을 드리며, 또 말씀을 듣고 헌신하며, 성도의 교제를 갖는 데서 기쁨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코로나19 방역사태 속에서 어찌됐던 부활주일을 지나고 오순절을 향해 나아간다. 오순절을 향해 나아가는 성도들은 성경의 가르침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한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이 오순절의 체험 후 초기 교회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음을 우리는 안다. 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6,47). 이것이 성령을 체험하고 부활을 확신하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의 삶의 모습이기도 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를 보고 있는 일가친척이나 친구들이 우리에게 그 기쁨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묻게 되고, 또 우리가 믿는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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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주일을 지난 성도의 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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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당 이번에 왜 또 실패했나
- 정당정치운동의 가능성을 실험해온 기독교 정당이 이번에 또 실패했다. 기독교 정당은 지난 17대 총선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째 도전이었다. 기 독자유통일당(기독당)은 이번에 513,159표(득표율 1.83%)를 얻는데 그쳐 오히려 지난 20대의 61만 여표보다 약10만 여표가 줄어든 수치이다. 그러나 기독당의 이 수치는 비례대표에서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군소정당 가운데는 두 번째 많은 득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례대표 득표율로는 미래통합당이 33.84%(940만)로 19석, 더불어시민당이 33.35%(930만)로 17석, 정의당이 9.67%(260만)로 5석, 국민의당이 6.79%(180만)로 3석, 열린민주당이 5.42%(150만)로 3석이었고, 민생당 2.71%(75만)에 이어 일곱 번째가 기독당이다. 기독당은 한국교회의 대표성을 갖는 조직은 아니지만, 그 이름만으로도 상당한 기독교 대표 이미지를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번에 기독당에 표가 모이지 않은 것은 기독교인들의 표를 결집시킬 수 있는 대표적 인물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태극기부대를 의식한 조직으로 선거를 치룬 것이다. 경기도지사를 지낸 김문수 씨와 새천년민주당 출신의 김경재 전 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이 참여하고, 또 이애란 박사, 김승규 전 국정원장, 김석훈 전 한나라당 당협위원장, 고영일 변호사 등이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들은 교계에서는 특별한 활동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또 한 기독당의 정책이 기독교적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독당은 공산.사회주의로의 내각제 개헌음모 저지, 동성애, 이슬람, 차별금지법 저지, 소득주도성장과 주52시간제 폐기, 한미동맹강화 등을 내세웠다. 이것은 그냥 하나의 보수당 이미지만 담고 있을 뿐, 기독당만이 가질 수 있는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기독당이 또 다시 4년 후를 준비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첫째는 교계를 대표할 만한 참신한 인물이 참여해야 하고, 둘째는 기독교적 가치를 온전히 담은 정강정책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준비없이 선거철에만 기독교인 표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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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당 이번에 왜 또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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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종말론
- 흔히 무엇이 종교인가를 논할 때, 전통적으로는 어떤 철학적 사상이 인간의 죽음 이후 세상을 말하고 있는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즉 내세관(來世觀)을 가졌는가 아닌가에 따라 종교인가 아닌가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사회는 종교에 대한 이런 구분도 모호한 상항에 이르렀지만, 어쨋든 모든 종교는 내세관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각 민족과 부족의 종교가 있고, 또 민족이나 부족을 넘어서서 세계 모든 사람이 보편적으로 믿는 종교가 있다. 이들 세계적 종교 가운데 기독교의 내세관은 죽은 자의 부활을 통한 삶을 제시한다. 인류 종교사에서 부할사상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부활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사건이 예수의 부활이다. 그는 하나님의 품에 있던 독생자였기 때문에 죽음이 어찌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 성경은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할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5, 20)라고 선언하고 있다.기독교의 내세관은 인간이 죽음으로 모든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에 피안(彼岸)의 세계에서 부활도 있고 심판도 있다는 것이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 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2-14). 그런데 부활과 심판은 곧 지금 이 차안(此岸)의 세계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종말론이다. 따라서 부활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활을 교리적 관념이나 정신적 의미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그 삶의 목표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야 한다”(빌 3: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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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과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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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당’ 이번에도 총선 도전
- 4월 15일 치르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기독교 정당이 또 그 이름을 내걸었다. 기독교 정당의 이번 총선 참여는 17대, 18대, 19대, 20대에 이은 다섯 번째 도전이다. 과연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기독자유통일당(이하 기독당)은 이번에 지역구에 10명, 비례대표에 15명의 후보를 공천했다. 이 숫자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모두 역대 최고의 총선 참여 숫자이다.지역구 후보에는 서울 종로구에 13번 양세화(여), 대구 달서구병에 9번 김부기, 경기 안양시 동안구을에 8번 이주애(여), 오산시 7번 서보구, 파주시갑 8번 김정섭, 광주 동구남구갑 8번 이안숙(여), 광주 북구을 8번 강휘중, 전북 전주시갑 8번 허성진, 익산시을 8번 이은재, 전남 순천시광양시곡성군구례군갑 9번 이정봉 후보가 그들이다.또 비례대표에는 1번 이애란, 2번 김승규, 3번 주옥순, 4번 김석훈, 5번 송혜정, 6번 고영일, 7번 현숙경, 8번 권오형, 9번 오현민, 10번 윤재성, 11번 박연수, 12번 지영준, 13번 박은희, 14번 임성훈, 15번 이향 후보이다. 비례대표 홀수는 모두 여성이다.기독자유통일당의 전신인 기독자유당은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62만6000여 표를 얻었다. 그러나 원내 진출 하한선인 3%에는 미치지 못했다. 20대에는 기독자유당과 함께 기독민주당이 나와 표를 분산시킨 탓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기독당이 기독자유통일당만 등록하여 그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을 보이고 있어 기대가 높다.선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물과 정책이다. 첫째는 과연 기독당의 정책이 기독교의 가치를 온전히 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번에도 역시 기독교 정당의 주요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동성애 법제화 반대’ ‘차별금지법 반대’ ‘탈북민 인권보호’ 정도이다. 이것은 현재 기독교계의 큰 화두이기는 하나, 이런 것이 기독교의 정신과 가치를 담은 정책이라고 하기에는 궁색하다. 둘째는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기독교 대표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있다. 기독당이 한국교회로부터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소속 교회 및 교회직분 등 이들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홍보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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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당’ 이번에도 총선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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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들의 ‘예배금지 행정명령’
- 우한 폐렴 코로나19 확산으로 전국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소속 좌파 시장들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예배금지 행정명령을 발동해 한국교회가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 서울시장 박원순과 경기도지사 이재명은 일부 교회에서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하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교회가 감염 예방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배를 제한하는 행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위반한 교회는 확진자가 발생하면 해당 교회에 벌금을 부과하고, 방역 치료 비용에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본격적인 예배금지 명령이다. 그리고 이들은 공무원을 각 교회에 보내 감시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종교탄압이다.기독교는 예배가 기본 의무이다. 교회는 예배를 위해서 존재한다. 정부의 예배금지 행정명령은 두 말할 필요없이 대한민국 헌법 종교의 자유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고, 교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그런데 여기에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들 지자체장들을 두둔하고 있다. 이들은 유독 기독교만을 문제 삼아 마치 교회가 코로나19의 확산 통로나 되는 양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행정당국의 이러한 조치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 총독부가 재림 사상을 강조하는 교단들에 대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해산하고, 해방 후 북한 공산집단이 공산혁명이란 이름으로 교회 예배를 금지한 이후, 자유대한민국에서는 처음있는 일이다.기독교에서 예배는 신앙인의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다. 예배 없는 교회는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과 성도의 교제이다. 그러므로 온라인예배나 가정예배는 온전한 예배가 아니다. 정부가 나서서 예배의 내용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교회예배가 코로나19의 방역에 위험 요소가 있다면 어디까지나 교회와의 합의를 이끌 생각은 않고, 한줌도 안되는 공권력으로 일방적으로 ‘예배금지 행정명령’운운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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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장들의 ‘예배금지 행정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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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자유 침해 없도록 유의해야
-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종교계에 우려스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수퍼감염지로 알려진 신천지는 전국교회가 긴급 행정명령으로 폐쇄되고,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주요 종단들은 자발적으로 예배와 미사 그리고 법회 등 기본 종교행사를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사례들이 속출했다. 이는 근세 한국 종교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사스나 메리스 때는 없었던 일이다. 그만큼 이번 코로나19가 엄중한 사태임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계도 정부의 방역대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곧 교인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엄중한 사태 앞에서라도 종교의 기본사명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교회는 예배를 위해 존재하는 공동체이다. 따라서 예배를 폐지하는 교회는 존립가치가 없게 된다. 교인들이 스스로 알아서 예배에 출석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주일성수를 강조해온 한국교회가 스스로 예배를 폐지한다는 것은 옳은 판단이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일제의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다. 교회는 손도독제나 마스크, 발열검사기 등을 준비하여 교인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예배에 참여토록 하면 된다. 그런데 단순히 방역당국의 요청이라 하여 교회에서의 주일예배를 폐지하는 것은 유감이다. 온라인예배나 영상예배가 가능하다면 전국에 산재한 교회당은 필요 없게 될 것이다. 각 가정이나 직장에서 온라인예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방정부들이 행정명령으로 종교단체에 대해 강제 폐쇄나 강제 집행은 종교자유에 침해를 가할 수 있다. 법원의 판단 없이 집행되는 행정부의 일방적 행정명령은 집행자의 판단에 따라 남용될 소지가 다분히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전례를 남겨 다른 사건에도 적용하려 할 수도 있어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정부가 행정명령을 종교단체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우한 바이러스는 국민의 심리상 전쟁보다 무서운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엄중한 사태를 빙자로 정부가 종교자유를 침해하는 사례를 남겨서는 안된다. 이 점을 유의할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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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자유 침해 없도록 유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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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교회들의 온라인예배의 유감
- 중 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종교계에 우려스런 기록을 남기고 있다. 수퍼감염지로 알려진 신천지는 전국교회가 긴급 행정명령으로 폐쇄되고, 기독교, 천주교, 불교 등 주요 종단들은 자발적으로 예배와 미사 그리고 법회 등 기본 종교행사를 한시적으로 폐지하는 교회들이 속출했다. 이는 근세 한국 종교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다. 한국 기독교는 일제의 태평양전쟁과 6.25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다. 지난 3월 1일과 8일 등 서울을 비롯한 주요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소위 온라인예배로 대체했다. 온라인예배는 셜교자 및 예배위원들만 예배당에 모여 예배순서를 진행하고, 그것을 교인들의 켬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중계하는 형식이다. 교인들이 굳이 예배당에 출석하지 않아도 예배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가나안교인'이라고 부르는 노미날리티(교회 예배는 참석히지 않아도 스스로 기독교임을 내세우는 명목상의 기독교인) 현상을 부추길 가능성이 많다. 이미 한국교회는 노미날리티가 약 20-30%에 육박하고 있다.우한 신종 바이러스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엄중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교계도 당연히 코로나19 대처에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 그것이 곧 교인들을 보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엄중한 사태를 맞았다 하더라도 교회의 기본적 사명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교계의 온라인예배는 교회의 존재 목적인 주일예배에 대한 소홀이라는 의미에서 문제가 많다. 손소독과 마스크 착용 등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본 방역체계를 충분히 준비하고 주일예배는 계속 진행함이 옳다. 이 는 온라인예배가 잘못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온라인예배는 예배의 본질상 온전한 예배가 아니라는 말이다. 예배는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헌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온라인예배는 예배에서 중요한 요소인 회중의 '성도의 교제'가 빠진 것이다. 만약에 온라인예배가 인정된다면 전국에 모든 예배당이 없어도 방송국 하나면 있으면 될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아무리 엄중하다고 해도 주일예배를 온라인예배로 대체하는 것은 예배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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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만이 사회주의화를 막을 수 있다
- 지금 세계는 20세기의 인류 구원의 메시지로 등장했던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또 사회주의 경제로는 국민을 제대로 먹여살리기가 어렵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그래서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나라들도 한때 수정자본주의나 본격적 자본주의 경제질서로 편입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철지난 공산주의 체제와 사회주의를 고집하고 있는 나라는 후진국으로 전락해 국민을 거지로 만들고 있다. 그 대표적 국가가 북한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가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를 미국의 억압과 방해 때문이라고 한다. 그건 김일성 일가의 독재체제를 유지하려는 핑계일 뿐, 북한의 경제적 실패는 사실상 사회주의 체제와 북한 지도자들의 외교적 무능에서 온 결과이다. 그로인해 북한의 주민들은 굶어죽거나, 중국에 팔려가 노예생활을 하거나, 한국으로 도망오고 있다. 북한에는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사회에는 그런 북한체제를 동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이론적 배경을 가진 체제라 하더라도 국민을 먹여살릴 수 없는 제도라면 두말할 필요없이 폐기되어야 한다. 중국과 베트남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그들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개혁개방으로 제 빨리 수정자본주의로 체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오늘날 문재인의 좌파 정부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의 헌법가치를 무시하고 사회주의 정책에 맘을 빼앗겨 그것을 기웃거린다. 이미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정이라는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이 불과 2년여 만에 서민의 삶을 망가뜨렷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도 4.15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면 아예 사회주의 정책을 한발짝 더 내딛겼다고 한다. 모두가 그건 아니라는데 여당과 정부는 왜 그 방향으로 계속 끌고 가려하는지 알 수 없다. 자본주의의 부의 집중이 문제라면 세금정책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유럽사회의 성공이 이를 잘 보여준다.특히 사회주의는 종교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교회를 비롯한 종교계는 정부의 사회주의화를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번 4.15 총선이 대단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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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만이 사회주의화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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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의 윤리적 패배
- 미국의 신학자 리차드 니이버는 1054년 중세 가톨릭교회의 분열은“기독교의 윤리적 패배”라고 정의했다. 중세 가톨릭교회의 분열이란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 논쟁에서 성령이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성령발출설(필리오케) 논쟁으로 ‘서방교회’(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그리스정교회)로 분열한 것을 말한다. 세계 기독교는 그때까지 ‘하나의 교회’를 지켜왔다. 그러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온다는 서방교회의 주장과 오로지 “성부로부터” 온다는 동방교회 주장을 조정하지 못한 채 1천년동안 지켜온 하나의 교회를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요”라고 노래하던 갈라진 교회는 형제는 커녕, 경쟁 상대를 넘어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성지회복을 명목으로 서방교회가 일으킨 제4차 십자군은 성지로 간 것이 아니라, 1204년 동방교회의 본산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해 전복시키고 무자비한 약탈과 난동을 일삼았다. 그리고 거기에 라틴제국을 세우고 정교회를 파괴하는 등 기독교 국가 비쟌틴제국을 60여년간 통치했다. 그리하여 국력이 나약해진 비쟌틴제국은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에 멸망당하고 만다. 지금의 터키가 그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분열한 결과이다. 어느 시대나 교회의 분열은 기독교 신앙의 윤리적 패배이다. 신앙과 신학적 견해 차이로 교파가 만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같은 신앙고백과 같은 신학을 공유하는 교파 안에서 교단의 분열은 두말할 필요없이 그 구성원 모두의 패배이다. 한국 기독교는 개혁파 중심의 교회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개혁신학을 공유하는 장로교가 약 78%에 이른다. 그런데 처음에 하나로 시작한 그 장로교가 수백 개의 교단으로 갈라졌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윤리적 패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장로교 지도자들이 ‘총회장’입네, ‘노회장’입네 하며 거들먹거리지는 사이, 한국 교회는 회복하기 어려운 불신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는 좌파 정권이 기독교를 위협해오고 있다. 어쩌면 저들이 사회주의화로 끌고 갈지도 모른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이제 우리 앞에 교회를 위협하는 적이 나타난 이상 뭉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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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의 윤리적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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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목자들이여, 모두 예언자가 되라
- 기독교의 목사는 구약 성경의 제사장 전통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예언자 전통에서 나온다. 제사장은 그 가문에서 대대로 세습되는 성직이고, 예언자는 하나님의 소명에 따른 사명자이다. 그러므로 예언자의 아들이 반드시 예언자 되는 것은 아니다. 예언자는 엘리사처럼 밭을 갈다가 부름을 받기도 하고, 아모스처럼 뽕밭에서 일하다가 부름을 받기도 하며, 스가랴처럼 제사를 드리다가 부름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예언이 끝나면 그들은 다시 본직으로 돌아간다. 그것이 예언자이다. 기독교의 목회자는 그 예언자 전통에 또 주님의 사도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 사도들은 어떻게 부름을 받았는가. 그들은 하나같이 직업 현장에서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베드로를 비롯한 갈릴리 어부들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다가, 세리 레이와 마태는 세관에서 일하다가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사도들의 자녀들이 그 자리를 세습하지는 않았다. 현대교회 목회자도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부름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예언자 전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예언자는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권이나 제사장의 종교권이 그 본디 사명을 일탈해 타락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경고를 그들에게 발한다. 그것이 예언자의 사명이다. 왕이나 제사장들이 예언자들의 그 경고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나라와 백성이 평안하고, 교만하여 예언자의 경고를 무시하면 그 사회에 불행이 닥친다. 문제는 예언자로 부름받은 자가 왕권이나 제사장권이 두려워 입을 닫으면 결국 그 화가 예언자 자신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는 예언자가 요구된다. 한국교회에는 15여 만명에 이르는 목회자가 있다. 교계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가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쓴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왜 지금 사회를 향한 예언을 하지 않나? 이런 예언자를 성경은 ‘벙어리 개’(사56:10)라고 부른다. 15만의 목회자들이 다같은 목소리를 내면 투표로 선출되는 정부가 무슨 힘으로 교회의 신앙을 함부로 억압할 수 있겠나. 어쩌면 우리사회는 지금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예언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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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목자들이여, 모두 예언자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