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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섹트들
    종교는 보편성을 잃을 때 섹트(sect)에 빠지게 된다. 같은 성경을 읽고, 같은 교리를 말하면서도 섹트는 전혀 다른 종교 행위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즉 정통성을 벗어난 '이단'(異端)이 되는 것이다. 섹트란 말은 조직체 내부에서 자신들의 주장만을 진리로 내세우며 남을 배척하는 독선적인 분파를 이르는 말이다. 지금 한국기독교에도 이런 섹트는 여럿이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신천지'나, 요즘 일간지 광고란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며 자신들의 목사를 '또 다른 보혜사 진리의 성령'이라며 신성모독을 일삼는 '은혜로교회'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기독교계 섹트 가운데는 이처럼 노골적으로 이단성을 드러내지 않는 집단들도 있다. 그들은 성경 66권 가운데 특정한 계시만을 강조하며 그 계시가 자신들의 조직을 통해 완성된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이들은 절대 다수의 보편적 교회를 오히려 성경을 잘못 알고 있다고 비난한다. 사실은 정통을 강조하는 극보수나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세대주의도 섹트에 가깝다. 이런 집단은 딱히 이단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단성이 있다'고는 할 수 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독생자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나, 부활 등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주 초기부터 이단설(異端說)이 많았다. 그래서 이단에 대한 정의(定義)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325년부터 787년까지 오랜 기간 벌어진 초대교회의 교리논쟁도 이들 이단설에 대한 정통주의의 확립을 위해서 도입된 것이었다. 거기에서 확립된 신앙을 '보편적' 혹은 '보편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이 보편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개인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 지도자 가운데 예언자적인 면모를 지닌 열광주의자가 있어 자신을 기독교 복음의 정통주의자로 자처한다. 한국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수없이 지나갔다. 예수 믿고 영육간 평안과 구원을 받겠다고 찾아간 집단이 섹트일 때, 구원은 고사하고 재산괴 인생조차 몽땅 그 집단에 바치고 만다. 이것이 비정통주의의 함정이다. 그러므로 보편적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의 보편주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이해하고 교인과 국민들이 섹트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해야 할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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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1-10-17
  • [기자수첩] 한국교회가 정부에 굴복했다고요?
    여론이 등돌린 교회, 여론을 등에 업은 방역 코로나 초 ‘선제적 대처’ 못한 교회, 스스로 위기 자초 위드 코로나 대비한 전략 수립 시급··· 신뢰회복 필수 정부의 사회적거리두기 4단계 조치가 장기화되며, 국민들의 불편이 점차 가중되는 가운데,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소상공인의 호소는 어느 순간 분노가 된지 오래고, 직장을 잃고 주저앉은 가장의 손에 쥐어진 정부의 재난지원금은 오히려 삶의 허탈감만 더할 뿐이다. 교회 역시 예외는 아니다. 한국교회 130년 역사상 처음으로 예배가 셧다운 되는 아픔을 겪었고, 그 틈에 등장한 비대면 예배는 여전히 그 정당성을 두고, 논란을 거듭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유독 교회만 대놓고 차별하는 듯한 정부의 불공정한 방역기준은 정부에 대한 교회의 반감을 폭발시키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정부와 교회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교회 내부의 갈등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하며, 여전히 내부 총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총을 손에 쥔 자는 스스로 시대의 심판자를 자처하며, 철저한 자기기준으로 배교자를 규정하고, 군중으로 하여금 그에게 돌을 던지게 선동했다. 이 뿐 아니라 거듭되는 위기를 틈타 ‘애국’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정치의 지저분한 부산물을 교회 안에 들여 놓았고, 이를 매개로 폭발시킨 정치적 이념 충돌은 교회 본연의 정체성을 지워 버렸다. 오직 아군과 적군만 존재하는 철저한 이분법과 전체주의적 의식이 이성을 지배하며, 애초 교회가 추구했던 합리적인 사고는 총질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선제적 대처’ 자율방역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합리적 사고를 잃어버린 교회가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접근을 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추락한 위상, 국민들의 잃어버린 신뢰, 목회자들의 도덕성 타락, 교계 분열 등코로나 이전부터 최악 그 자체였던 현실은 간과한 채 여전히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의 리더라는 과거의 영광만을 답습했다. 특히 교계 일부 인사들의 입버릇 같은 “한국교회가 정부에 굴복했다”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묵과한 왜곡적 사고의 대표적 예라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발발한 지난해 초로 돌아가 보자.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갈 기미를 보이던 당시, 한국교회는 그 어떤 대처도 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가 이전의 메르스나 신종플루, 사스와 확실히 다른 전파 속도를 보이고, 신천지에서 대규모 확산이 사회 전체에 물의를 일으켰지만, 교계 연합단체와 주요 교단들은 그저 남의 일인 양 관망하기 바빴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시 소강석 목사를 포함해 몇몇 지도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며, 교회의 선제적 대처를 주장했었다. 교회가 스스로 방역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적용함으로 국가와 국민이 인정하는 안전한 예배환경을 구축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코로나 사태 초기, 이러한 ‘선제적 대처’에 대한 조언이 무시됐다는 점은 현 상황에 너무도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만약 당시 한국교회 스스로 방역, 의료, 차단 등 다방면에 걸쳐 자체적인 방역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지금과 같은 정부의 예배 간섭, 통제는 결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코로나 사태에서 정부의 방역 기준에 교회가 포함된 것은 애초 ‘자율 방역’의 기회를 놓친 탓이 크다고 볼 수 있다. 정부에 분노하는 교회, 그런 교회에 분노하는 국민 신뢰 회복, 예배 회복 동시 이룰 고도의 전략 필요 반대로 이러한 배경은 정부와 교회의 협상 테이블을 ‘기울어진 운동장’에 고정시켜 놓았다. 교회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완전히 등을 돌려 버린 상황은, 사실 교회로 하여금 쉽사리 어떤 것도 선택치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교회에 대한 부당한 탄압조차 국민들의 지지를 받던 상황에, 그나마 일정 수라도 대면 예배를 유지했던 것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에서 이뤄낸 최선의 결과였다. 물론 비대면 예배를 결코 제대로 된 예배라 말할 수 없다. 비대면 예배는 어디까지나 임시적 조치일 뿐이다. 허나 코로나 상황에서 교회가 임시적 방편까지 써가며, 비대면 예배를 해야 했던 이유 역시 명확했다. 만약 교회가 정부의 제재만을 생각했다면, 정부의 방역에 정면으로 맞섰겠지만, 교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을 간과할 수도 없었다. 앞서 말했듯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땅바닥에 추락했고, 그런 분위기에 편승한 언론들은 교회를 겨냥한 비판 기사를 쏟아내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사실 코로나 사태에 있어 예배 회복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회복이었고, 이미지 재고였다. 코로나 사태에서 정부의 교회 탄압은 지극히 노골적이었고, 불공정했다. 이에 대한 교회의 분노 역시 당연했고, 그것을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분노는 자칫 이런 상황에 이기적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무너진 국민들의 신뢰가 교회를 향한 분노로 뒤바뀔 수도 있다. ‘악법도 법이다’는 매우 모순적인 명언이 한국교회에 필요했던 것은 사회와 국민 전체를 위해 부당한 탄압조차 스스로 감내하는 희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그 어느 집단보다 방역에 앞장서고, 안으로는 하루 7~8번의 예배를 드리며, 탄압 속에서도 대면예배를 지키려는 노력은 국민들의 등돌린 여론을 조금이나마 환기시키기 충분하다. 모든 사회적 관계가 경쟁으로 치닫는 요즘의 시대는 살아남기 위한 ‘고도의 전략’은 필수적이다. 교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더 이상 지붕 위에 십자가만 달아도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던 그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 한국교회는 위드 코로나,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할 동시다발적인 전략을 구축해야 한다. 당연히 내부 총질은 자제해야 한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끝없이 얽힌 요즘 시대에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내부 총질을 자행하는 것은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 코로나가 정점에 치닫은 현재 시대는 다시 한 번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교회 역시 살아남을 전략을 고민해야 함이 먼저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10-14
  • [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토머스 모어와 이가환의 경우’
    오래전 나는 영국의 대법관 토머스 모어(1477-1535)가 등장하는 영화 <천일의 앤>을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 영화는 당시 영국 왕 헨리8세가 앤 불린과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영국식 종교개혁을 강행하려던 때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영화 가운데서 나에게 강하게 인상지어져 있는 몇몇 인물들 가운데 그(모어)가 들어 있었다. 그의 어떤 면 때문이었을까. 대법관 신분이었던 그가 개신교도라고 할 신자들을 잡아다가 처형하는 일에 열광적이었던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그가 무려 여섯 명의 개신교도들을 이단으로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그의 명저라고 알려진 <유토피아>(1516)에는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그가 실제에 있어서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마도 시청자(필자)를 놀라게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나 그에 대하여 놀라게 된 것이 꼭 그 ‘저서’와 ‘실제’가 다른 이중적인 처신을 보여주었다는 데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식의 이중적 처신이 권장할 일은 못된다고 하더라도 상황 여하에 따라서는, 나약한 인간인지라,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넘어가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자신이 믿는 가톨릭교와 다른 프로테스탄트 신자라고 해서, 그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이야 그의 판단에 속한 문제라고 봐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프로테스탄트라는 죄과(?)로 그가 그들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특권마저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는 사실 앞에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그리스도교 신자였다고 한다면 바로 그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생명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셨던가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어찌 그렇게 잔인한 화형 판결을 다수 신자들에게 내렸을 수 있을까 물어야 할 판이다. 여기서 막말(?)을 하나 덧붙이기로 한다면, 헨리8세가 영국식 종교개혁이란 미명 하에 새로운 이단 종교를 만드는 것까지 확인된 이상 그(모어)는 이제 국왕을 이단자로 재판에 회부하고 그에게 화형 판결을 내려야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에겐 그럴 힘까지야 없었기 때문에 결국 반역죄로 그 자신이 국왕에 의해 처단당하고 만 것이었다. 요즘 필자는 다른 일로 서기원 작가의 장편소설 <조선백자 마리아 상>(1979)을 다시 읽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 역사소설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오래전에 읽어서 그 내용을 많이 잊어버렸던 세부사항들을 다시 생생하게 되살릴 수 있었던 점이 하나의 큰 수확이었다. 특히 그 작품 속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은 인물 이가환에 대해서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또한 큰 소득이었다. 조선 정조 때 이가환(1742-1801)은 대단한 권력자였다. 형조판서 직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정적들에 의해 쫓기다 보니 정조가 그를 보호하려고 중앙 정부 아닌 지방 외직으로 보냈다. 그는 광주(현 남양주) 목사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공서파(攻西派) 정적들에게 몰리게 된 것은 그가 천주교신자라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광주에 부임하자마자 천주교신도들을 혹독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는 자체 모순이지만 그는 그렇게라도 해서 정적들의 공격을 둔화시켜 보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권일신을 비롯한 다수 신도들을 너무도 잔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원망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조선백자 마리아 상>에서는 이런 이가환의 가학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끝이 난다. 그 후의 이가환의 이야기는, 수난 형식의 것으로, 황인경 작가의 전5권 대하장편 <소설 ‘목민심서’>(1992)에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 그는 광주 목사 때 천주교도들을 혹독하게 고문한 것 이상으로 자기 자신이 혹독하게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젠 정적들에 의해 그 자신이 천주교신자로 몰려 고난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거기서 끝내 목숨마저 잃고야 만다. 나는 동·서양의 두 권력자들이 처음엔 신자들에게 혹독한 형벌을 가하다가 뒤에 가서는 자기 자신들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큰 세력에 의해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사례를 살펴보았다. 토머스 모어와 이가환의 이야기는, 먼저는 종교적인 이유로 세도를 부리다가 후에는 또 그 종교적인 이유로 더 큰 권력에 의해 자기 목숨마저 잃게 된 종교인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상호 유사점이 보인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 토머스 모어나 이가환이 당대 약자들이었던 신도들을 다수 잔인하게 희생시키지만 않았더라면 그들(모어와 이가환)이 후에 헨리8세나 공서파 정적들에 의해 참혹하게 희생되었다 하더라도 얼마나 명예스러운 일이었을까, 라고…. 그러나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죽음은 영화 관람자들이나 소설 독자들에게 “결국은 심은 대로 거두고 말았구먼!” 하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만 것이 아닌가, 라고….
    • 연지골
    • 토요시평
    2021-10-11
  • [기자수첩] 그들은 기독교의 ‘위인’을 원치 않는다
    반기독교 광풍에 찢겨지는 영웅의 이름 조용기 목사 향한 비난, 결국은 기독교 죽이기 고 조용기 목사를 향한 일각의 비난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이단, 재정 비리, 정치 권력 등 목회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단어들을 나열해 가며, 그의 생전을 흠집 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 위에 주저앉은 민중들에 희망을 노래하고, 지독한 가난과 굶주림에 죽어가던 전 세계인들에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던 조용기 목사,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인으로까지 꼽히는 그의 업적에 왜 저들은 애써 등 돌리며, 어두운 치부만을 들추려 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로 ‘두려움’이다. 저들은 ‘조용기’라는 이름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조용기란 이름으로 인해 다시 회복될 기독교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반기독교 광풍이 세상이 지배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대립과 다툼, 경제침체와 행정의 추락, 지금 사회와 국민을 요동케 하는 온갖 불안에 대한 책임을 기독교에 물으려 하고 있다. 엄밀히 그들 자신이 받아야 할 국민들의 마땅한 분노를 기독교에 전가하는 지독히도 치졸한 전략인 것이다. 허나 속이 뻔히 보이는 저들의 작태 앞에서도 한국교회가 눈 뜨고 멍하니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바로 우리 스스로의 반복된 분열로 이에 대응할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진실은 우리 눈 앞에서 침몰했고, 이를 바라보는 저들의 비웃음은 한국교회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아 버렸다. 이런 와중에 조용기 목사의 죽음은 저들에게 긴장을 주기 충분한 사건이 됐을 것이다. 조용기 목사의 영향력은 이미 기독교의 울타리를 넘어선 지 오래로, 그는 전 세계가 존경하고 사랑한 20세기를 대표한 인물이다. 한국교회의 자랑이자, 기독교 부흥의 상징과도 같은 그의 죽음은 한국교회가 다시 하나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고, 이는 곧 한국교회의 회복을 의미하게 된다. 국내 1천만 성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거대하고, 활발하며 적극적인 유일한 집단, 그것이 바로 기독교이며 한국교회다. 대한민국의 건국부터 교육, 복지, 병원, 경제 등 전 부분의 토대를 만들고 이를 발전시켜 온 한국교회의 부활은 가슴에 불의를 품은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이다. 그렇기에 조용기 목사의 위대한 업적을 애써 가려가며, 그의 죽음이 한국교회의 결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고군분투 중이다. 조 목사가 생전 자신에 쏟아지던 온갖 중상모략을 이겨내고 대부분 무혐의를 받았다는 사실은 언급치 않고, 지금은 한국교회조차 전혀 언급치 않는 수십년 전의 케케묵은 이단시비를 다시 꺼내들었을 뿐 아니라, 그의 광범위한 영향력을 정치권력으로 둔갑시키는 저들의 노력은 참으로 처절하기까지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실은 더욱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있다. 조 목사의 생전을 목도한 전 세계 수천만 기독교인이 그의 위대함을 증거할 것이다. 그는 분명 기독교의 위인이었고, 전 세계가 사랑한 신실한 목회자였다. 우리는 10여년 전 우리 곁을 떠난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과 불교 법정스님의 죽음을 기억한다. 당시 대다수의 언론은 이들의 정신을 기리고, 생전의 청렴한 삶을 조명하며, ‘성인’으로 추대했다. 이후 천주교와 불교의 대사회적 이미지는 급상승했고, 국민들의 지지도 올라갔다. ‘단 한 명’ 종교 전체를 일으키고, 이미지를 바꾸는데 단 한 명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 조용기 목사는 모두가 인정하는 바로 그 ‘단 한 명’이다. 오히려 개인수양과 가르침에 충실한 고인들과 달리 전 세계를 누비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몸으로 실천한 조 목사였던 만큼 그의 죽음으로 인한 한국교회와 우리사회의 각성 효과는 더욱 거대할 것으로 보인다. 저들은 지금 빈소에 쓰여진 조용기 목사의 이름을 짓밟으며, 기독교의 ‘위인’ 탄생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하지만 이미 세상은 그를 ‘위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09-17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예배, 비대면 예배 방향의 실패’
    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한 혼란과 어려움은 우리 사회 각계를 계속 혼돈에 빠지게 한다. 정부는 지난해에 이어서 또 다시 지난 7월 12일부터 수도권에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명령하고, 그 조치로 처음부터 모든 교회 예배를 무조건 비대면으로 하라고 하달(?)하였다. 이에 불복하여 예자연을 중심으로 행정명령중지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에서는 16, 17일 두 가지 이유로 대면예배를 허용해야 함을 판결하였다. ‘형평성의 원칙 위배’(다른 다중 시설들은 모두 개방하는데, 교회만 폐쇄함), ‘국민 기본권의 침해’(헌법에 보장된 종교 자유)로 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배 인원은 교회의 규모와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19명으로 제한하는 희한한 판결도 곁들였다. 이에 일부 교회에서는 대통령 등 방역 책임자들에 대한 고소를 하게 되고, 정부에서는 최대 99명까지 대면예배 인원을 인정한다고 번복하였다. 역시 이 조치도 희한하게 기준이 모호하다. 예배 인원에 대한 것은 여전히 한국교회 숙제로 남았으며, 정부 측과도 계속 협상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21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한교총 대표회장 소강석 목사 교회를 찾아가, 그 확대 가능성을 엿보였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하여 한국교회가 제대로 예배를 드리지 못한 것도 벌써 1년 6개월이 넘어 간다. 지난해 2월 말부터 그런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많은 교회들이 소위 말하는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다. 지난해 5월만 해도 대면(현장)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60.6%였는데, 올 6월 조사에서는 36.2%로 줄었다고 한다.(예장통합총회, 목회데이터연구소, 한국기독교언론포럼에서 통합 측 담임목사 891명, 일반 교인 1,000명에 대한 여론 조사 결과, 이하 통합 조사) 반면에 오프·온라인 예배를 동시에 드린다는 교회는 52%를 차지해 소위 말하는 ‘비대면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더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예배 만족도는 어떨까? 이 조사에서 비대면 예배 만족도가 83%였으나, 현장 예배 만족도 89.4%보다 낮았다. 다른 조사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지난 해 7월 한국성결신문 창간 30주년 기념으로 성결교단 소속 목회자·성도 2,55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온라인(비대면) 예배에 대한 만족도는 24.2%였고, 불만족은 41%로 나타났다.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경우,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이라는 응답이 73.7%를 차지했다. 또 지난해 10월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조사한 것에서도 온라인(비대면) 예배 만족도는 ‘현장예배보다 못하다’는 것이 52.8%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이런 예배에 참석할 의향이 없다고 답한 것도 55.5%로, 참석하고 싶다의 27.2%보다 월등히 높았다. 청년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이다. 올해 1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한국교회탐구센터, 목회데이터베이스가 공동으로, 비대면 예배에 참석한 경험이 있는 기독청년 4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교회 현장예배가 훨씬 더 만족스럽다’가 40.8%, ‘조금 더 만족스럽다’가 26.9%로 무려 67.7%가 현장 예배를 선호하고 있다. 올 6월 위 통합 조사에서, 29.5%가 비대면으로 인하여 ‘신앙이 약해진 것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또 목회자와 일반 교인 모두 ‘예배의 본질에 대한 정립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예배의 본질은 뭔가? 총신대 총장을 지낸 정성구 박사는 ‘비대면 예배는 없다’고 단언하고, 예배란,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만남이며, 그리스도의 몸 된 지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는 집단 예배(Corperate Worship)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예배가 없으면 교회는 죽은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온라인 예배는 처음부터 예배가 아니었으며, 예배는 하나님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것이 비대면으로 가능할까? 우리 목회자들은 예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할까? 필자는 지난 7월 16, 17일 법원의 판결로 대면예배가 공식화된 이후에, 주변의 목사들과 대화를 해 봤다 어떤 분은 그저 코로나가 빨리 지나가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이 비난하지 않을 때 대면예배를 드리겠다고 한다. 또 어떤 분은 법원에서 이기면 뭐 하느냐,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싫어하는데, 정부의 방역 정책을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분은 지자체에 물어보고 허락하면 대면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 분들은 혹시라도 교회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걱정해서, 이웃 사람들의 비난을 피하겠다는 생각은 아닐까? 그런데 기독교 역사 이래 핍박이 없던 때가 없었고, 아니면 유혹이 없던 때도 없었다.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방역에는 철저히 한다고 대정부, 대사회 선언을 하면서, 대면예배를 강력하게 주장했어야 했다. 그런 측면에서 비대면 예배 방향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엉뚱한 곳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교계는 이제라도 한 방향, 한 목소리, 한 뜻을 모아서 바른 예배를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1-08-30
  • [기자수첩] 영화 ‘설리, 허드슨 강의 기적’을 통해 본 한국교회의 오판
    총 탑승객 155명을 태운 여객기가 활주로를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날아오는 새떼와 충돌하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여객기는 양쪽 엔진 모두를 잃고,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고, 승객들은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절체절명의 순간 비행기를 조종하던 설리 기장은 일단 보조동력을 가동하고 승객들을 살리기 위한 판단을 고민한다. 사고 소식을 접한 관제탑에서는 출발 공항으로 회항하거나, 인근 공항에 착륙할 것을 지시한 상황, 하지만 설리 기장은 850미터 밖에 되지 않은 상공에서 회항은 불가할 것으로 판단하고 결국 관제탑의 지시를 거부하고 인근 허드슨강에 수상 착륙을 시도한다. 그리고 얼마 후, 155명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 사고는 지난 2009년 1월 15일,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1549편 여객기에게 일어난 실화로, 지난 2016년에는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대중들에 알려졌다. 영화는 단순히 155명을 살린 놀라운 기적 뿐 아니라, 허드슨강에 불시착을 단행한 설리 기장의 판단과 그를 둘러싼 논란들에 포커스를 맞춰 전개되는데, 바로 여기에 우리 한국교회가 눈여겨 봐야 할 주제들이 등장한다. 사고 후, 항공 조사관들은 설리 기장에게 공항으로 회항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기 시작한다. 자신들의 판단으로는 충분히 공항 착륙이 가능했고, 시간도 충분했다는 것, 무엇보다 제대로 된 절차와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설리 기장은 그들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계산한 시간과 사고순간에 놓인 현실의 시간이 결코 동일할 수 없고, 생명이 오가는 긴급한 순간, 모든 원칙이 결코 정답이 아님을 항변한다. 교본 속의 매뉴얼이 아닌 생명을 살리기 위한 현실적인 판단이 더욱 중요했던 것, 결국 설리 기장은 자신이 옳았음을 증명해 낸다. 오랜만에 한국교회에 고조되는 대통합의 열기에 한교총이 절차와 원칙을 내세우며, 제대로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일단 협상부터 완료하고, 통합은 이후에 고민해 보자는 것인데, 현실과 괴리된 한교총의 판단에 교계의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양쪽 엔진을 잃고 추락하는 비행기와 같다. 80~90년대 기적적인 부흥을 경험하며, 워낙 하늘 끝까지 날아 올랐던 터라, 엔진을 잃은 뒤에도 오랜 기간 활강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어느덧 바닥이 보이는 지금 추락은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한교총이 고수하는 절차와 원칙은 추락하는 한국교회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장 바닥과 맞닿을지 모르는 상황에, 공항 활주로만 고집해서는 자칫 승객들의 생명을 모두 잃을 뿐이다. 비록 아스팔트가 쭉 뻗은 활주로는 아닐지라도 승객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자갈 가득한 비포장 도로이든, 차가운 한강 한복판이든 상관없는 것이다. 한교총이 망설이는 사이, 한국교회라는 비행기에 탑승한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의 생명은 위태로워 진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영화에서 설리 기장이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추궁하는 조사관들을 향해 부기장 제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딘가에 착륙할 수 있었던 것은 기장의 판단 덕분이다. 규칙대로 했다면 우린 모두 죽었을 것이다” 지금 추락하는 한국교회를 위해 필요한 것은 정관에 갇힌 규칙이 아니라, 당장의 위기를 타개할 현실적인 판단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08-26
  • [연지골] 신장 위구르
    ▲ 미군이 떠난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반군 탈레반이 접수했다고 한다. 탈레반(Taleban)은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를 정책으로 내세우는 군사조직으로 '학생들'이란 뜻이다. 1980년대 탈레반이 처음에 이슬람 신학교 마드라샤의 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하자 제일 먼저 위험에 빠진 것은 중국이다. 중국은 재빨리 탈레반과 손을 잡았지만, 수도 카불이 너무 빨리 무너지고 탈레반이 완전히 정권을 잡은 이상 중국과의 밀월은 그리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있는 '신장 위구르'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새국경을 뜻하는 신장(新疆, 신강)은 본래 위구르 제국과 준가르 제국을 비롯 수많은 왕국이 있었던 곳으로, 근세에는 동투르크스탄(East Turkstan)이란 위구르족의 나라였다. 이를 중국이 청나라 강희제 때 점령해 합병했다.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크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인도와 국경을 맞대어 있는 신장에는 위구르족, 한족, 하사커족, 후이족, 키르기스족, 몽골족, 타지크족, 시보족, 만주족, 우즈베크족, 러시아족, 타타르족 등 47개 민족으로 구성된 2,300만명 정도가 그들 오아시스 도시에 살고 있다. 이 중 이슬람을 믿는 위구르족은 전체 인구의 절반에 채 못 미치는 약 1,100만명이다. 중국정부가 한족 이주정책을 진행해 위구르족보다 한족이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 한반도의 약 8배 넓이가 되는 신장은 남쪽에 그 크기가 남한의 약 4배쯤 되는 '타클라마칸'(塔里)이란 사막이 있고, 그 사막 북쪽에는 길이 약 3000Km, 너비 약 350-480Km의 '천산산맥'(天山山脈)이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까지 뻗어 있으며, 사막 남쪽에는 티베트에서 시작되는 '곤륜산맥'(崑崙山脈)이 서쪽으로 뻗어 히말리야에 이른다. 이 산맥들은 1년 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 설산이 첩첩으로 쌓여 있다. 그리고 천산산맥과 북쪽 알타이산맥 사이에는 계곡과 분지와 '준가르'라고 부르는 평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곳에는 기름을 비롯한 온갖 지하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 성도(省都)인 우루무치와 유전지대인 커라마이 등 2개 지급시(地級市), 21개 현급시(縣級市), 62개 현(縣), 6개 자치현으로 구성되어 있는 신장에는 도시마다 삼자 기독교회가 설립돼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위구르족은 찾아보기 어렵고, 기독교인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족이다. 신장지역에는 일찍부터 기독교가 전파되었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경교'(景敎)라고 부르던 네스토리우스 교파이다. 이 교파는 페르시아 바그다드에 선교본부를 두고 5세기 이후 중국과 중앙아시아 전역에 선교했다. 이후 이슬람이 전파되면서 기독교는 심한 박해를 받았다. 신장이 다시 이슬람 국가가 된다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한족을 위한 기독교 선교도 어려움에 처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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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골
    2021-08-17
  • [사설] 목사세계에 '색계'라니?
    최근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문화교류국(225국)에 포섭된 충북지역 사회활동가들의 간첩단 사건이 드러나자, 탈북자들이 중심이 된 유튜브와 일부언론에서 통일전선부 산하의 225국에 포섭된 한국목사들이 있다고 보도하고 나섰다. 이들 목사들은 김대중 시대와 노무현 시대에 북한을 방문한 자들로서 소위 북한의 '색계 작전'에 포섭돼 친북활동이나 간첩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심지어 색계 작전에 포섭된 170여명의 한국목사들의 리스트를 갖고 있다며, 이들 목사들 가운데는 공작금을 받고 친북활동을 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이 명단이 지난 정권 때에 청와대에 보고되었다고 주장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기독교 목사들은 성적으로 타락했음을 말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국가안보 저해집단으로 비난 받을 수 있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목사들이 '색계'에 걸려 친북활동과 간첩활동을 한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방북 목사들 중에 일부라도 그런 혐의를 받을 만한 행동이나 오해를 살만한 일이 있었다면 지금 당장 교계와 사회 앞에 이실직고 하고, 그 직에서 은퇴함이 옳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안당국이 나서서 이들 혐의자들을 철저히 조사하여 낱낱이 밝힐 것을 요구한다. 만약 유튜브나 일부언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같은 주장은 이미 드러난 간첩사건에 대한 물타기거나, 한국교회에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려는 악의가 있음이 분명함으로 교계가 나서서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 한국교회에는 줄잡아 약 15만 여명에 이르는 목사가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가 민족주의를 앞세워 북한을 도와야 한다는 명분하에 북한을 이해하려는 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모두 이상한 시각으로 봐서는 안된다. 그런데 과연 한국교회 목사 중에 이들의 주장처럼 북한의 색계에 걸려 양심과 신앙에 반한 친북활동 내지는 간첩활동을 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개이다. 이 문제는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가안보가 걸린 문제임으로 공안당국에서 철저히 조사해 밝혀야 한다. 왜 이런 의혹을 방치해서 윤리와 도덕을 생명으로 여기는 교회를 욕보이려 하는가?
    • 연지골
    • 사설
    2021-08-17
  • [기자수첩] ‘선(先)조율 후(後)통합’의 함정 “우리는 시간이 없다”
    예배회복, 반성경적 악법 대처 등 ‘대통합’ 시급 ‘선(先) 통합’ 후 하나된 단체에서 이단 문제 해결해야 모두의 기대 속에 대차게 첫 발을 뗀 한국교회 대통합 프로젝트가 또다시 제동이 걸릴 태세다. 당장 예배 회복을 필두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 저지 등 한국교회에 있어 단 한 시도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사안이 즐비한데 이런 현실은 무시한 채 ‘선(先)조율 후(後)통합’이라는 느긋한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최근 한교총은 교계 대통합을 위한 ‘미래발전위원회’와 실무협상을 책임질 ‘기관통합준비위원회’를 동시에 구성하고 한기총과의 본격적인 통합에 나섰다. 상임위는 소강석 목사(한교총 이사장, 예장합동)와 김태영 목사(한교총 전 공동대표, 예장통합)를 각 위원장으로 만장일치 추대하고, 교계 대통합을 시급히 완수키로 중지를 모았다. 그러나 통합 실무를 맡은 김태영 목사가 최근 소속 교단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기총의 이단 해제, 금권 선거 등의 문제를 언급하며, 해당 문제들의 해결 없이 통합 협상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김 목사의 발상이 한국교회 대통합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비난을 듣는 것은 그것이 한국교회가 분열한 지난시간 간간히 추진됐던 통합 시도를 매번 무산시킨 단골 레퍼토리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단문제는 서로간의 첨예한 이견이 부딪치는 극히 예민한 사안으로, 단순히 조율과 협상으로 이를 해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언제부터인가 이단 문제는 통합 논의에 있어 선결 조건이라기보다는 통합 무산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런 상황에 김태영 목사가 기관통합준비위원장에 오른 직후, 또다시 이단 문제를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것은 오히려 통합을 거부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김태영 목사가 주장하는 ‘선(先)조율 후(後)통합’이란 형태는 통합에 있어 매우 이상적임은 분명하다. 서로 다른 두 단체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하고, 조율해야 할 문제들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은 이런 느긋한 여유를 허락치 않는다. ‘원 리더십’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코로나 상황에 정부의 방역정책에 끌려다니기 바쁘고, 급기야 예배 인원을 방역당국이 정하는 굴욕(?)까지 맛봐야 했다. 여기에 일부 정치계에서는 교회와 사회의 전통 규범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을 다수 포함시킨 비슷한 법안(포괄적차별금지법, 평등법(이상민 법), 건강가정기본법 수정안, 평등법(박주민 법))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과거 하나된 한국교회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사분오열된 한국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위급한 현실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선(先)조율 후(後)통합’이 아닌 ‘선(先)통합 후(後)조율’이 해답임을 알려주고 있다. 현 한국교회에 있어 ‘예배회복’이 가장 시급한 난제라는 것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고, 분열된 힘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모두가 공감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해묵은 문제는 일단 뒤로 잠시 넘겨두고, 예배 회복과 코로나 대처라는 대의적인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당연히 통합이 먼저다. 이단 문제는 통합된 단체에서 회원들의 다수결을 통해 이를 처리하면 될 뿐이다. 그게 법이고, 원칙이다. 오히려 현 상황에서 이단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단’의 기준은 각 교단마다 다르고, 서로가 이단으로 정죄한 집단, 인물, 단체가 매우 상이하다. 예장통합측의 기준에서 판단한 한기총 내부의 이단 문제와 합동, 기성, 기침, 기감 등 여타 한교총 회원교단들의 입장이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 김태영 목사가 단순히 자기 교단의 이단 기준만 들이대 한기총을 판단한 것 자체가 애초에 모순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자칫 한교총 스스로가 자가당착에 빠질 우려가 있다. 한교총 회원교단 사이에서도 상대 교단의 인물이나 단체를 이단 혹은 교류금지 등으로 정죄한 사례가 많은데 그런 상황에 굳이 한기총을 향해서만 이단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한교총 자체의 이단 기준이 서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더욱이 한교총이 ‘선(先) 통합’ 없이 ‘이단 문제’를 선결과제로 고집한다면, 한기총 역시도 WCC를 선결과제로 끄집어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WCC는 한국교회가 지난 숱한 분열 속에서도 60년간 전혀 의견을 좁히지 못한 사안, 만약 이번 통합 논의에 WCC가 등장한다면, 이 통합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단 문제는 하나된 통합 단체에서 이를 논의하고 해결해야 함이 옳다. 논란이 되는 교단이나 인물이 있다면, 회원들의 의견을 모아, 잔류, 퇴출 등을 결정하면 될 일이다. 지금은 오직 한국교회의 유익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당장 무너져 가는 예배를 회복하고, 반성경적 악법을 저지키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일의 선제조건은 당연히 대통합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1-08-16
  • [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심사로
    언젠가 나는 라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고백록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읽을 그때는 매우 감동 깊게 읽은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회고해 보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다소 안타깝다. 아마도 읽은 지가 꽤 오래되어서 그러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다음 부분만은 너무도 뚜렷이 나의 기억에 남아있어서,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하면 우선적으로 그 장면부터 떠오르는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데가 아니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아직 ‘히포의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 그러니까 그가 밀라노 시에서 수사학 교사로 일하던 시절 갑자기 강력한 회심의 체험(386년)을 하고 나서 밀라노의 암브로시우스 감독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직후 그의 어머니 모니카와 함께 잠시 고향 북아프리카로 돌아가려고 여행길에 올랐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 도중에 그의 어머니 모니카가 신병이 악화돼 그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서글픈 일이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임종을 통해 아주 귀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모니카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 아들이 그녀의 시신을 고향으로 운반해 장사지내겠다고 하자, “하나님이 지으신 온 세상은 어디나 다 같은 처소이니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던 것이다. 게다가 모니카는 삶과 죽음의 차이가 별게 아니라는 듯, 자신의 죽음을 단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는’ 심정으로 맞겠다는 식으로, 무서우리만큼 확고한 그녀의 신앙심을 드러냄으로써 또한 아들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모니카의 이 확고부동한 신앙심은 당시의 그녀의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뿐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필부필부들에게도 같은 비중의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음이 사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우리의 죽음을 단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는’ 심정으로 맞겠다는 결연한 자세, 아니 확고부동한 신앙심이 필요한 그런 시대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때 나는 다른 계기로 고(故) 김성한 작가의 단편 역사소설 <바비도>를 다시 읽게 되었다. <바비도>는 15세기 초엽의 영국이 그 배경으로 되어 있는데, 그때의 영국 왕이 헨리4세였다. 그는 1399년 사촌형인 상왕 리처드2세를 쿠데타로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악명 높은 자였다. 그는 왕좌에 오른 2년 뒤 ‘이단 분형령’(1401)을 통과시켰다. 이는 기독교의 이단자들을 골라내 불에 태워 죽이라는 법령이었다. 또 1407년 이후엔 개혁자 위클리프의 영역성서 비밀 독회(讀會)를 법으로 막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바비도는 1410년 이런 조치에 의해 ‘이단 분형령’에 따른 화형을 당하게 된, 재봉직공 신분의 기독 청년이다. 그는 종교지도자들이 상식 밖의 일들을 다 저지르면서도 평신도에게만은 각종의 규제들로 그들의 목을 조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런 강압적 규제에 대하여 강력히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슨 법이 만들어졌든 말든 오직 자기의 신앙 노선만을 굳게 지키려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법 때문에 제 신앙노선을 쉽게 버리는 것을 보면서도 자기는 결코 그럴 수 없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 결과 그는 구속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종교재판정에서 사교가 심문을 시작했다. “밤이면 몰래 영역복음서를 읽었다지? 무슨 마귀의 장난으로 영어복음서를 읽구 듣구 했지? 한마디 회개한다고 말할 수는 없느냐?” 무슨 심문에도 바비도는 사교의 뜻과는 반하는 말만 해댔다. 구제불능이라고 판단한 사교는 그에게 분형에 처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그는 스미스필드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헨리 태자가 나타나 그를 달래 보았다. “바비도, 누가 옳고 그른 것은 논하지 말기로 하자. 하여간 네 목숨이 아깝구나.” “감사합니다.” “그럼 마음을 돌렸느냐?” 바비도가 대답했다. “그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내 스스로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심사로 떠나는 길이니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바비도는 불길 속에 한 줌의 재로 화하고 말았다. 죽음에 임해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가는” 심사로 떠난다고 하는 표현을 한 데서 바비도의 초연(超然)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점은 임종의 모니카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건너가는” 심정으로 죽음을 맞겠다고 한 것과 같은 결연(決然)함이라고 하겠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는 지금 바비도나 모니카에게서와 같은 초연함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런 초연함, 결연함이 아무렇게나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바비도나 모니카에게서와 같은 확고한 신앙 위에서만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1-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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