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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코로나19가 결국 절대 불가침 영역으로 치부됐던 교회의 예배마저 뒤흔들었다.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현장 예배가 중단됐고, 교회의 문은 굳게 잠겼다. 코로나로 교회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었다. 성도가 줄었고, 헌금이 줄었다. 재정난으로 문을 닫는 교회가 많아지며 자연스레 교회 수도 줄게 됐다. 전 세계 곳곳에 파송된 선교사들은 발이 묶였고, 그간 선교지에 쏟았던 공든 노력도 자연스레 퇴색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보다 한국교회가 잃은 가장 큰 가치가 있으니 바로 국민들의 신뢰다. 코로나19로부터 예배가 다시 안전해지면 성도들은 교회로 돌아올 것이다. 성도가 늘어나면 헌금 역시 자연스레 회복될 것이고, 교회 역시 회복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선교 역시 다시 활기를 띌 것이다. 코로나만 해결되면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사회적 신뢰는 결코 코로나가 종식된다 해도 회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 국민들은 한국교회를 ‘사회악’으로 치부하고 있다. 스스로 빛과 소금이라 말했던 교회가 단순한 오만을 넘어 ‘집단 이기주의’로 변질된 모습에 국민들은 더 이상 교회를 보며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물론 일부 교회의 문제였다. 대다수 교회는 문제가 없었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일부교회 속에 한국교회를 투영했다. 그것이 비록 잘못된 일반화일지라도 한국교회는 지금 그것을 지적할만한 최소한의 자격조차 없음이 참으로 씁쓸할 뿐이다.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황에 대한 철저한 반성은 물론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공교회로서의 책임을 보여야 한다. 국민들에 일부 교회와 특정인의 일탈을 제재하지 않은 방관을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변해야 한다. 국민들 앞에 새로워진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회라는 이름을 광화문 ‘정치’ 한복판으로 내몬 것은 단순히 전광훈 목사 한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한때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던 원로들이 자리했다. 전 목사가 행한 그릇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원로들의 지지와 비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 앞에 새로운 한국교회를 다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인물들이 등극해야 한다. 전 목사를 비호한 원로들 역시 한때 한국교회를 위해 최선을 다한 공로자임은 인정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 쏟아지는 국민들의 싸늘한 시선은 그들의 선택이 결코 옳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으라고 했다. 계속해서 낡은 부대 자루를 부여잡고 있어봤자 그 속에서 향 좋은 포도주가 나올 수 없고, 결국 자루가 터져 포도주를 버릴 뿐이다. 근래 한국교회의 세대교체는 참으로 더디었다. 아직도 주요 교단에는 여전히 과거의 인물들이 정치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 능력있고 참신한 인물들이 확 달라진 한국교회를 만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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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수첩
    2020-08-25
  • 아, 하기아 소피아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Aya Sofya) 박물관은 본명이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대성당이다. 그리스어로 하기아는 ‘성서럽다’는 말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말이다. 즉 “성서러운 지혜”라는 뜻이다. 성서로운 지혜는 곧 그리스도를 말한다. 주후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낙성된 비쟌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된 후 아랍어로 바뀐 이름이 아야소피아이다. 오늘날 비쟌틴 건축의 걸작으로 찬사를 받는 아야소피아는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 황제 때 세워졌으나 이후 화제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다. 이것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인 532년부터 537년까지 5년간에 걸친 개축공사로 현재의 대성당이 되었다. ◇건축 자재는 에베소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레바논의 아폴론 신전에서 운반해 온 기둥과 세계 곳곳에서 가져온 석재들을 이용해 건축되었다. 거대한 중앙 돔은 직경이 31m, 높이가 54m에 달한다. 비쟌틴제국은 이곳에서 황제즉위식이나 전승기념식 등을 가졌다. 그리고 1천년동안 하나의 교회로 전래해온 그리스도의 교회가 1054년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y)와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으로 갈라선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은 소위 ‘필리오케’(Filioque) 논쟁이라는 성령발출설에서 비롯되었다. 성령발출설이란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 나온다는 것이고, 서방교회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온다는 주장이었다. ◇오스만 투르크와 수년간 대치해 오던 콘스탄티노플은 함락 전야에 황제와 총주교 등 국가의 주요인사들이 모여 소피아 대성당에서 성만찬을 가졌다. 그리고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그 다음날 3중 성곽을 헐고 밀려들어온 투르크 군에 맞서 싸우다 전쟁터에서 죽었다. 1453년 5월 30일의 일이다. 투르크의 젊은 통치자 슐탄 메흐멧 2세는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여 소피아 대성당에서 알라에게 감사예배를 드렸다. 또 성당 건물 주위에 이슬람 사원을 상징하는 미나렛(첨탑)을 세우고, 내부의 기독교 모자이크화는 회벽과 코란 문자로 덮어 모스크로 사용했다. 그러다 세계 1차대전 이후 터키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타 투르크의 세속주의 선언에 따라 1935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아야소피아 박물관’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독교 정통신앙의 수호자인 동방 정통교회의 총대주교좌는 이렇게 하여 이슬람에 빼앗겨 전세계 모슬렘의 머리가 되어갔다. 그리고 동방 정교회의 상징인 쌍두 독수리 깃발은 갈 곳을 찾지 못해 끝내 러시아 정교회로 옮겨갔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터키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래서 성지순례객 뿐만 아니라 터키를 찾는 모든 여행객은 누구나 한번쯤은 이 곳을 찾는다. 또한 이곳에선 어떠한 종교행위도 금지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이 소피아 대성당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다시 이슬람 사원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하고, 지난 7월 24일 금요일부터 이슬람예배를 강행해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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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3
  • NCCK 인권센터의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성명
    정의당 의원들이 중심이 돼 국회에 제출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동성애 합법화 등 독소조항이 있다며 기독교계가 반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인권센터는 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세상을 바란다며 21대 국회의원들에게 이 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21대 국회의원들이 지금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위한 법 절차를 시작할 것과 =차별금지 사유 가운데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문제 삼는 일부 세력의 반대를 두려워하지 말 것과 ▷차별금지법/평등법 제정을 동의하고 지지하는 많은 그리스도인과 시민이 함께 하고 있음을 천명하고 법 제정을 위해 앞장 설 것을 촉구했다. 또 이들은 차별금지법이 18대, 19대 국회에서도 수 차례 발의되었지만,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교 집단의 반발에 부딛혀 자진 철회되거나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면서, 하지만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아라는 차별 사유 조항을 두고,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호도하며 차별과 혐오롤 선동하는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대표하지도 대변하지도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성경을 근거로 소수자를 차별하는 것은 성경을 오독하고 오해하는 것이라며, 소돔이 멸망한 것은 동성애 때문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적대와 폭력 때문이었다는 전 시카고신학대학 테드 제닝스 교수의 퀴어신학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성명은 상당한 모순을 보인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독소조항이 있다는 지적은 일부 정치권 인사들도 인정하고 있고, 한국기독교 절대다수 보수적 교회가 그렇게 믿고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일부 근본주의 그리스도인들이 반대하고 있고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대표하지도 대변하지도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일부 근본주의 반대세력은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 인가? 그리고 NCCK의 중심 교단인 예장과 기감도 일부 근본주의에 속하는 것인가?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 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갈지니라"(레 20:13)는 성경 구절은 왜 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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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8-03
  • 성추문으로 무너져가는 좌파들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지자체장들이 줄줄이 권력형 성범죄로 무너져가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오거돈 부산시장에 이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성추문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서울시에는 정무라인에 젠더특보까지 두었으나 시장의 성추문은 막지 못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매년 서울시청 광장에 동성애자들의 퀴어 축제까지 판을 벌여주는 등 비정상적인 성문제에 어느 누구보다 너그러웠다 박 시장은 시청 사무실에서도 예사로 여직원들을 추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박 시장이 부도덕한 성 관념을 가진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의 자유화를 외치는 사람들 가운데는 진보를 자처하는 자들이 많다. 이런 자들은 전통적 결혼 문화와 가정윤리 및 성윤리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성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성 해방을 주창하는 공산주의자들은 남녀의 성을 아예 공유하려 했다. 이는 전통적 도덕 규범의 파괴요, 부도덕과 타락의 극치이다. 물론 성추문은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나 있어왔다. 문제는 권력형 성착취라는 데 있다. 마치 노예나 하인을 농장주들이 마음대로 강간하고 성을 착취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조선 시대에 타락한 양반들도 권력으로 하녀들의 성을 착취했다. 앞으로 소위 진보집단 안에서 더 많은 권력형 성착취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여겨진다. 이들은 대체로 도덕과 양심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이들은 전통적 도덕율은 타파되어야 할 가부장적 적폐로 여기며, 양심 또한 화인을 맞아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다. 사람은 양심과 도덕심이 인간다움을 만든다. 양심과 도덕심이 불량하면 그런 사람은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또한 동성애나 변태를 부추긴다. 일부이긴 하지만 한국교회 안에도 이런 자들이 있다. 동성애에 대한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퀴어신학 운운하는 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성경을 왜곡 해석해 성경의 가치관을 해체하려 한다. 규범이 없는 사회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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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2020-08-03
  • [기자수첩] 소강석 목사의 평화와 꽃의 노래 ‘응답하라 2021’
    오는 9월 총회에서 예장합동측 교단 총회장 취임을 앞두고 있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에 대한 교계의 관심이 실로 엄청나다. 지난 십수년 넘는 시간동안 심각한 인물 부재로 극심한 침체를 겪어야 했던 한국교회에 단비처럼 나타난 ‘거인’(巨人)이라는 세간의 평가는 시대로 하여금 또 한 번 ‘부흥의 계절’을 기대케 하고 있다. 그간 스스로 인물을 자처하며 지도자로 군림한 이들은 많았지만, 별다른 업적 없이 이름만을 남긴 채 역사 속에 사라져 갔다. 이를 딱히 비난할 것도 없었던 것은 그것이 흐름이었고, 나름의 최선이었다. 그런 일반화 속에 소강석 목사가 보여준 지난 행보는 실로 특이했고, 남달랐다. 직위, 직책, 지도자라는 자리에 오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일들을 해내는데 주력했다. 일을 하는데 있어 재정, 시간, 인력 그 어느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었고, 때때로 지역과 국가를 뛰어넘는 엄청난 위용을 보이기까지 했다. 지리산선교유적지 보존, 6.25 참전용사 초청, 동아시아 관계 개선, 성령 운동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그와 새에덴교회의 사역은 역사, 문화, 정치, 목회, 선교 등 전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어쩌면 그런 소 목사의 총회장 취임에 교계와 사회의 기대가 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기대 속에 등장한 총회준비위원회, 일명 총준위의 발족은 매우 소강석 목사다운 결과물이다. 사실 그간의 지도자들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던 것은 딱히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총회장에게 주어지는 고작 1년의 임기는, 무슨 일을 추진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이다. 그 와중에 정치적 견제나 내부 혼란이라도 일어난다면, 그저 각종 소송에만 매달리다 퇴임할 수 밖에 없다. 소 목사의 총준위 발족은 이러한 시간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최적의 구상이었다. 모든 사업 준비를 총회 전에 끝마치고, 다음 회기는 온전히 사업을 실천하는데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교단 역사상 초유의 부총회장 단독 추대라는 내부로부터의 호불호 없는 지지는 합동총회와 소 목사가 사업을 시행하는데 절대적 탄력을 제공한다. 현재 교계는 소 목사가 합동측의 지도자만으로 남기를 원하지 않는다. 뿔뿔이 나뉘어 있는 교계를 하나로 다시 엮을 한국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한국교회는 보수세력의 3단 분열로, 절대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교회의 모든 소모임을 금지했던 지난 중대본의 7/8조치는 지금 한국교회의 사회적 위상이 얼마나 추락해 있는지를 반증한다. 한국교회가 다시 하나 될 수 있다면, 1000만이라는 국내 최대의 집단이 일제히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전에 본 적 없는 엄청난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소 목사는 한국교회를 향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응답을 요청하고 있다. 과연 시대는 광대를 자처하는 그의 비전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지, 이제 다시 한 번 한국교회가 그토록 염원한 평화와 꽃의 노래가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보자.
    • 연지골
    • 기자수첩
    2020-07-23
  • 삐라의 추억과 현실
    올해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다. 70년 전 북한의 김일성은 중공과 소련의 지원 하에 3·8선 전역에서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공산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1달 만에 전국토의 90%를 공산군에게 뺏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과 유엔군이 참전하여 나라를 지키게 되고, 완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됨을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70년 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의 독립국 90여국 가운데 60여 개국이 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협력했으니, 가히 세계적인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성경에서처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70년 만에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기쁨이 한반도에도 올 것을 기대했는데, 느닷없이 북한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6월 초에 ‘삐라’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북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다. 탈북민들이 보낸 소위 ‘삐라’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북측이 드러내면서,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어이없는 일까지도 벌어졌다. 연락사무소뿐만 아니라, 뒤편의 건물 등 우리 돈으로 지은 건물과 재산 700여억 원의 물적 손해를 유발시키고도 북한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그럼 김여정이 말하는 ‘삐라’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강수를 두고, 그 동안 쌓인 남북 간의 신뢰까지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마을과 학교 가는 길에서 심심찮게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본적이 있다. 이것을 주우면 곧바로 학교로 가져가거나 지서(지금은 지구대, 경찰)에 갖다 주면 연필이나 공책(노트)을 받곤 하였다. 이제는 수십 년이 지나서, 삐라를 주을 때의 두근거림은 추억처럼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삐라 때문에 남북 간에 초긴장이 빚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한반도에서의 삐라의 역사는 꽤 길다. 우선 삐라라는 말은 영어의 ‘전단지’에 해당하는 ‘Bill’과 일본어의 비속어인 ‘비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이는 오래 전에 남북 간에 심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서로가 적진에 뿌렸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 상태에서도 쌍방은 삐라를 뿌린 것으로 나타난다. 1960~1970년대 한국과 유엔군 측에서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사연과 월남(越南) 방법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다. 반면에 북한 측은 유엔군을 대상으로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식으로, 외국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내부를 이간질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 1980~1990년대에 한국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미인들을 내세워 북한 병사들의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에 북한 측은 미군은 살인마, 흡혈귀 등 부정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 김정일은 추켜세우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88년 한국은 올림픽을 개최하여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 정치 민주화를 가져오면서, 체제 경쟁에서 북한은 밀리게 되고, 삐라 살포도 주춤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 의하여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들이 다양하게 북한 지역에 살포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은 북한과 다르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또 폐쇄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삐라가 상당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져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에 삐라 사건을 지적하면서 김여정은 탈북민들을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라고 까지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주의에 대한 비교는 끝난 것이며, 그 결과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경제력이 앞섰던 북한이 이제는 한국과 비교하여 50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이번에 발끈한 것은 비단 ‘삐라’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한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이제는 삐라가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남북 간 예측하기 어려운 대치 국면이 되고, 작은 삐라 앞에서도 흥분할 수밖에 없는 북한 측의 절박함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은 세계와 공산 국가에서도 유일하게 3대 세습으로 72년 이상 독재·공산 정권을 끌어오고 있다. 그 동안 주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속임수와 인권 유린의 혹독함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될 때, 그것은 심리전에서 사용하는 삐라의 문제가 아니라, 김일성 3대가 그 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독재정권에 가해지는 위력이, 핵폭탄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0-07-07
  • 보편적 가견적 교회
    기독교인이 사도신경에서 ‘나는 거룩한 공회(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 교회는 가견적(可見的) 교회뿐만 아니라, 아담 이래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칼빈은 이 가견적 교회를 ‘어머니’라는 칭호로 부르고 있다. “이는 이 어머니가 우리를 잉태하고 낳으며 젖을 먹여 기르고 우리가 이 육신을 벗고 천사같이 될 때까지(마 22;30) 보호 지도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명에 들어가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 연약한 사람들이어서 일평생 그녀(교회)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로 지내는 동안 생의 마지막까지 그녀의 지도와 치리하에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품을 떠나서는 죄의 용서나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기독교강요 4권 1장 4절). 이것이 바로 거룩한 보편적 교회이다. 이 보편적 가견적 교회는 죄와 허물이 많은 인간의 모임이어서 많은 부패가 있고, 분쟁이 있으며, 갈등이 있다 할지라도 교회로부터 분리를 정당화 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례가 행해지는 외적인 교회를 자의적으로 버리는 자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이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는 너무 많은 인간적 분열이 있다. 이 분열로 인해 거룩한 보편적 교회가 세속으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의 보편적 교회에서 완전히 분리되거나 교회의 교제로부터 제외된 이방인이 되어서는 안된다. 교파가 다르고 교단이 달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편적 교회의 일원으로서 형제요 자매임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가 진정한 교회인지, 교회의 통일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형제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었다”(엡 2:20).교회의 통일성은 “한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 곧 만물의 아버지”가 있고, 그가 우리를 하나의 소망으로 부르셨다(엡 4:4-6)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의 끈으로 한 하나님에게 연결되어 있기만 하면 우리는 하나의 몸이고 하나의 영이 되는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2).
    • 연지골
    • 사설
    2020-07-07
  • 중국의 기독교
    인간의 영혼을 부정하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14억의 중국대륙에 1억에 이르는 기독교인들이 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중국 공산당은 지속적인 기독교 탄압을 일삼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령 종교사무조례(2018년 2월 1일부터 시행하는 수정안)는 제1장 총칙 제2조애서 “국민의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또 “국가는 법에 따라 정상적인 종교활동은 보호하고, 종교단체와 종교활동 장소 및 신앙인의 합법적 권익을 보호한다”(제4조). “각급 인민정부는 종교업무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고 건전한 종교업무 시스템을 구축하여 종교업무능력과 필요한 업무조건을 보장한다”(제6조)고 하여, 종교집단의 정상과 비정상을 국가가 판단하며, 종교업무의 지도를 각급 인민정부가 간섭토록 하고 있어, “국민의 종교와 신앙의 자유 보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한국의 경우에는 정부의 종교업무라는 것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종 종교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형편이다. 중국의 기독교 역사는 7세기 당나라 시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이후 시대에 따라 많은 부침이 있었으나 기독교 신앙은 중국인의 정신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시대마다 많은 지도력 가진 기독교 인물들과 순교자를 배출했다. 따라서 오늘의 중국공산당 하에서의 1억이라는 기독교인의 숫자는 단순한 시대적 산물만이 아니다.지금 중국은 도시마다 주일예배에 교인들이 꽉꽉 차는 삼자교회들이 즐비해 있다. 인민정부가 기독교를 억압하고 있음에도 인민들의 신앙은 기독교를 선호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또 비삼자교회들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문제는 훈련받은 목회자가 절대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을 한국교회가 유의해 살필 필요가 있다. 훈련받은 지도자가 부족한 교회는 미신으로 기울러지기 쉽다.
    • 연지골
    • 사설
    2020-07-07
  • 이단 수녀회
    ◇중세는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에 대한 관심이 가장 높았던 시대이다. 그래서 경건과 영성생활을 위해 수도원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 중에는 남·녀 평신도 공동체들도 있었다. 최초의 여성 영성 공동체는 ‘베긴회’(Beguines)이다. 베긴회는 과부나 미혼 여성 및 귀족과 상인의 딸들이 통일된 복장을 하고 청빈과 자선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했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생활하거나 홀로 생활하면서 세속 사회에서 수도원적 경건생활을 했다.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이 ‘여성 종교운동’에는 상류층 내지 중산층 출신의 미혼으로, 직업이 없고 영성적으로 이상주의적인 다수의 여성들이 다양한 종교적 활동에 정례적으로 참여하는 것 외에 병자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봉사, 간병인, 아이돌봄이 등의 사회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베긴회는 주로 각기 10명에서 12명으로 구성된 수 백개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 가운데 ‘여성(신부 新婦) 신비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중세교회는 이들을 ‘이단적 영성주의’로 규정하고 기존 수도회인 시토회나 도미니크회 및 프란체스코회 등에 통합시켜 수도회의 감독을 받게 했다. 그리하여 베긴회의 대다수는 매우 온건한 정통 교리를 추종했다. 그러나 기존 수도회에 통합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당시 이단으로 간주된 왈도파나 카타르파의 가르침을 받았다. 일부 베긴회 수녀들이 수용했던 이원론적 이단은 “여성이 영성적으로 남성과 동등하며 종교적 권위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들의 교리적 토대는 본질적으로 여성과 남성이 각각 물리적·신체적 조건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하나님 앞에서, 또는 천국에서 똑같은 신성한 영혼이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카타르파는 종교 의식에서 여성에게도 사제가 집전하는 종교 의식을 용인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부여했다. ◇카타르파 베긴회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인간은 이 현세에서 완전히 죄가 없고 더 이상 은총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대단한 완전함을 성취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 이들은 중세의 성(性) 윤리가 교회의 고인물이라고 재해석하고, 일반적인 헌신자들이 후손을 낳기 위해 결혼하는 것을 제외하고 자식을 낳지 않아도 되며 자신의 육체로 원하는대로 행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들은 그때 이미 피임 및 유산이라는 관행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이것들을 금지한 가톨릭교회의 격렬한 비판을 초래했다. 이리하여 13세기 중엽 교회는 이들 이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베긴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당시 베긴회는 남성 평신도 공동체도 있었다. 이를 ‘베가르회’(Beghards)라고 한다. 베가르회는 교회의 지도와 감독을 떠나 공동생활과 탁발을 시행했고, 민중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가톨릭교회의 성직위계제도를 비판했다. 중세 종교개혁의 선구자들인 셈이다. 그리하여 베긴회와 베가르회는 결국 1312년 교황 클레멘스 5세에 의해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 연지골
    • 연지골
    2020-07-07
  • 삐라의 추억과 현실
    올해로 6·25전쟁 70주년을 맞는다. 70년 전 북한의 김일성은 중공과 소련의 지원 하에 3·8선 전역에서 남침 전쟁을 일으켰다. 그래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공산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1달 만에 전국토의 90%를 공산군에게 뺏기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미국과 유엔군이 참전하여 나라를 지키게 되고, 완전 통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됨을 하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70년 전 6·25전쟁이 발발하자, 전 세계의 독립국 90여국 가운데 60여 개국이 이 전쟁에 참여하거나 협력했으니, 가히 세계적인 전쟁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성경에서처럼,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70년 만에 포로에서 해방되어 돌아오는 기쁨이 한반도에도 올 것을 기대했는데, 느닷없이 북한의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6월 초에 ‘삐라’ 담화를 발표하면서, 남북은 긴장감이 팽팽하게 감돌고 있다. 탈북민들이 보낸 소위 ‘삐라’에 대한 노골적인 적대감을 북측이 드러내면서, 개성 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어이없는 일까지도 벌어졌다. 연락사무소뿐만 아니라, 뒤편의 건물 등 우리 돈으로 지은 건물과 재산 700여억 원의 물적 손해를 유발시키고도 북한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그럼 김여정이 말하는 ‘삐라’가 대체 무엇이기에 그런 강수를 두고, 그 동안 쌓인 남북 간의 신뢰까지 폭파시키는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나는 어렸을 때, 우리 마을과 학교 가는 길에서 심심찮게 북한에서 보낸 삐라를 본적이 있다. 이것을 주우면 곧바로 학교로 가져가거나 지서(지금은 지구대, 경찰)에 갖다 주면 연필이나 공책(노트)을 받곤 하였다. 이제는 수십 년이 지나서, 삐라를 주을 때의 두근거림은 추억처럼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삐라 때문에 남북 간에 초긴장이 빚어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사실 한반도에서의 삐라의 역사는 꽤 길다. 우선 삐라라는 말은 영어의 ‘전단지’에 해당하는 ‘Bill’과 일본어의 비속어인 ‘비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이는 오래 전에 남북 간에 심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서로가 적진에 뿌렸던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 상태에서도 쌍방은 삐라를 뿌린 것으로 나타난다. 1960~1970년대 한국과 유엔군 측에서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내는 사연과 월남(越南) 방법과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알리는 내용을 보냈다. 반면에 북한 측은 유엔군을 대상으로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식으로, 외국 병사들의 향수를 자극하여 전의를 상실하게 하고 내부를 이간질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또 1980~1990년대에 한국에서는 수영복을 입은 미인들을 내세워 북한 병사들의 귀순을 유도하는 내용이 많았다. 반면에 북한 측은 미군은 살인마, 흡혈귀 등 부정적인 존재로 부각시키고, 김정일은 추켜세우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1988년 한국은 올림픽을 개최하여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비약적인 경제 발전, 정치 민주화를 가져오면서, 체제 경쟁에서 북한은 밀리게 되고, 삐라 살포도 주춤하게 된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 탈북민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 의하여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내용들이 다양하게 북한 지역에 살포되게 된다. 이에 대하여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한국은 북한과 다르게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또 폐쇄된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의 문제점을 잘 모르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삐라가 상당한 사실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여겨져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번에 삐라 사건을 지적하면서 김여정은 탈북민들을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라고 까지 표현하였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까지 싸잡아서 비난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자유민주주의와 공산·독재주의에 대한 비교는 끝난 것이며, 그 결과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경제력이 앞섰던 북한이 이제는 한국과 비교하여 50배의 차이가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북한 당국이 이번에 발끈한 것은 비단 ‘삐라’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인한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이제는 삐라가 추억 속에 남아 있을 것으로 여겼는데, 남북 간 예측하기 어려운 대치 국면이 되고, 작은 삐라 앞에서도 흥분할 수밖에 없는 북한 측의 절박함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은 세계와 공산 국가에서도 유일하게 3대 세습으로 72년 이상 독재·공산 정권을 끌어오고 있다. 그 동안 주민들에 대한 억압과 착취, 속임수와 인권 유린의 혹독함을 북한 주민들이 알게 될 때, 그것은 심리전에서 사용하는 삐라의 문제가 아니라, 김일성 3대가 그 동안 공들여 만들어온 독재정권에 가해지는 위력이, 핵폭탄보다 더할지도 모르겠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0-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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