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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강석 목사의 ‘감성’이 존중 받아야 하는 이유
- "It is difficult to get the news from poems yet men die miserably every day for lack of what is found there." (사람들은 시에서 소식을 얻기 어렵지만, 많은 사람들이 결국 중요한 것을 얻지 못해 비극적으로 죽어간다) 미국 '이미니즘' 시학의 핵심으로 꼽히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 1883~1963)는 인생의 말년에 쓴 시 '아스포델, 저 지옥 같은 꽃'(Asphodel, That Greeny Flower)에서 이와 같은 문장을 토해낸다. 감성이 메마른 시대, 오직 삶의 실리만 앞세우는 시대에 대한 비관을 담은 이 문장은 한 마디로 "시 따위는 인생에 도움이 안된다"고 외면하는 시대를 향한 작가의 한탄이 담겨 있다. 작가는 시가 현실의 ‘정보’(실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고 인정한다. 허나 동시에, 시를 외면한 채 실리만을 좇는 사람들이 결국 ‘중요한 것’, 곧 영혼을 상실한 채 비극적으로 죽어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영혼을 가진 인간에 있어 삶의 정답은 결코 세속적 계산이나 효율 논리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소강석 목사가 최근 출간한 『영혼을 담은 시 쓰기』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60여 년 전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당대 사회를 향해 던졌던 한탄에 대한, 오늘의 응답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살던 당시는 스마트폰이 지배하고 AI가 인간을 대신하는 지금보다 인간애(愛)가 훨씬 더 풍성했음에도, 그는 산업화 속에 빠르게 메말라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을 염려했다. 반면 소 목사는 종교조차도 AI가 대신할 수 있는지를 논하는 무(無)감성의 시대 한가운데서 '메마른 영혼'에 대한 궁극적 회복을 꿈꾸고 있다. 시를 통해, 언어를 통해, 인간이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을 사수하는 것이다. AI가 글을 쓰고, 곡을 만드는 이 시대에도, 결코 인간의 감성, 즉 영혼의 영역은 결코 침범할 수 없다는 그의 강력한 믿음은 변화하는 시대에 '본질'에 대한 더욱 간절한 확신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제4차 산업 혁명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는데, 그는 AI에 대한 시대의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영혼의 갈급함이 커지기에, 이를 충족시킬 교회의 존재는 훨씬 더 두드러질 것이라는 예측을 했었다.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을 향해 '감성' '영혼'의 워딩을 토해내는 소강석 목사는 사실 그의 행보를 볼 때, 분명 엇갈리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는 분명 현존하는 한국교회의 최고 지도자 중 한 명으로, 코로나로 한국교회가 가장 힘든 시기, 위기를 넘겨낸 불세출의 인물로 꼽힌다. 지금도 정치, 지도자의 영역에서 분명한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그에게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실리를 담보치 않은 '감성'은 굳이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정점에서도 '감성'을 노래하고 '영혼'을 구하는 그의 행보는 어쩌면 지독히도 초심에 집착하는 천상 목회자의 모습인 듯 싶다. 60년 전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며 한탄한 미국의 한 시인과 오늘 이 시대의 영혼에 다시 숨을 불어넣고자 애쓰는 한국의 한 목회자.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밥만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다. 소강석 목사의 초심이 너무도 아름다운 것은 바로 그가 교계의 정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 최고가 된 자리에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돈, 명예, 정치, 권력이 아닌 바로 '영혼'임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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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소강석 목사의 ‘감성’이 존중 받아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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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도는 우리 구주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성도수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코로나 정국에 떠난 젊은층이 대부분 교회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이대로 가다 간 한국교회에 정말 큰 사단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 전국 6만 교회에 전임 목회자만 20만 명이 넘는다. 이들에 대한 생활비만 해도 많은 예산이 필요한데, 교세가 급감하니 자연히 헌금도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되면 목회자를 모실 수 없는 교회가 생겨나게 되어 교회의 통폐합이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가족을 부양해야 할 목회자들은 소리 소문 없이 교회를 다른 직업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4천만명이나 남아 있다. 이들에게 전도가 절대로 필요하다. 교회는 전도를 금지하는 법률이 있던 시대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으면서 전도에 목숨을 걸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처럼 종교의 자유를 한껏 누리면서 전도가 자유로운 세상에서 교인이 줄어들고 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뭔가 우리 한국기독교의 전도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닌가? 요즘 우리사회에는 오히려 보편적 교회에서 이단시 되는 '사이비' 집단이나 신흥종교가 전도에 열을 올리고 있고, 막상 '진짜 복음'을 전한다고 자랑하는 기성 교회는 잠잠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 정국 이후 교회가 잠자고 있다는 말을 것이다. 마치 바다 고기가 스스로 물 따라 떠밀려 와 그물 안에 들어온 것만 잡는 정치망처럼, 교회당 지어 놓고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회당 밖에 사람들이 모두 우리교회 예비 신자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교회가 통폐합의 위기에 내몰리고 목회자의 자리가 줄어 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한국교회가 60-70년대 전도 대부흥의 시대에 했던 것처럼 전도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선적으로 나설 일은 주일예배에 참석하지 않는 교인들과 교회를 떠나 행불자가 된 옛 교인들을 찾아 심방하는 일과 주일학교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전도하는 일에 모든 힘을 경주하는 일이다. 가능하면 지역의 교회들이 개교회 전도보다 초교파적으로 힘을 모아 연합전도에 나서는 것도 좋다. 그렇게 하면 지역 주민들에게도 신선한 신뢰를 보일 수 있다. 개교회는 총동원 전도에 목표를 정하고 모든 교인의 체계적인 전도훈련이 필요하다. 그 길만이 한국교회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전도는 사명감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우리를 구원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 자랑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 팔불출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자랑하고 쉽지 않은가? 다시 말하거니와 교회의 존재 이유와 그 사명은 전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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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전도는 우리 구주 예수를 자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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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선지자 이사야
- ▲ 선지자 이사야는 주전 7세기 앗수르 왕 산헤립의 유다 침공 시대의 예언자이다. 그는 구약 선지자 가운데 그리스도(메시야)의 탄생과 고난을 가장 적나라하게 예언한 선지자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하시고,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웠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호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 9:6,7)라고 했다. 창세기로부터 점진적으로 나타난 이 메시야 예언은 이처럼 이사야에 와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 이사야는 다시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사 53:2-8). 이는 구약의 예언서 가운데 가장 명확히 그리스도 예수의 고난을 드러낸 예언이다. ▲ 이사야의 이 예언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는 그리스도(메시야)에 대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기독교였다.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데 묻노니 선지자가 이 말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 8:34,35).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당시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왔다가 마차를 타고 가면서 읽은 글이 위에 인용된 이사야 53장이다. 기독교는 이사야 53장의 내용이 메시야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임을 깨닫고, 그가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의 생과 삶에서 드러난 것임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유대인들은 똑 같은 이 예언을 읽으면서도, 불행하게도 이 예언이 나사렛 예수를 가리킨다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여기에서 갈라진다. ▲ 또 이사야는 말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 이것이 바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즉 세상을 구원하는 복음의 승리를 가르키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 나타난 단순한 종교단체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섭리를 전파하는 복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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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선지자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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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오 칼럼] 통일교 과연 해산할 수 있나?
- 통일교가 일본에서 정경유착으로 집안이 풍지박살 났다고 여긴 청년에 의해 아베 전 총리가 피격 당하는 사고를 내자, 일본 정계가 발칵 뒤집혀 끝내 정부의 요청으로 통일교가 법원에 의해 해산명령을 받았다. 이 사건이 한국 정치권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통일교가 한국에서도 여야 정치권을 돈으로 매수한 사실이 밝혀져 한학자 총재와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 등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커진 것이다. 야당의 권성동 의원이 당시 여당일 때, 통일교 본부로 찾아가 한학자 총재로부터 금품을 수수했다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고, 또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과 장차관 등 수십명에게도 통일교 자금이 뿌려졌다는 것이 특검으로부터 나온 의혹이다. 그러자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정교분리를 위배한 종교단체에 대해 해산을 검토하라는 발언을 해 통일교가 긴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는 통일교라는 말은 없었지만 일본의 최근 예를 언급하면서 이같이 발언했기 때문에 통일교에 대한 압력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 언급은 통일교 관계자들의 여권에 불리한 진술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혀지고 있다. 그러자 교계 주변의 이단연구가들이 통일교 해산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교계의 또 다른 이목을 끌고 있다. 한국 기독교 주변에서 가장 대표적 이단 사이비로 규정되고 있는 통일교를 이 참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흔들어 놓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다르다. 일본에는 종교법인법이 있어 종교도, 단체도 이 법에 의해 당국에 신고하고 등록해야 한다. 그리고 등록 당시에 명시한 목적에 위배되는 불법 행위를 한 종교단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그 등록의 취소를 법원에 제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헌법 제20조의 종교자유 외에 종교법이 따로 없어 종교단체를 정부에 신고하거나 등록하지 않는다. 종교에 관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단체의 불법 행위는 형사법으로만 처벌이 가능할 뿐, 종교단체를 불법화 하거나 취소할 수는 없다. 현행 종교단체는 재단법인이나 사단법인 또는 사회적 임의단체로 운영된다. 이는 민법 제32조 비영리법인(사단법인, 재단법인, 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과 허가에 따른 것이다. 다만 그 종교단체가 국가 안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거나 사회 공익상 질서를 현저히 해했을 경우에는 법원 판결을 통해 해산이 가능하다. 그것은 민법 제38조 법인의 설립허가의 취소에 따른다. "법인이 설립의 허가를 받은 목적 이외의 목적을 위하여 그 행위를 하거나, 그 외 사유로 공익을 해한다고 인정한 때에는 허가청은 설립의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이 때도 허가가 취소되는 것은 종교단체가 아니라 법인이다. 같은 종교단체 안에도 법인도 있고, 비법인도 있다. 따라서 종교단체 자체를 해산시키려면 그 종교단체가 심대한 사회적 불법을 저질렀을 때만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번 통일교 사건과 같이 정치권에 대한 정경유착 불법로비가 국가 안보나 사회 공익상에 위배되는 사건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지금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문선명이 설립한 통일교는 기독교 교리적 측면에서 볼 때 명백한 이단 또는 사이비 종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국의 신종교(新宗敎)라고 부른다. 통일교는 처음에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이름으로 기독교를 참칭하고 성경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그들의 교리나 성경해석은 전혀 보편주의적 기독교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이후 그들은 김백문의 '기독교 근본원리'에서 영향을 받은 문선명의 '원리강론'을 경전으로 삼았다. 이에 기독교에서 '이단' 혹은 '사이비'라고 공격하자, 세계가정연합으로 그 이름을 바꾸었다. 그럼에도 언론에서는 계속 통일교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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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춘오 칼럼] 통일교 과연 해산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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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국가의 기본이다’
- 1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국정감사를 통하여 조희대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출석시킨 가운데 회의를 진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조 대법원장은 ‘재판 사항에 대해 법관을 증언대에 세운다면 법관들이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 위축되고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현 여당이 조 대법원장을 국회 증인석에 세워 그야말로 ‘망신주기’를 하려는 것은 지난 2022년 대선에서 당시 이재명 후보가 ‘공직선거법’에 기소가 된 것을, 대법원에서 지난 5월 1일 고법의 판결이 잘못되었음을 확인한 ‘파기 환송’을 결정한 때문이다. 이 사건은 2022년 9월에 기소가 되었다. 그리고 2024년 11월 15일 1심에서는 ‘일부 무죄’를 선고했고, 2심에서는 2025년 3월 26일에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는 2025년 5월 1일 ‘유죄 추정’의 ‘파기 환송’을 한 것이다. 보통 ‘선거법 위반’은 ‘6•3•3원칙’을 지킨다. 즉 기소에서 1심까지 6개월, 2심까지 3개월, 그리고 3심까지 3개월로 재판을 끝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이 이렇듯 ‘6•3•3원칙’을 제대로 지켰다면, 결말이 나는데 2023년 8월까지 마쳤어야 했다. 그런데 재판을 질질 끌다가 2024년 말부터 신속하게 처리하려 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재판 결과에 대하여 입법부가 사법부를 ‘사법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대법원장을 국회로 불러다 정치적 압력을 넣는 것은, 삼권분립의 요체인 사법부를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라며 깔보는 것으로 국민들은 느낀다. 그러나 삼권(三權)은 어떤 것이 세고, 혹은 약하고의 순서가 없다(사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하여도, 법관들은 고도의 법률 지식과 그와 함께 법률 적용에 대한 훈련이 요구되는데, 국민들이 투표로 선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장은 국정감사에 나와 인사말만 하고 퇴장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리고 답변은 법원행정처장이 해 왔다.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수장으로, 사법부에 대한 예우도 있지만, 그보다도 국가의 ‘삼권분립’을 해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국회가 대법원에서 판사가 헌법과 법률과 양심적 법리를 따라 판결한 것을 가지고, 따져, 옳다느니, 그르다느니 한다면, 모든 법관들의 판결은 부정될 수 있다. 그럼, 누가 국가기관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를 흔든다고 사법개혁이 되는 것이 아니고, 사법부의 수장을 망신 주어 내쫓으려고 한다고, 사법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과거 2018년 현 정권이 권력을 가진 집권 여당일 때,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을 국정감사장에 내세워야 한다는 일부 야당 의원의 주장에 대하여 삼권분립을 이유로 반대하여 사법부를 옹호한 정당이 누구인가? 지금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걸핏하면, ‘무슨 개혁, 무슨 개혁’을 주장하는데, 이것이 정말 국민과 국가를 위한 개혁일까? 어느 언론인은 ‘집권 세력이 현재의 대한민국을 일구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집권층이 비난하는 이승만의 건국과 호국 및 교육입국, 박정희의 산업화와 자주국방이 없었다면, 식민지 피지배국에서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라고 반문한다. 사법부의 핵심인 일선 법관들은 상당히 외부의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법관들에게 ‘특정 사건에 대하여 외부적 압력을 받은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47.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14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전국의 법관 69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내용이다. 이때의 조사에 의하면, 법관들의 85%는 그 ‘부적절한 외부 압력을 국회로 보고 있다’고 한다. 또 외부 압력을 넘어 협박이나 위협을 받은 경우도 26.7%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사법부를 지켜주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국회가 사법부의 법관들에게 압력을 넣는 것도 모자라서, 아예 대법원장을 증인석에 앉혀 법률적 판단에 대하여 시비를 한다면 그것이 사법개혁의 올바른 방향인가를 묻고 싶다. 오늘의 이런 문제에 대하여 우리 사회의 존경받는 원로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국내 정치는 어떠한가? 대한민국 정치에서 보기 어려운 반(反)자유, 역(逆)민주의 수준 낮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의 국회가 국민을 대표한다고 믿는 이는 드물다. 국회는 본래의 주어진 기능을 민주당에 빼앗겼고, 민주당은 잘못된 운동권 세력과 스스로를 개혁의 딸이라 지칭하는 집단에 실권을 내주었다’고 개탄하고 있다. 국회나 행정부는 우리 국민들이 직법 선출한 권력이다. 그렇다면 현재 막강한 힘을 가진 권력들은 그들을 뽑은 국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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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삼권분립(三權分立)은 국가의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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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목회자 구속은 한국교회의 문제다
- 지난 8일 부산의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에 대하여 부산지방법원 엄 모 영장 전담 부장 판사는 ‘도망의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발부하여, 현직 목회자를 구속하였다. 이에 대하여 법조계에서도 ‘종교인을 무리하게 구속했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정치적인 이유로 교회와 종교 지도자를 탄압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손현보 목사가 ‘세이브코리아’를 이끌며, 윤 전 대통령의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고, 교육감 후보자와 대담한 것을 유튜브에 올린 것은 맞지만, 이것을 ‘괘씸죄’로 여겨, ‘도주로 간주하며’ 현직 목회자를 구속한 것이라는 견해들이 많다. 이에 대하여 몇 가지를 생각해 본다. 손현보 목사의 정치적 발언이나 행동은 국가를 위한 것으로, 성직자는 국가와 권세를 가진 권력자들이 잘못할 때, 얼마든지 신앙과 양심의 소리를 낼 수 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랬고, 역사 가운데 선각자들이 바르고 옳은 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종교 지도자의 외침은 정치인들의 정치적 손익계산과는 사뭇 다르다. 오로지 국가의 안위와 발전과 안정과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발로(撥路)이다. 현재 사법부는 삼권분립의 해체 수준을 당하고 있다. 그만큼 사법부가 법률 적용과 ‘법치주의’를 제대로 견지하지 못하고, 정치권에 휘둘려 온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정치권이 사법부를 함부로 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사법부는 왜 목회자는 감옥에 가두면서, 권력자들에 대한 재판은 중단하고 있는가? 누구는 법 위에 서 있고, 누구는 법 아래 두는 것인가? 한국 기독교계는 이번 사건을 ‘정치 운운’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분명한 종교와 표현과 양심에 대한 탄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직 목회자도 현행법에 저촉을 받아야 되는 것은 맞지만, 손현보 목사는 얼마든지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나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교회 현직 목회자를 도망갈 수 있다는 추측으로 구속하는 것은 종교와 양심에 대하여 재갈을 물리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권력의 세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신(人身)구속으로 고통을 준다는 사인이며, 증거로 본다. 여기에 침묵한다면, 우리 기독교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공정에 대하여 입을 닫아야 할 것이다. 우리 기독교는 복음 전래 이후 140년 동안 오직 ‘애국의 종교’였으며, 근현대사에서 이 나라 발전의 기틀이었고, 근간이었다. 학교, 병원, 복지시설, 인권, 생명 사랑, 남녀평등, 평화, 자유민주주의가 형성되는데 대단한 동력(動力)이 되었다. 따라서 권력에 의하여 종교 탄압을 받는 것을 방관하지 말고, 이 땅에 양심 세력, 하나님에 의한 통치와 질서가 세워지는 것에 협력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누가 바르고, 옳고 정확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어쩌면 기독교가 우리 사회를 떠받드는 마지막 보루(堡壘)가 되고 있지 않은가! 이번 사건은 단순히 어느 지방 목회자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이 아니라, 언제라도 권력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무릎을 꿇리려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방치하면, 다음은 내 차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성직자들은 불의와 부정과 부패와 독재에 대하여 못 본 척, 못 들은 척할 수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몰지각한 목자들을 꾸짖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사56:10)라고 책망하신다. 지금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하늘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공법(公法)을 외쳐야 한다. 정부와 사법 당국은 과도하게 목회자를 인신 구속한 것을 사과하고, 속히 석방시키며,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유념하기 바란다. 이 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제대로 지키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사회였다면, 굳이 목사들이 나서서 이 나라의 정치 상황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력자들은 양심 세력의 목소리를 부당하게 억압하려 하지 말고, 그 소리를 진심으로 들어 주기 바란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제2, 제3, 그리고 수많은 손현보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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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목회자 구속은 한국교회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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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합동중앙의 정통성과 김록이 목사의 복귀
- 최근 양평힐링기도원 제2성전 건축으로 한국교회 재부흥의 깃발을 내건 김록이 목사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양평힐링기도원에서 주기적으로 열리는 현장 집회가 연일 대성황을 이루는 것은 물론 김 목사의 유튜브 채널은 이미 10만명을 넘어섰다. 온라인에서 그의 영향력이 이미 세계로 뻗어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주목할 것은 이미 충분한 유명세를 구축한 김 목사가 돌연 지난 9월 총회에서 그의 모(母)교단인 예장합동중앙(총회장 권필수 목사)으로 복귀를 선언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무려 신학목회연구원의 제3대 총장과 재단영구이사장직으로 말이다. 이런 김 목사의 선택이 의아스러운 것은 이미 그는 한국교회 최대교단에 올라선 예장백석총회에서 매우 안정된 목회를 보장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굳이 극한 난장에 놓인 합동중앙에 올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합동중앙 출신의 김 목사는 일전에 백석총회에 새둥지를 트고 본격적인 힐링 부흥, 힐링 목회를 시작했다. 한국 장로교 재통합의 기치를 내 건 백석총회는 장종현 목사의 영향 아래, 중소교단을 흡수하며, 엄청난 교세 성장을 이뤘고, 이제는 예장합동측과 더불어 국내 2대 교단 반열에 올라섰다. 여기에 김 목사는 최근 양평힐링기도원 제2성전을 구축하며, 무너져 가는 기도원 문화의 유일한 돌파구로 주목받던 상황, 여기에 더해진 백석총회라는 배경은 김 목사의 기도원 성공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열쇠였다. 하지만 김록이 목사는 안정된 성공을 뒤로하고, 올해 9월 합동중앙으로 돌아왔다. 교단은 지난해 분란과 이탈측의 여파로 여전히 어수선하고, 재정, 행정 모든 면에 있어 백석총회와 비교가 불가했지만, 굳이 고난의 길을 택한 것이다. 김 목사가 지난 9월 총회에서 밝힌 복귀의 이유는 복잡한 듯 했지만 매우 간단했다. 모 교단에 대한 책임과 사명, 무엇보다 애초 백석총회로 간 것이 합동중앙으로의 복귀를 염두한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마치 조선시대 선진문물을 공부하기 위해 고된 청나라 유학을 자처했던 학자들과 같은 모습이었다. 백석총회에서의 경험과 한국교회 재부흥의 선두로 주목받는 그의 이력은 새로운 회복을 준비하는 합동중앙에 있어 절대적인 도움이 됐다. 마치 하나님이 예비하셨던 계획인 듯, 그의 복귀는 교단이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그가 필요로 하던 시기에 이뤄진 것이다. 무엇보다 교단 회복의 핵심으로 꼽히는 신학목회연구원의 제3대 총장까지 맡았다. 그의 영향력은 위에서 주지했듯 오프라인은 물론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만큼, 김 목사의 이름값이 교단 신학교에 입혀질 수 있다면, 그 시너지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근래 계속되는 김 목사를 향한 근본없는 일각의 시비다. 그의 신학성을 운운하며, 시비하는 일각의 행태는 정당함보다는 질투(?)에 가깝다. 이미 김 목사는 백석총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신학의 건전성을 검증 받은 인물임에도 말이다. 백석총회는 근래 교단 규모가 급작스레 커지며 나타난 부작용을 예방키 위해 여타 장로교단과 달리, 교회 및 회원 관리를 단순히 노회에 맡기지 않고, 총회가 직접 일일이 검증한다. 김 목사 역시 백석총회에서 신학적인 부분을 매우 면밀히 검증받은 인물이라는 뜻이다. 지난 7월 양평힐링기도원 제2성전 입당 예배 당시 백석총회 이단대책위원장 박계환 목사도 이 부분에 대해 "김록이 목사의 신학적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 항간에 일고 있는 불필요한 시시비비에 대해 백석총회의 이름으로 모두 거짓임을 확인해 준 셈이다. 사실 김 목사에 대한 이런 불편한 시비는 김 목사 자체에 대한 이슈라기보다 현재 합동중앙이 처한 상황의 여파로 보여진다. 지난해 합동중앙은 일부 인원들의 이탈로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 고 강용식 목사가 설립한 합동중앙총회는 지난 역사에서 수차례의 분열을 겪으며 정통성에 대한 부분이 매우 중요한 교단이 됐다. 지난해에도 교단 이탈이라는 혼란 속에 이종남 총회장이 고군분투하며, 합동중앙의 정통성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다. 그런 합동중앙에 대외적으로 영향력을 갖춘 김록이 목사의 복귀는 합동중앙의 정통성을 무너뜨리고자하는 누군가에게 매우 눈엣가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미 교계 연합단체들에 이를 문제삼는 이간질(?)이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합동중앙은 예전에 비해 교세가 현저히 적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생교단’으로 성공한 사례적 측면에서 한국교회사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한국교회 최고 부흥을 이끌던 오산리, 용문산, 한얼산 등의 기도원 문화를 다시 살리는 것은 회복을 고민하는 한국교회에 있어 반드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적 가치가 불필요한 시비에 희생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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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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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합동중앙의 정통성과 김록이 목사의 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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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구속 사태를 보고
- 부산지방법원은 지난 8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를 이끌던 세이브코리아 대표 손현보 목사를 공직선거법 위반협의로 구속했다. 손 목사가 유튜브 등을 통해 부산시 교육감 사전선거운동에 개입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예장고신측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는 지난 봄에 윤석열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아 전국적으로 탄핵반대 집회를 대대적으로 이끌었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손봐야 할 인물 중에 한 사람으로 찍힌 것으로 보인다. 손현보 목사의 세이브코리아 운동은 한국기독교 목사로서 그 양심에 따라 나선 선한 행동이다. 이만한 결단력을 가진 목사를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손 목사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 시킨 것은 종교의 자유를 심대히 침해하며,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양심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고신측 뿐 아니라, 모든 한국기독교가 손 목사에 대한 구속의 부당성에 대해 항의해야 한다. '우리 교단과는 관계가 없다, 또는 내 생각과는 달라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일원으로서 옳은 태도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특히 한국교회는 교파나 교단이 달라도 모두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사야는 오만한 정치세력, 부패한 사회를 향해 끽소리도 못하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 대해 '벙어리 개'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 꾸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사 56:10). 이 말은 이 시대 목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이 시대는 정치집단이 모든 국민의 생활을 좌지우지 한다. 콩나물 값 하나, 두부 한 모도 정치권의 결정에 좌우된다. 모든 국민의 삶을 정치가 좌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정치세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언론뿐 이니라, 모든 국민이 관심 가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고, 특히 우리 사회의 정의를 대변하는 종교의 몫이기도 하다. 따라서 목회자 또는 종교인들이 이런 사태를 강건너 불구경 하듯이 남의 일로만 여기게 되면 언젠가는 그 불길이 한국교회 전체로 번져 자신의 옷자락에도 옮겨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 독일 나치에 항거했던 우리가 익히 아는 마틴 니뮬러 목사의 시 한편을 인용한다. "처음에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또 사회주의자들을 잡으로 왔을 때,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다시 노동조합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그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또다시 유태인들에게 왔을 때,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이제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70-80년대 정치권에 대해 그렇게 당당했던 한국교회가 왜 이처럼 주눅이 들었는지, 벙어리 개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이다. '손현보 목사가 잘 난체 해서 밉다거나, 교단이나 교계의 동의도 없이 세이브코리아를 조직해 정치적 문제에 개입했다'거나 하는 비판도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은 한국교회가 하나되어 손 목사 구속에 대해 항의해야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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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 구속 사태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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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언행에 품위있는 지도자가 그립다’
-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최근에 새로운 인물들이 국가의 공직자로서, 지도자가 되겠다고 국민들 앞에 노출이 되고 있다. 그들 가운데 과거에 자신이 행동하고 했던 말들이 드러나면서, 그들의 품위와 인격이 알려진다. 듣는 사람들은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내용들도 있다. 그중에 부총리급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과거에 했던 말은 소름이 끼친다. 그는 전교조 출신 교사였는데,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참여하여 ‘잘 가라 병XX’이라고 했단다. 그해는 붉은 원숭이해라고 하여, 병신년(丙申年)이었는데, 그가 쓴 말은 그 해가 잘 가라고 했을까?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 운동이 열린 세종문화예술회관에 딸과 사위와 함께 나왔다며, ‘박근혜를 구속하라’는 손팻말을 든 사진까지 SNS에 올렸었다. 그리고 201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격 사건을 맞아 ‘탕탕절’이라고 썼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그런 표현을 굳이 쓰고 싶었을까? 그리고 2021년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자녀 입시 비리 수사를 두고 ‘검찰의 칼춤’이라고 표현했다. 이때 당시 많은 젊은이들이 실망하고, 심지어 같은 정치적인 성향을 가졌던 사람들도 여기에 분노하여, 떠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를 동조하다니. 또 수행 여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3년 6개월 실형을 받은 전 지사에 대해서는 ‘사법 살인’이란 취지의 글을 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진보는 인권을 중요시한다면서, 이렇듯 피해를 당한 여성에게 두 번 고통을 주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과연 교육부 수장이 될 자격이 있나? 그런가 하면 고용노동부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은 주적이 아니라는 통일부장관의 발언에 동의한다고 하였다. 그는 민주노총에서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사람으로, 2011년 북한의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조문을 가기 위해 방북 신청을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건으로 전사한 우리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는 갈 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고위 공직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과거 막말 행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사혁신처장의 막말들은 압권이다. 그는 유튜브와 SNS를 통하여 여러 정치인과 정당, 고령자, 장애인, 여성에 대한 막말을 서슴없이 해왔는데, 그가 사용한 말들은 옮기기조차 어렵다. 그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험한 ‘말 폭탄’을 사용해 온 사람이다. 또 엊그제는 국민들의 거센 반발과 비난 속에, 자녀의 입시 비리 등의 문제로 지난해 12월에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형기(刑期)를 반도 못 채우고 나온 전 법무부장관이 서울 강남의 비싼 고기집에서 식사를 하고, 된장국만 사진에 올려, 처음에는 사람들이 소박한 식사를 했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그의 ‘위선적 행동’에 분노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도자의 삶은 그의 언행심사(言行心思)를 통하여 다 드러난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한 말들이 기록이나 영상으로 잘 남지 않았기 때문에 상세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요즘은 자신의 생각과 말을 자랑스럽게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스스로 SNS에 퍼트렸던 것들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삽시간에 공개되고 잘못된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그들이 일반인이 아닌, 고위 공직자라는 것이다. 과거 자신의 부끄러운 말들이 알려지고, 그것이 품위를 지키는 말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공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또 국가의 품격은 어떻게 되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언13장 3절) ‘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잠언18장 7절) 명심보감(明心寶鑑)에서도 ‘입과 혀라는 것은 화와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이는 도끼와 같다’고 했다. 아프리카의 모로코 속담에는 ‘말이 입힌 상처는 칼이 입힌 상처보다 깊다’고 했다. 말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그의 인격을 나타낸다. 말과 행동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과 선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그를 과연 지도자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바르고 품위있는 인격을 갖춘 지도자들이 그리운 시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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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 토요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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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언행에 품위있는 지도자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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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대통령에게 손해 배상을 받는다?’
- 최근에 1심 재판부에서는 전 대통령에게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는 사람들에게 1인당 10만원 씩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전 대통령에게 손해 배상을 인정한 첫 사례로, 이런 일들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변형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지난 25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단독의 이 모 부장판사는 국민 104명이 윤 전 대통령을 상대로 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각각 10만원 씩과 지연손해금까지 지급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당초 이번 소송은 현재 채 상병 특검의 특검보를 맡은 이 모 변호사가 지난해 12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하여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이 변호사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의힘 의원 105명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송 참여자를 105명으로 한정하여, 처음에는 주변의 지인들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불특정 다수까지도 포함했다고 한다. 이런 사태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또 다른 쪽에서 비슷한 소송을 준비하는 김 모 변호사는 이번에는 1만명 가량이 참여하는 2차 손해 배상 청구를 할 것이라고 예고하였다. 그는 전 윤 대통령에 대하여 형사책임뿐만 아니라, 물질적 손해 배상까지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란다. 사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소송은 지난 2017년에도 있었는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하여 4,000명이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하여 자신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었다. 우리 사회는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일들이 종종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현상들이 바람직한 것인지, 혹은 지나친 것인지 여러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타인으로 인하여 입는 정신적 피해는 얼마나 될까?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적은 없을까? 정말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면, 물질로 배상이 끝나면 되는 것인가? 손해 배상을 청구하여 막상 돈을 받는다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쓰게 될까? 그리고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에 의한 손해 배상은 얼마나 될까? 국민들이 모두 손해를 입었다고 전직 대통령에게 소송을 건다면 그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들 가운데 특히 대통령을 지낸 분들 가운데 박근혜, 윤석열 대통령만 국민들에게 정신적 피해를 줬을까? 대통령을 지낸 분들이 모두 국민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면 배상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또 지금도 대통령을 지냈거나, 현직에 있는 분은 나중에 과연 자유로울까? 우리 국민들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국민들이 선택하여 대통령을 뽑아놓고 그분들에게 손해 배상을 청구한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대통령은 누가 있을까? 이런 판결을 해야 하는 법관이나 재판부는 언제나 동일한 잣대로 재판을 할까? 우리나라는 ‘법치주의국가’라고 하는데, 과연 법이 제대로 지켜주고 있으며, 모든 것을 충족시켜 줄까? 비록 현행법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국민들은 과연 현명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더욱 경직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전 대통령에 소송을 걸어 배상을 받는다 하여도 그것이 그리도 통쾌하고 즐거운 일일까? 또 법원은 계속하여 이번처럼 전 대통령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원고들의 편을 들어주게 될까? 별별 생각들이 다 든다. 우리 사회에는 각계의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영적,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종교 지도자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치 지도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상외로 크다고 본다. 과거 역사와 현재 전 세계 여러 나라를 보아도, 정치 지도자 한 사람으로 인하여 국가의 흥망이 좌우된 사례는 많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적 심판과 역사적 단죄를 받은 경우들이 많다. 정치 지도자에 대한 잘•잘못은 여러 기준과 판단 근거가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정치를 성숙하고, 현명하고, 협치와 상생을 통한 잘하는 정치로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치를 보면 답답함이 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지금은 별로 힘도 없고 권력도 미미한 정치인에게 쏟아붓는 비난과 모욕보다는, 실제로 큰 권력을 가진 세력에 대한 감시가 우선이 아닐까! 선진국의 대통령들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국가의 일에 대하여 서로 협력하고, 중요한 행사에는 한 자리에 모여 다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럽다고 생각한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감옥’ 아니면 ‘원수지간’이 된다. 정말 우리나라는 선진 국가들처럼 할 수 없나? 국민들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갈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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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대통령에게 손해 배상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