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골Home >  연지골
실시간뉴스
실시간 연지골 기사
-
-
[사설] 종교적 근본주의가 망가뜨린 나라
-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 미국의 직접 개입으로 그나마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어 다행이다. 대체로 국가 간 충돌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끼리 다툰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이란은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데도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시오니스트라며 그 존재를 부정한다. 이스라엘은 시오니즘 운동으로 건국된 나라이니 시오니스트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란의 이슬람 시아파 종교지도자의 입에서 '시오니스트'라고 하는 것은 곧 이슬람에 대한 테러리스트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들린다. 그러니 이스라엘은 이란이 핵을 가지게 되면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위협이 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핵이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테러집단의 손으로 넘어갈 것을 우려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절대로 이란의 핵 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 이란은 문화와 역사가 깊은 나라이다. 일찌기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팔레비 왕조까지는 친서방 정책으로 신생 이스라엘과도 잘 지냈다.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 팔레비 왕조를 몰아내고, 미국과도 외교를 단절하고 반서방노선을 견지하며 시아파의 맹주노릇을 자임하기 시작하면서 서방측과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하면서 불량국가로 변질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우리말에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대로 중동의 모든 반이스라엘 테러리스트의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는 말을 들어온 것이다. 서방과 대척점에 선 이같은 이란의 외교노선은 결국 이슬람 혁명을 빙자한 근본주의 종교지도자들의 권력 유지 수단과 맞물려 있다고 봐야 한다. 전 세계에 석유 수출로 국가 경제를 유지하는 이란은 외교가 중요한 나라인데도, 굳이 서방측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순전히 이슬람 근본주의 종교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한 수단이이다. 어느 시대, 어느 국가나 종교적 근본주의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 결국 그 사회는 퇴보한다. 오늘날과 같은 탈종교화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다민족사회인 이란의 경우 이슬람 시아파는 국민의 60%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슬람 종교정권을 떠받치고 있다. 이란은 이슬람 혁명으로 서서히 망가져 가고 있다. 특히 이번 미국의 적극적 개입으로 이스라엘과의 휴전이 이루어져 다행이다.
-
- 연지골
- 사설
-
[사설] 종교적 근본주의가 망가뜨린 나라
-
-
[사설] 우리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원동력
- 대한민국은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시대에 이르고 있다. 이대로만 나아가면 수십년 내에 선진국을 넘어 세계로부터 문화대국이란 부러움을 살 수도 있다. 이미 전 세계로부터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 들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의 정치와 경제 상황이다. 오늘날 같이 정국이 불안정하고 보혁간 이념투쟁이 지속되면 경제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거기에다가 자칫 좌파 정권이 포플리즘 정책에 매달리게 되면, 공들여 쌓아온 외교와 경제가 타격을 받아 남미 베네수엘라 꼴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과연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나아갈 수 있느냐는 문제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다. 국민의 절대적 각성이 필요하다. 정치안정과 경제성장에는 반드시 국민의 정신 수준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국민의 정신이 미개하면 아무리 애를 쓰도 문화적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종교적 가치관이다. 사회적 주류종교가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에 서 있느냐에 따라 국민의 정신 수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해방 후 이만큼 선진화 된 데에는 기독교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컸다. 세계종교에 유일신관을 가진 종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유대교이고, 둘째는 기독교이며, 셋째는 이슬람이다. 이 셋 다 성경의 아브라함의 유일신관에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 기독교만이 세계화 인류화 되어 있을 뿐, 유대교는 유대인들의 민족종교에 지나지 않고, 이슬람은 아랍인들의 종교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중세 기독교는 각 시대정신에 맞는 신학을 제공하고 있어 사회 정치 경제 발전에 있어서 기독교 신앙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주류종교인 한국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제는 한국교회의 신앙형태이다. 한국 개신교회는 약67%가 개혁파인 장로회주의 교회이다. 중세 종교개혁으로 파생한 개혁파 교회는 그 가치관이 그 어떤 기독교 종파 보다 뚜렷하다. 그런데 한국의 장로교회는 몇 가지 극복되어야 할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기복주의이고, 둘째는 개교회주의이며, 셋째는 세속주의이다. 이런 신앙형태의 극복 없이는 종교적 미개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사회가 일류국가가 되고, 더 나아가 초일류국가가 되려면 먼저 주류종교인 한국교회의 신앙의식 수준이 향상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기독교가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원동력을 유지할 수 있다.
-
- 연지골
- 사설
-
[사설] 우리사회 정치 경제 문화 발전의 원동력
-
-
[연지골] 선지자 사무엘
- ◇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 광야 생활 중에 레위족에 속한 '고라'라는 인물이 있다. 이는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반기를 든 인물이다(민 16장). 고라는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인데, 그는 같은 레위족인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여 유력한 지휘관 250명과 함께 당을 지어 모세와 아론에게 "모든 회중이 다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며 정면 대항했다. 이에 성경은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32-33)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호와께서 세운 지도자를 거스르는 자들이 어떻게 패망하는가를 보여주는 실예로 거론되는 사건이다(유 11절). ◇ 이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시기 사사 시대 말기 사무엘이란 선지자가 있다. 이 사무엘이 구약성경 사무엘서의 중심 인물이다. 에브라임 산지 사람 엘가나와 한나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얻은 사무엘은 실로의 제사장 엘리의 문하생으로 자랐다. 그는 사사요, 선지자요, 제사장을 겸한 특이한 존재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스라엘의 초대 사울 왕조를 탄생시키고 사울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판단되자, 곧바로 다윗을 왕으로 세워 다윗 왕조의 출범을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무엘이 일찌기 모세와 아론에게 대적했다가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그 일족이 망한 고라 자손의 17대 손이라는 점이다(대상 6:33-37). 가히 반역으로 저주를 받아 멸족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은 집안의 후손이 사사이고, 선지자이며, 제사장으로서 이스라엘 초대 왕조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 사무엘은 젖 뗀 후에 그 부모가 서원한 대로 실로의 제사장 엘리에게 맡겨져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자랐다. 그리고 엘리가 죽은 후 제사장 겸 사사가 되었다(삼상 4:18). 제사장 직(職)은 본래 그 아들들에게 세습되는 직이었다. 그러나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하고 품행이 좋지 않아 일찍 죽고 그 직이 사무엘에게 맡겨진 것이다. 사무엘도 제사장 직을 이어 받을 수 있는 레위족이었기 때문이다. 사사 사무엘은 당시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던 이방 신들, 즉 바알과 아스다롯 등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신앙에 투철한 신앙인이었다. 사무엘은 라마를 주거로 하여 벧엘, 길갈, 미스바 등을 순회하며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사무엘의 사사직은 두 아들들에게 세습되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지도자였던 사무엘도 그 자식들의 교육에는 실패하여 민원이 끝이지 않았다(삼상 8장). ◇ 레위족 고라는 특별히 여호와의 택함을 받아 지도자로 세움을 받은 모세와 아론을 시기하여 대적하는 바람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모두 화를 당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살아남은 자가 있어 집안의 대를 잇고 후대에 거기에서 이스라엘을 일으키는 큰 선지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하나님의 섭리이고 은혜이다. 이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으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 1:9).
-
- 연지골
- 연지골
-
[연지골] 선지자 사무엘
-
-
[기자수첩] 한국 기독교 140주년, 교회는 존중받고 있는가?
-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이라는 뜻깊은 한해를 보내고 있지만, 어째 한국교회의 분위기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일부 교단과 단체가 14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이벤트를 진행키도 했지만, 사회는 물론 기독교 내부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계엄과 탄핵정국, 그리고 대선의 여파로 한국교회는 자연스레 시국의 이슈에 묻혀 조용한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가 인천 제물포항에 첫 발을 디딘 140년 전 이 땅은 가난과 불평등이 지배한 암흑 그 자체였다. 허나 모두가 포기하고 외면했던 그 곳에 하나님의 복음은 기적을 싹틔웠고, 한국교회는 전 세계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최고의 교회들을 배출키 이르렀다. 1,000만명이라는 최대 집단, 최대 세력으로 성장한 한국교회는 단연코 대한민국의 가장 압도적인 주류가 됐다. 허나 오늘날 기독교의 사회적 입지가 심히 불안하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일군 절대적 공로자인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외면당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반국가 집단으로까지 매도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기독교 대다수를 '극우'로 몰며, 마치 한국교회가 국가의 가장 큰 골칫거리라 말하고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교회가 선거법 위반을 빌미로 공권력의 압수수색을 받는 것도 모자라, 상당수 목회자들이 '내란선동'이라는 이유로 고발까지 당했다. 국가와 국민을 향한 자유로운 의사 표현조차 '내란선동'으로 매도되는 것은 지금 이 사회가 결코 정상이 아님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여기에 굳이 이념의 잣대로 교회의 행동을 구분짓는 것은 오히려 교회의 순수한 애국심을 왜곡하기 위한 심히 의도적인 행위로 보아진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반역"이라고 했던가? 지난 탄핵정국 속 전국을 그야말로 뜨겁게 달궜던 한국교회의 '세이브코리아'가 이제는 언론들에 의해 '극우 집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140년 전 이 땅에 들어온 기독교는 의료, 교육, 경제 등 대한민국의 모든 토대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기독교가 없었다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복음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이 없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결코 허세가 아니다. 굳이 기독교의 근대적 기여와 업적을 알아달라고 읍소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회의 건실한 애국조차 이념의 잣대에 짓밟혀, 조롱당하는 현실은 어쩌다 교회가 이 지경까지 됐는지에 대한 불편한 자문을 하게 된다. 물론 교회의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 것은 스스로의 잘못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교회를 향한 의도적인 공격과 왜곡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 역시 사실이다. 사회와 국민은 기독교의 업적을 존중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렇게 무시해서도 안될 일이다.
-
- 연지골
- 기자수첩
-
[기자수첩] 한국 기독교 140주년, 교회는 존중받고 있는가?
-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司法府)가 정치부(政治部) 인가?’
- 우리나라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이다. 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하여 국가에는 ‘삼권분립’이 되어 있다. 즉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가 있고, 입법부의 기능인 국회가 있고,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가 있다. 이러한 체제는 서로의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여 국가 기관의 어느 일방에서 권력 남용과 부패를 막으려는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되면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를 견지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권력을 더 많이 가진 세력에 의하여 일그러진 모습으로 전체주의나 독재주의로 갈 수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런 사례들이 있었고, 현재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이 목격된다. 우리나라는 이달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받았고, 다른 여러 가지 혐의로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공직자선거법’ 파기환송심을 비롯하여, 배임과 뇌물 등에 대한 여러 건의 재판들이 무기한 중단되었다. 이는 헌법 제84조를 적용하여 사법부가 재판을 전면적으로 중단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연루된 사람들은 이미 여럿이 법의 심판을 받았거나 재판이 정리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재판에서 범죄 혐의 액수만도 5,000억 원이 넘는다. 일반인들 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범죄 혐의이다. 또 일반인들은 법망에서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사건들이다. 그렇다면 헌법 제84조는 제대로 적용된 것인가? 이 조항을 보면, ‘대통령은 내란 혹은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訴追)를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대통령은 아직 임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당장 ‘탄핵’을 당할 일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같은 헌법인 제68조 제2항에 보면, ‘대통령이 궐위(闕位)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놓고 볼 때,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판결이 궐위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 여러 가지의 범죄 혐의가 있었고, 그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공명정대(公明正大)하게 계속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헌법 제11조 제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도 법을 가장 중시하고 엄정하게 집행해야 하는 사법부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일방적으로 한쪽의 헌법 조항만을 들어서, 기약 없이 중대한 범죄 혐의를 심판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헌법 정신과 국민들의 법 감정에 맞는 것인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입법부를 구성하는 국회의원들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선출한다(비례 대표는 제외) 그러나 사법부를 구성하는 법관들은 국민들이 직접 선출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법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소양과 경험과 양심과 실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자리를 선출직으로 뽑을 수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따라서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진정 살아 있다면, 당연히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있었던 중대한 범죄 혐의에 대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 헌법에서 말하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것을 명백히 실현하는 것이 되지 않는가? 현 대통령도 과거에 전임 대통령에 대하여, ‘대통령도 죄를 지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것인가? 만약에 대통령에 대한 범죄 혐의가 재판을 통하여 사라진다면(혐의를 벗는다면) 오히려 떳떳한 대통령으로 국정에 임하지 않을까? 물론 대통령 임기 가운데 재판이 진행되면, 직무 수행과 국정 안정과 대외적 위신을 생각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되기 전에 가진 범죄 혐의가 자동적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런 국민적 혼란과 국가적 위신을 추락시키는 상황에는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권력 기관인 사법부가 ‘법치주의’를 지키려는 의지를 정말로 보여주어야 한다. 사법부(司法府)는 행정부(行政府)의 정치부(政治部)가 아니다. 이런 사법부를 향하여 새로운 정부에서는 대법관을 30명에서 100명까지 대대적으로 늘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법부로 뜯어고치려고 한다. 사법부 독립에 대한 의지는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훨씬 크고 민주주의 역사가 오래된 미국에서도 대법관은 9명, 영국은 12명, 일본은 15명뿐이다. 이에 대하여 전문가들은 대법관 숫자를 많이 두지 않는 것은, 법의 체계를 꿋꿋이 세우고, 국민들 사이에 소송이 남발하여 그 비용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사법부, 그 위상을 깊이 생각하고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함을 증명해야 한다.
-
- 연지골
- 토요시평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司法府)가 정치부(政治部) 인가?’
-
-
[기자수첩] 교회에 내란선동을 묻는 몰상식한 시대
- 서부지법 투블럭 청년 이슈의 최대 피해자로 몰린 운정참존교회와 IBMS신앙공동체가 한국교회와 경찰당국을 향해 정의로운 관심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좌파 유튜버에 의한 근거없는 '거짓 좌표' 공격 이후, 그야말로 교회와 신앙공동체가 붕괴 직전까지 놓인 것인데, 이러한 흐름이 자칫 한국교회 전체로 번질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의정부에 위치한 경기북부경찰청 앞에는 불법 고발에 대한 경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하는 운정참존교회(담임 고병찬 목사) 성도와 IBMS 신앙공동체 부모연대(대표 김훈희 집사)의 집회가 펼쳐졌다. 약 1시간여 계속된 이날 집회에서는 자신들을 '극우집단' '내란선동 세력'으로 호도하는 고발의 불법성과 위법성을 지적하는 한편, 경찰의 정의롭고 공정한 수사를 촉구했다. 운정참존교회의 피해는 올 초 서부지법 투블럭 청년 이슈가 한창 불거진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모 좌파 유튜버가 아무 근거없이 투블럭 청년이 파주의 모 교회 성도라고 지목했고, 이후 운정참존교회는 파주 지역은 물론 인터넷 상에서 극우교회, 내란 세력 등으로 낙인됐다. 황당했던 것은 서부지법 투블럭 청년은 운정참존교회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인물이었다는 사실이다. 교회측은 거짓 정보가 밝혀지면 금새 상황이 마무리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 찍힌 좌표는 진실과 관계없이 교회를 향해 끊임없는 공격을 강요하며, 점차 고병찬 목사와 성도들의 목을 옥죄어 갔다. 교회를 향한 공격은 매우 치밀했다. 각종 언론들이 교회와 성도들에 '극우 프레임'을 씌우는 것으로 시작해 다음에는 지자체에 다양한 명목으로 교회를 신고했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고, 하루가 멀다하고 밀려오는 신고와 조사에 교회 전체가 넉다운 직전까지 몰렸다. 이후 이들의 공격은 교회 내 신앙공동체에까지 뻗쳤다. 교회가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아이들을 위해 운영한 신앙공동체에 난데없이 '초중등교육법' 위반을 들이밀어 형사고발했다. 한국교회 대다수가 신앙과 성경을 기초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음에도 유독 운정참존교회만 문제 삼아 이를 고발한 것이다. 거기에 고병찬 목사는 '내란선동'으로까지 고발당했다. 예배 시간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고 비상계엄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했다는 이유다. 단순히 '투블럭 청년'에 대한 오해라 생각했던 사건이 '내란선동' '교육법위반' '아동학대' 등으로까지 이어지자 결국 성도와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날 성도들은 각자 이번 사태에 대한 소신 발언을 펼쳤다. 모두가 고발 내용에 대한 불법을 규탄하고, 경찰의 공정 수사를 촉구하는 등 매우 당당하고 단호한 투사같은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뒤에서 몰래 눈물을 삼키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준비해 온 발언문을 끝까지 읽어 내려가는 모습은 도대체 누가 평범하고 온순한 이들을 이렇게까지 하게 했는지를 궁금케할 정도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운정참존교회 이슈의 진실은 분명하다. 첫째, 투블럭 청년은 운정참존교회와 아무 관계가 없으며, 그와 관련된 뉴스와 정보는 모두 거짓이다. 둘째, IBMS신앙공동체는 정부인가가 필요한 교육기관에 해당치 않으며, 학부모와 성도들이 자발적 헌신으로 만든 신앙공동체로, 그 속에서 아이들이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셋째,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등 이념간의 대립이 격해진 사회적 상황에서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이 죄라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국교회는 운정참존교회 사태를 결코 좌시해서는 안된다. 운정참존교회 사태는 일개 교회의 문제라기보다 향후 한국교회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새 정권 이후 일부에서 교회를 향한 몰상식한 상황이 벌써부터 벌어지고 있다. 일부 언론은 대선 당시 양 당에 기독교 정책을 제안한 교계 단체를 ‘로비’로 몰았다. 개인의 정당한 의견 표현은 ‘내란 선동’이 되고, 기독교 정책을 제안하면 ‘로비’가 되는 시대는 결코 정상이 아니다.
-
- 연지골
- 기자수첩
-
[기자수첩] 교회에 내란선동을 묻는 몰상식한 시대
-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이기는 야구와 지는 정치’
- 최근에 프로야구에서 한화이글스가 12연승을 달리며, 리그 1위까지 올라갔다. 지난 4월 초까지만 해도 리그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던 한화가 이처럼 가파른 상승세를 달리며, 지지 않고 이기는 야구를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흥분한다. 정말 놀라운 일이다. 수년 사이에 한화는 별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팀이었다. 그래서 경기에서 져도 한화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고, 이기면 잘했다고 칭찬을 하였다. 정말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어느 팀보다도 응원전에 있어서는 수위(首位)를 차지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하위권에서 맴도는 이 팀을 좋아하겠는가? 야구는 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기에 어느 정도 지역민이나 지역 출신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한화 팬들은 한화의 잘하는 경기를 간절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한화가 12연승을 기록한 것이 지난 1992년 이후 무려 33년 만의 일이라고 하니, 한화 팬들은 얼마나 한화의 연승(連勝)하는 것을 보고 기뻤겠는가? 어떻게 꼴찌하던 팀이 한달 사이에 승리를 쓸어 담으며, 전체 10팀 가운데 1위를 할 수 있었는가? 한화가 이처럼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뭔가? 한 마디로 지지 않는 야구를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되었든 꼴찌팀 한화가 1등을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야구가 저런 면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 국민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는 어떤가? 미안하지만 등위(等位)로 따진다면 최하위와 같지 않은가? 왜 그럼 일개 스포츠 분야는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데, 정치는 늘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까? 나름대로 야구와 정치를 비교해 보았다. 첫째, 실력의 문제이다. 야구는 실력을 겨루는 경기이다. 실력이 안 되면 당연히 상대편에게 질 수밖에 없다. 몰론 스포츠에서도 감독의 용인술(用人術)이 있고, 대진운도 있고, 선수들이 부상이 없어, 가용할 인적 자원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의 실력이다. 한화에는 선발 투수진이 강하다고 한다. 야구는 9회까지 공격과 수비를 하는데, 그때 선발 투수가 7회(7이닝)까지 자책점 3점 이하로 막아주는 것을, 퀄리스스타트플러스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한화는 리그팀들 가운데 1위이다. 또 상대편 선수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탈 3진을 뺏는 평균이 게임당 9.43개로 전체 1위라고 한다. 여기에 타자들의 활약이 있기에 이기는 게임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국가를 위하고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주변 강대국들에게 지지 않는 정치를 하고 있나? 둘째, 룰(규정)을 따라야 한다. 아무리 실력 있고 뛰어난 선수라도 야구의 규정을 어기면 탈락이다. 이를테면 스트라이크 세 개를 판정받은 선수가 아니라고 우기며, 경기를 방해하고, 이를 판정한 심판을 폭행하고 거부하면 안 된다. 만약 경기장에 이런 선수가 있다면, 그는 선수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선수 위치에 있어야 할 사람이 감독과 코치와 심판을 무시하고, 심판의 적법한 판정에 대해서도 협박하는 수준이 되었다.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에 염증을 낸다. 자신들이 힘이 있다고 규정을 안 지키는데, 국민들이 이것을 따르고 용납하겠는가? 셋째, 지는 것도 경기이다. 사람들은 이기는 것만 경기로 보지 않는다. 비록 한 때는 경기를 하기만 하면 지던 팀이 어느 날 지지 않고 이기는 경기를 하는 것은, 그 동안 지는 경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신인들을 영입하고, 그들의 실력이 자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어느 팀에나 쇠락(衰落)이 있다. 그때는 질 수밖에 없다. 지는 팀들이 있어, 이기는 팀들이 빛이 나는 것이다. 그럼 진 팀은 새롭게 팀을 정비하고 가다듬어 이기는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치를 보면,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지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새로운 정책과 비전을 마련해야 하는데, 당장 이기는 것만 바라보고 꼼수도 서슴지 않는다고 본다. 국가의 정체성도 지키지 못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국민들을 위하여 정치를 한다는 것이 가당한 것인가? 야구와 정치가 직접적인 연관은 없겠지만, 이기고 지는 것의 원리는 비슷하다고 본다. 오직 이기기 위하여 반칙과 힘으로 밀어붙이는 경기를 취한다면, 그것은 관중이며,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이다. 국민들은 지더라도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사람은 응원하지만, 완력과 거짓과 권모술수로 국민들을 지배하려는 지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국가를 제대로 운영할 실력과 누구보다도 먼저 준법을 하고, 지는 것에 자기 통찰과 이기는 것에 겸손한 지도자를 원한다. 야구 경기는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여 관중들의 즐거움을 더하지만, 정치 지도자는 지는 일을 하면서도 계속 이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매우 경계한다.
-
- 연지골
- 토요시평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이기는 야구와 지는 정치’
-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초대 교황이 베드로일까?’
- 로마 가톨릭의 수장인 프란치스코(본명: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 교황이 지난달 21일 서거하였다(가톨릭은 선종:善終-善生福終: 선하게 살다 복되게 죽었다는 것) 이분은 2013년에 교황에 즉위하여 12년간 가톨릭을 이끌어왔다. 이분에 대하여 가톨릭에서 평가하기로는 서민의 교황, 빈자의 성자, 낮은 곳에 임했던 지도자로 부른다. 이분은 2014년 8월 한국에도 왔었는데, 광화문에서 124위의 시복미사를 집전하였다. 그의 평소 메시지는 약자의 편에 서는 것,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것, 생명은 신성하다는 것,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전쟁을 멈춰야 한다는 것 등을 강조하였다. 종교인으로 훌륭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유독 동성애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2013년 해외 순방 길에서 동성애 의혹이 있는 사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내가 누굴 판단하겠는가?’라고 답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스페인 출신 남성 동성애자에게 ‘하느님은 너를 만드셨고, 그분은 너를 사랑한다’고 했다. 2013년에는 ‘동성애는 범죄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사제들에게 낙태한 여성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스페인의 가톨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성전환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하였다. 또한 2014년에는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에 참석하여 우주 기원의 가설인 ‘빅뱅 이론’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교황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그런가? 이런 모습이나 발언은 성경적 가치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월 26일 교황의 장례식에는 150개국에서 정상들이 참석하고, 수십만 명의 조문객이 모였다니, 교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가톨릭의 상징적인 인물에 의하여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은 초대 교황을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베드로로 본다. 교황의 직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로마 교구의 교구장,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 보편 교회의 최고 사제, 서방 교회의 총주교, 바티칸 시국(市國)의 국가 원수 등이다. 그중에 베드로의 후계자로 권위를 인정받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로마의 네로 황제 시대에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하였다. 전승(傳承)에 의하면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당하면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질 수 없다며 거꾸로 매달렸다고 한다. 사실 로마 교황은 엄청난 명예와 권력을 가진다. 4세기에 로마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國敎)가 되기 전까지 얼마나 심한 박해와 순교가 있었는가? 로마에서는 로마 황제들에 의하여 10번에 걸친 순교의 피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로마 국교가 된 이후 가톨릭은 타락과 암흑시대를 맞이한다. 5세기에 교황을 지낸 레오 1세(440~461년)는 ‘교황은 베드로와 동일시될 수 있는 존재이며, 교황 수위권(首位權)과 교회의 사법권을 주장하였다. 그는 엄청난 명성과 권력을 얻었다. 그래서 그를 ‘대교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 사람들로부터 같은 별칭을 들은 그레고리오 1세(590~604년)는 자신을 수도사로 여기고, 자신을 ‘신의 종복들 중의 종복’으로 여기는 겸손을 보였다. 교황의 어두운 역사는 상당히 많다. 영국의 작가이며 역사가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가 쓴 ‘교황 연대기’에 보면, 역대 교황들의 어둡고 침침한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필자는 수년 전에 바티칸-시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베드로 대성당은 그 규모나 장식들이 대단하다. 넓은 광장과 광장을 둘러선 회랑(回廊)에 서 있는 인물 동상들이 압도적이다. 그리고 성당 입구에는 베드로의 동상이 있는데, 사람들이 소원을 품으면서 발을 얼마나 많이 문질렀는지 신발 한 짝은 거의 닳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엄청난 성당을 면죄부(免罪符)를 팔아서 지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했다. 또 베드로 대성당의 부속 성당이며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가 이뤄지는 시스티나 성당에는 역대 교황들이 모아 놓았다는 수많은 형상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종교와 권력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되어야 한다. 로마 가톨릭은 교황이 황제를 압도하는 시대도 있었고, 황제에게 굴복하는 시대도 있었다. 우리는 베드로와 동일시하는 권력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고백에 주목해야 한다.
-
- 연지골
- 토요시평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초대 교황이 베드로일까?’
-
-
[토요시평] 기독교는 참된 의(義)를 알고 있는가?
-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결의되어, 현재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벌써 4개월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 국정은 마비되고, 야당의 끊임없는 중요 인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탄핵소추에서 벗어난 국무총리이며 대통령 권한 대행에 대하여 다시 탄핵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말 국민들은 지긋지긋하고, 우리나라 정치가 이런 정도로 타락하고 후진성을 가졌나 의심할 정도이다. 또 그런 가운데 지난 26일 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항소심 선고가 나왔는데, 1심에서는 심각한 범죄적 판결을 내린 것에 반하여, 2심에서는 전면적인 ‘무죄’가 나왔다. 1심 판결을 2심에서 뒤집을 확률은 1.7%로 매우 낮다고 한다. 이를 두고 외국인들은 ‘한국을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평가한다. 외신 기자가 한국 정치 상황을 보도했더니, 본국 독자가 ‘이게 말이 되느냐 기자가 사실관계도 이해 못하고 기사를 쓴 것 아니냐’며 질타를 받았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도 정치인들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를 넘는 것인데, 이를 법원이 용납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판결은 법리(法理)와 논리(論理)와 상식(常識)조차 무너진 것으로, 우리나라는 ‘법치주의’가 무너지고, 체제와 진영 싸움에 깊이 빠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믿고, 누구를 의지하고,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입법부도 사법부도 헌법재판소도 언론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국민들은 그래도 법관들의 양심을 믿고 기대했는데, 이미 몇 건의 유력 정치인의 재판을 보았고, 헌재에서 탄핵소추안 재판을 보았는데, 법관들은 일사분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편향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양심(良心)을 가진 세력들의 활동과, 법을 공정하고 정의롭게, 그리고 약자 편에 서 있어야 마땅한 법관들인데, 그들마저 ‘우리법연구회’니 ‘국제법연구회’니하면서, 법률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하기 어렵다. 물론, 법관 중에는 법적인 양심과 법리를 따라, 약자를 보호하는 법적 해석을, 강자에게는 보다 엄격한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충실한 법관들도 있다고 본다. 자, 그런 가운데 우리 기독교는 어떨까? 대통령 계엄 선포와 탄핵을 당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성명서를 낸 것은 지난해 12월 6일, A신학대 교수 21명이 낸 ‘시국선언문’이 있다. 여기에는 ‘국민의 기본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 ‘국민을 두려움과 혼란에 빠트리는 행위’ ‘평화를 짓밟는 행위’로 규정하여, 국회는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라고 촉구한다. 그래서인가? 지난 3월 7일 ‘00대 정상화를 위한 복음주의 학생연합’이 대통령 탄핵 반대와 학내 좌경화를 우려하는 대자보를 붙이자 3분 만에 학교 직원들이 떼어갔다고 한다. 탄핵은 지지하고 탄핵반대는 인정이 안 되는 구조인가? 그리고 지난해 12월 13일 B신학대학교 64명의 교수들도 ‘시국선언문’을 냈다. 이들은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헌정 질서를 부정하는 정변’이라고 하고, ‘반헌법적, 반역사적, 반신앙적 폭거’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내란 행위를 지지하거나 동조하는 그리스도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하고, 12월 12일 대통령이 계엄의 불가피성을 설명한 것을 ‘궤변이며, 반국가적 선동 행위’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즉각 탄핵 결정을 하라고 촉구한다. 그런가 하면 지난 2월 20일 C교단의 목사, 장로 1,650명은 자기 교단의 ‘000 목사를 징계하라’는 성명서를 낸다. 000 목사는 ‘예배 강단을 정치 선동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4월 중 봄 정기 노회에서 000 목사에 대한 ‘징계 헌의안’이 상정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미 000 목사에 대한 것은 지난 2월 16일 부산교회개혁연대측이 징계를 촉구하는 성명서가 나온 뒤이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는 참된 의(義)를 알고 있는가? 편향적, 선택적, 폐쇄적, 일방통행식의(義)를 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누구에게는 엄격하게 의의 잣대를 들이대지만, 다른 쪽은 무슨 짓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것인가? 처음에는 국민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할 수밖에 없던 이유에 대하여 깊이 있게 경청하고 고려해 보았는가?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고, 거대한 정치 권력에 의하여 떠밀려 가는 방향이 맞기는 한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호’는 안전한가? 한국교회언론회가 지난 2월 26일 여론조사 기관을 통하여 ‘탄핵정국 속 국민들의 심리’를 조사하였다.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사회에 위험한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4.1%가 ‘그렇다’고 답했다. 갈등 상황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도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는 79.2%가 ‘그렇다’고 하였다.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우리는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독교 지도자들이 일방적, 선동적, 선결적 선언을 하면서, 다른 의견은 무시하는 태도는 없어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의 기준’을 제대로 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따르는 기독교가 한쪽 눈을 감고, 정치적, 이념적, 정파적, 비양심적 논리에 파묻힌다는 것이 과연 ‘의’가 될 수 있는가?
-
- 연지골
- 토요시평
-
[토요시평] 기독교는 참된 의(義)를 알고 있는가?
-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에 카르텔이라니, 말이 되나?’
- 우리는 평소에 경찰, 법원, 검찰의 국가 조직에 별 관심이 없다. 말 그대로 죄를 짓거나 어떤 범죄적 혐의나 행위가 있을 때, 관련되는 곳이다. 더군다나 헌법재판소는 더욱 관심이 가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최근에 가장 관심을 받는 곳이 헌법재판소이다. 대통령의 탄핵 문제에 있어, 최종적으로 헌법적 판단을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국민들이 헌법재판소의 헌법 재판관들의 면면에 대하여 좔좔 외울 정도가 되었다. 자기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존함은 모르는 사람들도 헌법 재판관 8명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다. 또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치적 성향과 그들의 판사활동 궤적(軌跡)을 훤히 알게 되었다. 헌법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눈에 띄는 것이 ‘우리법연구회’(이하 우리법)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이다. 이는 국민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조직에 들어갔던 판사들이 상당수 정치적인 편향성을 가졌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다. 그런 조직 속에서 활동했던 인사들 가운데,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살펴보자. 오동운 공수처장은 인권법 출신이다. 또 공수처가 요청한 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의 이순형 판사는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탄핵 심판을 맡은 헌법 재판관 가운데 문형배 권한 대행은 우리법 회장 출신이다. 그리고 이미선 재판관은 인권법 출신이다. 정계선 재판관은 우리법과 인권법 모두에서 활동하였다. 또 야당의 국회 탄핵소추단의 박범계, 최기상 의원도 모두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되려는 마은혁도 우리법 출신이다. 또한 서울서부지법의 영장 전담 판사도 아니면서, 당직 판사로 대통령에 대하여 15자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차은경 판사도 우리법 출신이다. 뿐만이 아니다. 최근에 송철호 전 울산시장과 황운하 의원에게 선거법과 관련하여, 1심에서는 두 사람이 각각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는데, 2심에서는 ‘유죄 의심이 가지만 직접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내린 2심의 주심 판사도 인권법 출신이다. 그리고 당초 1심을 맡았던 김미리 판사는 계속 재판을 지연하므로, 결국 3년 10개월 만에 1심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인데, 그도 우리법 출신이다. 이러니 국민들은 특정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법부 내 사조직 판사들의 이런 행태를 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된다. 그래서 카르텔(Kartell)를 형성했다고 비난한다. 이 말은, ‘동일 업종의 기업들이 이윤의 증대를 노리고 자유 경쟁을 피하기 위한 협정을 맺는 것으로 형성되는 시장 독점의 연합 형태’라고 정의한다.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법’과 ‘양심’에 충실하게 판결해야 한다. 이때 양심은 개인의 정치적 편향이나 주관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특정 세력을 변호하고 감싸기 위해서 법을 악용하거나 구부러진 잣대로 적용한다면, 이것은 국가와 국민들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공산 국가에서도 법정도 있고, 판사도 있고, 검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다. 그러나 그들을 결코 양심적이고 법에 충실한 ‘법조인’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공산당과 자기들이 받드는 수령(首領)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군대 내 사조직으로 알려져 크게 비난과 심판을 받은 조직이 있었다. ‘하나회’였다. 그런데 군부 독재 시대도 아닌, 현재에 사법부 내에서 권력을 독점하는 사조직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나? 우리법연구회는 1989년 만들어져서 후에 호남계 법조인, 운동권 법조인들이 중심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조직은 2018년 해체될 때까지 140여 명의 회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우리법 출신이 많이 기용되었는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박시환 대법관, 강금실 법무부장관,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이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대표적인데, 그는 우리법 초대 회장 출신으로, 그가 대법원장이 된 후 우리법 출신들을 집중적으로 핵심 요직과 수뇌부에 승진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박범계 법무부장관, 이용구 차관도 같은 우리법 출신이다. 그리고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몫으로 향판(鄕判) 출신인 문형배를 인사청문회 당시 횡령 의혹과 정치적 편향성 등의 문제점이 있었으나, 끝내 헌법 재판관으로 세운 것이다. 그가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으로 이번 대통령 탄핵 사건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후에 생긴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법관은 400여 명이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법관 3,000여 명 가운데 우리법과 인권법 판사들의 비율이 얼마나 높은가? 이런 조직에 들어간 판사들이라고 무조건 정치적 편향성을 가졌다고 의심해야 하나? 물론 100% 다는 아니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같은 의견을 낸 경우가 90%까지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이런 현상을 어찌 가벼운 문제로 보겠는가? 책임과 파급력이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모든 것이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한다. 그야말로 판사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법원으로 상징되는데 이런 사조직 활동과 편향성을 갖게 된다면, 이는 국민들이 인정할 수 없다. 국민들의 결집된 힘으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사법부 내에 모든 사조직은 없어져야 한다.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 온 국민들이 이런 올바르지 못한 법관들을 위하여 비싼 세금을 내서 그들을 예우하고, 그런 사람들에 의한 부당한 법의 지배를 받는다면, 이를 용납할 수 있나?
-
- 연지골
- 토요시평
-
[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사법부에 카르텔이라니, 말이 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