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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부유한 영혼
- ◇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올라오사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눅 4:1,2). 예수님의 성령의 충만은 그가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하늘에서 강림한 성령에 의해 된 것이며, 시험은 이 '성령의 충만함' 체험 후에 즉시 따라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아버지의 증거가 오고, 다음에 바로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로 떡을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이 따라 온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한량없는 큰 은혜 후에 반드시 반동의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거나, 또는 어떤 선한 일을 결심하거나, 헌신코자 할 때에 언제나 마귀의 시험이 따라 온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다. 역사의 위대한 사명자들은 하나같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많은 영적 힘을 얻고 그 사명을 감당했다. 광야는 춥고 외롭고 배고프고 불편한 곳이다. 따라서 그만큼 사단의 유혹과 공격이 심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봉착한 어떤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홀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할 때가 있다. 거기가 바로 광야이다. 그러나 광야는 성령의 인도함 없이 함부로 들어서서는 안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성령이 우리를 광야로 인도하면 광야는 우리에게 반드시 유익한 장소가 된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았다. ◇ 또한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바로 뒤따라 오며 바스락 거리는 뱀의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큰 은혜를 체험을 한 후에, 특별한 영적 사명을 받은 후에, 큰 성공을 거둔 후에, 하나님과의 만족한 친교에 들어간 후에, 사단의 공격을 조심해야 한다. 사단은 죽은 영혼은 거들떠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자기 소유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사단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가진 산 영혼을 노린다. 깊은 기도와 큰 은혜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사단의 유혹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은혜 받았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조심하지 않아 사단의 유혹에 넘어진다. ◇ 사단은 우리들이 주 안에서 평안히 잘 되는 것을 결코 보고만 있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의 영혼이 부유한 사람일 수록 그 영혼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경성해야 한다. 또한 때때로 시험은 우리의 신앙과 영혼의 유익을 위해 허락된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이 더 강하여지고 더 순결해지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한다(약 1:2).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런 시험을 허락하는가 라며, 실의에 빠져 불평하거나 불만을 가지고 신앙을 회의하는 것은 그 시험에 실패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 시험을 허락하시기 전에 그 시험을 이길 수 있도록 준비시키신다는 사실도 굳게 믿어야 한다(고전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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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부유한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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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여야 한다’
- 우리나라에 많은 권력기관들이 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권력기관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영국의 레가툼이라는 싱크탱크가 여러 나라의 권력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조사 대상 국가 167개국 가운데 한국의 사법부는 155위, 정치권은 114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에서 경제권 10위, 국방력 6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여러 가지 면에서 꽤 앞선 모양세다. 그러나 최고의 권력층에 대한 평가는 심히 부끄러울 정도이다. 특히 300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은 국가로부터 186가지의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데, 그에 걸맞게 국가와 국민을 위하여 제대로 일하고 있을까? 어떤 의원은 교도소에 갇혀 있어도 월급이 나오고, 어떤 의원은 잠적하여 국회에 출석하지 않아도 월급이 나오고 어떤 의원은 기소가 되어 재판을 받고 있어도 월급이 나오는 곳이 국회이다. 또 심각한 것은 어떤 의원은 나라 팔아먹을 짓을 하고 다녀도 월급이 나온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연봉은 1억 5천 만원이 넘는다. 이 금액은 전 세계에서 미국, 일본, 독일 다음으로 많이 받는 것인데, GNP(국민소득)로 따지면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그뿐인가? 국회의원들은 해마다 1억 5천 만원의 정치 후원금을 받을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갑절인 3억 원을 후원금으로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선거에서 15%이상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체를 국고에서 환급해 준다. 결국 이것 저것 다하면 국회의원이 1년에 5억 원은 가져간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해외여행경비, 자동차 유류세, 운전기사 공무원 채용, 항공기, KTX 무료 사용, 국회 안의 각종 편의, 문화, 복지 시설 무료 사용, 국가의 휴양시설 무료 사용의 혜택을 받고 있다. 또 입법활동비, 정책자료 발간비, 정책자료 발송비, 문자 메시지 발송비, 업무용 택시비 등 수 많은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다. 거기에다 보좌관, 비서관 등 국회의원 1인당 9~10명을 채용할 수 있다. 결국 국회 한 회기의 4년이 끝나면 4~5조원의 국가 예산이 들어간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과연 300명의 국회의원이 우리나라에 필요한가? 국회의원은 100명만 있어도 충분히 입법 활동이 가능하다고 본다. 큰 혜택의 수혜자인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면책 특권’을 이용하여, 국회에서 온갖 잡다하고 허접하고 국민들 수준에도 한참 못 미치는 말들을 쏟아내도 그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불체포 특권’을 이용하여 온갖 범죄와 혐의가 있어도 국회 회기에는 잡을 수가 없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신성한 의회인 국회를 ‘방탄 국회’로 만들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사회 일각에서는 국회의원들의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의원 중에는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에 몰두하고 열심인 의원들도 없지 않아 있겠으나, 전반적으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국회 무용론’이 나올 정도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국회의원들은 어떨까?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은 보좌진을 줄여야 한다. 독일, 영국, 일본, 프랑스는 국회의원 1명당 보좌진이 2~3명이다. 스웨덴은 국회의원 2,3명 가운데 보좌진은 1명이다.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도 문제지만, 보좌진과 비서관에게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들이 과연 성실하게 그리고 국가의 미래와 국민들의 행복을 위한 의정활동에 헌신하고 있을까? 그리고 국회의원 수를 대폭 줄여야 한다. 인구 50만 명당 1명꼴로 하면, 100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어느 지역에 보면, 갑, 을, 병 등 같은 지역인데, 쪼개서 국회의원 수를 늘이고 있다. 그리고 전국구 의원을 없애야 한다. 이 전국구 의원을 차지하기 위하여 별별 꼼수를 둬서 의석수를 늘이려는 것을 보아 오지 않았는가. 또 국회의원들에 대한 대우를 도시근로자 평균 임금과 맞먹는 400만 원대로 주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도 연봉이 5천 만원이 넘는다. 우리나라의 정치권이 세계 최하위 수준의 신뢰감을 나타내는 것은, 최고의 예우와 온갖 특권을 주니, 이것에만 관심이 있고,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권을 줄이면, 명예와 사명감으로 일할 진정한 국민의 일군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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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국회의원의 특권을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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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독교 VS 퀴어’ 7월 1일 NCCK는 어디로 향했나?
- ◆ "NCCK는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한 적이 없다. 이는 모두 가짜뉴스다" -2022년 10월 감리교 총회 중- 지난해 10월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교) 총회에서는 NCCK WCC 탈퇴를 두고 치열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당시 탈퇴를 요구하는 이들은 NCCK WCC가 신학적으로 심각하게 변질 됐으며, 특히 NCCK가 전 교회가 반대하는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있다며, 당장 NCCK와 단절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탈퇴 반대자들은 NCCK의 포괄적차별금지법 지지는 모두 가짜뉴스라며, NCCK는 단 한 번도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 NCCK인권센터는 지난 7월 1일, 성소수자들의 퀴어축제를 지지하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축복기도회'를 함께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관한 본 기도회는 '그래도 무지개는 뜬다'는 구호로 '퀴어축제'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NCCK는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한 적이 없다"는 감리교 친NCCK 세력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NCCK는 여전히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하고 있다. 엄밀히 포괄적차별금지법을 반대한 적도 없으며, 오히려 NCCK인권센터는 동성애자와 동성애 단체에 인권상을 수여하는 등 적극적으로 퀴어활동에 앞장서 왔다. 이뿐 아니라 NCCK 정의평화위원회 역시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었다. ◆ 7월 1일은 올바른 성혁명을 정착시키고자 기독교계와 시민단체가 함께 '거룩한 방파제'라는 이름으로 서울시의회 앞에서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집회를 개최한 날이다. NCCK인권센터가 퀴어축제를 지지하며, '거룩한 방파제'를 비판하는 기자회견과 기도회에 동참하고 있을 때, '거룩한 방파제' 집회에는 중부연회 김찬호 감독이 연사로 올랐다. 김 감독이 이끄는 중부연회는 최근 NCCK 탈퇴안을 압도적으로 통과시키며, 감리교 여론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중부연회의 탈퇴 결의 당시 김찬호 감독과 연회원의 입장은 간단했다. NCCK가 성경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변화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다. NCCK인권센터가 무지개 축복기도회를 하던 그 시각, 김찬호 감독은 동성애와 포괄적차별금지법에 대한 절대 반대를 외쳤다. 김 감독은 "각 분야로 침투한 성혁명과 동성애의 타락을 막고 거룩한 운동을 펼쳐야 한다. 차별금지법을 허용한 나라들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성적 가치관이 없는 다음세대가 무너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 NCCK는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한다. 그것도 매우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그것이 팩트다. 감리교의 NCCK 탈퇴는 오는 10월 총회에서 총회원에 의해 최종 결정될 일이지만, 그 바탕에 거짓이 깔려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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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기독교 VS 퀴어’ 7월 1일 NCCK는 어디로 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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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공영방송 KBS는 신속히 개혁되어야 한다’
- 그동안 국민들로부터 심각한 편파방송으로 지탄을 받고, 공영방송으로서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던 KBS에 개혁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KBS는 TV시청료를 현행 전기세에 부과하여 준조세적이며 일방적으로 징세하던 것을 이제는 분리해야 한다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면서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다. 그동안 KBS는 ‘국민의 방송’이 아니라, 민주노총 산하에 있는 ‘노영방송’이라는 비난을 받아왔었고,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된 모습을 보여, 공영방송의 신뢰는 무너지고, 오히려 상업방송만큼도 공정성을 지키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런 가운데 KBS는 전기세에 포함하여 걷어 들이는 시청료가 연간 6,2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손쉽게 확보하였다. 그러다 보니 연봉 1억 원이 넘는 직원이 51.3%를 차지하고, 그중에 1,500명은 무보직이라고 한다. 보직이 없다는 것은 책임지고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국민들은 이런 KBS를 위하여 영문도 모르고 따박 따박 수신료를 내온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급기야 국민들의 불만이 커져서 억지로 낸 TV수신료 환불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17년에는 2만 246건이 있었는데, 2021년에는 4만 5,266건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뿐만이 아니다. 국민제안 공개토론에서 국민들은 무려 96.5%가 수신료 분리징수에 찬성하였다. 아예 이런 제도를 없애자는 의견도 64%를 차지하였다. 왜 그런가? 공영방송인 KBS가 노조위원장 출신을 3연속 보도국장으로 채우고, 나머지 중요한 보직도 언론 노조 출신을 앉혀서 방송의 편파성을 극대화한 때문이다. 오죽하면 현재 KBS 이사들 일부가 나서서 ‘KBS의 편파성은 독재정권 때보다 심하다’고 폭로하였다. 국민들의 시청료 납부와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KBS가 공정성, 공공성, 공익성, 공평성을 크게 상실한 것이다. 그야말로 공영방송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부끄러운 모습이다. 그런 KBS 안에도, <새로운KBS를위한KBS직원과현업방송인투쟁위원회>(새KBS공투위)가 조직되어 1,100명의 직원들이 나서서, KBS의 고약한 실태를 알리며 국민들에게 엎드려 사죄를 한 것이다. 이들은 현 경영진이 퇴진하고 KBS 자체에 고강도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이 지난 21일 발표한 대국민 성명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KBS는 지금까지 오직 운동권과 민노총과 민주당만을 위한 방송을 해 왔습니다. 견해가 다른 국민들의 시각은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생각이 다른 국민들을 훈계하고 윽박질렀습니다. 우리는 경영진과 이사회만을 탓할 수 없습니다. 불공정 방송과 무능 경영을 통해 국민의 자산을 가로채고 횡령하고 낭비하는 범죄행위가 버젓이 벌어지는데도 우리는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부당한 보도, 불공정한 시각을 강요하는 보도, 프로그램 하나하나를 감시하고 그것을 막기 위해 몸을 던져야만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의 편안한 삶에 만족했습니다. 그 와중에 회사는 썩어들어가고, 오늘의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국민들께 사죄드립니다. 토를 달지 않고 이유도 달지 않고 사죄드립니다. 국민들은 무조건 옳습니다. 앞으로 국민들께서 더 회초리를 들어주십시오. 무조건 다시 기회를 달라는 말씀도 드릴 수 없습니다. 그것도 역시 국민의 판단입니다. 우리는 다시 KBS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라는 사뭇 비장한 어투로 대국민 사죄 성명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투쟁 방향을 제시하였다. 현 사장과 본부장, 이사진 전원이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 모든 민노총 출신 간부들이 민노총으로부터 탈퇴하라. 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 방송 현업인들은 민노총을 탈퇴하라. 민노총 간부들의 모든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다. 이런 투쟁위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고강도의 투쟁에 돌입한다고 천명하였다. 그동안 KBS 안에도 바른 목소리를 내는 제3의 노조가 있었지만, 이번과 같이 강력하게 개혁을 요구하지는 못했었다. KBS가 진작 그런 자체적인 개혁의 목소리를 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제는 당장 수신료 문제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니까, 그런 자구책을 쓰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 그러나 지금은 KBS 구성원들이 그런 얕은 잔꾀를 부리다가는 공멸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이제라도 KBS가 심각한 편파성의 악몽에서 깨어나서 그동안 끔찍하게 불명예스럽게 들어왔던 ‘노영방송’이나 ‘정치방송’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KBS는 편향되고 정치 이념에 사로잡힌 인적 청산도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공영방송의 각오를 새롭게 다져서, KBS의 구호대로 참된 ‘국민의 방송’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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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공영방송 KBS는 신속히 개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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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감리교의 WCC·NCCK 탈퇴 논의에 등장한 저열한 ‘물타기’
- “메시지에 반박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 기독교대한감리회의 WCC·NCCK 탈퇴 여부가 올 한 해 한국교회 최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10월 총회가 다가올수록 이를 둘러싼 내부 논쟁이 더욱 치열해 지고 있다. 문제는 이슈의 중심인 WCC나 NCCK에 대한 담백한 논쟁이 아닌 주제와 하등 관련 없는 별건들을 자극적으로 포장해 관심을 돌리는 소위 '물타기'가 횡행한다는 것인데, 한국교회 역사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지 모를 중대한 논의에 저열한 이들이 더러운 흙탕물을 튕기고 있다. 기감은 지난해 10월 총회에서 WCC·NCCK 탈퇴를 놓고, 갑론을박 끝에 1년 간 이를 연구한 후, 23년 총회에서 이를 다시 다루기로 했다. 그렇게 생긴 1년의 유예 기간에 대해 현재 감리교는 물론이고 한국교회 전체가 관심을 갖고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 중에 기감 중부연회(감독 김찬호 목사)가 지난 4월 정기연회에서 감리교 탈퇴를 결의하며 이슈에 불을 당겼다. 당시 중부연회는 대의원 475명이 참석한 가운데, 436명의 압도적 찬성(반대 37명, 기권 2명)으로 안건이 가결됐다. 중부연회의 탈퇴 결의는 실제 법적 효력은 없었지만, 기감을 한국교회 대표 진보교단으로 인식하던 한국교회에 충격을 주기는 충분했다. 더욱이 중부연회는 기감 내 최대 연회로 사실상 10월 총회의 전초전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중부연회의 탈퇴 결의는 WCC와 NCCK의 변질을 주장하는 보수 교계의 큰 환영을 받았고, 반대로 WCC와 NCCK에 잔류코자 하는 교단 내부 세력에는 큰 반발을 받았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WCC와 NCCK 자체에 대한 핵심적인 연구와 결론이다. 용공주의, 다원주의에 대한 기존의 논란은 물론이고,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포괄적차별금지법 지지' 여부에 대한 확실한 결론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최근 모양새를 보면 WCC와 NCCK에 대한 본질적 논의는 배제한 채, 특정인이나 특정단체를 단두대에 올려 이슈를 호도하고 있는 듯 보인다. 특히 중부연회의 수장인 김찬호 감독이 '물타기'의 대표적 희생양이 되었는데, 이들은 WCC NCCK 반대를 주도하는 김 감독의 개인 이력까지 끄집어내어, 무자비하게 헐뜯고 있다. 김 감독 스스로 WCC·NCCK에 대한 강력한 반대를 피력한 터라, 그의 주장에 대해 진실공방을 벌이든, 반박을 하든 매우 건설적인 논의가 될 수 있지만, 문제는 해당 비판에 이번 사태의 본질인 WCC·NCCK는 전혀 존재치 않다는데 있다. 뜬금없이 김 감독이 인터콥선교회에서 활동했다는 이력을 앞세워, 이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며, 본질을 흐리고 있다. “메시지에 반박할 수 없다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싸움의 격언을 아주 충실히도 따르는 모양새다. 허나 이들의 메신저 공격조차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것은 기감은 인터콥에 대해 어떠한 문제를 삼은 적도 결의를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터콥은 기감이 속한 KWMA가 “한국교회의 한 형제로서 품어달라”는 호소까지 했던 단체다. 굳이 이들의 주장대로 기감이 타 장로교단의 입장까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면, 아직 장로교단의 징계에서 완전히 풀리지 않은 감신대 변선환 박사에 대해서도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김 감독이나 인터콥이 아니다. 바로 WCC와 NCCK다. 기감의 목회자들은 지금 메신저가 아닌 메시지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 두 단체는 과연 용공주의, 다원주의,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지를 밝히는 게 먼저다. WCC와 NCCK 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열한 정치 선동을 할 시간에, WCC 제7차 캔버라 총회에서 행한 정현경 교수의 '초혼제'나 2008년 한국교회를 발칵 뒤집어 놨던 NCCK의 '나무아미타불아멘' 사건을 한 번 더 되짚어 봤어야 한다. NCCK가 그간 냈던 수많은 포괄적차별금지법 지지 성명서와 동성애자 및 동성애 단체에 수여한 인권상을 놓고도 과연 NCCK가 포괄적차별금지법을 지지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게 바로 지난해 기감이 10월 총회에서 결의한 핵심 메시지다. WCC와 NCCK가 오늘날 한국교회 분열의 매개라는 사실에 이견은 없다. WCC로 합동과 통합이 분열했고, 기감과 예감이 갈라졌다. NCCK로 인해서는 기성과 예성이 갈라졌다. 보수교계에서는 WCC와 NCCK를 절대 함께할 수 없는 반기독교 단체라고 인지하고 있다. 기감이 올 10월 총회에서 WCC와 NCCK를 탈퇴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이 결정이 정치적 계략이나 입김 없이, 두 단체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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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감리교의 WCC·NCCK 탈퇴 논의에 등장한 저열한 ‘물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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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화인 맞은 양심
- 요즘 정치권 인사들 가운데는 상식적인 국민이라면 누구나 뻔히 알 수 있는 그들의 범죄 행위를 비비꼬아 '정치탄압'이란 용어로 변명하는 자들이 많다. 이는 국민을 상대로 그런 식으로 거짓말을 해 자신의 불의 불법을 희석시키는 것이다. 성경은 이런 자들을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딤전 4;2)고 한다. 사실 양심(良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도록 선과 악을 구별하는 천부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양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 양심의 소유자의 가치관에 따라 큰 차이를 갖는다. 어떤 이의 양심은 눈동자 같아서 작은 먼지에도 반응하지만, 또 다른 이의 양심은 발바닥 같아서 왠 만한 모래알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양심이 화인 맞은 양심이면 비도덕 비윤리나 그 어떤 불의나 불법에도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거짓말을 떡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이 바로 이런 류에 속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사회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양심 자체가 전혀 없는 이런 정치인들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팬'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국민의 교육 수준이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우리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판단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을 가질만한 사람들이 마치 종교적 맹신도들처럼, 불의한 짓을 저지른 정치인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병리현상으로 밖에 설명이 안된다. 이들은 전혀 부끄러움을 모른다는?특징을 갖고 있다. 이들 역시 그 양심이 어떤 이념에 의해서 덧칠되어 왜곡된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성경은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딤전 1:19)고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인 뿐 아니라, 우리 교계 지도자들 가운데도 이런 자들이 있다. 성경은?교회의 중직자가 되려면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여야 한다"(딤전 3:9)고 말하고 있다.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소한 기독교인이라면 정파적 이해 관계를 떠나 이 양심의 소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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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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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화인 맞은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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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천재(天財)를 도둑질 하는 자들
- 한국불교에는 '무당 절간'이라고 불리우는 사찰들이 있다. 이 사찰들은 불교계 기성 교단에 가입해 있으면서도 개인이 사적으로 운영하는 절간들이다. 이들 절간들은 불교의 행사에 따라 예불도 하고,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는 굿도 하고, 제사도 드린다. 그러다가 주지가 나이 들어 활동이 어려울 때는 자식에게 세습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매도한다. 한국기독교에도 이런 형태의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다. 마치 불교의 무당 절간처럼, 교회 행사에 따라 주일예배를 드리고, 치병 등 다양한 기복 행위를 하다가 사람이 좀 모이고 돈이 모이면 부동산을 늘려 자식에게 세습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매매한다. 교인들이 선교를 위해 낸 헌금으로 조성된 교인들의 총유재산을 사유화 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에는 이를 막을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다. 이런 목회자들이 기성 교단에도 의외로 많이 있다. 여기에는 우리사회에 종교법이 없다는 맹점도 도사리고 있지만, 무엇보다 목회자들의 개인적 물욕이 공교회의 선교재산을 다음세대를 위해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앞서는데 있다. 그래서 교회재산을 야금야금 빼먹다가 마지막에는 한꺼번에 몽땅 챙겨가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목회자라기 보다 '도둑'이라 함이 옳다. 그것도 천재(天財)를 도둑질 하는 자들이다. 목회자에게 공교회성이 없으면 그 신앙은 '사이비'이다. 기독교의 신앙이 어떻게 사적(私的)인 신앙이 있을 수 있나? 그것은 교리나 신학 뿐 아니라,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의 신앙은 신행(信行)이 일치해야 한다. 신(信)은 교리의 문제이고, 행(行)은 그 교리의 실천의 문제이다. 그 소속이 정통교단이고, 믿는 교리가 바르다고 해서 반드시 바른 신앙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삶이 교리대로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는 '사이비 신앙인'이다. 사이비(似以非)란 '겉모습은 비슷하나 그 속은 다른 것'을 이르는 말이다. 요즘 한국교계 주변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한 인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교회에는 이런 한탕주의가 때마다 있어 왔다. 좀 신비한 현상들을 찾아 수평이동하는 기성교인들을 끌어모아 바람을 일으키고, 그 바람이 자고 나면 손해는 전체 한국교회가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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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천재(天財)를 도둑질 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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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고트족 주교 울필라스
- ◇ 역사적 기독교는 초기 로마 시대를 지나 곧 게르만족이 이끌었다. 게르만족의 복음화에 공헌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주후 4세기 사람 울필라스(Ulfilas 또는 풀필라, 313-383) 주교이다. 그는 3세기에 고트족에게 포로로 잡혀가 도나우 강 북쪽에 정착한 카파토키아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30세 때, 게르만계의 일파인 고트족 왕 알라틱이 콘스탄티노플에 사절을 보낼 때, 그 사절단을 따라 갔다가 콘스탄티노플에 10년간 머물면서 거기서 신학과 철학 등 다양한 공부를 하고, 341년 아리우스주의자인 콘스탄티노플 주교 니코메디아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Nicomedia)로부터 고트족 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고트족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343년부터 감독으로 활동했다. ◇그는 고트족 문자를 창안하고 그 문자로 고트족 성경을 번역해 고트족 선교에 크게 공헌했다. 그리하여 그의 전도로 서고트족(Visigoths) 전체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었다. 그는 이처럼 유럽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게르만족 개종에 역할을 한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처음에 성자의 '유사본질론'(homoiousios)이라는 아리우스주의를 따랐다. 그를 가르친 사람들이 아리우스주의를 따르는 유사본질파였기 때문이다. 유사본질론이란 성자는 성부와 동일하지는 않고 유사(類似)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독교의 니케아 정통신앙은 성자는그 본질이 성부와 동일하다는 '동일본질론'(homoousios)이다. 325년 니케아공의회 이후 유사본질론은 이단으로 규정되어 배척되었다. ◇그가 창안한 고트족 문자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는데, 그는 381년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제외하고 성경 전체를 고트어로 번역했다. 그 가운데 복음서와 바울서신들은 지금도 상당부분이 현존하며, 구약의 일부도 남아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가 사무엘서와 열왕기서를 번역하지 않은 이유가 그 책에 전쟁 이야기가 많아 전쟁을 좋아하는 고트족에게 전쟁을 부추길까 봐 번역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점은 울필라스의 이 고트어 성경번역으로 게르만계 대부분이 그를 따라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울필라스의 영향으로 서방은 오래동안 이단 아리우스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이다. ◇대부분의 교회사는 울필라스의 이 업적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가 정통 보편적 가톨릭 신앙이 아니고, 아리우스주의자였다는데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고트족은 니케아의 보편적 가톨릭(catholic) 정통주의로 돌아왔다. 그가 교회사에 남긴 업적이 결국 게르만계 복음화의 밑바탕이 된 것이 아니겠는가? 주후 800년 칼 대제의 신성 로마제국은 바로 이 게르만족의 나라이고, 이들에 의해 유럽 기독교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오늘날 세계교회를 이끌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울필라스의 고트족 선교는 기독교의 역사뿐 아니라, 지금도 높이 평가해야 마땅한 일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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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고트족 주교 울필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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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왜 성경과 성탄절을 문제 삼나?'
- 최근에 불교 언론을 보니, 불교계에서는 기독교에서 사용하는 ‘성경’과 ‘성탄절’에 대하여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정립해서 사용해야 한다며 내부적으로 논의되었다고 한다. 즉 성경은 ‘바이블’로, 성탄절은 ‘기독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로 해야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불교계가 ‘석가탄신일’로 하든 ‘부처님 오신 날’로 하든 상관한 적이 없다. 이 자리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방문 시 의회 연설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된 자유와 연대의 가치가 선교사들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는 말을 문제 삼아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결의했다고 한다. 불교계는 ‘종교 편향’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그에 대해서는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모양새다. 정부에서는 이번 5월부터 전국의 70여개 사찰들이 그동안 오랫동안 받아오던 ‘문화재 관람료’ 대신 이를 100% 국가에서 보전(保全)한다고 발표하였다. 그것이 자그만치 올해에만 419억 원이 지원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언론들에서는 각 사찰들이 문화재 관람료를 ‘무료’로 한다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것이 무료인가? 각 사찰들이 현장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려면, 불교의 문화재를 관람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한다. 심지어 법원에서도 그런 행위는 ‘부당하다’고 판결까지 내렸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고 수고하지 않아도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 그야말로 정부와 지자체가 따박 따박 재정을 지원해 주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것을 무료라고 하는가? 이것은 엄연히 국민들의 피 같은 세금에서 보전해 주는 것이다. 불교계의 이런 모습에 2021년 국회에서 모 의원은 ‘봉이 김선달’이란 말을 사용했다가 불교계로부터 호되게 항의를 받고, 항복하기도 했다. 혹자는, 이처럼 불교계가 문화재 관람료 대신 국가로부터 100% 재정 지원받는 것은 우수한 불교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정책 차원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피하려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그동안 정부에서는 불교를 포함한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국가 예산 집행을 하지 않았던가? 지난해 문화재청이 낸 보도자료에 의하면, 2023년 문화재청 예산을 1조 2,935억 원으로 잡았고, 그중에 문화재 보존 예산으로만 6,814억 원을 책정하였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상당수의 금액이 불교계의 문화재 보존에 사용될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문화재를 보존하고 보호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다만 그동안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이 계속 종교계에 문화재 보호 명목으로 들어갔지만, 그에 대하여 공개적이며 투명한 감사(監査)는 제대로 이뤄졌는가를 묻고 싶다. 어찌 보면 불교계는 국내에서 오래된 종교라고 하여, ‘종교 우대’의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런데 타종교에 대해서 ‘성경은 바이블로, 성탄절은 기독탄신일이나 크리스마스로, 가톨릭은 카톨릭으로 해야 한다’는 논의를 했다고 하니, 어리둥절해진다. 사실 불교계는 전에도 기독교가 성탄절에 기독교의 자발적인 모금으로 ‘성탄 트리’를 세우면서 트리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웠다고 시비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십자가는 안 되고 별을 달라는 것이다. 별은 되고 십자가는 안 된다는 이유는 뭘까? 십자가가 기독교를 상징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제 우리 기독교가 불교의 상징물에 대하여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있는가? 그런데도 불교계가 타종교에서 사용하는 고유한 용어까지 독점하고 있으니 바꿔야 한다고 거론하고 따지는 것은 그야말로 볼썽사납다. 이런 것들이 종교 간 다툼을 일으키는 발단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종교 간에 서로 이해하고 관용하려면 그 종교를 먼저 인정해야 한다. 타종교에 대하여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무리한 비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불교를 보면, ‘종교 차별’을 주장하면서, 여러 사안들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선점(先占)하려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부분이 눈에 띤다. 그러나 종교 간에 간섭함이 도가 지나쳐, 타종교에서 오랫동안 사용한 명칭과 활동까지 따지고 든다면 이를 우리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각 종교는 종교 화합을 통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이를 보여줌으로 국민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종교가 국민들에게 짐이 되고, 배척의 요인이 될 것이다. 종교는 권력기관이 아니다. 정치 집단도 아니다. 종교의 본분은 국민들의 영적, 정신적 만족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는 역할을 감당하는데 치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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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왜 성경과 성탄절을 문제 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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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부활(復活)과 부활절(復活節)’
- 지난 3년간 한국교회는 코로나로 인하여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내(室內)에서도 마스크 벗기가 실행되는 가운데, 이번 부활의 예배에는 그동안 쉬고 있던 성도들도 함께 나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언제나 부활의 감사 예배는 기대와 설렘과 기쁨과 엄숙함의 은혜가 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도 여러 사람들의 온갖 괴롭힘과 모욕과 야유, 조롱과 비난과 비웃음을 당하시고 죽으셨다는 것이 나를 위한 것임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감사하여 눈물이 난다. 세상에서 나의 슬픔을 위하여 울어주고, 기쁨을 위하여 함께 웃어주고, 내가 아플 때 대신 앓아 주고, 그리고 나의 잘못의 짐을 지고 죽어줄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인생사에서 일어나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할 사람들이야 다소 있겠지만, 나를 대신하여 죽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그분은 십자가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면서까지 나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행해 보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희생을 통한, 세상에 대하여 엄청난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아무 욕심도 없으셨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셨다. 당신의 몸은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 죽음의 희생으로 내어놓으시고, 복음 전파는 제자들에게 맡기고, 육신의 어머니는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고, 영혼은 하나님께 의탁하고, 심지어 당신이 입으셨던 옷을 십자가 밑에서 병사들이 제비뽑아 나눠 갖는 것도 두고 보셨다. 그야말로 빈손, 빈 몸이셨다. 그런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세상에서 작은 욕심 때문에 때로는 마음이 상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 부끄럽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명백하다. 섬김을 받으시려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섬기고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대속(代贖) 제물로 주시기 위한 것이다. 어떤 종교도, 어떤 종교의 교주도, 어떤 종교의 창시자도 그런 사랑을 베푼 경우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자신을 ‘메시야’로 지칭하는 사람들이 100여 명이 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고, 그분처럼 다른 사람들을 섬기다가 끝내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는 극진하고도 지고지순(至高至純)한 희생과 사랑을 보여 주었는가? 부활(復活)은 영어로 Resurrection으로 되살아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부활절(復活節)은 영어 표기가 다르다. Easter라고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 것과는 좀 다르다. ‘Easter’란 말은 영국 앵글로색슨족의 ‘봄’과 ‘다산의 여신’인 이스터(Eostre)에서 나온 것인데, 초창기 영국 교회에서는 지역 전통과 연계하기 위하여 부활절을 ‘이스터(Easter)’로 명명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이 말하기를, 우리 신앙은 절기(節氣)인 부활절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참 의미와 소망을 되새기는 신앙을 가져야 된다고 주장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부활절이라는 절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감사와 믿음과 소망을 더하기 위하여 부활의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이런 신앙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날마다 부활의 소망이 더욱 또렷해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19:30)고 하셨다. 뭘 이루셨는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이루셨다. 그것이 십자가에서 동시에 이뤄진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대로 인류의 영혼 구원 계획을 이루셨다. 또한 구약 성경 예언의 말씀을 이루셨다.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예언된 메시야 오심을 이루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대로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죽어주심도 이루셨다.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고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마귀를 멸하신다. 해마다 부활절을 맞이하는데, 절기가 아닌, 부활의 은혜, 부활의 능력, 부활의 기쁨, 부활의 삶, 부활의 증인, 부활의 소망이 더해지기를 바란다. 지금도 이단(異端)들은 구약 성경의 절기 지키기를 가지고 정통교회를 공격하고, 성경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빌미로 삼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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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시평] 심만섭 목사의 ‘부활(復活)과 부활절(復活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