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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8
    오는 8월 가톨릭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보수 기독교계가 초교파적으로 결집해 가톨릭과 교황에 대해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보수 기독교계의 이런 분위기는 지난 22일 서울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 대성당에서 열린 ‘한국그리스도교 신앙과직제협의회 창립총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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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8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7
    “나는 다음과 같이 선서합니다. 나는 시체처럼, 내 자신의 의견이나 판단은 어떠한 형태로든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황군대의 나의 상관으로부터 받는 모든 명령은 지체없이 일일이 복종할 것입니다. 또 나는 서약합니다. 나는 기회가 올 때 모든 이단자와 개신교도와 자유주의자를 상대로 은밀히 또는 공개적으로 줄기찬 전쟁을 감행할 것이며, 지시에 따라 그들을 온 지면에서 근절시키고, 박멸할 것이며, 연령이나 성별 또는 상태 여하를 막론하고 이단자들을 목매달고, 불에 태우고, 굶기고, 물에 삶고, 가죽을 벗기고, 목을 조이고, 생매장하여 죽일 것이며, 그들 저주스런 인종을 영원히 섬멸하기 위해 그들의 여자들의 배를 가르고, 그들의 유아들의 머리를 벽에 쳐박아 부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없을 때에는 은밀히 독약과 목 조르는 줄과 비수 또는 탈환을 사용하되, 그들의 명예나 지위나 신분 또는 권위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며,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그들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교황의 대리자나 거룩한 예수회 형제단 상관의 지시를 받는 대로 이행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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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22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6
    8월 가톨릭 교황의 방한을 앞두고 우려의 소리가 높아져 가고 있다. 특히 개신교 보수교단 목회자들은 가톨릭의 교리적 위험성을 지적하며 한국기독교계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이들은 초교파적으로 연대해 가톨릭의 실체를 알리겠다고 나서며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는 중이다. 이에 가톨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앞장서고 있는 단체인 ‘로마가톨릭&교황정체알리기운동연대’의 조직위원장 송춘길목사를 만나 그의 입장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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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12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5
    한국가톨릭대사전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로마 가톨릭교회만이 유일하게 그 창시자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교황제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제도이다. △사도 베드로는 사도단의 단장이며 초대 교황이었다. △사도 베드로가 A.D. 42-43년경 로마교회를 창설했다. △사도 베드로는 로마교회의 감독(주교)이었다. △사도 베드로는 네로 황제의 박해 때인 67년경에 로마에서 순교했다. △역대 교황은 모두 로마교구 감독이었다. △교황은 지상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도 베드로의 수위권의 계승자이고, 교회의 최고 권위이며, 세계감독(주교)단의 단장이다. △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대한 마지막 판단과 결정에서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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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5-01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4
    천주교가 조선에 처음 전래될 당시 조상제사는 사자숭배(死者崇拜)로 취급되어 금지되었다. 1790년 윤유일(尹有一)이란 천주교 신자가 북경에서 구베어 주교를 만나 위패(位牌)와 제사에 대한 교리문답을 했다. 구베어는 교황 클레멘스 11세(1700-1721)와 베네딕트 14세(1740-1758)의 교시를 들어 제사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이단행위’라고 판정을 내리고 조선의 천주교인은 누구나 조상제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 이듬해 1791년 정조 15년에 전라도 진산의 양반집안 신자 윤지충(尹持忠)이 어머니의 상(喪)을 당했으나 구베어의 가르침을 따라 그 위패를 불태우고 제사를 모시지 않았다. 윤지충은 “천당에 간다는 것은 축하할 일(祝事)이지 슬퍼할 일(弔事)이 아니며, 위패란 공산의 한낱 나무 토막에 불과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들리는 윤지충의 이 주장은 기존의 조선 사회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드는 충격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져 전주성밖 형장에서 참수 당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 조선 최초의 순교자의 피는 손수건에 적시어 멀리 북경으로 보내져 구베어 주교가 시무하던 남천주교당 벽면에 오랫동안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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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7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3
    처음 팔레스틴에서 시적된 기독교는 오랜 기간 로마사회 안에서만 전파됐다. 로마령 밖에도 인도의 도마교회나 페르시아의 네스토리우스교회 같은 기독교 세력이 있었으나, 당시 ‘가톨릭’(catholic)이라고 불린 보편적 교회의 일원으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기독교는 5대 교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첫째는 기독교가 시작된 예루살렘 교구이고, 둘째는 예루살렘교회가 전도한 시리아 안디옥 교구이며, 셋째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에 있던 알렉산드리아 교구이고, 넷째는 사도 바울이 순교한 로마 교구이다. 4세기 초까지는 이 4대 교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후 다섯번째 로마가 330년에 비쟌티움에 새로 낙성한 동로마 수도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생겨남으로써 5대 교구가 되었다. 초기 기독교는 중요한 교리적 결정을 할 때에는 이 5대 교구 대표자들이 모두 참여했다. 지역 교회의 문제는 그 교구 차원이나 지역 차원의 공의회를 통해 처리했지만, 기독교 전체의 정체성과 관련된 교리나 기념일 등은 5대 교구 전체 대표들이 모여 오랜 기간 논의한 끝에 결정했다. 각 교구는 대감독(대주교) 혹은 총대감독(총대주교)이 책임자로서,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다만 예루살렘 교구와 안디옥 교구, 알렉산드리아 교구는 7세기 중반 이후 이슬람의 점령으로 기독교 세가 약화돼 힘을 쓰지 못했다. 자연히 로마 교구와 콘스탄티노플 교구가 경쟁하는 양상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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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10
  • 기획/ 오는 8월 교황의 한국방문을 앞두고 2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 한국 교계와 정치계에 미칠 영향은 매우 미묘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선 현 정권에 대하여 네거티브 성향을 가진 진보적 천주교 사제들이나 교인들은 대통령이 교황을 접견하는 것이, 교황이 현 정권을 승인하고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인식될 것에 대하여 우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티칸도 엄연한 독립 국가이기 때문에 양국의 정상이 국가간의 외교적 차원에서 만나는 것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반면에 천주교 교세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번 교황의 방문은 천주교 성장에 엄청난 효과를 가져 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교황을 대대적으로 환영해야 할 입장이다.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과 1989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을 방문한 이후 천주교는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한 동안 200만 신자에 머물러 있던 상황에서 현재 500만 신자를 확보하게 되었다. 물론 그 성장이 교황의 방문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겠지만, 교황이 한 나라를 방문하면 그 나라의 천주교 교세는 현저한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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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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