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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한국교회에 만연한 표절의 현실은?
    외부감시 강화와 학계 전체의 수준 높여야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청어람 ARMC는 공동으로 지난 8월 27일, 서울 합정동 백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표절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포럼을 진행됐다. 주최한 이번 포럼은, 최근 몇 년 간 교계에서 벌어진 설교 표절, 논문 표절, 출판물 표절 논란을 보다 깊이 있게 다루어 보다 근본적인 해법과 대안을 모색하려는 취지에서 열렸다.약 80여명의 관심자 및 언론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각 발제자는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하였다. 먼저 남형두 교수(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는 기조발제에서 표절문제를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 교수는 표절의혹으로 지목된 국내 유명인들을 예로 들며, 표절의혹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으니 전문가들이 비공개로 조사하고 단호하게 대처하는 선진국 사례를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미국은 문제가 제기되면 수년간 비밀을 유지하며 엄격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한번 표절로 판명나면 학계에서 추방한다”면서도 “국내에서는 정치적 수단으로 어설프게 공격하다, 관심이 떨어지면 어설프게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표절에 대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개별 사안을 다룰 때는 전문가들이 신중하게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학교)는 표절의 원인으로 논문의 수를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학계에서의 생존경쟁과, 영세하고 폐쇄적인 신학교육기관의 한계를 꼽았다. 차 교수는 “글쓰기의 기초 훈련이 안 된 대학원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지도교수가 꼼꼼히 논문을 지도하기가 힘들고, 또 표절의 의혹을 낱낱이 검증하기도 어렵다”고 고백했다. 또한 “논문심사는 통상 3인의 전공학자들이 익명으로 하는데 한 편당 1만원에서 5만원의 심사비를 받고 품앗이 차원에서 봉사”한다고 지적하며, 논문의 필자가 누구인지 눈치 챌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외부의 감시가 강화되는 것과 더불어 학자적인 프로페셔널리즘으로 학계 전체의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여기에 신학교수들의 평가 기준을 다변화해서, 논문 수를 계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넘어 질적인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신학서적표절반대> 그룹을 운영하는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학서적에서의 표절 수준이 “초보적인 수준이 대부분”이라며 “목사로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신학교수 중에 “표절한 원서와 자기 책을 동시에 교재로 사용하고, 독서과제로 제출한 경우”나 “표절한 책들이 번역되어 나오는 상황에서도 저자들은 표절한 책들을 절판시키지 않고 계속 판매하고 교재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수라는 위치가 이미 불가침의 권력으로 타락했기 때문이다”며, 출판사도 유명한 저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표절을 문제 삼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목사는 “유일한 출구전략은 학계의 치열한 반성이다”며, “표절 기준을 정해놓은 시카고 매뉴얼을 갖다 쓰자. 베끼더라도 누가 뭐라 말할 사람이 없다”고 제안했다. 또 “표절에 대한 제보가 우리가 아니라, 학회나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망했다.서문강 목사(중심교회)는 설교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하느냐”가 표절의 기준이 된다고 보고, “표절 설교는 그러한 과정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러한 과정을 겪은 것 같은 가면을 쓰고 행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문 목사는 설교자로서 가져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강조했다. 설교를 위해서는 “진을 빼는 해산의 수고”, “설교자로서의 피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설교를 표절하게 되면 “설교자도 진리 속에서 자라지 못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집 때문에 “다른 설교자의 설교에 대해서도 귀를 닫아버리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고 경계하며, “남의 설교를 참조하는 일은 모든 설교자에게 있어서 사활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요소”라는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주최측은 “갈수록 표절에 대해 엄격해지고 있는 추세에 맞춰, 교계에서도 표절의혹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응지침과 제도적인 정비가 필요하다”며, “본 포럼을 계기로 각 분야에서 깊이 있는 논의들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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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31
  • 기획/ 벽제중앙추모공원 둘러싼 예장합동측과 C씨측의 갈등
    은급재단 관계자의 진입 시도 담긴 동영상 공개 벽제중앙추모공원을 둘러싼 공방이 점점 치열해 지고 있다. 최근 본 추모공원의 소유권을 갖고 있는 예장합동측 은급재단 관계자들이 추모공원을 방문했으나, 현재 이 곳을 강제 점유하고 있는 C씨측의 방해로 진입하지 못한 것이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이날 은급재단의 진입 시도 과정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는데, 이 동영상에는 C씨측이 문을 걸어 잠그고, 모욕을 주는 장면이 나오는 등 향후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예장합동 은급재단으로부터 처리를 위임받은 2명의 위원과 재단복지국 관계자들이 추모공원을 방문한 후 점유자 C씨측과 충돌하는 장면이 담긴 해당 동영상에 따르면, 권한이 없는 이들이 실제 주인을 내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즉 주인도 아닌 자들이 주인의 방문에 문을 걸어 잠그고 경찰을 부른다고 협박하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추모공원과 관계없는 자들이 걸어 잠근 문 앞에서 은급재단 관계자들에게 욕설을 하며 겁박하는 광경도 목격됐다. 문제는 이 벽제중앙추모공원을 점유한 C씨측이 이 추모공원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 2009년 예장합동과 C씨측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예장합동이 85%, C씨가 15%의 소유지분을 갖기로 했지만, 그해 충성교회에 매각한 다음 예장합동이 C씨에게 15%의 지분에 해당하는 8억 원을 이미 지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C씨측은 이후에도 납골당을 계속 점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예장합동이 충성교회와의 소유권 1심 소송에서 이긴 올 1월 이후에도 점유를 해제치 않고 실소유주의 반대를 무릅쓰고 납골기를 매각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장합동은 현재 법원에 C씨 측을 상대로 영업금지 가처분신청을 신청해 놓은 상태다.9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예장합동과의 소유권 2심 재판 첫 심리를 앞둔 충성교회측은 지난 18일 해당동영상을 공개한 후 “C씨의 불법점유와 안하무인 점유행태를 예장합동 은급 회원들이나 총대들이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며, “추모공원을 방문해 C씨측과 격렬하게 싸운 은급재단 관계자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동영상에 따르면, 은급재단 관계자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C씨 측의 실무책임자가 문을 걸어 잠그고 직원들은 빨리 피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또 추모공원 직원들이 아닌 우락부락한 제3자들이 등장하여 추모공원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이어 C씨로 보이는 이와 통화하는 것으로 보이는 은급재단 실무책임자가 “법으로 하라니까 법으로 하겠다”는 말을 마친 후 “문을 열어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추모공원 점유자 C씨측은 “열지 못한다”고 응대했다. 이후 고성과 하께 몸싸움이 빚어졌다. 더 기괴한 사실은 설치권자로 등록된 김모 목사. 현장에 있었던 그는 예장합동 소속임에도 오히려 C씨측 입장을 대변하면서 은급재단 관계자들을 내치는 행태를 보였다. 김모 목사는 “나에게 설치권이 있는데 왜 지금 쳐 들어와서 이렇게 해?”라며 “경찰 부르고... 양심? 누가 양심인데? 지그들이... 누구 때문에...”라고 말하고 있다. 예장합동의 이익에 복무해야 할 그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예장합동 관계자들에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에 대해 법인복지국장 우종철 장로는 “설치권자는 무슨 설치권자냐?”라고 물었다. 즉 김모 목사의 설치권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미 김모 목사는 예장합동에 설치권자로서 사퇴서를 썼을 뿐 아니라 이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우 국장의 해당 발언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동영상에 따르면 또 은급재단 여직원들에게 추모공원 직원들이 아닌 제3자들이 자신들이 추모공원 직원이라며 “XX”라는 욕설을 퍼붓고 협박하는 장면도 나온다. <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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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20
  • 기획/ 제18차 세계렘넌트대회를 통해 본 ‘렘넌트 운동’
    세대와 세대를 이어 한국교회의 미래를 예비하는 연결고리 한국교회가 찬란했던 부흥기를 뒤로하고 위기의 침체기에 들어서며, 한국교회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벌어지는 기독교 쇠퇴현상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한국교회는 이미 곳곳에서 주일학교가 사라지고 청소년, 청년들이 눈에띄게 줄어드는 등 급격한 침체를 보이고 있다. 이렇듯 젊은이들이 점차 교회를 등지는 등 한국교회가 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가운데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단체가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청소년 부흥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세계복음화전도협회(이사장 류광수 목사)의 ‘렘넌트 전도운동’이다. 사)세계복음화전도협회가 매년 개최하는 ‘세계렘넌트대회’는 1만 명이상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이다. 그것도 기독 청소년들이 참가하는 영성집회로서는 한국교회에서 유일한 최대 규모 집회이다. 대회 참가자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대회장소와 숙박시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없어 참가 인원을 제한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 부산 BEXCO에서 3박4일 동안 진행된 대회 참가비가 36만원으로, 청소년들에게는 비교적 부담이 되는 액수임에도 불구하고 3개월 전 인터넷 등록 개시 3일 만에 거의 마감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뿐만 아니라 주최측은 해외에서 참가하는 청소년들은 일 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회 참가비를 마련키도 한다고 전했다. 한국교회의 청소년은 감소하는데 유독 다락방전도운동에서는 예수 믿는 청소년들이 날로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어떤 고난도 이겨낼 다음세대 양육‘렘넌트(Remnant)’ 라는 용어는 ‘남은 자’ 라는 의미의 영어이다. 성경적 근거는 이사야 6장 13절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류광수 목사는 ‘다가올 미래에 그 어떤 환경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복음가진 후대를 키우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사명이다.’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런 ‘다락방 전도운동’ 중의 핵심사역이 바로 후대를 키우는 ‘렘넌트 운동’인 것이다. 류 목사는 평소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다가올 미래에 시대를 살리고 세계복음화를 이룰 사람은 바른 복음으로 각인된 후대들이다. 복음과 언약을 가진 자가 렘넌트이고 이들을 복음으로 양육하는 것이 교회와 우리의 사명이다”고 늘 강조해 왔다. 동 단체는 “다락방 전도운동은 합동, 고신, 통합,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등 한국교회 주요 정통 교단 출신 목회자들도 다수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하는 교회들은 모두 청소년 사역에 열심이다”며 “단순한 청소년 사역이 아니라 성경적인 복음이 완전히 뿌리내리도록 청소년의 영성훈련에 집중하며 학업과 기능 면에서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찾아가도록 전체 교회들이 협력해 중직자와 산업인이 인턴십과 멘토링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복음가진 엘리트들을 후원하자는 취지에서, 산업인 중직자가 기금을 마련, 조성한 장학금으로 국내외 인재들에게 매년 10억 원 이상을 후원, 국내외 우수한 후대들을 키우고 있다. 이미 장학금을 받았던 학생 중에 사회 각 전문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이들이 다시 후배 학생들을 후원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어, 장학금 후원도 좋은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 단체는 현재 해외에서 렘넌트 운동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렘넌트운동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어 미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남미, 아프리카 대륙 등에서도 해마다 각 나라 및 대륙별로 ‘해외렘넌트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렘넌트운동의 폭발적 성장은 성령의 역사”다락방 렘넌트운동이 청소년 영성훈련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동 단체는 “청소년들이 성경말씀으로 각인되고 성경적 언약에 뿌리를 내리고 복음으로 체질 되도록 매일 말씀묵상과 정시기도, 생활 속에서 ‘나의 전도’를 실천하게끔 양육한다”고 전했다. 특히 양육된 청소년들은 일반 기성교회 청소년들과 신앙가치관에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마련인데, 이들 청소년은 교회 예배 생활에 집중하며 강단 설교 말씀을 기록하며 말씀이 자신의 삶속에서 성취되길 기도하며 노력하며 비록 어리지만 교회에서 헌신 봉사하며 목회자들의 오른팔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렘넌트운동이 아이들에게 영적, 정신적, 실생활 등 여러 면에서 매우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은, 부모들이 이 운동에 찬사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며 교회가 부흥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가정이 무너지는 시대에 가정 복음화를 놓고 기도하는 아이들, 부모가 이혼하는 상처를 겪으면서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찾으며 기도하는 아이들 속에서 오히려 부모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다. 특히 성공 지향적인 작금의 시대에, 지나친 생존경쟁 위주로 학습되어지고,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렘넌트운동은 미래의 인생 비전을 하나님의 영광에 방향을 맞추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동 단체는 “복음 때문에 전문성과 실력을 키우는 아이들, 복음이 희미해져 가는 시대와 미래를 내다보며 복음 문화 창조와 세계복음화의 꿈을 사실적으로 실현시켜가는 아이들, 이 시대의 남은 자로 성장하는 청소년들은 바로 한국교회는 물론 세계교회의 희망임에 틀림이 없다”며 “다락방 렘넌트운동이 이단 시비를 겪는 가운데서도 20여 년 동안 거의 폭발적이라 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진 것은 분명한 성령의 역사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미 한국교회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가 류광수 목사(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이단시비를 완전히 해소한 만큼 한국교회의 발전과 미래를 위해 렘넌트운동이 한국교회 전체 운동으로 승화시켜 가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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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8-10
  • 기획/ 교회협, 분단극복,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토론회
    비현실적 통일 담론 아닌 한반도 평화 위한 새로운 담론 필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총무 김영주 목사) 화해통일위원회는 지난 7월 21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반도의 분단극복과 평화정착을 위해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한국교회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김근식 교수(경남대 정치학)는 주제발제를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에 가장 큰 요인이 될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평화체제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이 지금처럼 평화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군사주의의 맞대결로 달려간다면 그 끝은 파국일 수밖에 없기에 지금이라도 군비경쟁과 안보딜레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서 한반도를 평화와 화해와 협력의 지대로 만들어 가기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제는 “비현실적 통일 담론이 아니라 당장 절박한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담론 필요”하다고 제안하면서 경제적 지원과 협력의 통로로서의 남북관계를 넘어서서 ‘평화로운 대외환경’을 조성해 가기 위한 ‘포괄적 평화’(comprehensive peace)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단순히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문서 하나로 담보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대결의 완화 및 해소와 연동된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 6자회담과 북미 협상, 남북대화의 재개를 통해 북핵문제를 관리하고 상황악화를 막아내는 외교적 노력과 평화의 수단을 강구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북의 안전보장을 위한 평화체제 논의를 적극적으로 제의하고 주도해 나갈 것과 북한의 정치군사회담에 주도적으로 응할 것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남남갈등의 ‘해소’로서 통일을 강조하면서 북한 주민의 마음을 사는 친남도 제고와 흡수라는 우월의 심리가 아니라 인정과 공존의 정신이 우리에게 절실함을 피력했다. 이를 위해 오랜 동안의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의 기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현장 목회자로 발언에 나선 송병구목사 (색동교회, 화통위원)는 지난 30년(1984 일본 도잔소 남북교회 만남을 기점으로)을 돌아볼 때 지금은 사회 전반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통일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침체되었음을 지적하고, 특별히 교회의 통일운동이 교회 현장에서 대중화되지 못하였다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그 이유로 ‘소명의 부재’를 들었다. 교회의 통일운동이 큰 대회나 선언에만 머문 채 신앙화, 대중화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으며, “결과로서의 통일만 외쳤을 뿐 과정상으로써의 평화를 만들어 가는 일에 무기력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70년의 분단세월이 많은 위기를 가져다주었다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과정은 열린 기회를 줄 것이다“라는 희망 속에서 교회는 통일운동을 통하여 분단된 이 땅에 희망의 대리자가 되어야 함을 호소했다. 내적 경건과 외적 행실의 일치, 신앙과 삶의 일치 속에서 평화통일운동이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송 목사는 분열된 모습의 교회를 반성하여 교회일치를 모색할 때, 사회적 약자에게 변호사 노릇을 할 때,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앞장설 때 통일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힘주어 말했다.청년 대표로 발표한 한세욱 기독청년협의회 총무는 “전쟁과 분단의 책임의 상황을 후대에 물려주게 된 것에 대해 교회는 젊은 세대에게 사죄해야 마땅하다”는 어느 교회의 고백을 인용하면서 지금 교회 통일운동의 가장 큰 과제는 20-30대 청년들에게 통일과 통일운동의 필요성을 알려 그들을 주체로 세우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한 총무는 통일운동이 전반적으로 노쇠하였다는 지적과 함께, 통일운동이 일부 소수 전문가들의 운동이 아닌 국민 누구나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대중운동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아울러 한국교회가 종교적 평화운동을 확산하는 것으로부터 통일운동을 시작하여야 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평화조약체결 운동, 군사훈련 반대운동,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운동에 교회가 적극 참여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청년들을 위한 평화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참여를 독려하는 일 또한 통일운동에 있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하였다.여성대표로 나선 이문숙 목사 (아시아교회여성연합회 총무)는 신뢰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는 한 순간의 대박 사건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대화하고 협력함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또한 ‘다름’을 포용하려는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으로 겪은 분단과 종속적 삶과 피해, 아픔, 한을 평화의 에너지로 승화할 수 있도록 여성이 다양한 차원에서 평화통일운동에 참여해야 함을 언급하고, 평화통일이라는 큰 명제 아래 여성 의제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여성 6자 회담이나 평화통일의사결정과정에서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UN 안보리 결의안 1325에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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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25
  • 기획/ 한국교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 반대집회로 저지
    자녀사랑연대·민족복음화·동성애대책위 등 반대 집회 주도 국민 대다수의 반대와 우려 속에 동성애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가 지난 6월 28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동성애 축제가 국민정서에 반하고, 메르스 등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해 있다며 박원순 서울시장에 본 축제를 취소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한국교회 역시 기존에 예고한 대로, 맞불 반대 집회로 이날 서울시청앞 광장에 모였다. 주최측 추산 3만여명, 경찰 추산 7천여명이 모인 이날 퀴어축제 행사는 다양한 성소수자 관련단체와 대학생 모임, 여성단체 등이 참석했으며, 미국, 프랑스, 독일, 유럽연합(EU) 등 13개 나라 외교관들과 구글코리아 등 기업 간부 등도 참여했다.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까지 직접 행사장을 찾았고, 국내 커밍아웃 1호 연예인 홍석천도 축제에 참석해 현장 상황을 자신의 SNS를 통해 전하기도 했다.오후가 되면서 축제 참가자들은 노출이 심한 차림으로 ‘STOP HATE’ ‘지구가 아니라 침실을 뜨겁게’ ‘항문섹스는 인권이다!’ ‘Pray for 개독’ 등 자극적인 문구가 담긴 피켓을 들고 광장을 활보했다.퀴어문화축제 주최 측이 가장 공들여 준비한 퀴어퍼레이드는 7대의 인솔 차량을 따라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에서 출발해 을지로 2가, 퇴계로 2가, 회현사거리, 소공로 등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역대 최장코스(2.6km)로 진행됐다.이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고 퀴어축제 퍼레이드를 저지하고자 하는 기독교 단체들의 반대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오후 2시 반부터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는 민족복음화운동본부(총재 이태희 목사)와 나라사랑&자녀사랑운동연대(조직위원장 송춘길 목사)가 '바른 성문화를 위한 한국교회 오후 연합예배'를 드렸다. 약 3천 명이 모인 이날 행사에서 설교를 전한 이태희 목사는 “동성애는 멸망 받을 큰 죄악이지만, 동성애자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모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최근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가 교회에 미칠 타격을 우려하며 “미국 선교사로부터 복음을 받아 오늘날 우리가 있음을 기억하고, 이젠 우리가 미국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이후 민족복음화운동본부 사무총장 전영규 목사, 수석실무 노형래 목사, 사무총장 임은선 목사, 마경훈 목사가 각각 △나라와 민족 △동성애와 차별금지법 반대 △한국교회 △동성애자들을 위해 특별기도를 인도했으며, 민족복음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김영남 목사가 축도했다. 그간 한국교회 동성애 반대운동을 최일선에서 이끌어 온 송춘길 목사는 “오늘 집회는 올바른 성문화를 확산시키고 동성애자들을 구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굳게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열렸다”며 “동성애로 인해 매년 1천여 명 이상의 청소년이 에이즈에 감염되고, 최근 10년간 10대 청소년 에이즈 감염자가 10배로 증가하고 있어 심각하다”고 말했다. 송 목사는 에이즈 확산 위험이 커진 이유로 교육부의 동성애 친화적인 교육, 질병관리본부의 직무 유기, 국가인권위원회의 에이즈 감염 조장, 신문 및 방송사의 동성애, 에이즈에 대한 사실 왜곡 등을 꼽았다.한편, 같은 시간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 목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황수원 목사), 미래목회포럼(대표 이윤재 목사), 한국교회언론회(대표 유만석 목사) 등이 연합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본부장 소강석 목사)는 서울 광장 건너편 대한문 앞에서 ‘동성애조장 중단촉구 교단연합예배 및 국민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들은 주최측 추산 1만 5천여 명의 교계 지도자 및 성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동성애 NO! 건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동성애 및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인사말을 전한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는 “동성애는 분명한 ‘죄’이다. 결코 용납할 수도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또한 퀴어축제와 같은 반성경적이고 음란한 문화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또 “우리나라에 에이즈가 급증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남성 동성애자들 때문”이라며 “동성애, 동성결혼을 합법화 시키려는 행위에 대해 강력히 대처해 나가며, ‘건전하고 올바른 성 정체성 및 성의식’을 통해 전통적인 사회 질서와 통념을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의견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의 사회적 책무도 다할 뜻을 밝혔다. 이 목사는 “동성애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단순히 정죄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으며, 그들이 회복될 수 있도록 긍휼과 관용으로 대할 것이다”며 “동성애자들이 버린 동성애자인 에이즈 환자를 돌아보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바로 기독교인들이다. 동성애자들이 성경적이며 전통적인 관계로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순리를 역리로 쓰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전한 최낙중 목사(예장백석 증경총회장)는 지난해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의 반동성애법 제정을 예로 들며 “당시 무세베니 대통령은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반동성애법을 제정하면 연 4억 달러의 원조를 끊겠다’고 경고한 상황에서도 ‘우간다를 지켜주고 구원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동성애 금지법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무세베니 대통령은 동성애로 인해 가정, 사회,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목격했다”며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55개 나라들 중에 이미 38개 나라가 반동성애법을 제정해 실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또한 “바울이 로마서를 쓸 당시 로마시민 중 이교도들은 동성끼리 성관계를 맺으며 성적으로 문란한 상태였는데, 이는 순리로 써야 할 성을 역리로 쓴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낙중 목사는 “지난 26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동성애 결혼을 합헌으로 선포하며 성경에서 금한 가증한 죄를 옳은 일이라고 규정했다”며 “성을 역리로 쓰는 것을 합당하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로 파멸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한교연 대표회장 양병희 목사는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오늘 우리는 비통한 마음을 넘어 순교의 각오로 이 자리에 모였다”며 “누군가의 인권을 억압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도와주려는 것이다. 종교인이기 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 망해가는 것을 더 이상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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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7-03
  • 해외교회/‘독일 개신교회의 날’에 대해 3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슈투트가르트에 13여만명 모여 ‘온 세상 평화’ 기원 금년에 개최된 제35회 독일개신교의 날은 지난 6월 3일부터 7일까지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렸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도시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전역에서 몰려든 약 10여만명의 개신교인들로 인해 가득 찼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35회 독일개신교회의 날 행사를 상징하는 붉은 티셔츠와 숄을 걸쳤고, 얼굴에는 함박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2년에 한번씩 독일의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독일 개신교인들의 믿음의 축제이다. 이를 위해 약 2500개의 행사들이 도시 각 처에서 열렸고, 약 5천명의 봉사자들이 자원하여 행사를 도왔다. 또한 약 13만명의 참석자들이 함께 어울렸다. 13만명이라는 참석자들의 수도 놀랍지만 이들 중 약 10%가 가톨릭 신자들이라는 보고는 개신교 교회의 날이 개신교를 넘어 가톨릭과 함께 교류하는 중요한 만남의 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슈투트가르트가 바덴뷔르크부르크 주의 중심 도시 이긴 하나 독일 도시의 특성상 약 10만의 인원이 한번에 모여 행사를 치르기는 쉽지 않다. 해서 금번 행사는 도시의 3개 구역에서 나뉘어 이루어졌다. 행사진행 본부와 본 무대는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과 주경기장이 있는 네카 강변에 꾸려졌다. 그리고 도심 중앙에는 슈투트가르트 성과 스티프트교회을 중심으로 수 많은 공연들이 열렸고, 도시의 북서지역인 펠바흐에서는 다양한 강연과 음악회 등이 거리와 지역 교회들을 중심으로 개최되었다.금번 교회의 날은 시편 90편 12절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지혜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Damitwirklugwarden)”라는 주제로 예배와 각종 공연 그리고 강연 등이 이루어졌다. 이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가 어떤 믿음의 증거를 보일 수 있는지, 어떻게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나눔이었다.6월 3일 수요일 저녁예배를 시작으로 4박 5일 간의 프로그램은 그 내용과 형식 면에서 다양하고 알찼다. 아침 기도모임을 시작으로 오전 성경공부와 테마별 강연 및 공연, 점심 기도모임, 열린 찬양, 오후 테마별 강연 및 공연, 저녁 기도모임 그리고 저녁 테마별 강연 및 공연으로 진행되었고, 이후 하루를 마치는 기도모임으로 마무리 되었다.개회예배의 설교자인 바덴뷔르크부르크주의 감독목사인 프랑크 오트르리드 율리 목사는 “하나님의 지혜의 마음을 얻기 위하여”라는 제목의 설교를 통해 “난민들이 전 세계를 헤매고 지중해가 죽음의 바다로 남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오는 보트피플들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촉구한 것이다.설교가 마치자 독일 연방 대통령 가우크가 프랑크 목사의 설교를 받아 독일의 기독교인들이 난민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문제에 단순히 구경꾼으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이 문제들을 극복할 다양한 해답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는 전직 목사로서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세울 것을 주문했다.둘째 날 강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는 단연 목사의 딸이자 현재 독일을 이끌어 가고 있는 메르켈 총리였다. “디지털과 지혜로움”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통해 그녀는 오늘날의 디지털의 신기술과 그리스도인들의 현명한 사귐에 대해서 강연했다.이번 교회의 날 행사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소주제는 독일이 난민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또한 난민들이 독일 안에서 적응하고 하나가 되기 위해 독일교회가 어떻게 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이외에 “하나님과 돈”, “이웃을 섬기는 예배”, “환경 보존과 생태”, “동성애” 더 나아가 “인공지능 운전 차량”이라는 주제까지 다양한 삶의 영역에 대한 조명들이 있었다.한국과 관련해서는 “분단과 통일”, “한국 사회의 화해와 치유”, “남한의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한 논의”, “동북아 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한국, 독일, 일본 연합 성만찬 예배” 등의 내용들이 강조되었다. 특별히 근래 독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에 대한 배려와 정착에 독일교회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나누었다.약 13만명의 참석자 중 4박 5일 전기간을 참여한 이들은 97,127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 수는 슈투트가르트와 그 인근의 자택에서 기차와 버스를 타고 행사에 참여했지만, 대다수의 다른 지역에서 온 참석자들은 도심의 여러 곳에 마련된 공동숙소를 이용했다. 대부분의 공동숙소는 성령강림절 연휴를 맞아 휴업을 하고 있는 학교들을 활용했다. 이와 함께 슈투트가르트 인근의 성도들이 자신의 집을 자원하여 개방했다. 그들은 타도시에서 온 손님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집회에 참여하고, 함께 기도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유학생들, 그리고 난민으로 독일에 사는 사람들도 함께 어울렸다.4박5일의 행사는 주일 오전 13만명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마무리 되었다. 그들은 지난 5일 동안 전쟁과 분쟁의 종식 그리고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기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고민했다.폐막예배(사진)의 설교를 맡은 노라 스테헨 목사는 열왕기상 3장 5-6절의 말씀을 설교하며 다시 한 번 평화와 난민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에 대해서 강조했다. “솔로몬의 꿈은 우리에게 현실성 있는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날 행사와 같은 기간에 독일에서 열린 G7정상회담의 정치인들 뿐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책임을 가져야 합니다. 너무 우리의 현실만을 보기보다는 지금보다 좀 더 로맨틱한 모습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더 신뢰합시다. 하나님의 평화는 온 세상을 감싸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참석자들에게 외쳤고, 청중들은 “아멘”으로 화답했다.<독일 튀빙엔에서 강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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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9
  • 해외교회특집 / ‘독일 개신교회의 날’에 대해-2ㅤ
    독일 교회의 날이란?독일 교회의 날의 정식 명칭은 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 (약칭 DEKT)다. 이를 우리 말로 번역하면 ‘독일 복음주의 교회의 날’ 혹은 ‘독일 개신교 교회의 날’이 된다.독일 개신교를 대표하는 EKD는 총 20개의 지역교회연합(Landeskriche)을 가진다. 이들은 10개의 unierte Kirch(루터+칼빈주의), 8개의 lutherische Kirche(루터교 중심), 그리고 2개의 reformierte Kirche(장로교 중심)로 이루어진다. EKD는 2차 대전 이후 나치에 대항했던 고백교회 목회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연합체이고, 또 EKD에 버금가는 VELKD(Vereinigte Evangelisch-Lutherische Kirche Deutschlands, 독일 복음주의 루터교 연합교회)와 그외 몇몇 연합체들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일교회는 철저하게 지역교회(Landeskirche)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는 과거에 지역 영주의 신앙이 그 지역의 신앙을 결정지었던 1555년의 아우크스부르크 회의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의 전통 아래 서 있기 때문이다. 1. 1949년 이후 동서 화해와 통일의 열망으로서의 교회의 날 1949년 8월의 첫째 주간, 기독학생의 날(Christlicher Studententag )이라는 이름으로 독일의 남녀 그리스도인들이 하노버에서 모였다. 이 행사가 시작되기 직전 독일 개신교회 (EKD)의 회장 구스타브 하이네만(Gustav Heinemann)은 독일 개신교회의 날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후 이듬해인 1950년부터 이 행사는 ‘독일 개신교회의 날’(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이라는 이름으로 61년까지는 매년, 이후로는 2년마다 한 번씩 독일의 여러 지역에서 열리게 되었다. 1950년 8월 에쎈(Essen)에서 열린 독일 교회의 날은 한국전쟁으로 인한 전쟁의 서막이 막 오르는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독의 개신교인들 약 18만명이 모여 행사를 치르게 된다. 동서간의 정치적 갈등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1961년 베를린 교회의 날 행사까지 약 12년간 독일 교회의 날은 동서독의 모든 독일인들이 함께 하는 축제였다. 비록 전후 냉전 체제가 살벌하게 마주하는 동서독 이었지만 그럴 수록 그리스도인들은 이데올로기를 넘어 민족의 이름으로 하나되길 원했다. 이런 바램 아래 1951년 베를린 교회의 날은 “그래도 우리는 형제들이다”(Wir sind doch Brueder)라는 테마 아래 약 20만명의 동서독의 개신교 평신도들이 화해와 하나됨을 위해 모였다. 또한 53년 함부르크 교회의 날의 주제는 “너희는 신뢰를 버리지 말라”(Werft euer Vertrauen nicht weg)였고, 59년 뮌에서의 교회의 날은 “너희는 나의 백성이다”(Ihr sollt mein Volk sein)라는 주제를 택했다. 이는 당시 교회의 날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동서독의 수 십만 개신교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토론하고, 이데올로기적 체제 선전보다 민족적 하나됨과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 또한 이는 국경을 넘어 세계 교회와의 일치와 독일인들의 연대의 신호가 되었다. 51년 베를린 교회의 날 폐막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교회의 날은 나뉘어진 독일을 다시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자리를 만들었다.”민족 화해의 연장선상 아래서 독일 개신교회의 날은 서독 지역뿐 아니라 동독 지역에서도 개최되었다. “희망 안에서 즐거워하라”(Seid froehlich in Hoffnung )를 테마로 가진 54년 라이프찌히의 교회의 날은 동독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사회 안에서 바른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지를 고민하게 했다. 냉전의 한 복판에서 열린 라이프찌히 교회의 날은 그 자체로도 중요한 정치적 사안이었다. 당시 메인 집회에 약 65만명의 개신교인들이 모였다. 이는 지금까지의 교회의 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였다. 그들은 지난 날 나치 정권의 죄의 극복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고, 나아가 동서독의 통일을 열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서 분쟁 안에서 교회의 날을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시도들 역시 끊이지 않았다. 버스와 전철 그리고 도시 곳곳에 체제를 선전하는 플랭카드가 나부꼈다. 당시 동독 정부도 라이프찌히에서 열리는 교회의 날 행사에 적잖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행사 석달 전 까지도 교회의 날이 열릴 수 있는 지에 대한 허가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 장애가 돌출되었음에도 라이프찌히 안에는 동서독 개신교인들이 함께 연대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희망 안에서 즐거워하라!”라는 문구는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를 향하여 보낸 서신 속에 있는 권면이다. 당시 동독의 개신교회는 정부의 박해 가운데 있었고, 나치 정권의 탄압 아래서 저항의 경험이 있던 동독 개신교회는 다시 한번 신앙을 지키기 위한 저항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배경 아래 65만명의 신앙의 동역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동독교회의 개신교인들에겐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라이프찌히의 교회의 날은 막대한 정치적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국전쟁의 후폭풍으로 인해 서유럽 안에는 소련의 팽창정책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찼다. 이로 인해 서독 역시 재무장과 함께 나토의 결성에 동참해야 한다는 정책적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에 대한 찬반 토론이 EKD와 교회의 날 안에서도 격렬하게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에 대한 열망과 독일 문제에 대한 논의들이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1961년 베를린 교회의 날이 끝난 이후 이러한 열망은 큰 장애를 맞게 된다. 베를린 교회의 날이 끝이 난지 3주 만에 베를린에 커다란 장벽이 세워져 더 이상 동서독의 개신교인들이 소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후 독일 개신 교회의 날은 동서가 나뉘어져 진행되었고, 주로 서독지역이 중심이 되었다. 교회의 날은 그 태생에서부터 사회적 변혁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연유로 1960년대 교회의 날은 당시 서독 전역에서 일어난 격렬한 학생운동의 한 가운데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반핵운동, 베를린 위기, 쿠바분쟁, 경제적-기술적 혁신, 우주를 선점하려는 경쟁, 제2바티칸 공의회 등 교회의 날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졌다. 2. 혁명 세대와 교회의 날1967년 하노버 교회의 날의 주제는 “평화가 우리에게 있다”(Der Frieden ist unter uns)였다. 이 중심에는 민감한 정치적 논쟁들이 있었는데, 베트남에서 사용된 미군의 대량 살상용 화학무기의 사용이었다. 또한 이와 함께 나이가리아의 민족전쟁,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6일 전쟁들이 뜨거운 감자였다. 이와 함께 67년 하노버 교회의 날은 당시 서독에서 일어난 학생운동과 폭발적으로 결합되었다. 하노버 교회의 날이 개최되기 3주 전 베를린에서 한 학생이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약 4만명의 개신교인들이 모인 하노버에서는 정부에 대한 분노가 들끓었다. 하노버에서 드러난 시민과 학생들의 분노는 이듬해 서독의 68학생운동으로 이어져 서독사회에 변혁의 불길을 집히게 된다. 당시 독일 개신교회의 날 안에는 변혁을 바라는 학생운동과 이에 대한 반동으로써의 정치화가 격렬하게 부딪혔다. 많은 이들이 교회의 날이 교권화 되고 정치화 될 수 있음을 경고했고, 이 경고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복고적인 주교회는 정치적 이유를 들어 평신도운동인 교회의 날 행사를 자신들의 생각에 맞는 방향으로 길들이길 원했다. 이로써 교회의 날 행사는 조금씩 주교회의 영향권 아래에 종속되어갔다. 3. 70년대 이후 교회의 날의 변혁70년대 이후 교회의 날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교회의 날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축소되었고, 참석자들도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에 교회의 날은 강연식 프로그램을 줄이고, 방문자들과 직접 참여하고 소통하는 형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예배와 예배의 다양화와 정치적 문제에 대한 나눔과 기도 모임 등에 중점을 두었다. 이런 변화를 통해 다시금 교회의 날의 참석자들은 점점 늘어났고, 새로워지게 되었다. 이후 교회의 날은 여성 인권, 환경과 기후에 대한 관심 등의 주제를 다루었다. 49년부터 지금까지 독일 개신교회의 날은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과 같았다. 신학자들 역시 신학의 관념 속에 갇히지 않았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문제를 놓고 성경과 씨름하고, 평신도들의 손을 잡고 기도의 자리에 무릎 꿇었다. 또한 이 운동은 자연스럽게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끼치며 오늘의 독일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튀빙엔에서 강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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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1
  • 해외교회/‘독일 개신교회의 날’에 대해 1
    독일 교회의 날의 유래사회적 빈곤에는 가난한 자들을 도움으로써, 불신앙에는 전도로서, 그리고 무신론에는 학술토론을 통해서 대응해야 한다.- 요한 힌리히 비헤른(Johann Hinrich Wichem)2년에 한번 개최되는 ‘독일 개신교회의 날’(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 행사는 그 참석 인원이 평균 10만명이 넘는 대규모 행사이다. 보통 수요일에 시작하여 주일까지 약 닷새 동안 이어지는 이 행사는 예배와 성경공부, 세미나와 학술대회, 강연회, 그리고 음악, 연극, 미술 등 약 2500개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독일 ‘개신교회의 날’행사는 단순히 교회의 세(勢)를 과시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사가 아니다. 교회의 날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의 정치와 여론을 이끌었고, 독일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교회에 길을 물을 때, 그 길을 제시해 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특히 독일의 ‘교회의 날’을 말할 때,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이 행사의 주체가 주교회(Landeskirche)나 독일개신교회(EKD,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가 아닌,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는 행사라는 점이다.독일 ‘개신교회의 날’은 짧게는 1949년 하노버(Hannvor) 대회를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좀더 오래된 역사적 기원을 따진다면 1848년 9월 위텐버그(Wittenberg)에서 열린 '복음주의 남성들'(Evangelischer Manner) 행사까지 올라가야 한다. 1848년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체는 혁명에 불타올랐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 다시금 왕정 체제로 복귀하고자 하는 빈 체제에 반대하여 근대사상으로 무장한 시민들이 전유럽에서 들고 일어났다.혁명의 불길은 그 해 2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하여 3월에는 독일 전역을 들끓게 했다. 신진 산업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1848년 독일혁명은 잠시나마 왕정과 귀족들의 양보를 얻어냈고, 자유주의자들이 승리하는 듯 보였다. 이와 함께 독일사회의 맨 아래 계층에서는 또 다른 급진주의의 불길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공산주의 이념을 앞세워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그 해 2월 21일,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디리히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고 본격적인 공산혁명을 시작했다. 사회 체제는 아래로부터 급격히 흔들렸고, 혁명의 불길 속에서 개신교인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야 할 지 교회에 그 길을 물었다. 그러나 왕정과 귀족들의 지배아래 있었던 독일 루터교회는 교파분열로 산업화와 노동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이 시대의 물음에 답하기 위해 그 해 9월 독일의 기독교인들이 종교개혁의 발상지인 루터의 도시 위텐버그에 모여 ‘복음주의 남성들’ 대회를 가졌다. 바로 이 복음주의 남성들 행사가 곧 독일 ‘교회의 날’(Kirchentag) 뿐만 아니라 ‘디아코니’(Diakonie)의 기원이 된다.당시 행사를 주관했던 요한 힌리히 비헤른은 “사회적 빈곤에는 가난한 자들을 도움으로써, 불신앙에는 전도로서, 그리고 무신론에는 학술토론을 통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유명한 연설을 함으로써 독일 내방선교(Inneren Mission)를 탄생시켰다. 그들은 사회적 빈곤계층을 파고드는 무신론의 도전에 나눔과 봉사 그리고 신앙과 신학으로 맞서고자 했다.이후 1872년까지 15번의 ‘교회의 날’(Kirchentag)이 열렸다. 이들은 교파나 교단의 위탁없이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모인 것이다. 교단 혹은 목회자 중심의 모임이 아니었다는 것은 ‘교회의 날’의 성격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이런 특성 아래서 ‘교회의 날’의 주제는 국가와 교회, 주일성수, 기독교인과 정부, 분파와 기독교학교 등 사회 속에서 평신도들이 함께 느끼고, 해결해야 하는 여러 주제들을 다룰 수 있었다.그후 1872년까지 ‘교회의 날’이 개최되었으나, 1872년 루터교회와 프러시아 기독교연맹과의 격렬한 갈등의 후폭풍으로 19세기 ‘교회의 날 운동’은 교회연합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중지되고 말앗다. 제2차 교회의 날 운동우리의 일상이 일어나는 곳,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곳, 좁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곳, 그 모든 곳에서 교회는 자신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 라인홀트 폰 타텐- 트리글라프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폐허 속에서 잠시나마 다시금 ‘교회의 날’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모든 독일 개신교 지역교회의 직능협회와 총회들이 1919년 드레스덴(Dresden)에서 ‘교회의 날’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교회의 날’을 계속 하기로 하고 교회연맹(Kirchenbund)를 창설하였다. 28개의 독일 개신교 주(州)교회들이 이들을 후원했다. 또한 독일 개신교의 총체적 자의식 고양과 신앙 안에서 완전한 자립이라는 대전제 아래 그들의 제도와 관리위원회를 통합했다.이러한 연합의 경험은 향후 독일 개신교회(EKD)의 선구적인 모형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시기 ‘교회의 날’ 운동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급변하는 독일 개신교의 정체성과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한 교회의 깊은 불신이 이면에 존재했다. 더욱이 평신도가 아닌 주교회(州敎會)가 중심이었기에 교회의 정치적 흐름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후 1932년 현재 폴란드에 속하는 스테틴(Stettin, 당시 독일 영토)에서 “포메른 지방의 교회의 날”(Pommerscher Kirchentag)이 개최되었다. 그것은 포메른 지방의 교회들이 모인 소박한 ‘교회의 날’ 행사였다. 이 행사의 주체자는 이후 1949년 ‘교회의 날’의 주창자인 라인홀트 폰 타덴-트리글라프 (Reinhold von Thadden-Trieglaff)였다. 포메른 지방의 교회의 날은 이후 오늘날의 ‘교회의 날’의 실질적인 모태가 된 것이다.타덴이 주창한 ‘개신교인 주간’(Evangelische Woche)은 19세기 ‘교회의 날 운동’을 잇는 시도였다. 하지만 이 역시 1936년부터 나치정부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고, 1937년 독일기독학생협회 (DCSV)와 함께 더 이상의 활동이 금지되었다.타덴이 중심이 되어 회복한 ‘교회의 날’은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참여의 연대라는 점이 중요하다. 타덴은 이 점을 교회의 날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꼽는다. “우리의 일상이 일어나는 곳,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곳, 좁은 시장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곳, 그 모든 곳에서 교회는 자신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타덴의 관점은 만인이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믿음과 각자 자신의 직업에 하나님의 소명이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이후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는 ‘교회의 날 운동’을 나치에 반대하는 교회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활용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 타덴은 고백교회 안에서 중요한 역할들을 수행했다. 1934년 5월 7일 타덴은 스테틴 지역에 속한 야당성향을 가진 고백교회 지역총회의 회장으로 선출된다. 이와 함께 5월 29-30일 열린 고백교회 총회에서 발표된 바르멘 신학선언의 주요 서명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이후 1935년 하노버에서 첫 번째 ‘개신교인 주간’이 개최되었다. 당시 개신교인 주간에는 나치 시대에 어용화된 교회에 대해 반대하는 교회들이 주축을 이뤘다. 다시 말해 어용화된 ‘독일 기독교인들’에 반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신앙의 증거를 회복하려는 투쟁이 1949년 ‘교회의 날’의 직접적인 기원이 된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독일의 패망으로 끝난 이후 독일 사회 안에는 더 이상 독일을 대변할 수 있는 그 어떤 기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 점령군의 위세 아래 그 어떤 정치적 자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오직 나치에 대항해 투쟁했던 고백교회만이 어느 정도의 인적자원과 조직력을 가지고 독일을 변호할 수 있었다.이런 분위기 속에서 1984년 전후 첫 번째 ‘기독교인 주간’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렸다. 이 기독교인 주간이 발전하여 두 번째부턴 “독일 개신교회의 날”(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 약칭 DEKT)로 불리게 된다. 당시 EKD 총회의 회장이었고 이후 독일의 대통령이 되는 구스타브 하이네만(Gustav Heinemann)은 1949년 7월 31일 한 성명을 발표했다.“1949년 7월 28일부터 8월 1일까지 하노버에 모였던 독일 개신교인들은 매년 열리는 독일 교회의 날을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독일 교회의 날은 개신교 평신도들이 세상과 교회 안에서 그들의 사명을 준비하는 일을 도울 것이다. 또한 세계교회협의회 안에 있는 평신도와 공동체들 간의 교류를 후원할 것이다.” 이러한 결의는 박수로 받아들여졌다. 이리하여 오늘날의 ‘독일 개신교의 날’이 하노버에서 만들어졌다.<독일 튀빙엔에서 강혁목사>
    • 해설/기획
    • 기획
    2015-05-27
  • 기획/ 6월 9일 동성애 축제 앞두고, 본격 반대 나선 교계 연합단체들
    남대문 경찰서에 ‘퀴어축제 반대 의견의견서’ 접수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연합단체들이 지난 11일 서울 남대문 경찰서를 찾아 서울광장퀴어문화축제(동성애 축제)의 집회신고 기각을 위한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목사)와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목사), 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황수원목사) 등 3개 연합기관은 이날 ‘공공의 질서를 해치는 서울시 퀴어축제 반대 의견의 건’ 공문을 접수했다.이날 전달식에는 한교연 사무총장 김춘규장로, 한장총 인권위원장 박종언목사, 한기총 교육국장 여운영목사가 함께했다.이들은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금년 6월9일 서울광장에서 개막식을 예정하였고, 6월13일에는 서울시에서 퍼레이드를 준비 중에 있으며, 남대문경찰서에 신고를 접수할 예정”이라며 “이들이 게이클럽에서 자기들끼리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서울시 한복판에서 공공연하게 그들의 음란한 행위를 허용하는 것은 공공의 질서에 위배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어 “동성애자·트랜스젠더 등은 게이 클럽에서 그들의 음란한 성문화를 반대 받지 않고 즐겨왔으며 6월9일이나 13일에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음란한 성문화를 서울광장과 거리상에서 드러내고 보여주며 이를 원치 않는 시민들까지 보도록 강요하는 것은 법이 금지하는 음란한 것이고,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청소년들에게는 유해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라며 “퀴어측제와 퀴어 퍼레이드를 허락하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라 공정하고 평등한 법집행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이들 단체는 한국이 2013년 신규 감염자가 1천명을 초과하였고, 누적감염자 수는 1만명을 돌파하여 이제 공식적으로 에이즈 확산 위험국가가 되었다면서 동성애를 정상이라고 교육시키는 미국에서 HIV 신규 감염자의 4명중 1명이 청소년이며, 이들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우울과 절망감에 보내다가 30대 중반에는 사망하게 되며 이는 성적호기심 및 성기구 사용에의 무지, 성접촉이 이성보다는 용이한 동성간의 성접촉이 잦아진 결과다고 지적했다. 특히 에이즈에 대해 주로 남성간의 동성애를 통해 감염되는데, 국가인권위원회, 국회, 보건복지부, 교육부, 언론 등이 동성애가 위험하지 않다고 미화하고 있다면서 이로인해 외국은 에이즈 감염이 감소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이들 단체는 “전 세계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된 나라는 18개 국가인 반면에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한 나라는 약 80개 국가이다”며 “지난 20여년 동안 에이즈로 약 2천5백만명의 죽어간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개인의 성적취향이라고 하기에는 사망자가 너무 많기 때문에 55개국 중에서 38개국이 동성애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또한 흡연자의 행복추구권이 법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은 ‘건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는 예를 들어 마찬가지로 소수인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장한다는 이유로 사회시스템과 언론, 교육, 법제도를 동성애자들 위주로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다수의 국민을 위해서, 특히 청소년을 위해서 동성애가 에이즈를 전파하는 위험행동임을 알려야 하며 동시에 에이즈 감염자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지고 고통스런 최후를 맞게 되는지도 알려야 한다”며 “우리 한국교회는 동성애자를 비난하거나 차별하지는 않되, 동성애는 교육하거나 권장하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의 의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 해설/기획
    • 기획
    2015-05-14
  • 기획/ 절망에 빠진 네팔에 희망의 빛을 선사하는 기독교 NGO 단체들
    하나님의 사랑과 온정으로 치유하는 네팔의 아픔최근들어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자연재해가 전 세계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가운데, 금번 네팔 지진 참사에도 기독교 NGO 단체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아이티, 중국, 필리핀, 일본 등 대재앙의 폐허와 절망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의 온정을 나눴던 기독교 NGO 단체들에 한국교회의 적극적인 후원과 참여가 요청되고 있다. 월드비전국제구호개발 NGO 월드비전(회장 양호승)은 네팔 대지진 피해 규모가 확산됨에 따라, 지진 피해 긴급구호 및 재건복구를 위한 지원금을 3천만 달러(한화 약 320억)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적극적 지원에 나섰다.월드비전은 지금까지 사망자 5천여명 (4월 28일 네팔정부 공식집계 기준), 부상자는 1만 여명으로 알려진 네팔 지진을 전 세계 대응 차원의 재난으로 선포하고, 네팔 정부 및 43개 현지 NGO와 협력하여 긴급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월드비전은 현지에서 이번 대지진 긴급구호의 재난관리의장으로 피해지역 현황조사 및 구호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네팔에는 피해를 입은 주민들을 위해 16개의 이재민 수용캠프가 운영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여진에 대한 피해와 공포로 넓은 공터에 모여있는 상황이다. 월드비전은 이들을 위해 가장 시급한 긴급구호 물품으로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담요, 방수시트 등을 제공했으며 계속하여 식수통, 모기장, 텐트, 조리기구 세트, 위생키트 등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번 전체 지진 피해자 수는 8백만 명 이상이며, 그 중 절반이 18세 미만의 아동이다. 한국 월드비전은 긴급구호 대응을 위한 긴급구호 위원회를 열고 50만불 (한화 5억 3천 5백만원) 지원을 결정하였으며, 홈페이지,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한 추가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269-800743-18-228>굿피플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이사장 이영훈)이 81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대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네팔에 긴급구호팀을 파견하고 현지 피해 상황 조사에 나섰다. 굿피플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기독교대한하나님의 성회 여의도순복음의 후원으로 4월 29일 자정 1차 긴급구호팀을 파견하였으며 카트만두에 도착하는 대로 네팔 지부와 협력해 카트만두 인근 지역의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또한 지진 피해 지역의 건물들이 무너지고 도로가 갈라지면서 수많은 부상자들이 발생했지만 원활한 응급처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굿피플은 추후 2차 재난의료팀을 파견하고 긴급 의료지원 활동을 펼칠 계획이며, 재난의료팀 파견 시 효과적인 의료지원 활동이 펼쳐질 수 있도록 이번 1차 긴급구호팀이 사전 조사를 실행할 예정이다. 굿피플 이사장인 이영훈 목사는 “대지진에 희생된 분들과 유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면서, 상심하고 있는 네팔 국민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라고 말하며 “한국교회 역시 구조 인원 파견 및 피해 복구 대책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후원계좌: 우리은행 1005-980-629852, 국민은행 816901-04-210166> 굿네이버스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회장 이일하)는 영원무역(대표이사 성기학),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병원장 윤여승)과 손잡고 네팔 대지진 긴급구호 활동영역을 확장해 진행한다.국내 등산용품 전문업체인 영원무역은 네팔 지진피해 주민들의 주거시설을 지원하기 위해 10만 달러 상당의 방수텐트를 굿네이버스에 후원했다. 이 구호물품은 항공편으로 발송돼 4일, 네팔에 도착하며 굿네이버스 긴급구호팀을 통해 이번 지진의 진앙지인 고르카 지역의 주민들에게 전달됐다.또한, 굿네이버스는 긴급구호 추가인력과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의료구호팀을 4일, 네팔현지에 파견했다. 이들은 이번 지진으로 고립돼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고르카 북동부지역 내 산간마을 지역주민 대상으로 이동 진료소를 통한 의료 활동을 진행할 계획이다. 고르카 지역은 이번 지진으로 인해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심각한 도로파손으로 인해 마을 대부분이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상황이다. 굿네이버스는 국내에서 급파한 인력 및 굿네이버스 네팔지부 직원으로 110명의 긴급구호팀을 구성해 고르카 지역 중심으로 긴급구호활동을 펼치고 있다.굿네이버스 김선 국제개발본부장은 “네팔 피해지역에서 방수천막, 담요, 식량 등의 물품 및 의료지원이 시급하단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며 “굿네이버스는 지역별 피해상황에 적절한 지역중심 긴급구호활동을 신속하게 진행함으로 굿네이버스 최대 사업국인 네팔의 복구와 지원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후원계좌: 농협 069-01-272544>기아대책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회장 유원식)은 신두팔촉 지역 산 정상 마을인 바레가웅 마을 740여 명에게 식량을 배급했다.기아대책은 2일 밝힌 애초 물품 배분 계획 지역 '도따르' 마을 보다 산 정상 마을부터 순차적으로 내려오는 것이 더 낫겠다는 네팔 마을 리더들의 의견에 따라 지원 순서를 바꿨다고 박재면 기아봉사단원은 전해왔다. 바레가웅 마을은 산지에 있어 8백여 명이 소규모로 흩어져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마을이다. 2백 채 가옥 중 1채를 남긴 199채가 모두 붕괴되거나 일부 손상되는 피해를 입었다. 박재면 기아봉사단원은 "남아있는 집이나 건물이 없어 우기를 대비한 천막과 매트리스를 지원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전해왔다. 이어 "산간 마을이라 식량과 식수도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기아대책 긴급구호팀은 2일 바레가웅 마을 주민 740여 명에게 쌀 15kg 160포대, 식용유 320병, 소금 125봉지 등을 우선 지급했다. 한편 기아대책이 처음 방문해 물품을 지원한 시파갓 마을은 마을 중앙도로가 복구되기 시작했다. 박재면 기아봉사단원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차근히 복구되어가고 국민들은 다시 일어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네팔 재건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 부탁 드린다"고 전해왔다.<후원계좌: 국민은행 059-01-0536-352>월드쉐어국제구호 NGO 월드쉐어 역시 현지 봉사자와의 협력을 통해 네팔에 지원을 준비하고 있으며, 강진으로 고통받는 네팔 주민들에게 의료품과 식료품을 전달할 계획이다.월드쉐어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를 강타한 규모 7.8도의 강진으로 수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고, 카트만두를 비롯한 인근 지역이 무너져 내렸으며 81년 만에 일어난 최악의 참사로 현재까지 파악된 사망자 수만 3천여 명이 넘었으며, 피해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사망자가 최대 1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고 전했고, 또 네팔 현지에서는 계속해서 여진이 일어나고 있으며, 구조 장비를 투입하기도 어려워 막막한 가운데 살아남은 네팔 주민들 또한 갈 곳이 없어 노숙하며 고통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월드쉐어는 홈페이지 및 기타 후원 사이트를 통해 긴급구호를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월드쉐어는 국제구호 NGO단체로서 전 세계 30여개국에서 아동그룹홈과 1:1아동결연, 식수 개선사업, 긴급구호, 해외봉사단 파견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월드쉐어 홈페이지(www.worldshare.or.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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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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