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04-18(토)
 
서울 시청 옆에서 모이는 작은 모임에 가는데 지하철이랑 도로가 막혀 애를 먹었다. 마침 그날이 세칭 친미 반북 데모를 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청 앞 광장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지하철 출구를 나서는데 머리가 허연 왕년의 용사들이 뭐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한 노병이 소리쳤다.
“목숨 바쳐 지킨 나라를 망하게 할 작정이냐?”고.

[ 어느 노병의 분노 ]
문득 수년 전에 돌아가신 숙부의 얼굴이 그 분노한 노병의 얼굴에 오버랩 된다.
그 분은 국방경비대에 자원 입대하여 6·25 전쟁 때 옆구리에 포탄을 맞고 부상당하였으나 치료받고 다시 나가 싸우다가 다리에 폭탄 파편을 맞고 재차 부상당하여 제대한 상이용사였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부상당한 용사이건만 조국은 그를 따스하게 맞아주지 않았다. 병신 취급을 당하며 술로 한을 달래다가 뼈만 남은 비쩍 마른 몰골로 죽어 그가 이 땅을 떠나던 날 분노로 치를 떨었었는데, 그날 거기 시청 앞 광장에서 그 분노가 다시 도지는 거였다.
더욱 분이 치솟은 것은 그날 저녁 신문 방송들의 보도 때문이었다. 이 노병들의 분노를 눈 여겨 보려들지 않는 세상이 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이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미 신문기자도 방송국 PD도 전쟁을 모르는 신세대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누가 그 노병의 분노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던가.
그러나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들의 희생을 딛고 오늘의 안녕을 누리는 세대들이 노병이 분노를 삭이지 못 하다가 죽게 내버려두면 반드시 재앙으로 되갚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오뉴월 하늘에 된서리가 아니라 삼복 더위에 눈사태인들 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말이다.

[ 갈 테면 그냥 가라 ]
허구헌날 북한 공산당은 원수라고 이를 갈라는 말이 아니다. 이제는 그 한(恨), 그 미움을 그만 접고 통일의 시대를 열자는 말이 틀렸다는 것도 아니다.
아닌 게 아니라 경의선도 잇고 경원선 또한 뚫리는 마당이다. 그 철길 따라 시베리아로 유럽으로, 중국 대륙하며 몽골하며 뻗고 또 뻗어나가야 할 우리인데 누가 그리하지 말자고 할 수가 있는 일이겠느냐?
그러나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걸고 싸운 사람들이, 자기들이 한 일을 마치 시대착오적인 행동쯤으로 이 시대 사람들이 매도하는 분위기로 읽고 느끼고, 이 배반의 분위기에 분노로 치를 떠는 일은 그냥 지나쳐도 될 일이 아니다. 그래, 남북 통일 하자. 그러나 정리는 똑바로 하고 하자. 김정일 정권은 자신들이 민중의 투쟁에 의해 대한제국의 역사를 왜정 35년 이후 이어 온 정통성 있는 정부이고 휴전선 이남 땅은 미 해방지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6·25전쟁은 미 해방지역을 해방하기 위한 거룩한 민족해방 전쟁이었고, 이에 대항한 대한민국이나 미국은 원수라는 논리를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하면 6·25 참전 용사는 물론 북에 끌려가 생사도 모르는 우리가 버린 국군 장병들도 모두 민족의 원수가 되고, 서해 교전에서 산화한 장병이나 전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국군 장병들도 민족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그들은 잊고 엉뚱한 소리를 하다니 말이 되는가?
그래, 가자. 북으로 유라시아로 힘차게 뻗어나가자. 그러나 가려거든 그냥 갈 일이지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하기 위하여 목숨 바쳐 싸운 이들에 대한 감사는커녕 침까지 뱉고 무슨 시대의 걸림돌 취급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 마지막 거수 경례 ]
그날, 숙부를 보내던 날, 나라 위해 싸우다가 상이군인 되어 존경은커녕 천덕꾸러기로 이 발 저 발에 치이며 한 많은 인생을 살다가 비쩍 마른 한 움큼 뼈로 남은 국방 경비대원의 주검 앞에서 나는 숙연한 마음으로 거수경례를 올렸다.
그리고 그에게 마음속으로 말했다. 다시 이 땅에 태어나는 일이 있거든 한국에 태어나지는 마시라고. 어쩌다가 운 나쁘게 태어나는 일이 있거든 나라를 위해 싸우느니 순국선열이 어떻느니 하는 사탕발림에 속지 말고, 나라야 망하든 말든 당신 삶을 살라고. 그 사탕발림이 침 뱉음으로 돌멩이로 변하는 걸 충분히 경험했으니 다시는 속지 마시라고 그렇게 말해 주었다.
바로 그 분노에 찬 노병을 그날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나고 돌아오는데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노병을 분노케 하는 이 시대 사람들을 축복할 마음이 도저히 일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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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병(老兵)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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