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09(월)
 

복음의 명품화

오늘의 교회가 현대인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해야 하는지를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써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한 사람으로 신앙의 삶을 생각하게 한다. 마치 로마가 이천 년 전 세계를 리더하고 인간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명상태에 있을 때 사도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필요할까?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인들이 경제적으로나 상업적으로 부족함이 없고 이상적인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 로마의 사회현상은 삶의 불감증에 빠져 오히려 뒤죽박죽 한 시대상에 빠져 있음을 보고 바울 사도는 심각하게 기도하면서 보는 것은 죄로 인한 삶의 현상의 문제와 여기에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치유되어야 함을 절감하고 그리스도의 삶의 길을 알게 하기 위하여 ‘로마서’ 기록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교회의 심각한 문제는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도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려 자정능력이 손실되어 버리고 있음을 알게 한다. 사회는 소통이 불통이고 서로 상극하며 교회 안에서도 분쟁과 분열이 일어난다. 구원의 감격이나 신앙생활에 그 감격이 없다. 서로 용서하지 못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교회당 안에서만 자기들만의 교제로 풍요로움을 만끽하며 믿음으로 산다고 삶을 간증한다. 기사와 이적을 내세우면서 만사형통과 물질축복으로 은혜를 감격하려 하고 정녕 십자가 없는 희생의 사랑에는 맛을 잃어 버렸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정치하는 사람, 경제인, 재벌가. 학자. 사회 지도자 등에 그리스도인은 많지만 복음의 능력이 삶의 자리에서 심어지지도 않고 심지도 않고 있는 것은 스스로가 신앙양심이 세상의 물신 우상으로 마비되어 있기에 복음이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알게 한다. 사실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많다고 자랑하지만 세상은 더 썩어가고 있는 것을 보게 한다. 이러한 문제는 복음을 알고 들어도 잘못된 복음을 이해함에서 생기고 또한 복음의 의미와 신학의 부재에서 오기도 하며 들어서 깨닫는 것도 자신의 유익을 도모하는 자기중심의 신앙의 생활에서 생기는 현상으로 얼룩지고 있는 것을 알게 한다. 과거에도 이러한 사회현상에는 그 시대마다 시대적인 정신적 지주의 역할이나 구도자로서 신앙인의 삶이 윤리적으로 이러한 현상에 지도력과 그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음을 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과 같이 그 시대의 삶의 영향을 위해 ‘로마서’를 써서 여기에 대응하는 의도를 배우고 따라야 한다.
기독교의 윤리는 삶의 정의론적 의미에 목적론적 윤리와 의무론적 윤리를 알게 한다. 목적론적 윤리는 인간의 삶의 목표, 종말에 관한 문제에 시작이고 의무론적 윤리는 순종의 윤리이다. 이 두 가지 기능으로 그 하나는 ‘최고의 선’을 정의하고 또 하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필요한 인간의 행위의 원칙들을 알게 한다. 여기에 선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접하게 되고 삶의 근본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세 가지 문제를 알게 한다. 첫째는 인간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과 둘째로 인간 행동의 표준이 무엇인가? 셋째는 인간행동의 목표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알게 한다. 이로써 인간의 최고선과 인간의 생활기준과 그리고 인간의 윤리적 동기를 다루어 이를 성서에서 실마리를 찾아내 신앙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범이라는 대상으로 이를 창조 질서를 믿는 기반 위에 있어야 하며 인간 타락을 전제로 하며 그의 대리적인 속죄를 전제한다. 이 전적 타락이야 말로 자신의 노력이나 공로로 구원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여기에 성육신 하셔서 이를 고난과 율법으로부터 구속하시는 신앙을 갖게 하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가 예수의 삶을 닮은 것은 결국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고 추상적인 하나님이 아닌 실제적인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예수는 우리들 삶에 직접 오셔서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자연적으로 드러내 주시는 것을 알고 성령의 힘을 받아 회개함으로 구원 얻는 길을 예수의 모범으로 이를 따르게 하는 것이다. 이는 복음의 내용이며 삶의 진수가 되는 것이며 자정능력을 키우는 것이 된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가 너무 지나치게 나름대로 상황윤리로 교회를 운영하며 그것을 은혜로 돌리고 자기 합리화를 주장하는 방편으로 잘못 여기는 것은 기독교의 복음과 하나님의 절대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는 점에 유의하게 한다.
복음은 희망의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복음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알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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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명품화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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