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 연합과 일치운동의 상징
사회와 민족의 희망을 말하는 교회가 부활절연합예배마저 갈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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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연합예배는 가장 많은 교파가 참여하는 최대 행사
에큐메니칼운동 약화시키려는 분열시도 경계해야
한국교회가 에큐메니칼운동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세계교회운동, 교회일치운동, 교회연합운동 등으로 진행되면서 8.15해방 이후 1947년부터 시작된 부활절연합예배가 그 중심 역할을 해왔다. 부활절 예배는 장로교회의 분열의 파급 등으로 1962년부터 보수·진보의 양측으로 갈리어 예배를 드렸으나, 1973년부터 양측의 노력으로 명실상부한 연합예배로 환원되어 지금까지 부활절연합예배가 이어져왔다.
교회의 하나됨은 교파들의 획일적인 일치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다양성 속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이다. 모든 교파들은 부활을 증언하는 복음에 근거하여 교회의 일치를 지향해야 하고, 성서의 다양한 메시지들에 근거하여 다양성 속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이러한 교회의 일치는 성령의 다양한 은사로 하나된 하나님의 은총인 것이다.
우리는 이 주어진 일치를 가시화 시키고 구체화 시키는 소명 앞에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함께 연합하고 참여하며 연대하는 예배공동체로서, 초기 신앙은 부활신앙이었고 하나된 예배공동체였다. 이처럼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각 교파를 하나로 묶어 놓자는 데에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각 교파가 같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한 방향을 연대(solidarity)해서 모색해 나가자는데 그 역점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한마음 한뜻을 이루어 같은 목적을 갖고, 같은 신앙고백의 장(場)을 열어 가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민족도 분열되어 있고, 교회도 수많은 교파로 나누어 있고, 각계각층이 갈등과 분열로 양극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마당에 한국교회가 그 갈등을 치유하고 하나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먼저 하나 되는 일치운동의 본을 보여야 한다. 동원 보다는 참여가 우선이고, 주장보다는 화합이 되어 함께 하나됨의 뜻을 담아 부활절연합예배 전통을 이어 가야 한다. 부활절연합예배는 ‘예그리스도의 교회는 하나’라는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의 상징으로서 유일한 연합행사이다.
부활절연합예배의 역사
맨 처음 제1회 부활절연합예배는 1947년 4월 6일 부활절 새벽6시 서울 남산광장에서 1만 5천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한경직목사 설교로 진행되었다. 부활절연합예배는 전쟁 중에도 중단되지 않고 1951년부터 1953년까지는 피난지 부산에서 개최되었고, 또한 1960년대가 되면서 부활절연합예배의 개최가 어렵게 된 이유가 생겼다. 그것은 극우적인 반공사상이었다. 그로인해 보수측과 진보측이 나뉘어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1973년 양측에서 연합을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가 1973년 2월 9일 부활절연합예배를 대한기독교연합회(DCC)와 합동하여 개최하는 안을 통과시키므로 오랜 숙원이던 부활절연합예배의 일원화가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1973년부터 1994년까지 하나된 부활절연합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부활절 연합예배에서는 교회일치와 민족통일을 향한 기도를 강조하기 시작하였고, 남북 교회 부활절공동예배 추진을 위한 대표자 실무 접촉 제의는 1993년 3월 22일 세계교회협의회를 통하여 전달되었으며, 3월30일과 4월 2일에는 기독교방송을 통해 전문이 전달되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북한교회의 회신이 4월 5일 도착했다. 그 내용은 설교문, 기도문, 메시지 교환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1993년 부활절 연합예배는 교단과 교단, 교회와 교회, 성도와 성도의 화합과 일치와 협력을 이루려는 연합행사가 되도록 기도했으며, 남과 북의 교회가 영적 교류를 확대할 수 있는 방안으로 평화통일 염원의 민족의 소명을 확인하는 부활절 연합예배의 특징임을 알게 하였다.
다시 1995년-2005년의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로 발전하면서 전국교회가 드리는 예배의 일치와 연대를 가지고 새로운 부활절의 예배공동체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1996년 3월 14일 앰버서더호텔에서 전국단위 지역대표들과 각 교단장 그리고 NCC 대표들과 교시협의회 임원들이 함께 한 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1996년 3월 18일 오후 2시 유성관광호텔 킹홀에서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위원회”로 그 이름이 전국단위로 바뀌게 되었다.
1996 년 4월 7일 부활절은 전국지역으로 부활절예배가 함께 드려지면서 같은 본문, 같은 제목, 같은 시간에 일치된 예배를 드리고 조선기독교도연맹의 메시지도 함께 낭독하여 민족의 하나됨의 의미도 갖게 되었으며, 청각장애우를 위한 수화로도 통화한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2002년 FIFA 월드컵 축구대회는 세계의 축제장소를 서울 상암동으로 결정하기에 이에 서울특별시 교회와시청협의회가 협조한 2002부활절예배 장소를 상암동 월드컵축구장으로 결정함에 따라 전국 10개 지역 월드컵축구장이 부활절예배 장소가 선정되고 민족과 함께 국가융성의 해로 함께 예배하며 한국교회의 일치된 모습을 보여준 것은 한국교회 일치와 연합의 한 장을 기록하기도 했다.
부활절연합예배의 분열은 민족 앞에 죄를 짓는 것
이상에서 우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로부터 정착한 복음의 확산은 그때그때마다 한국인들에게 소망을 주는 현실 변혁의 역사였음을 알게 한다.
부활절연합예배는 교파 간의 갈등과 분열을 넘어서는 계기로 그 정체성을 회복하고 역사성을 인식해야 한다. 부활절연합예배는 가장 많은 교파가 참여하는 한국교회 최대의 행사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해방 전후로부터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한 점은 교회가 분단 시기 속에서도 사회와 유리되지 않고 고난을 함께 함은 그 시대 속에 살아있는 하나됨의 이유가 되기도 한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는 한국교회 선교 2세기를 지향하면서 에큐메니칼 정신으로 예배공동체를 통하여 민족구원을 위한 선교와 복음화 그리고 기독교문화 창출을 위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민족의 통일이라는 민족적 소명도 오늘 한국교회의 시대적 사명이다.
그런데 작금 한국교회는 이처럼 연합과 일치의 상징적 행사인 부활절연합예배마저도 분열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각 교파를 하나로 묶어놓자는 것이 아니고,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이루자는데 있다. 부활절연합예배마저 나뉘어 에큐메니칼 정신을 약화시켜서는 결코 안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