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0-12(토)
 

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사람들이 생활해 가는데 필요에 따라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 자기 나름의 절대자에게 간구(干求)하는 기도를 자기입장에서만 드리는 형편을 보게 된다. 그 간구하는 자기처지에 따라 내용이나 방법으로 간구한다. 이는 간구하는 자의 욕구충족으로 자기 도취에 머무르는 일상을 알게 한다. 인간 사회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 인간에게는 서로 다른 주어진 삶의 가치관, 입장, 처지가 있으며 생활 형편과 환경에 따라 행동하는 생활이 다르기에 사물을 보아서 알고 분별하는 견문과 학식에 따라 그 견식(見識)이 또 다르다. 이러한 각자의 입장이나 안목에서 간구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사물이 다 차이가 나고 구별이 있기에 천차만별인 각자 다른 간구가 된다. 이러한 간구는 자기생활의 필요와 탐욕의 수단으로 만 기도하는 사회생활에서 이기심만이 조장하는 삶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간구가 인간탐욕의 수단으로 조장되어서는 아니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때 보다 잘 산다고 한다. 풍요에 영화(榮華)를 누리고 있다. 물건과 돈의 풍요가 넘쳐 '경제 동물'이라는 이름을 갖기도 하며 경제제일주의로 삶을 영위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자칭 ‘부자 나라’라 하지만 그러나 ‘가난한 시민’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잘 산다’고 말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열악한 복지와 파괴된 자연 환경, 그리고 획일적인 금전만능주의, 빈부의 격차, 기득권의 횡포 등 결국 경쟁효율중심의 사회는 양극화로 갈등을 낳게 되었음을 알게 한다.
그렇다면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 하는가? 그리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에 삶의 의미로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잘 산다는 것(well-being)’과 ‘잘 죽는다(Well dying)’는 것은 다르지 않고 같다. 이런 물음으로 사람이 하루를 살면서 스스로 찾아야 하는 물음의 대상은 바로 ‘나’요 바로 ‘지금’이다는 것을 알게 한다. 우리가 1945년 4월9일 히틀러의 암살음모에 해당되어 형장에서 자기의 삶과 죽음을 보여준 본 훼퍼 목사를 기억한다. 그가 사형집행을 눈 앞에 두고 마지막 죄수 복을 벗기 전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은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온전히 하나님께 자기 삶을 맡기는 모습에서 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을 배운다. 한 목숨 하나님께 바치는 삶의 순간은 이 ‘한 목숨’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게 하고 산다는 것은 생명이 한 목숨으로 끝까지 ‘다’하는 것을 알게 한다.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다. 단 한번밖에 삶은 살지 않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다. 오직 당신뿐으로 당신의 것임을 알게 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물질적인 풍요와 보이는 겉만을 쫓는 사람들은 참된 삶의 의미와 선택이 물질의 풍요와 소유로만 다하고 살아간다. 알렉산더대왕이 디오게네스를 만나 당신의 소원을 말하라 하자 '당신이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지금 비켜 주라'는 말은 익히 잘 아는 말이다. 평생 자루 하나만을 가지고 통속에서 사는 그를 어떻게 이해할까? 인간은 모두 잘 살기를 원한다. 잘 산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잘 죽는다는 것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내용은 사람의 필요와 간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한다. 그리하여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의 내용은 1) 육신을 위한 기도로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영혼을 위한 기도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3)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기도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4) 사탄과 죄에서 해방되는 기도로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등 이다. 이 주기도문은 삶을 살기 위한 필요와 소유만으로 살려고 바둥대는 우리의 삶에서 ‘내가 누구인가?’로 자기 본래의 정체(Identity)를 알게 하는 것이다. 이 정체가 드러나기를 바라는 간구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며 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기도는 하루의 삶에 일상의 영성이다. 일상의 영성은 일용할 양식과 같다. 매일매일의 삶에 충실한 영성, 늘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영성, 매일 만나는 이웃,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이 충실한 영성을 말한다. 신앙은 어떤 기적이나 자기의 욕구충족에 의존하지 않는다. 날마다 밥을 먹듯이 물을 마시듯이 공기를 호흡하며 순간순간 일상의 삶을 ‘지금’ 중요하게 여기고 사는 삶은 지금 하늘 공기 마시고 살아 숨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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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일용할 양식만 주소서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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