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교단적 차원의 법적 제도적 조치로 교회세습 막아야
 지금은 달콤한 유혹이나 미래의 한국교회에 분명한 재앙될 것

교회세습은 보편적 공교회관의 심각한 왜곡
대형교회 세습은 곧 돈과 명예와 권력의 세습


이젠 한물간 유행어가 되었지만 한때 신학생들 간에 소위 자조적 ‘골품논쟁’이란 것이 유행했다. 미래의 한국교회를 이끌고 갈 신학생을 신라시대 골품제를 빗대 성골, 진골, 잡골로 표현한 것이다.
‘성골’은 아버지가 교단의 유명한 지도자로서 수천 혹은 수만명의 교인을 거느린 대교회 목회자로, 그 아들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자마자 그 교회를 물려받기로 소위 ‘세습목회’가 결정되어 있는 학생이고, ‘진골’은 삼촌이나 혹은 장인 등이 노회나 총회에서 행세하는 집안의 자녀로 목사안수를 받고 나면 언제든 임지를 쉽게 구할 수 있는 학생이며, ‘잡골’은 아무리 열심있고 실력이 있어도 아무데도 기댈데가 없어 개척교회나 농어촌 미자립 교회가 아니면 갈곳이 없는 신학생이다.
한국교회가 교인이 늘어나고 대도시에 쓸만한 교회들이 들어서자 목회가 희생과 봉사라는 존경받는 직업에서 돈과 명예를 얻는 일종의 권력으로 바뀌었다. 대교회의 담임목사는 중세의 주교들처럼 교권과 돈만 가진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세속권력까지도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직업군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 좋은 자리를 왜 남에게 주느냐며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 주려는 목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90년대부터 시작된 소위 교회세습, 즉 세습목회이다.
한국교회 초기에도 교회세습은 있었다. 아버지가 평생 개척한 교회를 맡아 이어간 목사들이 있어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루는데 밑걸음이 되었다. 그들은 기껏 100명 미만의 교인들을 넘겨받아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희생과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교회세습을 비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세습은 그 양상이 전혀 다르다. 수천 수만명 모이는 대형교회는 거기에 돈과 명예와 권력이 함께 있다. 아버지 목사는 그 교회를 그만큼 성장시키느라 애쓴 노력이라도 있었으므로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그러나 그 아들은 아버지가 누리던 돈과 명예와 권력을 아무런 노력없이 단지 ‘성공한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을 모두 넘겨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신학교를 같이 졸업한 동료 목회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도 불평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세의 주교좌 성당 세습으로 망한 교회사의 교훈을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지금 한국교회의 교회세습은 왜곡된 교회관을 고착시켜 미래 한국교회의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하다.
흔히 대형교회의 교회세습으로 세습목회가 이루어진 교회들의 합리화를 들어보면, “교인들이 원해서 합법적으로 아들을 후임자로 모신 것이다.” “아들이 후임자가 되지 않았으면 교회에 분쟁이 생길 수도 있었는데 분쟁없이 교회가 잘되고 있다.” 또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목회를 잘해 교회를 많이 성장시켰다”는 것 등이다. 물론 그 아들 목사가 교육도 많이 받고 인품도 훌륭하며 능력도 있어 아버지 목사보다 더 인기가 좋을 수도 있다. 이는 사실이 그렇더라도 눈감고 아웅하는 것이다.
정말 한국교회 교인들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된다는 말인가. 어째서 아들이 후임자가 되어야 교회에 분쟁이 없고, 아들이어야 전임자보다 목회를 잘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는 은연 중에 기회를 얻지 못한 다른 목사들은 그 아들보다 무능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 아닌가. 또 여기에는 보편적 교회관의 심각한 왜곡이 있는 것이다.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 지도자를 성령이 세우신다. 혈과 육에 의지한 후임자 선정 방식은 이미 세속화의 단면일뿐 그리스도의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신을 비우고 세상을 향해 봉사하기 위해 매일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혈연을 앞세우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세속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증거를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종교 상황에서 볼 때도 무당절간(전통교단에 들어 있지 않은 불교 사찰)이나 신흥종교에서 세습이 있을 뿐 전통있는 종교는 세습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사회를 구원하겠다고 나선 개혁주의 교회들이 세습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로부터 그 교회의 도덕성을 의심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교회세습은 왜곡된 교회관을 낳게 한다. 교회를 한 집안의 가업처럼 선대가 그 가업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후대가 그 가업을 이어가는 듯한 인상을 교인들과 그 사회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권위를 생각한다면 교회세습, 즉 세습목회는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한국교회의 재앙이다. 그러므로 교단적 차원의 법적 제도적 조치로 교회세습을 막아야 한다.
첫째, 교회세습은 사적(私的)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세습되는 교회가 대부분 대교회 혹은 대형교회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드시, 거기에는 돈이 있고, 명예가 있고, 권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세습은 돈과 명예와 권력의 세습이다. 둘째, 교회세습은 공교회성을 훼손한다. 기독교의 이름을 가졌다 하더라도 보편적 공교회성을 잃으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일 수가 없다. 그것은 곧 교회론적 이단이다. 셋째, 교회세습은 교회에 대한 사회의 도덕성과 윤리성을 약화시킨다. 기독교의 진리와 가치관은 그 사회에서 신뢰를 얻을 때 그 사회구성원의 구원과 희망이 된다. 따라서 교회가 그 사회로부터 도덕성과 윤리성을 의심받게 되면 존립 자체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세습은 어떤 미사여구로 변명한다 하더라도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무리를 친다는 목사들이 그의 교회를 망치는 짓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 죄악이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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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교회세습’ 더 이상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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