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6-20(목)
 

 

복음과 삶의 자리


인간이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 가는 데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원리와 질서가 있다. 어느 시대든지 세월을 따라 시간은 가고 시대는 변화한다. 우리의 신앙의 형태도 그 시대의 상황 따라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창조질서는 본래의 약속이 지켜져야 하고 이를 회복하여야 하기에 시간에서 '때'를 알게 한다. 오늘날처럼 이 시대가 속도에 따라 사회적 정황은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시대적인 삶의 자리에 본래의 창조함을 받은 가치관이 요청되기에 만사에 ‘때’가 있다. 우리에게는 만고불변의 하늘의 가치가 있기에 때가 온다. 이것을 예수께서는 신앙의 삶의 가치관으로 우리에게 열어 보이신다. 이를 위해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기다림의 메시아로 오셔서 성육신하심으로 세상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몸소 보여주시며 이를 실현하시기 위해 자기를 버리셨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고 있기에 복음(gospel, 기쁜 소식)이라 하며 복된 말씀이 된다.
한 국사회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사회와 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하여왔다. 이런 고속성장이 한국사회와 함께 1세기 반 동안 한국교회 선교의 연혁(沿革)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초기 성숙된 발전의 모습에서 한국사회의 개화기를 이끌어 왔고 이후 역사상 유례없는 외적인 급성장으로 발전해 왔다. 한국사회의 급성장과 성장주의 신화는 성공주의와 실용주의에 편승해 가면서 교회도 그대로 답습하여 부정적인 현상들이 교회내의 심각한 부작용들과 영적인 질병들로 얼룩져 오게 되었다.
예로서 신앙고백이나 강단에서 설교는 실제적인 생활에 대한 복음의 말씀은 침묵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은 땅에서 이루어지는 기운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또한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신학자 개인의 학문적 입장이 더 높은 권위를 행사한 면도 본다. 그리고 교파성과 정치성으로 일부 교회는 총회나 노회의 권한이 더 크게 인정 되어 교파는 날로 늘어나고 있는 셈이며 신학교는 학력인가도 소용없이 나름의 신앙 집단을 만들어 자기들의 세력을 부풀리는데 만 관심하고 목회자의 자질은 상관없이 수의 힘으로 목회자의 개인 능력만이 인정하여 자격도 없는 목회자로 교회는 채워가고 있다.
한국교회는 물량적이고 배금주의에 빠져 신학이 없는 우매신앙(愚昧信仰)과 샤머니즘으로 우쭐되고 있다. 그리하여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망각하고 한 예배 장소를 빌려 거기서 포교하는 역할로 수를 채우면 세칭(世稱) 성공하는 교회가 되어 있다. 교회가 예배, 교육, 선교, 구제, 봉사와, 친교를 통해 세상을 섬기고 세상을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는 복음의 공동체라는 구실을 갖추지 못하는 현실이 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가 한국사회의 윤리의식 부재와 도덕적 타락에 영향을 보여 주지 못한 배타적이며 사회책임을 통감하지 못한 교회를 보게 한다.
그 예로서 오늘의 가정이 붕괴되고 경제정의가 부재하여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와의 사이에 상대적 박탈감으로 빈부격차의 갈등현상을 보게 되는 것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없다. 이러한 윤리적 삶의 실패 이면에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거룩한 생활을 위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보다는 오히려 개인의 인기와 명예와 외적 성공이나 물질적 축복을 추구하는데 더 관심이 크다는 것을 보게 한다. 교회가 가난과 고난과 십자가와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야 하는 제자들의 삶 속에서 보여주는 교회가 만사형통과 소유의 축복으로 일관된 가운데 풍요한 삶의 향유만을 만끽한 점이 사회와 다른 바가 하나도 없다는 점을 알게 한다.
현대 교회를 지적하면 돈과 소유를 윤리의 기준으로 삼아 축복의 기준, 성공의 기준, 능력의 기준을 가지고 이를 실행하며 교회는 허세를 부린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성취된 구원의 은혜를 받고 향유하는 복음적인 삶이 중요함을 알게 한다. 만물의 모든 삶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는 자리에서 자란다. 자신의 욕심과 자기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도,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늘의 교회는 부흥하는 것이 풍요한 삶의 량이 아니고 삶의 질이 부흥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종교 개혁이 필요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자리로 와서 개신(改新)하는 것이다. 그 삶의 자리는 가난하고 겸손하고 낮아지는 자리이다. 주님은 가난하고 병들고 외로운 자, 갇힌 자, 나그네들과 자신을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시는 자리를 펼치신다.
지 금에 와서 ‘개신교’가 이제는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말았음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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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삶의 자리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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