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랑의 생활관
' 사람이 재산'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마음을 주고받는 사람을 일컬어 삶에 욕망을 채워주는 재물과 같다는 뜻이다. 과거에 삶을 산 옛 선인들은 사람을 보화로 생각할 수 있는 인간관계로 우선 올바른 사람을 알아보며 생활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만 보고 사람의 인품을 알아내려고 하지 않고 사람의 외모 뒤에 숨은 사람의 참 모습을 알아보며 사람을 보화로 삼을 수 있는 높은 인격과 능력을 지닌 고매한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였다. 예컨대 우리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이웃을 한 집안처럼 알고 서로 나누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이웃사촌’이란 말도 생겨났다. 이웃사람을 남이 아니라 한 집안 혈족으로까지 생각하게 한 것이었다. 과거 우리민족은 "이웃사랑의 생활관"이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 새나 짐승, 나무나 꽃, 풀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이를 중히 여기고 살았다. 그래서 그런 것들에게도 일일이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었다.
이렇게 우주 만물과 공존 공생하는 삶의 생활철학과 화해의 사상이 우리 민족의 마음이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아무리 가난하고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에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고 이웃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연까지 사람의 마음과 정으로 보살피며 살았다.
예수께서는 영생의 길을 묻는 율법사에게 그 길을 어떻게 제시하셨는가? 또한 내 이웃이 누구 오니까? 라고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께서는 어떤 비유를 사용하였는가?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때에 제사장과 레위인은 불한당을 만나 죽어간 이웃을 피해갔지만 여기 사마리아인은 그를 치료해 준 너무나 인간적인 이웃에 대한 사랑의 삶을 들어 이를 비유로 사용하고 계시다는 점에 주의해 본다.
사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거리가 약27Km 높이가 약 915m 되는 가파른 길이었고 황폐한 길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사회적인 지위와 학식을 겸비한 사람이었기에 시체와 같이 쓰러진 한 사람을 보았으니 자신들의 처신으로 바르지 않았으며, 만일 시체라면 그것을 만졌을 때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부정함(레21:1)을 입게 된다는 충분한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짐승같이 여기고 경멸하는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헬: 에스플랑크니스데) 즉 깊은 동정심을 갖고 자신의 시간과 노력과 제물을 소비하며 그를 도와주었음을 알게 한다. 다른 무엇보다 우선적 가치를 지닌 생명의 한 사람에 대한 "이웃 사랑의 생활관"을 알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계율이나 도덕은 삶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삶의 우선적 가치를 지닌 인간존재의 생명의 의미를 가리키기 위해 예수는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하고 있음에 주의해 보는 것이다. 그는 사람의 삶의 자리가 ‘이웃 사랑’으로 삶의 생활에서 인정받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 사회가 사람과 생명의 가치체계가 무너지고 있는 사회현상을 보았으며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해결, 인간적인 의사소통, 인간적인 접촉이 인간사회에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주신 교훈인 것이다. "이웃사랑의 생활관"이 우리의 마음속에 되살아 날 때 대립과 갈등이 화해로 그리고 창조적 생명력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의 자리로 "이웃 사랑의 생활"이 자리해야 함을 알게 한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의 본성에 기준을 두지 않고 인상, 학벌, 출신지역, 경제력, 직업 또는 가정의 외형적 배경과 신분을 위주로 사람을 기용하고 사람을 사귀는 풍토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인간성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비뚤어져 사회적 혼란과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불신과 이질감 소외감은 그 속에서 싹트게 되었다.
마침내 과학기술과 생산능력이 급성장을 이루는 경제적 풍요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사회는 시대의 변천에 따라 정보화 시대 소통의 시대에서 마음의 불통으로 살아가고 있다. 다양하고 폭넓은 마음과 마음 그 사람의 개성을 수용하면서 신축성 있고 융통성 있게 표현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음을 우리는 현실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예수께서는 그 당시 사회의 사람과, 생명의 가치체계가 무너져 가고 있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우리에게 너무너무 인간다움의 삶의 방법으로 일상의 생활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점을 일깨운다. 오늘날 우리는 서구적인 합리적 사고방식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것을 결코 나쁘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 이상을 능가해야 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덕을 베풀고 정을 주고받으면서 배우는 삶의 생활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