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무엇인가? ①
모든 사람이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지만 반드시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과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음을 안다. 인간은 죽음을 예상하고 태어나며 죽음이 예정되어진 가운데 살고 있다. 이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삶의 과정이 또 죽음에의 과정이며, 인간의 마지막 삶이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 이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기피하는 대신에 오히려 일상적으로 사색하고 정면으로 탐구함으로 공포와 불안을 불식하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면서 죽음에 대한 바르게 이해함에서 우리가 지금 사순절을 맞아 고난, 십자가, 죽음, 부활의 사순절에 임하고 있기에 여기에 의미를 곁들어 보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서 예수 죽음이해를 하게 된다. 오랜 그리스도교의 전통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이 예수의 죽음이 아니라 부활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할지라도 예수의 죽음 자체를 간과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예수는 아담의 타락한 혈통을 이어 사람이 되시어 ‘죄 있는 육신’을 취하심으로서 불확실하고 모호한 형태의 죽음을 통하여서만 달성되는 인간의 삶의 정황으로 들어 오셨고 그는 사물의 기존질서에서 죽음이 천사와 인간 모두에게 있어서 창조의 타락한 상태를 명시 혹은 표명한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것을 떠맡으셨다는 삶을 보면서 모든 사람이 그 분의 죽음 안에 어떤 방식으로든 죽는 것을 어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이르게 된다(고후5:14). 이러한 긍정적인 사실이 죽음은 각 사람에게 실현될 필요가 있다고 신앙하게 된다. 결국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이 죽음은 실제로 죽음 자체에 대하여 실제로 죽는 것이다.
신학자 칼 라너(Karl Rahner)는 그리스도인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으로 그리스도처럼 죽고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전 생애에 침투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결단을 생활에서 현실화 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칼 라너는 여기에서 세례, 성찬, 병자의 신유를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케 하고 우리 죽음을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 할 수 있도록 세 가지 성사를 설명한다. 즉 세례는 예수의 죽음에 성서적으로 동화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죽음에 잠기도록 하며, 성찬은 주님의 죽음을 우리 생활에 현존하게 하며, 주님의 죽음을 새롭게 거행하는 예식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을 성서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병자의 신유는 육체의 병고라는 상태에서 인간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하여 있음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예수의 죽음은 죄가 없으신 죽음으로 죄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는 죽음이다. 이는 십자가를 통한 속죄의 죽음이다. 그것은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는 말에 의한 것으로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한 죽음이다. 말하자면 원죄에 의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 죽음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상대의 세계에서 절대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한 계시된 죽음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하여 처음으로 죽음의 본질이 죄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을 발견하게 된 것을 알게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계시한 세상을 구원하는 죽음으로서 믿게 되고 성서가 가르치신 대로 구원의 죽음으로서 평가되고 있는 것을 알게 한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예수의 죽음에 의한 삶은 이미 인간적 생명의 무한한 연속이 아니라 죄의 용서함을 받는 삶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부활이 없는 십자가를 믿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예수의 십자가상의 죽음과 동시에 부활하셨음을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받아들인 신앙을 갖는다. 예수의 무덤은 희망의 무덤이요, 또한 사망권세를 깨뜨린 무덤이요, 영생함을 우리에게 주신 무덤이기에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발견할 수가 있다.
예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은 살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는 죽음이기 때문에 그 죽음은 영생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 빈 무덤의 영원성을 믿는 것은 기독교인의 복음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창조된 사람을 ‘자연으로부터 와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하고 인간을 이렇게 의미 규정하는 것에는 인간이 ‘보냄을 받은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죽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동양사상과는 다르다는 확실히 해 둔다. 동양사상과는 기본적인 전제와 인간존재의 근원과 귀착점은 자연이라고 하는 사상과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신앙과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