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약속의 기다림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사가랴’(Zacharias)는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의 남편이며 세례 요한의 아버지였다. 그가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으로 활동하던 때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B.C 27-A.D 12)가 헤롯왕을 통해 유대를 통치하던 시기였다. 당시 로마와 결탁하여 정치적 권력을 유지하며 보수적 기득권층을 이루었던 타락한 사두개인과는 달리 사두개인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었던 사가랴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으로 활동할 즈음 하늘의 말씀을 받는다. 하나님은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는 말씀으로 사가랴에게 그에게 펼쳐질 미래를 계시하시고,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게 하셨다.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의 기다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revelation)와 약속에 근거한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새 창조, 즉 말씀과 약속은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
성경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수용자인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계시자인 하나님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전적으로 인간 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통치자인 하나님의 뜻이 그러하기에 그분의 뜻을 따라 사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그 분의 뜻하신 바가 무엇인지에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만 한다. 우리가 장차 올 앞날을 희망으로 기대하는 이유도 성경의 말씀 속에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약속은 기다림이요, 기다림은 깨어 있음이며, 삶 속에서 기다림으로 순응하는 행위는 믿음의 시작이 된다. 기다림이란 아무 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의 상태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이미 시작된 무엇인가를 현재의 바로 이 자리에서 의미있게 만드는 일이며, 약속의 때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삶이다.
성서는 또한 때를 따라 기다리는 하나님의 자연질서에 모든 만물이 순응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든 만물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곧 한 해의 절기(시절)에 따라 심고 기다리고 거두는 과정을 통해 자기 성장과 성숙을 완성시키는 자연의 질서를 보여준다. 만사에는 기다리며 익어가는 때가 있다. 그래서 기다림의 사람인 우리는 현재의 순간에 충실해야 하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하나님의 약속의 '그 순간'임을 굳게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순간순간에 주의를 기울여 깨어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기다리며 사는 삶은 하나님의 요구이기도 하다.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 믿음의 삶이며, 기다림의 끝에서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옛 약속인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또는 천사, 선지자, 혹은 이적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고, 새 약속인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신 성육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셨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 요 1:18).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으며, 인간에 내재한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다. 또한 역사의 거울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한 나라의 흥망성쇠와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분께서 절대 주권으로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깨닫게 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바로 우리의 사랑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그분의 말씀을 글로 받게 하신 것이다. 즉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이다. 이 말씀은 약속의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은 땅에 사는 우리의 기다림을 통해 이루어진다. 내가 말씀 안에서 약속의 구원을 받게 하신다는 것은 기다림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고대하며 기다림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