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속화의 전형 ‘맘모니즘’의 상업주의
돈 잔치로 물든 교단 선거, 맘모니즘의 극치 ‘성직 매매’
물질적 복을 받는 수단이 되어 버린 ‘헌금’
복채 내듯 헌금 제공 ‘구원’과 ‘화폐’의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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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가장 큰 걸림돌, 세속화의 가장 큰 문제는 맘모니즘이다. 맘모니즘(mammonism)이란 부, 돈, 재산, 소유, 재물, 물질을 절대시하거나, 그것에 최고의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태도나 행위를 의미한다. 맘모니즘은 물질만능주의, 배금주의, 물신숭배 풍조를 나타내는 용어이기도 하다.
2천년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는 가난할 때 영적으로 충만했지만, 부유해지면서 영성을 잃었다. 가난하지만 몸과 마음과 영혼을 깨끗이 하여 신앙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던 초대교회는, 4세기에 기독교가 국가 종교로 공인되자 몰수당했던 재산을 돌려받고 경제적 특혜도 누리면서 부를 누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박해가 교회에게 바치는 헌금이었고, 순교가 교회의 자산이었으며, 가난이 교회의 영적인 부였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부유해지고 정치적으로 힘이 커지면서 더욱 돈과 권력을 탐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교회는 영적인 능력을 상실했다. 돈으로 성직을 매매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중세기에는 면죄부를 판매하기까지 했다. 면죄부 판매는 돈으로 성령의 은사를 살 수 있으며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즉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맘모니즘의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개신교도 맘모니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개신교 교회가 점점 커지면서 그 교회도 제도화되기 시작했고, 이렇게 제도화된 교회는 점차 부유해졌다. 이러한 부는 교회로 하여금 물질 가치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고 돈에 의지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교회가 영적, 도덕적 능력을 상실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감리교 역사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18세기 말 미국의 처음 감리교인들은 대부분 가난했지만, 신앙적 열성이 대단했다. 초기 감리교 목회자들과 평신도 설교자들은 산간벽지와 오지에도 찾아갔고, 순회하며 전도했다. 그들은 다른 교파 목회자 보수의 삼분지 일, 오분지 일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어느 곳에도 찾아 나섰다. 이러한 열정이 미국 감리교회를 선교 100년 만에 미국 최대의 교파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점차 미국 감리교회는 부유해졌고, 물질에 의존하게 되면서 신앙적 열정이 식어갔다.
예를 들어 1790년 감리교 총회는 켄터키 주의 한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열렸으나, 1888년 총회는 당시로는 엄청난 거금인 5,500 달러를 들여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를 빌려서 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참석자에게는 좌석의 위치에 따라 50-90달러씩 받았고, 특석은 100달러를 받고 좌석을 팔았다. 미국 감리교회는 부유해지면서 존경, 화려함, 풍요로움, 편안함, 즐김, 공명심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영성을 잃어버리고 교세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유럽과 미국의 대부분 주류 개신교 교파들이 이미 겪어왔던 길이다. 경제적인 부는 흔히 종교의 도덕성을 약화시키고, 이에 따라 점차 신앙의 힘은 물질의 힘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이 최고의 지상과제가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가 차원이나 개인 차원에서 “물질적으로 잘 사는 것”이 절대적 가치가 되었고, 이에 따라 점차 “돈이 최고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천민적 자본주의와 결합된 물질만능주의 풍조가 사회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고, 사람들은 일확천금이나 벼락출세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루저(loser)로 낙인찍히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는 돈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간절한 바람과 함께 ‘황금우상’ 혹은 ‘돈 신’을 섬기는 맘모니즘이 하나의 강력한 대체종교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한국교회마저도 그동안 크게 성장하면서 서서히 맘모니즘에 물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한국교회의 급성장은 경제적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성장과 성공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물질가치, 경제 가치를 최고의 덕으로 보고, 이것을 절대시하는 맘모니즘의 덫에 빠지게 만들었다. 맘모니즘의 흔적은 무엇보다 한국교회에 만연하고 있는 물량주의 가치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교회에 대한, 목회자에 대한, 교인들에 대한 평가는 하나같이 물량적 척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교회는 그 조직의 운영 면에서 신도의 숫자, 건물의 크기, 예산의 규모 등을 비롯하여, 성직자의 사례비에 이르기까지 물량적 지표들이 목회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있다. 크고 많아야만 성공적이라고 보는 천민적 자본주의 시장 논리가 교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교회는 성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고, 교회는 커야만 목회자가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 교인에 대한 평가도 헌금 액수나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있다.
헌금은 복을 받는 수단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헌금을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 ‘신앙의 척도’로 보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헌금의 액수가 많고 적음을 통해 신앙의 크고 작음을 판단하고 있다. 헌금은 이미 주신 하나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에게 “더 많이 바치면 더 많이 주신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이 세상의 것과 거래하는 상거래 같은 행위로 만드는 것이다. 헌금으로 복을 사고파는 것과 같은 일이 교회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복채를 내듯이 금품을 제공하는 대가로 구원을 위한 기도를 대신해주는 형태는, 구원과 화폐의 교환이라 할 수 있다.
맘모니즘은 교회를 상업주의에 물들게 한다. 대형교회들이, 많은 개척교회를 같은 이름으로 세우고 중앙 통제를 하며 체인화 하는 것도 상업주의적 발상이라 할 수 있다. 부흥회 때 부흥사가 헌금액수를 불러가면서 ‘외상헌금’을 작정하라고 강요하며 손을 들게 하는 것은 경매장의 풍경과 비슷하다. 상회(上會)에 대한 부담금을 적게 내기 위해, 혹은 다른 목적으로 교회 수입에 대한 이중장부를 만드는 일도 대형교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일반 기업체의 편법적인 관행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교회의 평신도는 기업체의 주주가 된 것처럼 기업 경영자를 평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예를 들면 기업 실적이 부진할 때 그 책임을 물어 기업 대표를 주주총회에서 갈아치우는 것) 교회의 목회자를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에 부응하여 목회자는 교회를 “성공적으로 성장시킬” 목적으로 목회지침을 세우고 전략을 꾸미는데, 이것은 흡사 기업의 마케팅 전략과 비슷한 것이다.
한국교회 맘모니즘의 극치는 무엇보다 성직매매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개신교의 각 교단장 선거와 초교파 조직의 장 선거는 온통 돈 잔치로 물들어 있다. 사회적으로는 엄격한 법에 의해 돈으로 매표를 하는 행위가 줄어들고 있으나, 교회에는 이러한 구태가 여전하다. 교회를 사고파는 행위도 일종의 성직매매다.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면서 프리미엄을 후임자에게 받기도 하고, 교회가 후임자를 구할 때 교회 빚을 갚아 줄 수 있는 목사를 조건으로 내걸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신도수와 재산에 따라 권리금을 얹어 매매하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각종 교회관련 신문, 잡지에는 줄지어 교회 매매광고가 나오고 있다. 무인가 신학교에서 돈을 받고 날림으로 목사직을 주는 행위도 성직매매의 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어느 종교든 맘모니즘에 사로잡히게 되면 그 종교는 부패하기 마련이며, 새로운 개혁이나 갱신 운동이 일어나지 않는 한 소멸되거나 쇠퇴하거나 침체되었다. 즉, 종교 타락의 전형적인 양상은 종교가 지나치게 부를 탐하고, 그리하여 부유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상황도 비슷하다.
교인들이 잘 살게 되면서 교회도 함께 부유해졌다. 이에 따라 교회에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는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든가 형식만 남게 되었다. 교회의 중심에는 신앙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위장된 거대한 맘모니즘이 자리하고 있다. 맘모니즘에 물들어 물질을 탐하고, 물질 가치에 사로 잡혀 기복적이고 도구적인 신앙에 젖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한국교회가 이제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부가 증가하면서 교만, 분노, 육의 욕망, 삶의 자만, 세상에 대한 사랑도 비례적으로 증가하게 되어, 종교의 형식은 남아 있어도 그 정신은 손쉽게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라는 웨슬리(Wesley)의 경고는 맘모니즘에 물들어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준엄한 경고일 수 있다.